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협 모든 책임 정부에 특단 조처

정부 국민동의 선행 기존 입장 유지

 

최대집 대한의사협회장이 지난 22일 오후 서울 대한의사협회 용산임시회관에서 열린 독감예방접종 사망사고 관련 긴급 기자회견에서 의협 권고문을 낭독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7일 대한의사협회(의협)가 의대 본과 4학년 학생들의 의사 국가고시 재응시와 관련해, 28일까지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특단의 조처를 취하겠다고 밝혔으나, 정부는 국민 동의가 선행돼야 한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손영래 보건복지부 중앙사고수습본부 전략기획반장은 28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정례 브리핑에서 의사 국가시험 문제에 대해서는 국민적인 동의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기존 입장에서 변함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전날인 27, 의협과 범의료계투쟁위원회는 복지부와 의정협의체 구성을 위한 실무협의를 벌였지만, 국가고시 재응시와 관련해 이견을 좁히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의협은 회의 뒤 밤늦게 입장문을 내어, “당장 의료현장의 어려움이 예고되는 가운데 국민들의 염려와 불안이 커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아직 정부가 해결에 나서지 않고 있다우리가 예고한 대로 이 문제에 대해 정부가 28일까지 뚜렷한 해결책을 내놓지 않는다면, 정부의 해결 의지가 없는 것으로 간주할 수밖에 없다. 향후 이로 인해 벌어질 모든 상황에 대한 책임은 정부쪽에 있음을 분명히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와 관련해, 손영래 반장은 어제 의협과 실무회의에서 94일 합의에 따른 의정협의체 운영방안 논의를 제안하려고 했는데, 의협 쪽에서 먼저 국시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의정협의체 구성을 전제 조건으로 국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조속히 의정협의체가 운영되도록 (의료계를) 설득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손 반장은 국시 재응시가 의정협의체에서 논의될 수 있냐는 질문에 의대 정원 확대를 비롯해 공공의대 신설 문제, 지역 의료지원책 등 사전에 합의한 의정협의체 안건에 의대생 국시 문제는 해당하지 않는다서로 간 합의서를 통해 이미 명기돼 있는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대한전공의협의회는 이날 오후 의협이 국시와 관련해 대책 마련을 촉구한 것과 관련해 의협과 협조해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대책을 수립할 것이라며 정부는 전공의와 의사들을 더는 거리로 내몰지 않기를 바란다는 입장을 냈다. 권지담 기자

국회 시정연설서 첫 선언, 탈석탄 · 재생에너지 확대 재확인

세계 70여개국 탄소중립 선언환경단체 이행계획 나와야

 

국제사회와 함께 기후변화에 적극 대응하여, 2050년 탄소 중립을 목표로 나아가겠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28일 오전 내년도 예산안 제출 국회 시정연설에서 ‘2050년 탄소 중립을 이루겠다고 선언했다. 탄소 중립은 온실가스 배출량과 제거량이 상쇄돼 순배출량이 ‘0’이 되는 상태다. 국회 본회의장에선 여당 의원을 중심으로 기립박수가 나왔다. 지난달 더불어민주당, 국민의힘, 정의당 국회의원 252명은 2050년 탄소 중립을 담은 초당적 기후위기 비상선언 결의안을 통과시켰었다.

국회에 이어 한국 정부도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분명히 밝히면서, 이미 같은 선언을 한 세계 70여개 국가와 기후위기 문제 대응 인식을 같이하게 됐다.

문 대통령은 이날 시정연설에서 정부는 그동안 에너지 전환 정책을 강력히 추진해왔지만 아직도 부족한 점이 많다며 이렇게 밝혔다. 이어 석탄발전을 재생에너지로 대체해 새로운 시장과 산업을 창출하고 일자리를 만들겠다며 탈석탄과 재생에너지 확대라는 에너지 전환 원칙을 거듭 확인했다.

문 대통령은 또 그린뉴딜에 8조원을 투자한다노후 건축물·공공임대주택 친환경 시설 교체 도시 공간·생활기반시설 녹색전환 전기·수소차 116천대 확대 보급 전기·수소차 충전소 건설 및 급속충전기 증설 저탄소·그린 산단 조성 지역 재생에너지 사업 금융지원 확대 등에 국회 협조를 구했다.

앞서 정부는 지난 7월 기후위기 문제에 대응하고 경제 성장을 이끄는 한국형 뉴딜의 한 축으로 그린뉴딜 정책을 발표하며 전기·수소차와 재생에너지 보급 확대 등 에너지 전환 계획을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석탄발전 퇴출을 분명히 하지 않아 환경단체로부터 무늬만 그린뉴딜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환경단체들은 이날 문 대통령의 탄소 중립 선언을 일제히 환영하면서도 구체적 이행계획을 요구했다. 세계적으로 탄소 중립을 추구하는 국제동맹에 70여개 나라가 참여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온실가스 감축 계획서를 제출한 국가는 17개에 불과하다. 특히 탄소 중립계획서를 제출한 나라는 유럽연합, 마셜제도, 피지, 포르투갈, 코스타리카, 슬로바키아, 남아프리카공화국, 핀란드 등 8곳에 그친다.

문 대통령의 ‘2050년 탄소 중립선언은 최근 스웨덴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17)<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문 대통령에게 기후위기 문제에 행동으로 나서달라며 호소한 것에 대한 응답으로도 볼 수 있다. 툰베리는 문재인 대통령이 내가 하는 일을 존중해준다고 들었다. 그렇다면 (행동으로) 증명해달라. 행동이 말보다 훨씬 의미 있다고 말했다. 최우리 기자

 

기후위기 국제대응 동참 석탄발전 중단 힘 받을 듯

최대 75% 감축서 진일보, 온실가스 감축논의 재점화

 

20176월 삼척석탄화력발전소건설반대범시민연대 등 강원 삼척지역 주민들이 청와대 인근 서울 신교동 푸르메센터 앞에서 집회를 열어 삼척 적노동에 계획된 포스파워 석탄화력발전소 건설 백지화를 촉구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282050년까지 온실가스 순배출량을 ‘0’으로 줄이는 탄소중립을 선언한 것은 기후위기라는 전지구적 문제 해결에 한국도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동참해야 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다만 산업·수송 등 사회 전체의 대변혁이 필요하기 때문에 국내 반대 여론 설득과 예산 투자를 통해 구체적인 정책과 법제화까지 이어져야 한다는 과제가 남았다.

2050년 탄소중립 선언은 지난 1년 기후위기 문제의 심각성을 강조해온 시민사회와 국회, 여론의 요구에 따른 측면이 크다. 환경부가 발족한 ‘2050년 저탄소 사회 비전 포럼2017년 한국 배출량(7970t) 기준 2050년까지 최대 75%까지만 감축한다는 초안을 지난 2월 정부에 제출해 비판을 받았다. 탄소중립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4월 총선에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공약으로 ‘2050년 탄소중립을 내세웠고, 지난달에는 민주당뿐 아니라 국민의힘·정의당 의원 등 252명이 2050년 탄소중립을 담은 기후위기 비상선언 결의안을 통과시키며 분위기가 달라졌다. 지난여름 역대 최장기간 장마를 거치며 기후위기에 대한 시민들의 문제의식이 높아진 것도 영향을 미쳤다. 한중일 3국 중에 한국만 홀로 대열에서 빠진 것도 부담이 된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중국이 2060년까지 탄소중립을, 지난 26일에는 일본이 2050년 탄소중립을 선언했다.

이번 선언으로 국내 석탄발전 퇴출 속도가 빨라질지 주목된다. 문 대통령은 석탄발전을 재생에너지로 전환하겠다고 다시 한번 확인했다. 2050년 탄소 순배출량을 ‘0’으로 만들려면 화석연료에 의존한 석탄발전은 더이상 가동이 불가능해진다. 신규 석탄발전소는 산업통상자원부가 정한 수명(30)보다 먼저 가동을 중단해야 한다. 건설 중단, 조기 폐쇄 등의 주장이 힘을 받게 된다. 5월 정부가 발표한 9차 전력수급기본계획(2020~2034) 초안을 보면, 2030년께 한국의 석탄발전은 전체 발전량의 31.4%로 재생에너지 비중(20%)보다 높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석탄발전의 순차적 폐지를 약속했지만, 강릉 안인 1·2호기, 삼척 1·2호기 등 7기의 석탄발전소는 2021~2024년 신규 가동을 시작한다.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정책위원은 탄소중립이 되려면 이들 석탄발전소를 그대로 둘 수 없다고 말했다.

올해 안으로 유엔에 제출해야 하는 203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에 대한 논의도 재점화할 수 있다. 앞서 문재인 정부는 박근혜 정부 시절 정해두었던 기존 목표를 그대로 유지하기로 해 논란이 됐다. 국제사회가 요구했던 ‘2010년 배출량의 45%’보다 훨씬 적은 18.3%에 그치는 양이다. 정부는 5년 뒤인 2025년 수정안을 다시 제출할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환경단체는 다음 정부로 책임을 돌렸다고 비판한다. 환경 전문가들은 2030년 이전에 온실가스 배출량을 큰 폭으로 줄이지 못하면 2050년 탄소중립 목표는 실현하기 어렵다고 본다. 문 대통령의 탄소중립 선언으로 ‘2030년 기존 목표도 수정할 가능성이 있느냐는 질문에 환경부 고위 관계자는 올해 말 유엔에 제출하는 감축 목표에 반영하는 것이 어려우면, 다음 제출 시기인 2025년에 수정된 목표를 제출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최우리 김정수 기자

 

문대통령 '탄소중립' 선언에 유엔 총장 "매우 고무된다"

 

문재인 대통령의 28'탄소 중립' 선언에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이 즉각 환영의 뜻을 밝혔다.

스테판 두자릭 유엔 대변인은 별도의 성명을 내 "사무총장은 2050년까지 '제로 배출'을 달성하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약속에 매우 큰 힘을 얻었다"고 말했다.

두자릭 대변인은 "이는 지난 7월 발표된 한국의 모범적인 '그린 뉴딜'에 이어 올바른 방향으로 가는 매우 긍정적인 발걸음"이라고 극찬했다.

그는 "이번 발표로 세계에서 11번째로 큰 경제국이자 6번째 수출 대국인 한국은 2050년까지 지속 가능하고 탄소 중립적이며 기후가 회복되는 세계를 만드는 데 솔선수범하는 주요 경제국 그룹에 합류했다"고 평가했다.

두자릭 대변인은 "사무총장은 이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구체적인 정책 조치들이 제안되고 이행되기를 고대하고 있다""여기에는 한국이 개정된 2030 온실가스 국가감축목표(NDC)를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 제때 제출하는 것도 포함된다"고 당부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2021년도 예산안 제출 시정연설에서 "국제사회와 함께 기후변화에 적극 대응해 2050년 탄소 중립을 목표로 나아가겠다"며 석탄발전을 재생에너지로 대체하는 등의 구체적인 목표를 제시했다.

 

한전 "앞으로 해외 석탄화력발전 사업 안 한다" 선언

인도· 베트남 사업은 계속 추진, 나머지 2건은 재검토

 

한국전력은 28일 앞으로 신규 해외 석탄화력발전 사업을 추진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한전은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이같이 밝힌 뒤 "앞으로 해외 사업을 추진할 때 신재생에너지, 가스복합 등 저탄소·친환경 해외 사업 개발에 집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다만, 현재 진행 중인 4건의 해외 석탄화력발전사업 가운데 인도네시아 자바 9·10, 베트남 붕앙2 사업은 상대국 정부와 사업 파트너들과의 관계, 국내기업 동반 진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계속 추진하기로 했다.

나머지 2건은 LNG 발전으로 전환하거나 중단하는 방향으로 재검토 중이라고 한전은 설명했다.

이를 통해 2050년 이후 한전이 운영하는 해외 석탄화력발전사업은 모두 종료될 것으로 예상했다.

한전은 이런 방침을 2020년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 반영해 주주 및 이해관계자들에게 앞으로 한전의 친환경 발전 방향을 분명히 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 강화와 지속적인 추진을 위해 이사회 산하에 'ESG 추진위원회'를 설치할 방침이다.


김 전 법무차관  1심 무죄2심선 대가성 인정 징역 26개월
10년전 뇌물 4천여만원포괄일죄’ “성폭력은 아무도 책임안져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이 4천여만원 뇌물 혐의로 항소심에서 법정구속됐다. 그러나 성접대 뇌물 무죄는 공소시효의 벽을 넘지 못하고 처벌이 어렵다는 판단이 유지됐다. 성범죄는 처벌할 수 없었던 미완의 단죄인 셈이다.

서울고법 형사1(재판장 정준영)1심과 달리 유죄로 판단한 부분은 김 전 차관이 건설업자 최아무개씨에게서 2000~2011년에 받은 5100만원 뇌물 중 4300만원 부분이다. 특히 2009~2011년 김 전 차관이 최씨에게 차명 휴대전화를 받고 174만원의 요금을 대납하게 한 사실이 유죄로 인정된 것이 1심 판단을 뒤집는 중요한 근거가 됐다.

검찰은 김 전 차관이 약 12년간 최씨한테서 금품을 받은 것으로 보고 이를 포괄일죄로 기소했다. 연속적으로 일어난 행위를 하나의 범죄로 묶어, 2011년 시점의 범행이 유죄로 인정되면 공소시효 10에 걸리지 않고 유죄를 받아낼 수 있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직무관련성과 대가성을 인정할 증거가 부족하다며 휴대전화 요금 대납 부분에 무죄를 선고했다. 가장 마지막 시점(2011)의 범행이 무죄가 되는 바람에 2009년까지의 범행은 공소시효가 지나 면소가 된 것이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2011년 휴대전화 요금 174만원의 대가성을 인정하며 나머지 4천여만원 뇌물 사건도 살려냈다. “(김 전 차관이) 경제적 이익을 제공받을 당시 시행사 업자였던 최씨는 알선 사항에 대해 막연한 기대감을 가진 것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구체적 기대감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이날 법정에서 검사와 스폰서관행이 완전히 사라진 건지 물으며 각성을 촉구했다. 재판부는 “10년 전 피고인의 뇌물 수수 행위에 대한 단죄에서 그치지 않고, 사회적 문제가 된 스폰서 관계가 2020년 검찰에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가라는 질문도 던지고 있다고 말했다.

1심에서도 공소시효 문제로 면소 처분됐던 성접대 혐의 판단은 항소심에서도 달라지지 않았다. 성접대 뇌물 혐의도 10년이라는 넉넉한 공소시효가 존재했지만 검찰은 2013~2014년 두차례 수사를 진행하며 사건을 무혐의 처분했다.

2018년 검찰과거사위원회의 권고로 20193월에야 뒤늦게 재수사가 시작됐고 세번의 수사 끝에야 김 전 차관을 기소하게 된 건 지난해 6월이었다.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가 소극적 수사로 이어지고 결국엔 공소시효 만료로 처벌을 할 수 없게 된 셈이다.

한국여성의전화는 이날 논평을 내어 김학의를 포함한 당시 사회 권력층이 자행한 반인권적인 성폭력 범죄에 대해서는 아직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다며 유감을 나타냈다. ‘김학의-윤중천 성폭력 사건피해자 공동 대리인단 이찬진 변호사는 “(김 전 차관이) 지은 죄에 대한 일부 판단이 이제서야 이뤄지고 있다성폭력 피해 여성 관점에서는 아직도 정의를 세울 길은 멀어 보인다고 말했다. 검찰과 김 전 차관 쪽은 모두 상고하겠다고 밝혔다. 장예지 기자


삼성 고위직 유언장 존재, 들어본 적 없다회장 유언장·유언은 거론 자체 금기

삼성·현대차·SK·LG·롯데·한진 별세 회장들 대부분 생전에 유언장을 남기지 않아

유언장 부재상속·경영권 분란 흔치 않아 남긴 유언이 가족들간 분쟁 초래도

 

25일 타계한 고 이건희(78) 삼성전자 회장이 과연 유언장 혹은 유언을 남겼을까? 삼성그룹 전·현직 사장급 3명에게 물어보니, 유언장이나 유언에 대해 한결같이 전혀 들어본 적이 없다며 유언장을 만들어 남겼을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말했다. 6년 넘게 병상에 머물러 있었을 때는 의식이 전혀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유언을 남길 수 없었을 것이 분명하고, 20145월 급성 심근경색으로 갑자기 쓰러지기 전에 유언장을 미리 작성해뒀다는 얘기는 금시초문이라는 얘기다. 재벌기업 회장들의 유언장이나 유언의 존재 여부는 가족의 일이라서 입에 담는 자체가 금기시되는 극비 사항이지만, 재벌 회장이 별세할 때마다 승계자 지목과 재산배분·상속 등을 둘러싸고 가족은 물론 그룹 안팎, 나아가 세간에 관심의 초점으로 등장하기 마련이다.

아무런 의식 없는데 유언장을 쓸 수 있겠는가?”

26일 삼성 계열사 사장을 지낸 씨는 고 이건희 회장의 유언장 소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유언장이 있다면 20145월 갑작스럽게 쓰러지기 전에 써뒀다는 말이 되는데글쎄. 순전히 상상과 가정일 거 같다. 그날 쓰러진 순간부터 그 이후에 지금까지 의식이 전혀 없었다. 아무런 의식이 없는데 유언장을 쓸 수 있겠는가?” 단지 추측과 풍문에 가까울 것이라는 얘기다. 6년 내내 명료한 의식이나 판단력을 잃은 위중한 상태로 와병 중이었던터라 병석에서 별도의 유언장을 작성해 두었을 가능성은 극히 낮은 편이다. 다른 두명의 전·현직 계열사 사장도 유언장 존재 얘기는 한번도 들어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씨는 고인의 의식 상태에 대해서는 서울삼성병원에 있을 때 고인이 병실 안 텔레비전 앞에서 휠체어 타고 있는 모습을 바깥 멀리서 망원렌즈로 찍은 사진이 있었지만, 아무런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당시 운동 차원에서 휠체어에 앉아 있었다. 쓰러지기 직전에는 1주일에 한번씩 회사에 나와 보고도 받고 점심도 회사에서 먹었다. 건강이 그렇게 왕성하던 차에 갑자기 쓰러졌다. 이런 사정을 감안해보면, 잘은 모르지만 그 전에 사전에 유언장을 써놓았을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남긴 유언() 가족 분쟁 초래하기도CJ와 삼성의 갈등

재벌 회장의 유언장은 가까운 가신들은 물론 심지어 자식들까지도 작성돼 있는지조차 잘 모를 수 있고, 감히 입밖에 꺼내기도 어렵다. 이미 타계한 역대 재벌기업 회장들은 거의 대부분 생전에 유언장을 남기지 않은 것으로 바깥에 알려져 있다. 유언장 문서보다는 유지혹은 유언의 형태로 장례 방식이나 가족 화합 메시지를 남긴 경우가 흔하다. 유언장 부재로 인해 자녀들간의 재산 상속·경영권 분란이 빚어지는 일은 많지 않은 편인데, 오히려 남긴 유언()이 가족들간 분쟁을 초래하는 경우도 있다.

삼성 창업주 이병철(77·타계 198711) 선대 회장은 유언장을 남기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다. ‘비운의 황태자로 불린 장남 고 이맹희(2015년 별세) CJ그룹 명예회장(전 제일비료 회장)1993년에 남긴 회고록 <묻어둔 이야기>에서, “아버지는 유서를 만든 적이 없다. 아버지의 유언은 모두 구두였다는 내용이 나온다. 또 이병철 회장이 다섯 식구를 한자리에 모아두고 삼성 경영권을 셋째아들 이건희에게 물려준다고 선언했다고 기록했다. 이맹희 회장은 이 책에서 아버지가 후계구도를 밝힌 곳은 용인에 있는 아버지의 거처라고 밝힌 뒤, “아버지는 폐암 수술차 일본으로 출국하기 하루 전날 밤 가족회의에서 건희의 후계를 처음 언급했다. 운명 직전에 누나, 누이동생, 건희, 내 아들 재현 등 5명을 모아두고 구두로 건희에게 정식으로 삼성의 경영권 이양을 유언했다. ‘앞으로 삼성은 건희가 이끌어 가도록 하겠다고 말했다고 기록하고, “그날의 충격을 잊지 못한다고 회고했다.

다만 이맹희 회장은 재산분배와 관련해선, ‘이 자리에서는 건희에게 삼성을 물려준다는 내용 이외에 삼성의 주식을 형제들간에 나누는 방식에 대한 아버지의 지시도 있었다면서도, ‘가족들끼리의 이야기니만큼 더 이상의 상세한 내용은 덮어두는 것이 좋겠다고 기록했다. 이맹희 회장은 2012년에 이 회장을 상대로 약 1조원 가량의 상속분을 요구하는 이병철 차명재산 상속 소송을 제기하며 갈등한 적도 있다. CJ가 삼성에서 계열분리 뒤에도 삼성과의 갈등은 한동안 지속됐다. 하지만 당시 재판에서 양쪽 모두 유언장이 별도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밝힌 적도 있다.

SK 고 최종현 회장 화장하고 사회에 기부하라유언 남겨

왕 회장으로 불린 고 정주영(86·타계 20013)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유언장과 유언도 공식적으로 알려진 것이 없다. 별세 당시 여러 설만 무성하게 퍼졌다. 1992년 대통령선거 출마 직전에 유언장을 작성해 가회동 자택의 개인금고 안에 보관해오면서 가끔씩 수정을 해왔다는 소문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유언장은 끝내 공개되지 않았고, 존재 여부도 불확실한 상태로 있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세간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왕 회장은 운명하기 몇 시간 전부터 의식을 잃어 별다른 유언도 남기지 않았다.

SK그룹 고 최종현(69·타계 19988) 선대 회장은 유언에 경영권이나 재산 상속 얘기는 남기지 않고, 그 대신에 시대를 앞선 유언으로 화장(火葬) 문화를 이끌었다. 고 최 회장은 폐암으로 갑자기 타계하기 전에 내가 죽으면 반드시 화장하고, 훌륭한 화장시설을 지어 사회에 기부하라는 유언을 남겼다. 경영권은 최태원 회장으로 별다른 다툼 없이 깔끔하게 이뤄졌고 지금까지 마찰 없이 그룹경영이 지속되고 있다. 최태원 회장은 201811월에 자신이 가진 SK지분 329만주(4.68%·9600억원어치)를 동생 최재원 수석부회장과 큰아버지인 최종건(1973년 타계) 창업주의 가족 및 4·6촌 등 친척 23명에게 증여했다. SK 쪽은 당시 최 회장이 20년 전 자신이 경영권을 승계한 데 따른 마음의 빚을 갚는 차원에서 가족들에게 지분을 증여했다고 설명했다.

LG그룹 고 구본무(73·타계 20185) 회장도 1년간 투병하다가 연명치료를 거절하고 “50억원을 복지·문화·상록재단에 기부하라. 폐 끼치지 말고 번거롭지 않게 가족장으로 하라는 유언을 남겼다. 196912월에 세상을 떠난 LG그룹 창업주 구인회 회장도 생전에 유언장을 남겼다는 말은 없다.

먼 훗날 발견된 유언장롯데 후계자 다툼

재벌 회장의 유언장이 먼 훗날에 느닷없이 발견·공개되는 일도 있다. 이미 두 형제간의 경영권 소송·다툼이 일단락된 롯데그룹의 경우 최근에 고 신격호(98·타계 20201) 명예회장의 유언장을 놓고 또다시 작은 다툼이 일었다. 롯데 쪽은 지난 6월 신격호 회장이 20여년 전인 20003월에 자필로 작성해 일본 도쿄 사무실 금고에 보관해놓은 유언장을 공개하면서 한국, 일본 롯데그룹의 후계자를 신동빈 회장으로 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고 주장했다. 지난 1월 신격호 회장 별세 당시 유언장은 없는 것으로 전해졌는데, 최근 유품을 정리하고 치우다가 서랍 속에서 발견됐다는 것이다. 장남 신동주 전 부회장 쪽은 유언으로서 법적 효력이 없다며 신동빈 회장을 후계자로 한다는 내용은 있지만 오래 전 이야기고, 지금은 상황이 크게 변했다고 주장했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왼쪽 두 번째)과 공영운 현대자동차 전략기획담당 사장(오른쪽)26일 오전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빈소에서 조문을 마치고 나서고 있다.

김우중(83·타계 201912) 전 대우그룹 회장도 별다른 유언장이나 유언을 남기지 않은 채 세상을 떠났고, 멀리 거슬러 올라 한화그룹 창업주 김종희(59·타계 19817) 회장도 유언장을 남기지 않았다.

대체로 볼때, 아버지 회장이 따로 남긴 유언이나 유언장이 없어도 경영권 갈등이 일어나는 건 흔치 않다. 큰형이 그룹 회장을 물려받는 장자 승계전통이 있고, 다른 가족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거나 계열 분리로 독립하기 때문이다. 생전에 유언장을 남기지 않을 경우 유족들이 상속세를 뺀 유산을 법정 상속비율대로 골고루 나누어 갖는 방식으로 정리하기도 한다.

반면, 유언이 자녀들간 불화를 간접적으로 초래하는 일도 빚어진다. 한진그룹 고 조양호(70·타계 20194) 회장은 유언으로 가족들과 잘 협력해서 사이좋게 이끌어 나가라고 했지만 유언장은 남기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다. 불분명한유언이 3남매간 경영권·지분 상속을 둘러산 분란의 화근이 됐다는 평도 나온다. 한진그룹은 지금보다 한 세대 전인 창업주 고 조중훈(82·타계 200211) 회장의 유언장을 놓고도 형제들의 난을 겪은 바 있다. 조중훈 회장의 유언장에 대부분의 재산을 장남 조양호 회장이 소유하고 있는 인하학원·대한항공에 전액 기부한다고 적혀 있었다고 알려졌는데, 동생들(조남호·조정호 회장)유언장은 조작됐다며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조계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