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시작된 미국과 아프가니스탄의 전쟁이 30일(현지시간) 20년 만에 종지부를 찍었다.
2001년 뉴욕 무역센터 등에 대한 무장조직 알카에다의 9·11 테러에서 촉발된 아프간전은 이날 미국이 미군 철수와 민간인 대피 완료를 선언함에 따라 공식 종료했다.
AP통신에 따르면 중동과 중앙아시아 군사작전을 책임진 케네스 프랭크 매켄지 미 중부사령관은 국무부 브리핑에서 미군의 C-17 수송기가 아프간 현지시간 30일 밤 11시 59분 수도 카불의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에서 이륙했다고 밝혔다.
이륙 시간 기준으로는 미국이 그간 대피 시한으로 정한 31일보다 하루 앞당겨 철수를 완료했다.
매켄지 사령관은 국방부 브리핑에서 "아프간 철수의 완료와 미국 시민, 제3국인, 아프간 현지인의 대피 임무 종료를 선언하기 위해 섰다"고 말했다. 대피작전이 본격화한 지난 14일 이후 12만3천명이 아프간을 탈출했다고 전했다.
백악관은 지금까지 6천 명의 미국인이 아프간을 떠났다고 밝힌 가운데 매켄지 사령관은 100명에 못 미치는 미국인이 탈출을 희망했지만 시간 내에 공항에 도착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AP통신도 미국의 마지막 비행기가 출발했다는 탈레반 경비대원의 발언을 전하면서 카불에 폭죽이 울렸다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탈레반은 아프간 완전 독립을 주장하면서 전역을 통제하고 있다고 밝혔다.
속속 이륙하는 미군기= 30일(현지시간) 수도 카불 국제공항에서 이륙하고 있는 미국 공군 항공기.
아프간전은 9·11 테러 배후로 지목된 알카에다의 수장 오사마 빈라덴에 대한 인도 요구를 당시 아프간 정권을 쥔 탈레반에 거부하자 동맹국들과 합세해 아프간을 침공함으로써 시작됐다.
미국은 탈레반을 축출한 뒤 친미 정권을 세우고 2011년 5월 빈라덴까지 사살했지만 내내 전쟁의 수렁에 빠져나오지 못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올해 5월 1일까지 미군을 철수하는 합의를 탈레반과 작년 2월 맺었다.
지난 1월 취임한 조 바이든 대통령은 올 4월 미군 철수를 결정하면서 아프간전 종식 의지를 공식화했다.
그러나 미국이 최소 연말까지는 친미 성향의 아프간 정부군이 버틸 것이라고 오판하는 바람에 탈레반이 지난 15일 정권을 장악한 뒤 철군 일정은 물론 민간인 대피에도 큰 혼선을 빚는 일이 벌어졌다.
아프간전은 미국과 아프간 모두에 큰 상처를 남겼다. 지난 4월 기준 아프간전으로 희생된 이는 약 17만 명으로, 아프간 정부군(6만6천 명), 탈레반 반군(5만1천 명), 아프간 민간인(4만7천 명) 등 아프간 측 피해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반면 미군 2천448명이 숨지고 미 정부와 계약을 한 요원 3천846명,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등 동맹군 1천144명 등 미국 역시 적지 않은 희생을 치렀다.
미국의 전쟁 비용은 1조 달러(1천165조 원)에 달한다.
미, 항공기 73대 현장폐기 후 야간탈출…군수뇌부 실시간 주시
방공체계 · 작전차량 97대 · 항공기 73대 버리고 철수
마지막 수송기 뜨자 펜타곤 지하벙커엔 '안도의 한숨'
C-17 수송기 오르는 마지막 철수 아프간 미군=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하미드 카르자이 공항에서 크리스토퍼 도나휴 미국 육군 82공수 사단장이 아프간에서 마지막 철수하는 미군으로 C-17 수송기에 오르고 있다. 그를 끝으로 아프간에서 미군 철수가 완료됨에 따라 20년간 이어진 미국의 최장기 전쟁인 아프간전은 종식됐다. [미 중부사령부 제공]
미군이 테러 위협 속에 일부 첨단무기들을 현장에서 폐기하고 떠날 정도로 급박하게 철군을 마무리했다.
군수뇌부는 철수를 지하벙커에서 실시간으로 지켜보다가 마지막 비행기가 떴을 때 안도의 한숨을 내쉰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CNN방송에 따르면 프랭크 매켄지 미군 중부사령관은 30일(현지시간) 브리핑에서 막판까지 쓰던 일부 무기를 폐기하고 떠났다고 밝혔다.
매켄지 사령관은 그 사례로 카불 공항에 설치돼 운영되던 자동 방공요격체계(C-RAM)를 들었다.
C-RAM은 날아오는 로켓포나 박격포탄을 자동으로 탐지해 기관총으로 요격하는 장비다.
이 장비는 철군 하루 전에 활성화돼 실제로 전날 무장세력의 로켓포를 막아냈다.
매켄지 사령관은 "그런 장비들을 해체하는 것은 매우 복잡하고 시간이 걸리는 절차라서 군사 용도로 절대 다시 쓰지 못하도록 불능화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우리 병사들을 보호하는 게 그런 장비를 회수하는 것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아프간 완전철군을 앞두고 C-17 수송기에 치누크 헬기를 싣고 있는 미군[로이터=연합뉴스]
미군은 C-RAM뿐만 아니라 지뢰방호장갑차(MRAPS) 70대, 전술차량 험비 27대, 항공기 73대도 카불 공항에 남겨두고 떠났다.
매켄지 사령관은 "그 항공기들은 다시는 하늘을 날지 못할 것"이라며 "그 누구도 다시 작동하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카불공항에서 자국민과 현지 협력자들을 대피하는 작전을 주도하던 미군의 마지막 철군은 심각한 테러 위협 속에 이뤄졌다.
AP통신은 첨단무기들을 현장에서 폐기한 사례를 보면 안전 위협이 얼마나 심각했는지 드러난다고 해설했다.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부 장관, 마크 밀리 미 합동참모본부 의장 등 군 수뇌부는 철수작전을 초조한 분위기로 주시했다.
AP통신에 따르면 이들은 미국 국방부 지하 작전본부에서 마지막 수송기가 아프간을 떠날 때까지 과정을 90분 동안 실시간으로 지켜봤다.
이들은 입을 굳게 닫은 채 병사들이 활주로를 마지막으로 점검하고 방어체계를 불능화한 뒤 C-17 수송기에 오르는 모습을 주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 소식통은 침묵이 너무 무거워서 바닥에 핀이 떨어지는 소리까지 들릴 정도였으며 수뇌부는 마지막 수송기가 이륙하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고 전했다.
로이드 오스틴(왼쪽) 미국 국방부 장관과 마크 밀리 미국 합참의장[UPI=연합뉴스]
탈레반 승리 축포…출구없는 공포통치 2.0 신호탄
인권유린 시대 돌아오나…국민 공포·불신 가득
IS 등 무장세력 테러에 사실상 무방비 우려
국제테러조직 온상돼 해외에 위험 전이될 수도
아프간 정부 구성을 앞두고 있는 탈레반. 사진은 최근 카불 장악 때 대통령궁을 점거한 탈레반 조직원들의 모습.[AP=연합뉴스]
미군이 31일(현지시간) 0시에 맞춰 아프간에서 모두 떠나자 전국에 총성이 울려 퍼졌다.
정권을 잡은 극단주의 무장정파 탈레반의 조직원들이 20년 아프간전의 승리를 선언하며 허공에 쏘아댄 축포였다.
탈레반의 수석 대변인 자비훌라 무자히드는 "완전한 독립을 얻었다"고 트위터를 통해 선언했다.
미군을 떠나보낸 카불공항에 있던 탈레반 전투원 헤마드 셰르자드는 AP통신 인터뷰에서 "20년 희생의 결실"이라며 격한 감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이날 탈레반의 축포는 아프간인들에게 일상을 완전히 뒤엎을 변화의 신호탄으로 여겨지고 있다.
야반도주에 가까운 미군의 철수로 미국 주도로 유지되던 사회질서가 무너질 것이 확실시되기 때문이다.
미국뿐만 아니라 함께 20년 동안 아프간 재건에 나선 서방국가들도 이미 두 손을 들어버렸다.
독일의 16년 집권자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민주국가 건설에 실패했다"며 "민주주의, 자유를 믿은 이들에게 쓰라린 사건"이라고 최근 심경을 토로했다.
외신들은 아프간에 닥칠 변화로 공포통치 부활, 지독한 치안불안, 테러조직 세력확장 등을 거론하고 있다.
아프간 카불 시내를 순찰하는 탈레반 조직원들[AP=연합뉴스]
◇ 공포통치 2.0 돌입…인권유린의 시대 접어드나
탈레반은 저항군이 버티는 아프간 북동부 판지시르를 제외하고는 전국을 장악했다.
아프간인들은 탈레반이 곧 정부를 구성해 통치에 들어가면 체제 차원의 인권유린 시대가 열릴 것으로 우려한다.
탈레반은 아프간 정파이기도 하지만 그 전에 국제사회에 악명이 높은 근본주의 집단이다.
소련이 1989년 철수한 뒤 내전 과정에서 나타난 탈레반은 1998년 집권해 2001년 미국 침공 전까지 아프간을 통치했다.
당시 탈레반은 이슬람 율법을 자의적, 극단적으로 해석해 국민들의 일상에 폭압적으로 적용하는 행태를 보였다.
남자들을 턱수염을 길렀고 여자들은 온몸을 가리는 부르카를 입었으며 텔레비전, 음악, 영화도 금지됐다.
특히 여성들이 학교나 직장에 가지 못하도록 하고 위반한 이들을 공공장소에서 돌로 쳤다.
현재 탈레반은 개방적이고 포용적인 국가를 건설한다고 주장하지만 여전히 '샤리아'(이슬람 율법)를 따를 것이라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국제사회의 일원이자 정상적 국가가 될 것을 고대하는 탈레반은 인권을 존중한다고 항변해도 사람들은 믿지 않는다.
탈레반의 정권 탈환 뒤 카불공항에 몰린 대피행렬과 대혼란상에서 불신의 수위가 단적으로 드러난다.
AP통신은 "수만명이 탈레반 통치가 두려워 최근 2주 동안 아프간에서 도주했다"고 지적했다.
통신은 카불공항 활주로 점거한 이들, 공항에서 인파에 짓밟혀 압사한 이들, 이륙하는 항공기에 매달렸다가 추락사한 이들을 국민의 불신과 공포를 보여주는 단면으로 주목했다.
올해 아프간 수도 카불에서 발생한 테러의 현장. 극단주의 무장세력들은 자신의 정치적 소신을 위해 여학교 등을 겨냥해 수시로 테러를 자행해왔다.[EPA=연합뉴스]
◇ 가뜩이나 불안한 치안…IS 조직원들까지 풀어줬다는데
탈레반의 공포통치뿐만 아니라 치안 불안도 아프간이 직면한 비극의 불씨다.
아프간 내부에는 탈레반뿐만 아니라 알카에다, 이슬람국가(IS)와 같은 극단주의 무장세력들이 존재한다.
특히 탈레반과 갈등을 빚어온 IS는 최근 미군과 피란민을 겨냥한 카불공항 테러에서 보듯 심각한 위협으로 평가된다.
탈레반은 아프간이 테러의 온상이 되도록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있으나 목표가 이뤄질지는 현재로서 미지수다.
IS의 아프간 지부인 IS 호라산은 전날에도 카불공항을 겨냥해 로켓포를 쏘아댔다.
미국 당국은 탈레반이 아프간 장악 뒤 테러범 수감시설에서 IS 조직원들을 대거 석방해 화를 키웠다고 지적했다.
케네스 프랭크 매켄지 미군 중부사령관은 "뿌린 대로 거둘 것"이라며 IS 조직원들이 2천명까지 늘었다고 추산했다.
한편에서는 아프간에 닥친 비극이 공포정치, 치안불안을 넘어 국제사회로까지 전이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탈레반 정권의 속성, 사회 혼란상을 고려할 때 아프간이 국제 테러조직들의 인큐베이터가 될 수 있다는 관측이다.
아프간을 탈출하려고 카불공항 근처에서 기다리다가 지난 27일 폭탄테러에 희생된 피란민들의 유품[AFP=연합뉴스]
◇ '국제테러단체 인큐베이터 될라' 우려의 시선 집중
탈레반은 이슬람 정권이 다른 나라에 위해를 가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강변하지만 이 또한 불신의 대상이다.
영국 BBC방송은 전문가들을 인용해 탈레반과 9·11테러를 저지른 집단 알카에다가 불가분 관계라고 보도했다.
미국 의회조사국(CRS)은 알카에다가 여전히 아프간에서 암약하고 있으며 탈레반과 알카에다의 수십년 유착관계가 최근 더 강화했다고 분석했다.
BBC방송은 "탈레반이 중앙집권적 조직이 아니다"며 "일부 지도자들이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려고 하지만 강경파들은 알카에다와 관계를 청산하고 싶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알카에다가 얼마나 강력한지, 글로벌네트워크를 재건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진단했다.
하지만 상황을 더 심각하게 보는 이들도 목격된다.
라이언 크로커 전 아프간 주재 미국 대사는 온갖 종류의 테러리스트들이 아프간에 안착할 것이라며 "9.11테러도 그렇게 불거졌는데 우리가 지금 그와 똑같은 국면에 처했다"고 주장했다.
탈레반 대원들이 지난 18일(현지시각)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서 총을 들고 걷고 있다. 카불/AP 연합뉴스
탈레반이 예상을 깨고 카불에 조기 입성한 것은 아슈라프 가니 아프가니스탄 대통령이 잘못된 정보를 입수하고 국외로 도주했기 때문인 것으로 드러났다. 또, 탈레반은 가니 대통령의 도주 이후 미국에게 카불을 통제해달라고 요청했다가 거절당하자, 카불에 입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워싱턴 포스트>는 지난 15일 카불이 탈레반에 의해 함락되던 상황과 배경에 대해 미국과 아프간의 관리들을 인터뷰해 상세히 보도했다. 이를 통해 허위 정보에 의한 가니 대통령의 도주로 인해 모든 상황이 급변했다고 전했다.
탈레반이 지난 6일부터 님루즈주 주도 자란즈를 장악하는 등 주도 및 주요 도시를 장악하기 시작했지만, 미국과 아프간 정부는 탈레반의 카불 입성 이틀 전까지도 카불에는 아직 시간이 많다고 생각했다. 미국은 8월 들어서도 탈레반이 카불에는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가니 대통령은 경제의 디지털화에 대해 얘기했고, 하루 전까지도 참모들에게 경제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미국 국무부와 국방부, 백악관의 관련 관리들도 주말이 시작되던 13일에는 여름 휴가를 떠나기 시작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일찍 캠프데이비드 별장으로 갔고,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도 이미 롱아일랜드의 휴양지인 햄튼즈에 있었다.
하지만, 토요일인 14일이 되자 상황은 급변했다. 1990년대 탈레반과 군벌 세력 사이의 치열한 교전지였던 북부의 주요 도시 마자르이샤리프에 탈레반이 무혈 입성했다. 이미 남부의 칸다하르, 서부의 헤라트가 전투로 함락된데 이어, 북부 최대 주요 도시 마자르까지 무혈로 탈레반 수중에 들어가자 나머지 주요 도시들도 탈레반에게 무혈 입성의 길을 열어주는 상황으로 급변했다.
바이든 대통령과 안보 참모들이 긴급 화상회의를 열었고,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은 카불 주재 미국 대사관 직원들을 카불 공항으로 긴급히 이송하라고 지시했다. 그날 저녁 블링컨 국무장관은 가니 아프간 대통령과 통화했다. 가니가 물러나고 임시정부가 출범하면, 탈레반이 카불에 진공하지 않고 외곽에 남아있도록 하겠다는 협상을 탈레반 쪽과 진행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가니는 마지못해 동의했다.
일요일인 15일 아침이 되자, 카불에서 100㎞ 서부의 주요 도시 잘랄라바드에 탈레반이 입성했다. 카불은 이제 고립됐다. 외곽에는 벌써 탈레반 대원들이 출몰하기 시작했다.
가니의 대통령궁에도 공포가 닥쳤지만, 가니가 전날 밤 블링컨 미 국무장관과 한 협상으로 최악의 경우라도 미군이 철군하는 시한인 31일까지는 카불이 안전하리라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정오가 되자, 이상한 소문들이 나돌기 시작했다. 일부 참모들이 도망가는 가운데 한 수석 보좌관이 가니에게 “탈레반 대원들이 대통령궁으로 들어와 그를 찾으려고 방마다 뒤지고 있다”고 보고했다.
이 보고는 사실이 아니었다. 탈레반은 대원들이 카불의 주요 검문소를 통과해 도심 주변에 있고, 폭력적으로 도시를 장악할 의사는 없다고 발표했다. 탈레반은 전날 미국과 평화적 이양에 대한 합의를 했고, 이를 준수할 의사였다.
탈레반의 이런 의사는 가니에게 전달되지 않았고, 이미 공포에 질린 참모들은 대통령에게 “여기에 머물면, 경비병이나 탈레반에 의해 죽을 것”이라고 말했다. 탈레반은 지난 1996년 카불에 입성해서는 이미 은퇴했던 사회주의 정권의 대통령 모하마다 나지불라를 때려 죽인 뒤 길거리에 매달아 놓았다.
가니는 집으로 가서 소지품을 챙기려 했으나, 시간이 없다는 참모들의 재촉에 부인과 몇몇 수석 참모들과 함께 막바로 헬기를 타고 떠났다. 동승한 참모는 헬기가 힌두쿠시 산맥 위를 날고 있다는 것을 보고 비로소 자신들이 막바로 국외로 탈출한다는 것을 알았다. 헬기는 우즈베키스탄에 착륙했고, 거기서 소형 비행기로 갈아타고는 아랍에미리트로 향했다.
가니는 부통령 2명을 포함해 정부의 주요 고위 인사들에게조차 자신의 국외 탈출을 알리지 않았다. 고위 관리들은 급박한 상황에 대한 도움을 대통령궁에 요청했으나, 아무런 회신을 받지 못했다. 눈치빠른 관리들은 공항으로 달아났고, 곳곳에서 정부 붕괴의 움직임이 시작됐다. 의회 의장 등은 파키스탄으로 달아났고, 비스밀라 칸 모하마디 국방장관은 군용기에 타고는 아랍에미리트로 떠났다. 사르와르 다니시 제2부통령, 아마드 지아 사라지 정보국 국장도 대열에 합류했다.
오후부터 카불 공항으로 인파가 몰려들면서, 카불의 치안이 곤두박질하기 시작했다. 미국이 누구보다도 놀랐다. 가니의 도주로 임시정부로의 평화적인 이양 가능성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카타르 도하에서 협상중이던 미-탈레반 대표단들이 다시 나섰다. 케네스 매켄지 중부군 사령관 등 미군 지도자들은 탈레반 대표인 압불 가니 바라다르와의 직접적인 대면 회의를 했다.
바라다르는 “우리에게 문제가 생겼다”며 카불의 권력 및 치안 공백 상황을 지적했다. 그는 “두 가지 방안이 있다”며 “당신들이 카불의 안전을 책임지던가, 우리가 책임을 질 수 있도록 허락하라”고 촉구했다. 아프간에서 모든 병력을 철수한다는 바이든 대통령의 결정은 아프간 정부의 붕괴도 바꾸지는 못했다. 맥켄지 사령관은 바라다르에게 미국의 임무는 위기에 처한 미국 시민과 협조자들을 소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를 위해 미국이 공항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자리에서 합의가 이뤄졌다. 미국은 31일까지 카불 공항을 사용하고, 탈레반은 카불을 통제하기로 했다. 곧 탈레반의 사령관인 무함마드 나시르 하카니의 전화에 “시내로 진입해 추가적인 무질서를 막고, 혼란으로부터 공중의 재산과 공무를 보호하라”는 지시가 전해졌다. 1시간 내로 하카니와 그의 무장병력들 시내 중심가에 진입해 대통령궁까지 들어갔다.
하카니와 대원들은 혼자 남은 경비병의 안내로 대통령 집무실까지 돌아보면서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그가 눈물을 흘리는 동안 카불 시내 곳곳에서는 절망과 공포가 급속히 퍼져나갔고, 공항으로 가는 아비규환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정의길 기자
미국, 카불서 ‘테러 용의 차량’ 드론 공격…민간인 사망
카불 공항 공격하려던 차량에 드론 공격
미군 “임박한 위협 제거한 방어적 공격”
민간인 3~9명 사망했다는 보도 잇따라
29일(현지시각) 아프간인들이 미군의 드론 공격을 받은 차량 주변을 둘러보고 있다. 카불/AP 연합뉴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서 공항을 공격하려는 자살폭탄 테러 용의자의 차량을 드론으로 공격했다고 밝혔다. 이 공격으로 3~9명의 민간인이 사망했다는 보도들이 나오고 있다.
미군 중부사령부는 29일 카불 공항에 “임박한” 위협을 조성하는 ‘이슬람국가 호라산’(IS-K)의 자살폭탄 테러 용의자를 겨냥한 방어적 공습을 실시했다고 밝혔다. 이 공습으로 6명의 어린이 등 한 가족 9명이 사망했다고 사망자의 형제가 CNN에 밝혔다.
중부사령부 대변인 빌 어반은 “미군은 오늘 카불의 한 차량에 대해 자위적인 무인기 공습을 실시해,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에 대한 임박한 위협을 제거했다”고 발표했다. 그는 “우리는 그 목표물을 성공적으로 공격했다고 자신한다”며 “차량에서 뚜렷이 나타난 2차 폭발은 상당한 양의 폭발물질이 있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날 공습으로 사망한 민간인들은 드론 공습에 의한 직접적인 희생자인지, 차량의 2차 폭발에 따른 희생자인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어반 대변인은 미군은 “현재로서는 민간인 피해 보고가 없지만, 그 가능성을 측정하고 있다”고만 밝혔다.
국방부의 한 관리는 초기 보고들에 따르면, 공습의 목표물(차량)에는 다수의 자살폭탄 테러범들이 탑승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졌고, 차량폭탄이거나 자살폭탄 조끼를 입은 테러분자가 위협이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고 전했다.
공습이 실시된 곳은 카불의 하제 부그라라고 미 관리가 확인했다. 공습 현장의 주민과 목격자들은 어린이들을 포함한 주민들이 숨졌다고 말했다. 한 주민은 “모든 이웃 주민들이 물을 가져와서 불을 끄고 도왔는데, 5~6명이 숨진 것을 봤다”고 말했다. 그는 “그 가족의 아버지, 어린 소년, 두 명의 아이가 있었고, 그들은 죽었다. 갈가리 찢겨 있었다. 부상자 2명도 있었다”고 증언했다. 또 다른 주민은 “3명이 차량 안에 있었고, 다른 3명이 차 밖에 있었다”고 전했다.
AP통신은 아프간 당국자를 인용해 이번 공습으로 어린이 3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전했다. 현지 매체에는 민간인이 최소 6명 사망했다는 보도도 있다고 <워싱턴 포스트>는 전했다.
미국은 지난 26일 카불 공항 폭탄 테러에 대한 보복으로 27일 동부 낭가하르주 지역을 공습해, 이슬람국가 호라산 간부 2명을 제거했다고 밝힌데 이어, 이날도 카불에서 공습했다. 정의길 기자
아프가니스탄 카불에서 최악의 폭탄 테러가 일어난 가운데 추가 테러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일부 국가들은 추가 테러를 우려해 대피 작업을 중단하기로 했다.
프랭크 매켄지 미 중부 사령관은 26일 미 국방부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슬람국가(IS)의 공격은 지극히 현실적”이라며 “그들은 (우리를) 계속 공격하려 들 것이고, 이런 공격은 계속될 수 있다. 우리는 공격에 대비해 모든 것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미 국방전문 매체 <스타스앤스트립스>가 전했다.
아직 미국의 철수 작전이 완료되지 않았고, 이슬람국가가 본격적인 공격을 시작한 이상 같은 공격이 반복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공격의 주체인 이슬람국가 호라산(IS-K)은 미국 등 서방을 주적으로 하고, 미국과 평화협상을 한 탈레반마저 ‘배신자’로 간주하고 있어, 추가 테러 공격이 이어질 수 있다.
매켄지 사령관은 지난 14일 미국의 아프간 철수 작전이 시작된 뒤 어느 시점에 공격이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고도 말했다. 매켄지 사령관은 “이런 비전투적인 대피 계획을 세울 경우, 공격을 받을 수 있다고 예상한다”며 “우리는 이런 일이 곧, 혹은 조만간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미국은 대규모 전투 병력이 대부분 철수했고, 5천여명이 남아 자국민과 아프간인 협력자들을 대피시키기 위한 작전을 펴고 있다. 실제 아프간 주재 미 대사관과 영국 정부 등은 25일 카불에 테러 가능성을 경고했다.
아프간 대피자들을 태운 미군 수송기.
영국과 프랑스 등 아프간에 파병했던 주요 동맹들도 긴박한 상황이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이날 테러 직후 긴급 안보회의를 열고 철군 시한 마지막까지 구출 작전을 이어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존슨 총리는 “이번 공격은 앞으로 남은 시간에 작업을 최대한 빠르고 신속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보여줬고, 우리는 그렇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캐나다와 벨기에, 덴마크, 폴란드, 네덜란드 등 다른 아프간 파병국들은 테러 첩보 때문에 카불 공항 대피 작전을 종료한다고 이날 발표했다고 <워싱턴 포스트>가 전했다. 프랑스도 27일 대피 작전을 중단한다. 최현준 기자
“카불 공항 하수구에 주검 떠다녀…아기도 사망” 생존자 증언
“고막 찢는 듯 폭발음 두 차례
폭풍에 비닐봉지 휩쓸리듯
주검과 신체 조각들 날아다녀”
26일 아프가니스탄 카불의 하미드 카르자이 공항에서 일어난 폭탄 테러로 다친 피해자를 시민들이 돌보고 있다. 카불/UPI 연합뉴스
두차례 폭탄 테러로 미군 13명 등 90여명이 숨지고, 최소 140여명이 다친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은 온종일 아비규환 상태가 지속됐다.
26일(현지시각) 발생한 자살 폭탄 테러 현장을 목격한 이들은 당시 급박한 상황을 ‘최후의 날’, ‘완전한 패닉 상태’라고 전했다. 이날 카불의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의 애비 게이트와 이곳에서 250m 정도 떨어진 배런 호텔에서 두차례 폭탄이 터졌다.
공항 하수구에는 수십구의 주검이 떠 있었고, 외국행 꿈이 담긴 옷가지와 여행 가방 등이 공항 부근 도로에 널브러져 있었다. 부상자와 생존자가 뒤엉켜 탈출 행렬이 이어졌고, 카불 시내의 병원들은 테러 현장에서 실려온 부상자들로 가득 찼다.
테러 현장에 있었던 밀라드는 <아에프페>(AFP) 통신에 “주검과 절단된 신체, 그리고 사람들이 열려 있는 하수구로 쏟아져 들어갔다”며 “완전한 혼란 상태”였다고 말했다. 또 다른 아프간 남성은 <가디언>에 “최후의 날 같았다. 사방에 부상자가 있었다”고 말했다.
다른 남성은 <로이터> 통신에 “폭발이 일어난 순간 내 고막이 터지는 것 같고 청력을 잃은 줄 알았다”며 “토네이도에 비닐봉지가 휩쓸리듯 주검과 신체 조각들이 공중을 날아다녔다”고 말했다. 미국 특별이민비자를 가진 그는 공항에 들어가기 위해 애비 게이트 앞에서 10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폭탄 테러 과정에서 미군과 탈레반의 대응에 대한 목격담도 이어졌다. 테러 당시 현장에 있던 파힘은 폭발 직후 탈레반과 미군이 사람들을 해산시키기 위해 하늘로 총을 쏘았다고 말했다고 <가디언>이 전했다.
폭발이 발생한 곳에서 10m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다는 한 남성은 <뉴욕 타임스>에 “(폭발이 발생해) 우리는 땅바닥에 쓰러졌고 외국 군인들이 총을 쏘기 시작했다”며 “사람들이 밀집해 있어 서로 밀치는 상황이었고, 나는 사람들 가운데 갇혀 있었다”고 말했다. 비상 상황임을 알리는 사이렌 소리와 함께 군중들에게 “집으로 돌아가라”는 확성기 방송도 계속됐다.
아기의 죽음 등 안타까운 사연도 전해졌다. 한 아프간 통역사는 미 <CBS>에 “(쓰러져 있는) 한 여자아이를 발견하고, 아이를 데리고 병원으로 갔지만 아이는 내 손에서 숨졌다”며 “지금 일어나는 일이 너무 가슴 아프다. 이 나라 전체가 무너지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목격자는 혼란스러운 와중에 그와 부인, 세 명의 아이들이 미국행 비행기에 탈 수 있는 서류를 잃어버렸다. 이 남성은 “나는 다시는 (공항에) 가지 않을 것”이라며 “미국과 탈출, 비자가 모두 끝나버렸다”고 말했다.
카불 공항에 대한 추가 테러도 우려되는 상황이다. 카불 공항의 수송작전을 총지휘하는 프랭크 매켄지 미국 중부사령관은 “공항을 겨냥한 로켓 공격, 차량 폭탄 공격 등 추가 공격 가능성에 대비하고 있다”며 “대비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현준 박병수 기자
IS-K에 미군이 당했다…바이든 “끝까지 응징”
[이슬람국가 호라산 카불 테러]
공항과 호텔 2곳 자살폭탄 공격 미군 13명, 아프간인 73명 사망
미국 내선 `바이든 책임론' 나와... 추가 테러 우려에 불안감 고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6일 백악관에서 아프가니스탄 카불 공항에서 발생한 자살폭탄 테러와 관련한 기자회견 도중 고개를 파묻고 기자들의 질문을 듣고 있다. 워싱턴/로이터 연합뉴스
서방의 철군·대피가 이뤄지고 있는 아프가니스탄 카불 공항 주변에서 이슬람국가 호라산(IS-K·이하 호라산)이 자살 폭탄 테러를 일으키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응징을 예고했다. 미국이 20년 지속된 아프간 전쟁을 종식하겠다며 오는 31일을 목표로 진행하고 있는 철군 및 민간인 대피 작업이 혼돈에 빠져들면서 최대 고비를 맞았다.
바이든 대통령은 카불 공항 테러 소식이 알려진 뒤 7시간여 만인 26일 오후(현지시각) 백악관 연설에서, 이슬람국가의 아프간 지부 호라산을 향해 “우리는 용서하지 않을 것이고, 잊지 않을 것”이라며 “끝까지 찾아내 대가를 치르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바이든은 호라산 지도부와 자산, 시설에 대한 공격 계획을 마련할 것을 군 지휘관들에게 지시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우리가 선택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무력과 정밀성으로 대응할 것”이라며 “이슬람국가 테러리스트들은 승리하지 못할 것이다. 미국은 겁먹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이날 아프간 수도 카불의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의 애비 게이트와 여기서 250m 정도 떨어진 배런호텔에서 두 차례의 자살 폭탄 테러가 발생했다. 이 테러로 미군 13명이 숨지고 18명이 다쳤다고 미 국방부는 밝혔다. <뉴욕 타임스>는 지역 당국자의 말을 따, 아프간 민간인 73명이 숨졌다고 보도했다. 호라산은 자신들이 공격 주체라고 밝혔다. 호라산은 미국 등 서방을 주적으로 하고, 미국과 평화협상을 한 탈레반마저 ‘배신자’로 간주하고 있어, 추가 테러 공격 우려가 크다.
미국은 자국인과 아프간인 대피 작업을 계속 진행해 31일까지 완료할 방침이다. 바이든은 “우리는 테러리스트들로부터 저지당하지 않는다. 그들이 우리 임무를 관두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필요하면 병력 추가 투입을 승인하겠다고 덧붙였다.
호라산의 테러 공격으로, 바이든은 추가 인명 피해를 막으면서 임박한 시한 안에 대피 절차를 마무리해야 하는 부담을 떠안았다. 아울러 이날 약속한 대로 호라산 지도부와 그 시설을 신속하게 찾아내 정밀타격하는 과제도 안았다. 미국을 또 다른 ‘중동 수렁’에 빠뜨리지 않으면서 테러에 명료하게 보복하는 일이다.
바이든은 이번에 숨진 미군들을 “다른 이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한 위험하고 이타적인 임무에 복무한 영웅들”이라고 일컬으며 애도를 표하고 묵념을 제안했다. “힘든 하루”라는 말로 연설을 시작한 바이든은 기자들과 문답을 주고받다가 모은 두 손 위에 고개를 파묻고 생각에 잠긴 모습을 보여, 침통하고 단호한 분위기를 더했다.
바이든은 “20년 전쟁을 끝낼 때였다”며 거듭 철군 결정을 옹호했으나, 이날 백악관 기자 브리핑에서 ‘공화당 상원의원들이 이번 테러로 대통령의 사임을 주장한다’는 질문이 나올 정도로 비판이 고조되고 있다. 젠 사키 대변인은 “정치 얘기 할 날이 아니다”라고 답했다.
추가 테러에 대한 불안감이 고조되면서 아프간에 파병했던 주요 동맹들도 긴박한 상황이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이날 긴급 안보회의를 열고 철군 시한 마지막까지 구출 작전을 이어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캐나다와 벨기에, 덴마크, 폴란드, 네덜란드 등 다른 아프간 파병국들은 테러 첩보 때문에 카불 공항 대피 작전을 종료한다고 이날 발표했다. 프랑스도 27일 대피 작전을 중단한다. 워싱턴/황준범 특파원, 최현준 기자
탈레반 “우리 대원 28명 사망…공항은 미국 관할” 책임 떠넘겨
의료진이 25일 카불 공항 폭탄테러로 다친 사람을 치료하고 있다. 카불/AP 연합뉴스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서 발생한 이슬람국가 호라산(IS-K·이하 호라산)의 자살 폭탄 테러로, 탈레반도 소속 대원 최소 28명이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탈레반 관계자는 사건 하루 뒤인 27일 오전(현지시각) “우리는 미군보다 더 많은 사람이 숨졌다”며 탈레반 대원 28명이 숨졌다고 말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보도했다. 익명을 요구한 이 관계자는 또 “미군 등 외국군이 이 나라를 떠나는 시한을 31일 이후로 늦출 이유가 없다”고 덧붙였다.
<뉴욕 타임스>는 아프간 민간인 사망자 73이 숨졌다고 보도했으나, 이 중에 숨진 탈레반 28명이 포함된 것인지 아닌지는 불투명하다. 미국은 미군 13명이 숨지고 18명이 다쳤다고 밝혔다.
탈레반은 테러 공격의 표적이 된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이 자신들의 통제권 밖이라고 주장했다. 사건 발생과 관련한 보안 책임을 미군에 떠넘기려는 의도로 보인다.
자비훌라 무자히드 탈레반 수석대변인은 러시아 <스푸트니크> 통신 인터뷰에서 공항 보안을 위해 탈레반이 어떤 조처를 할지에 대해 “불행히도 공항은 탈레반 통제 범위에서 벗어났다”고 답했다고 <연합뉴스>가 전했다. 그는 “공항 인접 지역의 치안 책임은 미국에 있다”며 “공항 주변을 비롯해 우리 병력이 있는 곳은 안전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관계자는 이날 <로이터>에 “탈레반이 공항 경비를 강화하기로 했다”며 “안보는 그들의 책임”이라고 말했다. 탈레반이 카불 공항의 관문 경비를 강화하고, 공항 게이트에 몰린 군중을 관리하기 위한 병력을 증원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무자히드 대변인은 민간인의 경우 31일 이후에도 아프간을 출국할 수 있도록 허용할 수 있다는 뜻도 밝혔다. 그는 31일 이후 민간인 출국을 허용할 것이냐는 질문에 “사정이 허락하면 그럴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미군 철군에 대해선 예정대로 31일에 끝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병수 기자
‘이슬람 내부의 적’ IS-K 테러…탈레반 통치 첫 시험대 오르다
이슬람국가 아프간 지부 호라산(IS-K) 카불 테러]
이슬람국가 호라산(IS-K)이 인터넷 선전매체에 올린 사진.
2015년 이슬람국가 아프간 지부로 결성
아프가니스탄에서 재집권한 탈레반의 통치에 대한 첫 도전은 서방 등 외부가 아닌, 그들이 성장했던 이슬람주의 세력 내부에서 나왔다.
이슬람국가 아프간 지부인 ‘이슬람국가 호라산’(IS-K·이하 호라산)은 26일 전세계의 관심이 집중된 혼란의 카불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 인근에서 두차례 자살 폭탄 테러를 감행해, 정국을 안정시키려는 탈레반에 일격을 가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즉각 보복 공격을 다짐해, 미국 등 서방과 탈레반 및 이슬람주의 무장단체들 사이에 복잡하고 미묘한 갈등과 역관계가 요동칠 것으로 보인다.
탈레반 이탈 과격대원이 주축
호라산은 이슬람주의 세력 내에서 탈레반의 최대 경쟁 세력이자 적대 세력이다.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칼리프 국가를 참칭했던 최대 이슬람주의 무장세력이었던 ‘이슬람국가’(IS)가 극성이던 2015년, 아프간의 지부로 결성됐다. 호라산은 주로 탈레반에서 이탈한 과격 대원으로 충원돼, 아프간에서도 가장 극단적이고 폭력적인 테러 무장단체로 언급된다. 서방 당국에서는 이슬람국가를 이전 명칭인 ‘이라크시리아이슬람국가’(ISIS)로 부르고 있어, 서방에선 이슬람국가 호라산도 ‘ISIS-K’로 약칭한다.
시작부터 아프간 내 탈레반 경쟁 세력으로 출범한 호라산은 탈레반이 카타르 도하에서 미국과 평화협상을 추진하자 거세게 비난했다. 탈레반이 “화려한 호텔”에서 적들과 내통하면서 지하드(성전)를 포기하고 있다는 주장이었다. 이들은 최근 몇년 동안 여자학교와 병원을 공격했고, 심지어 산부인과 병동까지 공격해 임산부와 간호사를 죽였다. 2019년 8월 카불의 결혼식장에서 자살 폭탄 테러를 감행해 63명의 목숨을 빼앗았고, 지난해 11월 카불대학에서도 총격 테러를 가해 20여명을 숨지게 했다.
미국과 협상한 탈레반도 적대시
호라산의 근거지는 아프간 동부의 파키스탄 접경주인 낭가르하르이고, 이 지역 마약 밀매와 연관되어 있다. 전성기였던 2016년에는 무장대원이 3천여명까지 달했으나, 미국과 아프간 정부군의 소탕 작전이 시작되고, 탈레반과 충돌하면서 그 수가 급감해 현재 500~1000명 정도로 추산된다.
하지만 호라산은 기존의 탈레반 대원 중 경험이 많은 무장대원으로 구성된데다, 비타협적인 지하드를 추구하는 이들이다. 유엔 보고서를 보면, 2020년 6월 새로운 지도자로 샤하브 무하지르가 등극해, 미국과 평화협상을 추진한 탈레반의 온건 노선 선회에 불만을 품은 대원들을 빼오는 일에 더욱 박차를 가해왔다고 평가하고 있다.
탈레반과 호라산은 아프간 동부에서 직접적으로 충돌했지만, 두 세력 사이의 연계성이 완전히 차단된 것은 아니다. 탈레반 내의 한 분파인 하카니 네트워크가 그 고리로 알려져 있다. 하카니 네트워크는 탈레반 내에서도 국제적인 테러 네트워크가 강한 세력이고, 일찌감치 알카에다와도 긴밀한 관계를 맺었다. 하카니 네트워크는 탈레반과 호라산 사이의 회색지대로도 분석된다.
아시아태평양재단의 테러 분석가 사잔 고헬 박사는 <BBC>에 “2019년과 2021년 사이에 벌어진 테러 공격 중 일부는 이슬람국가 호라산, 탈레반의 하카니 네트워크 및 파키스탄에 기반을 둔 다른 테러 단체들 사이 협력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현재 카불의 치안은 하카니 네트워크의 수장인 할릴 하카니가 맡고 있다. 미국은 현상금 500만달러를 걸고 할릴 하카니를 국제테러분자로 수배 중이다. 탈레반이 카불로 진공하는 과정에서 풀에차르히 교도소에서 많은 수감자들이 석방됐는데, 그중에는 호라산과 알카에다 대원들도 있었다.
이슬람국가 호라산(IS-K)이 인터넷 선전매체에 올린 사진.
탈레반, IS-K 소탕 땐 안팎 갈등
미국은 이미 며칠 전부터 호라산의 테러 공격을 경고해왔다. 외국인 및 아프간 협력자들의 소개를 놓고 탈레반과 미국 등 서방이 갈등하는 상황인데다, 카불 공항 주변의 아비규환 상황 자체가 테러 공격을 감행하기에는 최적의 조건이기 때문이다.
이번 테러 공격 이후 탈레반에는 당장 이슬람주의 무장세력들을 통제하는 것이 급선무로 떠올랐다. 탈레반은 미국과의 도하 평화협정에서 ‘아프간을 알카에다 등 국제테러단체의 테러 발진기지로 이용하지 못하게 하겠다’고 합의했다. 미군 철수를 이끌어낸 핵심인 이 사안은 탈레반이 정상국가의 정권으로 인정받고, 전후 재건에 필요한 국제사회의 지원을 이끌어내는 데 있어서도 관건이다. 하지만 탈레반이 호라산 소탕 작전을 강화하면, 내부의 하카니 네트워크나 알카에다 등과의 관계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하다. 이는 탈레반 안팎에서 큰 반발과 갈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보복 다짐’ 미국과 협력 고리될 수도
성급한 철군 결정으로 탈레반의 카불 조기 입성을 초래했다는 국내외 비판에 직면한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 역시 사면초가로 몰리고 있다. 케빈 매카시 공화당 하원 원내대표는 아프간에서 모든 미국인의 철수 때까지 철군을 연장하는 입법을 촉구하고, 벤 새스 공화당 상원의원은 미군이 카불 공항 주변 밖으로 통제권을 확대하거나 바그람기지를 재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오는 31일인 철군 시한을 고수하겠다고 거듭 밝혔다. 철군 시한을 연장하는 것은 카불의 혼란을 지속하고, 테러의 조건을 더욱 강화시키는 것이어서 미국이나 탈레반이나 현재로서는 수용하기 힘든 상황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그때까지 소개 작전을 무사히 완료하는 한편 이번 테러에 대한 응징도 보여줘야 하는 ‘딜레마’ 상황에 놓여 있다.
다만 이런 상황이 오히려 미국과 탈레반 사이에 ‘공통분모’를 찾는 계기로 작용할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바이든 대통령이 다짐한 보복은 탈레반의 협조 없이는 불가능하고, 탈레반도 차제에 알카에다 등과의 관계를 차단하는 명분으로 삼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는 탈레반 지도부의 온건화를 더욱 촉진하고, 서방과의 협력 고리를 만드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다분히 낙관적인 전망이다. 정의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