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에 그치지 않고 인신구속까지 되어 인간적으로는 참 안된 일이지만, 생각해보면 국민을 그만큼 괴롭히고 속여왔기에 당연한 귀결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정말 한국민들을 지독히도 힘들게 하고 심한 스트레스를 주었다. 특히 지난 6개월여 동안은 과오가 양파껍질처럼 증빙되는 데도 질기게 버티면서 2천만에 가까운 시민을 길거리와 차가운 땅바닥에 내몰아 촛불을 들고 목이 터져라 외치게 만들었다. 그런데 그는 지금도 전혀 반성은커녕 내가 뭘 잘못했느냐는 이기와 오만의 태도를 바꾸지 않고 있다. 그의 자기 합리화 고집은 가히 알아 줄만 하다.


그의 그런 무지와 고집불통으로 인해 가장 심한 고통을 당한 사람들은 누구인가. 따져보면 거기에 공평과 인과응보는 없다는 역설을 떠올린다. 상식적으로는 그를 대통령으로 뽑았던 사람들이 잘못 선택한 ‘죄값’을 받아야 마땅하다. 그런데 대통령으로 그를 원하고 표를 주었던 많은 사람들은 실상 거리에서 촛불을 들지도 않았고, 그의 온갖 적폐를 규탄하려고도 않았으며 지금도 그에게 동정을 보내면서 탄핵을 원망하기까지 한다. 그들은 지지하는 정치인이 추락하는 것을 보는 안타까움은 있었을지언정, 혹한의 거리에서 함성을 지르는 심신의 고통은 겪지 않았다. 오히려 그에게 아무런 애정도, 표를 준 적도 없고 그를 선택하지 않았던 국민들이 ‘표를 안주었던 죄’로 엄혹한 고통을 당한 게 아닌가.
이제 20여일 앞으로 다가온 대선 국면에서도 그런 아이러니는 계속되고 있으니, 세상만사가 다 아이러니의 연속인 것일까. 이번 대선은 박근혜에게 표를 주지 않았던 다수의 힘으로 쟁취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비박(非朴)’과 ‘반박(反朴)’세력 및 그를 택하지 않았던 국민들이 원하는 후보와 비전이 득세를 해야 옳다. 다시 말하면, 적폐세력에게 국정을 맡겨 나라를 망친 ‘원죄’가 있는 사람들은 사죄하고 자숙하는 모습을 보여야 합당한 것이다.


그런데 요사이 선거판이 그런가. 가령 탄핵된 지도자를 배출하고 엄호해 온 ‘보수의 아성’이라는 지역의 사람들은 한때 “잘 못 뽑았다”고 반성하는 듯 하더니, 요즘은 예전의 기개가 되살아나서 후보들에게 압박을 가하고 있는 것을 본다. 일테면 “보수 후보들이 지리멸렬 하니 차악(次惡)후보에게 몰아주자”라느니, “누구를 택하면 절반의 성공”이라는 말로 지지를 공개적으로 유도한다. 최근 여론 흐름을 보아도 지역민들 역시 그런 주장에 상당히 동조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 바탕에는 지역 이기와 보수본색의 패거리 의식이 작용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국정농단의 원인을 제공한 묻지마 투표의 잘못을 어느 새 잊어가면서, 인물과 정책을 따져 나라의 장래를 맡겨야겠다는 현명한 표심은 다시금 희박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 표심의 회귀를 간파한 일부 몰지각한 정치인은 재빨리 변신하여 영합하기에 바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목소리를 바꾸고 헤어스타일과 표정을 바꾸고, 아예 공약을 언제 그랬냐는 듯 바꾸고, 당 정책마저 변경한다. 그러면서 현실 정치감각이 좋다느니, 학습능력이 뛰어나다느니 미사여구로 포장하며 유권자들에게 다가간다. 아예 도우미가 되어 부추기는 영혼없는 저널리스트와 미디어의 꼴불견도 횡행한다.


우리 한국민들이 왜 고통을 당하고 나라가 망가진 것인가. 장사꾼 기업인 이명박과 함량미달 박근혜를 미화하고 포장한 속임수에 다수 국민이 아무 생각없이 빠져들어 표를 준 때문임을 아직도 깨닫지 못했단 말인가. 알고도 또 그런 우를 범하는 어리석은 백성들인가. 대통령 한사람 잘못 뽑은 죄과로 국민의 고통과 국가적 해악이 얼마나 큰지를 엊그제 생생히 보았는데, 또 다시 달콤한 쇼와 변신으로 속이려는 후보들에게 표를 도둑맞을 작정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정치가 쇼여서는 안된다. 영화배우나 성우 같은, 혹은 성인(聖人) 대통령을 뽑는 것도 아니다. 잠시의 변신과 약속을 뒤집어 표를 얻고 난 다음 원래로 돌아가 버리는 쇼맨들을 한 두번 보았던가.
고전적인 이야기지만, 늘 되새겨야 한다. 그 사람이 걸어 온 삶과 인품을 보고, 정책과 소신과 철학을 따져보고, 그 주변의 인물들을 살펴보면, 최소한 이전의 나라 망친 두 대통령 같은 지도자는 뽑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한다.


< 김종천 편집인 >


봄날을 맞아 성묘 갔다가 문중 어르신들과 식사 자리를 가졌다. 박정희 대통령 덕에 보릿고개가 사라졌다고 생각하는 분들인지라 그 딸에게 투표하셨을 분들이다. 탄핵 이야기를 꺼내니 겸연쩍어하시며 아버지를 가까이서 보고 제대로 배웠을 거라 믿고 뽑아 줬는데 측근 관리도 제대로 못 하는 고집 센 여자였다며 혀를 차신다. 다음 대선에 누구를 뽑을지는 아직 정하지 않았지만 한 특정 후보만은 뽑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이유를 물으니 양반 동네 특유의 어법으로 “그 사람, 이미 대통령 행세한다잖나?”라신다. 누가 그러는데 탄핵 정국에 자신이 대통령이 다 된 듯 팽목항을 찾아갔고 이런저런 위세를 부렸다는 것이다. 세월호 희생자 참배를 가려면 천안함 희생자에 대해 충분히 추모해야 한다면서, 요즘 문제 되고 있는 북한 핵무기도 그 동네가 돈을 퍼주어 만들어진 것이라고, 근거없는 종북론까지 들먹이며 이야기 한다. 하지만 어르신들은 아무려나 누가 되든 선거를 할수록 노인들은 더 잘 먹고 잘 살게 될 것이라며 너털웃음을 웃으셨다.


어르신들 앞에서 말을 아끼던 문중 ‘청년’과 회식 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르신들이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서 이런저런 폭탄 정보를 받기도 하면서 요즘 들어 더 ‘빨갱이’ 운운하신다는 것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고향에 머물기로 한 이 ‘청년’은 실은 농업정책과 협동조합운동을 하면서 세상 돌아가는 것을 다 살피고 있는 40대 후반 장년인데 최근 노인들의 보수화와 인구 추이를 보면 선거제도에 의구심이 든다고 한다. 이 지역 인구 비율은 노인 일곱 명 사망에 아기 한 명이 태어나는 꼴이라고 했다. 투표일이면 양로원이나 요양원에 누군가가 모시러 갈 것이고 세상 돌아가는 것을 잘 모르는 분들은 투표장에 가면서 누구를 찍을지 물어보실 것이다. 이분들이 ‘신성한 국민의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는 인구 불균형 상태에서 대의민주주의를 이야기하기란 힘들 것이다.
광화문의 시민혁명을 경험한 국민들 중에 이번 선거에 큰 기대를 거는 분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반공과 용공, 전라도와 경상도에 이어 세대 대립에 이른 선거판에 너무 안달복달하지 말자고 말하고 싶다. 선거라는 것이 직업전문인들이 주도하는 흥행쇼가 되어버린 지 꽤 되었고 이는 한국에 국한된 현상이 아니다. 2016년 영국의 브렉시트 국민투표와 트럼프를 당선시킨 미국 대통령 선거에 이어 현재 가장 드라마틱한 난장판을 벌이고 있는 프랑스 대선 정국을 보면 우리나라 상황은 실은 양호한 편에 속한다.


2002년 프랑스 대선 당시의 슬로건이 “파시스트에게 투표할 바에는 차라리 사기꾼에게 투표하라”였다는데 대의제로는 민주주의를 이루어낼 수 없다는 랑시에르의 선언은 이런 현실을 보면서 나온 결론일 것이다. 랑시에르는 애초부터 대의제는 과도제이지 민주제가 아니었다고 말한다. 대의제는 왕권을 붕괴시키고 새 질서를 만들고자 했던 ‘계몽된 지주’들이 뜻을 모으는 제도였다는 것이다. 이제 그들은 국경을 자유롭게 이동하는 글로벌 초국민이 되어 증발해버렸거나 선거 뒷돈을 댈 뿐이다. 선거 무대는 선거철에 잠시 1인 1표를 행사하는 국민으로서 자신의 화를 풀거나 취향을 확인하거나 위로를 받기 위한 자리가 되었다. 국민이라는 자부심 외에 가진 것이 별로 없는 이들이 브렉시트를 결정했고 트럼프를 지지했으며 현재의 프랑스 대선 정국을 스펙터클한 무대로 만들어내고 있다.
선거판에 너무 큰 기대를 걸면 안 된다. 광화문 광장에 울려 퍼진 콜드플레이의 ‘비바 라 비다’ 노래는 쫓겨난 왕의 독백이지만 실은 국민주권이 사라진 대의제의 붕괴를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고민이 깊었던 랑시에르는 ‘위임’과 ‘대표’를 구분해야 한다면서 추첨제를 제안하였고 동시에 광범위한 광장운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평소에 ‘시민’으로 불리지 못했던 이들이 스스로 시민권을 획득한 영토가 바로 광화문이었다는 이택광의 말처럼 광장의 영토는 새로운 국민들을 탄생시킨다.


강력한 광화문 광장 운동의 기억을 가진 시민들은 무혈혁명에 성공했다고 자화자찬할 때가 아니다. 광화문에 모이는 순간 새로 태어난 시민들은 그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정치시스템을 만들어내야 한다. 모욕과 배신의 정치판은 주로 강력한 중앙집권국가들에서 일어난다는 사실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수평적 글로벌 연결망으로 이어진 지방분권의 역사를 써가야 할 때다. 그리고 언제든 다시 광장에 모여 시민의 힘으로 중앙집권 권력의 아우라를 벗겨낼 수 있기를 바란다.

< 조한혜정 - 문화인류학자, 연대 명예교수 >


[칼럼] 주권 지키기

● 칼럼 2017. 4. 19. 10:55 Posted by SisaHan

국가의 요소는 영토, 국민, 주권이다. 대부분의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간접민주주의를 실행하기 때문에, 대리인을 뽑는 투표가 국민이 주권을 행사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이다.
모든 성인이 투표권을 행사한 기간은 세계사를 봐도 200년이 되지 않는다. 재산 있는 남성만이 투표하는 관행에서 모든 남성이 투표권을 획득하기까지의 과정도 쉬운 것은 아니었지만, 여성들은 더 어렵게 획득했다. 뉴질랜드 여성들은 1893년에 여성으로서는 세계 최초로 투표권을 획득했다. 124년 전의 일이다.
영화 <서프러제트>가 보여주듯이 영국에서는 참정권 운동가들의 많은 노력이 있었다. 강연과 시위를 하고 심지어 몸을 던져 주장하다 죽은 여성도 있었다. 영국에서 1918년 30세 이상 여성이 투표권을 획득했고, 1928년 21세 이상 모든 여성이 투표권을 획득했다. 그 과정에서 존 스튜어트 밀은 해리엇 테일러의 지적 능력을 존경하여 1869년 <여성의 예속>을 저술하며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는 여성의 능력을 지지했다. (미혼인 존 스튜어트는 지적으로 동등한 해리엇과의 결혼을 원하여 그녀의 남편이 죽을 때까지 21년을 기다렸다.) 여성의 선거권을 위하여 여성과 남성이 연대를 한 것이다.


미국에서도 참정권 운동가들이 강연과 시위를 하고, 구금당하고 단식투쟁을 했다. 미국에서는 1870년 노예제 폐지 후 흑인남성만 투표권을 획득했고 50년이 지난 1920년 여성이 투표권을 획득했다. 흑인 남녀와 진보적 백인여성은 노예제 폐지운동을 해왔는데, 흑인남성만 투표권을 획득하며 연대가 파기되자 백인여성은 흑인남성을 포함한 남성들을 비판했고, 흑인여성은 흑인을 공격한다는 근거로 백인여성을 비판했다. 젠더와 인종의 이슈가 교차하며 백인여성이 성차별 등을 다루는 사상은 ‘페미니즘’, 흑인여성이 성차별 등을 다루는 사상은 ‘우머니즘’이라고 불리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1948년 제헌국회에 의해 남녀 구별 없이 성인은 투표할 수 있게 되었다. 시대적 조건 속에서 여성들은 투표권을 상대적으로 쉽게 획득한 셈이다.
문제는 투표권 확보로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선거의 그림자처럼 부정선거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1960년 수개표를 하던 시절 이승만 정권은 정치깡패 동원, 공개투표, 투표 시작 전 자유당 후보를 찍은 가짜 투표용지를 무더기로 넣기, 야당참관인 축출 등의 방법으로 3.15 부정선거를 자행했다.


우리나라는 2002년에 전자개표를 도입하였다. 기계가 특정 칸에 찍힌 기표 도장에 따라 분류하고 표수를 집계하며, 기계가 집계한 것을 개표참관인이 세서 확인하는 방법이다. 기술의 발달이 부정선거라는 그림자를 제거해주면 좋을 텐데, 기술의 주인은 사람이라 기계에 의한 집계가 조작되거나 사람에 의한 수검표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부정선거가 될 여지가 있다. 실제로 18대 대통령선거에서 개표 부정이 있었다고 선거무효소송이 제기된 상태이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기계로 집계는 하지 않고 분류만 하고, 독일에서는 기계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주권 지키기가 쉽지 않음을 보여주는 일이다. 여성들은 투표권을 얻기 위해 싸웠고, 남성의 영향을 받아 투표하던 비주체성에서도 벗어났다.
자신이 던진 표가 바르게 집계될 때까지 감시를 해야, 국민의 이름으로 맞이한 19대 대통령선거에서 온전하게 주권을 지킬 수 있을 것이다.

< 김민예숙 - 여성주의 상담가, 보건대 교수 >


[1500자 칼럼] 촛불집회

● 칼럼 2017. 4. 11. 18:50 Posted by SisaHan

촛불집회, 촛불시위, 촛불축제, 촛불혁명…… 작년 말부터 금년, 대통령이 탄핵 인용될 때까지 한국을 뜨겁게 달구었던 촛불집회를 무어라 부르는 것이 가장 적절한지 나는 모른다. 인류 역사상 그 유례가 없는 특별한 일종의 사건이기 때문이다. 매주 토요일이면 몇 십만으로 시작해 2백만을 넘기까지 수많은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광화문 광장에 모였다. 한국의 언론에서조차 때에 따라 종종 다르게 부르는 탓이기도 하지만, 이곳에서는 보기 힘든 일 때문이기도 하다. 애초 대통령의 하야를 주장하며 시작된 일이므로 다분히 정치적인 모임이다.

한마디로 일종의 군중시위, 데모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오래 전 한국을 떠나온 나로서는 데모라면 주로 대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돌을 던지고, 그리고 과격해지면 화염병을 던지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에 대응하여 전경들은 최루탄을 쏘고 곤봉을 휘두르며 진압을 하고, 학생들을 해산시키고 붙잡아서 닭장차에 잡아넣는 것이었다. 사실 데모를 하면서 촛불을 드는 것은 이곳에서도 오래 전, 60년대에 반전운동을 하며 했던 일이다. 그 전통은 내려와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했을 때, 유럽과 북미의 주요 도시에서 사람들이 촛불을 들고 시위를 한 적이 있었다.

다만 그 때는 적은 숫자의 사람들이 모여 몇 번 하지 않고 헤어졌다. 그들은 이제 더 이상 먼 나라의 전쟁에 진정으로 관심이 없었다. 내가 아는 바에 의하면 촛불은 반전, 비폭력, 평화운동의 상징이다. 좀처럼 성냥불을 쓰지 않는 이 시점에서 촛불은 우리가 아는 한 가장 작은, 약한 불이다. 그러함에도 촛불은 어둠을 밝힌다. 촛불은 또 자신의 몸이 녹아 흐르며 불을 밝힌다. 일종의 자기 희생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번 한국에서의 촛불시위를 보면, 특징은 백만을 넘나드는 그 엄청난 숫자에 있다. 결국 작은 빛들이 모여 큰 빛을 만들어 시대의 어둠을 밝혔다는 사실이다. 그 뿐 아니라 모임이 한 두 번의 집회로 끝난 것이 아니라 20회나 계속 됐다는 점이다. 또 다른 특징은 남녀노소는 물론이고 각계 각층의 사람들이 참여했다는 점이다. 심지어는 부모들이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마치 가족나들이 나오듯 참석하였다. 역사의 현장에서 아이들에게 그 체험을 느끼게 하려 데리고 나왔다. 게다가 유명 연예인들이 참석하여 노래까지 불러, 축제의 분위기를 만들기까지 하였다. 촛불축제라고 할까? 시국을 규탄하는 모임이라면 어떤 비장감과 긴장감이 떠돌아야 할 텐데, 그런 분위기보다 축제의 마당 같은 기쁜 표정도 보였다.


앞에 설치된 무대에 나와서 사람들이 발언을 하기도 했는데, 유명한 정치인이 아니라 각계각층의 보통사람들이 나와 발언을 하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이번 한국에서의 촛불집회에서 가장 인상적인 점은 평화적이고 질서적이라는 데 있다. 특히 100만이라는 사람이 모여 누구 하나 다치지 않았고 연행되지 않고 집회가 끝났다는 점에서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군중심리라는 것이, 사람이 여럿 모이다 보면, 흥분을 하게 되고, 그런 상황에서 누군가 과격한 행동을 하게 마련이다. 경찰이 통제하기 어려운 환경 속에서, 동기야 어쨌든 약탈적으로 변하여, 주변 가게의 유리창을 부수고 길거리에 불을 지르는 것이 유럽이나 북미에서 대규모 시위 때, 흔한 일이다. 그래서 시위가 있던 자리는 전쟁터처럼 살벌하기 마련인데, 이번 한국에서의 촛불집회에서는 참가자들이 집회가 끝나고 자발적으로 청소까지 하여 말끔한 모습이었다. 그들에게 선택이 있었을까 마는 인내심을 가지고 자리를 지킨 의경들에게도 경의를 표한다. 때론 카메라가 그들을 비추었을 때, 무표정으로 고개를 숙이는 그들이 안쓰러웠다. 수차례의 대규모 시위에도 불구하고 시위를 하는 시민들이나 그것을 막으려 했던 전경들 중, 서로 큰 부상자나 피해자 없이 무사히 끝났다는 것이 여간 다행스럽지 않다.


촛불집회가 혁명이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우리 사회가 성숙한 단계로 넘어가는 시민혁명이라고 한다. 지도자 한 사람을 자리에서 내려오게 한 것이 아니라 우리사회가 변해가는 과정, 시민들의 의식의 성장이라는데 나는 동감한다. 그러므로 우리 사회는 촛불집회 이후가 전과 다르다고 생각한다. 성숙해진 시민들의 가슴 속에 언제나 촛불이 타오르고 있다 믿으며…….

< 박성민 - 소설가, 캐나다 한인문인협회 회원 / 동포문학상 시·소설 부문 수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