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한국사2 교과서 9종 비교
첫 출간 한국학력평가원 교과서, ‘위안부’ 비중도 상대적으로 작아

 
 
새 교육과정 적용으로 내년부터 학교 현장에서 사용할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연합]
 

최근 역사 논쟁으로 집필 방향에 대해 관심이 쏠린 새 역사 교과서의 검정 결과가 공개됐다. 교과서 가운데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를 처음 출간한 한국학력평가원(평가원) 교과서가 필수 학습 요소인 일본군 ‘위안부’ 관련 설명이 부실하고, 이승만 정권을 독재 정권이 아닌 ‘장기 집권’이라고 표현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새 교육과정(2022개정 교육과정) 적용으로 검정을 통과한 역사 교과서는 중학교 역사 7종, 고등학교 한국사 9종으로 내년 3월부터 학교 현장에서 쓰인다. 30일 한겨레는 고등학교 한국사2 교과서 전 종을 입수해 평가원 교과서와 비교했다.

교육부가 제시한 중·고등 역사 교과서 검정 기준을 보면,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설명은 한국사 교과서에 필수로 들어가야 할 ‘성취기준별 학습 요소’ 가운데 하나다.

평가원 교과서는 ‘위안부’에 대해 “젊은 여성들을 중국과 동남아시아 등지로 끌고 가 끔찍한 삶을 살게 하였다”고 적고 있다. 참고 자료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하는 이유를 말해보자”는 등의 연습문제를 제시했지만, 두쪽에 걸쳐 일본군 ‘위안부’의 개념, 관련된 주요 인물, 일본 정부의 입장 변화와 역사 부정의 세계화 등을 다룬 동아출판사 교과서에 비하면 비중이 낮다. 리베르스쿨은 ‘강제 동원의 실상’ 활동 자료를 통해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역대 일본 총리들의 역사 왜곡 발언 등을 담고 성명서를 작성해보자고 제시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경기도 지역 고등학교의 ㄱ 역사 교사는 “아이들이 보는 책이라 다른 책들도 대체로 성 착취에 대한 구체적인 서술을 하진 않지만, 활동 자료 등 ‘위안부’에 대해 다룬 분량이 비교적 적어 보인다”고 평가했다.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해선 광복 후 우리 역사에 영향을 끼친 인물 7인을 소개하는 페이지에서 이 전 대통령 사진을 제일 앞에 실었다. 여기에서 이 교과서는 “광복 후 독립촉성중앙협의회를 결성하고, 신탁 통치 반대와 남한 단독 임시 정부 수립을 주장했다”고 했다. 또한 주제 탐구라는 이름으로 이승만의 ‘정읍 발언’의 역사적 배경을 알아보도록 서술해, “만약 이승만이 남한 단독 정부론을 주장하지 않았다면 이후 상황은 어떻게 전개되었을까”, “이승만이 통일 정부가 아닌 남한만의 단독 정부 수립을 주장한 이유를 알아본다” 등의 질문과 지시문을 넣었다. 또한 이승만 정부에 대해 ‘장기 집권’이라고 표현했으나, ‘독재 정권’(해냄에듀), ‘독재 권력 구축’(미래엔), ‘장기 독재 체제’(씨마스)라고 쓴 다른 교과서와 차이가 났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관련된 서술에서 ‘민주주의’ 대신 ‘자유민주주의’란 표현을 쓴 것은 다른 교과서들도 마찬가지다. 윤석열 정부 들어서 마련된 2022 교육과정 개정안에 따른 것이다. 당시 역사과 교육과정 개발연구진은 교육부가 ‘자유민주주의’라는 표현을 동의 없이 추가하자 “민주주의가 내포하는 다양성과 포용적 가치를 좁혀버리는 결과를 낳았다”며 반발했다.

평가원 교과서에 대해 한 고등학교의 ㄴ 역사 교사는 “논란이 될 만한 내용을 ‘주제 탐구’, ‘역사 탐구’ 등 활동 자료로 넣었다. 해당 내용을 역사 교사가 어떻게 활용하고, 유도하느냐에 따라 학생들이 왜곡된 역사 인식을 갖게 될 수 있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 신소윤 이우연 기자 >

‘뉴라이트 논란’ 한국사 교과서 필진, 2022년부터 ‘밑작업’

2년 전부터 뉴라이트 교과서 준비
“일본 악하고 조선 선하다는 서술은 소설”
“위안부는 성적 서비스 제공한 직업 여성”

 

친일·이승만 독재 등을 옹호한 논란이 일고 있는 한국학력평가원 한국사 교과서의 집필진 등이 과거 학술세미나에서 뉴라이트 역사관을 교과서에 반영해 학교에 투입해야 한다는 주장을 지속적으로 제기한 것으로 확인됐다. 해당 교과서 집필진인 배민 부산외대 지중해지역원 교수와 이병철 문명고 교사는 세미나에서 기존 역사 교과서 등에 대해 “편파적”, “민주화 세력이 좌편향된 교육을 학생에게 심었다” 등을 주장했다.

1일 한겨레가 입수한 (사)역사연구원의 5·6·7·8·11·12차 세미나 자료를 살펴보면, ‘교과서에 나타난 역사 왜곡’을 주제로 한 세차례 세미나에서는 물론 다른 세미나에서도 기존 역사 교과서를 줄곧 비판하는 주장이 많았다. 역사연구원은 뉴라이트전국연합 전 상임의장인 김진홍 목사가 이사장이며, 윤석열 정부 시기인 2022~23년 10번 넘게 학술세미나를 열었다.

한국학력평가원 집필진인 이병철 문명고등학교 역사 교사가 2022년 8월26일 (사)역사연구원 제7차 학술세미나에서 발제한 자료 가운데 일부.
 

구체적으로 이병철 교사는 2022년 8월26일 열린 7차 세미나에서 “민주화 세력이 방송 미디어를 통해 좌편향된 교육을 학생에게 심어 대한민국의 국가관과 자유 시장 체제를 뒤엎고 좌파 중심의 국가 주도 체제를 실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교사는 ‘티브이(TV)의 역사 교양 프로그램을 통한 역사 지식의 전달·소비 실태와 문제점’을 발표해 이런 인식을 나타냈다. 김진홍 목사는 이날 ‘초대 말씀’을 통해 “역사 교사 제언대로 권토중래하여 다음 번 검정에는 이분들이 주축이 되어 검정교과서를 서너 종 출원했으면 한다”며 “혹 불합격하더라도 대안학교에서 그 수요가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뉴라이트 역사관’을 담은 교과서를 준비해왔음을 보여준다.

또 다른 저자인 배 교수(당시 숭의여고 교사)는 같은 해 9월23일 열린 세미나에 기존 역사 교과서를 “자유당 정부와 군인 정부 시절의 정책에 의해 민간인이 다치거나 죽게 된 아픈 과거를 드러내지 못해 안달이 난 한국사 교과서”라고 표현했다. 또 “일본은 강자이자 악한 나라이며 조선은 약하고 선한 나라라는 도식적인 이분법으로 한국사 교과서 서술은 역사 서술이라기보다 자기 연민의 소설”이라며 “이를 편파적이라고 말하지 못한다면 무엇에 대해 편파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한국학력평가원 집필진인 배민 부산외대 교수가 2022년 9월23일 (사)역사연구원 제7차 학술세미나에서 발제한 자료 가운데 일부.
 

역사연구원의 수차례 세미나에선 이번 논란 대상인 한국사 교과서 저자뿐만 아니라 다른 토론자들도 문제적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2013년 역사 왜곡 비판을 받은 교학사 교과서의 대표 집필자였던 이명희 공주대 교수(역사교육학)는 세미나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일본 식민통치가 한민족의 근대화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다루는 것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기도 했다. 소녀상 철거활동을 펼친 김병헌 국사교과서연구소장은 “교과서에 수록된 위안부 문제는 반드시 삭제해야 할 주제”라며 “(위안부는) 성적 서비스를 제공하고 돈을 번 직업여성”이라고 표현했다.

이에 대해 교과서 전시본을 확인한 경기도의 한 고교 역사 교사는 “한국학력평가원 교과서를 보면 본문에는 그렇게 비판해온 기존 교과서와 비슷한 서술을 하고, (탐구 활동 등) 일부분에서 자신들의 역사관이 녹아 있는 모습”이라며 “(이 교과서로는) 학생들이 역사를 제대로 판단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한국학력평가원 한국사 교과서를 포함한 교과서들은 2일부터 전시 및 선정 과정을 거친 뒤 각 학교의 채택 상황에 따라 내년 3월부터 학교 현장에서 쓰인다.   < 신소윤 기자 >

역사교과서 필진에 교육부 공무원? 결과 발표 앞두고 저자서 빠져

발표 9일 전까지 집필진에 청년보좌역 포함
한국교육과정평가원 ‘검정 부실’ 의혹 지적

                    한국학력평가원 한국사1 교사용 교과서 집필진 명단.
 

친일 미화, 이승만 독재 옹호 등으로 논란이 일고 있는 한국학력평가원이 낸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집필진에 교육부 청년보좌역이 검정 신청 당시부터 검정결과 발표 즈음인 지난달 21일까지 이름을 올린 것으로 확인됐다. 교육부 공무원이 검정교과서 저자명단에 포함됐던 것으로,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검정이 부실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2일 교육부의 설명을 종합하면, 한국학력평가원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집필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진 김건호 교육부 청년보좌역(별정직 6급 공무원)은 최근까지 해당 교과서 집필진으로 이름을 올렸던 것으로 확인됐다. 교육부 관계자는 “지난달 21일께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김 보좌역이 해당 교과서 저자에서 자진 사퇴한 것으로 알려왔다”고 말했다.

고등학교 역사교사 출신인 김 보좌역은 자신의 교과서 집필 참여가 논란이 되자, 지난달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원고를 쓴 바는 있는데, 지난해 11월7일 임용된 이후에는 일체 어떠한 작업에도 참여하지 않았으며 저자에서 빠지게 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실제로 사퇴 처리가 된 것은 검정결과 발표(8월30일)와 근접한 시점으로, 이때까지 저자의 자격을 유지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인지 일부 학교에 배포된 한국학력평가원 한국사1 ‘교육부 검정 선생님 연구용 도서’에 김 보좌역의 이름이 집필진 명단에 올라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연구용 도서는 일반적으로 전시본이 배포된 뒤 해당 교과서를 채택한 학교에 배포되는데, 이 책은 출판사 차원에서 자체적으로 먼저 제작해 일부 학교에 배포한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 학교에 배포된 새 한국사 교과서 전시본 집필진 명단에는 김 보좌역은 빠져 있다.

애초에 김 보좌역이 ‘집필진’에 포함될 수 있는지도 논란이다. 교과서 검정업무를 대행하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지난해 10월 발행한 ‘2024년 교과용 도서 검정 신청 안내’ 자료집을 보면, “검정 신청일 현재 교육부 및 검정 심사 기관 소속이 아닌 자”를 저작자 요건으로 두고 있다. 2024년 교과용 도서 검정신청 기간은 지난해 12월1일부터 14일까지로, ‘검정 신청일 현재’ 김 보좌역은 ‘교육부 소속’이었기 때문에 저작자가 될 수 없다. 그러나 교육부 쪽은 “검정 실시 공고에는 ‘교육부 소속이 아닌 자’를 저작자 요건으로 포함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집필진으로 참여한 전직 교사는 “교과서 검정 전에 저자 이력을 검증할 수 있는 여러 단계가 있는 것으로 안다”며 “저자가 검정 신청 전에 출판사에 신상 정보를 성실하게 제출하지 않은건지, 평가원이 검증을 부실하게 한 건 아닌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신소윤 기자 >

2017년 국군기무사령부 계엄령 검토 문건
박근혜 탄핵 부결시 ‘야당 의원 체포’ 내용 담겨

한동훈 “불체포 특권 포기” 준비된 발언에
이재명, ‘야당 의원 선택적 체포’ 가능성 짚어

 
 
김용현 국방부 장관 후보자가 2일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 입장하고 있다. [연합]

 

대통령실에 이어 국민의힘 지도부가 ‘계엄령 준비 의혹’을 거론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향해 “국기 문란”이라며 전면 공세를 시작했다. 이 대표와의 비공개 회담으로 용산을 긴장시켰던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악수하고 헤어진 지 하루 만에 ‘이재명 때리기’ 선봉에 서며 대통령실과 보폭을 맞췄다.

하루 만에 공세 전환한 한동훈

한 대표는 2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이 대표와 민주당을 향해 “대통령이 저희 모르게 계엄을 준비한다는 것인가. (그 말이) 맞는다면 심각한 일 아닌가. 근거를 제시해달라. 이 정도 거짓말이면 국기 문란”이라고 맹공했다. 전날 여야 대표회담 머리발언에서 이 대표는 “최근 계엄 이야기가 자꾸 나온다”고 했지만, 한 대표는 회담이 끝난 뒤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었다. 반면 대통령실은 여야 대표회담이 끝나기도 전에 “상식적이지 않은 거짓 정치 공세”라며 이 대표를 비난했다.

그랬던 한 대표가 이재명 때리기에 나서자 추경호 원내대표, 김재원·김민전 최고위원까지 이 대표의 계엄 발언을 줄줄이 비판하고 나섰다. 국민의힘 지도부의 이런 움직임은 이 대표 발언을 신호탄으로 민주당이 ‘윤석열 탄핵소추-군부 친위 계엄 의혹’을 공식화하려 한다는 의심 때문으로 보인다. 이날 오전 국회 국방위원회의 김용현 국방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는 민주당 의원을 중심으로 김 후보자가 군내 ‘충암파’ 라인을 통해 계엄을 준비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질의가 이어졌다.

앞서 김민석 민주당 최고위원은 지난달 21일 “차지철 스타일의 ‘야당 입틀막’ 김용현 경호처장을 국방부 장관으로 갑작스럽게 교체하고, 대통령은 뜬금없는 반국가세력 발언을 했다. 이런 정권의 흐름은 국지전과 북풍 조성을 염두에 둔 계엄령 준비작전이라는 것이 근거 있는 확신”이라고 말했다. 김 최고위원은 “저는 박근혜 탄핵 국면에서 계엄령 준비설 정보를 입수해 제보했던 사람 중 하나다. 박근혜 정권이 강력히 부인했지만 결국 사실로 드러났다. (윤 대통령) 탄핵 국면에 대비한 계엄령 준비 시도를 반드시 무산시키겠다”고 했다.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접견실에서 여야 대표 회담을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이재명 계엄 발언 왜 나왔나

한동훈 대표는 이재명 대표의 계엄 발언을 비판하며 “이런 차원에서 제가 면책특권 남용 제한 문제를 법률로써 하자는 말씀을 드린 것”이라고 했다. 한 대표는 전날 여야 대표회담에서 “남용되고 있는 (국회의원) 면책특권 범위를 (판례가 아닌) 법률로 제한하는 방안도 논의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전날 여야 대표회담을 복기해 보면, 이 대표가 계엄을 언급한 맥락은 한 대표의 ‘준비된 발언’에 대한 ‘돌발적 대응’ 성격이 짙다. 한 대표는 미리 써온 머리발언 자료를 보며 국회의원 불체포·면책특권 포기 등을 정치개혁안으로 제안한 뒤 갑자기 이 대표의 재판 불복 가능성을 언급했다. ‘준비된 도발’인 셈이다.

반면 사전에 준비한 자료 없이 머리발언을 한 이 대표는 “국회의원 특권에 상응하는 대통령 소추권에 대해서도 같은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행정적 독재국가로 흘러갈 위험성이 매우 높다”고 한 대표 도발을 맞받았다. 검찰을 앞세운 차별적 법 적용 논란이 빈발하는 상황에서 국회의원 특권만 내려놓으면 야당에 대한 선택적 표적 수사와 체포·구속으로 대통령에 대한 국회 견제가 무력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설명하며 이 대표는 “종전 만들어진 계엄안을 보면 계엄 해제를 요구하는 국회를 막기 위해 국회의원을 체포·구금하겠다는 계획을 꾸몄다. 완벽한 독재 국가 아니냐”고 덧붙였다.

용산은 왜 발끈했을까

이 대표가 말한 “종전 계엄안”은 박근혜 정부 때인 2017년 2월 국군기무사령부(현 국군방첩사령부)가 비밀리에 만든 계엄령 검토 문건이다. 지난 2월 검찰은 계엄령 검토 문건 작성을 지시한 조현천 전 기무사령관의 내란 예비·음모 혐의 등을 무혐의 처분했다. 국민의힘 등 여권에서는 이를 근거로 민주당이 또다시 터무니없는 ‘계엄 준비설’을 퍼뜨리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당시 작성된 계엄령 검토 문건 내용은 △계엄 선포 △단계별 조치 △계엄 시행 준비 착수일까지 자세히 담고 있었다. 박근혜 당시 대통령 탄핵이 기각될 경우 군이 탱크 등을 동원해 서울 광화문 촛불시위 등을 진압하고, 국회가 계엄 해제를 시도할 경우 의결정족수를 미달시키기 위해 국회의원을 체포·구금하는 계획까지 구체적으로 담았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7년 2월 국군기무사령부(현 국군방첩사령부)가 비밀리에 만든 계엄령 검토 문건 일부 내용.

· 현 국회는 여소야대 정국으로 의결 정족수 충족, 계엄 해제 가능.

- 국회의원 총 299명 중 진보성향 의원 160여명, 보수성향 의원 130여명

· 국회의원 대상 현행범 사법처리로 의결 정족수 미달 유도

- 계엄사령부, 집회·시위 금지 및 반정부 정치 활동 금지 포고령을 선포하고,                                                        위반시 구속수사 등 엄중처리 관련 경고문 발표

- 합수단, 불법시위 참석 및 반정부 정치활동 의원 집중점거 후 사법처리

 

군이 치안유지 등을 담당하는 계엄은 중대한 기본권 침해를 수반한다. 따라서 헌법과 법률 등으로 선포 요건과 절차, 해제 등을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 국회가 재적의원 과반 찬성으로 계엄 해제를 요구하면 대통령은 이를 무조건 따라야 한다. 당시 국군기무사령부는 야당 국회의원을 각종 계엄령 위반으로 구속해 계엄 해제 의결을 못 하도록 막겠다는 계획을 세운 것이다.

이 문건 작성을 지시했던 조현천 전 기무사령관은 관련 수사가 시작되자 2017년 12월 미국으로 도피했다. 윤석열 정권이 들어선 이듬해인 2023년 3월, 조 전 사령관은 5년여 만에 갑자기 귀국했다. 야권은 귀국 배경을 두고 정권교체 뒤 사법처리 가능성이 없을 것이라 기대한 것 아니냐고 의심했다. 서울서부지검은 지난 2월 조 전 사령관의 내란예비·음모 등은 무혐의 처분하고 직권남용 혐의만 기소했다.

두 차례의 경비계엄, 모두 비상계엄으로 이어져

정치권에선 이 대표가 군이 치안을 맡는 ‘경비계엄’ 정도를 언급했을 것으로 본다. 계엄법은 비상계엄과 경비계엄을 규정하고 있는데, 경비계엄은 ‘국가비상사태 시 사회질서가 교란되어 일반 행정기관만으로는 치안을 확보할 수 없는 경우에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선포한다’고 돼 있다. 박정희 유신정권 말기인 1979년 10월 부마항쟁 당시 부산지역에 9일간, 10·26 사건 이튿날인 1979년 10월27일부터 1981년 1월24일까지 439일간 전국(제주 제외)에 비상계엄이 선포된 게 마지막이었다. 경비계엄은 1960년 4·19혁명 때와 1961년 5·16 군사반란 때 선포됐는데, 두 차례 모두 비상계엄 선포로 이어졌다. 즉 경비계엄만 독자적으로 발동된 경우는 없는 셈이다.

용산 대통령실은 청와대와 달리 사방이 트여있어 경찰력만으로는 대규모 시위·소요 등을 막기에 한계가 있다. 이 때문에 군이 내부적으로 경비계엄 수준의 계엄 계획을 짜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인 셈이다. 경비계엄이 비상계엄으로 확대되면 치안 외에도 행정·사법 전 영역을 군이 관장하게 된다. 2017년 기무사가 작성했던 계엄령 검토 문건 역시 ‘위수령→경비계엄→비상계엄’ 순으로 격상한다.

지난달 윤 대통령은 국방·안보라인을 전격 교체했다. 윤 대통령의 충암고 1년 선배인 김용현 경호처장이 국방부 장관에 지명됐다. 보수언론에서도 그 의도를 이해하지 못한 갑작스러운 인사였다. 앞서 지난해 11월 국군방첩사령관에 임명된 여인형 사령관도 충암고 출신이다. 박근혜 정부 때 계엄령 검토 문건을 작성한 국군기무사령부는 해체 뒤 군사안보지원사령부로 재편됐다가 윤석열 정부 들어 국군방첩사령부로 다시 이름이 바뀌었다.    < 김남일 기자 >

한동훈 ‘제3자 추천’ 방식 수용하되 야당이 비토권 행사할 수 있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가 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제22대 국회 개원식에 참석해 대화하고 있다. [연합]
 

더불어민주당은 3일 대법원장이 특검 후보를 추천하되 야당에 ‘비토권’을 부여하는 내용을 담은 ‘제3자 추천 채 상병 특검법’을 발의한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제3자 추천 특검법 발의를 미루자 ‘민주당판’ 법안을 발의해 다른 야당들과 함께 추진하겠다며 압박에 나선 것이다.

박성준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는 2일 국회에서 ‘민주당판’ 제3자 추천 특검법 발의 계획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애초 오늘 법안을 발의하려고 했으나 손을 더 보고 내일(3일) 아침에 하려 한다”고 밝혔다. 앞서 민주당은 지난 29일 의원 워크숍에서 제3자 추천 채 상병 특검법을 직접 발의하기로 결정한 데 이어, 이날 원내대표단 쪽에서 논의해 결론을 내리기로 한 바 있다.

민주당판 제3자 추천 특검법은 한동훈 대표의 ‘제3자 추천’ 방식을 수용하되, 추천된 특검 후보에 대해 야당이 비토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한 게 핵심이다. 민주당 원내 핵심 관계자는 이날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대법원장이 특검 후보 4명을 추천하면 비교섭단체를 포함한 야당이 이 가운데 2명을 추천하고 이 가운데 1명을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길 것이다. 대신 대법원장이 추천한 후보 4명 모두가 부적격하다고 판단될 경우 야당이 비토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포함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한 대표는 야당에 특검 후보 추천권을 부여하고 있는 기존 민주당의 특검법안은 공정성에 문제가 있다며 ‘대법원장 등 제3자 추천 특검법’을 발의하겠다고 한 바 있는데, 당내 의견 수렴 등을 이유로 법안 발의를 미루고 있다. 민주당은 이에 야권이 함께 제3자 특검법을 발의하는 방식으로, 한 대표와 국민의힘에 수용을 압박하려고 준비를 해왔다.

민주당은 이와 관련해 그동안 7가지 제3자 특검법안을 고민해왔다고 한다. 대법원장의 추천권까지만 규정한 한 대표 안의 경우, 민주당뿐 아니라 야권에서도 반대가 많아 사실상 추진이 힘들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국회의장에게 비토권을 부여’하는 법안이 대안으로 제시되기도 했으나, 자칫 국회의장의 중립성을 침해할 수 있다는 지적이 있었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대법원장의 추천권을 부여하되 야당이 특검 후보 추천에 개입할 수 있는 여지를 열어놓은 법안을 내놓게 된 것이다. 박 원내수석부대표는 “(대법원장이) 영 아닌 사람들을 추천했을 경우에 대한 마지막 조치로 비토권을 준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 기민도 엄지원 기자 >

22대 국회, 95일 만에 개원... 윤석열 대통령 '비정상'주장 외면

 
 
제22대 국회의원들이 2일 국회에서 개원식을 마치고 단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연합]
 

임기 시작 95일 만인 2일, 1987년 개헌 이후 가장 늦게 개원식을 치른 제22대 국회는 정기국회 들어서도 날카로운 여야 대치가 예상된다. 더불어민주당은 민주당식 ‘특검 후보 제3자 추천 채 상병 특검법’을 3일 발의하겠다며 국민의힘 압박 강도를 올리는 등 양보 없는 공세를 예고했다. 국민의힘은 채 상병 특검법을 둘러싼 당내 의견이 정리되지 않은 가운데, 민주당에 끌려다니지 않을 뜻을 분명히 했다. 두 당은 전날 대표 회담으로 대화의 물꼬를 터보려고 시도했지만, 이견을 좁히기 어려운 쟁점이 산적해 강 대 강 국면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역대 최장 ‘지각 개원’에 1987년 민주화 이후 대통령이 유일하게 불참한 이날 ‘반쪽 개원식’에서 우원식 국회의장은 “국회를 대표하는 의장으로서 무거운 책임을 느낀다”고 말했다. 애초 개원식은 지난 7월5일로 예정됐었으나, 야당이 채 상병 특검법을 처리하면서 무산돼, 이전까지 가장 늦었던 21대 국회 개원식(7월16일)보다 48일 더 밀렸다. 이날 개원식은 정기국회 개회식을 겸해 열렸다.

어렵게 개원식은 열었지만, 100일간의 정기국회 레이스도 순탄치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민주당은 우선 채 상병 특검법을 고리로 정부·여당을 겨냥한 공세를 강화할 계획이다. 민주당은 대법원장이 특검 후보 4명을 추천하고 야당이 그중 2명을 추천하면 대통령이 최종 1명을 지명하는 채 상병 특검법을 3일 발의한다. 대법원장의 추천에 야당이 동의·재추천할 수 있는 권한도 포함했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에게 권한이 없어, (한 대표가 공언한 방식의) 특검법을 발의하라는 더 이상의 설득도 불가하다는 점이 어제 두 당 대표 회담으로 확실해졌다. 민주당 시계대로 가겠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은 일단 발의된 법안을 본 뒤 판단하겠다면서도, 내부적으론 이 법안은 받기 어렵다는 기류다. 친한동훈계 한 의원은 “그건 야당이 추천하는 특검 아니냐”고 했다. 다만 국민의힘 지도부의 한 의원은 “한 대표는 기존 입장과 달라진 게 없다”고 강조했다. 야당이 아닌 대법원장 등 제3자가 특검 후보를 추천하는 채 상병 특검법이 필요하며, 당내 의견을 수렴해 적절한 시기에 추진하겠다는 생각이 여전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친윤석열계의 특검법 거부 의사가 완강해 추진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민주당은 이 밖에 ‘김건희 여사 특검법’과 4국조(채 상병 사건, 방송 장악, 양평고속도로 의혹, 동해 유전 개발 관련 국정조사) 카드도 여전히 손에 쥐고 있다. 오는 26일 본회의에서 전 국민 25만원 지원법과 방송 4법, 노란봉투법 등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6개 법안 재표결도 추진할 예정이다. 전 국민 25만원 지원법은 전날 여야 대표 회담에서 채 상병 특검법과 함께 논의됐으나 합의에 실패했다.

오는 4~5일 교섭단체 연설, 9~12일 대정부 질문, 다음달 7~25일 국정감사와 이후 내년도 정부 예산안 심사에서도 여야의 치열한 공방이 예상된다. 검찰의 김건희 여사 명품 가방 수수 사건 무혐의 처리와 문재인 전 대통령에 대한 뇌물 혐의 직접 수사 등 뇌관이 산재한 탓이다. 연금개혁이나 금융투자소득세 의제와 관련해서도 여야의 치열한 주도권 싸움이 전망된다.

한편, 우원식 의장은 이날 개원식에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다 숨진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 세월호·이태원·오송 등 사회적 참사 유가족,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 고 김상덕 위원장의 아들 김정륙씨, 의료 현장을 지키고 있는 응급의학 종사자 등 외빈 148명을 초청했다. 이들은 개원식이 진행되는 동안 본회의장 2층 방청석을 지켰다.  < 고한솔  고경주  전광준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