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켓정국 추이보며 미·중간 줄타기 전망
경제건설도 강조… 남북경협 부상할 수도
김정은 체제의 북한이 올해는 어떤 모습을 보일까. 내부 권력 장악에 성공한 것으로 평가되는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일단 경제와 외교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지난해 군 최고사령관에 이어 노동당과 국방위원회의 최고위직을 승계하는 잰걸음을 걸었다. 이에 따라 김정은은 올 한해 비교적 안정적으로 권력을 장악할 수 있었다. 특히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과 최룡해 군 총정치국장의 보좌를 받으면서 군부를 장악했고 장거리 로켓 발사 성공으로 주민들에게 보여줄 업적을 확보하면서 `김정은호’가 순항할 계기를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
▶ 경제적 변화조치 가능성
장거리 로켓 발사 후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정론을 통해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위원장의 시대를 `주체 100년사’로 규정하면서 김정은 시대를 `새로운 주체 100년’으로 부각했다. 김정은 입장에서는 권력을 더 공고화하고 주민들의 마음을 사 국가적 에너지를 모으기 위해서라도 경제적 성과가 필요하다.
북한은 지난해 김 제1위원장의 `6.28방침’에 따라 농촌 지역과 공장 등 일부 사업장에서 자율성 확대에 기반한 시범적인 경제관리개선조치를 추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시범사업의 결과에 따라 올해 경제적으로 변화된 조치가 나올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농업분야에서는 곡물 수확량 중 농민들의 처분권 확대조치가 예상되고 있고 산업분야에서는 각 기업의 자율성 확대를 통해 인센티브를 높이는 방향이 유력해 보인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연구교수는 “북한은 부패를 차단하면서 기업소와 협동농장 등 경제단위별로 자율권을 확대하는 조치를 취해나갈 것”이라며 “특히 로켓 발사 성공에 기반을 둔 과학적 성과를 적극적으로 접목하려는 시도도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이와 함께 전문가들은 나선 특구와 개성공단과 같은 특구를 확대해 외자를 유치하기 위한 노력도 지속할 것이라는 전망도 하고 있다.
중국과 함께 추진하는 황금평 특구의 추진을 가속하면서 북중 접경지역을 중심으로 특구 형태의 협력이 확산할 것이고 러시아와 경제협력도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외자 유치를 위해서는 국제사회로부터 받는 제재를 푸는 노력이 병행되어야 하는 만큼 한국, 미국, 일본, 중국 등 주변국과의 외교적 협상에 적극성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장거리 로켓 발사에 따른 유엔 차원의 대응 논의가 마무리되고 국면이 진정이 되면 자연스럽게 6자회담 참여국 간의 외교적 줄다리기가 이어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 북·미간 양자회담 가시권
북한이 장거리 로켓 발사로 미국을 사정권에 두는 장거리 미사일 발사 능력이 입증된 상황에서 북미간의 양자회담이 탄력을 받을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강력한 대북제재에도 북한이 로켓 능력을 향상시킨 만큼 미국 오바마 정부도 대북협상에 적극성을 보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장용석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북한 김정은 체제는 연말 장거리 로켓 발사를 통해 미국의 강력한 안보 위협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며 “미국 정부는 대북제재를 추진하면서도 북한과 대화를 통한 해법을 모색하는 `투트랙’ 전략을 구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북한은 중국과 양자외교를 통해 북미 간의 줄타기 외교를 전개할 것으로 예상된다. 나선과 황금평 등을 축으로 북중간의 경제협력이 빠르게 이뤄지는 가운데 중국은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에 우려를 표시하면서도 유엔 논의과정에서는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 남북관계 복원엔 시간필요
따라서 북한은 중국과 미국, 양국 사이에서 외교적 이익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취할 가능성이 크다. 반면 남북관계나 북일관계는 전망이 불투명해 보인다.
한국에서는 여당인 새누리당의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금강산 관광 중단 등 이명박 정부에서 추진해 오던 대북정책을 급격히 변화시키기 어려운 상황이다. 물론 박 당선인이 선거과정에서 유연한 대북정책을 언급하기는 했지만 그러한 정책을 추진하기까지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또 일본에서는 총선을 통해 강경보수 성향의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새 정부 역시 강경한 대북정책을 취할 것으로 보인다. 장용석 선임연구원은 “동북아시아에서 각국은 선거라는 정치과정을 통해 민족주의적 색채가 강해졌다”며 “과거처럼 6자회담 등 다자회담을 통해 북한문제가 다뤄지기보다는 북미회담이나 남북회담, 북중관계 등 양자채널을 통해 해법이 논의되고 6자회담이 이를 보조하는 역할을 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 신년사에서 기대감 표명
한편 북한이 올 신년사에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과 새 정부에 대한 기대감을 간접적으로 드러내 남북관계 개선의 가능성을 열어놓고 공을 남쪽으로 넘긴 것으로 분석된다.
김정은 조선노동당 제1비서가 1일 신년사에서 6.15, 10.4 선언의 존중과 이행을 강조한 것은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가장 필수적인 대목이 무엇인지에 대해 원론적 입장을 밝힌 것이다.
통일연구원은 ‘2013년 북한 신년사 평가’란 제목의 보고서에서 “(북의) 유화 기조가 회복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당국 간 대화 재개 뜻을 밝히면서 남북관계 진전의 전제조건으로 ‘남북공동선언 존중과 이행’을 제시했다”고 분석했다. 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는 “박 당선인이 ‘합의’가 아니라 ‘합의 정신’을 실천하겠다고 말한 점이나 구체적 신뢰 회복 정책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은 걸린다.
다만 북한이 새 정부에 대한 기대감을 표시한 것으로 보이고, 새 정부가 어떤 태도를 보이느냐에 따라 북한도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유호열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도 “공동선언을 존중하고 이행하라고 하는 것으로 봐서 남북관계의 개선 여지가 있어 보인다. 남북관계 복원에 나름 기대를 좀 가지고 있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김 제1비서가 박 당선인에 대한 비난이나 핵 무기 등 민감한 문제를 언급하지 않는 것도 눈에 띈다. 앞서 북한은 지난해 12월1일 “후보 박근혜는 대북정책 공약에서 모순되는 소리를 하고 있다”며 7개 공개 질문을 발표한 바 있다. 북한이 신년사를 통해 박 당선인에게 남북관계를 개선할 운신의 여지를 줬다는 분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이밖에 김 제1비서는 2010년 부터 2012년까지의 신년 공동사설과 달리 주한미군 철수, 한반도 비핵화, 북-미 적대관계 종식과 같은 미국 관련 주장을 내놓지 않았다. 또 2012년 공동사설에서 강조했던 중국, 러시아와의 관계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았다. 새 지도부가 들어선 세 나라의 대북 정책을 봐가면서 태도를 결정하겠다는 뜻이 읽힌다.
▶ 경제분야 남북협력 가능성도
신년사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경제 건설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김 제1비서는 “경제 강국 건설은 사회주의 강성 국가 건설에서 가장 중요한 과업이다”라고 말했다. 구체적 사업으로는 알곡 생산 목표의 달성, 질 좋은 소비품 생산 확대, 축산과 수산, 과수를 통한 식생활 개선 등을 지적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2013년 북한 신년사를 보면, 남북관계에서도 ‘경제협력’이 부상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박근혜 정부가 임기 초에 남북대화 재개를 제안한다면 북한이 적극성을 보일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 김규원 ·연합 장용훈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