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 활동가 손영미 씨, 자택서 숨진채 발견
온라인 비난 댓글 등 영향 미친 듯…정의연, 언론 비판 성명
정의기억연대(정의연)가 운영하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의 거처인 ‘평화의 우리집’(쉼터) 소장 손영미씨가 경기도 파주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7일 파주경찰서의 설명을 종합하면, 지난 6일 손씨 지인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밤 10시35분께 손씨의 집에서 숨진 손씨를 발견했다. 경찰 관계자는 “외부 침입 흔적이 없는 등 현재로서는 타살 혐의점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경찰은 현재까지 유서도 발견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경찰은 8일 손씨의 주검을 부검하고, 휴대전화에 대해 디지털 포렌식 작업을 하기로 했다.
정의연 등의 설명을 종합하면, 손씨는 2004년 당시 윤미향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대표(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부탁을 받고 쉼터 관리를 맡아왔다. 고 김복동 할머니와 길원옥 할머니가 외국을 방문할 때도 동행해 할머니들의 수발을 들었다고 한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할머니들의 손과 발이 되어준 활동가”로 알려져 있다. 정의연은 이날 부고 성명을 내고 “손씨는 개인의 삶은 뒤로한 채 할머니들의 건강과 안위를 우선시하며 늘 함께 지내오셨다. 기쁜 날에는 할머니들과 함께 웃고, 슬픈 날에는 할머니들을 위로하며 그렇게 할머니들의 동지이자 벗으로, 그리고 딸처럼 16년을 살아오셨다”고 추모했다.
이나영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이 7일 오후 서울 마포구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쉼터인 평화의 우리집 앞에서 손영미 소장의 부고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 손씨, “검찰 수사, 언론 취재경쟁 때문에 힘들다” 토로
손씨는 정의연의 회계에 직접 관여할 위치에 있지 않아 아직 검찰 조사를 받지는 않았다. 검찰은 최근 정의연의 회계 부실과 윤미향 의원의 개인계좌 등에 수사의 초점을 맞추고 회계 관련자를 잇따라 소환 조사하고 있다. 검찰은 이날 “손씨를 조사한 사실도 없었고, 조사를 위한 출석 요구를 한 사실도 없다”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손씨의 극단적 선택 배경으로 ‘검찰 수사에 대한 압박감’이 거론되는 것을 경계한 것이다.
하지만 손씨는 자신이 관리하는 쉼터가 검찰에 압수수색을 당한 것에 심한 충격을 받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손씨의 지인들은 이날 경찰에 “손씨가 최근 검찰의 압수수색으로 힘들다고 말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의연도 “손씨가 검찰의 (쉼터에 대한) 압수수색 이후 자신의 삶이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것 같다며 심리적으로 힘든 상황을 호소하셨다”고 전했다. 검찰은 지난달 21일 쉼터를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정의연 쪽과 마찰을 빚기도 했다. 정의연 쪽은 당시 쉼터에 거주하는 길원옥 할머니의 건강을 이유로 이곳에 보관된 자료를 임의제출 하기로 검찰과 합의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검찰은 “(임의제출 합의는) 정의연 쪽의 일방적인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당시 손씨가 압수수색 현장에서 어떤 압박을 받은 게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자 서부지검은 이날 “지하실에서 실제 압수수색을 할 당시 고인은 그곳에 없었던 것으로 수사팀은 알고 있다”고 밝혔다.
언론의 과도한 취재경쟁도 손씨를 괴롭혔던 것으로 전해진다. 정의연은 “손씨는 최근 정의연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했다. 무엇보다 언론의 과도한 취재경쟁으로 쏟아지는 전화와 초인종 벨소리, 카메라 세례로 불안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계셨다. 항상 밝게 웃으시던 고인은 쉼터 밖을 제대로 나가지도 못하는 상황에 놓이셨다”고 밝혔다. 최근 온라인에 정의연을 비난하는 글이 많이 올라온 것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 검찰 수사에 어떤 영향?…차질 불가피
검찰은 지난달 20~21일 정의연 사무실과 쉼터 등에 대한 압수수색으로 확보한 자료를 분석한 뒤 지난달 26일부터 회계담당자 등을 불러 회계처리와 후원금 사용 문제 등을 조사했다. 검찰은 지난 5일 경기도 안성의 힐링센터를 압수수색하는 등 수사에 막 속도를 내려던 참이었다. 하지만 손씨의 극단적 선택으로 검찰 수사에 차질이 불가피해 보인다. 손씨가 주변에 검찰 수사에 대한 압박감을 토로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검찰 수사에 대한 반발 여론이 일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 채윤태 박경만 기자 >
검찰의 정의연 쉼터 압수수색 당시 모습
“홀로 가시게 해 미안합니다”…윤미향 의원, 추모사 올려
“복동할매랑 만들고 싶어 했던 세상에서 우리 다시 만나요.”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7일 오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전날 숨진 고 손영미(60) ‘평화의 우리집’ 소장의 추모사를 올렸다. 윤 의원은 이 글에서 생전 위안부 할머니들만을 위해 살아온 손 소장에 대한 미안함을 전했다.
윤 의원은 “2004년 처음 우리가 만나 함께 해 온 20여년을 너무나 잘 알기에 이런 날들이 우리에게 닥칠 것이라고 3월 푸르른 날에조차 우리는 생각조차 못했다. 우리 복동 할매 무덤에 가서 도시락 먹을 일은 생각했었어도 이런 지옥의 삶을 살게 되리라 생각도 못했다”며 “그 고통, 괴로움 홀로 짊어지고 가셨으니 나보고 어떻게 살라고요”라고 밝혔다.
윤 의원은 최근 검찰이 정의기억연대(정의연)의 ‘회계부정’ 의혹 등을 수사하고, 이를 언론이 보도하는 과정에서 손 소장이 겪은 압박감에 대해서도 미안함을 표했다. 윤 의원은 “기자들이 쉼터 초인종 소리 딩동 울릴 때마다, 그들이 대문 밖에서 카메라 세워놓고 생중계하며 마치 쉼터가 범죄자 소굴처럼 보도를 해대고, 검찰에서 쉼터로 들이닥쳐 압수수색을 하고, 매일같이 압박감(을 느꼈다). 죄인도 아닌데 죄인 의식 갖게 하고, 쉴 새 없이 전화벨 소리로 괴롭힐 때마다 홀로 그것을 다 감당해 내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라고 썼다.
생전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해 살아온 손 소장에 대한 고마움도 함께 표현했다. 윤 의원은 “쉼터에 오신 후 신앙생활도 접으셨고, 친구관계도 끊어졌고, 가족에게도 소홀했고, 오로지 할머니, 할머니. 명절 때조차도 휴가 한번 갈 수 없었던 우리 소장님. 당신의 그 숭고한 마음을 너무나 잘 알기에 내 가슴 미어진다”고 말했다.
이어 윤 의원은 “우리 복동할매랑 조금만 손잡고 계세요. 우리가 함께 꿈꾸던 세상, 복동할매랑 만들고 싶어 했던 세상, 그 세상에서 우리 다시 만나자”라며 글을 마무리했다. 이하 추모사 전문.
<추모사> 사랑하는 손영미 소장님....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나랑 끝까지 같이 가자 해놓고는 그렇게 홀로 떠나버리시면 저는 어떻게 하라고요... 그 고통, 괴로움 홀로 짊어지고 가셨으니 나보고 어떻게 살라고요...
할머니와 우리 손잡고 세계를 여러바퀴 돌며 함께 다녔는데 나더러 어떻게 잊으라고요...
악몽이었죠. 2004년 처음 우리가 만나 함께 해 온 20여년을 너무나 잘 알기에 이런 날들이 우리에게 닥칠 것이라고 3월 푸르른 날에조차 우리는 생각조차 못했지요. 우리 복동 할매 무덤에 가서 도시락 먹을 일은 생각했었어도 이런 지옥의 삶을 살게 되리라 생각도 못했지요.
그렇게 힘들어 하면서 “대표님, 힘들죠? 얼마나 힘들어요” 전화만 하면 그 소리... 나는 그래도 잘 견디고 있어요. 우리 소장님은 어떠셔요? “내가 영혼이 무너졌나봐요. 힘들어요.” 그러고는 금방 “아이고 힘든 우리 대표님께 제가 이러면 안되는데요... 미안해서 어쩌나요..”
우리 소장님, 기자들이 쉼터 초인종 소리 딩동 울릴 때마다.. 그들이 대문 밖에서 카메라 세워놓고 생중계하며, 마치 쉼터가 범죄자 소굴처럼 보도를 해대고, 검찰에서 쉼터로 들이닥쳐 압수수색을 하고, 매일같이 압박감.. 죄인도 아닌데 죄인의식 갖게 하고, 쉴 새 없이 전화벨 소리로 괴롭힐 때마다 홀로 그것을 다 감당해 내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저는 소장님과 긴 세월을 함께 살아온 동지들을 생각하며 버텼어요. 뒤로 물러설 곳도 없었고 옆으로 피할 길도 없어서 앞으로 갈 수밖에 없구나 그렇게 생각하며 버텼어요.
그러느라... 내 피가 말라가는 것만 생각하느라 우리 소장님 피가 말라가는 것은 살피지 못했어요. 내 영혼이 파괴되는 것 부여잡고 씨름하느라 우리 소장님 영혼을 살피지 못했네요. 미안합니다. 정말로 미안합니다. .
소장님... 나는 압니다. 그래서 내 가슴이 너무 무겁습니다. 쉼터에 오신 후 신앙생활도 접으셨고, 친구관계도 끊어졌고, 가족에게도 소홀했고, 오로지 할머니, 할머니... 명절 때조차도 휴가한번 갈 수 없었던 우리 소장님... 미안해서 어쩌나요. 당신의 그 숭고한 마음을 너무나 잘 알기에 내 가슴 미어집니다.
외롭더라도 소장님, 우리 복동할매랑 조금만 손잡고 계세요. 우리가 함께 꿈꾸던 세상, 복동할매랑 만들고 싶어 했던 세상, 그 세상에서 우리 다시 만나요.
사랑하는 나의 손영미 소장님, 홀로 가시게 해서 미안합니다. 그리고 이젠 정말 편히 쉬소서. ( 윤미향 올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