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률 한국 1위, 캐나다 2위, 프랑스 3위, 미국 4위 순

건산연 보고서…한국, 수치 가장 낮은 영국 대비 6.6배


                     건설 노동자가 사망 사고(CG)  [연합]

 

국내 건설업에 종사하는 근로자 1만명당 사고 사망자 비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경제 10대국 평균의 2배인 것으로 나타났다.

 

15일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이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건설업 사고사망만인율(근로자 1만명당 사망자 비율)은 대한민국이 1.59퍼밀리아드(만분율·이하 단위 생략)로, OECD 경제 10대국 가운데 가장 높았다.

 

이어 캐나다(1.08), 프랑스(0.97), 미국(0.96), 이탈리아(0.92), 스페인(0.72), 일본(0.68), 호주(0.34), 독일(0.29), 영국(0.24)의 순이었다.

 

10개국의 건설업 사고사망만인율 평균 수치는 0.78로, 한국(1.59)이 2배를 넘는 수준이었다.

수치가 가장 낮은 영국과 비교해서는 6.6배로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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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 OECD 주요국 건설근로자 사고 사망자 비율 ] 연합 김토일 기자 

 

아울러 같은 해 건설업을 포함해 한국의 전체 산업 사고사망만인율은 0.39로, OECD 경제 10대국 중 캐나다(0.50) 다음으로 높았다.

 

이어 미국(0.37), 프랑스(0.35), 이탈리아(0.20), 스페인(0.17), 호주(0.14), 일본(0.13), 독일(0.07), 영국(0.04)의 순이었다.

 

10개국의 전체 산업 사고사망만인율 평균은 0.24로, 한국이 약 1.6배로 높은 수준이었다. 한국의 수치는 안전 선진국으로 인정받는 영국과 비교하면 약 9.8배에 달했다.

 

한국을 포함해 10개국 모두 건설업의 평균 사고사망만인율(0.78)이 전체 산업 평균치(0.24)보다 약 3.3배로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2023년 OECD 경제 10대국 전체산업 및 건설업 사망 사고 지표  [한국건설산업연구원 보고서 발췌]
 

보고서는 "국내뿐 아니라 해외 선진국에서도 건설업은 다른 산업보다 위험한 것을 알 수 있다"며 "국내 건설업의 사고 저감을 위해서는 건설업과 전체 산업 간의 안전 수준 격차를 줄이는 산업 차원의 전략, 국내 전체 산업의 안전을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국가 차원의 종합적 전략이 병행될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구체적으로 산업 차원에서 건설업은 옥외 작업, 근로자 고령화, 사업 구조의 복잡성 등 다양한 변수로 위험 요인이 많고 불확실성이 높은 산업인 만큼, 산업적 특성을 고려한 맞춤형 안전 관리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고 보고서는 제언했다.

 

국가 차원에서는 일상 속 생활 습관부터 안전을 고려하는 문화를 정착시키고, 사회 전반에 안전이 최우선 가치로 자리 잡도록 하는 범국가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보고서는 강조했다.

 

그러면서 "산업 현장을 포함한 가정·학교를 아우르는 전 생애 주기 안전 문화 혁신을 통해 안전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기반 마련이 필요하다"고 했다.     < 홍국기 기자 >

 

광복 80돌 기획 ‘식민사학서 시민사학으로’ ⑤-1

독도 삭제하고, 4세기 이전 신라·백제 존재 부인
한사군 한반도설, 일제 임나일본부설 버젓이 부활
동북공정에 활용된 중국 측 역사지도 무비판 수용

"외국 사료 참고" 삼국사기·삼국유사 기록은 무시
7년 뒤 결과물도 없이 추가 예산 요청…국회 조사
서강대-연세대, 사업 좌초된 뒤 1648만원만 반환

 

광복 80돌이 됐건만 대한민국 역사는 여전히 '식민사학'의 주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뉴라이트와 극우 파시즘의 변이과정을 거치면서 21세기 한복판에도 아스팔트 위를 배회하고 있다. 어디서부터 엉킨 실타래일까? 인문연구가 이병권 씨가 멀리 에도 막부시대에 파종돼 메이지시대 인공재배된 식민사학이 어떻게 '친일'의 뇌리에 이식됐는지 돌아보았다. 

 

게재 순서는 ① 에도 막부가 준비한 '미래' ② 과학 위장한 실증주의 사관 ③ '제국주의 사생아' 조선사편수회 ④ 첫 단추부터 잘못 꿴 '해방 이후' ⑤ 되살아난 유령1, 동북아 역사지도 ⑤ 되살아난 유령2, 전라도 천년사 ⑥ '시민사학'으로 광복 백주년 준비하자

 

 

광복 80주년인 15일 광복회가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주최한 '국민과 함께하는 광복대행진'에서 참가자들이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며 행진을 하고 있다. 2025.8.15. 연합
 

강단학계 60여 명이 참여, 결과물 없이 좌초

 

 

강단 학계는 이병도(李丙燾, 1896~1989)와 신석호(申錫浩, 1904~1981) 사망 이후에도, 조선사편수회를 계승한 스승들의 유산인 식민사학 영향권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2000년대에 발생한 두 가지 사건이 이를 극명하게 보여주었습니다. 첫째, 2008년부터 2016년까지 동북아역사재단이 국고 47억 원을 지원해 추진한 ‘동북아 역사지도 제작 사업’, 둘째, 전라남도·전라북도·광주광역시가 24억 원을 들여 공동 추진한 ‘전라도 천년사’ 편찬 사업입니다. 두 사업은 대규모 예산이 투입된 국책사업일 뿐 아니라, 식민사학의 본색을 여실히 드러낸 사례입니다. 재야사학계, 시민단체, 지역 향토 사학자들의 강한 비판에 직면해 결국 좌초된 공통점도 있습니다. 이를 통해 한국 역사학이 여전히 일제 식민사학의 영향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그 핵심 내용이 뉴라이트 역사관과 사실상 뿌리를 공유하고 있다는 점 역시 부인할 수 없습니다.

 

 

동북아역사지도 제작 사업은 2008년 5월 편찬 사업단의 출범과 함께 시작됩니다. 국회에서 본격적 논란이 벌어진 2015년 5월 이후 여러 번 수정본과 최종 결과물이 제출되었지만, 심사 결과 부적격 판정을 받아 최종적으로 좌초된 역사편찬 사업이었습니다. 좌초되기까지 47억 원의 예산이 투입됐습니다. 당초 이 사업은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한 국가적 대응이라는 동북아역사재단의 명분과 목표를 가장 잘 드러내는 목적 사업으로 주목받았습니다. 하지만 무려 7년여 동안 지도 제작 작업을 늦추다가 생뚱맞게 추가 예산을 요청, 국회의 주목을 받게 됐습니다.

 

 

국회 특위 회의에 제출된 ‘동북아역사지도’는 상당한 논란을 야기했습니다. 고조선 멸망부터 고구려 전기 일부 시기에 이르기까지 한반도 북부가 중국 영토로 표기되었고, 낙랑군·한사군을 평양 지역으로 표기했으며, 임나일본부설과 삼국사기 초기 기록 불신론에 근거했다는 지적도 받습니다. 결정적으로 독도를 빠뜨렸습니다. 되레 중국 역사학자 담기양(谭其骧, 1911~1992)이 1982년에 작성한 역사지도 《중국역사지도집》(中国历史地图集, 1955~1988)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일본 식민사학자들의 임나일본부설을 정당화했습니다. 담기양은 중원 왕조 중심의 지도를 탈피하여 전체 중국 역사 범위를 포괄하는 지도 제작 기준을 세운 인물입니다. 과거 중국 소수민족의 역사라도 현재 중국 영토 범위 안에 있으면 중국 역사라고 인식합니다. 담기양의 역사지도집은 동북공정 역사관에 그대로 수용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47억 원의 국민 혈세가 우리의 역사적 정체성을 오히려 혼란에 빠뜨리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15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80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 2025.8.15. 연합
 

국회서 맞붙은 강단학계 vs 재야학계

 

 

‘동북아역사지도 제작사업’에는 전국 대학에서 총 60여 명의 교수와 연구자가 참여했습니다. 주요 편찬위원은 운영위원장 윤병남 교수(서강대, 동양사), 상임위원 김유철 교수(서강대, 동양사), 배기환 교수(서울교대, 한국 고대사), 배웅성 교수(서울시립대, 역사지리) 등이었습니다. 또한 전문위원회별로 한국 고대사 분야에 노종국(전 계명대 교수) 외 12명, 고고분과 소위원회에 성장용 교수(경북대) 등 6명, 북아시아 전문위원회에 김홍동 교수(서울대) 등 5명, 동아시아 선사 전문위원회에 김병준 교수(서울대) 등 4명이 각각 참여했습니다.

 

 

별도 편찬위원회에는 한국사 분야에 하일식 교수(연세대) 등 4명, 중국사 분야에 김병준 교수(서울대) 등 9명, 일본사 분야에 김선민 교수(숙명여대) 등 9명이 담당했습니다. 이 사업은 본래 서강대-연세대 컨소시엄이 동북아역사재단으로부터 수주한 것이었지만, 참여진의 면면을 보면 한국 고대사 학계 전체가 참여한 프로젝트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60여 명의 학자들이 7년여간 작성한 지도가 결국 평가 미달로 좌초된 것은 매우 심각한 과오로 지적되어 마땅합니다.

 

 

사업 시작 후 7년이 지나도록 중간 결과조차 내놓지 않은 학계 컨소시엄은 동북아역사재단을 통해 추가 예산을 요청했고 재야 역사학계를 중심으로 긴급 점검 요구가 제기되었습니다. 이에 국회 ‘동북아역사왜곡 대책 특별위원회’는 2015년 4월 17일 ‘동북아역사지도 편찬사업 관련 논의’를 주제로 회의를 열었습니다. 김세연 위원장(새누리당), 임내현 의원(민주당 간사), 이상일 의원(새누리당), 도종환 의원(민주당) 등 17명이 참여했고, 증인으로 임기환 교수(서울교원대)와 이덕일 소장(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이 출석했습니다. 회의에서 제기된 주요 쟁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고조선(위만조선)의 수도 왕검성을 왜 평양으로 표시했는가?

한나라가 위만조선을 멸망시키고 세운 한사군을 왜 한반도 북부에 위치시켰는가?

4세기 이전 한반도 지도에 왜 신라와 백제가 누락되었는가? 임나일본부설을 정당화하는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에 따른 것은 아닌가?

독도가 왜 지도에서 누락되었나?

담기양의 지도를 수용한 근거는 무엇인가?

 

 

김세연 위원장 주재한 회의는 이덕일 소장의 문제 제기, 임기환 교수의 답변, 그리고 여·야 의원들의 질의 순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아래 내용은 국회 회의 동영상과 속기록을 기반으로 정리한 것입니다.

 

 

패수=청천강, 열수=대동강 비정

 

 

이덕일 소장이 첫 번째로 제기한 지도의 문제점은, 동북아역사지도에서 제시한 고조선·한사군·낙랑군의 위치도가 담기양의 《중국역사지도집》(中国历史地图集, 1955~1988)의 해당 부분과 사실상 동일하다는 점이었습니다. 중국의 동북공정은 이 지도를 근거로 북한 지역이 과거 자국 영토였다고 주장합니다. 고조선의 수도 왕검성(王儉城)의 위치를 가늠하는 패수(浿水)를 청천강으로, 열수(列水)를 대동강으로 각각 비정하고, 한반도 북부에 낙랑군을 배치한 것입니다. 이 소장은 여기에 덧붙여 ‘열수’의 위치에 대해 《후한서(後漢書)》에서 “열수재요동(列水在遼東)”이라 하였음을 근거로, 열수라는 강은 요동에 있었다고 전제하면서 동북아역사지도가 《후한지(後漢志)》나 《삼국지(三國志)》 등 중국 고서의 기록을 충분히 검토했는지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또한 해당 지도가 반영하고 있는 서기 221년~265년의 시기는 중국에서 위·촉·오 3국이 치열하게 각축하던 때인데, 조조의 위나라가 한반도 중부, 즉 경기도까지 지배했다는 논리가 가능한지 따져 물었습니다.

 

 

 

담기양의 '중국 역사지도'(왼쪽)와 '동북아역사지도'에서 비정한 낙랑군의 위치.

 

 

<그림 1>의 담기양 지도와 <그림 2>의 동북아역사지도가 제기하는 중요한 문제는 고조선을 멸망시킨 한나라가 건설했다는 한사군의 핵심인 낙랑군이 두 지도 모두에서 똑 같이 대동강 유역에 제시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특히 낙랑군의 속현(屬縣)이던 조선·패수·증지·점제·열구·누방·사망·둔유·대방·해명·제해 등의 위치가 두 지도 모두에서 동일하게 표기되었다는 점입니다. 담기양의 지도는 일제 식민사학자들이 낙랑의 위치를 대동강 유역으로 비정한 것을 반영한 것입니다. 그것을 동북아역사지도 제작진이 다시 빌어와 고대 한국의 지도라고 ‘역사화’한 것입니다.

 

 

임기환 교수는 “이 지도는 아직 완성된 것이 아니며, 계속 검토·수정하는 과정에 있다. 지적한 부분들은 아직 충분히 정리되지 않았고, 한국 측 입장이 반영되지 않은 것이며, 중국 역사지도를 모방한 것은 아니다”라고 답변했습니다. 무려 7년간 작업한 지도가 중국의 동북공정 지도와 흡사하다는 지적에 대해 “아직 정리되지 않았다”는 설명은 설득력이 부족합니다. 모방한 것이 아니라면 그 증거와 근거를 제시하면 될 일입니다. 그러나 임기환 교수는 이에 대한 추가 자료를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제80주년 광복절 전야제'에서 독립 영웅들의 초상을 하늘에 그려내는 대규모 드론쇼가 펼쳐지고 있다. 윗줄 가운데부터 시계방향으로 홍범도 장군, 김좌진 장군, 남자현 선생, 안중근 의사, 권기옥 선생. 2025.8.14. 연합
 

세로로 그어진 고구려 국경

 

 

이덕일 소장은 또 동북아역사지도에서 초기 고구려 국경선이 상식과 달리 세로로 그어진 것에 강한 의구심을 제기했습니다. “지도 6쪽 ‘고구려의 성장기(120~300년)’를 보면, 고구려와 한나라의 국경선이 세로로 그어져 있습니다. 고대 국경선은 항상 산이나 강을 경계로 설정됩니다. 그런데 이 국경선 바로 위에는 압록강이 있고, 그 북쪽에는 백두산에서 발원하는 장백산맥이 있습니다. 강과 산맥을 가로지르는 국경선이 있을 수 있습니까?”

 

 

임기환 교수는 “저는 장성선(만리장성)을 그린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경계선으로 그린 것입니다”라고 답변했습니다. 즉, 지도에 한반도 내로 뻗어 있는 굵은 선은 담기양이 그린 만리장성이 아니라, 고구려와 한나라의 경계선이라는 주장입니다. <그림 3>의 지도에 만주 북쪽에서부터 한반도 내로 뻗어 있는 굵은 선은 담기양이 그린 만리장성이 아니라, 고구려와 한나라의 경계선이라는 주장입니다.

 

 

그렇다면 담기양은 왜 중국 사서에도 기록되지 않은 비합리적인 지도를 그렸을까요? 그 이유는 고구려의 요동반도 장악을 인정하면 한반도 내 낙랑군과 한사군의 존재를 설정할 수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담기양은 기원전 108년 고조선 멸망부터 서기 314년 낙랑군 멸망까지 한반도 북부가 중국의 식민지였음을 지도에 반영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임기환 교수를 비롯해 동북아역사지도 제작에 참여한 한국 고대사 전공자들이 이러한 배경을 몰랐을 리 없습니다. 이들이 담기양의 지도를 거의 그대로 옮긴 의도는, 고대 중국의 한반도 북부 점령을 ‘확정된 역사’로 지도에 박제하려 한 게 아니냐는 의심을 지울 수 없습니다.

 

 

이덕일 소장은 “왜 이런 지도를 그렸습니까? 고구려가 요동반도를 다 차지했다고 보면, 한반도 내에 낙랑군과 한사군이 존재할 수 없기 때문 아닌가요?”라고 물었습니다. 임기환 교수는 사료적 근거와 제작 이유 대신 “결론의 유사성만으로 식민사관과 동북공정을 추종한다고 매도하는 것은 학문적 태도가 아닙니다. 특히 이병도의 견해와 유사하다고 해서 식민사관 추종자로 표현하는 것은 한국 역사학계를 매도하는 것입니다”라고 답했습니다.

 

 

학문적 양식이란 강변만으로 성립하지 않습니다. 주장의 근거와 논리를 명확히 제시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임기환 교수는 청문회 내내 ‘한국 사학계의 방대한 자료와 한국·중국의 사료’라는 추상적 표현만 반복했을 뿐, 구체적인 사료와 그 타당성을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이덕일과 임기환의 1대1 토론에서 더욱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이덕일: “고구려가 한나라와 국경선을 세로로 긋는 사료적 근거가 무엇입니까?”

임기환: “이 시기 자료를 검토했을 때, 고구려가 경략하고 있던 영역의 교통로를 중심으로 기점을 찾았습니다.”

이덕일: “아니, 그 사료가 대체 무엇이냐는 겁니다. 1차 사료!”

임기환: “《삼국사기》 《삼국지》 자료들입니다.”

이덕일: “고구려 태조왕이 요서에 10개 성을 쌓고, 모본왕이 어양·성곡·북경을 공격한 것은 《삼국사기》와 《후한서》에도 나옵니다. 그것은 인정 안 합니까? 그런데 《삼국사기》에 고구려가 산맥을 가르고 강을 넘어 국경선을 정했다는 근거가 어디에 있습니까? 여기서 바로 자료를 띄워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임기환: “지금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삼국사기》와 《삼국지》 자료를 종합적으로 검토한 결과라고 말씀드리겠습니다.”

 

 

 

​​동북아 역사지도 중 '고구려의 성장 120-300'을 설명한 지도. 요동반도가 중국 영토로 돼 있다.

 

 

고조선과 관련된 ‘패수(浿水)’와 ‘열수(列水)’의 위치 문제는 고대사 연구에서 매우 핵심적인 주제입니다. 고조선과 낙랑 등 한사군의 위치, 고구려와의 접경지역의 위치를 가늠하는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지니기 때문입니다. 두 지명 모두 『사기(史記)』 『한서(漢書)』 『삼국지(三國志)』 등 중국 사서에 등장하며, 주로 한(漢)나라와 위만조선, 낙랑군 관련 사건의 지리적 배경으로 언급됩니다.

 

 

먼저 패수(浿水)의 위치 문제를 살펴보면 중국 역사서인 『사기』 「조선열전」과 『한서』 「조선전」 등에 등장합니다. 기록에 따르면, 기원전 108년 한무제의 고조선(위만조선) 공격 당시 수도 왕검성(王險城) 부근에 ‘패수’가 흐른다고 되어 있습니다. 한나라 군대가 바로 이 패수를 건너 고조선군과 전투를 벌였다고 전합니다.

 

 

민족사학계에서는 박은식, 신채호를 시작으로 최형석, 윤내현 등은 이 중국 사서를 인용하여 고조선과 한사군, 특히 낙랑군이 요동에 있었던 것으로 인식합니다. 반면, 일본 식민사학(이케우치 히로시, 이마니시 류)과 이를 계승한 이병도·신석호 등은 패수의 위치를 현재 북한 지역의 청천강 유역으로 비정합니다. 청천강 설을 받아들이면 왕검성이나 낙랑의 위치는 요동이 아닌 평양 지역이 됩니다. 식민사학에서는 이를 평양 중심설의 근거로 제시, 고조선의 남하 및 축소를 정당화합니다.

 

 

다음은 열수(列水)의 위치 문제입니다. 열수는 낙랑군과 대방군의 경계 하천으로 고구려와의 접경지역으로 주목받는 지점입니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 고구려조, 『수경주(水經注)』 등에 위치 기록이 있습니다. 『후한지(後漢志)』 「군국지(郡國志)」에 따르면 “열수재요동(洌水在遼東)”이라고 하여 열수가 요동에 있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식민사학계와 이병도 등은 평양 인근 대동강 지류를 열수로 주장합니다.

 

 

패수·열수 비정은 단순한 지리 문제가 아니라, 고조선과 한사군, 고구려 초기 활동 무대를 어디로 설정할지에 직결됩니다. 일제 식민사학은 이를 평양 일대로 국한시켜 한사군이 한반도 깊숙이 자리했다는 서술을 정당화하려 했습니다. 이병도를 비롯한 조선사편수회 출신 학자들도 이를 계승하지만, 사료적 뒷받침이 없습니다.

 

 

식민사학은 이 지역에서 출토되는 유물과 유적을 근거로 들지만 분단 이후 유적지 접근과 확인이 가능했던 북한 역사학계에서는 북한 전역의 고분과 유물·유적 발굴을 통해 열수의 대동강, 패수의 청천강 설은 근거가 없다고 수십 년 전에 결론을 내렸습니다. 출토된 한나라나 낙랑 추정 유물·유적이 있다고 해도 그것은 순회 중 사망한 일부 단군의 묘이거나 한나라와의 교역 증거 정도로 평가합니다.

 

 

사라진 백제와 신라

 

 

‘고구려의 성장 120-300년’ 지도는 또 다른 문제점을 보여줍니다. 이 지도에 따르면 서기 300년 전까지 백제는 물론 신라와 가야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쓰다 소키치는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의 기록 모두를 무시한 채, 고구려는 태조왕(재위 53년-146년) 또는 서천왕(재위 270년-292년), 백제는 고이왕(재위 234년-286년) 또는 근초고왕(재위 346년-375년), 신라는 눌지왕(재위 417년-458년) 또는 내물왕(재위 356년-402년) 시기에 건국했다고 주장합니다. 일본 야마토 왜가 4~6세기 한반도 남부 지역을 지배했다는 임나일본부설을 정당화하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일제강점기부터 ‘삼국사기 초기 기록 불신론’을 제기한 쓰다 소키치 등 식민사학자들의 영향이 아닌지 의심이 가는 부분입니다. 이덕일 소장은 청문회에서 이에 대해 강한 문제 제기를 했고, 이에 대해 임기환 교수는 “일본 식민사학자들이 삼국사기 초기 기록을 불신하는 태도를 보였으나 저와 학계는 이를 따르지 않는다. 다만,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는 주변국이나 타민족에 대해 설명하지 않아, 보다 균형 있는 학문적 접근을 위해 다른 문화나 역사를 균형 있게 살펴보는 역사 연구의 흐름이 있다”라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매우 모호한 태도입니다. 자신이 말하는 다른 국가나 민족의 문화와 역사를 어떻게 균형 있고 종합적으로 연구하는지, 그 객관적인 사료적 근거나 기준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함구한 채 ‘객관성’만을 주장합니다. 주장대로 주변국의 역사적 사료를 더 중요하게 판단한다면 경우에 따라서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의 기록이 우선순위에서 배제될 수도 있다는 해석의 여지가 남는 부분입니다.

 

 

 

광복 80주년을 맞아 지난 28일 시민 80명이 독도 동도 선착장에서 가로 30m, 세로 20m 크기의 초대형 태극기를 펼치고 있다. 2025.6.30 [서경덕 교수 제공] 연합
 

끝내 누락한 독도

 

 

국회 청문회를 지켜보던 국민에게 가장 큰 충격을 준 것은 국내 내로라하는 역사학자들이 만든 역사지도에서 독도를 삭제한 대목일 것입니다. 김세연 위원장을 비롯해 여러 의원이 이에 대해 질의했습니다. 임기환 교수는 “독도가 역사지도에서 삭제된 것은 지도 제작 중 기술적인 문제에서 빚어진 단순 실수”라고 수정·보완을 거듭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이후 몇 차례 수정된 지도에서도 끝내 독도는 동북아역사지도에서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김세연 의원(새누리당)은 2017년 6월 14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 도종환 의원(민주당)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이 문제를 다시 제기합니다. 도종환 후보자에게 질의 겸 당부 발언에서 “2015년 4월 동북아역사지도에서 독도가 누락된 이유에 대해 당시 임기환 교수는 이를 제작상의 단순 기술적 실수라고 변명했으나, 이후 조사 과정에서 기술적 실수가 아닌 의도적 누락임이 밝혀졌고, 저와 도종환 의원을 공개 비난했던 한국고고학회 회장 연세대 하일식 교수는 2015년 11월 10일 미디어오늘 인터뷰에서 ‘지도에서 독도 누락은 단순 실수가 아니라 자체적으로 표시하지 않은 것’이라고 실토했다”라고 말했습니다. 또 “지도 제작 과정에서 참고한 49종의 참고 자료 중 이병도 저작이 30종이고, 사실상 중국 문헌 등은 인용하지 않았다. 대단히 폐쇄적인 집단적 의식하에 작성한 것”이라고 지적하며, 장관으로 임명되면 이들의 압력에 굴하지 말라고 당부했습니다.

 

 

동북아역사지도 제작진이 독도를 완전히 배제한 것은 신라 『삼국사기』 지증왕 13년(512년)의 우산국 복속 기록은 물론, 일본 메이지 정부 시절인 1876년 3월 20일 총리실 산하 태정관 지령에서 명시한 “일본해(동해) 내 독도와 열도(울릉도와 독도)는 일본 땅이 아니다”라고 명시한 것도 무시한 처사입니다. 민족적 문제를 넘어 역사학의 기본 기록조차 무시한 것으로 보입니다.

 

 

메이지 정부 태정관은 "독도와 울릉도는 일본땅이 아니다"라고 기록했다. 

 

 

언론의 ‘사이비 역사학자’ 비난

 

 

조선일보, 동아일보, 문화일보, 경향신문, 한겨레 등 주요 언론은 국회 청문회에서 동북아역사지도의 문제점을 제기한 이덕일을 비롯한 재야사학계를 ‘사이비 역사학자’로 규정하며, 청문회에서 제기된 문제점보다 ‘사이비 역사학자들의 망동’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강단사학계의 일방적 주장만을 지면에서 강조했습니다.

 

 

조선일보(2017.6.5)는 “유사역사학에 경도된 사람들의 문제는 … 대화나 토론이 안 된다”고 비난했고, 한국일보(2017.6.5)는 “식민사학이라는 누명 때문에 50억 들여 만들었던 역사 프로젝트가 무산됐다”고 보도했습니다. 경향신문(2017.6.5)은 “낙랑군의 위치가 한반도 서북부였다는 설은 오랜 기간 검증된 통설”이라 했지만, 그 통설의 형성 시기와 근거는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한겨레21 길윤형 편집장(2017.7.6)은 “북한 지역에서 2,600여 기의 낙랑 고분이 확인되어 대부분의 한국 고대사 학자들이 평양 인근으로 비정한다”고 주장했지만, 정작 북한 역사학계는 이를 전면 부인하고 있습니다.

 

 

                                                       리지린의 '고조선 연구'

 

북한의 대표적인 역사학자 리지린은 1963년 평양과학원출판사에서 펴낸 저서 『고조선 연구』에서 한사군이 북한 지역에 존재하지 않았음을 입증했습니다. 또 북한 고고학자 안병찬(安炳燦)은 1995년 『조선고고연구』 제4호에 게재한 논문 「평양 일대 낙랑유적의 발굴정형에 대하여」에서 “일제가 2600여 기의 고분을 발굴했다는 주장은 터무니없이 과장됐을 뿐 아니라 이 발굴 로 해당 지역에 낙랑이 실재했다는 근거를 찾을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기성 언론은 강단 학자들의 일방적 주장에만 의존하며 재야 학계의 주장을 확인하기는커녕 반론 기회도 제공하지 않았습니다.

 

‘사이비’라는 용어로 특정 집단을 공격해 그 사회적 지위를 박탈하려던 시도는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조선총독부가 1923년 ‘사이비 종교 단속령’에서 대종교와 천도교를 ‘사이비’로 규정, 민족정신의 중심을 해체하려던 음모였습니다. 언론이 ‘사이비’라는 용어를 역사 논쟁에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것은 용어 자체의 역사적 맥락을 무시한 것입니다.

 

토론회 발언록서 드러난 '민낯'

 

2011년 7월 6일 대전 유성호텔에서 열린 동북아역사지도 7차 학술토론회에서는 참석자들의 발언이 회의록으로 기록되었습니다. 그 내용이 국회 청문회에서 공개되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노태돈 교수(서울대)는 “기원전 8~7세기에 단군조선은 없었다”고 단언했습니다. 필자는 이 발언을 기원전 108년에 한나라에 의해 멸망한 고조선의 존재가 별것 아니었다는 의미에서 한 발언으로 받아들입니다. 아마도 노태돈은 기원전 8세기 이전에도 고조선의 실체는 없었다고 말하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단군이나 고조선은 신화적 내용으로 간주했기 때문입니다. 노태돈의 스승인 이병도가 그랬고, 이병도의 스승인 일본 식민사학자들이 그러했습니다. 그러나 이병도는 말년에 평생의 학문적 입장을 바꾸어 ‘단군과 고조선은 실재한 역사였다’라고 조선일보(1986.10.9.)에 기고하며 평생 자신의 학설을 뒤집었습니다. 또한 『삼국사기』 『삼국유사』와 같은 한국의 정통 사서를 부정하는 태도입니다. 『삼국유사』는 기원전 2333년을 고조선의 건국으로 기록했고, 『삼국사기』 또한 이러한 내용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1915년 10월, 일제가 한일병합 5주년을 기념해 경복궁에서 연 조선물산공진회 때 근정전 앞에 내걸린 일장기.   나무위키

 

송호정 교수(교원대)는 “요서 지역은 선용(鮮虞)·동호(東胡)의 거주지역으로 보아야 한다”는 발언을 남겼습니다. 고조선의 강역을 요서와 요동으로 구분하고, 동이족을 요동에 국한하는 동시에 동이족을 선용과 동호와는 다른 민족으로 분리하려는 의도를 드러낸 것입니다. 고조선 강역 안에서 민족을 구분한 것은 고조선 자체를 무시하려는 의도라고 보입니다.

선용은 중국 전국시대(기원전 5~3세기)에 산서성 북부와 하북성 서부 일대에서 존재했던 소규모 제후국입니다. 또 동이(東夷)족은 중국이 자국 동쪽과 동북쪽의 여러 종족을 통칭한 명칭으로, 바로 한국인의 선조입니다. 『사기』, 『후한서』와 『삼국지 위서 동이전』은 일부 구절에서 동호를 동이족 범주 안에 넣어 설명합니다. 선용은 동호 문화권의 한 소국, 동호는 동이의 한 갈래로 간주될 수 있는 집단이라는 구조로 연결됩니다. 송호정의 발언은 우리 민족 선조의 구조와 범위를 의도적으로 축소·왜곡하려는 의도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임기환 교수는 한발 더 나아가 “동아시아 문화지도를 제시하여 고조선의 특별성을 약화시키자”고 제안했습니다. “동부여의 범위를 훈춘 중심으로 최대한 축소하자”라고도 주장했습니다.

 

이 회의록에 기록된 임기환의 발언은 국회 동북아역사특위 토론회에서 질책을 받았습니다. 이상일 의원(새누리당)을 비롯한 여러 의원이 임기환이 말한 ‘고조선의 특별성을 약화시키자’는 발언의 의도를 물었습니다. 임기환 교수는 “자신의 발언은 고조선의 격을 낮추자는 것이 아니라, 다른 주변국과 보다 균형 있게 해석하자는 의도였다”고 해명했으나, 의원들의 질책을 잠재우지 못했습니다. 자국의 역사적 특수성을 부각하지 못할망정, 그 특별함을 낮추자는 발언은 상식적으로 판단해도 매우 부적절한 발언입니다. 어쩌면 국회의 공청회 개최에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 회의록에 담긴 내용이 의원들에게 제출된 까닭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역사적 정체성을 부정하고, 한민족 범위를 축소하며, 자국을 침략한 타국 침략자를 미화하는 의식 구조를 보여준다는 의혹을 받기에 충분한 발언들입니다.

 

2021년 5월 항소심 판결에 따라 동북아역사지도 사업은 공식 종료되었습니다. 서강대와 연세대는 교육부와 동북아역사재단의 연구비 환수 조처에 반발해 소송을 진행했습니다. 그런데 교육부와 동북아역사재단 측이 소송전에 돌입하면서 요청한 환수액을 국고로 지원한 47억 원이 아닌 10억 원으로 정했습니다. 처음부터 환수액 전체가 아닌, 불과 1/4 수준에서 출발했습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입니다.

 

결론은 이렇습니다. 1심 결정 금액을 수용한 서강대는 1,600만 원을 반환했고 연세대는 1심 결정액 4억 5000만 원을 항소심에서 48만 4000원으로 낮췄습니다. 동북아역사재단이 상고를 포기함에 따라 확정된 반환 금액입니다. 47억 원 예산에 비하면 환수액이 채 1%도 되지 않았습니다. 애초 교육부와 동북아역사재단이 연구비를 회수하겠다는 의지가 거의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교육부와 동북아역사재단이 동북아역사지도 내용에 사실상 동의했으나, 국회의원들의 완강한 비판에 밀린 결과라는 인상마저 줍니다. 국회와 재야 학자의 비판이 없었다면 이 역사지도는 버젓이 교과서에 실리고 ‘국가 인증 역사 기록물’이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윤석열 정부가 지속되었다면, 광복 80주년을 맞은 2025년에 역사기관장들을 통해 교과서 개편을 시도했을 것입니다. 좌초된 동북아역사지도 결과물이 부활하여 “고대 한반도는 중국·일본의 식민지였다” “한국은 원래 여러 부족 국가가 분열된 약소국이었고, 고대 문명은 외부 영향으로 생겼다”는 식의 친중·친일 사관이 교과서에 실리는 불상사가 벌어졌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민주공화정을 수호하기 위해 나선 ‘빛의 시민’들의 힘으로 이러한 흐름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역사를 둘러싼 혼란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그들만의 역사 카르텔 구조를 바꾸어야 합니다. 뉴라이트 세력과 그들의 역사관에 대해 역사적 책임을 명확히 하고, 공적 검증과 평가를 거쳐야 합니다. 식민사학의 뿌리를 재점검하고 민주 시민의 정체성이 굳건한 건강한 역사로 바로잡아야 합니다. 광복 80주년을 맞은 우리 모두의 공동 과제입니다.

 

오세훈 서울 시장과 독립유공자 후손, 어린이 합창단원 등 참석자들이 15일 서울 종로구 보신각에서 열린 '제80주년 광복절 기념 타종행사'에서 만세삼창을 외치고 있다. 2025.8.15. [공동취재] 연합

 

사건 연표

2008년: 국고 47억 원 확보, 역사지도 사업 시작

2012~2014년: 지도 초안 제작 및 내부 검토

2015년: 초안 공개, 낙랑군·독도·임나일본부설 등 왜곡 지적

2016년 4월: 국회 관련 회의 개최, 제작 책임자 증인 출석

2016년 하반기: 최종 지도 ‘D등급’ 평가, 사업 종료 및 일부 비용 환수 결정

2017년 이후: 부당 집행 연구비 환수를 위한 소송 시작 (원고: 동북아역사재단, 피고: 서강대·연세대)

2019년: 1심 판결 반환액 연세대 4억 5천여만 원, 서강대 1600만 원

2021년 5월: 항소심 판결 연세대 48만 4000원. 동북아역사재단의 상고 포기로 확정

 

참고자료

국회 속기록, 『동북아역사특위 국회 청문회, 2015.4.17.

동북아역사지도+국회+토론회 유투브 방송.2015,7.17.

박성현, 『고조선 고고학과 동이족 연구』, 소명출판, 2021.

안병찬, 「평양일대 낙랑유적의 발굴정형에 대하여」, 『조선고고연구』 제4호, 사회과학원 고고학연구소, 1995.

이덕일, 「이덕일의 역사의 창: 계속되는 역사전쟁」,《서울신문》,2017년 7월 8일

조선일보, 「유사역사학에 경도된 사람들의 문제~」, 2017.06.05.

한국일보, 「식민사학이라는 누명~」, 2017.06.05.

경향신문, 「낙랑군의 위치가 한반도 서북부였다는 설은 역사학계의 통설」, 2017.06.05.

한겨레21, 「북한 지역에서 진행된 고고학 발굴 결과 낙랑 고분이 확인된다~」, 2017.07.06.

 
 
 

 

윤석열이 임명한 뉴라이트 인물
천안 시민들 “부끄럽다, 사퇴하라”

 
김형석 독립기념관장이 광복 80주년 기념식에서 발언하는 모습. 독립기념관 유튜브 갈무리

 

뉴라이트 역사관 논란을 일으켜온 김형석 독립기념관장이 광복 80주년 기념식에서 역사 전쟁을 끝내고 국민통합으로 나가자면서 “광복은 연합군 승리로 얻은 선물”이라고 주장했다.

 

김형석 관장은 15일 충남 천안 독립기념관 겨레의집에서 열린 광복 80주년을 축하하는 ‘겨레의 빛’ 기념식에서 “광복을 세계사적 관점에서 보면 연합국의 승리로 얻은 선물”이라고 했다.

 

김 관장은 함석헌 선생의 ‘뜻으로 본 한국 역사’에 ‘해방은 하늘이 준 떡’이라는 구절이 나온다면서 “이같은 해석은 독립전쟁 승리로 광복을 쟁취했다는 민족사적 시각과 배치되는 것처럼 보인다”고 했다.

 

김 관장은 이어 윤봉길 의사가 일본 전승 기념식장에 폭탄을 투척하기 전 두 아들에게 남긴 유서에는 ‘너희들은 아비 없음을 슬퍼하지 말고 열심히 공부해 에디슨 같은 발명가가 되어라’라고 적혀 있다’며 “자기 목숨을 희생하면서도 아들은 과학자가 되기를 소망했던 것처럼 역사의 이면에는 다양성이 존재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오천년의 역사를 공유한 대한민국 국민은 역사를 이해하는 데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지만 그 다름으로 국민을 분열시키는 정쟁의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며 “이제는 역사 전쟁을 끝내고, 그 바탕 위에서 국민 통합을 이루고 통일로 나가자”고 주장했다.

 

김 관장의 이날 기념사는 독립운동의 역할을 폄훼하고 ‘연합국의 승리로 해방이 이뤄졌다’는 뉴라이트 사관을 교묘하게 주장하면서, 그것을 마치 ‘국민통합’인 것처럼 포장하고 있다. 그는 광복 80주년을 맞이한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최우선 과제가 ‘국민 통합’이라면서 “사회 갈등에는 역사 문제가 한몫 차지하고, 광복에 관한 역사 인식의 다름이 자리하는 것이 사실”이라고 했다. 광복에 대한 뉴라이트 사관도 인정하는 것이 국민통합인 것처럼 합리화한 것이다. 윤봉길 의사가 의거 전 아들에게 유언을 남긴 것을 ‘역사의 다양성’으로 억지로 끼워맞추기도 했다.

 

윤석열 정권 시기인 지난해 8월 임명된 김형석 관장은 친일파 인사들의 명예회복 주장과 백선엽 장군 옹호 발언, 광복절 부정 발언 등으로 논란이 됐다. 지난해 윤석열 전 대통령의 임명으로 관장에 취임한 뒤에 독립기념관은 아예 광복절 경축식을 취소하기까지 했다. 독립기념관이 광복절 경축식을 하지 않은 건 지난해가 유일했다.

 

이날 독립기념관 앞에선 김 관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시민사회단체의 집회가 열렸다. 이날 시민들은 ‘친일 미화, 뉴라이트 사퇴하라’ ‘뉴라이트 식민사관, 천안 시민이 부끄럽다’ 등이 적힌 손팻말을 들고 김형석 관장의 퇴진을 요구했다. 참가자들은 김 관장이 자신의 식민사관을 다양성으로 합리화하는 것은 적반하장이라며, 광복 80주년을 맞은 이때 왜곡된 역사 인식을 갖고 있는 인물이 독립기념관장에 있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김형석 관장은 수차례 ‘법적으로 보장된 임기 동안 독립기념관장 직을 수행하겠다’는 뜻을 밝혀왔다. 김형석 관장의 임기는 오는 2027년 8월5일까지다.        < 박민희 기자 >

전현직 '군복 관료'들 이번에도 전작권 환수 난색?

● COREA 2025. 8. 16. 00:36 Posted by 시사한매니져
 

정보 · 감시 · 정찰 타령…20년 전 반대논리와 판박이
"지휘권도 없는 군대서 별 달고 거들먹거릴 것인가"

새 정부 '임기 내 환수' 다짐, 단호한 의지엔 온도차
안보 환경 · 미국 전략 변화·환수 준비 3박자 갖춰
ISR 강화도 완숙 단계, 기왕의 계획대로 하면 될 일

 

"참여정부 초기 국방부를 찾아 협력적 자주국방을 설명했다.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의지를 강조하자 고위급 장성들이 깜짝 놀랐다. 일제히 우려를 표하며 말 그대로 사시나무 떨 듯했다. 그런데 몇 달 뒤 다시 국방부를 찾아가 보니 같은 인물들이 이번엔 일제히 '가능하다'고 하더라. 두 번 놀랐다."

 

'대한민국 수호 예비역 장성단 모임'과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모임'이 25일 헌법재판소 앞에서 남북군사합의서 위헌 헌법소원 제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19.6.25

 

노무현 정부 국가안보회의(NSC) 핵심 당국자의 전언이다. 군복을 입었을 뿐 '하던 대로' 일하면서 밥을 버는 데 익숙한 관료적 사고의 단면이 엿보인다. '국가'를 중심에 놓고 국익을 따지기보다 '관행'에 푹 젖어 있다. 그러다가도 권력의 의지가 분명한 것 같으면 슬쩍 줄을 바꿔 선다. 오래전에 접한 말이 다시 떠오른 것은 20년의 시차를 두고 비슷한 상황이 재연되고 있기 때문이다.

 

국정기획위원회가 13일 발표한 외교안보 국정과제의 하나로 '임기 내 전작권 전환'을 명토박았다. 국정기획위가 건의하고, 정부가 국민께 보고하는 형식을 빌었다. 수십 년 동안 '지체된 정상화'라는 점에서 관심이 집중된다.

 

국산 '군복 관료'들은 이번에도 어슷비슷한 반응을 보였다는 전언이다. 12.3 내란 수괴 피의자 정부가 임명한 국방부 고위직들이 대부분 남아 있는 상황을 고려하더라도 이들의 유전자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학습효과를 새삼 확인하게 한다. 반대 또는 우려의 근거도 2006년과 거의 비슷하다. 바로 우리 군의 정보·감시·정찰(ISR) 역량이 부족하다는 것.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 군의 전투 역량이 부족하다는 말은 하지 못했고, 지금도 못한다. "미군 사령관의 지휘 아래서 계속 머물고 싶다"는 속내도 차마 드러내지 못한다. 유사시 전장에서 '눈'에 해당하는 ISR이 약하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

 

23일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 생태문화공원에서 노무현 대통령 15주기 추도식이 열리고 있다. 2024.5.23

 

20년 가까이 막대한 혈세를 쏟아부어 국민이 높여준 '시력'을 스스로 평가절하하는 태도가 아닐 수 없다. 한국은 그동안 북한 전역을 실시간 감시할 수 있는 고고도 장기체공 무인정찰기 글로벌호크(RQ-4)를 4기 도입했고, 군사 정찰위성을 4기 운용하고 있다. 올해 안에 쏘아올릴 5호기가 운용되면 북한 주요 지점을 2시간 마다 감시가 가능해진다. 2030년까지 50~60기의 초소형 위성을 발사, 한반도 재방문 주기를 30분으로 단축할 계획도 장전돼 있다. ISR은 미사일방어·킬체인·대량응징보복의 3축방어체계에도 필요하기에 진보·보수 정부를 막론하고 능력을 키워왔다. 앞으로도 투자와 대비가 필요하겠지만 ISF를 중심으로 전작권 이행 초기 미국의 보완전력(bridging capability)에 절대적으로 의지해야 했던 과거의 국군이 아닌 건 분명하다.

 

안보 전문가 사이에서도 "국방부가 기밀에 붙이고 있지만 이미 마련해놓은 ISF 역량 강화 일정대로 필요한 무기·장비·시설을 도입하면 이재명 정부 임기 내 필요한 조건을 충족할 수 있다"는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다. 이재명 정부 출범 전에 이미 준비 작업이 완숙단계에 접어들었음을 말해준다.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7월 15일 인사청문회에서 전작권 전환 시 예상되는 국방비 증가액을 "21조(원) 정도로 판단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23일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을 방문해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에서 헌화하고 있다. 2025.5.23 연합
 

전·현직 '군복 관료'들은 국군이 미군 망토 안에 계속 있어야 한다는 퇴행적 강박관념에 포획된 기성 언론의 엄호를 받고 있다. 이번에도 언론과 함께 공포를 유포하는 정황이 포착된다. "위험천만한 주장"이라거나,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 전작권 전환은 곧 한미동맹의 와해로 이어진다"고 주장한다. 군사주권 회복 염원을 '감정의 문제'라고 폄하하면서 자신들의 '의존 근성'이 과학인 양 우긴다. "(한국군을 포함해) 75만 명의 병력이 내 휘하에 있다"라는 미군 사령관의 말이 이들에겐 지극히 편안한 자장가로 들리는 듯하다.

 

2006년과 2025년은 환경이 다르지만, 당시나 지금이나 미국의 국방전략 변화가 주한미군 역할 변경(전략적 유연성) 및 전작권 전환의 계기를 제공했다. 전작권 문제가 국방주권 확보를 위한 정신적 승리 차원에서 돌출한 게 아니라는 말이다. 미국 또는 주한미군의 변화에 맞서는 방안의 하나로 한미가 합의한 사안이다. "미국이 한국처럼 부자나라를 그동안 공짜로 지켜주었다"라고 우기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조지 부시 행정부보다 훨씬 현상 변경 의지가 강하다. 구조조정 대상이 된 주한미군 사령관이나 미육군 입장에선 '고정된 항공모함'에 지상군 전력과 지위를 유지하는 게 좋겠지만, 백악관 차원의 의지를 뒤집지 못한다. 주한미군은 상징적인 인원만 남아도 미국의 국익에 충분히 봉사할 수 있다.

 

안규백 국방부 장관이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이재명 대통령 주재로 열린 국무회의를 시작하며 신임 국무위원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25.7.29. 연합

 

최근엔 군복관료와 보수언론의 견고한 동맹에도 균열이 보인다. 주한미군 무용론 또는 현실론을 인정하고 나서는 조짐이 포착되는 것. 주한미군 스트라이커 여단은 순환근무로 반 주둔·반 철수 상태이며 한국 공군의 화력이 미7공군에 비해 5~10배의 화력을 갖고 있음을 확인한다. (조선일보 양상훈 칼럼) 미국이 북한 미사일의 사거리 안에 있는 한국 기지에 육군 병력이나 최첨단 전투기를 둘 이유가 없음도 짚었다. 북 도발은 우리가 막는 수밖에 없으며 그게 현실임을 인정했다. 물론 객관적 상황 변화를 짚으면서도 한계는 뚜렷했다. 한미가 함께 중국과 싸우자는 말인지, 주한미군의 전력 약화가 아쉽다는 말인지 당최 종잡을 수 없는 결론에서 '이른바 보수'의 고민을 대변한다.

 

모두에 소개한 전작권 환수에 대한 군복관료들이 입장을 바꾼 건 권력의 풍향에 민감한 속성을 말해준다. 그들도 대통령의 강한 의지를 넘지 못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3년 광복절 축사에서 처음 발표한 뒤 기회 있을 때마다 전작권 환수를 다짐했고, 끝내 미국과 합의를 이뤄냈다. 이재명 정부 역시 '임기 내 전작권 전환'을 국정과제로 보고했지만, 대통령의 의지는 다소 온도 차가 있어 보인다.

 

안 장관이 인사 청문회에서 환수 시기를 '정부 임기 내'로 밝히자 대통령실은 "시한을 대통령실이 정한 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이재명 대통령은 국민보고대회에서 "국정위 계획안은 확정된 정책이 아니다. 다양한 경로로 국민과 각계각층 의견을 수렴해 얼마든지 수정될 수 있다"고 말했다. 오는 25일 첫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구체적인 안보 현안에 대한 언급을 최소화하려는 조심성으로 읽힌다.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이 지난 4월 10일 상원 군사위 청문회에서 "김정은이 남침할 것으로 보나"라는 앵거스 킹 상원의원의 질문에 "그러지 않을 것 같다"라고 답하고 있다.  2025.4.10. [미상원 군사위 누리집] 시민언론 민들레 

 

안보환경의 변화와 미국의 국방전략 전환, 우리 군의 준비 태세 등 전작권 환수 조건이 무르익었다. 한국군이 능력을 갖췄으면서도 미군에 의존하려는 걸 두고 '유치원에 다니는 대학원생(미 군사전문가, 랄프 코사)'이라는 비아냥이 나온지도 오래다. '빛의 혁명'으로 12.3 내란이 차단된 덕분에 출범한 국민주권정부다. 미국과의 협의는 조용히 진행하더라도 적절한 계기에 보다 확고한 환수 의지를 밝힐 필요가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2006년 12월 27일 국방부·군 수뇌부 청와대 오찬 간담회에서 이에 반대하는 예비역 장성들의 태도를 비판하며 내놓은 일갈은 여전히 유효하다.

 

"자기 나라 군대 작전통제 한 개도 제대로 할 수 없는 군대를 만들어 놓고, 나 국방장관이오, 나 참모총장이오 그렇게 별 달고 거들먹거리고 말았다는 얘기냐.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 김진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