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복 테러 위협, 각국 불안

● WORLD 2011. 5. 13. 14:05 Posted by Zig
“죽은 빈라덴에 산 오바마 떤다”

오사마 빈라덴 사살 이후, 미국과 동맹국에 대한 안보위협 우려가 오히려 더 커지고 있다. 이미 이라크 등에서는 알-카에다의 소행으로 추정되는 테러공격이 발생하고 있으며 세계 각국은 보복테러 불안으로 경계태세를 강화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공항과 역 주변에서는 소총을 든 군인과 경찰들의 경계근무가 한층 강화되고 있다. 찰스 슈머(민주·뉴욕) 상원의원은 8일 기자회견을 열어 열차 테러에 대비해 ‘비행금지 승객 명단’과 같은 ‘열차탑승 금지자 명단’을 연방정부가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서기도 했다. 빈라덴이 9·11 10주년을 기념해 미국 본토에서의 ‘열차 테러’를 계획했다는 내용이 공개되면서 그동안 비행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보안이 허술했던 열차 보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탓이다.

미 국내선 여객기가 9일 운항 도중 ‘보안상의 잠재적 위협’ 때문에 인근 공항에 비상착륙하는 소동이 벌어진 것은 알카에다 보복 공격에 대한 미국의 긴장상황을 말해준다. 137명의 승객을 태우고 디트로이트에서 출발해 샌디에이고로 가던 델타항공 소속 1706편의 기내 화장실에서 이상한 메모가 발견되면서 이 비행기는 오전 10시께 뉴멕시코주 앨버커키 공항에 비상착륙했다. 연방수사국(FBI) 요원들이 출동해 승무원과 승객에 대한 조사를 마친 뒤인 이날 낮 12시30분께 다시 이륙을 허가했다. 연방수사국은 ‘메모’ 내용에 대해선 밝히지 않았다.
재닛 나폴리타노 미국 국토안보부 장관은 “알카에다나 그 지부, 또는 그들의 이념에 감화된 자들이 서방에 공격을 집중할 것이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며 “이는 우리가 바짝 경계해야 한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앞서 7일 이라크의 알 카에다와 이슬람 무장세력의 거점인 이라크 동부 디얄라주 의 바쿠바에서는 무장괴한들이 환전소에서 40억 디나르(340만 달러)를 훔쳐 달아나면서 5명을 살해하고 차량폭탄으로 7명을 부상시켰다.

소말리아에서는 알 카에다와 연계 속에 세를 불리고 있는 반군단체인 알 샤바브가 빈 라덴의 죽음에 대한 보복을 천명했다. 또 팔레스타인 가자에서는 이슬람 강경조직 살라피스트 대원 십여명이 빈 라덴의 포스터를 흔들고 “우리는 너희 미국과 유럽에 경고했다”며 시위에 나섰다.   빈라덴은 미군에 의해 사살되기 전 마지막으로 녹음한 음성메시지에서 “우리가 팔레스타인에서 안전하게 살 때까지 미국은 안전하기를 바랄 수 없을 것”이라며 “당신들(미국)이 이스라엘을 계속 지지하는 한 당신들에 대한 우리의 공격도 계속될 것”이라고 위협했다.

< 워싱턴=권태호 특파원 >
부친 재임중 학살·부패 사죄

“아버지의 재임 시절 일어났던 잘못을 인정하고 국민들에게 사죄합니다.” 알베르토 후지모리(73) 전 페루 대통령의 딸이 방송 카메라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대선 후보로 출마한 게이코 후지모리(36) 상원의원이 지난 24일 아버지의 잘못을 처음으로 인정하고 공식 사과했다.
게이코 의원은 이날 지역방송 <프레쿠엔시아 라티나>에 출연해 부친재임 기간 동안 벌어졌던 학살과 부패 등을 사과하며 “두 번 다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겠다”면서 대통령에 당선되더라도 “(복역 중인) 아버지를 사면하지 않겠다”고도 밝혔다. 후지모리 전 대통령은 10년(1990~2000년) 동안 페루를 통치하면서 학살과 납치, 횡령, 부패 혐의로 25년형을 선고받고 현재 복역 중이다. 하지만 그는 아버지의 정부를 ‘독재정권’으로 규정하는 데는 반대했다. 과오는 있지만 거시경제적 성과를 냈으며 한 세기를 끌어온 에콰도르와의 국경분쟁을 종식시키는 등 “긍정적인 부분도 많다”는 것이다. 외신들은 게이코 의원이 아버지와 거리두기를 통해 대선 막판 뒤집기에 들어간 것이라고 해석했다.

게이코 의원은 지난 10일 페루 대선 예선 투표에서 23.5%의 투표율을 얻어 2위로 결선 투표에 진출했다. 31.7%로 1위에 오른 좌파 진영의 오얀타 우말라(49) 후보와 오는 6월5일 진검승부를 가리게 된다. 게이코 의원은 17살 때 부모가 이혼한 뒤 사실상 ‘퍼스트 레이디’ 역할을 해왔으며, 2006년 페루 역사상 최다득표로 국회에 입성해 아버지 지지자들을 중심으로 야망을 키워왔다.

미 중동정책「새 모델」고심

● WORLD 2011. 5. 5. 13:00 Posted by Zig
민주화 바람에 갈팡질팡 ‘기존정권 개혁’해법 유력

지난 1월부터 불기 시작한 아랍세계의 거센 민주화 바람이 미국의 앙상한 중동정책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친미정권 지원, 반미정권 압박’이라는 단순구도가 깨지고 나라에 따라, 상황에 따라 정책 방향이 바뀌면서 혼란을 자초하고 있는 것이다. 곧 발표할 새 중동정책을 두고 버락 오바마 정권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 돌아선 시리아 정책 왜? 백악관은 25일 시위대에 대한 무력진압으로 사망자가 속출하는 시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토미 비터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대변인은 성명을 통해 “폭력적 진압행위는 용인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기 위해 제재 방안을 포함해 광범위한 정책수단을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그동안 시리아 제재에 소극적이었다. 시리아를 미국 편으로 끌어들이면 이란을 고립시키고, 이스라엘 평화 유지에 큰 힘을 얻을 수 있어 오바마 행정부는 경제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오바마 대통령이 바샤르 아사드 대통령을 비난하면서도 하야를 촉구하지 않은 것은 이런 사정 때문이었다. 미국은 대테러 정책의 전진기지 구실을 하는 예멘의 알리 압둘라 살레 정부에 대해서도 비슷한 경로를 거쳤다. 상황이 심각해지고 나서야 살레 정권의 퇴진을 압박하고 나선 것이다.
시리아와 예멘 사태는 미 중동정책의 고민스런 현주소를 보여준다. 전임 조지 부시 행정부의 중동정책은 단순했다. 이라크를 기지로 중동 전역에 서방식 민주주의를 펼친다는 외생적 중동민주화론에 입각한 정책이었다. 이에 견줘 오바마 대통령은 ‘아랍’이 아닌 ‘이슬람’이라는 정체성으로 이슬람 세계 전체에 접근하면서, 중동의 내재적 가치에 강조점을 두는 새로운 중동정책을 내세웠다. 그러나 중동 민주화 혁명이 번지자, 미국은 친서방 국가는 옹호하고 리비아와 같은 반미국가는 억압하는 전형적인 ‘더블 스탠스’를 노출하고 말았다. 데니스 맥도너 백악관 국가안보 부보좌관은 지난달 28일 “리비아 군사개입이 시리아, 예멘 등에 대해서도 미국이 개입 정책을 갖고 있음을 뜻하는 건 아니다. 미국의 국익이 최선으로 구현될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고 솔직히 말했다.

■ 미국 ‘국익’의 딜레마 미국 외교정책의 핵심은 ‘국익’이다. 중동에서 미국의 국익이란 ‘이스라엘, 석유, 테러 대응’으로 요약된다. 지금까진 미국의 국익을 위해 이집트, 바레인, 예멘 등의 독재정권을 사실상 지지했다. 미국으로선 ‘허약한 민주정권’보다 ‘강력한 독재정권’이 국익에 유리했다.  하지만 중동의 민주화 사태는 미국, 특히 진보를 표방하는 오바마 행정부에 딜레마를 던졌다. 민주주의, 인권이라는 ‘가치’(이상주의)와 기존 ‘실익’(현실주의)이 충돌한 것이다.
초기에 이집트, 예멘 정권을 지지하던 미국이 돌아선 것도 해당 국민들의 퇴진 요구가 거세지면서 반미 분위기를 불러일으켜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은 미 해군 5함대가 주둔하는 전략적 요충지인 바레인에 대해서는 여전히 정권 유지에 주력하는 등 이중잣대를 거둬들이지 않고 있다. 중동 전문가인 라이언 리자는 <더 뉴요커>에서 “미국은 중동정책에서 늘 도덕적 원칙보다 국익을 먼저 생각했다”고 지적했다.
미국은 조만간 새로운 중동정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새 정책에는 중동 국민들의 민주화 개혁을 지원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한편, 유럽에 안보 책임과 비용 부담을 분담시키려는 다자적 집단안보체제를 내세울 것으로 예상된다. 중동의 변화에 적극 부응하는 한편, 더이상 미국이 혼자서 중동을 책임질 능력이 없음을 시인하는 것이다. 앞으로 미국의 중동정책은 급격한 정권교체(이집트 모델)나 군사개입(리비아 모델)보다는 기존 정권에 민주개혁을 압박하는 형태의 이른바 ‘바레인 모델’을 선호할 가능성이 높다.
워싱턴의 한 외교관계자는 “미국의 중동정책은 늘 국익을 최우선으로 해왔고, 지금도 마찬가지”라며 “미국 중동정책의 변화는 변화된 중동 여건에 미국이 새로이 적응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곳곳 자생 '포스트 빈라덴' 많다

● WORLD 2011. 5. 5. 09:42 Posted by Zig

▶긴박한 작전실황 주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왼쪽 둘째), 조 바이든 부통령(왼쪽 첫째),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앉은 오른쪽 둘째) 등이 1일 오후 백악관 상황실에서 파키스탄 아보타바드에서 실행된'오사마 빈라덴 사살작전'실황을 모니터를 통해 지켜보고 있다. 백악관이 제공한 이 사진에서 힐러리 클린턴 앞에 놓인 문서는 모자이크 처리돼 있다.

오사마 빈라덴 사살 이후 테러는?… 알 카에다 와해될까?

 오사마 빈라덴은 갔지만, 알카에다 조직은 건재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내다봤다. <포린 폴리시>는 아프간에서 빈라덴에게 충성맹세를 한 핵심 대원이 2001년 200명에서 최근 100명으로 감소했다고 전했지만, 상하수직형 단일조직이 아닌 알카에다의 특성을 고려할 때 이같은 수치를 근거로 조직의 와해를 점치긴 힘들다고 지적된다.

9·11 테러 이후 미군에 쫓긴 알카에다 본부는 현지 이슬람 무장조직들을 지부로 편입하며, 그 역량을 재편했다. 그 지부들이 현지의 작전을 독자적으로 수행하며, 자신의 관할지 밖 작전은 알카에다 본부의 지시와 허락을 통해 수행한다는 것이다. 알카에다 본부는 조정 능력을 가지고 그 위상을 유지하며 실질적 역량을 가진 지부들이 이슬람 전역에서 사실상 알카에다 구실을 하고 있는 셈이다. 지부들에 대한 조정도 2선 지도부가 관리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이런 가운데 빈라덴에 이어 알카에다 2인자의 자리를 굳힌 이집트 출신의 아이만 알자와히리가 빈라덴의 공백을 메울지 주목된다. 알자와히리는 9·11 이후 빈라덴과 함께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 접경지대에 은신해 온 것으로 전해졌는데, 이번 빈라덴 사살 작전에서 죽음이 확인되지 않았다. 최근 중동 민주화 시위 와중에 투쟁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하는 등 9·11 이후 알카에다의 메신저 노릇을 하는 한편 알카에다 관련 테러에 대부분 연루된 것으로 분석된다.

알자와히리가 본부의 조정 능력과 위상을 지킬 수 있다면, 알카에다 조직의 와해 여부는 아직 먼 길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특히 알자와히리가 창건한 '이집트 이슬람 지하드'는 아라비아반도알카에다(AQAP)와 함께 최대 역량을 가진 지부이다.

리비아 출신 아부 야흐야 알리비도 빈라덴 후계자로 거론되던 인물이다. 미군의 이라크 침공 당시 체포됐다가 이라크 바그람수용소에서 탈출한 알리비는 최근 알카에다 내 이론적 강경파로 전세계 지하드 운동을 이어받을 상속자로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평가했다.

 

알카에다의 미디어 조직인 사하브가 '카불에서 모가디슈까지'라고 표현했듯이, 알카에다 지부들은 이슬람 전역에 포진해 있다. 알카에다와 연계돼 있거나 추종하는 단체들까지 포함하면 전세계 70개국에 퍼져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아프간에 이어 최대 대테러 전선인 예멘에서 미군의 목표물인 아라비아반도알카에다는 이미 중동 민주화 시위 이후 가장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는 지부이다. 이밖에 이라크의 '자마아트 앗타우히드 왈지하드', 알제리의 '이슬람 마그레브 알카에다', 리비아의 '리비아 이슬람 전투그룹' 등이 대표적이다.

 

 

빈라덴 은신처서 알 카에다 특급정보 다수 확보 분석중

 

알-카에다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의 은신처를 급습했던 미 해군 특수부대는 빈 라덴 제거에 성공했을 뿐 아니라 그의 개인 소장품 가운데 각종 정보가 담겨 있는 컴퓨터 장비 10여점을 노획했다고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 등 미국 언론들이 3일 보도했다. 특수부대원들은 빈 라덴 사실 직후 그의 은신처에서 개인용 컴퓨터와 USB 드라이브 등 각종 전자장비 등을 확보했다는 것이다. 미국의 한 관리는 "빈 라덴의 하드디스크 드라이브를 확보했다는 상상이 가느냐"면서 빈 라덴 은신처를 '정보의 보고'라고 말했다. 소식통은 "수백명이 검토작업에 투입됐다"면서 "알-카에다 조직의 궤멸을 앞당길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빈라덴 밀사 쫓다 단서…특수부대 헬기작전 성공에 오바마"잡았다!"

 

신출귀몰하게 미군을 괴롭혔던 전설적인 인디언 아파치족 추장의 이름인 '제로니모'는 빈라덴을 일컫는 암호였다. 오바마는 1일 오후 5시께 파네타 국장이 '제로니모 EKIA'(Enemy Killed In Action·적 교전중 사망)라고 보고하자 주먹을 불끈 쥐고 "잡았다"(We got him)고 말했다고 <뉴욕 타임스>는 전했다.

미국 당국자들은 빈라덴의 부인 중 한명이 인간방패 구실을 했으나 미군의 무차별 사격을 막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미국이 빈라덴의 은신처를 추적하는 데 가장 큰 실마리가 됐던, 쿠웨이트 출신의 빈라덴 밀사인 '셰이크 아부 아메드'도 빈라덴과 함께 사살됐다. '알쿠웨이티'라는 별명으로 알려진 그는 빈라덴의 가장 충직한 심복이었으나 지난해 7월 빈라덴의 은신처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부주의하게 통화를 하다가 미 정보당국의 추적망에 걸리고 말았다.

중앙정보국은스텔스(B-2)기 폭격, 헬리콥터 공격, 파키스탄 정보부(ISI)와의 공조 공격 등 세가지 선택지를 오바마에게 보고했으나 오바마 대통령이 스텔스 공격을 반대했고, 파키스탄 공조는 정보유출 우려로 애당초 제외돼 헬기 공격 결정이 지난 3월22일 내려졌다. 그 뒤 미군의 네이비실 특수부대는 빈라덴의 은신처와 비슷한 모의세트를 만들고 훈련을 시작했다. 이날 공격에 투입된 부대는 미 해군의 저격전문 특수부대인 '실 팀 식스(6)' 대원 20여명이라고 언론들은 보도했다.

 

 

빈 라덴을 어떻게 찾았나? 미국이 오사마 빈라덴을 사살했다고 밝히면서 작전과정 등에 대한 궁금증이 일고 있다. 외신들이 전하는 세부 상황과 의문점을 요약했다.

● 빈라덴 위치 어떻게 알았나?

"10년 가까이 행적이 묘연하던 빈라덴의 위치에 대한 단서가 결정적으로 드러난 것은 지난해 8월이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오랫동안 추적하던, 빈라덴이 신뢰하는 밀사의 위치가 이곳에서 발견된 것이다. 그는 바깥 정보를 빈라덴에게 전해주고 빈라덴의 메시지를 바깥으로 알리는 임무를 맡은 것으로 알려졌다. 중앙정보국은 처음 관타나모 기지에 수감된 죄수한테서 이 밀사의 '별명'을 들었고, 4년 전에 그의 실명을 파악했다. 그리고 그가 주로 활동하는 지역을 알아내는 데 2년을 더 보냈다. 그가 정보망에 걸려든 이후 중앙정보국은 몇달 동안 조사를 거듭한 끝에 그곳에 숨은 사람이 빈라덴임을 확신했다."

● 빈라덴이 숨었던 집은 어떤 곳인가?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파키스탄 아보타바드에 있는 빈라덴의 은신처는 2005년 지어졌고, 근처 일반 집들보다 8배나 큰 고급 맨션이라고 전했다. 이 집은 외줄의 비포장길 막다른 곳에 있고 전화나 인터넷도 연결돼 있지 않았고 쓰레기는 자체 소각해, 거의 철저하게 외부와 차단돼 있었다. 빈라덴이 얼마나 오래 이곳에서 살았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 왜 생포하지 않고 사살했나?:

"오랫동안 정보를 모아왔기 때문에 빈라덴을 사살하지 않고 생포할 수도 있지 않았느냐는 의문도 일고 있다. 하지만 미군의 무게중심은 처음부터 사살 쪽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로이터 통신은 미 당국자가 "이번 작전은 생포 작전이 아니라 사살 작전이었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생포했을 경우 재판 등 처리과정에서 논란이 증폭되고, 이슬람 급진세력의 반발과 공격이 이어질 가능성도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 빈라덴을 사살한 것은 확실한가?

"미국이 빈라덴의 사체를 공개하지 않고 수장했기 때문에 사살당한 사람이 빈라덴이 맞는지는 미 당국자들만 알고 있는 셈이다. AP 통신은 유전자(DNA) 분석을 사용해 빈라덴임을 확인했느냐는 질문에 미 정부 당국자가 답변을 꺼렸다며, 이 당국자가 '얼굴 인식'으로 빈라덴임을 확인했다고 말한 것으로 전했다. 파키스탄 매체들은 애초 빈라덴 사후 모습으로 추정된다며 덥수룩한 검은 턱수염이 얼굴을 덮고 있고 이마와 왼쪽 관자놀이 주변에 핏자국이 넓게 묻어 있는 사진을 공개했다. 하지만 이는 가짜사진을 합성한 것이란 지적이 나오며 외신들이 이후 사진을 웹사이트에서 내리는 소동까지 일었다. 빈라덴의 생전 사진과 표정까지 완전히 똑같기 때문이다. 합성의 소재가 됐다고 짐작되는 2년 전 다른 이의 주검 사진도 인터넷을 통해 빠르게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