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석 의장, 여야 대치 이어가자 상임위 강제배정

코로나·남북관계 위기, 국민 생명보다 소중한 것 없어

  민주당 법사위원장 차지 공수처 등 검찰개혁 동력 확보

            

1야당이 불참한 가운데 더불어민주당이 15일 미래통합당을 빼고 상임위원장 일부 선출을 강행하면서 21대 국회 임기 초반부터 정국이 빠르게 얼어붙었다. 1야당이 불참한 채 상임위원장이 선출된 것은 1967년 이후 처음이다. 그러나 당시엔 야당이 아예 국회에 등록하지 않아 국회법상으론 교섭단체가 아니었기 때문에 지금과는 상황이 달랐다. 말 그대로 헌정 사상 초유의 사태를 둘러싸고 거대 여당의 독주라는 우려와 일하는 국회를 향한 기대가 함께 뒤섞였다.

박 의장은 이날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국가적 위기상황에서 법으로 정한 국회 개원일이 이미 일주일이나 지났다. 코로나19 위기, 남북관계 위기 앞에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고 민생을 돌보는 것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다시간을 더 준다고 해서 (여야가) 합의에 이를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봤다고 밝혔다. 여야가 법사위를 둘러싸고 한 치 양보 없는 대치를 이어가자 박 의장이 상임위 강제 배정이라는 무리수까지 두면서 상임위원장 선출 강행에 나선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윤호중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윗줄 왼쪽부터), 윤후덕 기획재정위원장, 송영길 외교통일위원장, 민홍철 국방위원장(아랫줄 왼쪽부터), 이학영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장, 한정애 보건복지위원장이 15일 국회 본회의에서 각각 당선인사를 하고 있다.

민주당은 최대한 빨리 모든 상임위를 가동해 3차 추가경정예산안 심사에 돌입하고 일하는 국회를 부각할 계획이다. 민주당이 위원장 선출을 강행하는 모양새가 당장은 부담스럽지만, 실제로 상임위가 움직이기 시작하고 통합당이 이에 반대하고 나선다면 여론이 민주당 쪽으로 기우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것이다. 민주당 원내지도부 관계자는 당장 내일부터 가능한 상임위를 모두 돌린다. 상임위원장이 선출되지 않은 상임위도 간사를 선출하고 부처 업무보고를 받는 등 뭐든지 하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에 민주당은 법사위원장 자리를 차지함으로써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출범을 비롯해 검찰개혁에 동력을 얻게 됐다. 지난해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을 통해 공수처 설치법, 검경 수사권 조정법 등을 처리한 민주당은 이제 공수처장 인사청문회법과 국회법 개정 등 후속 작업이 남아 있다. 입법의 게이트키핑 역할을 하는 상원 상임위를 확보했다는 것은 그동안 민주당이 공언해온 입법 과제들을 수월하게 처리하게 됐음을 의미한다. 다만 민주당은 약속대로 그동안 법사위 월권으로 지목해온 체계·자구심사권 폐지 논의를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기재위, 보건복지위,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를 가동해 3차 추가경정예산안 처리를 비롯해 코로나19 대응에 빠르게 나설 수 있게 됐다. 국방위원장과 외교통일위원장을 차지한 것도 4·27 판문점선언 비준 동의, 대북전단 살포 규제 등 최근 악화된 남북관계를 돌파할 입법 수단을 확보하게 됐음을 의미한다.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가 15일 저녁 국회 본회의장에서 상임위원회 구성과 관련해 발언하고 있다.

통합당은 격렬하게 반발했다. 주호영 통합당 원내대표는 본회의 표결에 앞선 의사진행발언에서 여야 합의 없이 상임위원장 선출 안건을 올린 것이 잘못됐을 뿐 아니라, 제헌국회 이래 처음으로 야당 상임위원들을 일방적으로 강제 배정해 헌정사에 기록을 남겼다역사는 오늘을 국회가 없어지고 일당 독재가 시작된 날로 기록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주 원내대표는 본회의 직후 의원총회가 진행되던 국회 예산결산특별위 회의장으로 돌아가 이종배 정책위의장과 함께 사의를 표명했다.

그러나 통합당은 장외투쟁 등 극단적 대립은 피하기로 했다. 상임위원이 강제 배정되는 수모를 겪는 모습을 보이며 여당 독주를 강조하는 동시에 의정활동엔 참여하는 투 트랙 대응에 나설 계획이다. 통합당의 한 재선 의원은 민주당의 오만이 국회를 파행으로 끌었지만, 통합당은 국회 안에서 투쟁한다는 방침이 확고하다추경 심사부터 따질 것은 따지고 일할 것은 하겠다고 했다. < 이지혜 노현웅 서영지 기자 >

민주당 이번주 나머지 상임위 완료박병석 의장, 19일까지 끝낼 방침

더불어민주당은 코로나발 위기 확산에 대비한 3차 추가경정예산안 처리를 위해서라도 예결위를 포함한 나머지 상임위 구성을 이번주 안에 완료하겠다는 방침이다.

박성준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15일 오후 민주당 의원총회가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나 민주당은 지속해서 18개 상임위 구성을 박병석 의장에게 요청해왔다. 이번주 안에는 18개 상임위를 모두 선출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 역시 이날 의원총회에서 오늘을 시작으로 3차 추경의 차질 없는 집행을 위해 전 상임위원장이 선출되도록 힘쓰겠다. 야당과도 추가 협상을 하겠지만, 오래 기다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박병석 국회의장은 19일 본회의를 열어 나머지 상임위 구성을 완료하겠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통합당이 야당을 배제한 상임위원장 선출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어 성사 여부는 불투명하다. 앞서 민주당은 지난 12일 예결위원장을 포함해 국토교통위원장·정무위원장·문화체육관광위원장·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장·환경노동위원장 등 7개 주요 위원장직을 통합당에 주는 안을 마지막 협상안으로 제시한 바 있다. 강훈식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이날 본회의 표결 직후 서면 브리핑에서 국민의 명령대로 조속히 일하는 국회를 완비하고 민생 챙기기에 전념해야 한다. 통합당도 동참해주시기 바란다고 거듭 촉구했다.

민주당은 이날 법사위원장으로 비법조인 출신인 윤호중 민주당 사무총장을 내정해 눈길을 끌었다. 4선인 윤 의원은 민주당 사무총장을 맡아 지난 4·15 총선 압승에 기여했다. 법사위의 체계·자구심사권을 폐지하고 사법위원회로 축소하는 방안을 민주당 당론 1법안으로 준비하고 있는 만큼, 무게감 있는 중진 의원을 위원장으로 배치해 사법개혁에 힘을 싣겠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윤 사무총장은 법사위원장 당선 직후 일하는 국회의 걸림돌이 되어온 법사위의 잘못된 관행 제도를 혁신하는 데에도 앞장서겠다고 했다. 이밖에 기획재정위원장엔 윤후덕(3), 보건복지위원장과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장엔 각각 한정애(3이학영(3) 민주당 의원이 선출됐다. 외교통일위원장엔 송영길(5국방위원장엔 민홍철 의원(3)이 뽑혔다. < 황금비 기자 >

통합당, 나머지 원구성 협상 거부 국회 안 투쟁나설듯

주호영 법사위원장 못 지켜내의원총회서 사의 수용하지 않기로

여당의 상임위원장 단독 선출로 21대 국회가 문을 열면서 협상론자였던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의 리더십도 적지 않은 타격을 입었다.

주 원내대표는 15일 민주당이 법사위·기재위·외통위 등 6개 상임위원장 선출을 강행하자 통합당 의원총회에서 사의를 표명했다. 이종배 정책위의장도 함께했다. 주 원내대표는 의총 뒤 기자들과 만나 지금까지 제1야당이 맡아왔던 법사위원장을 지켜내지 못했고, 우리나라 민주주의가 이렇게 파괴되는 것을 막지 못했다. 책임을 지고 사퇴한다. (상황을) 막아내지 못한 책임을 제가 지기로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날 의원총회에 참석한 통합당 의원들은 주 원내대표의 사의를 수용하지 않기로 했다. 최형두 통합당 원내대변인은 의원 전원이 이견 없이 법사위 없는 상임위 배분은 무의미하다며 주 원내대표에게 강력한 협상을 주문했다. 주 원내대표가 책임을 지겠다며 사의를 표했지만, 의원총회에서는 주 원내대표를 다시 불러 힘을 실어주자는 논의를 진행했다고 전했다. 민주당이 법사위원장을 차지하는 것을 저지할 카드가 주 원내대표에게 마땅찮았던 점도 정상 참작사유가 된 것으로 보인다. 국회의장과 176석에 압도적 다수 의원을 확보한 민주당이 단독으로 국회를 열어 원하는 상임위원장을 합법적으로 차지하려고 하면 야당으로선 막을 수단이 사실상 없다. 20대 국회 시절 장외투쟁을 남발해 여론의 지지를 잃어버린 통합당으로선 최후의 수단으로 장외투쟁 카드를 다시 꺼내기도 어려운 처지다. 통합당의 한 재선 의원은 지금은 민주당의 폭력적 원구성에 대한 비판 여론이 모든 것을 압도하는 상황이다. 주 원내대표의 책임 문제는 나중에 따져도 늦지 않다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 역시 주호영 체제의 지속을 선호하는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은 이날 오후 통합당 의원총회에서 “(민주당이) 다수의 횡포로 전체 상임위를 갖겠다면 차라리 그렇게 하라고 하는 게 낫지 않겠나. 우리는 국민 앞에 떳떳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지금의 국회 파행 책임이 민주당에 있는 만큼, 통합당은 상임위원장 몇 자리에 연연할 게 아니라, 정책 경쟁에 집중해 여론의 지지를 확보하면 된다는 태도다.

미래통합당 의원들이 15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야당되든 여당되든 법사위는 민주당만'이라고 적힌 손팻말 등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통합당은 민주당이 잔여 상임위원장 선임 시한으로 제시한 19일까지 원구성 협상을 거부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박병석 의장이 6개 상임위원장 선출을 위해 강제 배정한 상임위원들은 사보임이 불가피하다. 이 경우 전투력있는 의원들을 상임위 간사로 배치해 원구성 협상 당시 벌였던 힘겨루기 무대를 상임위로 옮겨가려 할 공산이 크다. 통합당 원내지도부 관계자는 장외투쟁과 실력 저지를 제외한 모든 수단을 동원했지만 타협의 정치는 없었다. 이제 남은 방안은 민주당의 오만함을 원내에서 계속해서 추궁하는 방법뿐이라고 말했다. < 노현웅 기자 >

상임위 배정 보니최강욱 의원 국토교통위, 황운하도 법사위 배제

비교섭단체인 정의당과 열린민주당 의원들도 6개 상임위원회에 분산 배치됐다. 형사재판을 받는 상황임에도 법제사법위원회 배정을 희망해 논란을 빚었던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는 국토교통위원회로 배치됐다. 법사위에는 최 대표를 대신해 18대 의원을 지낸 김진애 의원이 배정되었다. 의장단이 최 의원의 법사위행은 이해충돌에 따른 제척 사유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거물급 무소속 의원들의 상임위 배치도 눈에 띈다. 홍준표 의원은 국방위에, 김태호 의원은 외교통일위에 배정됐다. 홍준표 의원은 지역구 의원들 모두가 선망하는 예산결산특위에도 이름을 올렸다. 예결위에는 정의당 이은주, 무소속 이용호 의원도 배정됐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국토교통위를 받았다. 당대표를 지낸 지역구 3선의원에 대한 배려로 보인다. 외교통일위원장을 지낸 무소속 윤상현 의원은 문화체육관광위에 배치됐다. 기본소득당 소속 용혜인 의원과 정의당 장혜영 의원이 기획재정위원회에 배치된 것도 눈길을 끈다. 법사위 간사를 지낸 무소속 권성동 의원은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로 배정됐다. 항구도시인 강릉을 지역구로 두고 있는 사정이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 김미나 기자 >

 


      [남북 공존 약속 되새긴 ‘6·15 20’]

김연철 장관 비바람 불어도 갈 길, 20돌 행사 논평 안 해

김태년 민주 원내대표 판문점선언 비준 추진

 

구불구불 흐르더라도 끝내 바다로 향하는 강물처럼 남북은 낙관적 신념을 가지고 민족 화해와 평화와 통일의 길로 한 걸음씩 나아가야 합니다.”

북의 거친 말폭탄공세 속에 맞은 6·15 남북공동선언 20주년 기념일. 더 이상의 사태 악화를 막고 북을 다시 대화의 장으로 불러오려는 정부·여당의 노력이 온종일 이어졌다.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오전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와 오후 오두산 통일전망대에서 열린 남북공동선언 20주년 기념식에 보내온 영상 메시지에서 강조한 것은 평화와 통일을 지향할 수밖에 없는 남북의 숙명이었다. 문 대통령은 남쪽에 깊은 실망감을 토로한 김여정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의 담화 내용을 의식한 듯 기대만큼 북-미 관계와 남북관계의 진전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에 대해 나 또한 아쉬움이 매우 크다“4·27 판문점선언과 9·19 평양공동선언의 이행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할 것이다. 대화의 창을 닫지 말 것을 요청한다고 말했다. 한반도는 아직 남과 북의 의지만으로 마음껏 달려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는 점을 언급하면서 남과 북이 자주적으로 할 수 있는 사업도 분명히 있다고 강조했다.

정부의 대북정책을 이끌어온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 정세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전 통일부 장관)과 이종석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전 통일부 장관)도 최악의 사태를 막으려면 정부의 시급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최근 위기의 직접적 원인이 대북전단 살포라는 점을 들어 우선 대북전단살포금지법제정에 최대한 빨리 착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북 정상의 원 포인트 회담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서명한 ‘4·27 판문점선언의 국회 비준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정부·여당이 사태 수습에 안간힘을 쓰는 배경에는 김여정 제1부부장의 공언대로 북이 무력도발을 감행할 경우 2018년 이후 남북이 힘겹게 쌓아온 모든 성과가 수포로 돌아갈 수 있다는 우려가 자리잡고 있다. 자칫 상황이 유혈충돌로 번지면, 남북관계는 2017년 이전의 극한 대립으로 회귀할 수도 있다. 군은 북한군 동향을 예의 주시했지만, 특이동향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20돌을 맞는 6·15 선언의 핵심은 공존의 약속이었다. 김연철 통일부 장관은 경의선 도라산역에서 진행된 늦봄 문익환 시비 제막식에 참석해 비바람이 불어도 묵묵히 가야 할 길을 가겠다“6·15정신은 사대가 아닌 자주, 대결이 아닌 평화, 분단이 아닌 통일이라고 말했다.

북한 당국은 선언 20돌을 기념하는 공식행사를 열지도, 논평을 내놓지도 않았다. 공을 남쪽에 넘긴 채 다음 단계의 행동을 준비하며, 그에 따른 이해득실을 따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 길윤형 성연철 이제훈 기자 >

문 대통령 평화약속 뒤로 돌릴 수 없어협력사업 찾자

전단살포 등 적대행위 중단 합의 지켜지게 국민마음 모아주길

문재인 대통령은 6·15 남북공동선언 20돌인 15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남북관계 개선 의지를 강하게 나타냈다.

문 대통령은 더는 여건이 좋아지기만을 기다릴 수 없는 시간까지 왔다며 남과 북이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협력 사업을 찾아나서자고 북한에 제안했다. 남북 긴장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나온 문 대통령의 첫 공식 반응이다.

그는 나와 김정은 위원장이 8천만 겨레 앞에서 했던 한반도 평화의 약속을 뒤로 돌릴 수는 없다한반도 운명의 주인답게 남과 북이 스스로 결정하고 추진할 수 있는 사업을 적극적으로 찾고 실천해나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는 지난 5월 취임 3주년 때 남북 철도 연결 비무장지대 국제평화지대화 개별 관광 추진 등을 언급하며 이제는 북-미 대화만 바라보지 않겠다고 한 발언의 연장선이다.

최근 북한의 격한 대남 비판에 빌미가 됐던 대북전단 살포에 대해서도 직접 언급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후 경기 파주 오두산 통일전망대에서 열린 6·15 남북공동선언 20주년 기념식 영상 축사에서 대북전단 살포와 관련해 판문점 선언에서 남북은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전단 살포 등 모든 적대 행위를 중단하기로 합의했다국민께서 이 합의가 지켜지도록 마음을 모아주시기 바란다고 자제를 촉구했다. 지난 11일 청와대 국가안보실 차원에서 대북전단 엄정 대응 방침을 밝힌 데 이어, 이번엔 문 대통령이 직접 나서 단속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남북관계를 구불구불 흐르더라도 끝내 바다로 향하는 강물에 견주며 남과 북은 민족 화해와 평화, 통일의 길로 더디더라도 한 걸음씩 나아가야 한다. 오랜 단절과 전쟁의 위기까지 어렵게 넘어선 지금의 남북관계를 또다시 멈춰선 안 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 영상을 촬영하면서 20184·27 남북 정상회담 때 오른 연단에 올라 축사를 읽었다. 문 대통령이 착용한 푸른색 넥타이는 김 전 대통령의 아들 김홍걸 의원이 보내온 것으로 20년 전 김대중 전 대통령이 6·15 남북공동선언 때 맸던 넥타이다. 소품과 의상을 통해서도 남북관계 개선 의지를 강력히 피력한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이미 신뢰를 접고 국론으로 남쪽에 대적 행동을 선언한 북한이 전향적 태도를 보일지 불확실하다. 이날 문 대통령의 메시지에는 고위급 대화 제안 등 구체적인 제안이나 새로운 조처가 담겨 있지 않았다. 뾰족한 수가 마땅찮은 청와대의 고심을 보여준다는 평이 나온다. 문 대통령은 정부가 최선을 다하겠지만, 남북관계는 우리가 원치 않는 격랑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며 엄중한 상황 인식을 내비치기도 했다. < 성연철 기자 >

남북관계 개선 팔 걷은 여당4·27선언 국회 비준 재추진

이해찬 약속 이행 국회 뒷받침 북한, 문재인 정부 의지 믿어야

김태년 , 남북관계 발전 도와야, 개성공단·금강산관광 재개 촉구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가 1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6·15 남북공동선언 20돌을 맞은 15일 더불어민주당은 4·27 판문점선언의 국회 비준을 재추진하고 법률로 대북전단 살포를 금지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민주당을 중심으로 남북 긴장 완화를 위한 안건도 여럿 발의됐거나 검토 중이다. 북한이 군사행동까지 언급하며 긴장 수위를 최고조로 끌어올리는 상황에서 남북 대화의 조건을 만들기 위해 국회 차원의 입법 수단을 최대한 동원하는 모양새다.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6·15 남북공동선언 이후 10년의 전진과 10년의 후퇴에서 뼈저리게 얻은 교훈은 정책 일관성이다. 정상 간 합의서가 법적 구속력을 가졌을 때 정권과 상관없이 일관성 있게 남북관계 발전이 가능하다며 판문점선언 비준동의안 처리를 다시 추진한다고 밝혔다.

정부는 20189114·27 판문점선언 국회 비준동의 요청안을 국회에 제출했지만, 자유한국당 반대로 처리하지 못했다. 남북관계발전법에 따르면 남북합의서에 담긴 내용이 국가나 국민에게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줄 땐 국회가 남북합의서 체결·비준에 대한 동의권을 갖는다. 정부는 4·27 판문점선언이 국회 비준을 받게 되면 20189월 평양공동선언 등 나머지 후속 선언은 비준을 받지 않아도 된다는 입장이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남북관계를 풀어갈 해법은 오직 신뢰와 인내에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부는 북한에 우리가 최선을 다해 약속을 지킨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4·27 판문점선언 등 가능한 것은 적극적으로 이행하고, 국회는 이를 뒷받침해야 한다. 북한은 남북한 정치체제의 차이를 이해하고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의 의지를 믿어야 한다며 남북 모두를 향한 메시지를 내놨다. 미국의 역할도 촉구했다. 김태년 원내대표는 미국은 남북관계 발전을 도와야 한다개성공단, 금강산관광이 조속 재개되도록 대북제재 예외를 인정해줄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최근 북한이 문제 삼은 대북전단 살포 금지법제정도 서두를 것을 약속했다. 김태년 원내대표는 대북전단 살포는 남북 간 무력충돌도 야기할 수 있는 일종의 심리전이고 접경지역 주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평화범죄 행위라며 대북전단 문제는 역대 정부를 거치며 해결되지 않은 해묵은 사안이다. 금지하는 입법을 완료해 해묵은 소모전의 종지부를 찍겠다고 말했다. 현재 국회에는 민주당 소속 의원을 중심으로 대북전단 살포를 금지하는 법안 4개가 발의되어 있다. 이날 민주당과 열린민주당, 정의당 소속 의원 174명은 한반도 종전선언 촉구 결의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중의 조속한 종전선언 실행, 법적 구속력을 갖는 평화협정 체결 논의 시작 등을 촉구하는 내용이 담겼다. < 김원철 기자 >

, 경계·감시 강화정경두 긴장감 고조” “ 북 특이 동향은 포착 안돼

북한이 군사도발 의지를 내비치자 우리 군도 대북 경계·감시태세를 강화했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은 15군은 모든 상황에 대비해 확고한 군사대비태세를 유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군과 국방부 관계자는 이날 김여정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1부부장이 연속적인 보복 행동을 예고하는 담화를 낸 뒤 각 군도 최전방에서 대북 경계·감시태세를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군은 최전방 지역에서 열상감시장비(TOD)를 비롯해 시긴트(감청·영상정보) 장비로 감시활동을 강화하고, 공중과 해상에서는 피스아이(항공통제기)와 이지스 구축함 등으로 감시태세를 유지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전반적인 대북 감시태세가 강화된 것은 맞다면서도 다만 아직까지 (북한의 군사 활동과 관련한) 특이 동향은 포착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군 당국은 합동참모본부 산하 모든 부대에 음주·회식·골프 금지 지시를 내렸다.

한편 정경두 장관은 이날 열린 ‘2020년 국방학술 세미나에서 북한이 최근 군사 행동을 시사하는 대적 행동의 행사권을 군 총참모부에 넘겨주려고 한다고 언급해 긴장감이 매우 고조되어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역대 최대 예산을 들여 ··공 정밀 유도무기, 3t급 잠수함, 글로벌 호크, 정찰위성, F-35A 스텔스 전투기 등 첨단무기체계 전력화를 통해 전략적 억제능력과 전방위 위협 대응능력을 강화하고 있다북한의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정부의 노력을 강력한 힘으로 뒷받침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 노지원 기자 >

경찰 대북전단 살포 거점 24시간 방지체제 가동처벌 법리 검토

6·25전쟁 발발 70주기를 앞두고 일부 단체들이 대북 전단 살포를 예고하며 남북 관계가 얼어붙은 가운데, 경찰이 대북 전단 살포와 관련해 ‘24시간 방지체제를 운영하고 있다고 밝혔다.

민갑룡 경찰청장은 15일 기자간담회에서 탈북민 단체들의 대북 전단 살포에 대한 질문을 받고 인천, 경기, 강원, 충남까지 (각 지방청에) 비상경계령을 내리고 조류와 풍향을 분석해서 주요 (살포) 지점에 (경찰을) 배치해 24시간 방지체제를 가동하고 있다고 했다. 경찰은 지난 11일 통일부가 대북 전단 살포 단체인 자유북한운동연합큰샘을 고발한 것을 두고서도 법리에 따라 수사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민 청장은 “(통일부의) 수사 의뢰가 있기 전 이미 사실관계를 파악하면서 필요한 조치들을 강구하고 있었다. 사건들을 병합해서 처벌할 수 있는 법리 검토를 심도 있게 해나가겠다고 말했다.

최근 충남 천안과 경남 창녕 등에서 아동학대 사건이 잇따르면서 아동의 안전에 대해 우려가 나온 것에 대해 민 청장은 사건이 발생했을 때 대응 수준을 코드3’에서 코드1’ 이상으로 변경해 긴급 현장 출동하도록 조치했다가정폭력 신고 접수 시 해당 가정에 아동이 있을 경우 신고가 없더라도 아동학대를 추가조사하는 방안이 담긴 매뉴얼을 만들고 있다고 했다.

다음달 2년 임기가 끝나는 민 청장은 이날 기자간담회 자리를 빌어 임기 동안 인권 경찰의 초석을 다졌다고 스스로 평가하면서 짧은 소회를 나타내기도 했다. 민 청장은 후속 조처가 남아있지만 수사권 개혁이 이뤄졌고, 자치경찰제와 정보경찰 개혁 등 경찰에서 취할 수 있는 것은 어느 정도 했다. (국회) 입법까지 마무리되지 못한 게 아쉬움은 남는다인권영향평가제나 현장에서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대화경찰제, 사회적 약자 보호를 위한 여성대상 범죄 피해 방지, 디지털성범죄 수사체제 등 조치를 해나가고 있는데 인권경찰을 위했던 것으로 떠오른다고 했다. < 이재호 기자 >


[남북관계 원로전문가 3, 정세 진단과 해법]

문정인 북 실존 위협, 정면돌파, 남북정상 원포인트 회동

정세현 김여정 리더십 명운 걸려, 민주당이 입법 착수해야

이종석 전단대처 느슨, 위기 자초, 무조건 문제 해소시켜야

 

북쪽은 남쪽이 4·27 판문점선언을 이미 깼다고 생각한다. 대북전단 살포라는 합의 위반 상황을 최대한 빠르게 해소해 판문점선언을 살려야 한다. 남북관계가 6·15 공동선언 이전으로 후퇴할지 모를 위기다.”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보, 통일부 장관을 지낸 정세현 민주평통 수석부의장과 이종석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의 고언이다. 세 원로는 지금의 남북관계가 본질적 위기 상황이라면서도 대북전단 살포 금지법제정에 최대한 빨리 착수하는 게 위기 탈출의 첫걸음이라고 입을 모아 강조했다. 6·15 남북공동선언 20돌을 기념해 15일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주최한 좌담에서 나온 진단이다.

세 원로는 북쪽의 대남 강경 기조가 상당 기간 지속되리라고 내다봤다. 문정인 특보는 북쪽은 남쪽이 미국과 함께 시간을 끌며 북한 체제를 넘어뜨리려는 게 아니냐, 그러니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판단한 듯하다고 말했다. 이어 북쪽이 실존적 위험을 느끼고 정면돌파하겠다는 것이다. 레닌식으로 말하면 남쪽을 (미국보다) ‘약한 고리로 판단한 셈이라고 짚었다.

정세현 부의장은 남북관계의 겨울이 길어질 것 같다고 걱정했다. 그는 “13일 담화를 보면 김여정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당·국가한테서 위임받은 권한으로 조선인민군까지 지휘한다는 얘기라며 (대북전단) 문제를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따라 김여정이 2인자 자리를 굳힐 수도 무너질 수도 있는 상황이라 (남쪽에) 굉장히 극렬하게 나오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북쪽은 고강도 제재와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심각한 경제적 어려움에 후계자 문제까지 겹친 상황에서 김여정의 리더십을 확보해나가려는 터라 (남쪽을 비난하는) 이런 불편한 상황이 상당 기간 지속될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정세현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왼쪽부터),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이 15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6·15 공동선언 20주년 더불어민주당 기념행사의 하나로 열린 라운드 테이블에서 발언하고 있다.

세 원로는 최근 북쪽의 대남 발언을 워싱턴식으로 해석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길을 찾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종석 전 장관은 북쪽이 대남 강경 행보만 하는 게 아니라 내부적으로도 강력한 캠페인을 하고 있어 전단 문제가 호랑이 등에 올라탄 극히 위험한 상황이라며 지금은 정부가 다른 얘기를 하지 말고 무조건 전단 문제부터 해소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 원로는 정부가 북쪽의 누적된 대남 불만이 대북전단 문제로 불거지리라는 걸 알고도 느슨하게 대처해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막기 어려운 상황을 자초했다고 비판했다.

정 부의장은 북쪽이 상징성이 강한 6·25에 맞춰 개성 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려 할 수도 있다. 정부가 굼뜨니 민주당이 그 전에 입법 절차에 착수해 시간을 벌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일에는 타이밍과 우선순위가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 전 장관은 국민 60%가 전단을 금지하고 법도 만들어야 한다고 답한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정부는 접경지 주민의 생명과 안전이 전단을 살포하는 몇몇 탈북자의 권리보다 못한 거냐 물으며 정면돌파를 시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세 원로는 그럼에도 기회와 희망이 남아 있다고 했다. 이 전 장관은 북쪽의 2인자인 김여정이 (대북전단이라는) 쓰레기만 치우려고 전면에 나섰겠냐정부가 우물쭈물하면 남북관계의 문이 아예 닫히겠지만, 전단 문제에 단호하게 대처하면 그다음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 특보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은 지금까지 서로를 직접 비판하지 않는 등 정상 간 신뢰는 유지되고 있다죽어가던 북-미 정상회담의 불씨를 살린 2018526일 판문점 정상회담과 같은 원포인트 회동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문 특보는 남북 정상이 비공개로라도 만나려면 환경과 조건이 만들어져야 한다며 대미 설득과 대중 외교 강화가 필요하다고 짚었다. 그는 미국을 설득해 남북관계를 개선할 외교적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남북 소통 창구가 끊겼으니 중국과 외교를 잘해서 북한의 군사 도발은 용납하지 않는다는 햇볕정책의 제1원칙을 (중국이 북에 전하도록) 강조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동원 북핵문제는 미북 적대의 산물, 미국 결단이 해결 열쇠

미국, 2018년 싱가포르 합의 따라 비핵화 관계정상화 병행 추진해야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이 15일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6.15 남북공동선언 스무돌 기념 특별강연을 하고 있다.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은 15북한 핵문제는 미-북 적대관계의 산물이라며 미국의 결단이 문제 해결의 열쇠라고 말했다.

임동원 전 장관은 이날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주최로 열린 6·15 남북공동선언 스무돌 기념 특별강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북 적대관계가 해소되지 않는 한 북한은 어렵게 건설한 핵무력을 결코 버리려 하지 않을 것이라며 하지만 미-북 적대관계가 해소되고 평화가 보장된다면 핵무기를 보유할 필요가 없게 될 것이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미국은 (2018612일 북-미 정상의) 싱가포르 합의에 따라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으며 상호신뢰를 다지며 비핵화와 관계 정상화를 병행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임 전 장관은 미국에서는 북한과 관계를 정상화하고 한반도 평화체제가 구축되면 주한미군, 한미안보동맹,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이 흔들리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적지 않고, 이에 따라 한반도의 현상유지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짚었다. 그러고는 유럽에서는 냉전 종식 뒤에도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를 유지하고 있으며 유럽에 미군이 계속 주둔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게 된다한반도 평화가 실현돼도 한미동맹과 주한미군이 유지될 수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유감스럽게도 그동안 일시 중단됐으나 이제 다시 한반도평화프로세스를 재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이제훈 기자 >

 


한달전 이재용 두둔 칼럼처남은 삼성서울병원장 재직 중

핵심 피의자 최지성과 고교 동창 스스로 사임해야지적

 

대법관 시절 에버랜드 전환사채(CB) 저가 발행사건에 무죄 판단을 내렸던 양창수 검찰수사심의위원회(수사심의위) 위원장이 최근 삼성 총수 일가의 경영권 승계 작업을 두둔하는 취지의 칼럼을 언론에 기고했던 사실이 드러나는 등 자격 논란이 더욱 거세지고 있다. 양 위원장은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의 핵심 피의자인 최지성 전 삼성 미래전략실 실장의 고등학교 동기이고, 양 위원장의 처남은 삼성서울병원장으로 재직 중이어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기소 여부를 판단하는 수사심의위 위원장 역할을 하기에 부적절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양 위원장은 지난달 22<매일경제>에 기고한 양심과 사죄, 그리고 기업지배권의 승계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이 부회장의 대국민 사과를 언급하며 (재용) 부회장 또는 삼성은 그 승계와 관련하여 현재 진행 중인 형사사건을 포함하여 무슨 불법한 행위를 스스로 선택하여 저질렀으므로 사죄에 값하는 무엇이라도 있다는 것인가?”라고 썼다. 이 부회장에게는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의 법적 책임이 없다는 인식을 간접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양 위원장은 또 칼럼에서 아버지가 기업지배권을 자식에게 물려주려고 범죄가 아닌 방도를 취한 것에 대해 승계자가 공개적으로 사죄를 해야 하는가?”라고 되물은 뒤 혹 불법한 방도라고 하더라도, 그 행위의 당사자도 아닌데 거기서 이익을 얻었다는 것으로 자식이 사과를 할 것인가라고 덧붙였다. 삼성 총수 일가의 경영권 승계과정에서 불법적인 일이 있었더라도 불법 행위의 당사자는 이건희 회장이지, 아들인 이 부회장이 책임질 일은 아니라는 얘기다.

대법관 시절 양창수 검찰수사심의위원장.

양 위원장은 이 부회장과 함께 경영권 불법 승계 작업의 공범으로 구속영장이 청구됐던 최지성 전 미래전략실장의 서울고 22회 동창이다. 또 양 위원장의 처남인 권오정 박사는 삼성서울병원장으로 재직 중이다. 앞서 이번 검찰 수사의 시발점이 됐던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사기 건을 금융위원회 소속 증권선물위원회 산하 감리위원회가 20185월 심의할 때도 4촌 이내 혈족이 삼성그룹에 재직하고 있는 한 감리위원을 배제한 바 있다.

수사심의위 운영지침에서도 위원이 사건 관계인과 친분관계나 이해관계가 있어 심의의 공정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스스로 사건을 피해야 한다. 주임검사나 신청인은 불공정 심의가 우려되는 위원에 대한 기피 신청을 낼 수 있고 이를 위원장이 판단해야 하는데, 이번에는 위원장부터 기피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큰 상황이다.

이 때문에 양 위원장 스스로 사건 심의에 참여하지 말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지우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간사는 14양 위원장이 에버랜드 전환사채 판결에서 나아가 최근까지 특정한 예단을 갖고 언론에 기고한 사실까지 드러난 것으로 그 부적절성이 더 뚜렷해졌다양 위원장 본인이 스스로 회피 절차를 밟아야 이후에도 정당성 시비 등을 그나마 방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위원장이 부득이한 사유로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에는 15명의 현안위원 가운데 호선된 임시 위원장이 역할을 대신하게 된다. < 임재우 김경락 기자 >

편법 승계에 면죄부대법관 시절 에버랜드 전환사채저가발행 무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기소 여부를 검찰수사심의위원회(수사심의위)가 심의하게 되면서 대법관 시절 에버랜드 전환사채(CB) 저가 발행사건 무죄 판단을 내린 양창수 위원장의 수사심의위 참여에 논란이 일고 있다. 삼성 총수 일가의 경영권 편법 승계에 면죄부를 준 양 위원장이 이 부회장의 경영권 불법 승계기소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다.

서울중앙지검 부의심의위원회는 11일 이 부회장의 변호인단이 신청한 수사심의위 소집 안건을 의결했다. 주부와 교사, 회사원, 의사, 대학원생, 자영업자, 퇴직 공무원 등으로 구성된 15명의 위원들은 이날 검찰과 이 부회장 변호인단이 낸 의견서를 검토한 뒤 3시간이 넘는 토론을 거쳐 수사심의위 부의를 결정했다. 위원들은 사회적으로 관심이 큰 사건인 만큼 외부의 의견도 들어보고 처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공감대를 형성했다고 한다. 검찰 관계자는 표결 결과를 공개할 순 없지만 과반수를 살짝 넘었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대검은 다음주부터 수사심의위 절차에 착수한다. 수사심의위는 15명 위원으로 구성된 현안위원회를 꾸려 이 부회장 기소 여부를 심의·의결하는데 이는 권고적 효력을 갖는다. 그러나 수사심의위와 현안위원회를 이끄는 양창수 위원장은 20095월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이건희 회장에게 무죄를 선고한 다수의견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회장은 자녀들의 그룹 지배권을 강화하기 위해 에버랜드 전환사채를 이 부회장 등에게 헐값에 넘긴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의 배임)로 기소됐지만 당시 대법원은 대법관 6 5 의견으로 면죄부를 줬다. 당시 양창수 대법관 등 6명은 저가 발행으로 인한 기존 주주 소유 주식의 가치 하락은 해당 주주의 손해일 뿐 회사의 손해가 아니므로 경영진에게 배임죄를 물을 수 없다는 삼성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이 때문에 이 부회장의 불법 경영권 승계라는 동일한 성격의 사건을 다루는 수사심의위 심의에 양 위원장이 참여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는 목소리가 있다. 위원장은 현안위 의장으로 표결에는 참여하지 않지만, 회의를 주재할 뿐 아니라 무작위 추첨의 현안위 구성 과정에서 특정 직역이나 분야에 편중되지 않도록 하는권한도 갖고 있다. 부장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검찰과 이 부회장 쪽 모두 민감한 사건이기 때문에 절차상 문제로 어느 한쪽이 승복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지 않도록 사전에 양 위원장 본인이 회피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이날 대법원 2(주심 안철상 대법관)는 박근혜 전 대통령과 공모해 이 부회장에게서 승계 작업을 도와달라는 청탁과 함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의 재상고심에서 징역 18년형이 선고된 원심을 확정했다. 86억여원의 뇌물이 오간 경영권 불법 승계 작업의 실체를 대법원이 거듭 확인한 것으로 승계 작업은 미래전략실이 알아서 했을 뿐이라는 이 부회장 쪽 방어전략은 설득력이 크게 떨어지게 됐다. < 김정필 임재우 기자 >

[사설] 양창수 심의위원장, ‘이재용 사건에서 손 떼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불법승계 사건에 대한 기소 여부를 다룰 검찰수사심의위원회의 양창수 위원장이 적격성 논란에 휩싸였다. 대법관 재직 시절 이건희 회장의 에버랜드 전환사채(CB) 저가 발행 사건에서 무죄 판결 쪽에 선 것이 입길에 오른 데 더해, 최근엔 삼성 경영권 승계 과정을 두둔하는 글을 신문에 발표한 일로 더 큰 논란을 빚고 있다. 양 위원장 스스로 이 사건에서 손을 떼는 것 말고 선택지가 없다고 본다.

논란이 된 글은 양 위원장이 지난달 22<매일경제>에 기고한 것이다. 양 위원장은 이 글에서 이 부회장의 대국민 사과와 관련해 아버지가 기업지배권을 자식에게 물려주려고 범죄가 아닌 방도를 취한 것에 대하여 승계자가 공개적으로 사죄를 해야 하는가라며 혹 불법한 방도라고 하더라도, 그 행위의 당사자도 아닌데 거기서 이익을 얻었다는 것으로 자식이 사과를 할 것인가라고 물었다. 교묘하기 이를 데 없는 언술이다.

양 위원장은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이 부회장이 아무런 일도 하지 않은 수동적인 존재라고 간주하면서, 그의 무죄를 단언한다. 그러나 이 부회장의 대국민 사과 안에는 이번에 수사심의위에 오른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과정에서의 분식회계 등 불법행위까지 포함돼 있다는 건 이론의 여지가 없다. 이 과정이 이건희 회장이 쓰러진 다음에 이뤄졌다는 점에서, 양 위원장의 주장은 사건의 선후관계를 교묘하게 비튼 왜곡이다.

시민의 상식으로 기소 여부를 판단해야 하는 수사심의위의 수장이라면 해당 사건에 대해 사소한 예단도 가져서는 안 된다. 하지만 양 위원장의 글은 이 부회장과 삼성의 법률 대리인이 쓴 변론문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가 기고한 시점이 이 부회장의 수사심의위 소집 요청 전이었다는 건, 엄정한 심의를 위해 그나마 다행이다.

양 위원장이 무죄 의견을 냈던 에버랜드 전환사채 사건과 이번 수사심의위 사건은 삼성 경영권 승계의 연속선상에 있다. 그런 이유만으로도 그는 사건을 맡지 않는 게 마땅하다. 더구나 그는 이번 사건의 공범으로 구속영장이 청구됐던 최지성 전 미래전략실장과 동문이며, 그의 처남은 삼성서울병원장인 것으로 확인됐다. 수사심의위 운영 지침에는 이런 경우 회피를 신청할 수 있게 돼 있다. 수사심의위 전체의 신뢰가 걸린 문제인 만큼 책임자다운 선택을 하기 바란다.

정의당 “‘삼성맨이 이재용 수사심의양창수 사퇴해야

심상정 정의당 대표가 15일 공정성 논란이 불거지고 있는 양창수 대검찰청 수사심의위원장의 사퇴를 촉구했다.

심 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상무위원회에서 양 위원장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수사심의위원회를 지휘할 자격이 없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양 위원장은 에버랜드 전환사채 사건 판결부터 삼성을 옹호해 왔다한 달 전 이재용 부회장의 무죄를 주장하는 글을 기고했고, 최근에는 양 위원장의 처남이 삼성서울병원장으로 재직한다는 사실도 확인됐다고 지적했다.

심 대표는 수사심의위원회는 삼성의 눈이 아니라 시민의 눈으로 기소 적정성을 심의하는 기구라며 공정한 인물들로 구성되어야 마땅하다. ‘삼성맨인 위원장이 수사심의위원회를 지휘한다면 어떤 결정이 나더라도 시민들은 왜곡됐다고 생각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검찰이 나서서 양 위원장에 대한 기피 신청을 하기 바란다고 주문했다. < 김원철 기자 >

이재용 기소 여부수사심의위, 26일 열린다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으로 수사를 받고 있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기소 여부를 가리는 검찰수사심의위원회가 오는 26일 열린다. 최근 삼성 총수 일가를 두둔하는 내용의 칼럼 기고 등으로 공정성 논란을 빚고 있는 양창수 수사심의위원장이 위원장 업무를 수행할지 관심이 쏠린다.

15일 삼성 쪽 이야기 등을 종합하면, 대검찰청은 수사팀 주임검사와 이 부회장 변호인 양쪽에 오는 26일 수사심의위를 열기로 했다고 통보했다. 앞서 서울중앙지검은 지난 11일 부의심의위원회 회부 결정(위원 15명 중 찬성 9, 반대 6명 의견) 내용을 담은 수사심의위 의결서와 소집 요청서를 다음날인 12일 오전 대검에 보냈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당일 수사심의위 소집을 결정했다.

앞으로 수사심의위는 이 부회장 사건을 심의할 현안위원회를 구성한다. 법조계와 학계, 언론계 등 수사심의위 위원 150~250명 중 무작위 추첨으로 심의기일에 출석 가능한 현안위원 15명을 선정한다. 현안위원 명단이 외부로 유출될 우려를 고려해 위원 15명의 추첨은 오는 26일이 임박한 시점에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주임검사와 이 부회장 변호인은 심의기일 전날까지 에이(A)4 용지 30쪽 이내의 의견서를 제출해야 한다.

심의기일에는 현안위원들이 의견서를 검토한 뒤 주임검사와 이 부회장 변호인의 의견을 청취하는 절차가 진행된다. 양쪽은 30분 안에 사건을 설명해야 한다. 현안위원들은 양쪽에 질의할 수도 있다. 이 부회장 변호인은 심의기일에 기소 여부와 수사 계속 여부에 대한 의결까지 이뤄질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 기소 여부를 결정할 현안위 날짜가 결정되면서 회의를 주재하는 양창수 위원장의 거취가 주목되고 있다. 양 위원장은 대법관 시절 에버랜드 전환사채(CB) 저가 발행사건 무죄 선고와 최근 삼성 총수 일가의 경영권 승계 작업을 옹호하는 내용의 칼럼 기고로 자격 논란이 일고 있다. 주임검사와 신청인은 위원장이나 현안위원 기피를 신청할 수 있다. 위원장이 기피 신청 당사자가 된 경우에는 임시 위원장을 현안위원들 중에 뽑아 위원장 업무를 대행할 수 있다. < 김정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