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 조합원 설문조사 결과 “심기 경호로 사장 후보 되었다는 게 구성원 평가” “공영방송 존속을 위해 박장범 입성 반드시 막아야”
▲박장범 KBS 사장 후보자(왼쪽)와 윤석열 대통령. 사진=대통령실
박장범 KBS 사장 후보자의 국회 인사청문회가 오는 18일과 19일 이틀로 예고된 가운데 사내 제1노조인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가 실시한 조합원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95%가 박장범 후보가 ‘사장으로 부적합하다’고 답했다. 이번 조사는 지난 8일부터 14일까지 이뤄졌으며 투표권자 2032명 중 1630명이 투표해 투표율 80.2%를 기록했다. 투표 결과 ‘부적합’은 1555명, ‘적합’은 75명으로 나타나 부적합률이 95.4%였다.
KBS본부 쟁의대책위원회는 14일 오후 6시경 이 같은 결과를 발표하고 “지난 9월 박민 현 사장을 대상으로 KBS본부가 실시한 ‘취임 300일 신임투표’에서 응답자의 98% 이상이 불신임을 보낸 것과 비슷한 수치”라며 “박장범 후보자는 이미 대통령 대담에서 보여준 ‘조그마한 파우치’ 발언으로 권력에 아부하는 행태를 보였고, KBS 앵커로 있으면서 보여준 편파적 앵커멘트로 이른바 ‘허니문 효과’조차 없다는 것”이라며 즉각적인 후보 사퇴를 요구했다.
이들은 “박장범 전 앵커가 사장 후보가 된 이유에 대해 응답자의 약 95%가 ‘파우치 대담’ 진행 이력을 꼽았다”며 “심기 경호를 자처하면서 권력 눈에 들었기에 사장 후보가 될 수 있었다는 게 KBS 구성원들의 평가”라고 했다. 조사에 의하면 ‘박장범 사장 이후 KBS 보도 및 프로그램의 신뢰도, 공정성이 개선될 것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84%(매우 악화 65.9%, 악화 18.5%)가량이 ‘악화될 것’이라고 답했으며 ‘개선될 것’이라는 답은 1%대에 불과했다.
‘박장범 사장 취임 시 가장 우려되는 부분’을 묻는 질문에는 ‘보도 및 프로그램의 신뢰도 및 경쟁력 추락(응답자의 81.4%)’을 답한 응답자가 가장 많았고, ‘KBS의 땡윤방송 고착화 등 채널 이미지 손상(응답자의 80.2%)’이란 답이 뒤를 이었다. 언론노조 KBS본부는 “KBS가 땡윤방송으로 전락하고, 신뢰도와 영향력, 경쟁력의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는 지금, 공영방송의 존속을 위해서라도 박장범의 입성을 반드시 막아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정권을 편들며 국민의 눈과 귀를 막는 KBS의 행태에 국민들의 참을성은 임계점을 향하고 있다. 국민이 알아야 하고, 공영방송이라면 당연히 전해야 할 뉴스를 KBS는 외면하고 있다”고 비판한 뒤 “박장범 후보자의 사장 취임은 KBS를 향한 국민들의 분노에 기름을 붓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앞서 입사 33년차 18기부터 지난해 입사한 50기까지 KBS 기자 495명도 전례를 찾기 힘든 릴레이 기수 성명을 통해 박장범 사장 후보자 사퇴를 촉구했다. < 미디어오늘 정철운 기자 >
재판부 "김혜경이 충분히 인식했다고 보인다" 재판하는 내내 무죄 주장했고, 녹취록도 있는데 결제 모습도 못 본 식사비 '7만 8000원' 때문에…
변호인 "재판부가 결론을 추론한 것으로 생각해" "1심 판결에 항소해서 진실을 밝혀나가겠다"
이재명 "비서에게 심부름 시킨 게 죄라면 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기소 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배우자 김혜경 씨가 14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수원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선고공판을 마치고 나오고 있다. 2024.11.14. 연합
"남편 업무를 지원하는 잘 아는 비서에게 사적으로 음식물 심부름을 시킨 게 죄라면 죄겠지만, 미안한 마음에 음식물 값에 더해 조금의 용돈도 줬고 그(비서)가 썼다는 법인카드는 구경조차 못했다…반복적이고 집요한 장기간 먼지떨이 끝에 아이들은 다행히 마수에서 벗어났지만 아내는 희생제물이 됐다." (14일 올라온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페이스북 글)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부인 김혜경 씨가 '6명에게 10만 4000원의 식사비를 제공했다'는 이유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받고 1심에서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애초에 기소 성립도 말이 안 되는데 벌금형이 나온 이유는 7만 8000원을 식사비로 제공했기 때문이다. 10만 4000원 중 2만 6000원은 공식 카드로 결제했다. 증거도 없는 사건을 두고 검찰은 압수수색만 130번 했고, 재판부는 '식사비 7만 8000원'으로 시민들의 상식으론 납득할 수 없는 결과를 만들었다.
수원지법 형사 13부(박정호 부장판사)는 14일 오후 김혜경 씨에게 벌금 150만 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범행을 부인하고 배모(사적 수행원) 씨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모습을 보였다"며 "피고인이 배우자 이재명이 20대 대선 출마를 선언한 후 이재명 선거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신모 씨와 모임을 하면서 식사비를 결제하는 등 기부행위를 했고 당시 공무원인 배 씨를 통해 기부행위가 이뤄졌다"고 판시했다.
이어 "이런 범행 경위와 수단, 그 방법에 비추어 보면 선거의 공정성, 투명성을 해할 위험이 있다고 보이는 점 등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결을 선고한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재판부는 "문제의 식사 모임은 신모 씨가 전 국회의장 배우자들을 소개하는 자리였고 배 씨의 결제로 인해 참석자와 원한 식사가 이뤄질 수 있었으므로 피고인의 이익이 되는 행위였다"며 "이런 사정을 종합적으로 살펴보면 배 씨가 피고인 묵인, 용인 아래 기부행위를 한 것이고 피고인과 순차적으로 암묵적 의사 결합이 있었다고 판단된다"고 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 이전에 이뤄진 김 씨의 식사 모임에 대해서도 "배 씨가 참석자의 식사비를 결제한 사실을 피고인이 충분히 인식했다고 보인다"며 "이 사건 식사 시기는 경선 캠프 결성 초기였기 때문에 캠프에서 피고인 일정에 관여한 정도가 미약한 시기였던 것으로 보이며, '식사비는 참석자가 각자 결제하는 원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상황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김혜경 씨는 재판 내내 전면 무죄를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당시 식사를 한 뒤 법인카드로 결제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고 일관되게 해명했고 이를 뒷받침하는 녹음 내용도 있다. 배 씨는 식사비 결제를 앞두고 경기도 7급 공무원 조명현 씨에게 "네가 (결제해). 법인카드로 계산하는 건 다른 애는 잘 모른다"며 "네가 이렇게 카운터에 가서 3명 하고 너희 먹은 거 하고 (결제해)"라고 말했고, 조 씨는 "사모님 것만 캠프에서 떼놓는다는 말씀이죠"라고 답했다. 김혜경 씨가 식사비 7만 8000원을 결제하는 데 관여하지 않았다는 증거다. 애초에 김혜경 씨가 기억나지 않는다고 한 것을 재판부는 '충분히 인식했다'고 자의적으로 결론 내린 것처럼 보인다.
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기소 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배우자 김혜경 씨가 14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수원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선고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오른쪽은 김혜경 씨의 변호인 김칠준 변호사. 2024.11.14. 연합
이재명 대표 측도 지난 대선 과정에서 이미 식사비와 관련해 공식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 대표 측은 김혜경 씨는 3인분 식사비인 7만 8000원을 경기도 업무추진비 카드로 결제됐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현장에서 결제했다는 조명현 씨도 보지 못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를 전부 묵살했다. 제1야당 대표의 부인에 대해 사실상 정치 보복성 수사가 이뤄졌음에도 눈 감은 것이다.
재판부의 판결에 대해 법무법인 다산 김칠준 변호사는 판결이 끝난 직후 입장을 밝혔다. 김 변호사는 수원지방법원청사 앞에서 "재판부도 인정했다시피 피고인이 식사비 결제를 공모했다는 직접 증거는 없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10만 원 상당의 식대를 (사적 수행원) 배 씨가 경기도 법인카드로 결제한 사실을 피고인이 알았는지, 배 씨와 상호 공모했는지가 핵심 쟁점"이라며 "그동안 검찰이 간접 정황이라고 하면서 수많은 물량 공세를 했는데 오늘 재판부는 배 씨의 여러 행태를 들면서 피고인이 당연히 (식사비 결제를) 알지 않았겠느냐는 결론을 추론한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1심 판결에 항소해서 검찰이 (공모 등) 정황이라고 주장했던 부분에 대해 하나하나 진실을 밝혀나가겠다"고 했다. < 민들레 김민주 기자 >
사법부 보수화의 끝…대법까지 윤미향 마녀사냥 가담
대법원, 징역 1년 6개월 집행유예 3년 원심 판결 확정 앞뒤 안 맞는 2심 재판부 판결 그대로 인정해준 대법 여가부·문체부 국고금 같은데 하나는 유죄 하나는 무죄
장례조의금 모으는 게 사회 상규에 맞지 않는다는 법원 3만원도 안되는 할머니 간식비 등 무더기로 횡령 유죄 그렇게 마녀사냥 하더니…8개 혐의 중 3개만 겨우 인정
김복동의 희망 "역사부정 세력에 동조한 부당한 판결" 윤미향 "위안부 피해자에게 한 약속 지키며 살아갈 것"
2019년 1월 30일 당시 윤미향 정의기억연대 대표가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故) 김복동 할머니 빈소에서 입관식을 마친 뒤 조문하고 있다. 2019.1.30. 연합
지난 4년 검찰의 집요한 '먼지떨이' '표적 수사'와 언론의 '마녀사냥'은 결국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위해 30여 년 거리에서 투쟁한 활동가를 죄인으로 만들었다. 친일·극우 세력이 대놓고 역사를 왜곡하는 한국 사회의 암담한 현실 속에, 보수 사법부가 내린 판단은 치명적인 역사의 '오점'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대법원 2부(주심 김상환 대법관)는 14일 업무상횡령 등 8개 혐의로 기소된 윤 전 의원에게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한 원심(2심) 판결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원심 판단에 사기죄, 보조금법 위반죄, 업무상횡령죄, 기부금품법 위반죄 등의 성립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고 판단을 누락한 잘못이 없다"고 밝혔다.
앞서 검찰은 윤 전 의원이 지난 2011∼2020년 위안부 피해자를 돕기 위해 모금한 자금을 사적으로 사용하고, 서울시 보조금 등을 허위로 수령하거나 관할관청 등록 없이 단체 및 개인 계좌로 기부금품을 모집했다는 혐의를 씌워 2020년 9월 재판에 넘겼다.
이후 1심 재판부는 지난해 2월 윤 전 의원에게 적용된 8개 혐의 가운데 7개에 대해 무죄라고 판단하고, 1718만 원에 대한 횡령 혐의만 유죄로 인정해 벌금 1500만 원을 선고했다. 검찰의 무리한 기소에 대해 철퇴를 가하며, 윤 전 의원에게 사실상 무죄 판결을 내린 셈이다.
이에 2심 재판에서 윤 전 의원은 법원이 횡령으로 판단한 금액과 관련,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간식비와 식비까지 일일이 확인해 증거 자료를 제출했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오히려 횡령액 범위를 대폭 늘리고, 유죄 혐의를 추가해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으로 형량을 높였다.
2심 재판부는 후원금 횡령 액수를 1718만 원에서 7958만 원으로 대폭 늘린 한편, 김복동 할머니 시민사회장(葬)을 위한 1억 2967만 원 모금과 여성가족부에서 받은 6520만 원의 국고보조금 등에 대해서도 유죄 판단을 내렸다. 1심보다 2개의 혐의가 유죄로 추가된 것이다.
이날 대법원이 2심을 그대로 확정하면서 윤 전 의원은 검찰이 기소한 8개 혐의 중 3개 혐의에 대해 유죄 판결을 받게 됐다. 검찰과 윤 전 의원 측은 모두 불복했으나 대법원은 양쪽의 상고를 전부 기각했다.
윤미향 전 국회의원 대법원 선고 보도자료. 1심과 2심 판단. 2024.11.14. 대법원
마녀사냥만 드러난 대법원 선고
그러나 대법원이 확정한 2심 판결 내용을 조금만 들여다봐도 재판부의 판단이 타당한지 의문이 든다.
첫째, 여성가족부(여가부)에서 받은 국고보조금을 편취했다는 혐의는, 여가부 국고보조금을 정대협(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활동가들의 인건비로 지급하고, 활동가들이 받은 인건비를 다시 정대협에 기부한 것이 사기 및 보조금 관리 위반이라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이에 대해 무죄 판단을 했던 1심 재판부는 활동가가 기부를 위해 단체 계좌로 이체한 데 대해 "강제로 보조금을 기부 내지 반납했다고 볼 만한 증거가 없다"고 했다. 또 "보조금 사업을 수행한 기간 동안 (활동가들이) 월급을 제대로 지급받지 못했던 적은 없다"며 보조금이 이상없이 집행됐음을 확인했다.
그러면서 "국세청 소득신고 누락, 기부금 영수증 미발급, 회계장부 허위 기재 등 검사가 주장하는 사정만으로 처음부터 보조금을 인건비가 아닌 정대협의 운영비 등으로 사용할 계획을 가지고 기망 및 부정한 방법을 사용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시민단체 특성상 미숙한 회계처리를 문제삼아 처벌할 수 없다고 못박은 것이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이에 대해 "피해자 대한민국을 기망해 국고보조금을 교부받음과 동시에 거짓 신청이나 그 밖의 부정한 방법으로 국고보조금을 받았다"고 판단을 완전히 뒤집었다. 낮은 임금을 받는 활동가들이 기부까지 하며 사회운동에 헌신한 행위가 범죄라고 판단한 것이다.
특히 2심 재판부의 판단의 납득이 어려운 점은, 검찰이 여가부 보조금과 똑같은 문제를 제기한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 국고보조금에 대해서는 무죄로 판단했다는 점이다.
2심 재판부는 문체부 국고보조금에 대해 "전문회계 인력을 갖추기 어려운 시민단체의 특성상 회계담당자의 업무 미숙으로 인해 (…) 일련의 회계처리를 정확히 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며 "회계부정 또는 기망이 있다고 평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러한 판단을 했음에도 여가부 보조금만 유죄 판단을 한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김복동 할머니 장례식 당시 조의금과 장례위원을 모으던 웹자보, 이런 시민사회장이 모두 불법과 범죄라는 말인가?
둘째, 김복동 할머니 장례조의금 모금이 기부금품법을 위반했다는 혐의는 더더욱 이해하기 어렵다. 1심 재판부는 김 할머니의 시민사회장을 위해 장례비를 모집한 행위가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다'(형법 제20조의 정당행위에 해당)며 무죄라고 판단했다.
1심 재판부는 장례위원회가 정의기억연대(정의연) 대표이자 상주인 윤 전 의원의 계좌와 현장 조의금으로 운영되는 것이 일반 장례식과 다르지 않고, 남은 장례비로 할머니의 유지에 따라 장학금을 전달하고 기록집을 출간하는 등의 행위를 한 것 역시 수단, 방법 등이 타당하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장례비를 시민들이 모금한 데 대해 "쉽게 기부금품법상 규제를 회피하는 결과를 초래해 성숙한 기부 문화 조성을 방해할 수 있다" "자칫 모든 시민사회장이 기부금품법의 규제를 회피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며 유죄 판단했다. 장례의 특수성과 긴급성을 전혀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마지막으로 더 많은 증빙을 했음에도 횡령 액수가 늘어난 부분 역시 상식적인 판단인지 의문이다. 회계기준이 미흡하던 시절, 활동가들이 '선(先) 지출'한 뒤 '후(後) 보전' 받는 방식에 대해 법원은 모두 횡령으로 문제 삼았는데, 이는 일반 회사에서도 이뤄지는 회계처리 방식이다. 이를 모두 횡령이라 판단하는 게 타당한지 의문이다.
그뿐 아니다. 2심 재판부는 1심 재판부가 무죄로 판단한 지출 내역에 대해서도 무더기로 유죄(횡령)로 뒤집었다.
2심 재판부는 윤 전 의원이 할머니들과 함께 해외나 지방 등을 순회하며 사용한 경비나 식사 비용, 간식 비용 등 1심에서 무죄로 인정된 비용들을 '납득할 만한 설명과 객관적 자료가 부족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모두 무더기 유죄 판단했다. 심지어 결제 장소 등을 통해 유추가 가능함에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유죄라 판단했다.
1심에서 무죄였다가 2심에서 유죄로 바뀐 횡령금액. 2심 재판부는 결제 장소 등으로 유추가 가능함에도 객관적 자료가 부족하다는 이유만으로 1만원대 할머니들 사용 경비까지 횡령이라 판단했다. 2024.11.14. 대법원
진보성향 주심인데도 이런 결론이라니
윤 전 의원은 비록 유죄를 확정 받았지만, 이번 선고를 통해 지난 4년간 윤 전 의원에게 행해진 검찰의 표적수사와 언론의 여론몰이가 얼마나 불편부당했는지는 여실히 드러난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은 ▲안성쉼터를 비싸게 매입했다는 혐의(업무상 배임) ▲안성쉼터를 미신고 숙박업소로 운영했다는 혐의(공중위생관리법 위반) ▲치매를 앓는 길원옥 할머니의 심신장애를 이용해 여성인권상 상금 1억 원 중 일부인 5000만 원을 포함해 7920만 원을 정의기억재단에 기부하게 했다는 혐의(준사기) 등 검찰과 언론이 주장한 혐의 대부분에 대해 무죄 판결을 내렸다.
검찰과 언론의 침소봉대는 지난 2020년 언론이 윤 전 의원을 '마녀사냥'하던 시기, 검찰이 제기한 혐의들이 무더기로 불기소된 데서도 이미 드러난 바 있다. 당시 검찰은 ▲정의연 등 단체 자금을 유용해 딸의 유학비를 지출하고 아파트를 사들였다는 의혹 ▲남편이 운영하는 신문사에 정의연의 일감을 몰아줬다는 의혹 ▲맥줏집에서 3300만 원을 지출했다는 의혹 등 11개 혐의에 대해 불기소 처분했다.
다만 사실상 무죄 판결을 내렸던 1심을 고려했을 때, 8개 혐의 중 3개를 유죄로 인정한 이번 대법원 선고가 합당한지는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윤 전 의원에 대한 수사는 시작 단계부터 특정 정치인을 제거하기 위한 의도가 뚜렷했지만, 사법부는 검찰을 견제하지 못한 채 무기력했다. 아울러 대법원 재판부 주심이 진보 성향인 김상환 대법관이었음에도 1심보다 후퇴한 2심을 확정한 것은 현 사법부가 얼마나 보수화, 우경화했는지를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윤미향 김복동의 희망 공동대표가 촛불 대행진에서 연사로 나서 발언하고 있다. 2024.8.10. 이호 작가
'김복동의 희망'은 이날 <정의와 양심을 저버린 부당한 판결>이라는 제목의 성명을 내고 "역사적 진실을 외면하고 파렴치한 역사부정세력에 동조한 명백히 부당한 판결"이라고 논평했다.
이어 "활동가들이 자신의 인건비 보조금마저 정대협 활동에 기부한 그 사심 없는 양심을, 김복동 할머님의 유지에 따라 장학사업을 통해 사회에 환원한 명예로운 활동을, 20년 넘게 한결 같이 할머님들 곁에서 할머님의 손과 발이 되어준 가장 가까운 벗이고 동지였던 고 손영미 대표의 헌신을, 역사부정세력들이 감히 훼손할 수 없음을 단호히 선언한다"며 "대한민국 사법부가 다시 한번 정의와 양심 저버린 오늘, 우리는 다짐한다. '희망을 잡고 살아, 내 뒤를 따르라'라고 말씀하셨던 김복동 할머님의 말씀을 되새기며 희망과 용기를 잃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마지막 숨을 거두기 직전까지도 일본 정부를 향해,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들으라'며 외쳤고, 생이 다하는 그 순간에 곁에 있는 이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잃지 않고 끝까지 싸운다면 우리가 반드시 이겨내리라는 믿음을 전해주었던 김복동 할머님의 정신으로 뚜벅뚜벅 걸어갈 것"이라며 "그것이 할머님들의 용기로 시작된 일본군‘위안부’문제 해결운동의 역사를 지켜내는 것이며 피해자의 명예와 인권을 지키고, 올바른 역사를 만들어내는 참된 정의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했다.
윤 전 의원은 입장문을 내고 "검찰 수사 과정에서부터 시작해 1심 재판과정, 항소심 재판과정, 그리고 상고에 이르기까지 지난 4년 여 동안 검찰이 기소한 8개 항에 대해 무죄를 다투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다했다"며 "무엇보다도 정대협의 활동은 검찰이 주장하듯이 '윤미향 개인'의 사조직이 아니었기 때문에 주체적으로 헌신해 온 피해자들과 유가족들, 수많은 선후배 활동가들이 검찰의 수사와 기소 과정을 통해 입었을 상처를 재판 과정과 무죄 판결을 통해 회복하고 싶은 간절함이 있었다"고 토로했다.
그는 "오늘 대법원 판결로 사법적 판단은 끝났지만 유무죄 판결과 관계없이 이 사건에 있어서 허물이 있다면 제 개인이 앞으로 안고 풀어가야 할 과제라고 생각한다"며 "이번 사건으로 인해 지난 30년 동안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함께 해 온 분들이 저로 인해 입었을 상처와 아픔들을 치유하지 못한 오늘의 결과에 대해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무엇보다도 지금도 수요일이면 일본대사관 앞에서 계속되고 있는 피해자에 대한 공격, 인권과 존엄을 훼손하는 행위들, 활동가들에 대한 공격을 보며 참담한 심정"이라며 "이 공격을 멈춰주시기를 간곡히 호소한다"고 했다.
윤 전 의원은 대법원의 판결에 대해 조목조목 지적한 뒤, "대법원 결정으로 인해 지난 4년 동안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무죄'의 결과를 도출해 내지 못했지만 오늘 이 자리를 통해 다시 한번 말씀드리고 싶다"면서 "저와 제 동료는 무죄"라고 선언했다.
그러면서 "저를 포함해 정대협의 4~5명의 활동가들은 정대협의 열악한 근무 환경에도 불구하고 대표부터 사무처장, 상근활동가들이 1인 몇 역을 감당하면서 활동을 했고, 그 과정에서 사익을 추구하거나, 그 사익을 추구하기 위해 공모하지 않았다"고 재차 강조하며, "저는 담대하고 당당하게 피해자들의 죽음 앞에서 드렸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살아나갈 것이다. 오늘의 결과로 여전히 아프고 고통스럽지만 제 소명을 감당하며 살아가려고 한다"고 밝혔다. < 민들레 김성진 기자 >
윤석열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는 고려대학교 교수들이 14일 오후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에서 시국선언을 하고 있다. 정용일 선임기자
윤석열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전국 대학 교수들의 시국선언은 14일에도 이어졌다.
고려대 교수 152명은 이날 윤 대통령 퇴진과 국정농단 규명을 위한 특검 시행을 촉구하는 시국선언문을 발표했다. 교수들은 서울 성북구 고려대 안암캠퍼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민이 부여한 권력을 사유화한 윤석열 대통령의 퇴진을 강력히 요구한다. 특검을 즉각 시행해 그간 벌어진 국정 농단과 파행을 철저히 규명할 것도 엄중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이유는 차고도 넘친다”고 했다. 우선 윤 대통령 부부가 “권력을 사유화하고 국정을 농단”했다며 “박근혜 정권에서 벌어진 농단을 무색하게 만드는 것을 넘어 삼권분립에 기초한 민주공화국의 근간을 뒤흔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교수들은 “이태원 참사, 채상병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은 여전히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고, 무책임한 의료대란까지 일으켜 전 국민의 생명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며 “군인 한 사람의 목숨도 명예롭게 지키지 못하는 권력이 한반도의 위기를 고조시켜 전체 국민을 위험에 빠트리는 일은 지금 당장이라도 막아야 한다”고 했다. 이들은 “더 이상의 국정 농단은 우리 사회를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뜨릴 수 있다”며 “권력을 사유화한 대통령에게 권한을 계속해서 행사하도록 해서는 결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국민대 교수 61명은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남용하면서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붕괴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교수들은 “지난 7일 대국민 담화를 보며, 실낱같은 희망마저 접고 참을 수 없는 모욕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며 윤 대통령 퇴진의 이유로 김건희 여사의 국정 개입 등 국정농단 의혹을 거론했다. 국민대 교수들은 “현재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공적 권력을 사사로운 목적을 위해 행사하는 행태가 벌어지고 있다. 검찰의 소환 조사조차 없었던 김건희 여사의 수많은 의혹, 끝이 어디인지 모르는 국정 농단 문제 등은 국정 운영의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 본인의 문제임을 직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전쟁 위기와 민생 위기 앞에서 불안에 시달리는 대한민국 국민을 더 이상 괴롭혀서는 안 된다”며 “자질과 능력이 부족하다면 스스로 물러나는 것이 타당하다. 국민을 위한 대통령의 결단을 촉구한다”고 했다.
부산·울산·경남 지역의 교수와 연구자들도 부산시의회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대한민국 법치와 민주주의를 무너뜨린 대통령은 사퇴하라”고 촉구했다. 부·울·경 교수와 연구자 652명이 시국선언에 참여했다. < 한겨레 고나린 기자 >
부울경 교수·연구자 624명 “더 이상 윤 부부 인내 못 해”
윤 대통령 즉각 물러나라 시국선언
10월29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 인근에서 촛불전환행동 주최로 열린 윤석열 정부의 퇴진을 요구하는 제12차 촛불집회에서 참가자들이 LED촛불과 휴대전화 손전등을 켜고 있다. 연합
부산, 울산, 경남지역의 교수·연구자들도 윤석열 대통령의 즉각 퇴진을 요구하는 시국선언에 나섰다.
부산, 울산, 경남지역 교수·연구자들은 “14일 오전 11시 부산시의회 브리핑룸에서 윤석열 정권 퇴진을 촉구하는 시국선언을 발표한다”고 13일 밝혔다.
시국선언문에는 대통령의 즉각 사퇴를 촉구하고 위기 모면을 위한 우크라이나에 무기 지원과 파병 등 한반도의 전쟁 위기를 조장하는 시도를 반대한다는 내용이 담긴다.
시국선언을 준비한 교수들은 ‘무너지는 민주주의와 대한민국을 걱정하는 부산·울산·경남 교수, 연구자 일동’이라는 이름으로 지난 7일 저녁부터 구글폼을 통해 시국선언 동참 서명운동을 벌였다. 윤석열 대통령의 대국민담화와 기자회견 직후다. 이들은 “대통령 기자회견을 통해 국민은 일말의 반성과 책임을 기대했지만, 자신의 무능과 무도함, 그리고 김건희씨의 국정농단에 대해 모든 것을 부정하고 변명과 남탓으로 일관했다”며 “대통령 부부를 더이상 인내하기 어려운 한계 상황에 직면했다”고 밝혔다.
이날 오후 12시30분까지 29개 대학과 2개 연구소, 독립연구자 등 624명이 시국선언에 동참한 것으로 집계됐다. 참여 대학 명단은 △가야대 △경남대 △경상대 △경성대 △고신대 △동명대 △동서대 △동아대 △동의대 △마산대 △부경대 △부산가톨릭대 △부산과학기술대 △부산교대 △부산대 △부산외대 △부산장신대 △신라대 △영산대 △울산과학대 △울산대 △인제대 △진주교대 △창원대 △창원문성대 △한국국제대 △한국해양대 등이다. 연구소는 민주주의사회연구소와 한국항공기개발연구소가 동참했다.
기자회견 전까지 서명운동 참여가 가능한 만큼 시국선언 동참 대학과 교수·연구자들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유진상 창원대 건축학부 교수는 “보수세가 강한 부산·울산·경남지역에서 이처럼 많은 교수, 연구자들이 시국선언에 참여하는 데 대해 윤석열 대통령과 정부가 사태를 엄정하게 받아들이길 바란다”고 말했다. < 한겨레 주성미 기자 >
경북대 학생들이 윤석열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하는 대자보를 붙이고 국민투표를 시작한 가운데 교수들도 함께 시국선언에 나선다.
경북대 민주화교수협의회(민교협) 교수들은 14일부터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경북대학교 교수·연구자 일동' 명의로 시국선언문을 작성해 서명을 받고 있다면서 오는 19일 낮 시국선언문을 발표한다고 밝혔다.
교수들은 '민주주의를 요구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해고다'라는 제목의 시국선언문에서 "집권 기간이 길지 않았고 강렬한 업적이 눈에 띄지도 않는데 그 걱정과 비판이 이렇게 길고 강하게 이어진 사실이 놀랍기조차 하다"며 "문제의 차원이 달라졌다"고 했다.
이어 "쏟아지는 비판에도 모르쇠로 일관하며 대통령의 선거 개입은 불법이 아니지만 특검은 위헌이라고 주장하는 윤석열 대통령을 우리는 해고한다"며 "대통령의 자리에서 물러나라"고 요구했다.
경북대 교수들 "물러나지 않으면 우리가 끌어내릴 것"
▲경북대 학교 본관.
경북대 교수들은 "윤석열 대통령이 국민을 통합하고 위기를 헤쳐 나가는 모습을 보여주기를 바랐지만 아무 능력이 없고 책임도 지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특히 교수들은 "심지어 우리는 이태원에서 멀쩡한 젊은이들이 죽어 나가도, '애국한 잘못'밖에 없는 젊은 해병이 안전장비 하나 없이 수색에 나섰다가 급류에 휩쓸려서 죽임을 당해도, 장관과 사단장에게 책임을 물어달라고 했지 대통령이 직접 책임지라고 하지 않았다"라고 비판했다.
또 "대통령 배우자가 저지른 잘못들이 명백해 보여도 경찰과 검찰이 시간만 끌다가 갑자기 나서서 죄없음을 강변해도 '배우자를 수사하라고, 기소하라고, 죄가 있으면 죗값을 물으라'고 요구했지 대통령이 직접 책임을 지라고 하지 않았다"고 적었다.
경북대 교수들은 그 이유를 "그래도 그(윤 대통령)가 종국에는 국민의 이해와 요구에 따라서 행동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라고 제시했다.
그러나 교수들은 "문제는 윤석열 대통령"이라며 "국민의 말을 듣지 않는 대통령은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 물러나지 않으면 우리가 끌어내릴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해고다"라고 강조했다.
안승택 경북대 민교협 의장은 "18일 오후 3시까지 서명을 받아 명단을 취합한 뒤 19일 기자회견에서 내용을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 < 오마이 조정훈 기자 >
콧등 시큰한 '시적 산문', 경희대 시국선언 화제
나는 폐허 속을 부끄럽게 살고 있다
전국 각지의 대학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하는 시국선언이 잇따르는 가운데 경희대학교와 경희사이버대학교 교수 및 연구자 226명이 발표한 시국선언문이 시민들 사이에서 각별한 관심을 끌며 회자되고 있습니다.
인간의 존엄과 민주주의의 가치가 허물어지는 현실 앞에서 교육자로서 느끼는 부끄러움과 자성을 시적 산문이라고 할만한 운율과 자기 고백적 문장 속에 담아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이라는 주어를 통해 자기 책임을 회피하지 않고 강의실에서 만나는 제자들에 대한 애틋함을 토로하는 전개는, 정권의 무도한 행태를 직설적으로 열거하며 준엄하고 맹렬하게 규탄하는 일반적인 격문 형식과는 달리 은은한 감동을 불러일으킵니다.
폐허 속을 부끄럽게 살고 있는 '취약한 사람'이 '역시 취약한 당신과 함께' '인간다움'을 삶에서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싶다고 합니다.
내적 성찰에 침잠하면서도 폐허를 재건할 '새로운 말과 현실을 발명하기 위해' 연대에 호소하는 이들의 시국선언 전문을 음미해보시기 바랍니다. < 민들레 김호경 기자 >
경희대학교 휘장
■ 인간의 존엄과 민주주의의 가치를 훼손하는 윤석열 대통령은 즉각 퇴진하라!
나는 폐허 속을 부끄럽게 살고 있다.
나는 매일 뉴스로 전쟁과 죽음에 대해 보고 듣고 있다. 그리고 이제 내가 그 전쟁에 연루되려고 하고 있다. 더 이상 나는 강의실에서 평화와 생명, 그리고 인류의 공존이라는 가치가 우리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할 가치라고 이야기하지 못한다.
나는 역사의 아픔이 부박한 정치적 계산으로 짓밟히는 것을 보았다. 더 이상 나는 강의실에서 보편적 인권과 피해자의 권리를 위해 피 흘린 지난하면서도 존엄한 역사에 대한 경의를 이야기하지 못한다.
나는 여성과 노동자와 장애인과 외국인에 대한 박절한 혐오와 적대를 본다. 더 이상 나는 강의실에서 지금 우리 사회가 모든 시민이 동등한 권리를 가지는 사회라고 이야기하지 못한다.
나는 이태원 참사 이후 첫 강의에서 출석을 부르다가, 대답 없는 이름 앞에서 어떤 표정을 지을지 알지 못했다. 더 이상 나는 강의실에서 학생의 안녕을 예전처럼 즐거움과 기대를 섞어 이야기하지 못한다.
나는 안타까운 젊은 청년이 나라를 지키다가 목숨을 잃어도, 어떠한 부조리와 아집이 그를 죽음으로 몰아갔는지 알지 못한다. 더 이상 나는 강의실에서 군휴학을 앞두고 인사하러 온 학생에게 나라를 지켜줘서 고맙고 건강히 잘 다녀오라고 격려하지 못한다.
나는 대학교 졸업식장에서 졸업생이 검은 양복을 입은 사람들에게 팔다리가 번쩍 들려 끌려나가는 것을 보았다. 더 이상 나는 우리의 강의실이 어떠한 완력도 감히 침범하지 못하는 절대 자유와 비판적 토론의 장이라고 말하지 못한다.
나는 파괴적 속도로 진행되는 대학 구조조정과 함께 두 학기째 텅 비어있는 의과대학 강의실을 보고 있다. 더 이상 나는 강의실에서 지금 내가 몸담고 있는 대학 교육의 토대가 적어도 사회적 합의에 의해 지탱되기에 허망하게 붕괴하지 않을 것이라 이야기하지 못한다.
나는 매일 수많은 격노를 듣는다. 잘못을 해도 반성을 하는 것이 아니라, 격노의 전언과 지리한 핑계만이 허공에 흩어진다. 더 이상 나는 강의실에서 잘못을 하면 사과하고 다시는 그 일을 하지 않도록 다짐하는 것이 서로에 대한 존중의 첫걸음이라는 것을 이야기하지 못한다.
나는 매일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의 경계가 무너지며 공정의 최저선이 허물어지는 모습을 보고 듣는다. 더 이상 나는 강의실에서 공정을 신뢰하며 최선을 다해 성실한 삶을 꾸려가는 것이 인간다운 삶의 보람이라는 것을 이야기하지 못한다.
나는 매일 신뢰와 규범이 무너지는 것을 보고 있다. 더 이상 나는 강의실에서 서로에 대한 신뢰와 존중을 바탕으로 자발적으로 규범을 지키는 것이 공동체 유지의 첩경이라 말하지 못한다.
나는 매일 수많은 거짓을 목도한다. 거짓이 거짓에 이어지고, 이전의 거짓에 대해서는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 더 이상 나는 강의실에서 진실을 담은 생각으로 정직하게 소통하자고 말하지 못한다.
나는 매일 말의 타락을 보고 있다. 군림하는 말은 한없이 무례하며, 자기를 변명하는 말은 오히려 국어사전을 바꾸자고 고집을 부린다. 나는 더 이상 강의실에서 한 번 더 고민하여 정확하고 신뢰할 수 있는 말을 건네고 서로의 말에 경청하자고 말하지 못한다.
나는 하루하루 부끄러움을 쌓는다. 부끄러움은 굳은살이 되고, 감각은 무디어진다.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으며, 기대하지 않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게 되었다.
나는 하루하루 인간성을 상실한 절망을 보고 있고, 나 역시 그 절망을 닮아간다.
어느 시인은 "절망은 끝까지 그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다."라고 썼다. 하지만 그는 그 절망의 앞자락에 "바람은 딴 데에서 오고 / 구원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오"리라는 미약한 소망을 깨알 같은 글씨로 적어두었다.
나는 반성한다. 시민으로서, 그리고 교육자로서 나에게도 큰 책임이 있다.
나는 취약한 사람이다. 부족하고 결여가 있는 사람이다. 당신 역시 취약한 사람이다.
하지만 우리는 취약하기 때문에, 함께 목소리를 낸다.
나는 당신과 함께 다시 인류가 평화를 위해 함께 살아갈 지혜를 찾고 싶다.
나는 당신과 함께 다시 역사의 진실 앞에 올바른 삶이 무엇인지 이야기하고 싶다.
나는 당신과 함께 다시 모든 사람이 시민으로서 정당한 권리를 갖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
나는 당신과 함께 다시 서로의 생명과 안전을 배려하는 방법을 찾고 싶다.
나는 당신과 함께 다시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는 이를 존중하는 분위기를 만들고 싶다.
나는 당신과 함께 다시 자유롭게 생각하고, 스스럼없이 표현할 권리를 천명하고 싶다.
나는 당신과 함께 다시 우리가 공부하는 대학을 신뢰와 배움의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
나는 당신과 함께 다시 선택에 대해 책임을 지고 잘못을 사과하는 윤리를 쌓고 싶다.
나는 당신과 함께 다시 신중히 동의할 수 있는 최소한의 공정한 규칙을 찾고 싶다.
나는 당신과 함께 다시 서로를 믿으면서 우리 사회의 규칙을 새롭게 만들어가고 싶다.
나는 당신과 함께 다시 진실 앞에 겸허하며, 정직한 삶을 연습하고 싶다.
나는 당신과 함께 다시 존중과 신뢰의 말을 다시금 정련하고 싶다.
우리는 이제 현실에 매몰되지 않고, 현실을 외면하지 않으며, 현실의 모순을 직시하면서 만들어갈 우리의 삶이 어떠한 삶일지 토론한다.
정부가 윤석열 대통령이 해외 언론과 인터뷰를 했다며 그 내용을 번역해 홍보하면서 기사 내 김건희 여사 문제, 낮은 지지율, 한일관계 인식 등에 대한 내용은 배제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내용을 빼면서 기사 문장을 잘라내기도 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운영하는 웹사이트 '대한민국 정책브리핑'(아래 정책브리핑)은 지난 12일 미국의 시사주간지 <뉴스위크>의 윤 대통령 인터뷰 기사를 소개했다. 대통령실 명의로 올라온 이 기사는 <뉴스위크> 인터뷰가 "4대 개혁 등 한국이 안고 있는 사회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윤 대통령의 노력과 국내적 저항, 북한을 위시한 국제 환경의 난관 등을 입체적으로 조명했다"면서 "주요 기사 내용과 주요 일문일답 내용을 발췌해 소개힌다"라고 했다.
인터뷰는 <뉴스위크> 11월 15일자(11월 8일 게재)에 실린 것이다. 정책브리핑은 '발췌 소개'라고 밝히긴 했지만 인터뷰 기사 내용 대부분을 문장 그대로 번역해놔서, 마치 전체 번역본인 것 같은 인상을 준다. 하지만 인터뷰 기사 원문과 대조하니 정책브리핑에서 빠진 부분을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아래 파란색 글씨가 <뉴스위크> 기사).
국정브리핑 : "5년 단임제의 윤 대통령은 이제 임기 반환점을 돌고 있다."
본래 이 부분의 문장은 훨씬 길다. 낮은 지지율, 김건희 여사 문제, 총선 패배 등이 국정운영에 부담을 주고 있다는 <뉴스위크> 기사 원문 내용은 빠진 것이다.
"임기를 5년만 수행할 수 있는 63세의 전직 검사 윤 대통령은 임기 중간에 다다르고 있다. 10월의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은 지난 2022년 중반에 취임한 이래로 가장 낮은 수치인 20%에 머물렀다. 개혁에 대한 반발뿐 아니라, 그의 부인 김건희가 해온 역할이 야당의 표적이 되고 있다. 윤 대통령의 보수정당 국민의힘이 지난 총선에서 제1야당에 패배한 점도 그가 필수적이라고 했던 개혁을 추진하는 데에 또다른 도전으로 작용한다."
국정브리핑 : "윤 대통령은 인구 위기 해결이 자신이 추진하는 개혁의 목표이며 여성이 직장에서 만족하도록 하는 게 우선순위라고 말했다."
<뉴스위크> 기사에서 이 문장의 앞에는 "5명의 남성 보좌진에 둘러싸인"(flanked by five male advisers)이라는 부분이 있다. 직장에서 여성이 차별받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하는 윤 대통령이 인터뷰 현장에는 남자 참모들만 대동한 점을 지적한 걸로 보이는데, 정책브리핑은 인터뷰 기사 문장을 바꿔버렸다.
"윤 대통령은, 5명의 남성 보좌진에 둘러싸인 채, 인구 위기 해결이 자신이 추진하는 개혁의 목표이며 여성이 직장에서 만족하도록 하는 게 우선순위라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뉴스위크> 인터뷰 내용을 발췌 번역해 전달한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기사 ⓒ 문화체육관광부
통째로 생략 : 윤 대통령의 가정생활 그리고 한일관계
정책브리핑의 소개 기사에서 통째로 생략된 단락도 있다. 이 부분의 소제목은 "윤석열의 가정 생활"이다.
"윤 대통령은 자녀를 갖지 않았다. 사무실 벽에는 대형 사진이 걸려 있는데 윤 대통령 부부가 웃는 얼굴로 바닥에 앉아 강아지들과 놀고 있는 모습이다. 윤 대통령 부부는 집에서 개 6마리와 고양이 5마리를 키운다. 한국은 현재 어린 아이들보다 훨씬 더 많은 개를 키우고 있다.
윤 대통령에에 큰 정치적 공격을 초래하고 개혁 추진을 복잡하게 만든 것은 윤 대통령 부인의 역할 문제다. 김건희는 주가조작 혐의와 크리스찬 디올 핸드백을 선물받은 혐의에 대해 검찰의 혐의없음 처분을 받았지만, 배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한 혐의도 받고 있다. 야당은 김 여사의 행위에 대한 특별검사 조사를 추진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전 세계에서 영부인에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는 나라는 아마 한국뿐이 아닐 것이다. 동시에 야당이 지나치게 정치문제화를 시도해 내 아내를 둘러싼 논란이 부풀려진 것도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야당이 특검 임명을 추진하는 것은 정치공세에 불과하고 유감스러운 일"이라며 "특검은 신뢰할 수 있는 위법행위가 있었다거나 수사검사의 공정성 훼손이 있을 때 임명되는데, 이번 사건은 그렇지 않다."
한일관계에 대한 윤 대통령의 발언도 통째로 생략됐다.
윤 대통령은 "21세기 들어 제국주의의 지배를 겪은 거의 모든 나라들이 지금은 이전의 제국주의 국가들과 더 낫고 좋은 관계를 맺고 있다"고 말했다. "나는 이것이 한국-일본 관계에도 적용돼야 한다고 믿는다. 또, 우리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에 대해서는 공동의 안보 이익을 공유한다."
하지만, 한국이 동맹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동안 북한도 그렇게 해왔으며 특히 러시아와 그렇게 해왔다. 북한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지원하기 위해 무기뿐만 아니라 군인도 지원했다고 한국 정부는 밝혔다.
정책브리핑에는 이와 함께 <뉴스위크> 인터뷰 당시 현장을 생생하게 묘사한 '대통령이 정말 하고싶었던 말'이란 제목의 칼럼도 실렸다.
이 칼럼을 쓴 하태원 대통령실 해외홍보비서관은 "대통령 앞에는 메모지 한 장 놓여있지 않았다. 생각의 흐름에는 거침이 없었고, 인터뷰 내내 취재진의 끄덕임이 자주 느껴졌다"고 묘사했다. 그러나 정책브리핑에서는 정작 대통령 인터뷰에서 거침없이 설명한 내용들과 질문들이 모두 전달되지는 않았다. < 오마이 안홍기 기자 >
▲대한민국 정책브리핑에 13일 게재된, 뉴스위크 인터뷰 현장을 묘사한 ‘대통령이 정말 하고싶었던 말’ 제목의 칼럼. ⓒ 문화체육관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