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 부부가 모시겠다요양사도 거주하며 돌볼 예정

손 소장은 어머니 딸 같은 분마포 쉼터, 8년만에 공가로

     

일본군 위안부피해자로 2012년부터 정의기억연대(정의연)가 운영하는 서울 마포구 쉼터 평화의 우리집에서 생활해온 길원옥(92) 할머니가 11일 쉼터를 떠나 양아들 황선희(목사)씨의 집으로 거처를 옮겼다.

정의연과 황씨의 설명을 종합하면, 길 할머니는 이날 오전 쉼터를 찾아온 황씨를 따라 인천 연수구에 있는 황씨 집으로 이동했다. 쉼터를 운영하며 길 할머니를 돌봐온 손영미 소장이 지난 6일 숨진 뒤 황씨가 정의연 쪽에 길 할머니를 직접 부양하겠다고 알려왔다고 한다. 길 할머니는 처음엔 아무 데도 가지 않겠다고 했다가, 황씨가 찾아오자 함께 길을 나섰다고 정의연 쪽은 전했다. 정의연 쪽은 길 할머니가 당뇨 등을 앓고 있어서 건강이 많이 염려된다고 했다.

길 할머니의 새 거주지는 지하 1층이 교회, 지상 1층은 교육관’, 2층은 황씨 가족이 생활하는 주택이다. 길 할머니는 1층을 사용하게 될 것이라고 황씨는 전했다. 이날 오후 <한겨레>가 교육관 1층 문을 열고 들어서니 길 할머니는 16.5(5) 남짓한 방에 놓인 환자용 침대에 눈을 감고 누워 있었다. 이 방은 중·고등학생들을 위한 교육 공간으로 쓰인 곳이다. 길 할머니가 건강이 좋지 않은 점을 고려해 24시간 길 할머니를 돌볼 수 있는 요양보호사가 옆방에 거주하기로 했다고 한다. 황씨는 손 소장님도 돌아가셨고, 때가 돼서 모시고 왔다. 어머니(길 할머니)는 이 집에는 처음 오시지만, 아들 집으로 모셔가겠다고 했더니 우리 집에 간다며 좋아하셨다고 말했다.

황씨는 정의연의 회계부정 의혹과 관련해 검찰에 맡기는 수밖에 없다. 우리는 잘 모른다다만 어머니와 여기서 잘 살고 싶을 뿐이라고 말했다. 황씨의 부인은 그동안 어머니의 계좌 등 금전적인 부분에 대해 하나도 몰랐는데, 아무래도 이제는 알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손 소장에게 얘기한 적이 있다손 소장은 어머니의 딸 같은 분이었다. 감사한 마음뿐이라고 말했다.

평화의 우리집2012년 정의연의 전신인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가 명성교회로부터 사용권을 기부받아 조성한 쉼터다. 길 할머니를 비롯해 고 김복동·이순덕 할머니 등이 생전에 이곳에 살았지만, 이날부터 아무도 살지 않는 빈집이 됐다. < 채윤태 강재구 기자 >

길원옥 할머니가 새로 살게 된 황선희 목사가 운영하는 인천 연수구 교회 교육관.

양아들 황아무개 목사가 11일 아침 모셔가

                

일본군 위안부피해자로 그동안 정의기억연대(정의연)가 운영하는 서울 마포구 쉼터 평화의 우리집에서 생활해온 길원옥(92) 할머니가 11일 아침 쉼터를 떠난 것으로 확인됐다. 길 할머니의 양아들인 황아무개 목사가 길 할머니를 모셔간 것으로 전해졌다.

정의연 쪽의 설명을 들어보면, 황 목사는 이 쉼터를 운영해온 손영미 소장이 숨진 뒤 길 할머니를 모셔가 직접 부양하겠다는 입장을 전해왔다. 길 할머니는 처음엔 아무데도 가지 않겠다고 했지만 이날 아침 황 목사가 짐을 실어갈 차량과 함께 도착하자 길을 나섰다고 한다. 정의연 쪽은 할머니와 아드님의 뜻을 막을 순 없지만, 할머니가 당뇨 등을 앓고 있어 거동이 불편하셔서 건강이 많이 염려된다고 말했다. 평화의 우리집에 있는 동안 길 할머니는 손 소장과 두 명의 요양보호사, 정의연 활동가 등의 도움을 받아 생활했다.

인천의 한 교회에서 목회 활동중인 황 목사는 현재 연락이 닿지 않고 있다. < 강재구 기자 >


4년만에 최종심, 대법원승계작업이재용 뇌물 등 인정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비선실세였던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의 형량이 징역 18, 벌금 200억원, 추징금 63억여원으로 확정됐다. 지난 201611월 구속기소된 뒤 4년 동안 다섯 번의 재판 끝에 나온 결과다.

대법원 2(주심 안철상 대법관)11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의 뇌물 등의 혐의로 기소된 최씨의 형량을 원심대로 확정했다.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도 징역 4년에 벌금 6천만원형이 확정됐다.

최씨는 박 전 대통령, 안 전 수석과 공모해 50여개 대기업과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그룹 현안 해결등을 대가로 미르·케이(K)스포츠 재단 설립 출연금 774억원을 요구한 혐의 등으로 201611월 재판에 넘겨졌다. 또 승계 작업을 돕는 대가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서 딸 정유라씨의 승마 훈련용 말 3마리를 지원받고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후원금 200억여원을 받은 혐의(뇌물죄)도 샀다.

최씨는 1·2심에서 모두 징역 20년을 선고받았지만 지난해 8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뇌물죄는 인정하면서도 최씨가 전경련과 대기업에 미르·케이(K)스포츠재단 출연을 강요한 행위는 무죄로 판단해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지난 214일 파기환송심은 형량이 2년 줄어든 징역 18년과 벌금 200억원을 선고했고 대법원 재상고심은 이를 확정했다.

한편, 지난 9일 옥중에서 회고록(<나는 누구인가>)을 발간한 최씨는 검찰과 특검의 강압 수사를 비판하며 언젠가 진실을 밝힐 수 있는 날이 오면 재심을 요청하겠다고 밝혔다. < 장필수 기자 >


교류협력법 위반 남북정상 합의 위반 접경지 주민 생명안전 위험

                        

통일부는 10일 북한이탈주민단체(탈북민)인 자유북한운동연합(대표 박상학)큰샘’(대표 박정오)이 전단·패트병을 북쪽에 보낸 행위를 남북교류협력법을 위반한 미승인 반출로 판단해 경찰에 수사를 의뢰(고발)하고, 법인 허가 취소 절차에 착수한다고 발표했다. 대북전단과 관련한 정부 대응의 무게중심을 기존의 처벌 없는 단속에서 처벌을 통한 원천 차단으로 옮기겠다는 선언이다.

북한 당국이 남북 사이 모든 직통 연락선을 차단하며 대남 강경 기조로 돌아선 직접 원인인 대북전단 살포 행위를 원천 차단해 남북관계의 추가 악화를 막고, 반전의 계기로 삼으려는 정책으로 풀이된다.

여상기 통일부 대변인은 이날 오후 예정에 없던 기자회견을 열어 발표한 대북전단·패트병 살포 관련 정부 입장을 통해 정부는 오늘(10) 자유북한운동연합과 큰샘을 남북교류협력법 위반으로 고발하고, 법인 설립 취소 절차에 착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여상기 대변인은 두 단체가 대북전단 및 패트병 살포 활동을 통해 교류협력법의 반출 승인 규정을 위반했으며 남북 정상 합의를 정면으로 위반해, 남북 간 긴장을 조성하고 접경지역 주민의 생명·안전에 대한 위험을 초래하는 등 공익을 침해했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도 경찰력을 동원해 대북전단 살포를 단속한 사례가 있지만, 정부가 대북전단 살포 행위를 교류협력법 위반으로 판단해 사법적 처벌 절차에 나선 건 이번이 처음이다.

현행 교류협력법은 물품 등을 북쪽으로 반출하려면 사전에 통일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야 하며(13), ‘미승인 반출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다(271). 역대 정부도 경찰관직무집행법(51) 등을 근거로 대북전단 살포를 단속했지만, 처벌 조항이 없어 원천 차단에 한계가 있었다.

통일부는 대북전단 살포 단속에 이전과 달리 교류협력법을 적용하기로 판단한 핵심 이유로 20184·27 판문점선언에 따른 사정 변경을 들었다. 4·27 판문점선언전단 살포를 비롯한 모든 적대행위 중지”(21)를 명시하고 있다.

앞서 20162월 대법원은 대북전단 살포 행위가 접경지역 국민의 생명·신체에 급박하고 심각한 위험을 발생시킨다국가는 대북전단 살포 행위를 제지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대북전단 처벌 통한 원천차단남북관계 경색에 강경 전환

통일부가 10일 전단과 페트병을 북쪽에 보내온 자유북한운동연합과 큰샘’, 두 북한이탈주민(탈북민) 단체를 실정법 위반으로 고발하고 법인 취소 절차를 밟겠다고 밝힌 건, 정부의 대북전단 대응 기조 전환 선언이다. ‘처벌 없는 단속에서 단속과 처벌, 원천 차단으로 무게중심을 옮기겠다는 방침을 천명한 것이다.

통일부가 대북전단 살포 행위 처벌의 근거로 내세운 법률은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교류협력법)이다. 교류협력법은 131항에서 물품 대북 반출은 통일부 장관의 승인을 얻어야 하며, 27조에서 미승인 반출은 징역(3년 이하) 또는 벌금(3천만원 이하)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역대 정부는 물론 문재인 정부에서도 대북전단에 교류협력법을 적용하지는 않았다. 사정이 있다. “전단 살포는 북한의 불특정인을 상대로 하는 것이라 교역에 해당하지 않아 통일부 장관의 승인 대상이 아니다라는 이명박 정부의 유권해석이 있었다. 통일부가 그동안 교류협력법으로 대북전단 살포를 단속·처벌하려는 의원입법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온 배경이다.

정부가 대북전단 살포를 교류협력법을 위반한 미승인 반출로 판단해 처벌을 추진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통일부의 10일 발표를 두고 미래통합당 등 보수 야당과 보수 언론의 비판이 예상되는 이유다.

이를 의식한 듯 통일부는 대북전단 살포 단속·처벌에 교류협력법을 적용하겠다고 법률 유권해석을 바꾼 사정 변경사유를 상세하게 설명했다. 통일부 당국자들이 밝힌 사정 변경사유는 전단을 비롯한 모든 적대행위 중지를 명시한 4·27 판문점 선언 접경지 국민의 생명·신체에 대한 급박하고 심각한 위험을 이유로 국가(정부)의 대북전단 살포 제지가 적법하다고 한 대법원 판결(2016225) 대북전단을 매개로 한 남북 사이 전염병 전파 우려 생명과 안전에 위협을 느낀다는 접경지역 주민들의 민원 라디오·달러·유에스비(USB)·쌀까지 담아 보내는 전단 살포 방식의 다양화·대규모화 등이 그것이다.

사실 대북전단 살포 행위를 교류협력법 위반으로 단속·처벌해야 한다는 법률가들의 지적은 전부터 있었다. 예컨대 김하중 국회 입법조사처장은 전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이던 201410월 언론 기고문에서 대북전단 살포는 교류협력법상 통일부 장관 승인 사항이라며, 미승인 살포 행위를 단속·처벌하지 않으면 오히려 직무유기죄(형법 122)에 해당한다고 짚었다. 대북전단은 교류협력법에 따라 반출 때 통일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광고물 또는 인쇄물에 해당(통일부 고시 2012-2호 등)한다는 것이다.

통일부는 자유북한운동연합과 큰샘의 법인 허가 취소 절차에 착수하겠다고 밝혀, 대북전단 살포를 원천 차단하겠다는 정책 의지를 드러냈다. 두 단체는 통일부에 등록된 비영리법인이다. 민법은 특정 비영리법인이 공익을 해치거나 설립 목적 밖의 활동을 하거나 허가 조건을 어겼을 때 허가를 취소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통일부 당국자는 자유북한운동연합은 정부의 통일정책 추진을 저해하지 않는 범위의 활동을, 큰샘은 탈북청소년 지원을 내세워 설립 허가를 받았다두 단체가 이를 어겨 허가 취소 절차를 밟기로 했다고 했다.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와 박정오 큰샘 대표는 친형제 사이인 탈북민이다.

통일부의 이런 정책 기조 전환엔 정부와 접경지역 지자체·주민의 제지·반발에도 한국전쟁 70돌인 26일 대북전단 100만장을 살포하겠다고 공언해온 자유북한운동연합의 막무가내식 태도와 북한 당국의 반발 등이 두루 작용했다고 할 수 있다.

통일부의 10일 발표는 청와대 등 관계부처의 조율을 거쳐 이뤄졌다. 범정부 차원의 기조 전환인 셈이다. 대북전단 살포 단속·처벌 방침을 둘러싼 국내 논란의 정치적 부담을 무릅쓰더라도 4·27 판문점 선언 이행 의지를 강조해 남북관계의 추가 악화를 막고 관계 개선으로 이어질 반전의 계기로 삼겠다는 포석이다. 대북전단 살포를 문제 삼아 연일 항의 군중집회 등을 조직하고 이를 <노동신문>에 닷새째 대대적으로 보도해온 북한 당국이 어떤 태도를 보일지 주목된다.

경찰은 대북전단 살포를 막으려 해당 탈북민 단체의 주요 이동 지점인 경기도 파주·연천지역 36곳에 5개 중대(400), 강화에 2개 제대(60) 등을 배치한 것으로 전해졌다. < 이제훈 기자 >

 


정세현 민주평통 부의장, 회고록 출판 기념회서 밝혀

                                  

정세현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은 1945616만주국 싼장성 자무쓰시’(현 중국 헤이룽장성 자무쓰시)에서 태어났다. 세상의 빛을 처음 본 지 두달 만에 광복을 맞아 아버지의 고향 전라북도 장수로 귀향했다. 일제강점기의 끄트머리에 세상에 나와 한국전쟁과 오랜 분단의 세월을 헤쳐온 그의 삶은 곡절 많은 한국 현대사 그 자체다. 그는 서른셋의 서울대 외교학과 박사학위 과정 학생이던 197711월 국토통일원(현 통일부) 공산권연구관실 보좌관(4)으로 북한과 인연을 맺었다. “북한 자료도 맘껏 보고 월급도 챙길 수 있겠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첫 걸음이다. 하지만 그는 그뒤로 40년이 넘도록 끝도 시작도 없는 통일의 미로를 헤매고 있다. 운명이다.

북한과 마주한그 긴 세월 속에서 가장 슬픈 기억과 기쁜 기억을 물었다. 10일 오전 서울 창비서교빌딩에서 진행된 그의 회고록 <판문점의 협상가-북한과 마주한 40>(대담자 박인규·창비) 출판기념 기자간담회에서다.

“1994725~27일로 예정된 사상 첫 남북정상회담이 김일성 주석의 사망(199478)으로 무산됐을 때가 가장 실망스러웠다. 우리 민족의 운명이 여기까지인가 하는 한탄이 절로 나왔다. 김영삼 대통령의 통일비서관으로 잠도 자지 않고 회담을 준비하던 때였다.”

그때 그는 김영삼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의 사상 첫 남북정상회담에서 북쪽의 경제적 어려움을 풀어주며 군사적 도발을 막고 한반도의 평화를 관리할 합의를 이끌어내려 했다. “김영삼 대통령한테 입력한 개념은 분단 한반도에서 군사적으로 조마조마하게 사는 공포에서 해방되려면 북쪽이 군사적으로 대남 적대행위를 하지 못하게 해야 하고, 그러려면 경제가 어려운 북쪽의 상황을 이용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20006·15 공동선언의 문제의식과 크게 다를 게 없다.”

가장 큰 슬픔은 가장 큰 기쁨의 다른 얼굴이다. 삶의 역설이다. 그가 가장 희망적인 날로 기억하는 건, 2000410일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상 첫 남북정상회담(613~15일 평양) 발표다. “김일성 주석의 사망으로 기회를 잃고 우리한테 언제 또 이런 기회가 오나하고 한탄을 했는데, 6년이 지나지 않아 그날이 왔다.” 그는 이 대목에서 환하게 웃었다.

박정희·전두환·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문재인 정부를 거치며 그는 다양한 자리에서 북한을 상대했다. 남북관계가 대결로 점철된 냉전기에서 동북아 정세가 급변하던 1980년대 후반, 1990년대 초반 이후 탈냉전기를 관통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땐 통일부 장관으로 남북을 잇는 길을 맨 앞에서 열어갔다.

687쪽에 이르는 벽돌책인 회고록은 정세현 특유의 입담과 통찰력이 잘 버무려진 생생한 사례와 기록으로 가득하다. 그의 부친은 해방된 조국에서 한의원을 개업했고, 그 덕에 어려서부터 한학에 익숙했다. 70년 분단 사상 최대 인적교류의 장이던 금강산관광사업의 별칭인 햇볕정책의 옥동자는 그의 작명이다. 그는 통일부 장·차관 시절 숱한 출입기자들의 아이 이름을 지어주기도 했다.

정책을 결정하는 위치에 가까워질수록 미국의 간섭은 때로는 노골적으로, 때로는 은밀하지만 강력한 압박으로 다가왔다고 그는 회고록 서문에 적었다. 한국 외교의 전제처럼 인식되는 한미공조라는 개념의 탄생과 관련한 그의 전언은 서늘하다. “김영삼 정부 때 핵문제로 미국과 엇박자가 심했다. 그때 미국이 한국을 묶어놓으려고 꺼낸 게 한미공조라는 말이다. 공조를 이유로 사사건건 쥐어박으니 그 기가 센 김영삼 대통령도 결국 미국 하자는 데로 끌려가더라. 1994년 미국의 영변 핵시설 폭격 계획은 지금도 생각만 하면 끔찍하다. 실행됐으면 한반도가 어찌 됐겠나?”

그가 새삼스레 한미공조라는 개념의 본질을 상기시킨 건, 20189·19 남북군사합의 뒤 미국이 꺼내든 한미 워킹그룹한국 외교부가 아무 생각 없이 덥석 받아들인데 대한 짙은 아쉬움 때문이다. 그가 보기에 한미워킹그룹은 제재를 빌미로 남북의 자율적 협력을 가로막는 미국의 덫이다.

출판사 창비는 정세현의 회고록을 학자의 머리, 행정가의 눈, 시민의 가슴으로 북한을 바라본 평생의 기록이라 표현했다. 과장은 없다. 그는 40년 넘게 북한과 마주한 고위공직자일뿐더러, <모택동의 대외관 전개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중국전문가이자 국제정치학자다. 그는 기대를 거는 것은 국민의 힘이라고 강조한다. < 이제훈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