[칼럼] ‘한명숙 사건이 재조명돼야 할 이유

                       

검사를 만나면 그는 언제, 어떻게 당신의 유죄를 입증할지 얘기하지 않아. 어떻게 당신을 죽일지 얘기하지. 그는 당신이 결백한지 아닌지엔 관심도 없어. 당신을 죽이는 것에 대해서만 얘기하지. 악몽 같은 일이야. 당신은 깨어나고 싶겠지. 하지만 그럴 수 없어.”(미국 다큐멘터리 <가늘고 푸른 선>의 주인공 랜들 애덤스, 그는 이 다큐를 통해 살인 누명을 벗고 12년 만에 풀려났다.)

내가 무서워서 10만불 주었다고 했는데, 사실은 사실이 아닙니다. 검사님이 눈을 부릅뜨니까무서우니까나도 모르게 이야기했어요. 검사님이 안 되면 없어도 탁 죄를 만들잖아요. 식구들이 와서 이러다가는 죽게 생겼으니까 다 불어라고 했습니다. 저도 몸이 너무 아파서 죽을 것만 같았고.”(한명숙 전 총리에게 뇌물을 준 혐의로 기소된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의 법정 진술)

어느 나라에서건 어떤 혐의로 조사를 받건 검사는 힘있고 두려운 존재일 것이다. 그러나 그 힘과 두려움이 진실을 뒤집거나 왜곡해서는 안 된다. 고문과 조작이 지배하던 전근대적 형사사법체제를 버린 이유다. 그래도 여전히 막강한 힘에는 남용의 유혹이 따르기 마련이다.

한명숙 전 총리 사건을 재조명할 지점은 이곳이다. 한 전 총리가 무죄 확정 판결을 받은 ‘1차 사건’(뇌물)에서는 곽영욱 전 사장에 대한 강압 수사가 판결문에 드러나 있다. 이번엔 <뉴스타파>‘2차 사건’(정치자금)에서도 강압·조작 수사가 있었다는 한만호 전 한신건영 대표의 비망록 등을 공개했다. 허위 진술조서를 써 외우게 한 게 사실이라면 심각한 범죄다.

과정이야 어떻든 유죄만 받아내면 된다는 식의 수사 행태는 심심찮게 되풀이돼왔다. 논란이 일면 불법과 싸운다는 명분으로 돌파한다. 이런 수사는 대개 검사의 공명심이든 정권이나 검찰 조직의 이해관계든 부적절한 의도가 끼어들었다는 의심을 받는다. 한 전 총리 사건도 그랬다. 검찰은 1차 사건에서 곽 전 사장의 진술 번복으로 패색이 짙어지자, 무죄 선고가 나기 바로 전날 2차 사건 수사에 돌입했다. 두달 뒤 서울시장 선거에서 한 전 총리는 0.6%포인트 차이로 낙선했다. 표적 수사, 오기 수사, 선거개입 수사. 온갖 오명을 붙여도 할 말 없는 수사였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검찰에 불신이 쌓이고 이는 수사·재판 결과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졌다. “검사는 형사사법체제 그 자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지배적인 권한과 재량권을 갖지만, 남용을 통제할 장치는 허술한 데 원인이 있다. 검찰은 행정부 소속의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면서도 그 성격상 독립성을 부여받는다. 이런 경우 민주적 정당성과 책임성을 확보할 방안이 반드시 필요하다. 검찰권 행사에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거나 외부의 감시·견제를 강화하는 게 그것이다.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에서도 증거 왜곡, 과잉 기소, 선택적 기소 등 검사의 독단이 낳는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지방검사장을 선거로 뽑고, 기소 여부를 시민들(대배심)이 결정하는 등 민주적 정당성을 받쳐주는 제도가 있는데도, 추가적인 감시·견제 장치에 대한 요구가 확산되는 배경이다. 캘리포니아주는 2016년 검사가 피고인에게 유리한 증거를 숨기거나 증거를 왜곡하는 행위를 중범죄에 포함시켰다. 뉴욕주는 검사의 비윤리적·불법적 행위를 신고받아 조사하는 독립기구를 추진하고 있다. 영국에서는 검찰청과 중대범죄수사청(검찰과 별도의 수사·기소 기관)을 감시·감독하는 검찰감찰청을 따로 두고 있다. 일상적으로 사건 처리의 적절성, 피해자·증인들의 평가, 인권 침해 등을 조사하고 그 결과와 권고사항을 공표한다. 여기에 더해 독립적인 민원심사관을 둬 접수된 불만 사항을 조사한다. 겹겹의 장치를 두는 이유는 시민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라고 한다.

우리는 검찰권 분산·견제를 위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를 만든다. 의미있는 첫발이다. 그러나 기소권의 대부분과 상당한 직접수사권을 유지하는 검찰을 촘촘히 감시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공수처 역시 감시의 대상이다. 시민 참여를 통한 민주적 정당성 확보 제도는 전무하다시피 하다. 공포와 독단이 지배하지 않는 형사사법체제를 완성하려면 할 일이 아직 많다.

< 박용현 논설위원 >

 

[칼럼] 삼성, ‘4세 경영은 어차피 어려운 터에

재벌 대기업에서 ‘3세 경영시대를 처음 연 것은 1981년 두산그룹이었다. 40년에 이르는 국내 재벌 3세 체제의 역사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으며, 주류를 이루고 있다. 재계 1위 그룹의 총수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2위인 현대차그룹의 경영을 사실상 이끌고 있는 정의선 총괄 수석 부회장은 그 상징이다.

이재용 부회장의 6일 대국민 사과문에서 언론의 집중 관심을 끈 대목은 ‘4세 경영포기 발언이었다. 다음날 주요 신문의 1면은 삼성 경영권 대물림 않겠다’, ‘4세 경영 포기 선언’, ‘제 아이들에게 경영권 물려주지 않겠다는 제목의 기사로 덮였다.

4세 경영 포기가 재계를 놀라게 했을지는 몰라도 경영계 동심원 바깥까지 흔든 것 같지는 않다. 이 부회장의 아이들20살 아들과 16살 딸이라 4세 경영 여부는 먼 미래 일이다. 또 그가 총수 역할을 하기 시작한 지 6년밖에 되지 않았다. 창업자인 이병철 회장과 2세 이건희 회장의 재임 기간(49, 27)에 견주면 멀었다.

더 중요하게는 그룹의 핵심 중 핵심인 삼성전자의 덩치가 커져 특정 가문이 장악하기는 어렵고 더 어려워지고 있다. 4세 경영 포기라는 게 실상 할 수 없는, 불가능한 일안 하겠다고 한 것과 마찬가지라는 허망함을 띠고 있다.

이 부회장 가문과 삼성 계열사 보유의 삼성전자 지분은 다 합쳐 20%를 갓 넘는 수준이다. 이건희 회장(4.18%), 삼성물산(5.01%), 삼성생명(8.51%)이 주요 축이며, 이 부회장 몫은 0.7% 수준이다. 그가 지주회사 격인 물산의 주식을 17.08% 확보한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또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따른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의혹은 검찰 수사 대상이다. 도덕적 정당성 부족에 법적 위험이 겹쳐 있다. 편법과 탈법에 얽힌 탓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 부회장이 아버지로부터 주식을 온전히 물려받으려면 막대한 세금을 물어야 한다. 현금을 10조원 이상 마련해야 할 것이란 추정이 있을 정도다. 다음 세대로 넘길 때마다 상속세 때문에 몫이 절반씩 줄어든다는 사정을 고려하면 4세 경영이 정상적으로는 불가능에 가깝다. “삼성에서 4세 경영을 한다는 것은 곧 지금까지 한 것보다 더 심한 편법, 불법으로 지분을 부풀려야 한다는 얘기나 마찬가지”(김진방 인하대 교수).

헌법상의 노동 3권에 정면 배치되는 무노조 경영이야 말할 필요조차 없고, 삼성에서 4세로 경영권을 넘기는 일 또한 정상적, 합법적으로는 어렵다. 기업 인수와 합병, 증자를 통해 덩치를 불린 데 따라 총수 가문의 지분율이 급락한 국내 최상위권 재벌의 공통 고민이다. ‘총수 자리에 오른 뒤 능력을 입증하려는비정상에서 벗어나 능력을 인정받아 총수 자리에 오르는정상 궤도 쪽으로 등 떠미는 요인이다.

아이들에게 물려주지 않겠다는 이 부회장의 선언을 깎아내리기만 할 일이 아님은 물론이다. 허망함을 띤 선언이라도 안 한 것보다는 나을 테고, 후속 조처의 알맹이에 따라선 좋은 변곡점을 마련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이 부회장의 대국민 사과 다음날 삼성 준법감시위원회는 정례회의를 연 뒤 노동 3권의 실효성 있는 보장, 시민사회의 신뢰 회복 방안과 함께 준법 의무 위반이 발생하지 않을 지속가능한 경영체계 수립을 주문했다. 총수와 가신을 중심으로 한 전횡 체제를 개선하라는 요구로 읽힌다. 사과의 진정성은 이에 대한 응답과, 진작 내놓은 약속의 이행 수준으로 판명 날 것이다.

이 부회장에 앞선 두 삼성 총수의 대국민 사과, 그에 따른 약속은 실천으로 뒷받침되지 않았다. 사카린 밀수 사건에 얽혔던 창업자 이병철 회장의 1966년 은퇴 선언은 1년 뒤 복귀로 번복됐다. 2008년 이건희 회장의 사퇴 선언과 차명계좌 45천억원 사회 환원, 지배구조 개선 약속도 지켜지지 않았다. 이 부회장의 신약(새 약속)이 의구심을 남기는 것과 무관치 않은 사연이다. 구약(옛 약속)이 지켜지지 않은 터에 제시된 신약이 미덥지 않은 것은 어쩔 수 없다.

삼성과 이 부회장에게 신약 개발보다 더 필요한 것은 구약 이행일 것 같다. 구약 중에는 지금이라도 돌이켜 교정할 수 있는 내용이 들어 있다. 구약의 이행이야말로 신약의 신뢰도를 높일 더없는 묘약이다. 신약에 따른 후속 조처의 실행은 금상첨화의 양약일 테고.

< 김영배 논설위원 >


전국민 긴급재난지원금전국민 갈라먹기” “무책임한 포퓰리즘이라며 반대했던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등 일부 언론이, 이번엔 자발적 기부에 트집을 잡는다. 구체적 근거도 없이 관제 기부라고 몰아간다. 기부할 마음이 없으면 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자발적 기부 움직임에 찬물을 끼얹지는 마라.

전국민 긴급재난지원금이 지난 4일부터 지급되기 시작했다. 한시가 급한 저소득층 280만 가구가 먼저 현금으로 받고 있다. 현금 지급 대상이 아닌 나머지 국민은 11일부터 신용·체크카드, 선불카드, 지역사랑상품권 중 하나를 선택해 지급받는다.

긴급재난지원금은 신청 단계에서 전액 또는 일부를 기부하거나 일단 받은 뒤 근로복지공단을 통해 기부할 수 있다. 본인이 자유롭게 결정하는 자발적 기부. 지급 개시일로부터 3개월 안에 신청하지 않는 경우도 자발적 기부로 간주한다. 급격한 소비 위축에 신속히 대응하기 위해 지원금 사용 시한을 3개월로 정한 것과 동일한 기준이다.

전국민 긴급재난지원금을 전국민 갈라먹기” “무책임한 포퓰리즘이라며 반대했던 <조선일보><중앙일보> 등 일부 언론이, 이번엔 자발적 기부에 트집을 잡는다. 구체적 근거도 없이 관제 기부라고 몰아간다. 조선일보는 지난달 24긴급재난지원금 기부는 코로나 대책에 들어가는 재원 마련의 책임을 일부 고소득자에게 떠넘기는 정책이라며 정치권에선 조세 저항을 불러올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고 보도했다. 청와대가 당일 고소득자를 압박한 적이 없다기부는 고소득자만 하는 게 아니라 자발적으로 진행된다고 반박했다. 청와대는 이후에도 대통령이 기부를 하더라도 조용히 동참할 것이라고 거듭 설명했고, 더불어민주당도 기부 캠페인을 하지 않고 시민들의 자발적 의사에 맡긴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이들 언론은 귀를 닫았다. “재난지원금 관제 기부로 환수’, 이건 국정도 아니다”(문화일보) “재계는 사재를 내놓으라는 얘기라고 우려한다”(중앙일보) “자발적 기부 유도는 강압적 준조세 협박”(조선일보) 등등. 기부 강요 사례를 단 한건도 제시하지 않은 채 기업 관계자’ ‘또 다른 기업 관계자’ ‘일부 공무원’ ‘정치권등 익명의 취재원에 기대 이런 주장을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4일 직접 기부는 선의의 자발적 선택이다. 강요할 수도 없고, 강요해서도 안 될 일이라며 형편이 되는 만큼, 뜻이 있는 만큼 참여해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그런데도 실적 악화로 벼랑 끝에 몰린 기업들을 닦달해 추가 기부를 요구하는 것은 박근혜 정부 때 케이(K)스포츠·미르재단 출연 요구를 한 것이나 다를 바가 없다”(매일경제)는 주장까지 나온다. 재난지원금 기부를 박근혜·최순실의 국정 농단과 동일 선상에 놓은 것이다. 기가 막힐 노릇이다. 어떻게든 정부 정책을 흔들어보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4·15 총선의 결과를 지켜보고도 교훈을 얻지 못한 것 같다.

경제적으로 또는 심적으로 조금 더 여유 있는 사람이 더 어려운 사람을 돕는 건 인지상정이다. 지금처럼 전대미문의 재난에 직면했을 때는 더욱 그렇다. 정부는 국민들이 기부를 하면 고용 유지에 사용할 계획이다. 무급휴직에 들어간 가장, 정부 일자리 사업이 중단돼 생계가 막막해진 노인, 아르바이트 자리를 잃은 청년 등 고통받는 이웃을 위해 쓰이는 것이다.

지난달부터 자체적으로 재난지원금을 지급한 지방자치단체들에선 이미 자발적 기부 움직임이 활발하다. 누가 강요하지도 않고 눈치를 주지도 않는다. 대부분 평범한 시민들이다. 지난달 25일 모 방송 뉴스에 수원에서 식당을 하는 임태선씨 인터뷰가 나왔다. “3월엔 정말 힘들었거든요. 근데 저희는 그래도 처지가 괜찮은 편이더라고요. 나보다 힘든 사람들은 얼마나 더 힘들까, 그래서 기부를 결정하게 됐어요. 적은 금액이지만, 적은 금액이 모이면 큰 액수가 되잖아요. 큰 액수가 돼서 많은 분들에게 돌아갔으면 좋겠어요.” 수원시는 지난달 9일부터 기부를 받고 있는데 5일까지 1824명의 시민이 32천여만원을 모았다. 수원시는 기부금을 실직자와 소상공인 등을 위해 사용한다. 수원시만이 아니다. 부산 기장군, 경기 남양주시, 전북 장수군과 익산시 등에서도 주민들의 기부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기부는 연대와 상생의 손길을 내미는 일이다. 우리나라가 코로나19 방역에는 성공했지만 코로나발 경제 위기는 이제 시작이다. 앞으로 많은 어려움이 닥칠 것이고 이를 헤쳐나갈 때 연대와 상생의 정신이 큰 힘이 될 것이다.

기부는 좋은 일이다. 그렇다고 기부를 하지 않는다고 비난해선 안 된다. 사람마다 사정이나 생각이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자발적 기부에 찬물을 끼얹어서는 안 된다.

< 안재승 한겨레 논설위원실장 >


망언 의원들을 줄줄이 낙선시키고 미래통합당에 초유의 참패를 안긴 것은 수구적 행태에 대한 유권자들의 응징이다. 보수언론도 함께 심판당했다. 곳곳에서협치를 제안하지만 수구보수 야당·언론이 건강한 보수로 재탄생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거대 여당도 열린우리당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국민적 공감이 많은 사안부터 우선순위를 정하고 완급 조절을 해야 한다.


민주화 이후 처음이라는 미래통합당의 역대급 참패는 중도층이 외면한 탓이 크다. 공천 실패에다 막판 패륜적 망언이 터져나오면서 중도층은 한 가닥 남은 미련마저 거둬들였을 것이다.

<조선일보>강경 지지층에 휘둘려 중도층을 잃었다고 했으나 <한겨레>는 사설에서 그 강경파 중 하나가조중동이라고 콕 짚었다. “모든 게 문재인 정부 탓이라는 조선·중앙 등 보수언론 프레임을 그대로 따르며 퇴행적 행태를 반복한 통합당 지도부 책임이라는 분석은 일리가 있다.

지난 3년 보수언론들이 집착해온반문재인 프레임은 코로나19 국면에서 결정적으로 한계를 드러냈다. 외국 언론들이방역 모범 사례로 칭찬하고 국민 65%가 정부 대응을 보며선진국임을 느꼈다”(19일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 조사)는데도방역 실패라고 억지를 부렸다. ‘시진핑 눈치 보느라 입국금지 안 했다는 조선·중앙의 논리를 앵무새처럼 따라 하며문재인 정권 심판구호로 선거를 치렀으니 그런 야당에 중도층이 표를 줄 리 만무했다.

차명진 미래통합당 후보의세월호 망언도 따지고 보면 보수언론의 책임과 무관하지 않다. “징하게 해 처먹는다에 이어텐트 망언으로 제명 파동을 겪은 뒤에도 성금이 답지한다며 천안함 유족들에게 보내겠다고 했다. 애초 세월호와 천안함의 유족 보상금 액수를 비교하며문제로 참사 유족들을 조롱한 원조는 조선일보 등 보수언론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책임 없다며 유족들의 진상규명 요구를 매도한 것도 모자라 검찰이 재수사에 착수하자세월호 또 우려먹겠다는 정권과 검찰, 해도 너무한다고 공격한 것도 조선일보다. 사실 차 후보 망언과 그리 다르지 않다.

김진태·이종명 의원 등의 ‘5·18’ 망언도 <TV조선> <채널에이 A>가 촉발한북한 특수군 침투발언에 원죄가 있다. 지금도 극우 유튜브엔 비슷한 영상들이 숱하게 걸려 있다.

북핵 위기를 협상으로 풀려는 노력을 색깔론으로 방해한 것도 보수언론들이다. 조선일보가천안함 폭침 주범 평창 온다한국과 유가족 능멸이라고 부추기자, 당시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곧바로 통일대교 한복판에 자리를 깔았다. 김영철 방남을 저지하겠다며 길을 막고 철야 농성을 벌였다.

스스로 인정하진 않겠으나 보수언론 중에서도 조선일보는 탄핵 국면에서태극기부대의 불매운동 협박을 경험한 뒤 더욱 강경 보수로 치달았다. 광고 지면을 통째 선전장으로 내주며 아스팔트 우파에도 영합했다.

이번에 망언 의원들을 줄줄이 낙선시키고 통합당에 초유의 참패를 안긴 것은 이런 식의 수구적 행태에 대한 유권자들의 응징이다. 총선 국면에서 보수 통합을 독려하고 야당 대표 출마 지역구까지 찍어준 보수언론도 함께 심판당했다. 오죽하면 <미디어오늘> 1면 머리기사로참패한 조선일보라는 제목을 달았겠는가.

2016년 촛불 시민은 대통령을 탄핵했으나 국회는 이전 구도 그대로였다. 이번에 국회마저 획기적으로 바꿔놓은 건 촛불 정신을 완성시키라는 시민들의 뜻이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이번 총선은촛불 시즌2’라 일러도 지나치지 않다.

70여년 지탱해온 수구 기득권 체제는 적대적 남북정책을 고수하며 분단구조에 기생해왔다. 경제적으론 수출과 대기업 중심의 성장 우선주의로 시장경제마저 제대로 포용하지 못했다. 정치·경제 등 각 분야의 기득권 논리를 전파하며 연결고리 구실을 해온 게 수구보수언론들이다. 그런데 최소한의 복지조차사회주의” “포퓰리즘”’이라던 조선일보가 총선 이후 야당에 복지정책 보완과 기본소득제 검토를 주문하며, 사람도 노선도 행태도 바꾸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좀 더 지켜보긴 해야겠으나 내부 성찰의 결과이길 바란다. 곳곳에서협치를 제안하지만 수구보수 야당·언론이 건강한 보수로 재탄생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여권도 마찬가지다. 일각에서 윤석열 검찰총장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구체적인 책임이 드러나기 전에 정치권이 나서서 몰아내려는 모양새는 역풍을 불러올 수 있다. 가족 수사가 진행되고 있으니 그 결과에 따라 자연스럽게 결정하면 될 일이다. 거대 여당이 열린우리당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다수 국민과 함께 가야 한다. 입법과 정책도 국민적 공감이 많은 사안부터 우선순위를 정하고 현명하게 완급 조절을 해야 한다. < 김이택 대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