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숙은 ‘낮은 정책 이해도’  강선우는 의원들의 ‘동업자 의식’ 

 

                        20일 지명이 철회된 이진숙 교육부 장관 후보자, 강선우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 김영원 기자 
 

이재명 대통령이 고심 끝에 20일 이진숙 교육부 장관 후보자의 지명을 철회한 것은 이 후보자에 대한 교육계의 사퇴 요구가 시간이 흐를수록 거세졌던 게 결정적이었다. 반면 ‘생존’에 성공한 강선우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의 경우 ‘보좌진 갑질 논란’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았으나, 장관직 수행이 어려울 만큼의 흠결은 아니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품행’보다는 ‘능력’이 중요한 잣대였다는 뜻이다.

 

이 대통령이 강 후보자(14일)와 이 후보자(16일)의 인사청문회를 마친 뒤 이날 저녁까지 장고를 거듭한 것은 두 후보자를 두고 대통령실 참모진, 여당과 야당, 시민사회의 목소리가 엇갈렸던 게 가장 큰 이유다. 낙마한 이 후보자는 지명 당시부터 교육 정책에 대한 전문성을 검증받지 않은 인사라는 점에서 여권으로부터 ‘의외의 발탁’이라는 반응이 많았다. 뒤이어 자녀 조기 유학, 제자 논문 가로채기 의혹 등이 불거지자 여당 안에선 “이 후보자에게 눈길이 쏠린 덕분에 다른 후보자 청문회는 무사히 치를 수 있지 않겠느냐”는 말이 나왔을 정도다.

 

낙마의 결정적 계기는 ‘낮은 정책 이해도’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 후보자는 인사청문회에서 나이스(교육행정정보시스템), 유보통합 등 기본적인 교육 이슈들에 대해 문외한에 가까운 모습을 보였다. 교육단체와 시민단체는 물론, 정근식 서울시 교육감, 김상욱·강득구 민주당 의원까지 ‘임명 불가’ 목소리를 냈을 정도다.

 

강선우 후보자의 경우 야당뿐 아니라 ‘우군’인 여당 보좌진과 여성단체, 진보당과 민주노동당 등으로부터 ‘임명 불가’ 여론이 거셌지만, 여당 지도부는 ‘강선우 낙마는 안 된다’는 기류가 강했다.

 

당 지도부의 한 의원은 “강 의원의 경우 지명이 철회되면 차기 총선 출마까지 위태로워지는 문제가 있었다. 드러난 잘못이 정치생명을 끊을 만큼 위중한 것이냐는 분위기가 강했다”고 했다. 의원들의 ‘동업자 의식’ 앞에서 ‘노동약자 권익 보호’라는 가치는 힘을 발휘할 수 없었다는 얘기다.

 

실제 민주당 의원들 사이에선 이진숙 후보자에 대해서와 달리 강선우 후보자를 두고선 어떤 비판도 나오지 않았다. 국회 보좌관 출신 의원들 일부가 사적인 자리에서 비판의 목소리를 내기는 했지만, 이들 역시 공개된 자리에선 철저히 침묵했다.

 

한 민주당 의원 보좌관은 “의원들이 우리 의견에 공감을 했더라도 공개 발언을 하긴 어려웠을 것”이라며 “정권에 부담되지 않도록 강 후보자가 스스로 물러나주었으면 하는 분위기는 의원들 사이에도 분명히 있었다”고 했다.  < 기민도 엄지원 기자 >

 

"강선우 갑질 없었다…언론들 인터뷰하고 기사는 안 써"

일방적 폭로와 상반된 전·현직 보좌진 증언 다수

"부당한 지시 받은 적, 본 적 없어…제보자 알아"
"의원실에 막대한 피해 줬는데 정의의 투사 둔갑"
"여러 매체 인터뷰 요청 적극 응했지만 안 다뤄줘"

"한 보좌관, 급여 횡령당했다며 의원에 소리 질러"
"세전과 세후 차이…국회 사무처에서 직접 지급"
"이사할 때 동원? 강요 아니었고 그때 카톡 있어"

강선우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에 관한 갑질 의혹이 일부 전직 보좌진의 일방적인 폭로와 언론의 침소봉대식 보도로 일파만파 확산됐지만 그와는 상반된 전·현직 보좌진 여러 명의 경험담도 엄연히 존재한다. 언론이 강 후보자에게 유리한 증언은 의도적으로 배제해서 보도를 거의 안 하는 탓에 공론장의 그늘 밑에 가려져 있을 뿐이다. 민주당보좌진협의회(민보협) 고건민 회장까지 전면에 나서 강 후보자의 사퇴를 촉구하는 등 기울어진 여론 지형 속에서 이들은 마녀사냥의 불똥이 자신에게 튈 수 있음에도 상당한 용기를 낸 것으로 보인다.

 

강선우 의원실 전직 보좌진이 18일 딴지일보 자유게시판에 올린 글 일부
 

강 후보자가 21대 국회 초선 의원이던 시절부터 함께 일하다 지금은 국회를 떠나 다른 일을 하고 있다는 한 전직 보좌진은 지난 18일 딴지일보 자유게시판에 <강선우 의원실 보좌진였습니다>라는 글을 올리고 "저는 의원님으로부터 부당한 지시를 받은 적이 없다"며 "물론 그러한 행위를 본 적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어 "일이 힘들긴 했다. 지역 기반 없는 여성 초선의원이니만큼 지역 활동과 국회 활동 어느 하나 빠지는 거 없이 다 하려고 했다"면서 "이러면 보좌직원들이 많이 피곤해진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갑질을 제보한 보좌직원이 누구인지 알고 있다. 같은 시기에 근무했었다"며 "당무감사 자료 누락, 문서 허위 작성, 선거기간 타 후보 캠프 이중 출근 등 의원실에 막대한 피해를 주었던 직원인데 정의의 투사로 둔갑되어 있는 현실이 아이러니하다"고 개탄했다. 또 "저 역시 며칠간 여러 매체의 기자들로부터 전화 인터뷰 요청을 받았고 적극적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갑질은 없었고, 제보된 사건들도 정확한 크로스체크가 필요하다 얘기했지만 다뤄주는 기자는 없었다"면서 "다른 전 직원 두어 명과 연락이 닿아 얘기해보니 저와 비슷한 취지로 인터뷰했었다고 전해 들었다"고 밝혔다.

 

갑질을 제보한 인물이 오히려 업무 수행상의 각종 문제로 의원실에 막대한 피해를 줬던 직원이며, 정작 강 후보자의 갑질은 없었다고 본인을 포함해 여러 전직 보좌진이 기자들에게 적극적으로 설명했음에도 기사에는 한 줄도 안 나갔다는 얘기다. 그는 강 후보자가 왜 보수진영과 언론으로부터 도를 넘는 공격을 받는지 나름대로 배경을 짚어본 뒤 "강선우 의원이 부당한 지시를 했었다면 그 사실 하나로 질타를 하고 사과를 하면 된다"면서 "확인되지도 않은 제보들로 도배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했다.

 

아울러 "저는 강선우 의원님과 좋은 추억이 많다. 그녀의 열정과 추진력에 감탄했었고 배운 것도 많다"며 "부족한 것 없는 사회적 위치에서 약자들을 배려하고 힘써주는 모습이 의아하기도 했고 감동한 적도 많다. 부디 위기를 잘 이겨내고 승승장구하길 바란다"고 응원했다.

강선우 의원실 다른 전직 보좌진이 딴지일보 자유게시판에 올린 글 일부.

 

다른 전직 보좌진은 같은 게시판에 <강선우 의원을 위한 몇 가지 변명>이라는 글을 올렸다. 실명을 공개하진 않았지만 역시 강 후보자와 지근거리에서 일했던 내부자가 아니라면 알 수 없는 매우 구체적인 기억들을 술회했다. 그는 먼저 2020년 4월 21대 총선을 앞두고 강 후보자가 민주당 서울 강서갑 지역구 경선에서 당시 현역 의원이던 금태섭 변호사를 누른 데 이어 본선에서도 이변을 일으키기까지 선거 캠프가 어떻게 꾸려지고 활동했는지를 자세히 소개했다.

 

이어 초선 의원이 대개 그렇듯 의원실 보좌진을 구성하고 팀워크를 만들기까지 어려움이 컸다는 점도 떠올리며 "추천받은 보좌진을 검증하는 일은 더욱 힘들었다. 어찌 저찌 정원을 채웠지만 아무래도 의원실 자체에 부실한 인사 시스템이 있었고 지나고 보니 좋은 분도, 그렇지 않은 분도 있었던 것 같다"면서 "때문에 개원 초 강선우 의원실은 여러 보좌진이 손발을 맞춰가며 하나의 의원실로 가동되기까지 크고 작은 어려움이 많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 과정에서 몇몇 큰 삐걱임이 있지 않았나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갑질 제보자 중 한 명으로 추정되는 인물과 관련해 "당시 보좌관님은 국회 경력이 없었다. 경험이 없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으나, 업무 시스템에 대한 이해 부분이 기존 국회 출신 보좌진들과는 아무래도 다르고 부족했다"며 "나쁜 사람이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대다수 보좌진처럼 의원실 내에 각자의 맡은 바 역할, 개개인에게 분장된 업무들, 의원님과 업무적으로 약속된 부분들을 온전히 지키는 분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나아가 "매년 국회사무처에서 공지하는 <국회의원 보좌직원 보수 지급 기준>이 있다. 그곳에 명시된 수당과 본인의 통장에 들어온 급여가 차이가 난다며 행정비서관에게 횡령을 했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면서 "그런 상황이 부당하다며 의원님께 크게 소리 지르고 항의한 일도 있었다.  의원실에서 횡령을 했고, 그 주범이 행정비서관이라고 했던 거 같다. 세전(稅前), 세후(稅後)의 차이인데. 급여는 의원실을 거치지 않고 국회 사무처에서 해당 직원에게 직접 들어가는 걸로 알고 있다"고 어이없었다는 뉘앙스로 전했다.

 

강선우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가 14일 국회 여성가족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발달장애 자녀에 대한 질문을 받으며 눈시울을 붉히고 있다. 2025.7.14. 연합
 

강 후보자가 21대 총선 때 기존에 살던 서울 종로구에서 지역구인 강서구로 이사하면서 이삿짐을 옮기도록 보좌진을 동원했다는 '다수의 증언'이 나왔고, 그 과정에서 강 후보자 가족과 '소동'이 있었다는 MBN 단독 보도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이 보도에 대해 강 후보자 측은 이미 "보좌진들이 이사를 도와준다고 왔던 건 사실이지만 이삿짐센터가 있었던 만큼 도와줄 건 없고 식사나 같이하자고 권유했었다"고 해명한 바 있다.

 

이 전직 보좌진은 "지역 보좌관님을 통해 (의원)회관 직원들에게 연락이 왔다. 시간이 되는 사람들은 도와주자. 당시 보좌관님이 말씀을 주신 취지는 혹시나 부수적인 일손이 필요할 수도 있고, 지역 사무실과 집을 오가는 상황도 발생할 수 있다, 강요는 아니니 시간 되는 직원들만 와달라고 했다. 그래서 대다수가 가지 않았다"며 "우리가 할 일은 없고 식사나 하자는 투로 말씀하시기에 그럼 가서 도와드리겠다고 했다. 그때 카톡이 남아 있다"고 밝혔다. 이사 과정에서 강 후보자 측과 보좌진들 사이에 뭔가 마찰이 있었다는 식의 냄새를 풍겼던 MBN 보도의 '소동' 언급에 대해서는 당시 현장 상황을 이렇게 회상했다.

 

"남편분, 강선우 의원, 따님이 있었다. 폴짝폴짝 뛰는 강아지도 있었다. 그 집으로 이삿짐센터 직원들, 모르는 아저씨들이 우르르 들어와 짐을 빼니 따님이 우리 집 건들지 말라고, 우리 짐 가져가지 말라고 소리를 질렀다. 발달장애가 있는 딸, 또 그 가정은 매 순간순간 여느 가정과 다른 일상을 보낸다. 정확한 용어인지는 모르겠지만, 발달장애인의 '도전적 행동'. 남편분께서 딸을 껴안고 진정하라며 타일렀다. 남편분은 딸을 달래느라 정신이 없었고, 그 사이 이삿짐센터 직원들이 짐을 뺐다. 따님과 남편분은 이사할 집으로 바로 오지 못했다."

 

"이사한 집에서는 의원님이 행거에 본인 옷을 걸었고, 입을 옷과 입지 않을 옷을 구분했다. 옷이 참 많았다. 보좌관님과 수행비서관님이 본인들이 옷을 챙겨가도 되냐고 물었고, 각각 본인의 따님과 와이프에게 맞을지 들어보며 옷을 골랐다. 옷을 열심히 구분하고 본인들 차량으로 바리바리 챙겨갔다. (…) 거실 바닥에 앉아 다 같이 중국 음식을 시켜 먹었다. 제 기억으로는 의원님까지 네 명이 있었다. 저를 뺀다면 두 명일 텐데, 다수 보좌진의 증언이 있었다는 말은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강선우 의원실 다른 전직 보좌진이 딴지일보 자유게시판에 올린 글 일부.
 

제보자의 재취업을 방해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국회 보좌진은 일반적으로 회관 내부에서 방을 옮겨 다니며 이직, 승진을 한다. 누군가 의원실에 이력서를 내면 그때마다 4급 보좌관부터 인턴 비서관까지 전에 몸담았던 의원실에 평판을 조회하는 것은 그쪽 세계의 특수성이자 흔한 일로 알고 있다"면서 "일반적으로 이력서를 낸 후에 지원한 의원실에서 전에 일했던 의원실로 연락이 오기에 '먼저 나서서 취업을 방해'하기란 시스템적으로 어려운 부분이 있다. 다만 친분이 있는 직원이 본인 의원실에 지원한 직원의 평판 조회를 부탁해오면 식사 자리에서 만나서 얘기해 주는 경우도, 그쪽 의원실을 직접 찾아가 얘기해 주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또 "의원실에서 있었던 사실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해주기도, 좋게 좋게 이야기해 이직을 돕는 경우도 있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본인 이직의 정당성을 위해 보좌진이 이직을 하고 나면 전에 일했던 의원실을 흉보는 경우도 있다"며 "강선우 의원실은 일이 많다. 매우 많다. 의원님이 온 세상일에 모두 신경 쓰고 그것을 해결해보려고 한다. 늘 일 욕심이 있고, 근데 그 욕심 낸 일을 다 해내고자 했다. 그 속도와 방향에 맞지 않았던 보좌진들은 업무를 버겁고 힘들어하기도 했던 것도 사실"이라고 부연했다. 의원실 내 일부 갈등과 관련한 다음 대목도 주목할 만하다.

 

"정말 바빴다. 보건복지위원회, 여성가족위원회, 예산결산위원회, 인사청문위원회, 당 대변인 업무와 각종 선거 차출까지. 그러나 모든 보좌진이 격무에 동원되는 것은 아니다. 그 과정에서 가장 큰 공헌을 한 비서관님이 보좌관으로 승진을 하기도 했다. 어리고, 여성 보좌관이라는 이유로, 빠른 승진이라는 이유로 그 보좌관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직원도 있었다. 그분은 일을 진짜 잘했다. 무서울 정도로. 매번 감탄했다. 배우고 따라가려는 직원도, 욕하고 깎아내리는 직원도 있었다. 그러는 동안 일을 안 하는 직원. 구체적으로는 의원실에 앉아 독서를 하고 있는 직원도, 공인중개사 시험을 준비하는 직원도 있었다. 격무에 시달리는 직원과 일하지 않는 직원들은 어느 조직이건 틀어지게 되어있다."

 

이 전직 보좌진은 마지막으로 "전·현직 의원실 식구들이 서로 제보자를 추측하고 특정해내는 과정에서 많은 분이 상처 입고 피해 받고 있는 것으로 안다. 강선우 후보자의 장관 지명 이후 저에게도 매일 같이 기자들 연락이 오고 있다. 모르는 번호를 받지 않게 된 지 꽤 오래된 거 같다. 그만 좀 하셨으면 좋겠다"며 "누구는 이때다 싶어 참 신나 보이기도 한다. 논란 뒤에 숨어, 익명성 뒤에 숨어 공격하기에만 바빠 보인다"고 언론과 제보자들을 비판했다.

 

그러면서 "진짜로 갑질이 있었는지 그동안 기억을 더듬어보기도 했다. 지금은 다른 쪽에서 일을 하고 있기도 하고, 익명성 뒤에 숨어 취재에 응하고 대응하는 방식이 비겁하다고 생각해 일체 대응할 생각이 없었지만, 함께 일했던 보좌진이 보좌진을 공격하고 있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어 더 비겁한 방법으로 익명성 뒤에 숨어 변명해 본다"며 "각자 저마다의 사정으로 대응하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저도 마찬가지다. 현재의 상황이 참 씁쓸하고 안타깝기만 하다"고 토로했다. 이 전직 보좌진의 글은 현재 삭제된 상태다.

 

강선우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가 과거 의원실 보좌관에게 건네줬다는 카드
강선우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가 과거 의원실 보좌관과 주고 받았다는 문자 메시지
 

앞서 또 다른 전직 보좌진은 강 후보자가 손글씨로 쓴 '든든하게 늘 그렇게 있어줘서 정말 고맙다' '더 즐겁게, 잼있게 지내자!' 등의 문구가 적힌 카드 사진과, '생일에 일 많이 해야 해서 미안해'라며 보내온 카카오톡 선물 메시지를 공개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강선우 의원님이 직원들을 대하는 방식은 늘 격의 없고 수평적이었다"면서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여러 기념일, 휴가철마다 직원 한 명 한 명 직접 챙기며 손수 메모를 적어 선물을 주셨던 것도 기억난다. 직원들 생일 때마다 사무실에 케이크를 준비해와서 박수 치고 함께 축하해주던 기억도 난다"는 글을 올렸다.

 

신분을 드러낸 강선우 의원실 전·현직 보좌진도 있다. 김연주 전 보좌관은 지난 13일 페이스북에 "9년이다. 인턴으로 시작해 보좌관까지 민주당의 품 안에서 성장한 시간이다. 5년이었다. 강선우 의원의 보좌관으로 살았다. 장관 지명 소식을 기사로 접하고 진심으로 기뻤고, 누구보다 그 역할을 잘 해내실 분이란 것을 알기에 응원했다"며 "무척 괴롭다. 익명에 숨어, 피아 구분도 없이, 출처 모를 화살들이 쏟아지고 있다"고 힘들어했다.

 

현직 김가미 비서관은 "오해로 고통받는 의원님 때문에 가슴이 찢어진다"며 며칠째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있다고 그 어머니가 지난 12일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 이 어머니는 "강선우 의원의 갑질 뉴스가 보도되었을 때 딸은 눈과 귀를 의심했다. 딸을 통해 강선우 의원의 사람 대하는 성정을 익히 알고 있었던 저 또한 그랬다"면서 "의원실 출근 후 일주일 만에 딸이 한 말이 '엄마, 우리 의원님은 의원님 같지가 않아. 진짜 친구 같애'였다. 매일 일이 신나고 즐겁다고 했다. 그렇게 밝게 일하는 딸을 그 이전 본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강선우 의원이 보좌진을 함부로 대하는 사람이었다면, 소위 갑질을 일삼는 사람이었다면, 그 밑에서 비서로서 2년 가까운 기간을 그렇게 행복하게 근무할 수 있었을까?"라며 "한 끼라도 먹여볼 심산으로 억지로 떠먹였다. 딱 두 숟갈 먹더니 멈춘다. 그러곤 울먹이며 말한다. '엄마. 의원님도 지금 못 드셔. 의원님이 더 걱정이야.' 딸은 오해로 고통받는 의원님 때문에 가슴이 찢어지고, 저는 마음 약한 딸 때문에 가슴이 미어진다. 강선우는 부하에게 갑질 따위나 하는 그런 사람이 절대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18일 정부서울청사 중앙재난안전상황실 서울상황센터에서 집중호우 대처상황 점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2025.7.18. 연합
 

한편 이재명 대통령은 강 후보자와 이진숙 교육부 장관 후보자 임명 여부를 놓고 금명간 결단을 내릴 것으로 알려졌다. 20일 대통령실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이날 정무수석실로부터 장관 후보자들에 대한 인사청문회 결과를 보고 받고 후속 논의를 진행한다. 우상호 정무수석은 지난 18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이 후보자와 강 후보자에 대해 "여론이 가라앉지 않는 장관 후보자도 있는 게 현실"이라며 "좋은 여론도 있고 사퇴하라는 여론도 있는 것을 여과 없이 보고 드리고 있다. 이 대통령이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 내릴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토요일인 19일 여야 원내대표와 회동해 장관 후보자들의 거취와 관련한 의견을 청취했다고 한다.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는 '전원 낙마 불가'를, 국민의힘 송언석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는 '2+알파 지명 철회'를 주장했고, 이에 이 대통령은 결론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은 채 "고민해보겠다"는 취지의 언급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송 원내대표는 17일 "인사 검증 시스템의 개선을 위해 대통령 면담을 요구한다"고 공개적으로 표명했는데, 이 대통령이 이틀 만에 이를 수용한 셈이다.           < 김호경 기자 >

 

“강선우 ‘하라면 하지 무슨 말이 많냐’”…전 여가부 장관도 ‘갑질’ 폭로

정영애 “여가부에 갑질해놓고 장관 된다니 기막혀
지역구 민원 해바라기센터 설치 불발에 예산 삭감”

 

 
 
강선우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 14일 국회 여성가족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가족 얘기를 하다 감정을 추스르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강선우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가 초선 국회의원이던 2021년 당시 문재인 정부 여가부 장관에게도 ‘갑질’을 했던 정황이 드러났다. 당시 강 후보자는 자신의 지역구에 성폭력 피해자 통합지원센터인 ‘해바라기 센터’를 설치해달라고 여가부에 요구한 뒤, 어렵다는 답변을 받자 여가부 예산을 삭감해버렸다고 한다.

 

21일 정영애 전 여가부 장관이 전날 주변 지인들에게 공유한 글을 보면, 정 전 장관은 강 후보자 임명에 관해 “부처 장관에게도 지역구 민원 해결 못 했다고 관련도 없는 예산을 삭감하는 등의 갑질을 하는 의원을 다시 여가부 장관으로 보낸다니 정말 기가 막힌다”며 당시 강 후보자의 ‘갑질’ 상황을 전했다. 정 전 장관은 문재인 정부의 4번째 여가부 장관을 지낸 인물이다.

 

정 전 장관은 글에서 “제가 여가부 장관이었을 때 있었던 일을 한가지만 말씀드리겠다”며 “당시 (강 후보자가) 본인의 지역구(서울 강서구 갑)에 해바라기 센터 설치를 하려고 제게 요청을 했는데, 산부인과 의사는 확보하기 어려워 해당 지역인 이대서울병원의 이대 총장에게 의논했다. 총장은 ‘막 개원한 병원 운영이 우선이니, 다음 기회에 꼭 협조하겠다’고 했다”고 전했다.

 

이어 “그 내용을 강선우 의원에게 전달하니 ‘하라면 하는 거지 무슨 말이 많냐’고 화를 내고 여가부 기획조정실 예산 일부를 삭감해버렸다”며 “결국 강선우 의원실에 가서 사과하고 한소리 듣고 예산을 살렸던 기억이 난다”고 전했다.

 

정 전 장관은 강 후보자 임명 문제에 대해 “전체적인 당의 분위기도 뒷짐 지고 있는 것으로 보이니 정말 걱정이 크다”면서 “저도 이런 안 좋은 이야기를 굳이 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민주정부 4기의 성공을 간절히 희망하는 저의 진의를 잘 살펴주시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2021년 10월22일 당시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국정감사 질의 내용을 보면, 강 후보자는 정 전 장관에게 “저희 지역구에 있는 대형 의료기관인 이대서울병원에 해바라기 센터를 설치하기 위해서 몇 차례 간담회 하면서 소통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대서울병원이 혜택이 없다는 이유로 난색을 표하지는 않았다”면서 “여성가족부는 해바라기 센터 운영에 대한 중장기적 개선책을 찾고 있다고 밝혔다. 어떤 내용의 개선책을 마련했느냐. 저희 의원실에서 꾸준히 요구했었다”는 등의 질문을 계속 이어 갔다.

 

정 전 장관은 한겨레에 “이 글은 한참 (강 후보자) 인사청문 중에 썼던 것인데 전달이 잘 안 됐다. 어제 거의 인사가 확정된 듯해 친구들 단톡방에 전에 썼던 글을 공유했는데 그게 밖으로 나간 것 같다”고 밝혔다.   

                                                                                                  <  김채운  최하얀 기자 >

 정영애 전 장관 글 전문

전 여가부 장관 정영애입니다.. 
강선우 의원과 관련하여 관련 보도가 심상치않아 제가 여가부 장관이었을 때  있었던 일을 한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당시 본인의 지역구에  '해바라기센터 설치를 하려고 제게 요청을 했는데, 센터설치를 위해서는 산부인과 의사를 비롯하여 여러 전문가들을 확보해야 합니다.  

다른 전문가들은 어떻게 해보겠으나 산부인과 의사는 확보하기 어려워 해당 지역인 이대서울병원의 이대 총장에게  의논하였습니다.  총장은 개원하며 산부인과 레지던트 t.o.를 한 명밖에 받지 못했는데 막 개원한 병원운영이 우선이니, 다음 기회에 꼭 협조하겠다고 했습니다.
 
그 내용을 강선우 의원에게 전달하니 
"하라면 하는 거지 무슨 말이 많냐고" 화를 내고 여가부 기획조정실 예산  일부를 삭감해버렸습니다.  

결국 강선우 의원실에 가서 사과하고 한소리 듣고 예산를 살렸던 기억이 납니다.  

부처 장관에게도 지역구 민원  해결 못 했다고 관련도 없는 예산을 삭감하는 등의 갑질을 하는 의원을  다시 여가부 장관으로 보낸다니 정말 기가 막힙니다. 

대통령께서 여가부에 역차별 해소방안을 물으시고 강선우 후보자는 역차별에 대해 잘 살펴보겠다고 하고, 전체적인 당의 분위기도 뒷짐지고 있는 것으로 보이니 정말 걱정이 큽니다...

저도 이런 안 좋은 이야기를 굳이 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민주정부 4기의 성공을 간절히 희망하는 저의 진의를 잘 살펴주시면 좋겠습니다.

 

20일은 영남권 경선...폭우 피해 고려 온라인 합동연설회와 권리당원 투표 방식

 

 
 
더불어민주당 정청래(왼쪽)·박찬대 당대표 후보가 지난 16일 서울 양천구 목동 SBS에서 TV토론회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내년 8월까지 더불어민주당을 이끌 당 대표를 뽑기 위한 첫 권역별 순회경선 권리당원 투표에서 정청래 후보가 박찬대 후보를 큰 표 차이로 제쳤다.

 

민주당은 19일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전국 첫 경선 지역인 충청권(대전·세종·충남·충북) 합동 연설회를 마친 뒤 충청권 권리당원 투표 결과를 발표했다. 정 후보가 권리당원 3만5142명의 표를 얻어 득표율 62.77%를 기록했다. 박 후보는 2만846표를 얻어 득표율 37.23%에 그쳤다. 두 후보 간 득표율 차이는 25.54%포인트다.

 

이번 순회 경선에서는 충청권 권리당원의 투표 결과만 공개됐다. 일정에 따라 각 지역에서 권리당원 투표가 진행되며, 민주당 대의원 투표 결과와 국민 여론조사 결과는 최종 결과가 발표되는 다음 달 2일 전국당원대회에서 공개된다.

 

이날 투표에서 두 후보 간 득표율이 25%포인트 넘게 차이 나면서, 민주당 당원 표심이 정 후보에게 기울어져 있다는 점이 확인됐다. 이번 민주당 당 대표 선거는 권리당원 투표의 반영 비율이 55%로 높아, 당원 표심의 영향이 상당히 크다. 대의원 투표는 15%, 국민 여론조사는 30% 비중으로 반영된다.

 

개표 이후 정 후보는 국회 기자회견장에서 기자들과 만나 “오늘 결과에 저도 놀랐다”며 “충청권 당원들의 과분한 지지를 받았다”고 말했다. 박 후보는 “더 열심히 하라는 당원 동지들의 명령이라고 생각한다”며 “부족한 부분을 잘 채워나가겠다”고 말했다.

 

오는 20일에는 영남권 순회경선이 열린다. 영남권 경선 또한 호우 피해를 고려해 온라인 합동연설회와 권리당원 투표 방식으로 진행된다.

 

두 후보는 이번 당 대표 선거에서 각자 자신이 이재명 정부 첫 1년 여당 대표의 적임자라며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이날 합동연설회에서 기호 1번인 정 후보는 “지금은 내란과 전쟁 중이다.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당을 전시체제로 운용하겠다”며 “싸움 없이 승리 없고 승리 없이 안정은 없다”고 말했다. 박 후보는 “민생과 경제 회복에도 유능한 민주당을 만들겠다”며 “대통령과 눈 맞추고, 국회와 호흡 맞추고, 성과로 증명하는 당 대표자가 되겠다”고 말했다.  < 최하얀 기자 >

대법원의 이재용 무죄판결에 붙여: 비판과 소회, 당부

중형 선고 피하려 아예 '완전 무죄' 선물한 듯
'경제대통령' 앞에 하나같이 무기력한 주류 엘리트들
이 회장, ​법을 두려워하며 사회적 책임 다하길

 

법의 잣대가 이재용 삼성회장 앞에서 갈대처럼 휘었다. 돈의 힘에 눈이 먼 엘리트 법관들이 법 기술을 동원해서 법의 정의와 위엄을 스스로 짓밟았다. 지난 17일 대법원 제3부(재판장 오석준 대법관)는 이재용 회장의 경영권 무세승계와 지배권 강화를 둘러싸고 지난 25년간 계속된 형사사법의 대단원의 막을 내리며 화끈하게 이재용 회장과 삼성의 손을 들어줬다. 삼성물산-제일모직 불공정합병 사건과 삼성바이오로직스(삼바) 회계부정과 증거인멸 사건 상고심에서 검찰의 상고를 모두 기각하고 1심과 2심의 무죄판결에 이어 이재용 등 관계자 14인의 전원 무죄와 19개 혐의 전부 무죄를 최종 확정한 것이다. 하필이면 제헌절 77주년 기념일에 헌법에 가장 역행하는 대법판결이 나온 것도 아이러니다.

 

판결이유가 알량하기 그지없다. 1심과 2심에 이어 최고 재판부도 삼바 공장 콘크리트 바닥을 파고 숨겨놓은 완벽한 범죄증거들 모두를 증거능력이 없다고 배척한 후 삼성물산-제일모직 불공정 합병이 경영권 승계와 지배권 강화 목적 외에 합리적 경영판단으로 진행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서 무죄라는 것이었다. 비유컨대, 이는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대통령의 온갖 구차한 변명, 이를테면 계엄령이 아니라 계몽령을 편 것이고 개미새끼 하나 다치지 않았는데 무슨 내란이고 헌법위반이냐는 변명을 모두 받아들여 국회의 탄핵소추를 기각한 것과 다르지 않다. 실체적 진실과 이렇게 거리가 멀고 완벽하게 조작된 무죄판결은 대한민국 사법사상 처음일 것이다. 오직 이재용이 피고인이기에, 아직도 살아있는 ‘경제대통령’이기에 가능했다.

 

하나 더 있다. 이렇게 노골적인 면죄부를 발행해도 조희대 대법원장이 든든하게 뒷배를 봐줄 것이라는 기대와 믿음이 없었다면 서울중앙지법, 서울고법, 대법의 담당재판부가 마음 놓고 전원 무죄, 전부 무죄를 선고하진 못했을 것이다. 사법부수장이 그래서 중요하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대법관 제청권과 법원장 임명권, 법관 전보권 등 법관인사권을 합법적으로 휘두르는 제왕적 대법원장의 경우에는 말할 필요도 없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대한민국 최고의 경제 권력자, 삼성총수에 대한 중형 여부를 결정짓는 중대한 사건에서 대법원장의 눈치와 의중을 살피지 않을 소신파 엘리트 법관은 상상하기 어려운 것이 유감스러운 현실이다.

 

그렇다면 이재용에게 중형을 선고했어야 하느냐는 항변이 이 지점에서 들리는 듯하다. 돌이켜보면 이재용은 국정농단 사건으로 이미 두 차례에 걸쳐 총 2년 동안 구금생활을 했다. 덕분에 ‘이제 그만하면 됐다’는 동정여론이 제법 형성됐다. 특히 우리사회의 지배엘리트들은 여기에 이견이 전혀 없다. 삼성이 우리나라를 먹여 살렸다는 성공신화와 함께 경영권 무세세습을 이유로 이재용을 더 옥살이시키진 말자는 국민정서가 이번 면죄부 판결의 근저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요컨대, 이번의 어처구니없는 전원무죄, 전부무죄 대법판결은 최고위 법조엘리트들이 엘리트사회의 정서와 국민의 동정여론, 대법원장의 보수성향을 믿고 온갖 법 기술과 형식논리를 동원해서 저지른 사법사상 최대의 법치유린 판결이다.

 

오해하거나 헛소리하면 안 된다. 이재용과 그의 하수인들은 죄가 없어서 완전 무죄판결을 받은 게 전혀 아니다. 오히려 죄가 넘쳐서 재판부가 조금이라도 유죄를 인정하는 순간 이재용에게 5년 이상 실형을 살리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서 모든 심급의 재판부들이 눈 딱 감고 면죄부를 주며 모든 상황을 정리했다고 보는 편이 실체적 진실에 더 부합한다. 실제로 무죄 논거라 봐야 ‘달리 볼 수 있는 여지가 남기 때문’이라는 아주 소극적이고 절차적인 봐주기 논리밖에 없었다. 실체적 진실에서 무죄라는 취지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전혀 없는 것이다.

 

1심, 2심, 3심 재판부도 만약 이재용에게 집행유예를 붙일 수 있는 조건이었다면 지금처럼 무리수를 두지 않고 안전하게 그 길을 선택했을 게 틀림없다. 그러나 두 개의 결정적인 이유로 그것이 불가능했다. 우선 불공정합병과 회계부정을 인정하는 순간 불공정 차액과 회계부정액이 수천 억에 달하기 때문에 5년 이상 중형선고가 불가피했다. 게다가 이재용은 국정농단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2년 6월형을 받고 2022년 8월에야 사면돼 3년간 누범가중처벌이 적용되기 때문에 집행유예를 붙이는 게 불가능했다.

 

집행유예 없는 중형 선고와 완전무죄 선고의 딜레마에 처한 재판부는 예외 없이 완전무죄를 선택하고 이재용뿐 아니라 13명의 하수인 모두에게 무죄를 선물했다. 그동안의 검찰수사 발표와 언론탐사 보도가 100% 거짓이 아닌 이상 법원이 그럴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법원의 탈출구가 과연 있었을까? 법원은 좌고우면하지 않고 법대로 판결하면 딜레마가 없다. 법원이 정의롭게 풀지 못할 딜레마라는 것은 사실상 없다. 아무리 경직성을 갖는 것처럼 보이는 법 문언에도 법관이 구체적 형평성을 살릴 수 있는 해석의 공간은 언제나 남아 있게 마련이다.

 

만약 1심 재판부부터 법의 정신과 취지에 충실하게 중형선고를 했더라면 이재용의 선택지가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예를 들자면 부당하게 취득한 본인명의 재산의 사회 환원과 경영일선 후퇴 같은 방침을 공표하며 경영권 무세세습을 위한 지난 25년 동안 무차별적으로 관련 국가기관들을 구워삶아온 희대의 국정농단에 대해 국민들에게 공개적이고 구체적으로 사죄하며 용서를 빌었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법원이 집행유예를 붙여 풀어줘도 뭐랄 사람이 없고 대통령이 곧바로 사면을 해도 뭐랄 사람이 없었을 것이다. 제대로 된 재판부라면 당연히 법대로 마감해야 했다.

 

내가 아쉬운 것은 한국의 법치주의가 유독 ‘경제 대통령’에게 무릎을 꿇는 모습을 보였다는 점이다. 이 대목에서 나는 우리사회 주류엘리트들의 행태를 고발하지 않을 수 없다. 정치권과 국회는 이미 불거질 대로 불거진 삼성 사안은 물론이고 10대재벌의 경영권 무세세습 문제에 대해서도 국정조사 한 번 하지 않고 입에 자물쇠를 채웠다. 이 점에서는 이명박, 박근혜, 윤석열 국힘당 정권과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민주당 정권이 특별히 다르지 않았다. 국세청, 공정위, 증권감독위, 교통건설부(공시지가) 등 국가기관들도 최대한 봐주기로 일관했다.

 

좋은 예가 이재용의 자매, 이부진과 이서진이 에버랜드와 SDS 헐값발행사건 및 삼성물산-제일모직 불공정합병사건에서 이재용과 100% 동일한 공동수혜자이자 범죄혐의자임에도 불구하고 검찰, 국세청, 공정위, 법원 어떤 관련기관도 그들의 이름과 책임을 철저하게 모른 척하고 지금까지 봐주기로 일관했다는 점이다. 정치권과 언론, 학계도 다르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이부진, 이서진 자매들은 오빠 이재용의 그늘과 날개 아래 숨어서 세금 한 푼 내지 않고 오빠 재산규모의 1/3씩을 보유하며 단숨에 여성재벌 1,2위로 등극할 수 있었다. 물론 삼성총수일가가 아니라면 관련기관이 이렇게 모르는 척 하는 일은 상상도 하기 어렵다.

 

봐주기의 정점에는 검찰과 법원이 있었다. 예외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03년 12월 서울중앙지검 채동욱 부장검사는 이미 검찰이 세 차례나 불기소처분을 내렸던 에버랜드 헐값발행 사건에 대해 공소시효 종료를 딱 하루 앞두고 사장과 전무를 특별배임죄로 기소했다. 몸통 이건희 회장은 빼고 마름들만 기소했지만 그나마 에버랜드 사건에 대한 형사재판이 진행돼 주범 이건희 회장에 대해서도 공소시효 중단효과가 있었다. 박근혜 정부에서 소신파 검찰총장으로 이름을 날리다 강제 퇴진 당한 채동욱의 결기가 없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다.

 

삼성물산-제일모직 불공정합병 주주총회에서 최대주주 국민연금이 찬성 투표하도록 박근혜, 최순실에게 뇌물을 바친 혐의로 2017년 2월 검찰이 이재용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법원이 구속영장을 내줘서 삼성총수가 구속되는 이변이 발생했다. 그러나 촛불혁명의 한가운데서 엄청난 국민압력에 힘입어 일어난 일이라 굳이 칭찬하고 기억할 것까지는 없다. 그보다는 필자 등 법학교수 43인의 검찰고발로 시작한 에버랜드 헐값발행 형사재판에서 배임죄 유죄판결을 내린 2004년의 1심 재판부와 2007년의 2심 재판부가 ‘법대로’ 재판부로 기억되어야한다.

 

촛불혁명의 산물로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고 김명수 대법원과 윤석열 검찰이 가동되면서 두 가지 긍정적인 변화가 있었다. 하나는 이재용의 뇌물공여 국정농단사건에서 김명수 대법원의 ‘법대로’ 판결이 2019년에 나와서 결국 이재용을 실형을 살리게 한 것이었다. 다른 하나는 이재용의 삼성물산 부당합병과 삼바 회계부정 사건에 대해 검찰이 적극적으로 수사해서 2020년 9월, 19개 범죄혐의로 이재용과 하수인들을 기소했다는 것이다. 삼바 분식회계와 관련해서는 2018년 증권선물감독위원회가 조사 끝에 검찰고발을 단행해서 검찰기소로 이어진 것이었다. 촛불혁명의 기운과 윤석열의 야심이 합작해서 만들어낸 쾌거였다.

 

위에서 언급한 몇 예외를 빼고 이재용 사건을 맡은 재판부들은 봐주기 논리를 제공하느라 머리를 싸맸다. 특히, 삼성특검 1심과 2심 판결은 당시 이용훈 대법원장이 에버랜드 변호사 시절에 동원했던, ‘아무리 주식을 저가발행해도 기존주주의 이익을 해칠 뿐 회사에는 손해가 없다’는 해괴한 법리로 이건희 회장에게 에버랜드 사건의 배임 무죄를 선고했다. 실은 이용훈 대법원장이 제척사유(1심 변호사)로 빠진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에버랜드 6대5 무죄판결도 이것을 유일한 논거로 삼았다.

 

조희대 대법원장 치하의 이번 사건 1심, 2심, 3심 법관들이 조희대 대법원장의 성향과 의중을 알고 ‘묻지 마’ 무죄판결을 내렸을 가능성이 매우 높듯이 당시 이용훈 대법원장 치하의 삼성특검 1심, 2심, 3심 법관들도 이용훈 대법원장이 변호사시절에 펼쳤던 법리를 안심하고 따랐을 게 틀림없다. 실은 당시만 해도 중대사건에 대해선 지금처럼 컴퓨터 배당이 아니라 법원장이 마음에 맞는 법관을 골라 임의배당을 했기 때문에 더 그렇게 볼 수밖에 없다. 이렇게 쓰면서도 내 추론이 억측이기를 바랄만큼 마음이 아리다. 이른바 유신헌법이 독재수단으로 만들어낸 지금의 제왕적 대법원장제는 하루바삐 청산되어야 마땅하다.

 

언론과 학계도 다르지 않았다. 이번 대법원 판결에 대해 보수언론들이 일제히 검찰수사를 비난하는데서 알 수 있듯이 보수언론과 주류학계는 대한민국 지배층의 최상위 신성가족이자 눈부신 성공신화의 주역 삼성총수의 권위 앞에 무조건 조아리는 습성이 있다. 물론 막대한 광고 액수와 사외이사 자리, 초청특강 기회 등 수다한 떡고물과 이권이 따라붙기 때문에 후천적으로 획득한 체질이다. 이른바 법률가와 학계전문가들로 구성된 대검소속 검찰수사심위원회가 별다른 이견 없이 삼성물산 부당합병 사건과 삼바 회계부정과 증거인멸 사건에 수사 중단 및 불기소를 권고했을 정도다. 주류학계는 30년 내내 삼성과 이재용의 경영권 무세상속 사안에 대해 눈을 감고 입을 닫았다.

 

이렇게 볼 때 삼성사안은 단순히 이건희 선대회장과 이재용 회장의 경영권 상속과 지배권 강화를 위한 배임 헐값발행과 배임 부당합병의 개인적 죄를 묻는 사법차원으로 국한시켜 보면 안 된다. 이건희-이재용 부자가 대한민국에서 누구나 우러러보는 돈의 황제이자 경제계의 짜르이기 때문에 그들을 단죄하는 것은 우상숭배와 싸우는 것이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그들은 본인들의 죄과를 감추고 처벌을 모면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국가와 사회의 요로를 돈의 힘으로 오염하고 왜곡시켰다. 그것은 최순실이나 김건희의 국정농단과는 비교할 수 없는 규모와 강도로, 비교할 수 없이 긴 기간 동안에, 전개된 삼성의 고강도 국정농단 사건이었다.

그 과정에서 정치권과 관계, 언론계와 학계는 마치 삼성 봐주기가 고유한 직무의 하나인 듯 각자의 자리에서 있는 힘을 다해 삼성총수 일가를 돌봐주며 필요한 때 직무유기와 직권남용을 마다지 않았다. 건전한 법 관념과 상식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이 씁쓸한 우리나라 법치주의의 초현실적 풍경 앞에서 나는 아연실색하며 깊은 상념과 통한에 빠진 때가 적지 않았다.

 

그래도 내가 보기에 한국법치주의는 삼성에 대해서도 8부 능선까지는 와 있는 게 아닌가 싶다. 2009년 에버랜드 특별배임죄 사안에서 6대5 단 한 표 차이로 패배했을 뿐이다. 누가 봐도 금권이 초라해지는 순간이었다. 2015년 삼성물산 부당합병을 성사시키기 위해 국민의 노후자금, 국민연금을 동원한 죄로 삼성총수 이재용을 2년 동안 옥살이를 시켰다. 나아가서 삼성물산 부당합병과 삼바 회계부정 사건을 19개 범죄혐의로 기소해서 이재용 회장을 지난9년 동안 법원에 들락거리며 살얼음판을 걸게 했다. 이 정도면 방성대곡 중에서도 희망을 가질 만하지 않은가.

 

나는 이재용 회장이 두 번에 걸쳐 모두 2년 동안 영어생활을 하고 나온 이후부터는 나름대로 준법경영의지를 다짐하고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제부터 그는 근본적으로는 국민의 동정여론에 힘입어 무죄판결을 받았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국민에게 감사한 마음으로 기업보국과 경제회복을 위해 있는 힘을 다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만에 하나 다시 한 번 본인의 지배권 강화를 위해 무리하게 법과 경제정의를 짓밟는다면 국민여론은 싸늘하게 식고 등을 돌릴 것이다. 아직도 삼성생명 금산분리 건 등 이재용 회장이 유혹을 느낄 법한 사안들이 적지 않게 남아 있다. 간신히 선대와 본인의 악업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된 그가 국민에게 고마워하는 마음과 국민의지의 표현인 법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사회적 책임을 다하며 경영실력을 마음껏 보여주길 당부한다.  <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 > 

 

이재용 무죄 확정에…참여연대 “총수일가 이익 위해 시장질서 훼손 선례”

 

 
 
서울 삼성전자 서초 사옥. 연합
 

참여연대가 불법승계 의혹 관련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무죄가 확정되자 “사법부가 경제권력에 끝까지 면죄부를 줬다”고 비판했다.

 

참여연대는 17일 논평을 내어 “삼성 불법합병은 대기업 재벌 총수일가의 경영권 승계를 위해 국민연금과 세금 등 전 국민의 수천억원 피해를 제물로 삼은 악질적인 범죄행위”라며 “승계목적에 대해 앞뒤가 다른 판례를 내놓으면서까지 사회정의를 훼손하는 수치스러운 결정을 내린 사법부를 강력히 규탄한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이날 자본시장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이 회장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 회장은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계획을 추진하고 이 과정에서 회계 부정 등을 저지른 혐의로 2020년 재판에 넘겨졌고, 1·2심 모두 무죄가 선고됐다.

 

참여연대는 “삼성은 합병을 성사시키기 위해 분식회계, 합병비율 조작 등 불법적 수단을 총동원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 회장은 이 불법합병을 매개로 뇌물을 주고받아 이미 유죄 판결을 받았고 서울행정법원도 합병 과정에서 분식회계가 있었다고 판단했다”며 “형사재판에서만 ‘사업상 목적이 있었고 일방적 합병 지시나 분식회계가 없었다’며 무죄를 선고한 것은 동일 사실에 대한 전혀 다른 판단이라는 점에서 납득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삼성의 부당 합병으로 국민이 직접적인 피해를 봤다는 지적도 곁들였다. 참여연대는 “삼성물산 최대주주였던 국민연금은 최대 6750억원(참여연대 추산)의 손해를 입었고 엘리엇과 메이슨이 한국 정부를 상대로 국제투자분쟁(ISDS)을 제기해 약 2500억원의 세금이 유출되는 상황이 다가왔다. 이 중 946억원은 패소에 따른 지출 의결로 이미 손해가 실현됐다”고 밝혔다. 옛 삼성물산 주주인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과 미국 사모펀드 메이슨은 두 기업의 합병 과정에서 정부의 개입으로 손해를 봤다며 국제투자분쟁을 제기했고, 2024년 4월 메이슨을 상대로 정부가 일부 패소해 배상액 지급이 확정됐다.

 

참여연대는 “이 사건 재판은 법원이 소극적이고 협소한 법 해석으로 또 한 번 친재벌적 판결을 내린 것이며 다른 재벌 대기업들에 총수일가의 이익을 위해 시장질서를 훼손하고 국가와 경제적 약자들에게 피해를 입혀도 된다는 선례를 남겨준 것과 다름없다”며 “정부는 국민연금공단이 불법합병에 가담한 이들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만전을 기하고 엘리엇·메이슨 국제투자분쟁 배상 판정에 대해서도 구상권을 행사하는 등 국민 피해 회복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 고나린 기자 >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 6월 1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이재명 대통령 주재로 열린 6경제단체·기업인 간담회에 참석하고 있다. 2025.6.13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 연합


경영권 불법승계 혐의로 재판 받던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1·2심 무죄 판결에 이어 7월 17일 대법원에서도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습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1심 판결 당일 방송사 저녁종합뉴스와 다음 날 신문 지면기사를 분석한 바 있는데요. 이번에는 2심과 대법원 판결에 관한 방송사 저녁종합뉴스와 다음 날 신문 지면기사를 분석합니다.

2심 판결에 이어 대법원 판결에 대한 언론보도입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대법원 판결이 나온 7월 17일 지상파3사와 종편4사, 다음 날인 7월 18일 6개 종합일간지와 2개 경제일간지를 살펴봤습니다.

삼성의 '잃어버린 10년' 부각한 신문

방송사 저녁종합뉴스(7/17)·신문 지면(7/18) ‘이재용 회장 대법원 선고’ 보도건수와 첫 보도순서 ⓒ 민주언론시민연합관련사진보기


보도건수와 순서에서 방송과 신문의 온도차가 확연합니다. 방송은 지상파3사와 종편4사는 전국 곳곳에 쏟아진 폭우 소식을 주요 뉴스로 다뤘습니다. 이재용 회장 대법원 선고는 후순위로 밀려 1건씩 보도하는 데 그쳤는데요. 그럼에도 JTBC·TV조선·채널A 등 종편3사는 2건씩 할애해 비교적 비중 있게 보도했습니다.

반면 신문은 6개 종합일간지와 2개 경제일간지가 모두 1면에서 다뤘습니다. 경향신문·한겨레를 제외한 4개 종합일간지와 2개 경제일간지는 4~7건의 기사를 통해 이재용 회장 대법원 선고를 주요하게 보도했습니다. 특히 '잃어버린 9년' 혹은 '잃어버린 10년' 등 표현을 써가며 이재용 회장이 1심부터 대법원을 거치는 동안 삼성이 정체 혹은 위기 국면을 맞았다고 주장했습니다. 반면 경향신문과 한겨레는 2건씩 보도하는 데 그쳤습니다.

'이재용 옭아맨 10년' 깊은 고통?


방송과 신문은 이재용 회장 무죄 확정 판결을 전하는 기사 제목에서 '사법리스크가 끝났다', '사법족쇄를 벗었다' 등의 표현을 사용했는데요. 방송은 KBS, SBS, JTBC, TV조선이 "사법 리스크 '마침표'"(KBS)"'사법 리스크' 종지부"(SBS)"사법리스크 벗고"(JTBC)"'사법 족쇄' 벗은 이재용"(TV조선)이라고 썼습니다. MBC, 채널A, MBN은 "'무죄' 확정 이재용"(MBC)"5년 만에 23개 혐의 전부 무죄"(채널A)"'불법승계' 이재용 무죄 최종 확정"(MBN) 등 사실위주로 담았습니다.

신문의 경우 경향신문과 한겨레는 "대법, 이재용 무죄 확정"(경향신문)"부당합병 등 혐의 이재용 무죄 확정"(한겨레)으로 사실위주 제목을 썼지만 다른 신문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주로 2016년 국정농단 사건 이후 이재용 회장이 검찰 수사와 재판에 임한 기간을 강조하며 자극적인 제목을 썼습니다. "3168일 '사법리스크'"(동아일보)"빼앗긴 9년"(동아일보)"이재용, 9년 족쇄 풀렸다"(조선일보)"무리한 기소, 삼성 잃어버린 9년"(중앙일보)"9년 사법 리스크 벗은 삼성"(중앙일보)"혁신 발목잡은 '잃어버린 9년'"(한국일보)"이재용 '무죄'… 삼성, 잃어버린 10년"(매일경제)"이재용 무죄… 삼성의 '잃어버린 10년'"(한국경제)"'10년 사법 족쇄' 벗어난 삼성"(한국경제)과 같이 말입니다.

이재용 회장 2심 선고 직후(2/4)·대법원 선고 직후(7/18) 신문 지면 자극적 제목 ⓒ 민주언론시민연합


대법 판결까지 걸린 기간을 강조한 자극적 제목은 처음이 아닙니다. "9년 '사법 족쇄' 풀렸다"(동아일보)"국정농단 사태부터 '9년 사법리스크'"(동아일보)"송사에 허송한 9년 누가 보상하나"(동아일보)"삼성 총수 10년 옭아맨 결과가 뭔가"(조선일보)"이재용 '8년 사법리스크' 일단락"(중앙일보)"4년 5개월 발목 잡은 사법리스크 해소"(한국일보)"8년만에 사법리스크 턴 이재용"(매일경제)"이재용 8년 괴롭힌 '사법 악몽'"(매일경제)"이재용 '10년 사법 리스크' 털어냈다"(한국경제)"삼성 '잃어버린 10년'"(한국경제) 등 2심 선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신문마다 기준이 달라 제각각 기간을 표현했지만 전하고자 하는 바는 같습니다. 이재용 회장이 검찰의 무리한 수사와 기소로 인해 장기간 송사에 휘말려 삼성에서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겁니다.

'기계적 상고' '묻지마 상고'로 검찰 비판


1심에서 대법원까지 이어진 무죄 판결은 곧 검찰 비판으로 이어졌습니다. TV조선은 <따져보니/'사법 족쇄' 벗은 이재용 '뉴 삼성'의 미래는?>(7월 17일 신유만 기자)을 통해 "일각에서는 검찰이 '기계적으로 상고를 했다' 이런 지적도 있다", "이 때문에 형사 사건에서 이런 '묻지마 상고'를 제한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고 주장했습니다.

한국일보 <이재용 무죄 확정… 기업 잡는 검찰 '기계적 상고'>(7월 18일 위용성·이유지·최다원 기자)도 "1·2심에서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는데도 기계적으로 상고하는 검찰의 관행을 뜯어고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법조계에선 이날 선고를 계기로 검찰의 기계적 상고 관행에 실질적으로 제동을 걸 수 있는 장치가 시급히 마련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고 주장했습니다. <사설/이재용 무죄, 무죄, 무죄… 검찰 '기계적 상고' 자성을>(7월 18일)은 "혐의 입증에 실패하고서도 기계적인 상고까지 이어온 검찰의 무능과 과욕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고 힐난했습니다.

중앙일보 <사설/9년 사법 리스크 벗은 삼성, 재도약의 계기 돼야>(7월 18일) 역시 "1, 2심에서 혐의 전부에 무죄가 선고되자 검찰은 반성하고 상고를 포기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었지만 검찰은 기계적 상고를 선택"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동아일보 <윤석열 수사 지휘-이복현 기소 강행… 1, 2심 이어 대법도 "전부 무죄">(7월 18일 송유근·송혜미·구민기 기자)는 "대법원 역시 19개 혐의 전부 무죄로 판단하면서 '기계적 상소 관행'이 개선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은 피고인이 1심 혹은 2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으면 '동일한 범행으로 생명이나 신체에 대한 위협을 재차 받지 않는다'는 수정헌법 5조에 따라 검찰이 상소할 수 없다"며 "선진국처럼 검찰의 무분별한 상소를 제한하는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매일경제 <재계 삼성이니까 버틴것… '묻지마 사법족쇄' 개혁 한목소리>(7월 18일 박소라·김민소 기자)도 마찬가지 주장을 폈습니다.

검찰 상고는 정말 기계적이고 무분별한 상고였을까


대법원의 무죄 확정 판결로 일단락된 이재용 회장의 이른바 '사법리스크'는 검찰의 무리한 수사와 기소 때문에 지속된 것일까요, 검찰의 상고는 기계적이고 무분별한 상고였을까요? 국정농단 사건 관련 2019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이재용 회장은 '삼성 경영권 승계 작업의 일환'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건넨 혐의가 인정되었습니다. 국정농단 사건과 함께 2016년부터 쟁점화한 삼성 경영권 불법승계 의혹 수사는 계속되었습니다. 이재용 회장은 2020년 5월 6일 삼성전자 부회장으로서 삼성 경영권 불법승계 의혹과 무노조 경영에 대한 대국민 사과를 했습니다. 특히 이 회장은 경영권 불법승계 의혹에 대해 "저와 삼성을 둘러싸고 제기된 많은 논란은 근본적으로 이 문제에서 비롯됐다"고 말했습니다. 구체적 조처 없는 추상적 다짐에 불과했지만 사실상 경영권 불법승계와 노조 파괴에 대해 인정하고 사과한다는 내용입니다.

이후 검찰은 삼성 경영권 불법승계 의혹과 관련해 2020년 9월 1일 이 회장과 삼성 임직원들을 기소했습니다. 조선일보 <사설/이재용 결국 또 기소, 한 기업인에 대한 끝없는 수사와 재판>(2020년 9월 2일)은 "이 부회장은 2016년부터 4년간 구속과 수사, 재판에 시달리고 있다"고 주장했으며, 중앙일보 <사설/삼성 기소, 수사심의위 권고 무시한 배경 뭔가>(2020년 9월 2일)는 "삼성 기소는 검찰 간부들 간의 알력과 권력 분쟁에서 이뤄진 측면이 없다고 할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하나같이 이재용 회장을 억울한 피해자인 양 그렸지만, 당시 검찰의 기소 이유는 국정농단 세력에 대한 뇌물 공여,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조작,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과정 시세조종 등 이 회장이 경영권 불법승계 과정에서 저지른 불법행위가 그만큼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이재용 회장에게 무죄를 선고하며, 2019년 대법원 판결은 뇌물 제공이 경영권 승계 작업의 일환으로 이루어졌다고 판결한 것일 뿐 승계 작업의 불법성이나 위법성을 판단한 것은 아니라며 선을 그었습니다. 판결 직후 참여연대도 "뇌물을 주고받아 처벌은 받았지만 정작 그 뇌물의 목적이 없었다는 셈"이라고 일갈할 정도로 많은 의문이 남았습니다. 또한 항소심 재판부는 1심에서 증거로 채택된 삼성바이오로직스의 18TB(테라바이트) 백업 서버 등의 증거능력을 모두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압수수색 과정에서 적법 절차를 따르지 않았다며 3704개 자료의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은 것입니다.

경향신문 <사설/삼성물산 합병 이재용 무죄, '재벌 경제범죄' 관대한 법원>(2월 4일)은 "재판부는 검찰이 제시한 주요 범죄 증거를 인정하지 않았다"며 "검찰권 오남용을 견제하는 일은 사법부의 당연한 책무이나, 이 회장이 아닌 일반인 재판에서도 똑같이 적용해야 재벌을 봐줬다는 오해를 사지 않을 것"이라고 일갈했는데요. 이는 언론에게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검찰권 오남용을 견제하는 일은 언론의 당연한 책무입니다. 하지만 이재용 회장 수사·기소·상고에서만 '무리한 수사와 기소', '기계적 상고'를 주장할 것이 아니라 일반인 수사와 기소, 상고에서도 똑같이 적용해 보도해야 재벌을 봐줬다는 오해를 사지 않을 것입니다.

* 모니터 대상
① 방송 : 2025년 7월 17일 KBS <뉴스9>, MBC <뉴스데스크>, SBS <8뉴스>, JTBC <뉴스룸>, TV조선 <뉴스9>, 채널A <뉴스A>, MBN <뉴스7>
② 신문 : 2025년 7월 18일 경향신문,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한국일보, 매일경제, 한국경제 지면 기사

                                                                 <  민주언론시민연합(ccdm1984)  > 

 

“‘당원 가입했으니 어쩔 수 없다’라는 것은 굉장히 무책임”

  당내 우려...김용태 “불법 계엄 단절이 보수 재건의 전제”

 
 
▲전한길씨가 지난 17일 유튜브 전한길뉴스에서 자신이 국민의힘에 입당한 것은 커밍아웃이며, 국민 원하는 당 대표를 선출하자는 취지라고 밝히고 있다. 사진=전한길뉴스 영상 갈무리

 

부정 선거론자이자 윤석열 전 대통령 지지자인 전한길 씨가 국민의힘에 입당한 것과 관련해 “국민이 원하는 당 대표를 선출하자는 취지”라고 밝혔다. 전 씨와 극우인사들이 당을 접수하려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터져 나왔다.

 

전한길 씨는 지난 17일 자신의 유튜브 ‘전한길 뉴스’에서 송언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를 향해 “송 원내대표 너무 심지가 약하다. 전한길이랑 또 거리를 두겠다는 뜻으로 해석되는데, 그래 가지고는 국힘 답 없다. 전한길 뒤에는 어마어마한 국민의 뜻을 반영하고 있다”라며 “국힘 지금 지지율이 19%밖에 안 된다. 외면당한거다. 자꾸 ‘윤석열과 거리를 둔다, 전한길과 거리를 둔다’ 이러니까 국힘이 망하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전 씨는 그러면서 자신이 그럼에도 국힘 당원으로 가입한 것을 두고 “저는 당 대표도 우리 국민들이 원하는 그런 당 대표를 선출하자. 이런 취지다. 영 정신 못 차리면 탈당해서 국힘 망하게 만들면 되지 않느냐”라고 엄포를 놓았다. 

 

앞서 송언석 비대위원장은 지난 17일 페이스북에 전 씨의 입당을 두고 “호들갑 떨 것 없다”라며 “어떤 당원이라도 당헌당규에 명시된 당원의 의무를 어긴다면 마땅히 상응하는 조처를 할 것이다. 국민의힘의 자정능력을 믿어달라”고 썼다. 그러나 입당 이후에도 전 씨의 부정선거 등 여러 발언과 연설에 대한 의혹과 우려가 쏟아졌다.

 

이에 송 비대위원장은 18일 “전한길 씨에 대하여 여러 의견을 경청, 수렴하고 있다”라며 “전한길 씨의 언행에 대한 확인과 함께, 당헌당규에 따른 적절한 조치 방안에 대한 검토를 지시하였다”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 김용태 전 비대위원장은 18일 페이스북에 “불법 계엄 단절이 보수 재건의 전제”라며 “그런데도 이를 호들갑으로 치부한다면 당의 미래는 없다”라고 비판했다. 김 전 위원장은 전날에도 전한길 씨 입당을 두고 “계엄을 옹호하고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극단적 정치세력은 국민의힘과 같이 갈 수 없다”라며 “송언석 비대위원장도 우리 당이 계엄에 찬성하거나 옹호한 적 없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부정선거를 주장하고 계엄을 옹호하는 전 씨를 즉각 출당하라”고 촉구했다.

 

김종혁 전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18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전 씨의 입당을 두고 “극우 세력들의 국힘 침공 작전, 상륙 작전이 시작된 것 같다”라며 “이제 우리 당은 ‘극우들의 놀이터가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굉장히 걱정된다”라고 우려했다. 김 전 위원은 전 씨의 입당 목표 자체가 당을 장악하는 것인 만큼 점점 더 과감해지고 더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정하 국민의힘 의원도 이날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해 “국민의힘이 ‘극우 정당화되는 건가’가 제일 걱정되는 대목”이라며 “건전한 보수정당의 가치를 대변하는 것이냐, 부정선거를 옹호하고 윤어게인을 외치는 정당으로 갈 건가”의 기로에 있다고 했다. 박 의원은 “지금이라도 당원자격을 심사하면 된다”라며 “이중당적자 여부, 자유통일당 당원인지 대대적으로 조사해서 이참에 정리하면 된다. 그런 것은 안 하고 이렇게 ‘당원 가입했으니 어쩔 수 없다’라고 하는 것은 굉장히 무책임하고, 오히려 당이 이상한 방향으로 가는데 동조한다고 생각한다”라고 질타했다.   < 조현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