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정부 헌법해석 변경에 항의하는 시민단체들의 시위.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일본을 ‘전쟁할 수 있는 국가’로 개조했다.
아베 정부는 지난 1일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가능하게 하는 헌법 해석 변경안을 각의 결정(국무회의 의결)했다. 일본이 1945년 패전 이후 69년 동안 지켜온 ‘전수방위 원칙’(공격은 하지 않고 방어만 하는 안보 원칙)과 평화헌법을 무력화하면서 동북아시아의 안보 환경에 근본적인 변동이 불가피해졌다.
 
아베 총리는 각의 결정을 단행한 직후 대국민 기자회견을 열어 일본이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결정했음을 공식 선언했다. 아베 총리는 “집단적 자위권을 통해 만전의 준비를 다하는 것이 (타국이) 일본에 전쟁을 걸려는 시도를 무너뜨리는 큰 힘이 된다. 이것이 억지력”이라며 “(일부의 우려와 달리) 일본이 다시 전쟁을 하려는 국가가 되는 일은 없다”고 강변했다. 그는 나라 안팎의 강한 비난 여론을 의식한 듯 “결단에는 비난이 동반되지만, 이를 두려워하지 않고 책임 있는 행동을 선택해 온 게 지금의 평화로운 일본을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번 결정으로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오히려 줄어들었다”며 주변국의 우려와는 정반대되는 현실 인식도 드러냈다.

그러나 일본 언론들은 이번 결정이 일본 안보정책의 역사적 대전환점이 될 것으로 분석한다. 1972년 10월 다나카 가쿠에이 내각 이후 일본이 42년 동안 지켜온 헌법의 해석을 바꿔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하는 쪽으로 나아갔기 때문이다. 미국의 쇠퇴와 중국의 부상이라는 지정학적 변화 속에서 미국과 대등한 국가로 나아가려는 아베의 숙원도 담겨 있다. 일본 정부는 이날 통과된 각의 결정안에 “일본을 둘러싼 안보환경이 근본적으로 변하고 있는 상황을 생각할 때 일본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타국에 대한 무력공격이 발생해 일본의 존립이 위협을 받을 경우 필요 최소한도의 실력을 행사하는 것은 자위의 조처로서 헌법상 허용된다고 판단하는 데 이르렀다”고 지적했다. 자위대의 무력 행사 범위가 처음으로 일본을 넘어 미국 등 타국까지 확대된 셈이다.
 
아베 정권의 이번 결정은 일본뿐 아니라 남북한, 미국, 중국을 포함한 동아시아의 세력 균형을 뒤흔들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로 미-일 동맹이 강화되고 이는 중국을 봉쇄하는 흐름으로 연결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 한국은 한반도 주변에서 자위대의 역할이 미군에 대한 ‘후방 지원’이라는 소극적인 역할에서 대폭 확대되는 것을 사실상 용인해야 하는 상황에 몰리게 됐다. 게다가 한반도 유사사태(전시)가 발생할 경우 한국군의 작전권은 미국에 넘어가게 돼 있어 미국의 작전상의 판단에 따라 미국 정부가 일본에 자위대의 한반도 출병을 요청할 경우 한국 정부가 이를 막기는 사실상 쉽지 않은 구도다.
우리 정부는 미국이 주도하는 한·미·일 군사협력의 구도 속에서 일본의 군사 대국화 행보에 구체적인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이날 외교부 대변인 명의의 성명을 내어 “일본이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함에 있어 한반도 안보 및 우리의 국익에 영향을 미치는 사안은 우리의 요청 또는 동의가 없는 한 결코 용인될 수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분명히 한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통해 중국 견제 카드를 늘린 미국은 일본의 결정을 지지하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젠 사키 국무부 대변인은 “일본은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방식으로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모든 권리를 갖고 있다”고 밝혔다.
< 도쿄=길윤형 특파원, 이용인 기자 >


정부군 1700명을 처형했다고 주장한 이라크반군 ISIL의 정부군 포로 공개사진.

중동 전체 질서 바꾸려다 이슬람주의 확산‥ 균형 붕괴

현재 이라크에서 조성되는 전쟁 위기의 뿌리는 깊다. 1979년 이란의 이슬람혁명을 계기로 이라크를 둘러싸고 벌어져왔던 35년이나 된 전쟁의 연장이다.
이란에서 시아파의 이슬람혁명이 성공하자,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 등 수니파 보수왕정 국가들은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정권의 등을 떠밀었다. 이슬람주의와 시아파 확산을 막으려는 시도였다. 시아파 국가인 이라크에서 소수 수니파 출신으로 집권한 후세인도 걸프 일대를 휘어잡은 이란의 패권을 대체하는 꿈을 꿨다.
1980년 9월 이라크의 침공으로 시작된 이란-이라크 전쟁은 1988년 8월까지 계속됐다.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 주역이던 도널드 럼스펠드 당시 국방장관은 1983년 이라크에 특사로 파견돼, 후세인을 직접 만나 양국 수교를 논의했다. 이라크는 이 전쟁에서 이란군과 쿠르드족 민간인에 대해서도 생화학무기를 사용했지만, 미국은 이라크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지 않았다.
 
약 28만명이 사망한 현대에서 가장 긴 국가간 재래식 전쟁의 총대를 멨지만, 이라크에게 남은 것은 사우디와 쿠웨이트로부터의 빚 독촉이었다. 이라크가 반발하자 쿠웨이트는 국경지대의 유전 분쟁을 명목으로 이라크에 오히려 90억달러를 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라크는 1990년 8월 쿠웨이트를 침공해 점령했다. 이에 미국은 다국적군을 구성해 1991년 1월 쿠웨이트에서 이라크를 몰아내는 걸프전을 감행했다.
걸프전에서 미국은 후세인 정권을 타도하지 않았다. 브렌트 스코크로프트 당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지정학” 때문이라고 간단히 설명했다. 후세인 정권 이후 대안이 없었고, 그 정권이 이슬람주의 확산과 이란 견제 등 중동의 세력균형을 맡고 있었기 때문이다.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전쟁의 또 다른 주역인 딕 체니 전 부통령은 당시 국방장관으로서 후세인 정권 존속을 적극 지지했다.
 
하지만 걸프전 당시 미군의 사우디 주둔과 중동 땅에 대한 직접 침공은 수니파 이슬람주의 세력을 격분시켰다. 아프간 전쟁에서 미국과 손잡고 소련을 격퇴하는데 협조한 오사마 빈라덴과 그의 알카에다는 미군의 사우디 주둔을 계기로 사우디와 미국에 등을 돌렸고, 미국을 표적으로 한 성전을 선포했다. 2011년 9.11 동시테러는 그 정점이다.
9.11 테러 뒤 미국은 이라크와 알카에다의 연계, 대량살상무기 개발을 구실로 이라크를 침공했다. 관련 증거가 없는데도 미국은 모른척했다. 이라크에 친미 정권을 세우고 이를 시작으로 중동 전체의 질서를 바꾸겠다는 ‘중동개조론’에 집착했다. 후세인 정권 타도 이후 미국은 후세인 체제 해체에만 집중해, 30만 이라크군 병력 등을 포함한 이라크 수니파 전체를 반미화시켰다.
처음에는 수니파가, 그 다음에는 과격 시아파가, 그리고 다음에는 이슬람주의 세력이 차례로 일어났다. 2006년 이라크 내란은 내전으로 발전했다. 미국은 병력을 증강하고 안정화 대책을 추진해, 이라크 내전은 소강상태를 보이기도 했다. 버락 오바마 미 행정부는 2011년말 서둘러 이라크에서 미군을 철수했다.
 
하지만 2011년 봄부터 시작된 시리아 내전은 국경을 맞댄 이라크 내전과 상승작용을 일으켰다. 9.11테러 이후 된서리를 맞았던 알카에다 등 이슬람주의 무장세력들은 이라크와 시리아 내전을 계기로 재기했다. 조직통폐합을 하며 세력을 키운 이슬람주의 무장세력은 ‘이라크·레반트 이슬람국가’로 거듭났으며, 중동의 중앙부에서 알카에다와는 별개의 세력으로 발전했다.
이들은 지금 바그다드를 노리고 있다. 이란은 시아파 정부 보호를 위해 이미 이라크에 병력을 파견했다. 미국이 시리아 내전에서 타도하려는 바샤르 아사드 정권도 이라크·레반트 이슬람국가 격퇴에 이해를 같이한다.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는 15일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과 자신이 주도한 2003년 이라크 전쟁이 현재 이라크 위기를 야기하지 않았다며 “시리아에서 무대응에 따른 예상할 수 있는 악성 효과”라고 강변했다. 몰염치한 주장이다.
중동에서 이란과 이슬람주의를 저지하려는 미국의 35년간 개입은 참담한 실패를 넘어, 재앙이 됐다. 이슬람주의 세력은 더욱 확산됐다. 이란의 영향력도 더욱 커졌다. 중동의 세력균형은 무너졌으며, 이라크와 시리아를 중심으로 무정부 상태가 동심원처럼 퍼지고 있다.
< 정의길 선임기자 >


규수 겐카이 원전 640kg
2012년부터 IAEA에 보고 안해

일본 정부가 2012년부터 핵폭탄 80기를 만들 수 있는 분량의 플루토늄 보유량을 국제원자력기구(IAEA) 보고에서 빠뜨려 온 것으로 드러났다.
 
일본 정부는 사가현 규슈전력 겐카이원자력발전소 3호기의 혼합산화물핵연료(MOX)에 포함된 플루토늄 640㎏을 국제원자력기구 보고에서 2012년부터 제외했다고 <교도통신> 등이 7일 보도했다. 혼합산화물핵연료란 플루토늄을 효율적으로 연소시키기 위해 처음부터 플루토늄을 우라늄 연료에 혼합한 것으로 우라늄 연료와 본질적으로 같으며, 핵연료로 이용할 수 있다. 규슈전력은 문제가 된 이 플루토늄 640㎏을 2011년 3월 정기검사 중인 원자로에 투입했으나, 후쿠시마원전 사고 여파로 2년가량 방치했다. 일본 정부는 혼합산화물핵연료를 원전 16~18곳에서 사용할 계획이었으나, 2011년 3월11일 후쿠시마원전 사고 뒤 이 계획은 진행되지 않고 있다. 규슈전력은 겐카이원전 원자로에 투입했던 플루토늄을 2013년 3월 미사용인 상태로 원자로에서 꺼내, 현재는 원료 풀에 보관 중이다. 이 플루토늄은 국제원자력기구 보고 대상이라고 <도쿄신문>은 전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2012년에 일본 전체 미사용 플루토늄 양을 보고 할 때, 문제가 된 이 플루토늄 640㎏을 빼고 1.6t이라고만 국제원자력기구에 보고했다. 지난해 보고에도 문제의 플루토늄 양을 반영하지 않았다. 일본 원자력위원회 사무국은 “원자로 안에 있는 연료는 사용 중이라고 간주하고, 이전부터 보고 대상에서 제외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올리 헤이노넨 전 국제원자력기구 사무차장은 “어디에 있든 간에 사용하지 않은 플루토늄은 보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고 <도쿄신문>은 전했다.
이번 플루토늄 보고 누락 사건은 일본 시민단체인 ‘핵정보’에서 문제를 제기해, <교도통신> 등의 취재로 밝혀졌다. 일본 정부는 국제원자력기구에 미사용 플루토늄 양을 의도적으로 적게 보고한 게 아니라고 해명하고 있지만,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플루토늄을 실제 그대로 보고하지 않은 것은 문제가 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일본은 원전에서 사용한 핵연료를 재처리하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며, 핵무장 국가가 아닌 나라 중에서는 가장 많은 양의 재처리 플루토늄을 보유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이전까지 보유 플루토늄 양을 약 44t이라고 했는데, 이번 누락 건까지 합치면 약 45t으로 늘어난다고 <도쿄신문>은 보도했다. 플루토늄 8㎏으로 핵폭탄 1기를 만들 수 있으니 단순 계산하면 일본은 핵폭탄 5500기 이상을 만들 수 있는 플루토늄을 보유한 셈이다.
< 조기원 기자 >


분노확산… 구출 캠페인

‘#Bring Back Our Girls.’ (우리 딸들을 돌려달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부인 미셸 오바마가 나이지리아 이슬람 무장단체 ‘보코 하람’이 납치한 270여명의 여학생을 구해달라는 캠페인을 지지하는 뜻으로 ‘해시태그’(#)를 달아 트위트함으로써 국제사회의 관심을 촉구했다. 미셸은 트위터에 직접 쓴 종이를 들고 있는 사진을 함께 올렸다. 이 해시태그 주제어는 트위터에 등장한 지 2주 만에 130만개가 넘게 트위트됐다.

 
가디언지는 “소녀들이 학교에서 납치당한 지 3주 만에, ‘#Bring Back Our Girls’가 트위터에 등장한 지 2주 만에, 나이지리아 동북부 머나먼 곳에서 일어난 사건에 마침내 세계의 눈이 고정됐다”고 전했다. 보코하람은 ‘서구식 교육은 죄’라는 뜻을 담은 이름에 걸맞게 학교를 공격 대상으로 삼아 어린 학생들을 살해하는 범죄를 거듭해왔다. 또 여성 교육을 크게 혐오해 지난달 14일 대규모 여학생 납치 사건을 벌이고 인신매매까지 하겠다고 공표한 상태다.
이에 따라 전세계 유명 여성 인사들을 필두로 광범위한 분노의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 탈레반의 여성 교육권 위협에 항의했다가 학교에 다녀오던 중에 총격까지 당했던 파키스탄 소녀 말랄라 유사프자이(17)는 영국 B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만약 우리가 침묵을 지킨다면 이런 일은 번져갈 것”이라며 국제사회의 공동 행동을 촉구했다. 유사프자이는 또 “보코하람은 이슬람 종교가 신자들이 교육을 받고 타인에게 관대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말한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하는 극단주의자”라고 비판했다.
 
미국의 유력 대권주자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도 같은날 미국 ABC방송에 출연해 나이지리아 정부의 태만한 대응을 비판하고 국제사회의 지원을 받아들일 것을 촉구했다. 나이지리아 정부는 7일에서야 뒤늦게 여학생들의 소재지 제보에 현상금을 거는 등 지지부진한 대처로 국내외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밖에도 납치에 항의하고 여성 교육을 지지하는 뜻으로 붉은 티셔츠를 입자는 운동이 나이지리아 수도 아부자뿐 아니라 워싱턴, 로스앤젤레스, 더블린, 런던 등지에서 잇따랐다. 수많은 여성들이 붉은 티셔츠를 입은 자신의 사진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려 연대의 뜻을 나타냈다.
 
이처럼 전세계적으로 여학생 납치 및 인신매매 사건에 대한 분노가 고조되자 국제사회와 각국 정상들은 여학생들 구출 작전에 공조하겠다고 앞다퉈 나서고 있다. 미국과 영국이 나이지리아 정부를 지원하기로 합의한 데 이어,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도 특별부대를 보내어 지원하겠다고 제안했다. 또 아프리카를 순방중인 리커창 중국 총리도 나이지리아에서 열리는 세계경제포럼 행사에 참석해 중국 위성을 통해 여학생들 수색을 지원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 정세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