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영미 소장 의문사” 근거없이 배후설·타살설 주장
“자살 결론 내놓고 부실조사”…도 넘은 의혹 제기
곽상도 미래통합당 의원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쉼터를 운영해온 손영미 소장의 죽음에 대해 ‘음모론’을 퍼뜨리고 있다. 통합당의 ‘위안부 할머니 피해 진상규명 태스크포스(TF)’ 위원장을 맡고 있는 곽 의원은 정의기억연대(정의연)의 회계부정 의혹이 불거진 뒤 ‘아니면 말고’식 폭로를 이어왔다. 그의 행태는 과거 공안검사 시절 ‘자살방조’라는 음모론에 기반해 무고한 시민을 처벌한 ‘강기훈씨 유서대필 조작 사건’(1991년) 수사팀에 참여한 전력을 떠올리게 한다.
곽 의원은 11일 보도자료를 내어 손씨가 숨졌을 당시의 정황을 언급하며 “경험이나 상식에 비춰볼 때 사망까지 이른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경찰에서 손 소장이 ‘자살’이라는 결론을 미리 내놓고 제대로 조사를 하고 있는지 의문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날 “의문사”라는 표현까지 쓰며 이 사건에 배후가 있음을 암시하는 ‘음모론’을 펼쳤다. 현재 손씨의 사망 사건을 수사 중인 파주경찰서의 배용석 서장이 문재인 정부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실에서 근무한 사실을 언급하며 “수사 책임자를 교체해서 철저히 조사하라”고 촉구했다.
경찰은 부검 결과 등을 종합한 결과 “타살의 혐의가 없다”고 확신하고 있다. 파주경찰서 관계자는 “경찰이 현장에서 사진을 찍고 증거를 모두 수집했다. 신고를 받은 소방관도 문을 부수고 들어갔고, 국과수 관계자도 현장에 왔다. 현장의 흔적이나 끈의 흔적 등 모든 내용을 봤을 때 자살이라는 소견이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곽 의원 쪽이) 법의학 전문가들에게 먼저 물어나 봤으면 좋겠다”고 꼬집었다.
곽 의원은 앞서 10일에는 손씨와 관련해 119에 처음 신고한 이가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비서인 점을 들어 음모론을 유도하기도 했다. 그는 당시 119에 녹음된 녹취록을 언론에 공개했는데, 곽 의원과 같은 당의 조수진 의원은 신고자가 “복수 표현인 ‘저희가’를 썼다”며 “윤 의원이나 정의연 쪽 인사들이 증거인멸, 사전모의 등을 위해 고인과 연락을 취하다가 찾아간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당시 녹취록을 보면 신고자는 “아는 분이 지금 몇시간 동안 연락이 안 된다. 차도 집 앞에 있어서 집 안에 있을 거라고 추정이 되는데 지금 아무리 두드려도 반응이 없다. 굉장히 걱정되는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신고자는 오랫동안 정의연에서 일해온 활동가 출신으로 당일 옛 동료들과 함께 연락이 안 닿는 손씨를 찾아간 것으로 확인됐다.
곽 의원은 극우 성향의 유튜버 및 보수언론과의 상호작용으로 음모론을 유포시켰다는 비난을 받는다. 극우 유튜버들에게 음모론의 단초를 제공한 뒤 그들이 음모론을 제기하면 그 내용을 언론에 흘리고, 보수언론이 이를 퍼뜨려 확산시키는 방식이다. 곽 의원은 손씨가 숨진 지 이틀 뒤부터 언론 등을 통해 슬그머니 ‘음모론’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그는 지난 8일 기자들에게 손씨가 숨진 당일 밤 윤 의원이 페이스북에 손 소장을 언급하는 글을 올렸다가 삭제한 것을 들어 ‘배후설’을 제기했다. “같은 날 밤 손씨에게 안 좋은 일이 일어났다. 이게 우연의 일치일 수 있는지 의아하다”는 것이다. 그는 “윤 의원이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손씨와 연락을 한 적이 있는지 등을 국민 앞에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윤 의원이 손씨가 숨지기 전 연락해 어떤 압력을 가한 게 아니냐는 주장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윤 의원이 페이스북에 손씨에 대한 글을 올린 것은 윤 의원의 비서, 정의연 관계자 등이 손씨의 죽음을 확인한 뒤의 일로, ‘추모’의 성격이 커 보인다.
이런 주장이 언론을 통해 유포되고, 커뮤니티 등에서 음모론에 동조하는 여론이 확산되면서 곽 의원의 주장은 ‘그럴듯한 의혹’으로 포장됐다. ‘윤 의원이 손씨가 숨지기 전 연락을 했을 것’(8일)이라는 수준의 주장에 보수언론이 반응하자, 급기야 이날 고인의 사망 당시 정황까지 상세히 공개하며 ‘타살설’에 가까운 주장을 펼친 것이다.
반면 곽 의원은 손씨가 검찰 수사에 압박감을 느꼈을 가능성은 일축했다. 그는 “검찰에서는 ‘고인을 조사한 사실이 없고, 출석 요구를 한 적도 없다’고 밝혀 사망 경위에 대한 의문은 더욱 증폭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정의연 쪽은 손씨가 검찰 수사에 대한 압박감을 토로했다고 증언한다. 지난 10일 손씨의 장례 절차가 끝나자마자 검찰이 신속하게 그의 휴대전화 등 유품을 경찰에게서 압수수색한 것은, 손씨가 검찰의 주요 수사 대상에 올라 있었음을 뒷받침한다. 검찰이 정의연 관련 수사에서 개인 휴대전화를 압수수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또 곽 의원은 진위가 확인되지 않은 인터넷 댓글까지 언급하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유가족이라고 하는 분이, 이용수 할머니 기자회견 후에 손 소장님이 할머니 은행 계좌에서 엄청난 금액을 빼내서 다른 은행계좌에다가 보내는 등의 돈세탁을 해온 걸 알게 되어, 그 금액을 쓴 내역을 알려달라고 했다고 한다”고도 주장했다. 이 댓글을 쓴 이는 생존 피해자인 길원옥 할머니의 가족이지만 근거를 갖고 쓴 것은 아닌 걸로 전해졌다. 길 할머니의 가족은 이날 <한겨레>와 만나 “해당 글을 보고 깜짝 놀라서 (글을 올린 이에게) 내리라고 했다”고 말했다. < 배지현 엄지원 기자 >
곽상도, 29년전 ‘유서대필 사건’ 강압수사…강기훈 씨에 사과 안해
손영미 ‘평화의 우리집’ 소장의 죽음과 관련해 무차별적 의혹을 제기하며 11일 논란의 중심에 선 곽상도 미래통합당 의원은 검사 출신으로 박근혜 정부에서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을 지냈다. 지난 4월 총선에서 대구 중·남구에 출마해 재선에 성공했다.
그는 1991년 ‘강기훈씨 유서대필 사건’ 수사팀에 참여한 검사로 강압수사를 벌였다는 논란에 휘말리기도 했다. 검찰은 1991년 ‘노태우 정권 퇴진’을 요구하며 분신한 김기설(당시 전민련 사회부장)씨의 유서를 강기훈씨가 대신 써줬다는 혐의로 구속수감했다. 재심 결과 강씨는 2015년 24년 만에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고, 2018년엔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가 수사 과정에서 인권침해가 있었던 사실을 확인하고 검찰에 사과를 권고했다. 그러나 곽 의원은 단 한차례도 사과하지 않았다.
곽 의원은 이용수 할머니의 기자회견 이후 정의기억연대 회계부정 등 논란이 일자 지난달 25일부터 ‘위안부 할머니 피해 진상규명 태스크포스(TF)’ 위원장을 맡아 ‘정의연 저격수’로 나섰다. 그는 윤미향 의원의 딸 미국 유학 비용, 윤 의원 가족의 주택 구입 비용 출처 등을 지속적으로 문제 삼으며 “정의연이 할머니들을 앵벌이 시켜서 돈을 벌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며 정의연과 윤 의원을 거칠게 비난해왔다.
죽음마저 정치 공세 수단으로 활용하는 곽 의원의 모습에 정치권은 우려와 유감을 나타냈다. 특히 전날 손 소장의 죽음과 관련한 ‘119 신고 녹취록’을 공개한 데 이어 이날은 뚜렷한 근거 없이 타살 의혹을 제기하자 당내에서도 ‘도가 지나치다’는 비판이 나왔다. 진상규명 티에프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 초선 의원은 “의혹만 제기하는 건 티에프의 역할이 아닌데 안타깝다. 곽 의원 개인 입장으로 봐달라”고 했다. 또 다른 초선 의원은 “이런 주장을 공식적으로 당이 하면 부담스러우니 티에프에서 총대를 멘 것 같다. 그런데 오늘 회견은 티에프 위원들도 동의해준 적이 없다며 놀라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허윤정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기자들과 만나 “성급하게 죽음의 원인을 규정하는 데 대해 상당한 우려가 있다”고 했다. 조혜민 정의당 대변인은 “곽 의원은 자신이 납득할 수 없다며 타살 가능성을 유포하고 있으니 비통한 심정이다. 희박한 근거로 음모론을 퍼트리는 행위는 반드시 규탄받아야 한다”고 논평했다. < 김미나 김원철 장나래 기자 >
윤미향, 곽상도 향해 “고인의 죽음을 폄훼하지 말아달라”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11일 손영미 ‘평화의 우리집’ 소장과 관련해 무차별한 의혹을 제기한 곽상도 미래통합당 의원을 향해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한 고인의 사망 경위를 자세히 언급하며 터무니없는 의혹을 제기하는 것 자체가 고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윤미향 의원실’은 이날 윤 의원 페이스북 통해 “최근 곽상도 의원은 고인의 죽음을 ‘의문사’, ‘타살’ 등으로 몰아가고 있다”며 “최초신고자가 윤미향 의원실 비서관이라는 이유로 윤 의원에게 상상하기조차 힘든 의혹을 또다시 덮어씌우고 있다. 이도 모자라 이제는 고인에게마저 부정한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며 고인을 죽음을 이르게 한 것은 무차별적인 의혹 제기에서 비롯된 것일진대, 이는 다시 한 번 고인을 죽음으로 내모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냐”고 밝혔다. 이어 “지난 6일 당시 119에 신고한 최초신고자는 윤미향 의원실 비서관이 맞다. 일각에서는 국회의원 비서관이 왜 신고자냐는 물음을 던지지만, 이는 고인과 비서관, 윤 의원의 끈끈한 자매애를 모르고 하는 허언에 불과하다”며 “16년 세월 동안, 이들의 관계는 가족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가족이 최근 상황으로 심적, 육체적으로 힘들어하고 수면제를 복용해도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한다고 들었는데 가만히 있을 사람이 누가 있냐”고 말했다. 또 “6일 당일 오후 연락이 닿지 않아 모두가 걱정하고 있었다. 최근 심적 상태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고인의 집에 찾아가 보자는 마음이 앞섰다. 그리고 119에 신고했으며, 결국 고인의 죽음을 알게 된 것”이라며 “고인의 죽음을 폄훼하지 말아달라”고 호소했다. < 서영지 기자 >
손영미 소장 죽음에 ‘도 넘은 음모론’ 펼친 곽상도
[한겨레신문 사설]
곽상도 미래통합당 의원이 11일 손영미 ‘평화의 우리집’ 소장의 죽음과 관련해 공개적으로 의혹을 제기했다. 대놓고 표현하지는 않았으나, 손 소장이 스스로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게 아니라 누군가에게 타살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강하게 암시했다. 하지만 곽 의원이 제시한 근거들은 빈약하기만 하고, 논리 비약도 심하기 이를 데 없다. 적어도 타인의 죽음에 대해 의혹을 제기하려면 충분하고 합리적인 근거를 제시해야 마땅하다. 그러지 않으면 고인을 욕되게 할 뿐 아니라 정치적 의도까지 의심받게 된다.
곽 의원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손 소장이 발견될 당시 자세로는 스스로 목숨을 끊기 어렵다”며 사실상 타살 의혹을 제기했다. 앞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직접 현장을 조사하고 1차 부검까지 마친 뒤 “타살 가능성이 없다”는 소견을 내놓았다. 그런데도 곽 의원은 “문재인 정부의 의문사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나가도 너무 나갔다.
곽 의원은 또 손 소장이 숨진 날 밤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에스엔에스에 손 소장에 대한 글을 올린 것과 관련해 “우연의 일치일 수 있는지 의아하다”고 말했다. 윤 의원의 글과 손 소장의 죽음 사이에 무슨 연관이 있는 것처럼 보이도록 얘기한 것이다. 하지만 윤 의원이 글을 올린 시각은 손 소장이 숨진 이후다. 선후 관계부터 틀렸다.
곽 의원은 어느 인터넷 기사에 ‘위안부 피해자 유가족’ 이름으로 올라온 댓글을 들어, 손 소장이 할머니 계좌에서 거액을 빼내 돈세탁을 해왔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비리를 덮으려는 과정에서 죽음에 이르렀다는 얘기다. 댓글 내용의 신빙성을 검증하지도 않은 채, 비극으로 생을 마감한 이에게 파렴치범의 이미지를 덧씌우는 게 국회의원으로서 할 도리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1991년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 조작 당시 곽 의원이 수사팀 검사였고, 국과수가 강씨 필적 감정을 조작했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곽 의원은 아직까지 한마디 사과도 하지 않았다. 그러고는 이제 와서 손 소장에 대한 국과수 부검에 의혹을 제기하는 억지를 부리고 있다. 2017년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생활지원을 강화하는 법률에 반대표를 던진 그가 미래통합당의 ‘위안부 할머니 피해 진상규명 티에프’ 위원장을 맡고 있는 것도 어처구니없다. 곽 의원은 근거 없는 주장을 거두고, 어울리지도 않는 ‘위원장 자리’에서 내려오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