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이 15일부터 19일까지 일본, 한국, 중국을 차례로 방문했다. 세 나라에서 모두 외교장관 회담을 하고 정상도 예방했다. 틸러슨 장관은 이번 방문의 성격을 ‘경청 투어’라고 말했지만, 위기가 최고조 상태에 있는 한반도 상황과 유동적인 미-중 관계 등을 고려할 때 우리나라로선 운명을 가를 중요한 순방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틸러슨 장관은 일본에서는 아시아에서 미-일 동맹의 중요성과 북한 핵과 미사일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한-미-일 3국 협력의 강화를 강조하고, 한국에선 대북 ‘전략적 인내’ 정책의 실패를 인정하고 군사적 옵션까지 포함하는 대북 강경정책을 내놨다. 이와 동시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북한은 여러 해 동안 미국을 가지고 놀았다. 중국도 거의 도움을 주지 않았다”고 대북·대중 강경 메시지를 날렸다.
틸러슨 장관은 마지막 순방지인 중국에서는 일본, 한국에서와는 달리 다소 완화된 목소리를 내놨다. 18일 열린 왕이 외교부장과의 회담에서 ‘한반도 비핵화와 북한 경로를 바꾸기 위한 설득에 공감’했고, 19일 시진핑 주석과의 면담에서도 미-중 관계 발전을 위해 협력하기로 했다.


그러나 틸러슨 장관이 한·중·일 3국을 순방하면서 내놓은 북한과 관련한 메시지는 전반적으로 강경책에 기울어져 있다고 할 수 있다. 중국과는 4월 초로 예정된 트럼프-시진핑 정상회담을 앞두고 있어 공개적 이견 표출을 피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그는 미국의 인터넷 언론 ‘인디펜던트 저널 리뷰’와 한 기내 회견에서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계속하면 “오늘 서 있는 지점보다 훨씬 더 위험한 곳에 서 있는 우리를 발견할 것”이라고 군사행동 가능성을 노골적으로 내비쳤다. 이런 점에서 4월 초 미-중 정상회담은 한반도 운명을 ‘전쟁과 평화’ 중 한쪽으로 가르게 할 결정적인 계기가 될 수 있다. 중국의 더 강한 대북 압박을 요구하는 미국과 북-미 대화를 통한 북핵 해결을 강조하는 중국이 접점을 찾지 못할 경우 한반도엔 큰 재앙이 닥칠지도 모른다.


정부 당국과 여야 정치권은 한반도의 운명이 다른 나라의 손에 의해 불행한 방향으로 가는 것을 막기 위해 최대한의 지혜와 힘을 모아야 할 때다. 지금은 한국전쟁 이후 가장 위기지수가 높은 시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북한도 경거망동해서는 안 된다.


모르고 지은 죄와 알고 지은 죄는 어느 쪽이 더 나쁠까?
우리는 흔히 모르고 지은 죄는 용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모르고 지었기에 고의성이 없으니 처벌은 가벼울 수 밖에 없고, 알고 지은 죄는 양심과 도덕 윤리를 어긴 죄질이 나쁘니 무겁게 벌해야 한다는 통념에서다.
성경의 디모데(전)서를 보면 바울 사도의 이런 고백이 나온다.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기독교인들을 심하게 핍박하는 죄를 지었으나 ‘모르고 지은 죄’였기에 용서를 받았다는 뜻이다.


그렇지만, 모르고 지은 죄가 더 중하다는 견해도 있다. 바로 ‘깨달음이 없어서 저질렀기에’ 나쁘다는 불교의 결과론적인 설법이다. 죄라고 생각하면 죗값이 두려워 조심하게 되지만 죄를 모르거나 죄가 아니라고 여기면 망설임이나 주저함이 없이 막무가내로 저지르기에 더 큰 악행에 이른다는 것이다. 쉬운 예로 벌건 쇠막대기를 보고 뜨겁게 달아오른 줄 아는 사람은 아무리 불가피해도 잡는 걸 주저하거나 조심하지만, 벌건 것을 금막대기로 오인한 사람은 덥썩 쥐었다가 큰 화상을 입는 것과 같다는 이야기다.
헌법위반으로 탄핵을 당한 박근혜 전 대통령을 계속 지켜보며 헷갈렸던 것은, 과연 알고 지은 죄인지, 모르고 지은 죄인지 종잡을 수 없을 때가 많았다는 사실이다. 그를 이용한 최순실은 알고 지은 죄라고 단정해도 틀린 말이 아니겠지만, 마치 로봇처럼 움직인 박근혜는 어떻게 보면 모르고 끌려다닌 것만 같기도 하고, 어떤 때는 알고도 습관처럼, 혹은 아예 초법적 존재인양 대놓고 위법을 행한 것 같기도 하니 말이다.


탄핵소추와 검찰수사가 자신을 엮어도 너무 엮은 것이라고 억울해 하는 것이나, 탄핵반대 집회가 더 많았다고 주장한 것, 탄핵이 안될 것이라고 믿은 것 등 그간의 태도를 보면 자신이 무엇을 잘못한 것인지, 거의 인식하지 못한 자기중심적 사고에만 빠져있다는 의심을 준다. 탄핵 이후 승복이 아니라 긴 침묵 끝에 뱉은 한마디가 “진실이 반드시 밝혀질 것”이라는 걸 보면 또한 그렇다. 왜 죄없는 자신을 괴롭히느냐 두고 보자는 것이다. ‘죄의식 없는 확신범’이라는 말이 실감나기도 한다. 그렇다면 지난해 3차례에 걸쳐 사과 담화를 발표한 것은 무엇이며, 잘못이 없다면 왜 검찰과 특검수사를 보이콧하고 압수수색도 거부했던 것인가?. 처음엔 사퇴할 듯 하다가 아예 버티기로 돌더니 결국 파면까지 간 고집은 인지부조화(認知不調和) 탓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미필적고의(未必的故意)라고 설명해야 할까?


어떻든 그의 그런 기묘한 성정(性情)과 갈팡질팡 행보 때문에 국내외 동포 1700만여 명이 광장과 거리에서 4개월이 넘도록 생고생을 했고,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을 포함해 온 국민이 속을 끓이는 고통 속에 나라는 휘청대고 망신을 당했다. 그러니 더더욱 검찰의 철저하고도 강력한 수사로 진실을 밝혀줘야 한다. 죄를 모른 죄, 알고도 지은 죄, 참회조차 걷어차는 죄… 그 걸 샅샅이 판별해서 댓가도 분명히 치러야 함은 물론이다.
탄핵으로 끝난 박근혜 게이트 와중에는 ‘알고도 지은’ 죄값을 받아 마땅할 인물들이 수두룩하다. 몰염치·몰상식과 유아독존의 막가파식인 박근혜라는 인물과 그 일파의 수준, 속성을 여실히 보여준 스캔들이었기에 그럴 것이다. 그 중에도 압권은 최고학부를 나온 율사(律士) 출신 몇몇이다.


해외에까지 발을 뻗쳐 순진한 동포들을 오도한 김진태 의원은 아예 제쳐 놓는다 지차. 헌법재판관들과 80%의 국민을 무시하고 한줌 친박 세력만을 향해 광대처럼 쇼를 벌인 법률가들 말이다. 심지어 서울법대 수석에 명문 하버드 로스쿨을 나왔다는 변협회장 출신 거물 변호사의 법정모욕과 헌법절차 무시는 틀림없이 ‘알고 있을 죄를 알고 지은, 죄의식 있는 확신의 망동’이라고 할 텐데, 그 값을 국민 앞에 어찌 다 치룰 것인지 모르겠다.
실정법을 어긴 죄라고 할 수는 없을지 모르나, 그들의 선동에 솔깃해 ‘모르고 지은 죄, 부화뇌동의 죄’에 빠져든 무고한 사람들도 많았다.


스스로가 나라와 민족의 주인인 사실을 잊은 채 박근혜를 나랏님으로 여겨 무조건 따라나선 추종자들이 있었고, 그런 주군이 법을 좀 무시하고 비선 도움 받은 게 무슨 죄냐는 조선시대 사고방식의 백성들도 보였다. 동원책에게 여비를 받고 나가, 쥐어 준 태극기를 흔든 품꾼들도 드러났고, ‘태극기 집회’라니 이게 진짜 애국자들인가 보다고 발을 헛디딘 선량한 군중들도 많았다. 그들 중에는 민주제도가 정착된 해외 선진국 거주 동포들도 제법 있었으니, 과연 ‘모르고 지은 죄’에 해당할까, 아니면 ‘알고도 지은 죄’라는 뒤늦은 깨달음이라도 얻었을까?
어느  쪽이든, 누구에게나 또 다른 어느 경우든 보편적인 인간사회의 가치는 ‘배운 것, 익힌 것, 보고 들은 지식과 지성의 수준’을 가진 사람들의 ‘알고도 지은’ 죄가 훨씬 무겁다는 것이 통용되는 상식아닌가.


< 김종천 편집인 >


박근혜의 불복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의 역사는 앞으로 ‘3·10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질 것이 틀림없다. 적어도 한국 정치사는 그렇게 기록될 것이다. 그만큼 국가 최고 권력자를 국민의 힘으로 자리에서 끌어내린 의미는 매우 크다.
4개월여간 20차례에 걸쳐 서울 광화문을 비롯해 전국 각지의 거리에 쏟아져 나온 1700만 촛불 시민의 힘이 절대적인 원동력이었지만, 무엇보다 이번 탄핵 사태가 유혈을 동반하지 않고 평화적으로 마무리된 것은 굳이 <뉴욕 타임스>의 표현을 빌리지 않더라도 ‘한국 민주주의’의 진화이자 발전이고 자랑이다. 한국 민주주의는 촛불 명예시민혁명과 헌법재판소의 전원일치의 대통령 파면 결정을 통해 더는 후퇴할 수 없는 민주주의의 공고한 진지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절차 민주주의의 최고봉에 오른 것으로, 세계 어느 곳에 내놓고 떳떳하게 자랑해도 될 만한 위업이다.


둘째, 대통령 박근혜의 파면은 그뿐만 아니라 그의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에 깊게 뿌리를 박고 있는 이른바 ‘박정희 패러다임’도 함께 퇴장시키는 전기를 마련했다. 그간 대통령 박근혜가 보여온 행태는 ‘리틀 박정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정치·사회적으로는 권위주의가 부활하고, 경제적으로는 정경유착과 관치경제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개방·소통·공유로 대표되는 웹 2.0 시대에 일방·밀실·독점의 뚱딴지같은 유신 시대 풍조가 관가와 사회의 공기를 지배했다. 외치도 국익보다는 대통령 개인의 인기와 체면 관리가 우선되는 일이 잦았다. 대통령 박근혜에 대해 제기되었던 5가지 탄핵 사유가 따지고 보면 모두 낡은 박정희 패러다임을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결과는 ‘탈박정희 패러다임’ 세력의 승리라고 할 만하다.


또 박근혜의 파면은 그동안 한국 사회를 강고하게 지배해온 냉전·수구 기득권 세력의 이완·분열·해체를 촉진하는 기폭제가 될 것이다. 이미 국회에서 탄핵 소추안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냉전·수구-영남패권주의의 아성이었던 새누리당의 분열과, 거기서 이탈한 비교적 합리적인 보수 성향의 의원들이 바른정당을 만든 것은 매우 상징적인 사건이다. 또 탄핵 결정 이후 박근혜에 대한 콘크리트 지지 기반인 대구·경북 지역에서 젊은층과 노인층의 반응이 엇갈리거나 김평우·김진태 같은 극우 인사의 탄핵 결정 불복 선동이 그동안 탄핵 반대 집회에 나왔던 사람들에게조차 그리 큰 공감을 얻지 못하는 것을 보면, 세상이 달라지긴 확실히 달라졌다. 이런 점에서 파면 이후 민간인 박근혜가 사흘간 청와대에서 농성한 뒤 12일 밤 삼성동 집으로 돌아가면서 낸 ‘사실상의 불복선언’은 그의 속 좁음만 드러냈다. 뒤끝마저 깔끔하지 않은 태도는 최소한의 동정심도 앗아가면서 파면이 결국 옳았다는 걸 재확인해 줄 뿐이다.


위기는 낡은 것은 사라지는 반면에 그를 대신할 새로운 것이 나타나지 않는 상황을 말한다고 한다. 낡은 박근혜는 사라졌지만 그를 대체할 새로운 것은 과연 무엇인가. 앞으로 두 달 안에 있을 선거에서 누가 대통령이 되든 그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지 못하면 촛불혁명은 ‘절반의 성공’에 그칠 수밖에 없다.
박근혜를 파면에 이르게 한 국정농단이 정경유착과 권력 감시·견제의 불능 속에서 시작되고 커져왔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 적폐의 청산도 정경유착 탈피와 감시·견제 기능의 강화에서 찾아야 마땅하다. 이번 정경유착의 실행범들을 징치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상법 개정 등을 통해 제도적으로 정경유착을 막는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 국민의 기구임을 포기하고 권력자 개인의 기구로 전락한 검찰을 비롯한 국정원·경찰 등 권력기관의 개혁은 필수적이고 긴급하다. 부패권력의 나팔수 노릇을 충실히 해온 공영방송도 마찬가지다.


촛불혁명을 이끈 것은 인내와 자제력을 가지고 거리에서 압력을 가해온 시민의 공이지만, 정치가 제대로 작동했다면 이들이 엄동설한에 고생할 이유도 없었다. 따라서 시민의 요구와 괴리되어 있는 지금의 정당·의회·선거제도는 꼭 개혁돼야 한다. 상향식 공천, 비례대표제의 확대, 중·대선거구제의 도입뿐 아니라 정보기술혁명과 함께 실현 가능성이 커진 국민소환제를 포함한 직접민주주의 요소의 강화가 정치개혁의 핵심 목록에 올라야 할 것이다. 이제까지는 부패한 권력자를 내쫓는 데 주력했다면, 지금부터는 부패한 권력자가 나오지 않는 토양 만들기에 눈을 부릅떠야 한다.

< 오태규 - 한겨레신문 논설위원실장 >


[칼럼] 용서할 기회마저 없앤 자

● 칼럼 2017. 3. 24. 18:22 Posted by SisaHan

“나는 중도 포기하는 사람이 아니다.” 리처드 닉슨이 정치적 위기에 처했을 때 한 말이다.
1952년 아이젠하워의 러닝메이트로 공화당 부통령 후보가 된 닉슨은 불법 정치자금 의혹에 휘말려 거센 사퇴 압력을 받았다. 그때 닉슨이 결백함을 주장하며 했던 말이 바로 “나는 포기하는 사람이 아니다”(I’m not a quitter)였다. 미국에서 닉슨만한 집념의 정치인을 찾기도 쉽지 않다. 그렇게 버텨서 39살의 젊은 나이에 부통령이 됐다. 1960년 대통령선거에서 존 에프 케네디에게 패배한 뒤엔 거리낌 없이 다시 캘리포니아 주지사에 도전했다. 이런 권력에 대한 집착이 탁월한 능력에도 불구하고 정치인 닉슨의 부정적 이미지를 키우는 데 일조했다.


삼성동 자택으로 돌아간 박근혜 전 대통령이 “시간이 걸리겠지만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고 말했을 때 닉슨의 이 말이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다. 두 사람 다 의회의 탄핵소추를 받았고, 대통령직을 그만두는 그 순간까지(닉슨은 상원의 탄핵 표결 직전에 스스로 물러났고 박근혜씨는 파면됐다는 게 다르긴 하지만)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너무 흡사하다. 박 전 대통령의 말은 곧 “나는 포기하지 않고 국민과 싸우겠다”는 뜻이다.
1974년 8월 닉슨은 대통령 사임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저는 지금까지 한 번도 중도 포기를 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대통령으로서, 저는 미국의 이익을 앞세우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내일 정오를 기해 대통령직을 사임하려고 합니다. 저는 이번 결정에 이르기까지, 그 과정에서 생겼던 모든 상처를 대단히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닉슨은 워터게이트 사건과 이걸 은폐하려 국민에게 거짓말을 했던 부분에 관해 ‘유감스럽다’(regret)고 말했을 뿐 사과(apology)하지는 않았다. 박 전 대통령이 “대통령으로서 소명을 끝까지 마무리하지 못해 죄송하게 생각한다. 이 모든 결과는 제가 안고 가겠다”고 말한 것과 다르지 않다. 그걸 두고 친박 의원들이 ‘그 정도면 헌재 결정을 수용한 거 아니냐. 더이상 왈가왈부하지 말고 검찰 수사를 중지하라’고 요구하는 건 진실의 호도일 뿐이다.


닉슨으로 인해 미국 대통령제는 엄청난 타격을 입었다. 가장 큰 불행은, 더는 국민이 대통령과 정부를 믿지 않게 됐다는 점이다. 정부와 의회 신뢰도는 급격히 떨어졌다. 1960년대 존 에프 케네디처럼 국민 모두의 사랑을 받는 대통령은 더이상 나오지 않았다. 지금 트럼프 시대를 상징하는 정치적 불신과 분열의 뿌리는 닉슨이 국민을 속인 데서 비롯했다 해도 틀리지 않다.
그래도 닉슨은 나중에 국민에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사임하고 3년이 지난 뒤인 1977년 데이비드 프로스트와의 인터뷰에서였다. 닉슨은 “나는 친구들과, 국가와, 우리 정부 시스템과, 그리고 공무원이 되려는 수많은 젊은이들을 실망시켰다. 나는 미국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고, 이것은 내가 평생 지고 가야 할 짐이다. 내 정치생명은 끝났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이 정치생명을 스스로 닫고 국민에게 사과하는 걸 보긴 어려울 것 같다. 친박 의원들이 개인 비서를 자처하며 다시 정치세력화하려는 게 그 징표다.


1994년 4월 닉슨이 사망했을 때 5명의 전·현직 대통령이 장례식에 참석한 건, 미국민이 그의 사과를 받아들였다는 뜻이다. 지금 박근혜씨는 국민에게 용서받을 기회마저 스스로 차단하고 있다. 많은 사람의 분노를 불러일으키는 이 행동이 박근혜씨에겐 오랫동안 매우 불행한 일이 될 것이다.

< 박찬수 - 한겨레신문 논설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