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 종식 집중하다 대선 공약 개헌안 공식 발표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헌법 전문 수록 첫손에

오랜 지론 대통령 4년 연임제, 결선투표제 제시
'정권 돌격대' 전락 감사원, 국회 소속으로 이관

대통령 '묻지 마 거부권'과 계엄선포 권한 제한도
총리 국회 추천…검찰총장 임명 국회 동의 필수

검찰 영장 청구 독점 폐지, 수사권 근거 무력화
대신 공수처‧국수본 수사 역량 대폭 강화할 듯

"내년 지방선거 또는 2028년 총선 때 국민투표"
"4년 연임, 이번엔 적용 안 돼"…임기 단축도 일축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가 18일 광주광역시 북구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열린 5·18민주화운동 45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뒤 취재진과 만나 이날 발표한 개헌 관련 입장에 대한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5.5.18 [공동 취재] 연합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18일 대통령 4년 연임제와 국무총리 국회 추천, 검찰의 영장 청구권 독점 조항 폐지 등을 골자로 한 개헌 구상을 밝혔다. 개헌안을 이르면 내년 6월 지방선거나 늦어도 2028년 4월 국회의원 총선거에 맞춰 국민투표에 부치자는 제안도 함께 내놨다.

 

그간 정치권과 시민사회 일각에서 이 후보가 개헌에 소극적이거나 논의를 회피한다는 비판을 가하기도 했으나 이 후보는 "개헌은 필요하지만 지금은 내란 종식에 집중해야 할 때"라며 '개헌 블랙홀'로 인해 전선이 흐트러지는 상황을 경계해왔다. 이제 고비를 어느 정도 넘기고 공식 선거운동 기간에 접어든 만큼 대선 공약으로서 정리된 입장을 발표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이 후보는 이날 페이스북에 <진짜 대한민국의 새로운 헌법을 준비합시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현행 우리 헌법은 1987년 우리 국민이 서슬 퍼런 군사독재에 맞서 직접 쟁취한 승리의 증표였다. 하지만 지난 12‧3 비상계엄으로 대한민국 헌정질서와 민주주의는 철저히 유린됐다"면서 "위대한 국민들이 오만한 권력자를 단죄했지만 그 과정에서 드러난 우리 헌법과 민주주의의 취약점은 더 막중한 과제를 남겼다"고 전했다.

 

이어 "민주당과 국민의힘 등 제 정당은 개헌의 일부 과제에 합의했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의 정신을 헌법에 수록하는 것과 계엄의 요건을 강화하는 데 사회적 합의를 이룬 것"이라며 "하지만 4년 중임제와 책임총리제와 같은 주요 의제는 합의에 닿으려 했으나 이뤄내지 못했고, 국민투표법 개정이라는 절차적 한계까지 맞닥뜨리며 개헌의 발걸음이 멈칫거렸다. 멈춰진 걸음을 다시 시작하자"고 했다.

 

그러면서 "이제 시대 흐름에 맞는 새로운 시스템과 더 촘촘한 민주주의 안전망으로서의 헌법을 구축할 때다. 역사와 가치가 바로 서고, 다양한 기본권이 보장되며, 지방자치가 강화되고, 대통령의 권한이 적절히 분산된 진짜 대한민국을 만들어야 한다"고 설파했다.

 

이 후보는 가장 먼저 5‧18 광주 민주화운동 정신의 헌법 전문(前文) 수록을 꼽았다. 그는 "우리 사회는 이미 이에 합의했다. 민주주의의 산 역사를 헌법에 명시함으로써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한층 더 굳건하게 지켜나가자"며 "또 부마항쟁과 6‧10항쟁, 촛불 혁명과 빛의 혁명으로 이어진 국민 승리의 역사가 헌법에 수록될 수 있도록 사회적 논의를 시작하자"고 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가 18일 광주광역시 북구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열린 5·18민주화운동 45주년 기념식에서 유가족과 인사하고 있다. 2025.5.18. 연합

 

다음으로 오랜 지론인 대통령 4년 연임제와 함께 결선투표제 도입을 제시했다. 이 후보는 "대통령의 책임을 강화하고 권한은 분산하자. 대통령 4년 연임제 도입으로 정권에 대한 중간 평가가 가능해지면 그 책임성 또한 강화될 것"이라며 "아울러 대통령 결선투표제 도입으로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해 불필요한 사회적 갈등을 최소화해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윤석열 집권 이후 '정권 돌격대'로 전락한 감사원의 헌법적 개혁 방안에도 중점을 뒀다. 이 후보는 "감사원은 행정기관의 사무와 공무원의 직무를 감찰하는 엄정한 감시자로서 본연의 업무에 충실해야 한다. 더 이상 '감사원이 대통령을 지원하는 기관'이라는 의혹과 우려를 낳아서는 안 된다"면서 "국회 소속으로 이관해 독립성을 부여해야 한다. 이를 통해 국회의 결산 및 회계감사 기능도 강화될 것"이라고 역설했다.

 

윤석열이 국회 무력화 수단으로 악용해온 법률안 거부권(재의요구권)의 제한도 주요하게 거론했다. 이 후보는 "견제와 균형이라는 민주주의 원칙을 거슬러 '묻지 마' 식으로 남발돼 온 대통령의 거부권을 제한해야 한다. 본인과 직계가족의 부정부패, 범죄와 관련된 법안이라면 원천적으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면서 "이를 지키지 않으면 국회가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해 삼권분립의 가치를 바로 세워야 한다"고 했다.

 

비상명령 및 계엄 선포에 대한 국회 통제 권한을 강화하는 방안도 제안했다. 대통령이 비상명령이나 계엄을 선포하려면 사전에 국회에 통보하고 승인을 얻도록 하며, 긴급한 경우에도 24시간 내 국회 승인을 얻지 못하면 자동으로 효력을 상실하게 해서 '아닌 밤중에 비상계엄'이 다시는 일어날 수 없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무총리 임명과 관련해서는 국회 추천을 받아야만 총리를 임명할 수 있게 하자고 했다. 대통령이 총리의 권한을 존중하도록 해 총리로서 맡은 바 직무를 더 든든히 수행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대통령이 권력기관을 사유화하지 못하도록 공수처, 검찰청, 경찰청과 같이 중립성이 필수적인 수사기관과 방송통신위원회, 국가인권위원회 같은 중립적 기관장을 임명할 때 반드시 국회 동의를 받도록 하자는 점도 제안했다.

 

심우정 검찰총장이 9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으로 출근하고 있다. 한편 고용노동부는 전날 심 총장 딸의 외교부 특혜 채용 의혹과 관련한 신고를 접수하고 조사에 나섰다. 2025.4.9. 연합

 

특히 검찰의 영장 청구권 독점 규정을 폐지하자고 해 검찰 개혁 의지를 분명히 했다. 현행 헌법은 "체포·구속·압수 또는 수색을 할 때에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검사의 신청에 의하여 법관이 발부한 영장을 제시하여야 한다"(제12조 제3항) "모든 국민은 주거의 자유를 침해받지 아니한다. 주거에 대한 압수나 수색을 할 때에는 검사의 신청에 의하여 법관이 발부한 영장을 제시하여야 한다"(제16조)고 규정하고 있다. 이 같은 '검사의 영장 신청권'을 헌법에 명시한 국가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이를 근거로 검찰은 검사의 수사권이 천부의 권리인 듯 헌법상 권한이라고 강변하며 입법권을 가진 국회의 검찰 수사권 축소 또는 박탈(소위 검수완박) 시도에 극렬 저항해왔다. 

 

이 후보는 헌법에서 이들 조항을 삭제하거나 수정해 검찰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하고 검찰을 공소청으로 전환하는 한편 공수처와 국가수사본부의 수사 역량을 대폭 강화하는 방안까지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 후보는 "적법한 권한을 가진 다른 기관이 영장을 청구할 수 있게 함으로써 수사기관끼리 견제가 가능해야 한다"며 "영장 청구부터 누구는 예외가 되는 현실, 불의한 폐해를 근절해야 한다"고 지적해 그동안 영장 청구권 독점으로 무수한 농간을 벌여온 정치검찰에 직격탄을 날렸다.

 

권력 구조 개편과 함께 국민 기본권 및 지방자치권 강화에 관한 언급도 빼놓지 않았다. 이 후보는 "시대적 요구에 따라 안전권, 생명권, 정보 기본권 등 기본권 강화와 확대를 위한 논의도 시작해야 한다"면서 "주민의 일상을 보살피고 삶의 질을 높이는 정부 역할이 나날이 중요해지고 있다. 지방자치와 지역분권 강화는 필수적이다. 최대한의 지방자치권을 보장하자"고 했다.

 

나아가 "이를 위해 대통령과 총리, 관계 국무위원, 자치단체장 등이 모두 참여하는 헌법기관을 신설해야 한다. 기능은 지방자치와 균형발전 정책을 심의하고 위상은 국무회의와 동등하게 해야 한다"며 "법령에 위배 되지 않은 한, 자치법규 제정 자율권을 최대한 보장해 지방자치의 힘을 키워나가야 한다"고 했다.

 

개헌 로드맵도 제시했다. 이 후보는 "국민투표법을 개정해 개헌의 발판을 마련하자. 국회 개헌특위를 만들어 말씀드린 사항을 하나씩 합의하며 순차적으로 새로운 개헌을 완성하자"면서 "논의가 빠르게 진행된다면 2026년 지방선거에서, 늦어진다 해도 2028년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국민 뜻을 물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개헌 논의는 '진짜 대한민국'을 위한 중요한 한 축이다. 논의가 국민의 뜻에 따라 잘 이뤄질 수 있도록, 그 뜻을 바탕으로 마침내 개헌이 실현되도록, 저 이재명, 맡은 바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새롭게 열리는 제7공화국, 위대한 우리 국민과 함께 진짜 대한민국을 열겠다"고 다짐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가 18일 광주광역시 북구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열린 5·18민주화운동 45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뒤 취재진과 만나 이날 발표한 개헌 관련 입장에 대한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5.5.18 [공동 취재] 연합

 

이 후보는 이날 광주광역시에서 열린 5·18민주화운동 45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뒤 기자들과 만나 개헌 구상에 관한 보충 설명을 했다. 개헌 시 4년 연임이 이번에 당선되는 대통령에게 적용되는지 묻자 그는 "우리 헌법상 개헌은 재임 당시 대통령에게 적용이 없다고 명시돼 있다"고 답했다.

 

'대통령 임기 단축 개헌'을 두고는 "대통령 직위를 개인적 영예나 사익을 위한 권력쯤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의 발상"이라며 "국민을 위한 역사적 책임·의무라고 생각하면 그리 가볍게 말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 "국가 최종 책임자의 임기 문제는 신중하게 고려할 필요가 있다"면서 "개헌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국가 안정과 민생 회복으로, 일과 국민 중심으로 보면 다음 지방선거에 맞춰 개헌하는 게 가장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이 후보는 개헌에 대한 입장 표명이 늦었다는 취지의 질문에는 "1987년 체제 헌법의 효용이 다해 개헌을 통해 제7공화국을 열어야 한다는 국민적 요구도 많고 역사적 당위성도 있었지만, 여러 상황과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에 지금까지 해야 할 일을 못했던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어 지난 4월 초 우원식 국회의장이 이번 조기 대선에서 개헌 국민투표를 동시에 하자고 제안했다가 철회한 일을 언급하며 "이번에도 합의 가능하고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대선과 동시에 하고 싶었지만 시간상 불가능했다"면서 "국민투표법을 빠르게 개정해 개헌하자고 했지만 국민의힘 측에서 전혀 반응이 없었다"고 했다.

 

이 후보는 "이제는 각 후보가 개헌안을 공약으로 내고 누군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공약대로 국민적 논의를 시작해 국회에서 가급적 신속하게 개헌을 준비하는 게 바람직하다"며 "개헌을 위해서는 구(舊)여권의 협조, 더 크게 보면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개헌은 일방적으로 할 수는 없고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 순차적으로 개헌해 나가야 한다"면서 "무리하게 전면 개헌을 너무 잘하려고 하다가 아무것도 못 하기보다는 합의되는 것부터 하자"고 강조했다.

 

이 후보의 개헌 공약을 두고 전직 국회의원들 모임인 대한민국헌정회(회장 정대철)는 "적극 지지하고 환영한다"고 곧바로 호응했다. 종전부터 개헌의 당위성을 피력해왔던 헌정회는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그동안 헌정회가 추진해 온 분권형 권력구조 개헌안과 맥을 같이하는 방안으로 높이 평가한다"면서 "특히 헌정회가 지난 16일 각 당 대선 후보들에게 '오는 21일까지 분권형 권력구조 개헌안에 대한 공식입장을 밝혀달라'는 공문을 보냈는데 이 후보가 제일 먼저 공개적으로 화답한 데 대해 감사를 드린다"고 전했다.

 

아울러 "이 후보의 개헌안 입장 발표는 유력 후보의 공개적 제안이라는 점에서 남다른 의미가 있다. 지난해 12·3 계엄 사태로 위기에 처한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국민 통합이 필요한 시대정신과도 부합하는 내용"이라고 호평하며 "각 당 후보가 국민을 상대로 공식 공약 발표를 통해 개헌안 입장을 밝혀야 대선 이후에도 책임감을 느끼고 개헌 추진을 해나갈 수 있다"고 덧붙였다.  < 민들레 김호경 기자 >

 
 
 
 

 

[전우용 특별기고] 6.3 조기대선에 담고픈 시대정신

식민지·독재체제 거치며 ‘주류’ 굳힌 ‘빽 있는 사람들’
여러 번 정권 교체 성과에도 여전히 위축된 ‘비주류’
천박한 물질주의 몰아내고 ‘주류 교체’ 위한 큰 승리를

                                                                              전우용 역사학자

 

2024년 12월 3일 밤, 계엄을 선포하는 윤석열에게서 박정희와 전두환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종북 반국가세력을 일거에 척결하여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겠다’는 계엄령 선포의 목적에서나, ‘모든 정치활동을 금한다’는 계엄포고령의 내용에서나, 수많은 사람을 불법으로 ‘수거’하여 악랄하게 ‘제거’하려는 계획을 기록한 노상원 수첩에서나, 그와 그 일당의 정신은 독재자들의 망령에 완전히 사로잡혀 있었다.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에도 한동안은 군사쿠데타가 다시 일어날지 모른다는 대중적 불안감이 남아 있었지만, 김영삼 정권이 군부 내 하나회를 척결하고 이어 ‘수평적 정권교체’가 이루어진 뒤로는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폭력으로 무너지리라고 걱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한국인들은 ‘민주국가 국민’이라는 집단정체성을 확보한 듯했고, 스스로 그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듯했다.

 

‘민주 헌정질서’ 파괴범죄를 두려워하지 않는 내란공범들

 

그러나 윤석열의 계엄 선포 이후에 벌어진 일련의 일들은 그 집단정체성과 자부심이 모래 위에 쌓은 성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명료히 드러냈다. 국민의힘은 국회의 계엄해제 의결을 사실상 방해함으로써 ‘국헌문란 목적의 내란’ 실행을 도왔을 뿐 아니라, 계엄 해제 이후에도 윤석열 탄핵에 반대하는 등 ‘민주 헌정질서’ 파괴범죄를 옹호하는 데에 몰두했다. 그들은 ‘내란공범’이나 ‘내란종범’으로 지목되는 것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윤석열이 구속된 뒤에도 지귀연 판사는 사상 유례없는 ‘구속기간 시간 계산법’을 창안하여 구속 취소 결정을 내렸으며, 심우정 검찰총장 역시 사상 유례없는 ‘즉시항고 포기’로 화답하여 그를 탈옥시켰다. 최근 대법원 판사 12명 중 10명은 고등법원이 무죄선고한 이재명 선거법 위반 사건을 ‘파기환송’함으로써 6.3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를 아예 없애고 국민의 선거권을 제한 또는 박탈하려고 했다. 이들은 ‘헌정질서 문란 범죄’를 처벌하려는 의지를 전혀 내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국민의힘 지지자 대다수는 ‘계엄령이 아니라 계몽령’이라는, 세계인의 조롱거리가 될 만한 주장에 동조했다. 그들은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려면 민주헌정질서를 파괴해야 한다’는 주장이 자가당착이라는 사실조차 모른다.

 

윤석열 일당은 왜 내란을 획책했으며 한동안 ‘민주적이었던’ 한국 사회에는 왜 내란을 지지하는 세력이 이토록 거대한가? 내란 진압은 왜 이토록 더딘가? 우리가 역사의 무덤에 파묻은 줄 알았던 박정희 전두환 일당의 망령이 실제로는 여전히 살아서 활보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번 선거가 ‘독재망령’들을 영원히 저 세상으로 떠나보내는 ‘천도재(薦度齋)’가 되기를 바란다. 그러려면 이번 선거에 두 가지 ‘시대정신’을 담아야 한다.

 

1990년 1월 당시 노태우 대통령(가운데)과 김영삼 민주당 총재(오른쪽), 김종필 공화당 총재(왼쪽)가 청와대에서 긴급 3자 회동을 갖고 민정, 민주, 공화 3당을 주축으로 신당 창당에 합의했음을 발표한 뒤 청와대를 나서는 모습. 2015.11.22. 연합뉴스 자료사진

 

90년 3당합당이 만들어낸 ‘보수’ 참칭 내란독재세력의 망령

 

첫째, 1987년 민주화운동이 다 풀지 못한 숙제를 완수하는 것이다. ‘87년 민주화운동의 승리’라는 말은 사실 ‘기억 조작’이다. 당시 내란독재 세력은 패배한 것이 아니라 민주화운동 세력과 타협했을 뿐이다. 1987년에 제정된 현행 헌법은 양자 간 타협의 산물이자 일종의 ‘휴전협정문’이었다. 뒤이어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는 민주정치세력이었던 김영삼과 김대중이 단일화하지 못한 결과 12.12와 5.17 내란의 공동수괴였던 노태우가 당선되었다. 후보별 득표율은 노태우가 37%, 김종필이 8%, 김영삼 김대중 합계가 55%였다. 민주정치세력의 득표수가 더 많았지만, 정권은 내란독재세력이 차지했다.

 

1988년 총선에서는 내란정당인 민정당이 34%, 유신본당인 신민주공화당이 16%, 통일민주당과 평화민주당이 합해서 43%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민정당이 제1당이 되기는 했으나, 내란독재세력과 민주정치세력이 각각 2개의 정당으로 나뉘어 병립하는 4당 체제가 만들어졌다. 이 체제를 ‘인위적으로’ 파괴하고 내란독재세력 절대 우위의 양당체제를 만든 것이 1990년의 ‘3당합당’이었다. 3당합당으로 탄생한 민주자유당은 218석을 차지한 초거대 정당이 되었다. 민자당의 주력은 내란독재세력이었으나 이들은 주류 언론들의 도움을 얻어 ‘보수대연합’을 자처하면서 민주정치세력을 진보좌파로 몰아부쳤다. 반민주 내란독재세력이 보수를 참칭하고 자칭 ‘개혁적 보수 정치세력’에게 진보 딱지를 붙이는, 국제 기준에서 납득하기 어려운 한국의 양당체제는 이 때부터 지금껏 유지되고 있다.

 

내란독재세력 대 민주정치세력의 대립을 ‘보수 대 진보’의 대립으로 분식(粉飾)한 한국의 양당체제는 국민 일반의 정치의식을 포획했다. 사람의 합리적 고민은 선택 가능한 영역 안에 머물기 마련이다. 김영삼 정권 시절 일시적으로 민주정당의 외피(外皮)를 썼던 민자당의 후계 정당들은 이명박 정권 때부터 공공연히 내란을 합리화하고 역대 독재자들을 미화하면서 내란독재세력의 진면목을 거리낌없이 드러냈다.

 

‘보수 대 진보’의 ‘인위적’ 정당 체제를 ‘의식적’으로 바꿀 계기

 

독재정권 시절 특권을 얻고 그를 ‘기득권화’한 사회세력도 내란독재세력의 정치담론에 동조하는 성향을 내면화했다. 이들의 영향 때문에 반인간적 군사쿠데타와 반민주적 독재체제에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늘어갔다. 최근 한 여론조사업체는 한국인 중 14%가 ‘상황에 따라서는 독재가 민주주의보다 낫다’고 생각하며, 국민의힘 지지층에서는 그 비율이 24%라고 발표했다. 독재의 망령이 아직 저 세상으로 떠나지 않았다는 증거다.

 

물론 우리가 이룬 ‘민주적 성취’에 자부심을 느끼고 그를 공고히 하려는 사람들의 노력도 계속되었다. 1990년 220석에 육박했던 민자당의 의석 수는 경향적으로 줄어들어 최근 세 차례 총선에서는 새누리당, 미래통합당, 국민의힘이 모두 제1당의 지위를 잃었으며, 특히 2020년과 2024년 총선에서는 100석을 조금 넘기는 정도로 위축되었다. 윤석열 일당이 내란을 획책한 배경에는 내란독재세력의 지지 기반이 계속 축소되는 추세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이번 선거는 1990년에 내란독재세력이 ‘인위적으로’ 만든 정당 체제를 시민들 스스로 ‘의식적’으로 바꾸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지금의 기형적 정당체제가 87년 김영삼 김대중 단일화 실패와 90년 3당합당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성찰해야 한다. 내란독재세력에 반대하는 정치적 의지들이 다시 뭉쳐야 한다. 이번 선거가 독재세력 대 반독재세력, 반민주세력 대 민주세력, 헌정파괴세력 대 헌정수호세력의 재대결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내란독재, 헌정파괴세력의 영향력을 최소화해야, 또다른 내란의 위협을 소멸시키고 민주공화국을 반석 위에 올려 세울 수 있다.

 

“내가 누군 줄 알아?” 큰소리치는 ‘사회적 권위’ 해체해야

 

둘째, 내란독재세력 지지가 갖는 오래된 ‘사회적 권위’를 해체하는 것이다. 자본주의 산업화와 도시화는 농촌공동체의 해체와 함께 진행되기 마련이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는 전래의 농촌공동체가 해체됨으로써 발생한 지역사회 내 ‘권위의 공백’을 한국인들이 자율적으로 메꿀 수 있도록 허용하지 않았다. 한국인들에 대한 감시와 통제를 강화하는 데 주력한 식민지 권력은 자기들이 부리기 쉬운 한국인들을 지역사회 내 유력자로 만들려 했다. 세계대공황으로 식민지 농민들의 삶이 파탄지경에 이른 1930년대부터, ‘뜻 있는 사람’이라는 의미였던 ‘유지(有志)’라는 말이 ‘관청과 연결된 사람’, 시쳇말로 ‘빽 있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바뀌었다. 지역사회에서 유지로 불린 자들은 한편으로 식민지 권력의 끄나풀 노릇을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관청을 상대로 한 지역민들의 로비스트 구실을 했다.

 

해방 이후에도 식민지 지배체제와 별 차이 없는 독재체제가 구축되었기 때문에, 이른바 ‘지역 유지’들의 존재 방식과 행태도 그대로 유지되었다. ‘빽’이라는 말 자체가 ‘권력자와 연결고리가 있음’이라는 의미였다. 집권여당은 자유당에서 공화당으로, 다시 민정당으로 바뀌었지만, 지역사회 내 ‘유지(有志)’들은 늘 여당 당원이 됨으로써 자기들의 영향력을 ‘유지(維持)’하려 했다. 그들은 선거철이면 ‘부정 선거자금’을 지역주민들에게 배분하는 구실을 했고, 일상적으로는 시군구 단위에 만들어진 형식상의 ‘민간 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곤 했다. 하다 못해 자동차 앞유리에 ‘○○구 청소년선도위원’이라는 스티커를 붙이면 ‘불법주차 단속’도 피할 수 있었다.

 

그들은 이웃과 시비가 붙거나 경찰의 단속을 당했을 때, “내가 누군지 알아?”라고 큰소리칠 수 있었다. 알량하지만 그래도 ‘기득권’이었다. 반면 독재정권 시절에 야당에 입당하는 것은 ‘정권에 대한 불만’을 표현하는 행위였다. 경찰과 정보기관의 사찰 대상이 될 줄 뻔히 알면서 ‘자진해서’ 야당 당원이 되려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친척이든 친한 친구든 빚쟁이든, 부탁을 거절할 수 없는 사람의 강권을 받고서야 “절대 비밀로 해 달라”는 말과 함께 입당원서에 서명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야당 당원은 자기 당적을 숨겨야 했고, 그런만큼 ‘비주류’였다.

 

왼쪽 위로부터 시계방향으로 윤석열, 한덕수, 김문수, 지귀연, 심우정, 조희대.

 

내란독재세력과 그 지지자들을 ‘소수’로 만드는 압도적 승리

 

1997년 수평적 정권교체는 ‘만년야당’을 일거에 ‘여당’으로 바꿔 놓았다. 과거 ‘준(準) 국사범’ 취급을 받았던 사람들이 비로소 자기 정치성향을 드러낼 수 있게 되었다. 그렇지만 김대중 노무현 정권 10년을 거치면서도 그들은 한국 사회의 ‘주류’나 지역사회의 ‘유지’로 인정받지 못했다. 기업체 대표와 임원, 판검사와 의사, 교회의 장로와 권사 등 타인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들의 정당 지지 성향은 유권자 평균과 현격한 차이를 보여왔다. 서울 ‘강남 3구’의 투표 결과는 늘 한국사회의 ‘주류의식’과 ‘정치적 선택’의 상관관계를 입증했다. 그렇다 보니 스스로는 ‘기득권세력’이 아님에도 ‘한국사회에서 주류에 편입되려면 조선일보를 보고 보수정치세력(=내란독재세력)을 지지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 늘어났다. 그들은 정치권력의 반민주성에 대한 비판을 ‘반국가적 행위’나 ‘성공한 자들에 대한 시기심’으로 해석한다. 이런 현상도 ‘독재의 망령’에 생명력을 부여했다.

 

이번 선거는 한국 사회에서 100년간 이어져 온 반민주적, 독재친화적 ‘주류의식’을 청산, 교체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지역사회에서든 직장에서든 ‘끄나풀형 유지’들의 특권적이며 부패한 권위 대신에 주변 사람들의 신망(信望)을 토대로 한 ‘민주적 권위’가 새롭게 자리 잡아야 한다. 내란독재세력에 빌붙는 ‘천박한 물질주의’를 ‘비주류’의 지위로 몰아내고, 건강한 인본주의와 민주주의로 구성된 정치의식과 그를 체화한 사회세력이 ‘주류’가 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주류와 비주류의 관계가 수치로 명확히 드러나야 한다. 내란과 독재를 추구하고 옹호하는 정치세력과 그들을 지지하는 유권자들이 스스로 ‘소수이자 비주류’임을 자인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독재의 망령이 다시는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을 위협할 수 없을 것이다.

'김문수TV' 제작자를 경사노위 자문위원으로

22개월 동안 따박따박 지급한 자문료 1억 넘어
자문회의 한번도 참석 않고 본인 수행비서 노릇

경찰 9개월 째 수사 미뤄…"피고발인 조사 전무"
진보당 정혜경 "대선 후보 자격 없어…사퇴하라"

 

진보당 정혜경 의원이 20일 국회 소통관에서 1억원 업무상 배임 혐의로 경찰에 고발된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를 향해 사퇴하라고 촉구했다. 2025.5.20. 정혜경의원실 제공

 

'청렴영생, 부패즉사'를 내걸고 대선에 나선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가 지난해 측근 채용 비리 의혹(업무상 배임 혐의)으로 경찰에 고발됐지만, 9개월여 동안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이 수사를 의도적으로 미룬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진보당 정혜경 의원은 20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오늘은 김문수 후보가 그렇게 자랑하는 청렴 문제에 대해 묻겠다"며 "측근 중의 최측근, 극우 유튜브 채널 김문수TV 총괄 제작자이던 사람을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자문위원으로 앉혀놓고, 국민 세금으로 1억원 넘게 월급을 준 것이 당당하냐"고 비판했다.

 

이어 정 의원은 "김문수 후보가 자문위원으로 위촉한 최창근 씨는, 김문수TV 제작자였다. 경사노위에 적합한 전문성도 없는 것은 물론, 경사노위 자문회의에 단 한 차례도 참석한 적도 없으면서 시간당 3만 원의 자문료로 따박따박 22개월동안 월급을 받아갔다"며 "그렇게 지급된 월급이 1억원이 넘는다"고 지적했다.

 

앞서 김 후보는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인 경사노위 위원장을 맡던 시절, 자신의 유튜브 채널 '김문수TV' 제작자이자 측근인 최창근 씨를 경사노위 자문위원으로 위촉하고 자문회의 참석도 없이 1억 원이 넘는 자문료를 받게 한 혐의(업무상 배임 혐의)로 지난해 8월 정 의원과 시민단체에 의해 경찰에 고발된 바 있다.

 

정혜경 의원실이 경사노위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김 후보는 유튜브 채널 '김문수TV'의 총괄제작국장이었던 최창근 씨를 경사노위 자문위원으로 위촉했다. 최 씨는 2022년 10월부터 2024년 7월까지 자문회의를 한 번도 참여하지 않고 매달 평균 470만 원 수준 자문료를 받았다. 최 씨가 이 기간에 받은 총 자문료는 1억 455만 원에 달한다.

 

아울러 경사노위 운영세칙 제17조는 위원장이 위원회 활동방향 및 주요 의안에 대한 여론 수렴 등을 위하여 자문위원을 둘 수 있도록 정하고 있다. 그러나 정 의원이 경사노위를 통해 확인한 업무일지에는 최 씨가 대부분 '위원장 보좌' '수행' 등 세칙에도 없는 역할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사실상 김 후보의 수행비서 역할을 한 데 대해 자문료를 명목으로 금전을 지급한 것으로 보인다. 최 씨의 일정 중에는 경사노위와 전혀 관련 없는 '박정희 전 대통령 43주기 추도식' 보좌 및 수행(2022년 10월 26일)도 있었다.

 

국민의힘 김문수 대선 후보가 20일 서울 강서구 남부골목시장을 방문, 유세하고 있다. 2025.5.20 [공동취재] 연합

 

그러나 경찰의 수사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정 의원실에 따르면 김 후보의 측근 채용 비리 의혹 사건은 현재 종로경찰서에서 수사하고 있지만, 고발인 조사만 하고 김 후보 등 피고발인 조사는 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선거 기간에도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주변인에 대해 공판을 열고 수사를 했던 전례를 고려하면, 경찰이 국민의힘 소속 정치인 사건이라는 이유로 회피하는 것 아닌지 의문이 든다.

 

정 의원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경찰에서는 단 한 차례의 피고발인 조사도 없었다. 자문위원의 자격이 합당한지 꼭 조사해달라고 요청했음에도 불구하고, 최창근 자문위원조차 단 한 차례도 조사하지 않았다"며 "김문수 후보가 대선주자가 되면서, 경찰이 눈치보기 식으로 수사를 미룬 것은 아닌지도 의심스럽다"고 지적했다.

 

정 의원은 "이대로라면 피고발인 조사 한번도 없이, 불송치 결정이 날 것도 우려된다"며 "극우 유튜브 제작자였다가 경사노위 자문위원이 된 최창근씨 가족이 지금 김문수 캠프에서 일하고 있다고 하는데, 이 역시 측근 채용이 아닌지, 전문성이 검증된 고용인지도 의문"이라고 했다. 최 씨의 부인 함초롬 씨는 김문수 캠프 상근부대변인으로 활동 중이다.

 

정 의원은 "경사노위 위원장, 노동부 장관을 넘어 더 큰 권력을 꿈꾸는 김문수 후보는, 더 큰 자리에 올라 더 많은 측근에게, 더 많은 국민 혈세를 낭비하려는 것 아니냐"라며 "지금이라도 자격없는 대통령 후보 직에서 사퇴하라. 그것이 가장 '정정당당'한 마무리일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민주당은 김 후보가 유튜브를 운영하며 슈퍼챗을 통해 1억 7500만 원 상당의 불법 정치 자금 수수(정치자금법 위반)를 했다며 경찰에 고발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정치활동을 하는 사람'이 유튜브 채널을 개설해서 자금을 기부받으면 '정치자금부정수수죄'에 해당한다.  < 민들레 김성진 기자 >

 

변절을 '정의'로 포장한 김문수의 '과거팔이' 

대선 홍보물 속 한 문장, 감히 '정의'를 말하다니…

 

“정의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선관위가 집으로 보내온 김문수 후보의 대선 홍보물에 적힌 이 문장을 보는 순간,

나는 눈을 의심했다. 분노가 치밀었다. 감히 ‘정의’를 말하다니. 

감히 자신의 변절을 미화하다니. 이는 단순한 정치적 수사를 넘어선다. 

기억을 조작하고, 역사를 왜곡하는 행위다. 

 

김문수가 젊은 시절, 진심이었던 시기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전태일의 죽음을 가슴에 품고 노동 현장에 투신하며, 고문과 투옥을 견뎌낸 청년 김문수는 수많은 젊은이들에게 등불이었고 투사의 상징이었다. “노동이 존엄한 사회”를 꿈꾸던 시절, 그는 분명 시대의 양심이었다.

 

그러나 그는 배반하고 변절했다. 

그리고 과거의 투쟁을 자신의 정치적 자산으로 활용하며 권력의 계단을 밟아올랐다. 

 

대통령 후보자리에 오른 그는 지금 자신의 배신의 여정을 “정의의 길”이라 포장하고 있다.

그는 “노동운동의 열정만으로는 현실을 바꿀 수 없었다”고 말하며 정치로 향한 선택을 합리화한다. 그는 또 “흔들림 없는 원칙의 길 , 김문수가 걷겠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묻고 싶다. 

정말 그는 현실을 바꾸었는가? 바꾸었다면, 그 현실은 누구의 것이었는가? 노동자의 것인가, 자본의 것인가?

 

자신의 과거에 침을 뱉은 그가  진정 흔들림 없는 원칙의 길을 걸어온 것인가?

삼척동자가 웃을 일이다.

]

국회의원 김문수, 경기도지사 김문수, 그리고 윤석열 정부의 경제사회노동위원장 김문수. 그의 행적 어디에서도 ‘노동자의 편’은 찾아볼 수 없다. 

 

그가 위원장으로 임명되자, 양대 노총은 즉각 보이콧을 선언했다. 이유는명확하다. 김문수는 노동의 대화 상대가 아닌, 노동의 적이었다.

그는 노동문제를 협상과 타협으로 해결해야 할 ‘갈등’으로 보지 않았다. ‘장애물’로 인식했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라는 그의 구호는 자본의 언어이며, 노동자에겐 통제와 억압의 기조였다. 해고를 자유화하고, 노조의 권한을 축소하며, 노동자의 권리를 후퇴시키는 것- ‘노동자가 불편한 나라’ 그것이 김문수가 말하는 ‘좋은 나라’의 실체였다.

 

그런 그가 이제 와서 보상을 거부한 깨끗한 정치인을 자처한다. 

마치 자신이 민주화운동 보상금을 받을 자격이 있었지만 고사했다는 듯 홍보한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민주화운동 보상은 연간 소득이 당시 금액으로 2,000만원  이하로  생계가 어려운  민주화운동 인정자들에게만 지급되었으며,

고소득자나 공직자는 원천적으로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당시 국회의원이거나  도지사였을 김문수가 보상 대상이었을 리 없다.  민주화운동을 매도하는 정당에 들어간 그는 신청조차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고, 신청했다 하더라도 지급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받지 못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보상을 거부한 것으로 둔갑시켜 유권자의 감성을 자극한다. 

이는 진실의 왜곡이자 위선의 극치이며,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 논란까지 불러올 수 있는 사안이다.

 

결국 김문수는, 자신의 극우적 정치 노선을 ‘정의’와 ‘청렴’의 외피로 포장하여 중도 유권자들의 표심을 얻고자 한다. 과거의 노동운동 이력을 다시 꺼내어, 마치 여전히 노동자의 편인 양 분칠하지만, 그 껍질 속에는 20년 넘게 노동을 억누르고 자본 권력에 복무해온 실상이 감춰져 있다.

 

그는 지금, 정의의 가면을 쓴 채 표를 구걸하고 있다. 그러나 유권자는 기억한다. 노동자들은 기억한다. 그와 함께 싸웠던 과거의 동지들 역시 기억한다. 

그가 어떤 길을 걸어왔고, 누구를 배신했으며, 누구의 손을 잡았는지를 말이다.

 

정의는 말로 증명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직 삶의 궤적을 통해 드러나는 법이다. 김문수는 그 궤적 속에서 ‘정의’를 말할 자격이 없다.   < 장정수 언론비상시국회의 집행위원, 전 한겨레신문 편집인 >

 

“(대통령이) 화가 났구나, 현실과 이탈됐고 정상이 아니다’라고 생각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심판 5차 변론기일이 열린 지난 3월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심판정에 이진우 전 육군 수도방위사령관이 증인으로 출석해 발언하고 있다. 헌법재판소 제공

 

이진우 전 육군수도방위사령관(수방사령관)이 12·3 내란사태 당시 국회에 출동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으로부터 “발로 차고라도 문을 부수고 들어가 끄집어내라”는 지시를 받은 사실이 있다고 법정에서 처음으로 증언했다.

 

이 전 사령관은 20일 서울 용산구 중앙지역군사법원에서 진행된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과 문상호 전 국군정보사령관 공판에 증인으로 나와 내란 사태 당시 윤 전 대통령과 4차례 통화를 했으며 “대통령이 ‘문을 부수고 들어가서 끄집어내라’고 해서 ‘(대통령이) 화가 났구나, 현실과 이탈됐고 정상이 아니다’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거부감이 들었다”고도 했다.

 

내란주요임무종사 혐의로 구속 기소된 이 전 사령관은 그동안 국회 국방위원회·청문회,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 탄핵심판 등에서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이런 지시를 받았는지에 대해 “형사재판에서 밝히겠다”며 증언은 거부해왔는데, 이날 처음으로 이런 지시를 받은 사실이 있다고 밝힌 것이다.

 

재판부가 “안에 있는 국회의원을 끌어내라고 이해했으냐”고 묻자 이 전 사령관은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이해했다”고 대답했다. 탄핵 심판과 형사재판에서 윤 전 대통령은 줄곧 “체포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윤 전 대통령과의 첫번째 통화에서는 “대통령이 ‘(국회) 현장 상황이 어떠냐’고 물어서 ‘사람이 너무 많아서 국회에 못 들어가고 있다’고 대답했다”고 말했다.

 

두번째 통화에서도 그가 “너무 꽉 막혀 못들어가고 있다”고 보고하자, 윤 전 대통령이 “너희 4명이 1명씩 들고 업고 나올 수 있잖아”라고 지시했다고 증언했다. 다만 “대통령이 ‘의원’이라는 말은 하지 않았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는 “(세번째) 전화가 와서 대뜸 윤 전 대통령이 ‘발로 차고라도 문을 부수고 들어가서 끌어내라’고 하니 (정신이) 블랙아웃이 와서 아무 생각이 안 났고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전 사령관은 또 윤 대통령이 국회 계엄 해제 요구안 가결 이후에도 ‘2번, 3번 더 계엄하면 된다’고 했다는 자신의 수행부관 증언에 대해선 “기억이 없다. 문을 부수라고 하는 순간 블랙아웃이 됐는데 정신 차리고 보니 부관이 ‘부대로 복귀한고 있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그는 계엄 해제 이후 에 윤 전 대통령과 통화한 기억이 없는데 통화 기록이 1번 더 있더라고도 했다.

 

내란 사태 당시 이 전 사령관의 수행부관인 오상배 대위는 지난 12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윤 전 대통령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윤 전 대통령이 이 전 사령관에게 “본회의장에 들어가서 4명이 1명씩 들쳐업고 나와라” “총을 쏴서라도 문을 부수고 들어가라” 등 지시를 내렸다고 증언한 바 있다. 오 대위는 ‘문을 부수고 들어가라’는 대통령의 지시에 이 전사령관이 충격을 받은 듯 대답하지 않자, 윤 전 대통령이 대답을 강요하듯 ‘어, 어’라고 말했다고도 했다.

 

이 전 사령관은 또 계엄 한 달 전인 지난해 11월9일 윤 전 대통령이 참석한 국방부장관 공관 저녁 모임에서 “참가자들이 대화는 안 했다. 윤 전 대통령이 혼자 다 말했다”며 “윤 전 대통령이 한동훈(전 국민의힘 대표)을 이야기하며 배신당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는 당시 “(윤 전 대통령은) 굉장히 빨리 마시고 취했고, 김용현 당시 국방부 장관이 부축해 나갔다. 정상적으로 앉아 있기 어렵게 되니 불편한 마음도 있었던 거 같다”고 당시 술자리 분위기를 전했다.   < 권혁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