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호사다마가 세상사다

● 칼럼 2017. 6. 6. 19:48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스포츠가 재미있고 매력적인 이유가 여럿 있겠지만, 인생살이와 비슷한 파란만장과 예측불허의 묘미가 가장 으뜸이 아닌가 싶다. 거기에 정치 드라마와 비슷한 반전과 스릴도 있다.
가령 축구를 보면, 많은 선수들은 넘어지고 부딪히고 격한 몸싸움과 문전 돌파에 이어 회심의 일격으로 골문을 뜷어 환호성을 지른다. 때로는 날렵한 공격수가 수비수에 맞서 현란한 기술과 치열한 공방 끝에 겨우 문전에 쇄도하지만 헛발질 끝에 벌러덩 나뒹구는 장면도 흔히 본다. 어떤 선수는 별로 뛰는 것 같지도 않은데 문전에서 얼쩡대다가는 운좋게 굴러오는 공을 살짝 밀어 넣어 쾌재를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상대도 만만할 리가 없다. 골문을 뚫었다는 절정의 기쁨이나 관중의 열광적인 환호성도 잠시, 적군이 순식간에 아군 수비수를 제치고 한방 터뜨려 금세 전세가 뒤집어지기도 한다. 흔치는 않지만 수비진이 골키퍼에게 패스한 볼이 그대로 골문에 빨려 들어가 자책골로 눈물짓는 어이상실의 장면도 있다.


골프의 맛 역시 볼이 맘먹은 대로 날아가지 않는 것이기도 하지만, 마치 인생살이 같은 곡절과 함정의 연속인데 있다는 말들을 한다. 티샷을 멋지게 날렸는데 세컨 샷이 엉망인 경우가 흔하다. 물에 빠지거나 벙커에 들어가는가 하면, OB가 나기도 한다. 늘 순탄하게 잘 나가는 것만이 아닌 흐름과 맥락이, 예기치 못한 부침과 의외의 상황에 직면하곤 하는 삶의 도정과 닮은 꼴인 것이다. 기분좋은 버디를 한 다음 티샷이 해저드에 빠지고 마는 ‘버딧 값’ 징크스도 우스갯 소리만은 아니다. 기쁠 때가 있으면 슬퍼 눈물 흘릴 때도 있는 법, 잘 나갈 때 조심해야 한다는 말들을 한다.
등산은 정상에 오르기까지 오랜 인내의 길을 간다. 묵묵히 땀 흘리다 보면 오르막 뿐만이 아니라 평지와 내리막도 지난다. 오솔길 비탈길을 걷고 계곡을 건너 험한 바위를 타기도 한다. 그렇게 한 발짝 한 발짝 오르다보면 세상이 점점 발 아래로 멀어지고, 어느 순간 하늘만이 가득한 곳, 정상에 선다. 가슴에 온 세상을 안은 듯, 지나온 고통의 기억들은 장쾌한 야호~! 메아리에 날아가 버린다. 온 몸의 에너지가 바닥까지 소진되며 내복을 흥건히 적셨던 땀이 시원한 바람에 증발하면서 심신에 찌든 번뇌와 시름마저 말끔히 산화시켜 준다. 온갖 시련과 고난을 딛고 인생의 정점에 서면 그렇게 환희와 감흥이 한꺼번에 밀려들게 마련이다.


하지만, 정복의 영광은 마냥 즐길 수만은 없는 잠시의 환희이기도 하다. 올라갔으면 다시 내려와야 하는 것은 등산의 원리요, 세상사의 철칙이다. 오히려 꼭대기까지 오르기보다 더 힘들고 고통스러운 게 내려가기이며 내리막길인 것은 노련한 등산가들이 들려주는 가장 기본적인 산행의 교훈이다. 정상을 향한 희망이 사라진 하산의 아쉬움은 이내 어서 귀가하고 싶다는 조바심으로 바뀐다. 절정 이후의 피로감은 빠르게 밀려들어 다리근육이 후들대고 무릎관절은 비명을 지른다.

지난 겨울 뜨겁게 타오른 촛불의 위력이 한국에 새 정권을 탄생시켰다. 문재인 대통령은 4년 전의 실패를 딛고 절치부심, 마침내 권좌에 올랐다. 많은 이들이 그에게 환호를 보내고 있다. 탄핵당한 박근혜 정권의 몰상식과 철학부재의 저질국정에 극명히 대비되는 반사효과를 톡톡히 누리는 측면도 있다. 하지만 그의 인품과 성정을 다시 보게 된 많은 국민들의 기대와 믿음이 실려 있음도 본다.
“설마 이명박 박근혜 같으랴!” 저마다 입을 모아 희망을 이야기 한다. 진짜 국격과 위상이 자랑스럽다고 말한다. 거기에 출발도 산뜻하게 하다보니 요즘 인기와 지지도는 하늘을 찌를 듯, 오히려 조마조마 할 정도다. 그야말로 정상에 오른 환희와 감동의 연속이다.


그래서 요사이 여러 경구들이 떠오른다. 일테면 ‘좋을 일에는 악재들도 따른다’는 호사다마(好事多魔)를 명심하고, 주역에 말한 ‘안이불망위(安而不忘危) 치이불망란(治而不忘亂)’ 즉 평안할 때 늘 위기와 혼란을 잊지말고 삼가며 경계하라는 훈계 같은 것들이다. 이제 더 이상의 퇴행이 있어선 안된다는 간절함, 이 정권은 반드시 성공을 해야겠기에 그렇다.
스포츠의 원리처럼 영광은 영원한 것이 아니다. 정상에 서면 내려가야 하는 것이 등산의 철칙이다. 오를 만큼 오르면 내려갈 일만 남은 것이 세상의 이치요 섭리다. 권불십년(權不十年),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고도 했다. 벌써 총리와 장관 청문회에서 돌부리에 채이고 있다. 시기하고 질투하며 끌어내리려 호시탐탐 노리는 세력이 도처에 널려있다. 어떻든 이제는 내리막을 생각해야 하고, 바야흐로 내려가게 될텐데, 과연 문재인 정권이 지혜롭고 멋진 하산의 이야기를 써내려 갈 수 있을 것인가, 촛불을 들었던 뜨거운 가슴들이 지켜 볼 것이다.


< 김종천 편집인 >


[사설] 황교안-우병우의 세월호 외압, 당장 수사해야

● 칼럼 2017. 6. 6. 19:47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검찰의 ‘세월호 참사’ 수사에 황교안 당시 법무부 장관을 비롯한 법무부·대검 간부들과 우병우 청와대 민정비서관이 개입한 사실이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2014년 참사 뒤 광주지검 수사팀이 해경 123정장에게 업무상 과실치사 등의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청구하겠다고 보고하자 법무부 검찰국장과 과장 등이 전화로 이 혐의를 빼라고 지시해 결국 빠졌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황 장관이 광주지검장을 개별 면담해 질책했고, 우 비서관도 대학·사시 동기인 대검 기획조정부장을 통해 같은 지침을 전달했다. 핵심 혐의가 빠지는 바람에 결국 영장은 법원에서 기각됐다.


법무부 장관도 구체적 사건 지휘는 검찰총장을 통해서만 할 수 있으니 황 장관과 간부들, 우 비서관의 행위는 직권남용에 해당하는 범죄임이 분명해 보인다.
상부 지침에 항의한 검사들은 다음 인사에서 옷을 벗기거나 좌천시키는 횡포도 저질렀다니, 인사권으로 검찰을 마음껏 농단한 셈이다. 당시 청와대는 홍보수석을 통해 <한국방송>의 세월호 보도에 압력을 넣고 민정수석실을 통해서는 검찰 수사를 방해했다.
그럼에도 특검과 두차례 검찰 수사 과정에서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 배제 부분에 대한 수사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검찰은 두번째 수사에서도 당시 광주지검장과 부장검사만 불러 해경 압수수색 중단 대목에 대해서만 조사했다. 황 장관과 검찰 간부들, 우 비서관의 외압은 조사조차 하지 않았다. 봐주기 의도가 아니었다면 이제라도 이들의 직권남용, 방송법 위반 등을 즉각 재수사해야 마땅하다.


‘박근혜 청와대’가 검찰 수사에 개입해 왜곡·은폐한 사례는 이것만이 아니다. 정윤회 문건 사건은 물론이거니와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업무일지와 우병우 전 민정수석과 법무부·검찰 간부들 사이 수많은 통화기록의 경위만 제대로 따져도 ‘검찰 농단’의 진상이 드러날 것이다.
그 열쇠는 당연히 우 전 수석이 쥐고 있다. 우 전 수석 처가의 부동산매매 자료나 최순실씨 주치의와의 통화기록 등 수많은 정황 자료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내가 때가 묻었다면 그쪽(검찰 수뇌부)도 같이 묻지 않았겠느냐’는 협박 때문이 아니라면 검찰이 ‘우병우 재수사’를 머뭇거릴 이유가 없다.


[한마당] 촛불선거의 승리, 혁명은 이제부터

● 칼럼 2017. 5. 16. 18:24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축제는 끝났다. 전투도 그쳤다. 팽팽하던 긴장도 이제 사라졌다.
역사의 새로운 장이 열렸다.
모국의 제19대 대통령선거 투표결과가 나오면서 국정농단으로 파면된 박근혜 정권이 공식 마감되고 대한민국은 새 대통령, 새 정부 체제로 새로운 시대가 개막됐다.
돌이켜 보면 지난해 10월부터 7개월여 만에, 국내외에서 열화같이 번진 1,700만 촛불의 민심이 일궈낸 촛불혁명이 선거혁명으로, 선거혁명이 9년 만에 민주정권으로 교체가 귀결된, 한국 현대사에 있어 역사적인 획을 그은 쾌거로 평가할 만하다.
우리가 쾌거라고 보는 것은, 정권교체에만 의미가 있는 게 아니라, 촛불이 발화하고 불타오른 그 열망의 지향점이 바로 국정농단 세력 일소와 국가혁신이었고, 당선된 새 대통령이 바로 적폐청산을 공약한 후보와 정당의 출신이기도 해서 그렇다. 뻔뻔하게도 절멸지경에 처했던 친박과 헌정유린의 핵심세력들이 이른바 ‘보수 궤멸’ 위기론 속에 다시 고개를 쳐들고 나온 게 이번 선거였다. 경망스런 한 수구적 후보의 특권적 면죄부를 빌미로 적폐의 원죄를 청산하지 않은 정당에 그들이 회귀, 다시 결집하는 퇴행적 행태와 불의한 도전을 제치고 이룬 승리인 때문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번 선거결과와 문재인 대통령 정부는 이명박-박근혜 시대, 크게 보면 박정희에서 박근혜까지 이어진 적폐시대와의 단절과 청산에 가장 큰 의의와 책무를 짊어지고 출발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진짜 촛불혁명은 지금부터라고 할 것이다. 대통령과 정부가 바뀐 것 외에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고, 이제부터 적폐와의 ‘전쟁’을 본격화 해야 하기 때문이다.
왜 ‘전쟁’인가. 월계관을 거머 쥔 영광을 기뻐하기도 전에 문재인 정부는 수많은 골치 아픈 중대 과제들을 해결해 나가야 할 벽에 맞닥뜨린 상태다. 북한 핵과 ‘사드’를 둘러싼 국제적 갈등 국면과 위안부문제 재해결이라는 외교현안을 필두로, 청년실업과 비정규직 문제, 양극화와 불평등 해소, 교육 및 노동 등등 경제-사회문제를 비롯해 특히 지난 두 정권이 나라를 망가뜨린 패악과 잔재들이 헤아릴 수가 없다. 그래서 ‘나라다운 나라’ 만들기의 앞날이 순탄치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이미 나와 있다.
그렇지만 선거를 통해 해결을 공약했고, 민심은 표를 주며 높은 기대를 걸었다. 주사위는 던져졌으니, 어떤 방법으로든 해결을 위해 돌진해 나가지 않으면 금세 비판에 직면하게 되어있다. 그 산적한 과제들의 우선적이며 핵심적인 해결과제가 바로 반민주와 역사퇴행의 적폐 그림자를 걷어내는 일인 것이다.
‘적폐’는 비단 국정농단과 헌정유린 및 그 일당들 만이 아니다. 재벌과 권력의 강고한 정경유착 비리, 정권 나팔수로 변질된 공영 방송은 물론 일부 족벌 언론과 정-관-재(政官財)의 카르텔, 검찰과 국정원을 포함한 권력기관과 공직의 부패와 비리와 비효율, ‘블랙리스트’로 일컬어지는 문화계 편가르기 등 수없이 많다. 또한 세월호 참사와 이명박 정권의 4대강 및 자원외교 비리까지, 어느 하나 만만한 과제가 없다.


새 정부는 이같은 과거 잔재와의 버거운 대결 말고도, 당장 정부구성을 위한 야당과의 힘겨루기를 벌여야 하고, 내년 지방선거를 마지노선으로 한 헌법개정 작업에도 매진해야 한다. 지난 두 정권 때 암흑기를 맞은 남북관계 부활에도 팔을 걷어야 한다. 실로 엄청나고 과중한 국정과제를 걸머지고 출발한 셈이다.
압승이라고 하나 지지하지 않은 국민이 과반을 넘는다. 더구나 여당도 120석의 원내 1당이지만 국회 과반에는 크게 못미치니, 만약 야당의 발목잡기가 이어진다면 어느 하나 해결하지 못하는 진퇴양난에 빠질 수도 있다. 이미 드러났고 예상한 대로이지만, 적폐 일소에는 저항과 반동의 격화도 불을 보듯 뻔하다. 기득권을 지키려는 세력은 생사를 걸고 반발할 것이다.
결국 문재인 대통령은 소위 협치와 통합, 조정과 소통 국정의 탁월하고 단호한 리더쉽을 발휘하지 않으면 안된다. 일부 야당과 협력하고, 정책 공조를 펴고, 경우에 따라 공동정부까지 염두에 두고 국정혁신과 현안 해결에 특단의 각오로 대처를 해나가며 긴장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
야당 역시 이제 승복과 협력의 아량으로 실용적 자세를 가다듬지 않으면 안된다. 과반의 표를 준 민의는 야당에게도 국정의 책임이 당연히 있음을 말해준다. 국정과 여당의 시시비비는 가리되 국가적 과제 해결의 짐은 과감히 나누어 질 줄 아는 대국적 정치력을 보일 때 다음 선거의 국민적 지지를 기약할 수 있을 것이다.


새 대통령과 정부는 그러나 위축되지 말고 5년의 국정에 자신감으로 당당히 임할 것을 기대한다. 정권의 태생과 운행의 동력이 바로 위대한 촛불민의를 기반으로 한 다수 국민이라는 사실을 유념한다면 결코 물러설 이유가 없다. 진실되고 정의로운 국정소신과 국가 개혁에 딴지를 거는 세력은 철퇴를 맞게 될 것이다. 새 정권 역시 촛불혁명 정신을 잊고 좌고우면, 갈팡질팡한다면 그 또한 촛불의 지탄과 매질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 김종천 편집인 >


[1500자 칼럼] 보수가 죽어야 안보가 산다

● 칼럼 2017. 5. 16. 18:21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서울구치소에 수감돼 있는 박근혜 전 대통령도 감옥 안에서 텔레비전 등으로 바깥세상 소식을 접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면 최근 쟁점으로 떠오른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비용 문제를 접한 심정은 어떨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발언에 깜짝 놀라고 당황했을까, 아니면 ‘내가 대통령 자리에 그대로 있었으면 문제없이 해결할 텐데’라고 생각할까. 그도 저도 아닐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은 아무 생각이 없을 것이다. 사드는 이미 관심 영역 밖이고, 그의 머릿속은 오로지 본격적으로 시작된 재판에서 어떻게 하면 죄를 모면할까에만 골몰해 있을 가능성이 크다.


사드 조기 배치는 박 전 대통령이 대한민국에 남긴 최악의 선물이다. 어느 면에서는 뇌물죄나 직권남용 등의 혐의보다 더 심각하다. 당장 미국 쪽이 1조원이 넘는 사드 비용 청구서를 들이밀면서 한-미 간에 미묘한 냉기류가 흐르고 있다. 사드 비용을 직접 지불하지 않아도 방위비 분담금 증액 등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중국의 보복조처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경제적 피해가 산사태처럼 밀려들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국제사회의 봉 신세로 전락한 한국의 처량한 자화상을 지켜보면서 국민의 자존심은 구겨질 대로 구겨졌다. 그런데도 정작 본인은 아무런 책임이나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은 채 감옥에 파묻혀 있으니 복장이 터질 일이다.


박근혜 정부의 무능과 무전략, 무책임은 하늘을 찌르지만 보수 정치권과 보수 언론 등 응원군의 역할도 이에 못지않다. 사드 배치는 나라와 겨레를 위한 구국의 결단이며, 반대하는 사람들은 모두 ‘안보 저해 세력’에 불과했다. “국민의 안보 불감증”을 개탄하면서, “국민은 눈앞의 이익에 빠져 안보를 내팽개치는 행위를 당장 멈추라”고 호통쳤다. 사드가 한국의 안보에 도움이 되는지 안 되는지에 대한 일체의 의문 제기는 “김정은만 이롭게 하는 행위”로 매도됐다.
미국이 사드 비용 청구서를 들이미는 상황에서도 보수 진영의 태도는 변함이 없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는 “주한미군 철수 등 한-미 동맹이 급속히 와해될 수 있는 만큼 좌파 정부 탄생을 우려해서 한 발언”이라는 엉뚱한 해석을 내놓았다. <조선일보>는 “새 정부는 이것(사드 비용)이 협상의 정치이슈로 증폭되는 것을 마다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으며 그렇게 되면 “최악으로는 워싱턴에서 주한미군 철수론이 등장할지 모른다”고 경계했다. 미국이 어디로 튈지 모르니 새 정부가 사드 비용 문제로 크게 말썽을 일으키지 말라는 충고인 셈이다. 사드 배치에 대한 중국의 반발에는 “주권 사항”임을 줄기차게 내세웠으나, 한국의 주권을 무시하는 미국의 안하무인적 태도에는 최대의 동맹관계라는 현실론 속에서 몸을 사리는 모양새다.


새 정부는 도리없이 전임 정부가 저질러놓은 사고 수습을 위해 미국·중국 등과 힘겨운 밀고 당기기에 들어가야 할 형편이다. 모두 만만찮은 상대다. 트럼프는 “고도의 전략으로 계산된 행동을 하는 으르렁거리는 사자”로 비유된다. 시진핑 역시 “산전수전 다 겪은 노회한 호랑이”라는 말을 듣는다. 북한 역시 녹록지 않다. “거칠고 끈질긴 협상가”(콜린 파월 전 미 국무장관)라는 평이 있듯이 스라소니 새끼쯤은 된다. 그러면 남한은 무엇인가? 보수 진영은 말로는 새 정부의 치밀한 계산과 영민한 대처를 주문하며 “여우의 지혜”를 입에 올린다. 하지만 실제로는 발이 묶인 순한 양을 만들지 못해 안달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탁월한 협상력은 거친 반격(파이트백), 협상의 판을 뒤흔드는 지렛대(레버리지), 예측하기 힘든 통 큰 사고(싱크 빅) 등에서 나온다는 분석이 있다.(안세영의 <도널드 트럼프와 어떻게 협상할 것인가>) 우리 정부는 모든 면에서 원천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있다. 그런데 보수 진영은 새 정부의 협상력을 정권 출범 전부터 깎아내리고 있다. 유력한 대선 후보의 안보관에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고 이념을 의심한다. 혹시 새 정부가 미국과의 협상 과정에서 ‘거친 반격’이나 ‘싱크 빅’으로 맞서면 곧바로 ‘종북’이라고 비판할 가능성도 있다. 국민의 대미감정 악화는 우리 정부의 협상력을 높이는 중요한 ‘지렛대’가 될 수 있는데도 보수 진영은 그것마저도 용인하려 들지 않는다. 그렇게 해서는 제대로 된 협상이며 안보며 경제적 손실방어고 간에 모두 물 건너간다. 보수는 이미 안보를 망칠 만큼 충분히 망쳤다. 안보는 결코 보수의 전유물이 아니다. 이제는 보수가 죽어야 안보가 사는 현실이다.

< 김종구 - 한겨레신문 편집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