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문·남의 땅에서·비무장을 살해… ‘미국식 정의’
불법성 논란·비난 확산

알카에다 지도자, 오사마 빈라덴을 사살한 미국의 ‘정의’를 두고 세계가 논란에 빠져들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정의가 실현됐다”고 선언하며 그의 죽음을 알렸지만, 헬무트 슈미트 전 독일 총리는 “분명한 국제법 위반”이라고 반박했다. 영국 성공회 수장 로완 윌리엄스 캔터베리 대주교는 “비무장한 인간을 사살한 것은…매우 불쾌하다”고 말했다.

◆ 불법으로 점철된 ‘미국식 정의’ : 9·11테러의 원흉으로 지목된 빈라덴 제거 작전 ‘제로니모’는 시작부터 끝까지 불법성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작전의 실마리가 된 빈라덴의 은신처 정보는 ‘고문’으로 얻어냈다. 리언 파네타 중앙정보국(CIA) 국장은 NBC와의 인터뷰에서 “강한 심문 기술(물고문 등 포함)을 사용했냐”는 질문에 선선히 “그렇다”고 답했다. 고문이 이뤄졌다는 관타나모 미군 기지는 오래전부터 ‘국제법이 실종된 블랙홀’로 지목돼 온 곳이지만 여전히 버티고 있다.
미국 네이비실 대원들은 주권 국가인 파키스탄 영토내 빈라덴의 은신처 아보타바드 지역에서 무단으로 작전에 돌입했다. 이에 대해 살만 바키르 파키스탄 외무 차관은 5일 자국 영토에서 다시는 기습작전을 벌여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백악관이 발표한 것과 달리 작전은 일방적인 사살전 양상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뉴욕타임스>는 4일 “빈라덴 쪽의 대응사격은 작전 초반 한차례 뿐”이라는 백악관 관리들의 말을 따 일방적인 소탕 작전이었다고 보도했다. 비무장한 빈라덴이 마당에 끌려나와 12살 딸 앞에서 처형됐다는 범아랍 위성방송 <알아라비야>의 보도도 파장을 더했다.

◆ 거짓말을 대하는 미국인들의 이중 의식 : 사건 뒤 미 당국의 대응도 ‘거짓말’로 점철됐다는 비난을 사기에 충분하다. 미 백악관 존 브레넌 대테러담당 보좌관은 총격전이 벌어졌으며 빈라덴이 “부인으로 추정되는 여성을 인간방패로 사용했다”고 말해 여러 언론들은 그를 야비한 악당으로 묘사했다. 그러나 미 당국은 뒤에 이는 모두 사실이 아니라고 말을 뒤집었다.
미 정부는 이와 같은 논란이 알카에다와의 전시 상황이기 때문에 “문제없다”는 입장이다. 미 법무장관 에릭 홀더는 4일 상원에 출석, “(작전은) 국가 방위를 위한 행동”이었다며 “9·11 테러를 자행한 빈라덴은 적의 지휘관으로 전장의 합법적인 목표물”이라고 말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사설에서 “국제법은 각 국가의 자위권을 인정하고 있다”며 파키스탄 영내에서 벌인 작전도 국제법적으로 문제가 없는 자위권 행사라고 거들었다.
미 정부의 잇단 거짓말에 대한 미국인들의 반응은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성추문 사건 당시와 정면 모순된다. 당시 미국인들은 성추문 자체보다 클린턴 대통령이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에 충격과 배신감을 쏟아낸 바 있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서 드러난 미 정부의 조직적인 거짓말에 대해서는 극히 관대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 “국가가 개인을 암살한 것” : 국제사회는 미국의 주장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비무장한 인간을 다른 주권국가 영내에서 사살한 것은 법적·도덕적 비난을 사고 있다. 세실리아 말른스트렘 유럽연합(EU) 내무담당 집행위원은 빈라덴을 법정에 세웠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나비 필라이 유엔인권기구 대표는 빈라덴의 사살에 대한 적법성 여부를 따지기 위해 미국에 “정확한 사실을 완전 공개하라”고 압박했다.
일본의 <아사히신문>은  “국가가 개인을 암살한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며 “빈라덴은 원래 산 채로 구속해야 할 사람이었다. 국제법상 인정되는 살해인가라는 점에서 미묘한 측면이 있다”는 피에르 다르장 벨기에 루뱅카톨릭대학 교수의 문제제기를 전했다. 유엔의 유고슬라비아 전범재판소 판사로 일한 적이 있는 다야 지카코 호세대학 교수도 “(빈 라덴 사살이 합법이라면) 미국에 위험한 인물은 누구든 죽여도 좋은가”라고 반문했다.

◆ “또다른 야만성을 부르는 야만 집단” : 미국이 내세우는 ‘정의’는 가려지기 힘든 근원적인 ‘원죄’에 묶여 있다는 것이 관련 학자들의 지적이다.
중동문제 전문가인 이희수 한양대 교수(문화인류학)는 “이는 문명이기를 포기한 집단 알카에다와 문명을 가장한 또 다른 야만 집단의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테러가 반문명 행위라는데 누구도 이견은 없다”고 전제한 뒤 “그러나 미국은 자신들이 테러의 피해자이기에 정의를 복원했다고 주장하지만 그 전에 미국이 인류보편적 가치와 국제법을 왜곡하면서 외교 정책을 펴온 테러의 원인제공자이기도 하다는 점은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9·11테러로 미국에서 3천명 가량의 희생자가 나왔지만 미국이 빈라덴을 뒤쫓는다고 아프간, 이라크를 침공한 지난 10년 동안 50만 가량의 무슬림이 죽은 것으로 영국 <인디펜던트>의 중동 전문 기자 로버트 피스크는 추정했다. 셀 수 없는 목숨의 가치를 숫자로 비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지만 이는 ‘미국의 정의’라는 이름으로 가장하고 있는 추악한 진실이기도 하다.
안병진 한국사이버대 미국학과 교수는 “관타나모, 이라크전 등을 볼 때 미국이 정의의 사도처럼 행동하는 것은 중동 등 국제사회에 오만하게 비춰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 “미국의 적을 우리의 적으로 간주 말아야”: 한국도 ‘미국의 승리’에 도취돼 무분별하게 찬가를 합창해선 곤란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희수 교수는 “우리가 주목해야 될 것은 한 생명의 죽음을 두고 환호하는 또다른 야만성에 대한 비판”이라고 말했다. 중동 전문가 유달승 한국외대 교수(이란어과)는 “미국의 적은 우리의 적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을 조심해야 한다”며 “한국이 아프간 파병 등으로 인해 테러 위협의 당사자로 부각된 면도 작용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보복 테러 위협, 각국 불안

● WORLD 2011. 5. 13. 14:05 Posted by Zig
“죽은 빈라덴에 산 오바마 떤다”

오사마 빈라덴 사살 이후, 미국과 동맹국에 대한 안보위협 우려가 오히려 더 커지고 있다. 이미 이라크 등에서는 알-카에다의 소행으로 추정되는 테러공격이 발생하고 있으며 세계 각국은 보복테러 불안으로 경계태세를 강화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공항과 역 주변에서는 소총을 든 군인과 경찰들의 경계근무가 한층 강화되고 있다. 찰스 슈머(민주·뉴욕) 상원의원은 8일 기자회견을 열어 열차 테러에 대비해 ‘비행금지 승객 명단’과 같은 ‘열차탑승 금지자 명단’을 연방정부가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서기도 했다. 빈라덴이 9·11 10주년을 기념해 미국 본토에서의 ‘열차 테러’를 계획했다는 내용이 공개되면서 그동안 비행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보안이 허술했던 열차 보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탓이다.

미 국내선 여객기가 9일 운항 도중 ‘보안상의 잠재적 위협’ 때문에 인근 공항에 비상착륙하는 소동이 벌어진 것은 알카에다 보복 공격에 대한 미국의 긴장상황을 말해준다. 137명의 승객을 태우고 디트로이트에서 출발해 샌디에이고로 가던 델타항공 소속 1706편의 기내 화장실에서 이상한 메모가 발견되면서 이 비행기는 오전 10시께 뉴멕시코주 앨버커키 공항에 비상착륙했다. 연방수사국(FBI) 요원들이 출동해 승무원과 승객에 대한 조사를 마친 뒤인 이날 낮 12시30분께 다시 이륙을 허가했다. 연방수사국은 ‘메모’ 내용에 대해선 밝히지 않았다.
재닛 나폴리타노 미국 국토안보부 장관은 “알카에다나 그 지부, 또는 그들의 이념에 감화된 자들이 서방에 공격을 집중할 것이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며 “이는 우리가 바짝 경계해야 한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앞서 7일 이라크의 알 카에다와 이슬람 무장세력의 거점인 이라크 동부 디얄라주 의 바쿠바에서는 무장괴한들이 환전소에서 40억 디나르(340만 달러)를 훔쳐 달아나면서 5명을 살해하고 차량폭탄으로 7명을 부상시켰다.

소말리아에서는 알 카에다와 연계 속에 세를 불리고 있는 반군단체인 알 샤바브가 빈 라덴의 죽음에 대한 보복을 천명했다. 또 팔레스타인 가자에서는 이슬람 강경조직 살라피스트 대원 십여명이 빈 라덴의 포스터를 흔들고 “우리는 너희 미국과 유럽에 경고했다”며 시위에 나섰다.   빈라덴은 미군에 의해 사살되기 전 마지막으로 녹음한 음성메시지에서 “우리가 팔레스타인에서 안전하게 살 때까지 미국은 안전하기를 바랄 수 없을 것”이라며 “당신들(미국)이 이스라엘을 계속 지지하는 한 당신들에 대한 우리의 공격도 계속될 것”이라고 위협했다.

< 워싱턴=권태호 특파원 >
부친 재임중 학살·부패 사죄

“아버지의 재임 시절 일어났던 잘못을 인정하고 국민들에게 사죄합니다.” 알베르토 후지모리(73) 전 페루 대통령의 딸이 방송 카메라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대선 후보로 출마한 게이코 후지모리(36) 상원의원이 지난 24일 아버지의 잘못을 처음으로 인정하고 공식 사과했다.
게이코 의원은 이날 지역방송 <프레쿠엔시아 라티나>에 출연해 부친재임 기간 동안 벌어졌던 학살과 부패 등을 사과하며 “두 번 다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겠다”면서 대통령에 당선되더라도 “(복역 중인) 아버지를 사면하지 않겠다”고도 밝혔다. 후지모리 전 대통령은 10년(1990~2000년) 동안 페루를 통치하면서 학살과 납치, 횡령, 부패 혐의로 25년형을 선고받고 현재 복역 중이다. 하지만 그는 아버지의 정부를 ‘독재정권’으로 규정하는 데는 반대했다. 과오는 있지만 거시경제적 성과를 냈으며 한 세기를 끌어온 에콰도르와의 국경분쟁을 종식시키는 등 “긍정적인 부분도 많다”는 것이다. 외신들은 게이코 의원이 아버지와 거리두기를 통해 대선 막판 뒤집기에 들어간 것이라고 해석했다.

게이코 의원은 지난 10일 페루 대선 예선 투표에서 23.5%의 투표율을 얻어 2위로 결선 투표에 진출했다. 31.7%로 1위에 오른 좌파 진영의 오얀타 우말라(49) 후보와 오는 6월5일 진검승부를 가리게 된다. 게이코 의원은 17살 때 부모가 이혼한 뒤 사실상 ‘퍼스트 레이디’ 역할을 해왔으며, 2006년 페루 역사상 최다득표로 국회에 입성해 아버지 지지자들을 중심으로 야망을 키워왔다.

미 중동정책「새 모델」고심

● WORLD 2011. 5. 5. 13:00 Posted by Zig
민주화 바람에 갈팡질팡 ‘기존정권 개혁’해법 유력

지난 1월부터 불기 시작한 아랍세계의 거센 민주화 바람이 미국의 앙상한 중동정책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친미정권 지원, 반미정권 압박’이라는 단순구도가 깨지고 나라에 따라, 상황에 따라 정책 방향이 바뀌면서 혼란을 자초하고 있는 것이다. 곧 발표할 새 중동정책을 두고 버락 오바마 정권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 돌아선 시리아 정책 왜? 백악관은 25일 시위대에 대한 무력진압으로 사망자가 속출하는 시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토미 비터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대변인은 성명을 통해 “폭력적 진압행위는 용인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기 위해 제재 방안을 포함해 광범위한 정책수단을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그동안 시리아 제재에 소극적이었다. 시리아를 미국 편으로 끌어들이면 이란을 고립시키고, 이스라엘 평화 유지에 큰 힘을 얻을 수 있어 오바마 행정부는 경제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오바마 대통령이 바샤르 아사드 대통령을 비난하면서도 하야를 촉구하지 않은 것은 이런 사정 때문이었다. 미국은 대테러 정책의 전진기지 구실을 하는 예멘의 알리 압둘라 살레 정부에 대해서도 비슷한 경로를 거쳤다. 상황이 심각해지고 나서야 살레 정권의 퇴진을 압박하고 나선 것이다.
시리아와 예멘 사태는 미 중동정책의 고민스런 현주소를 보여준다. 전임 조지 부시 행정부의 중동정책은 단순했다. 이라크를 기지로 중동 전역에 서방식 민주주의를 펼친다는 외생적 중동민주화론에 입각한 정책이었다. 이에 견줘 오바마 대통령은 ‘아랍’이 아닌 ‘이슬람’이라는 정체성으로 이슬람 세계 전체에 접근하면서, 중동의 내재적 가치에 강조점을 두는 새로운 중동정책을 내세웠다. 그러나 중동 민주화 혁명이 번지자, 미국은 친서방 국가는 옹호하고 리비아와 같은 반미국가는 억압하는 전형적인 ‘더블 스탠스’를 노출하고 말았다. 데니스 맥도너 백악관 국가안보 부보좌관은 지난달 28일 “리비아 군사개입이 시리아, 예멘 등에 대해서도 미국이 개입 정책을 갖고 있음을 뜻하는 건 아니다. 미국의 국익이 최선으로 구현될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고 솔직히 말했다.

■ 미국 ‘국익’의 딜레마 미국 외교정책의 핵심은 ‘국익’이다. 중동에서 미국의 국익이란 ‘이스라엘, 석유, 테러 대응’으로 요약된다. 지금까진 미국의 국익을 위해 이집트, 바레인, 예멘 등의 독재정권을 사실상 지지했다. 미국으로선 ‘허약한 민주정권’보다 ‘강력한 독재정권’이 국익에 유리했다.  하지만 중동의 민주화 사태는 미국, 특히 진보를 표방하는 오바마 행정부에 딜레마를 던졌다. 민주주의, 인권이라는 ‘가치’(이상주의)와 기존 ‘실익’(현실주의)이 충돌한 것이다.
초기에 이집트, 예멘 정권을 지지하던 미국이 돌아선 것도 해당 국민들의 퇴진 요구가 거세지면서 반미 분위기를 불러일으켜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은 미 해군 5함대가 주둔하는 전략적 요충지인 바레인에 대해서는 여전히 정권 유지에 주력하는 등 이중잣대를 거둬들이지 않고 있다. 중동 전문가인 라이언 리자는 <더 뉴요커>에서 “미국은 중동정책에서 늘 도덕적 원칙보다 국익을 먼저 생각했다”고 지적했다.
미국은 조만간 새로운 중동정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새 정책에는 중동 국민들의 민주화 개혁을 지원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한편, 유럽에 안보 책임과 비용 부담을 분담시키려는 다자적 집단안보체제를 내세울 것으로 예상된다. 중동의 변화에 적극 부응하는 한편, 더이상 미국이 혼자서 중동을 책임질 능력이 없음을 시인하는 것이다. 앞으로 미국의 중동정책은 급격한 정권교체(이집트 모델)나 군사개입(리비아 모델)보다는 기존 정권에 민주개혁을 압박하는 형태의 이른바 ‘바레인 모델’을 선호할 가능성이 높다.
워싱턴의 한 외교관계자는 “미국의 중동정책은 늘 국익을 최우선으로 해왔고, 지금도 마찬가지”라며 “미국 중동정책의 변화는 변화된 중동 여건에 미국이 새로이 적응하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