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대통령 “하르키우에서 범죄 자행”

키예프에서도 주거용 건물 폭격 당해

러시아, 집속탄 사용 등 잔인한 공세

남부 점령지에서는 주민들 국가 부르며 저항

 

2월 28일(현지시각) 우크라이나 동부 도시 하르키우의 긴급 구조대가 미사일 공격을 당한 주거용 건물 앞에서 진화 작업을 벌이고 있다. 하르키우/EPA 연합뉴스

 

우크라이나의 강력한 저항에 직면한 러시아군이 더욱 잔인한 공격에 나설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1일(현지시각)로 전쟁이 6일째로 접어들면서 민간인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AP> 통신은 28일 우크라이나 제2의 도시 하리코프(하르키우)에서 미사일이 주거 지역에 떨어지면서 적어도 11명이 사망했다고 하르키우 당국자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이호르 테레호우 하르키우 시장은 소셜미디어 텔레그램을 통해 “주거 건물들이 미사일 공격을 받아 많은 민간인이 다치고 숨졌다”고 전했다. 그는 4명의 시민은 물을 구하려고 밖으로 나왔다가 사망했다며 “오늘은 아주 힘든 날이었다. 단지 전쟁이 아니라 우크라이나 사람들에 대한 학살이다”라고 주장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이날 밤 텔레비전으로 중계된 연설에서 러시아가 하르키우에서 전쟁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속속 들어오는 목격담으로 볼 때 한번의 오폭이 아니라 의도적인 주민 살상”이라고 말했다.

 

수도 키예프에서도 러시아군이 민간인 거주 지역에 미사일 공격을 벌였다고 우크라이나 내무부가 밝혔다. 내무부는 소셜미디어 페이스북을 통해 이날 밤 10시께 5층 짜리 주거용 건물이 폭격을 당했다고 전했다. 긴급 구조대는 매몰된 주민 2명에 대한 수색 작업을 벌이고 있다. 영국 <비비시>(BBC) 방송은 키예프가 28일 밤으로 접어들면서 폭발음이 들리기 시작했다며 러시아 침공 이후 처음으로 건물들이 흔들리는 충격을 느꼈다고 전했다. 1일 아침에도 키예프와 서부 지역 테르노필, 중부 체르카시 등지에서 공습 경보가 울렸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벨라루스에서 협상을 벌이던 중에도 계속된 러시아의 공격이 더욱 강화되는 양상이다.

 

우크라이나 군은 1일 오전 “키예프 주변 지역은 여전히 긴장이 고조된 상태”라며 “적군은 군 시설과 민간 건물에 대한 공격을 이어가고 있다”고 밝혔다. 군은 또 러시아가 고도로 훈련된 벨라루스군 부대와 함께 공격을 가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앞서 28일 하르키우에서는 집속탄(하나의 폭탄 안에 많은 폭탄이 든 것)으로 의심되는 폭발이 발생했다고 <비비시>가 전했다. 북동부 국경 도시 체르히우에서는 러시아군이 포위 뒤 공략 전술(공성전)을 전개하고 있다. 미국 주재 우크라이나 대사는 러시아가 제네바협약이 금지하는 진공폭탄을 사용했다고 주장했다.

 

러시아에 점령당한 동부 항구도시 베르댠스크에서는 주민들이 러시아군 탱크 앞에 모여 우크라이나 국가를 부르는 등 점령군에 저항했다. 이 도시 주민 니나(가명)는 <비비시>에 “러시아 군인들이 순식간에 시내로 밀려 들어왔다”며 “그들이 내일(1일)은 인근 도시 마리우폴로 진격할 것 같다”고 말했다. 반군이 장악한 동부 도네츠크에서도 건물들이 폭격으로 불타고 일부 지역은 전기가 끊겼다고 러시아 <리아 노보스티> 통신이 보도했다.

 

유엔은 28일까지 적어도 102명의 사망자를 포함해 406명의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마틴 그리피스 인권 담당 유엔 사무차장은 “아직 공식 확인되지 않은 피해 보고가 많아, 실제 사상자 규모는 훨씬 더 클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엔난민기구는 이웃 국가도 탈출한 우크라이나인이 52만명에 달하며 피란민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고 밝혔다.

 

러시아군의 키예프 주변 결집이 계속되는 가운데 미국 위성통신 업체 ‘맥사 테크놀로지’는 28일 새로운 위성 사진을 공개하고 키예프로 향하는 러시아군 행렬 길이가 60㎞를 넘는다고 분석했다. 이 회사는 러시아군 행렬이 키예프 북부 27㎞ 지점인 호스토멜 공항까지 접근했다며 수백대의 무장 차량, 탱크, 견인포 등이 목격됐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1일부터 러시아군에 맞서 싸우기 위해 들어오는 외국인 전사들에게 사증(비자)을 면제해주기로 했다.

 

한편, 러시아 관영 매체들은 세뇌당하지 않은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러시아군을 환영하고 있다는 등의 침공 미화 선전 활동을 강화하고 있다고 영국 경제 주간 <이코노미스트>가 보도했다. 신기섭 기자

 

“러, 우크라에서 진공폭탄·집속탄 사용”…ICC “전쟁범죄 조사”

   주미 우크라대사 “제네바협약 위반 진공폭탄 사용”

   국제앰네스티 “러시아군 집속탄 사용 민간인 살상”

   국제형사재판소 “전쟁범죄·반인도범죄 조사하겠다”

 

우크라이나 산모가 지난 28일 아기를 안고 러시아군의 공격을 받는 도시 마리우폴의 조산원 지하에 대피해 있다. 마리우폴/AP 연합뉴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군이 제네바협약이 금지하는 진공폭탄을 사용했다고 미국 주재 우크라이나대사가 주장했다. 국제형사재판소(ICC)는 우크라이나에서 발생한 전쟁범죄를 조사하겠다고 밝혀, 러시아의 전쟁 수행 방식에 대한 압박도 고조될 것으로 보인다.

 

옥사나 마르카로바 주미 우크라이나대사는 28일 러시아의 “잔혹한 전쟁”에 대응하는 협조를 구하려고 미국 의회를 방문한 뒤 “러시아군이 오늘 제네바협약이 사용을 금지한 진공폭탄을 사용했다”고 주장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보도했다. 그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엄청난 파괴를 안기고 있다”며 “그들은 비싼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말했다.

 

진공폭탄은 폭발 때 주변의 산소를 빨아들여 강력한 초고온 폭발을 일으키는 폭탄이다. 일반 폭탄보다 폭발 파장의 지속 시간도 길어 파괴력이 크다.

 

러시아군이 많은 국가들이 사용을 금지한 집속탄을 사용했다는 발표도 나왔다. 국제앰네스티는 러시아군의 집속탄이 지난 25일 우크라이나 북동부의 유치원과 민간인 대피 시설을 타격해 어린이 1명을 비롯해 3명이 숨졌다고 28일 밝혔다. 국제앰네스티는 이를 “전쟁범죄”로 규정했다.

 

집속탄은 하나의 폭탄 안에 여러 개의 폭탄을 넣어 살상력을 높인 것으로, 민간인 피해 우려 때문에 2008년 100여개국이 사용 금지를 약속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이에 참여하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카림 칸 국제형사재판소(ICC) 검사장이 “신속하게 우크라이나 내 전쟁 범죄와 반인류 범죄에 대한 조사를 시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날 낸 성명에서 “전쟁범죄와 반인도범죄가 우크라이나에서 발생했다고 믿을 만한 합리적 근거가 있다”고 했다.

 

한편 마르카로바 대사와의 면담에 참여한 미국 민주당의 브래드 셔먼 하원의원은 우크라이나 정부가 자국 상공을 비행금지구역으로 설정해달라고 요구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그는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하고 이를 강제하려고 할 경우 미국과 러시아의 직접 충돌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워싱턴/이본영 특파원

[금융제재]  4천억 달러 전쟁금고 동결 루블 폭락…궁지 몰리는 푸틴

미 · 유럽, 러 중앙은행 거래 동결…러, 해외 쌓아둔 석유대금 손 못대

 

루블 추가폭락·인플레 심화 무대책 “국제은행 결제망 퇴출보다 파장 커”

푸틴, 러시아 국민 불만 고조 직면… 총공세냐, 타협이냐… 선택 기로에

 

미국과 서방은 28일 러시아 중앙은행과 국부펀드, 러시아 재무부와의 거래를 동결하겠다고 밝혔다. 러시아가 해외 은행에 보유한 달러 등 외환에 손을 못 대게 하겠다는 것이다. 사진은 러시아 루블화. 모스크바/타스 연합뉴스

 

미국과 유럽 등이 지난 28일 꺼내든 ‘러시아 중앙은행과의 거래 중단’이라는 카드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핵 위협에 맞먹는 ‘경제 핵폭탄’이라고 할 수 있다. 루블화 폭락과 인플레이션을 심화시켜 러시아 경제를 초토화하고 푸틴 대통령의 전쟁 금고를 타격하는 효과가 예상된다.

 

미국 재무부는 지난 28일 러시아의 중앙은행, 국부펀드, 재무부와의 거래를 전면 차단한다고 밝혔다. 이에 영국·일본도 동참하겠다고 밝혔고, 독일·프랑스·이탈리아 등 유럽연합(EU) 국가들도 가세할 예정이라고 미국 당국자들이 말했다. 미국은 이란·베네수엘라·시리아 등에 중앙은행 규제를 가한 적 있으나, 러시아라는 대국을 상대로 그것도 서구 국가들이 똘똘 뭉쳐 이 조처에 나선 것은 전례 없는 일이다.

 

 

이번 조처의 핵심 목표는 러시아가 원유·가스 등을 팔아서 쌓아둔 외환보유고에 손을 못 대도록 묶는 것이다. 마이클 번스탬 스탠퍼드대 후버연구소 연구원은 러시아의 전체 외환보유고는 약 6400억달러(약 770조원)이며,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인 4000억달러는 뉴욕·런던·베를린·파리·도쿄 등 외국의 중앙은행이나 상업 은행에 예치돼 있다고 분석한다. 러시아 안에 보유한 규모는 120억달러에 그치며, 나머지 약 1390억달러는 금, 840억달러는 중국 채권이라고 <뉴욕 타임스>는 전했다.

 

러시아가 자기 돈인 4000억달러의 외환보유고에 손을 못 대면, 우크라이나 침공 개시 이후 30% 폭락한 자국 통화 루블화의 추가 하락을 막기 어려워진다. 달러로 시장의 루블화를 매입해서 루블화 가치를 유지해야 하는데 그게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전쟁 이전인 2월 중순 1루블은 미화 1.3센트 수준이었으나, 지난달 24일 개전 직후 떨어지기 시작해 27일 서방의 러시아 은행들에 대한 국제은행간결제망(SWIFT) 퇴출 결정을 거치면서 추락을 거듭했다. 구글 파이낸스 자료를 보면, 미국의 러시아 중앙은행과의 거래 중단 발표 이후 1일 한때 1루블은 0.96센트로, 1센트 밑으로 떨어지기도 했다.

 

러시아는 국제은행간결제망 퇴출 제재 이후 루블화 폭락을 막기 위해 금리를 20%로 올렸고, 외환 확보를 위해 수출기업들에 보유 외환의 80%를 매각하라고 명령했다.

 

하지만 이번 중앙은행 제재로 러시아는 거시경제 관리를 위한 주요 수단을 잃게 됐다. 루블화의 구매력이 약화되면, 수입품 가격이 올라 물가는 더 폭등하게 돼 있다. 루블화 추가 폭락, 인플레이션, 경기 침체 등 악순환이 예상된다. 그 직접적인 여파를 감내해야 하는 러시아 시민들은 이미 믿을 수 있는 ‘달러’ 확보를 위해 현금인출기에 줄을 서고 있다. 셸·비피(BP) 등 글로벌 기업들은 러시아에서 철수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조처가 그동안 언론이 주목해온 국제은행간결제망 퇴출 조처보다 훨씬 파장이 크다고 말한다. 미 싱크탱크 애틀랜틱카운슬의 조시 립스키 국장은 4000억달러 외환보유고를 묶는 것은 “하룻밤 사이 오스트리아 국내총생산(GDP) 전체를 날리는 것”이라며 이번 조처는 “러시아라는 요새”를 무너뜨리는 것이라고 <폴리티코>에 말했다.

 

이 조처로 푸틴 대통령은 전쟁 수행에 필요한 자금력이 약해지게 됐다. 루블화 폭락에 따른 국민들의 불만이 치솟아 푸틴 대통령의 정치적 부담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이런 극단적 압박 속에 엄청난 비극을 불러올 극단적 총공세에 나설지, 우크라이나 정부와 적정선에서 타협할지는 푸틴 대통령의 선택에 달렸다. 황준범 기자

 

[금융제재] 한국, 러 7개 은행 거래중단…러 국고채 거래도 중단 권고

              “불요불급한 금융거래는 유예기간 중 조속히 완료” 당부

 

28일 오후 서울 중구 을지로 하나은행 본점 위변조대응센터에서 직원이 러시아 화폐인 루블화를 정리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대한 서방의 금융 제재가 발표되고 러시아가 핵 위협 카드를 꺼내면서 러시아 화폐 가치가 30% 가까이 폭락했다. 이날 블룸버그에 따르면 이날 역외 시장에서 1달러당 루블화 환율은 장중 117.817루블을 기록하며 전 거래일 종가 대비 약 28% 하락했다. 미국과 유럽은 전날 러시아 중앙은행을 제재하고 일부 러시아 은행들을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스위프트)에서 퇴출하기로 합의했다. 연합뉴스

 

정부는 미국이 주도하는 러시아를 겨냥한 금융 제재에 동참 의사를 밝힌 지 하루만에 공공기관의 러시아 국고채 투자 중단 권고, 거래 중단 대상 러시아 은행의 내역과 시기와 같은 세부 지침을 발표했다.

 

기획재정부가 1일 내놓은 ‘국제사회의 대러 금융제재 동참을 위한 세부 후속조치’란 제목의 자료를 보면, 우선 우리 정부는 미국이 꼽은 Sberbank, VEB, PSB, VTB, Otkritie, Sovcom, Novikom 등 7개 러시아 은행과 그 자회사와의 금융거래 중단한다. 거래 중단은 미국이 각 은행별로 설정한 유예기간이 끝나는 대로 시작된다.

 

이에 기존 계약에 따른 거래 등 제재 대상 은행과의 불가피한 거래는 유예 기간 내에 마무리해야 하다. 다만 농산물 및 코로나19 의료지원, 에너지 관련 금융 거래는 허용된다. 정부는 “각 금융기관은 금융거래 모니터링 등 내부 통제절차를 준수하고 고객 사전 안내 등을 통해 제재 대상 은행들과의 거래 중단이 철저히 집행되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정부는 러시아 발행 국고채에 대한 투자 중단을 국내 공공기관과 금융기관에 권고했다. 투자는 유통, 발행시장 모두에서 금지된다. 지난 1일부터 발행하는 러시아 국고채에 대한 미국 금융기관의 거래를 금지한 미국의 조처를 본 딴 것이다. 정부는 러시아 은행과의 거래 규모나 국내 공공기관과 금융기관의 러시아 국고채 거래 현황 등은 공개하지 않았다.

 

이와 함께 정부는 러시아 은행에 대한 국제금융결제망(스위프트) 배제의 구체적 절차도 설명했다. 우선 스위프트 배제는 유럽연합의 제재 조치가 내려진 뒤 스위프트 본사가 위치한 벨기에 금융당국이 배제 명령을 내리면 본격화된다. 정부는 “전례가 많지 않은 이례적 조처인 만큼 금융기관들은 기업·교민 등 고객과의 거래에 있어 혼선이 발생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지혜 기자

  

[외교제재] 세계 각국 외교관들, 러시아 외무장관 발언하자 ‘퇴장 시위’

              ‘하늘 길’ 막힌 라브로프 화상 발언했으나

               유엔 회의장에서 외교관들 등 돌려 퇴장

 

1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 군축회의에서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이 화상을 통해 발언하자, 각국 외교관들이 등을 돌려 퇴장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러시아 외무장관이 유엔(UN) 회의에서 발언하자 세계 각국 외교관들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항의 표시로 잇따라 퇴장하는 시위를 벌였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부 장관이 1일(현지시각)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 인권이사회에 화상으로 발언을 시작하자 각국 외교관들이 회의장에서 나가버렸다고 <아에프페>(AFP) 통신 등 외신들이 전했다. 퇴장 시위를 주도한 예브헤니이아 필리펜코 주 제네바 우크라이나 대사는 회의장 밖에서 대형 국기를 들고 “독립을 위해 투쟁하는 우크라이나 국민에게 놀라운 지지를 보여준 여러분께 매우 감사하다”고 말했다. ‘퇴장 시위’에 동참한 독일 대사인인 카타리나 스타쉬는 “유엔 인권이사회가 거짓 정보를 유포하는 장으로 악용되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고 독일 <데페아>(DPA) 통신은 전했다. 라브로프 장관은 우크라이나가 러시아계 주민을 오랫동안 박해해왔으며 서방이 이를 지원했다고 주장했다.

 

유엔 인권이사회보다 1시간여 전 열린 유엔 군축회의에서도 비슷한 풍경이 벌어졌다. 라브로프 장관이 화상으로 연설을 시작하자 각국 외교관들이 등을 돌려 회의장을 빠져나갔다. 회의장에서 빠져나간 외교관들은 우크라이나 국기 앞에 모여 크게 박수를 쳤고, 박수 소리는 라브로프가 화상 연설을 하고 있는 회의장에도 들릴 정도였다고 <아에프페>는 전했다. 라브로프 장관은 우크라니아가 핵무기를 보유하려 한다고 비난하는 연설을 했으나, 회의장에 이 연설을 들은 나라 외교관은 예멘, 베네수엘라, 시리아, 튀니지 등 손에 꼽힐 정도에 불과했다.

 

라브로프 장관은 원래 제네바에 와서 직접 연설을 할 예정이었으나, 유럽 여러 나라가 대 러시아 제재 조처로 하늘 길을 막으면서 참석이 취소됐다. 대신 그는 사전에 녹화한 영상을 통해 발언했다. 조기원 기자

 

[외교제재] 유엔 25년 만에 긴급특별총회…러시아 철군 결의안 채택 추진

       “러시아의 침략, 정당화될 수 없어”

        즉각적인 전쟁 중단 요구하며 성토

        2일쯤 총회 표결에 부칠 듯

 

세르기 키슬리쨔 우크라이나 대사가 28일 유엔 긴급특별총회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뉴욕/신화 연합뉴스

 

28일 열린 유엔 긴급특별총회는 러시아를 규탄하는 성토장이 됐다. 세계 각국은 우크라이나를 공격한 러시아의 군사 행동에 대해 “정당화될 수 없는 주권 침해”라며 즉각 중단을 요구했다.

 

지난해 9월부터 총회 의장을 맡고 있는 압둘라 샤이드(몰디브 외교장관)는 회의 시작과 함께 모든 참석자에게 전쟁으로 희생된 이들의 명복을 비는 묵념을 제의했다. 이어, 마이크를 잡은 세르기 키슬리쨔 우크라이나 대사는 ”우크라이나가 살아남지 못한다면 세계 평화도 살아남지 못한다”며 국제 사회의 흔들림 없는 지지를 호소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도 “어린이를 포함한 민간인 사망은 결코 용납할 수 없다”며 “우리는 평화를 원한다. 대화의 길을 열어두어야 한다”고 호소했다.

 

바버라 우드워드 영국 대사는 “우리가 그들(우크라이나)을 지지하지 않는다면 모든 나라의 국경 안전과 독립은 위험에 처할 수 있다”며 우크라이나 지지를 선언했다. 알렉산더 마르쉬크 오스트리아 대사도 러시아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는 나라들을 향해 “좋은 친구, 정직한 친구는 친구가 잘못을 저지를 때 해야 할 말을 해야 한다”고 러시아 설득에 나서줄 것을 요청했다.

 

예상대로 러시아는 굴하지 않았다. 바실리 네벤지아 러시아 대사는 “러시아의 행동이 왜곡되고 있다”며 “러시아가 적대행위를 시작한 것이 아니라 우크라이나가 먼저 우리 러시아계 주민에 적대행위를 했다”고 항변했다.

 

이번 총회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의 27일 의결에 따라 열린 것이다. 미국과 유럽 등은 안보리에서 러시아 침공을 비판하는 결의안이 러시아의 거부권 행사로 채택되지 않자, 이번 특별총회의 소집을 추진했다. 유엔 긴급특별총회는 1945년 10월 유엔 창설 이래 11번째이며, 지난 1997년 이래 처음이다.

 

총회에선 거부권이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2일쯤 총회 표결에 부쳐질 결의안은 통과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해졌다. 유럽연합(EU)이 주도하는 결의안 초안에는 러시아군의 전투 중단과 철군, 대화와 협상을 통한 평화적 해결 등이 담겨 있다고 <에이피>(AP) 통신이 전했다.

 

한편, 유엔 안보리는 이날 비공개회의를 열어 북한의 최근 탄도미사일 시험발사를 안건으로 다룬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미국·일본·영국 등 11개국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규탄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공동성명에서 북한 미사일 발사를 “불법적이고 역내 긴장을 고조시키는” 도발로 규정하고 유엔 회원국에 대북제재의 철저한 이행을 요청했다. 박병수 기자

 

[외교 경제제재]

‘중립국’ 스위스 · 스웨덴 국제연대 동참…푸틴 독주에 ‘금기’ 깨

  스위스, 푸틴 등 자산동결 제재

  스웨덴, 80년 금기 깨고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

 

중립국인 스위스의 이냐치오 카시스 대통령은 28일 기자회견에서 “유럽연합이 러시아에 부과한 제재에 스위스도 동참하겠다”고 밝혔다. AP 연합뉴스

 

러시아를 옥죄는 국제 연대에 스위스·스웨덴 등 전통적인 중립국들도 오랜 전통을 깨고 함께 나서기로 했다.

 

이냐치오 카시스 스위스 대통령은 28일 기자회견에서 “유럽연합(EU)이 러시아에 대해 부과한 제재에 스위스도 동참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스위스의 입장을 바꾸는 결정적 원인이 됐다. 국제법 존중은 스위스가 지지하는 중요한 가치”라고 강조했다.

 

스위스는 유럽연합이 결정한 대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포함한 러시아 인사들의 자산을 동결하고 입국도 금지한다. 스위스 중앙은행 자료를 보면, 2020년 기준 스위스에서 러시아인이 보유한 자산은 약 104억스위스프랑(약 13조5000억원)에 이른다. 또, 러시아 항공기의 영내 진입을 금지하기로 했으며 우크라이나 난민이 증가하고 있는 폴란드에 약 25t의 구호물자를 보낼 방침이다.

 

유럽연합 회원국이 아닌 스위스는 푸틴 대통령이 지난 2월21일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의 독립을 승인했을 때는 제재에 동참하지 않겠다며 미온적 입장을 유지했다. 2014년 3월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 때도 스위스는 제재에 나서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 2월24일 침공이 시작된 뒤, 수도 베른에서 2만명이 넘는 시민들이 ‘전쟁 반대’ 시위에 참여하는 등 ‘반러 여론’이 고조됐다. 그와 함께 제재에 나서지 않는 스위스 정부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마그달레나 안데르손 스웨덴 총리는 지난 27일 기자회견에서 “러시아와 싸우고 있는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것이 스웨덴 안보에 기여하는 것”이라며 그동안의 원칙을 깨고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또 다른 대표 중립국인 스웨덴도 국제분쟁에 무기를 공급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깨고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마그달레나 안데르손 스웨덴 총리는 지난 27일 기자회견에서 “러시아와 싸우고 있는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것이 스웨덴 안보에 기여하는 것이다. 기존의 원칙을 뛰어넘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스웨덴은 ‘AT-4’라고 불리는 휴대가 가능한 대전차 로켓 5000개와 함께 전투식량(13만5000끼), 헬멧 5000개, 방호복 5000벌을 우크라이나에 보내기로 했다. 스웨덴은 1939년 당시 소련이 핀란드를 침공했을 때를 제외하고 80년 넘게 국제분쟁 지역에 무기를 지원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켜왔다. 푸틴의 폭주가 독일에 이어 스웨덴의 금기도 깨뜨린 셈이다. 김소연 기자

 

[경제제재]

러시아 ‘핵심’ 산업 손절하는 글로벌 ‘큰손’…자동차 업체 등 동참

   에너지기업 셸 “우크라이나 인명피해 충격”

   다임러 트럭, 볼보 등도 러시아 판매 중단

   월트 디즈니도 러시아에 영화 개봉 안해

   러시아 외국인 자산 회수 일시 제한 조처 꺼내

 

영국과 네덜란드가 합작해 만든 세계적 에너지기업인 ‘셸’은 28일 러시아 국영 가스업체 가즈프롬과 합작 프로젝트를 포함해 러시아의 모든 사업에서 철수하겠다고 발표했다. AP 연합뉴스

 

세계 굴지에 기업들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서 잇따라 철수하기 시작했다. 러시아는 외국인 투자자의 러시아내 자산 회수를 제한하는 조처를 꺼내들었다.

 

영국과 네덜란드가 합작해 만든 세계적 에너지기업인 ‘셸’은 28일(현지시간) 러시아 국영 가스업체 가즈프롬과 합작 프로젝트를 포함해 러시아의 모든 사업에서 철수하겠다고 발표했다. 셸은 이날 자료를 내고 세계 최대규모의 석유·가스 개발사업인 ‘사할린2’ 프로젝트에서 빠지겠다고 밝혔다. 이 사업엔 러시아의 가즈프롬(지분 50%)·셸(27.5%)·미쓰이물산(12.5%)·미쓰비시상사(10%) 등이 공동으로 참여하고 있다. 벤 반 뷰든 셸 최고경영자(CEO)는 “우크라이나의 인명피해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이는 유럽 안보를 위협하는 무분별한 러시아의 군사적 침략 행위로 생긴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세계 각국 정부와 협의하면서 관련 제재를 준수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셸은 사할인2 이외에도 러시아에서 진행 중인 석유개발, 파이프라인 공급, 에너지 개발 등 다른 사업도 모두 중단한다고 덧붙였다.

 

노르웨이 국영 에너지기업인 에퀴노르도 이날 러시아 사업에 신규 투자를 중단하고 기존 합작회사도 매각한다고 밝혔다. 안데르스 오페달 에퀴노르 최고경영자는 자료를 내고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상황에서 러시아 사업을 유지할 수 없다”고 말했다. 영국 에너지 개발 대기업인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도 27일 러시아 국영 석유개발업체 로스네프트의 지분(19.75%)을 전량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현재 시장가치로 140억 달러(약 17조원)에 달한다. 30여년 동안 러시아에서 사업을 해온 비피는 러시아 최대 외국 투자자로 꼽힌다.

 

자동차 업계도 러시아에서 손을 떼기 시작했다. 독일 다임러 트럭은 러시아 최대 장갑차 업체인 ‘카마즈’와 협력을 중단하기로 했다. 트럭 생산이나 부품 공급을 하지 않을 방침이다. 스웨덴 볼보, 독일 폭스바겐과 미국 제너럴모터스(GM) 등도 러시아에서 자동차 판매를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월트 디즈니는 28일 성명을 내고 러시아에서 영화 개봉을 중단하겠다고 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러시아는 자원 이외 뚜렷한 산업이 없다. 강력한 제재를 감당할 수 있을지는 러시아와 가까운 중국의 태도에 달렸다”고 짚었다.

 

미하일 미슈스틴 러시아 총리는 1일 외국 기업들의 러시아 사업 철수가 “정치적 압력” 때문이라며 “(외국 기업) 러시아 자산 이탈을 일시적으로 제한할 대통령령이 준비됐다다”고 말했다. 다만, 구체적 방법은 거론하지 밝히지 않았다. 도쿄/김소연 특파원

 

[스포츠 제재]  한국 팀 킴, 여자컬링 세계선수권 러시아전 보이콧

                     컬링연맹, 러시아전 모든 경기 보이콧 발표

 

팀 킴 선수들이 지난 2월12일 중국 베이징 국립아쿠아틱센터에서 열린 2022 베이징겨울올림픽 컬링 여자 단체전 러시아올림픽위원회(ROC)에서 승리한 뒤 상대 선수들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다. 베이징/연합뉴스

 

‘팀 킴’이 세계선수권 러시아전을 보이콧한다.

 

대한컬링연맹은 1일 보도자료를 통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다”면서 “대한컬링연맹 소속 모든 팀과 선수들은 러시아와 모든 경기를 보이콧하기로 했다. 이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세계컬링연맹(WCF) 등 국제 스포츠 기구와 공동으로 대응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남녀 컬링 대표팀은 러시아와 친선전, 연습경기도 치르지 않기로 했다.

 

일단 컬링 여자 대표팀 팀 킴은 20일 캐나다 프린스 조지에서 열리는 여자컬링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러시아전을 보이콧한다. 팀 킴은 베이징겨울올림픽 때 러시아(당시 러시아올림픽위원회로 참가)를 예선에서 만나 승리한 바 있다. 팀 킴에 이어 남자 대표팀 경북체육회가 4월5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남자컬링 세계선수권대회 러시아전을 포기한다. 더불어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는 혼성 세계선수권대회(4월23일~30일) 때도 러시아와 맞붙을 경우 경기를 치르지 않기로 했다.

 

앞서 국제올림픽위원회 집행위원회는 2월28일(현지시각) 종목별 국제연맹(IF)과 각종 대회 조직위원회에 러시아와 벨라루스 선수·관계자들의 국제대회 초청 또는 참가를 불허하라고 권고한 바 있다. 4일 개막하는 2022 베이징겨울패럴림픽에 러시아 대표팀이 참가하는 가운데 일부 선수들은 러시아와 경기를 보이콧할 것으로 알려졌다. 김양희 기자

 

[스포츠 제재] 발리예바 등 러시아 피겨선수, 세계선수권 출전 못한다

                    ISU, 러시아·벨라루스 선수 국제대회 출전 금지 발표

 

러시아 피겨 선수 카밀라 발리예바. 연합뉴스

 

카밀라 발리예바(15) 등 러시아 피겨 선수들의 세계선수권대회 출전이 금지됐다.

 

국제빙상경기연맹(ISU)은 1일(한국시각) 러시아와 벨라루스 선수들의 국제대회 출전을 금지하는 징계안을 전격 발표했다. 이로써 러시아, 벨라루스 선수들은 당장 이달에 열리는 피겨스케이팅, 스피드스케이팅, 쇼트트랙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할 수 없게 됐다.

 

전날까지만 해도 러시아 피겨 선수들의 세계선수권 출전에는 문제가 없을 듯 보였다. 그러나 스포츠 국제기구들의 러시아 선수들에 대한 출전 제한 조치가 이어지면서 국제빙상경기연맹도 동참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이로써 발리예바를 비롯해 2022 베이징겨울올림픽 때 금, 은메달을 따냈던 안나 쉐르바코바와 알렉산드라 트루소바 등도 올해 세계선수권(프랑스 몽펠리에·3월21일~27일) 무대를 밟지 못하게 됐다. 도핑 양성 반응에도 올림픽에 출전해 물의를 빚은 발리예바는 최근 러시아 정부로부터 훈장까지 받고 세계선수권에서 반등을 노렸지만 물거품이 됐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쉐르바코바의 경우 지난해 세계선수권 우승자였다.

 

국제빙상경기연맹에 앞서 국제아이스하키연맹(IIHF), 국제럭비연맹, 유럽핸드볼연맹 등이 러시아와 벨라루스 선수들에 대한 국제 대회 출전 금지를 발표했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러시아 대표팀의 2022 카타르월드컵 출전을 금지했고 세계태권도연맹(WT)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태권도 명예 단증을 철회했다. 국제배구연맹(FIVB) 또한 러시아의 2022 남자 배구세계선수권대회 개최권을 박탈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집행위원회는 2월28일(현지시각) 종목별 국제연맹(IF)과 각종 대회 조직위원회에 러시아와 벨라루스 선수·관계자들의 국제대회 초청 또는 참가를 불허하라고 권고한 바 있다. 김양희 기자

 

[스포츠 제재]

축구에 미친 독일도 “평화”…축제·경기 다 뒤로 하고 ‘우크라 연대’

    [마쿠스 한의 분데스리가 리포트]

    분데스리가 24라운드 수놓은 반전 메시지

    FIFA · UEFA도 국제대회에서 러시아 퇴출

 

바이에른 뮌헨 로베르토 레반도프스키가 지난 26일(현지시각) 독일 프랑크푸르트 코메르츠방크에서 열린 2021∼2022 분데스리가 24라운드 프랑크푸르트전에서 왼팔에 우크라이나와 연대를 상징하는 밴드를 착용하고 있다. 프랑크푸르트/로이터 연합뉴스

 

지난 주말 열린 독일 프로축구 분데스리가 24라운드. 선수를 비롯해 팀 관계자, 그리고 팬들까지 경기장 안에 있던 모든 이들은 이날 우크라이나와 연대를 표했다. 형태는 다양했다. 전광판에 비둘기를 띄우고 경기 시작 전 1분간 묵념을 하거나, 우크라이나 국기와 함께 ‘전쟁을 멈춰라(STOP WAR)’, ‘우리는 전쟁에 반대한다(WIR GEGEN KRIEG)’, ‘그만해, 푸틴!(STOP IT, PUTIN!)’ 등 반전 메시지가 담긴 펼침막을 내걸었다.

 

전세계 스포츠가 러시아의 침공에 분노하고 있지만 독일 축구계의 움직임이 제일 적극적이다. 독일프로축구연맹(DFL)은 에스엔에스(SNS)를 통해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공격을 분명하게 규탄했다. “어떤 형태의 전쟁도 용납할 수 없으며, 스포츠의 가치와도 양립할 수 없다”며 독일 국민들의 마음을 대신 전했다. 현재 공석인 독일축구협회(DFB) 회장 후보 페터 페터스는 독일 방송에 나와 “지금은 러시아 팀과 축구 경기를 하는 걸 상상할 수 없다”라고 강조했다.

 

지난 27일 독일 아우크스부르크에서 열린 2021∼2022 분데스리가 24라운드 아우크스부르크와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경기 시작 전 선수들이 “평화를 위해 함께 한다”는 내용을 담은 우크라이나 지지 펼침막을 들고 서 있다. 아우크스부르크/EPA 연합뉴스

 

이동경의 소속팀 샬케04는 16년 만에 자신들의 스폰서인 러시아 에너지 대기업 가즈프롬의 로고를 유니폼에서 지웠다. 2006년에 이미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던 전 독일 총리 게르하르트 슈뢰더는 러시아의 반(半)국영 에너지 공급업체 가즈프롬과 샬케04 사이 수백만유로에 달하는 거래를 성사시켰다. 그 이후로 연간 최소 1500만유로(한화 약 200억원)를 지원받아온 샬케가 이번에 러시아의 침략을 규탄하며 계약을 일방적으로 종료했다.

 

샬케04의 한 시즌 예산은 약 1억1천만유로(약 1400억원)다. 코로나19 때문에 관중수입도 많이 줄어든 상황에서 메인 스폰서가 떨어져 나가면 10% 이상의 손실이 불가피하지만 돈보다 인류애가 중요하다고 판단했고, 인류애를 짓밟은 러시아의 가즈프롬과 파트너십을 계속 유지할 수 없었다고 샬케04 구단은 밝혔다.

 

독일 상위 2개 리그를 통틀어 유일한 우크라이나 출신인 다닐로 시칸(21)이 속한 FC한자 로스토크도 적극적인 반전 움직임을 보였다. 로스토크는 경기 직전 공식 채널을 통해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지 트윗을 게재했는데 그 내용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우리 모두를 뒤흔들었다. 우리는 모든 종류의 전쟁을 규탄한다. 스포츠는 통합, 페어플레이, 연대를 상징한다. 우리는 무고한-다닐로 시칸을 비롯한-사람들을 지지한다”였다.

 

지난 26일 FC한자 로스토크가 우크라이나 출신 선수 다닐로 시칸을 위해 트위터에 올린 문구.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우리 모두를 뒤흔들었다. 우리는 모든 종류의 전쟁을 규탄한다. 스포츠는 통합, 페어플레이, 연대를 상징한다. 우리는 무고한-다닐로 시칸을 비롯한-사람들을 지지한다”라고 쓰여 있다. FC한자 로스토크 트위터 캡처.

 

유럽 축구 전체가 우크라이나와의 연대를 보여주고 있다. 잉글랜드와 스위스, 폴란드, 스웨덴, 체코가 이미 러시아와 더 이상 경기를 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앞서 러시아 대표팀의 국가 명칭 사용 금지 징계를 내렸다가 너무 소극적 조치라는 반발을 산 지 하루 만에 러시아를 2022 카타르월드컵에서 퇴출했다. 유럽축구연맹(UEFA)도 마찬가지다. 러시아 축구 대표팀과 클럽팀은 이제 국제대회에 나갈 수 없다.

 

스포츠는 종종 정치적으로 남용된다. 베이징겨울올림픽처럼 국가 원수를 위한 이벤트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독일 축구계가 보여주듯 전쟁 반대와 같은 정치적 의견을 투영하는 플랫폼으로도 쓰인다. 더군다나 독일은 남다른 역사적 배경이 있다. “실수로부터 배워야 한다”는 2차 세계대전의 교훈이 강하게 남아 있어 우크라이나 상황에 대한 분노와 동정 여론이 여느 나라보다 더 높다. 지난 27일 베를린에서는 최소 10만명의 군중이 운집해 “제3차 세계대전은 없다”라는 반전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독일은 축구에 미친 나라다. 하지만 이제 축구는 사소한 문제일 뿐이다. 지난 목요일(2월24일)부터 화요일(3월1일)까지 일부에서는 코로나19로 인해 지친 이들을 위한 축제가 계획돼 있었지만 취소가 이어졌다. 축구도 축제도 세계를 뒤흔든 전쟁 앞에 뒷일이 됐다. 무의미한 전쟁이 하루빨리 끝나 독일뿐만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이 다시 축구를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란다.

 

 

집행위원장 “그들은 우리 중 하나”

 6700억원 투입해 무기 구입·제공 계획

“전쟁에 무기 지원 않는다는 금기 깨져”

 러시아 언론 차단·벨라루스 무역 제재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이 27일(현지시각) 무기를 구입해 우크라이나에 제공하는 파격적인 지원안을 발표하고 있다. 브뤼셀/AP 연합뉴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이 27일(현지시각) 우크라이나의 유럽연합 가입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유럽연합은 무기를 구입해 우크라이나에 공급하는 파격적인 우크라이나 지원 계획도 내놨다.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이날 <유로뉴스> 방송과 인터뷰에서 “그들은 우리 중 하나이며 우리는 그들의 가입을 원한다”고 말했다. 이 인터뷰는 유럽연합이 우크라이나 지원 세부 방안을 발표한 뒤 이뤄졌다. 그는 “우리는 그들과 우크라이나 시장을 (유럽) 단일 시장에 통합하는 과정을 밟아 왔고 에너지 분야에서도 긴밀히 협력해왔다”며 “여러 분야에서 협조하면서 그들은 우리에 속하게 됐다”고 말했다.

 

다만, 우크라이나가 원하는 것처럼 신속하게 가입 절차를 진행할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고 <유로뉴스>가 전했다.

 

유럽연합은 그동안 우크라이나의 회원국 가입 협상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여왔으며, 우크라이나는 2024년께나 되어야 정식으로 회원 가입을 신청할 것으로 예상되어 왔다. 하지만, 러시아의 침공 이후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유럽연합에 신속한 가입 승인을 촉구했다.

 

앞서 유럽연합은 우크라이나 지원용 무기 구입 비용 등 5억유로(약 6750억원) 규모의 지원 방안을 발표했다고 <로이터> 통신 등이 보도했다.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이날 벨기에 브뤼셀에서 지원 방안을 발표하며 “사상 처음으로, 유럽연합이 무기를 구입해 침략을 당한 나라에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럽연합 외교정책을 총괄하는 호세프 보렐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또 다른 금기 사항이 깨졌다. (이번에 깨진) 금기는 유럽연합이 전쟁에 무기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군사 지원에 우크라이나 공군을 위한 전투기 공급도 포함될 수 있다고 밝혔다. 유럽연합은 우크라이나 지원용 무기에 4억5천만유로, 의료 장비 등 지원에 5천만유로를 각각 배정할 예정이라고 <로이터>가 전했다.

 

유럽연합은 러시아와 벨라루스에 대한 추가 제재 방안도 발표했다. 러시아 재벌들의 개인용 비행기를 포함한 모든 러시아 항공기의 역내 진입이 금지된다. 이는 대다수 회원국들이 이미 시행을 밝힌 조처다. 또, 러시아 국영 텔레비전 방송 <러시아 투데이>(RT)와 통신사 <스푸트니크>도 차단된다.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언론 제재는 “블라디미르 푸틴의 전쟁을 정당화하려고 거짓말을 퍼뜨리고 유럽연합 내 분열을 촉발하는 걸” 막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럽연합은 우크라이나 침공을 돕고 있는 벨라루스의 제품 수입도 중단하기로 했다.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가장 중요한 산업 부문에 제재를 가할 것”이라며 “수입 금지 품목에는 광물 연료, 담배, 목재, 시멘트, 철강 등이 포함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조처는 27일 중 정식으로 공표된 뒤 시행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아에프페>(AFP) 통신이 전했다. 신기섭 기자

 

젤렌스키, EU 가입 신청서 서명…"즉시 승인해 달라" 

EU 관리 "3월 비공식 정상 회의 때 우크라 가입 문제 논의"

 

젤렌스키 우크라 대통령 [EPA 연합뉴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유럽연합(EU) 가입 신청서에 서명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2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의 침공을 받은 우크라이나의 EU 가입을 특별 절차를 통해 즉시 승인해 달라고 요청했다.

 

EU 고위 관리는 이날 로이터에 "3월에 예정된 비공식 정상 회의에서 우크라이나의 가입 문제가 논의될 수 있다"고 전했다.

 

이 관리는 "러시아와 협상 중인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EU 가입 문제가 중요한 사안일 것"이라면서도 아직 관련 절차가 시작된 것은 없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와 EU 가입을 추진해 왔다.

 

유럽 국가의 일원으로 경제·정치 통합에 참여하고 안보 동맹으로 국가안보를 보장받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러시아는 이 경우 자국의 안보가 위협받는다면서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금지 등을 강하게 요구한다.

 

이번 침공의 이유 중 하나도 우크라이나의 친서방 정권의 '서방화' 추진이라고 러시아는 밝혔다.

 

EU는 그간 우크라이나와 가입 협상에 미온적이었다. 우크라이나는 아직 후보국이나 예비 후보국에도 오르지 못했다. 우크라이나가 여전히 러시아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내전 상황이 계속되는 점이 원인으로 꼽힌다.

 

[우크라 침공] 한국 우크라에 1천만 달러 인도지원 긴급 제공

우크라 국민·피난민 등에 지원…"인도적 위기 해소 적극 기여"

 

리비우 기차역 승강장 가득 메운 우크라 피란민들 =27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서부 도시 리비우의 기차역 승강장에서 피란민들이 열차를 기다리고 있다. 러시아의 침공 이후 우크라이나인들은 주변국으로 피란하고 있으며 폴란드에만 피란민 10만 명이 몰린 것을 비롯해 루마니아, 슬로바키아, 헝가리 등에도 우크라이나인들이 속속 도착하고 있다. (리비우 AP=연합뉴스)

 

정부가 러시아의 침공을 당한 우크라이나 정부와 국민, 피난민에게 1천만 달러(120억 원) 규모의 인도적 지원을 제공한다.

 

외교부는 러시아의 불법적 침공으로 심각한 위기에 처한 우크라이나 정부와 국민 그리고 피난민을 돕기 위해 이같이 결정했다고 28일 밝혔다.

 

외교부는 "이번 지원은 우크라이나 및 인근국 정부, 국제기구 등과 협의를 통해 신속하게 이뤄질 예정"이라고 말했다.

 

유엔난민기구는 이번 러시아의 침공 사태로 인근국인 폴란드, 헝가리, 루마니아, 슬로바키아 등으로 400만 명 이상의 우크라이나 피난민이 발생할 것으로 전날 추산한 바 있다.

 

외교부는 "정부의 지원이 우크라이나 국민과 피난민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기를 기대하며, 정부는 우크라이나의 인도적 위기를 해소하기 위해 앞으로도 적극 기여해 나갈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앞서 이날 오전 참모회의에서 러시아의 침공을 받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신속하게 강구하라고 지시했다.

  

루블화 30% 급락…러시아, 기준금리 20%로 전격 인상

 

러시아 모스크바에 있는 러시아 중앙은행 모습. 2020년 7월 24일 촬영했다. AFP 연합뉴스

 

서구의 러시아 경제제재로 루블화가 28일(현지시각) 30%나 폭락하는 등 러시아 금융시장이 흔들리고 있다.

 

러시아의 화폐 루블은 이날 아시아 외환시장에서 한 때 달러당 119.50 루블까지 올라 전 거래일에 비해 30%나 가치가 급락하며 역대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고 <로이터> 통신 등이 보도했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이날 루블화 가치가 급락하자, 현재 9.5%인 기준금리를 20%로 대폭 올렸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전날도 대출 담보로 제공할 수 있는 증권의 범위를 확대하고 은행들의 매입 초과 또는 매도 초과 외환 포지션의 제한을 완화하는 등 금융시장 안정화 방안을 발표한 바 있다.

 

그럼에도 일부 러시아 은행의 파산 가능성도 제기됐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이날 러시아 스베르방크의 유럽 내 몇몇 자회사가 파산 가능성이 크다고 발표했다. 스베르방크는 러시아 국영 은행으로 미국의 초기 제재 명단에 이름을 올렸으며 스위프트(SWIFT·국제은행간통신협회) 결제망에서도 제외됐다.

 

유럽중앙은행이 파산 가능성을 거론한 스베르방크 자회사는 유럽·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 자회사 등 3곳이다. 이들 은행은 최근 대규모 예금 인출 사태를 겪었다. 이들 3개 은행의 총자산은 지난해 말 현재 136억4천만유로(약 18조4573억원)에 이른다. 박병수 기자

"다음 협상 며칠 내로 벨라루스-폴란드 국경서 열기로"

 

회담하는 러·우크라 대표단 (벨라루스 리아노보스티=연합뉴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처음으로 벨라루스에서 28일(현지시간) 열린 러·우크라이나 간의 협상이 약 5시간 만에 끝났다.

 

타스 통신에 따르면 회담에 참여한 한 인사는 우크라이나 북부 국경에 가까운 벨라루스 고멜주(州)에서 열린 양측 회담이 이날 오후 7시(한국시간 29일 새벽 1시)께 끝났다고 전했다.

 

구체적 회담 결과에 대해선 즉각 알려지지 않았으나 다음 회담 일정이 잡힌 점으로 볼 때 최소한 파탄은 면한 것으로 보인다.

 

회담에 참석한 우크라이나 대통령실 고문 미하일로 포돌랴크는 양국 대표단이 귀국해 협의를 거친 뒤 다음 협상에 나설 것이라고 전했다.

 

러시아 대표단 단장인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보좌관 블라디미르 메딘스키는 회담 뒤 "우리가 합의를 기대할 수 있는 사안들을 찾았다"며 "다음 회담이 벨라루스-폴란드 국경에서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

 

벨라루스 벨타 통신은 다음 러·우크라이나 협상이 며칠 내로 열릴 것이라고 러시아 대표단을 인용해 전했다.

 

이날 메딘스키 보좌관이 이끈 러시아 대표단에는 알렉산드르 포민 국방차관, 안드레이 루덴코 외무차관, 레오니트 슬추츠키 하원 국제문제위원회 위원장 등이 포함됐다.

 

우크라이나 대표단은 대통령실 고문 포돌랴크, 국방장관 올렉시 레즈니코프, 집권당 '국민의 종' 당 대표 다비드 하라하미야, 외무부 인사 등으로 구성됐다.

 

 

앞서 우크라이나 대표단은 이날 오후 폴란드를 경유해 헬기로 회담장에 왔고 곧이어 회담이 시작됐다.

 

회담은 당초 전날 열릴 예정이었으나 우크라이나 대표단이 안전을 이유로 러시아군이 장악한 자국 북부 국경을 통해 곧바로 벨라루스로 오지 않고 폴란드를 경유해 오기로 하면서 몇 차례 연기됐다.

 

러시아 측은 앞서 회담에서 우크라이나의 중립국화 방안을 중점적으로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측은 회담 주요 의제가 즉각적 휴전과 러시아군 철수 문제가 될 것이라고 맞섰다.

 

푸틴의 핵위협 앞에서…러시아와 마주앉은 우크라 “즉각 철군을”

 

전쟁 닷새만에 첫 고위급 협상.. 양쪽 입장 차 커 성과는 없을 수도

벨라루스, 러 핵무기 반입 허용, 미 “오판 마라” 러 핵위협에 경고

 

28일(현지시각)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고위급 협상 장소인 벨라루스의 고멜에 도착한 우크라이나 대표단이 헬리콥터에서 내리고 있다. 고멜/로이터 연합뉴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전쟁 닷새째인 28일 사태 수습을 위한 첫 협상을 벌였다. 만남을 앞두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1962년 쿠바 핵 위기 이후 처음으로 서구에 핵 위협을 가했다. 침공의 전진기지가 된 벨라루스는 자국에 러시아 핵무기를 들여올 수 있도록 헌법을 바꿨다. 큰 충격을 받은 독일은 전후 70여년 동안 유지해온 외교안보정책을 전환해 무력 증강에 나서기로 했다. 푸틴 대통령의 침공이 신냉전으로 가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젖힌 형국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고위급 협상단은 28일 낮 우크라이나-벨라루스 접경 지역에서 만나, 24일 러시아의 침공 개시 이후 처음으로 대화했다. 우크라이나 대통령실은 협상에 앞서 러시아에 즉각적인 휴전과 철군을 요구했다. 대통령실은 “대화의 핵심 이슈는 즉각적인 휴전과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 군대의 철수”라고 밝혔다. 러시아 협상단인 블라디미르 메딘스키 대통령실 보좌관도 협상에 앞서 “우리는 가능한 한 빨리 합의에 도달하는 데 관심 있다”고 말했다.

 

즉각 철군을 요구한 우크라이나와 달리 러시아는 구체적인 요구 사항을 공개하진 않았다. 러시아는 그동안 우크라이나의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 포기와 중립화를 요구해왔고, 개전 후엔 사실상 항복을 뜻하는 ‘무기를 내려놓을 것’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정권의 제거를 뜻하는 ‘비나치화’를 내걸었다. 결사항전하고 있는 우크라이나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들이다.

 

양쪽의 큰 견해차를 반영하듯 젤렌스키 대통령은 전날 밤 연설에서 “이 만남의 결과를 믿진 않지만 해보려 한다”고 말했다. 드미트로 쿨레바 외교장관도 “우리는 항복하지 않을 것이다. 영토의 단 1인치도 포기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러시아의 핵 위협에 미국은 강경한 반응을 쏟아냈다. 젠 사키 미국 백악관 대변인은 27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핵무기 운용 부대에 특수 경계 태세를 지시한 것에 대해 “추가 침략을 정당화하기 위해 위협을 지어내는” 패턴의 반복이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미 국방부 고위 당국자도 “(러시아가) 오판할 경우 사태를 매우 위험하게 할 수 있다”며 “미국은 국토, 동맹, 파트너를 지켜낼 능력이 있다. 이는 전략적 억지를 포함한다”고 말했다. 전략적 억지란 핵 사용을 뜻하는 것으로, ‘핵에는 핵으로 맞서겠다’는 결의를 밝힌 것이다.

 

서구와 러시아의 골은 점점 더 깊어가고 있다. 러시아의 동맹인 벨라루스는 27일 개헌 국민투표에서 “영토를 비핵화하고 중립국가화를 목표로 한다”(18조)는 조항을 삭제하는 개헌안을 통과시켰다. 독일은 위협에 맞서 국방비를 국내총생산(GDP)의 2% 이상으로 끌어올리겠다고 선언했다. 올라프 숄츠 총리는 러시아의 침공이 독일의 방위정책을 근본적으로 전환해야 하는 “새로운 현실을 만들어냈다”고 말했다. 황준범 기자

 

우크라 “핵시설 2곳 러 공격으로 피해”…방사능 유출 확인 안돼

국제원자력기구 “건물 파손, 방사성 물질 유출 보고 없어”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방사성 물질 경고 표지판. AP 연합뉴스

 

우크라이나가 자국 내 핵시설 2곳이 러시아의 공격으로 피해를 봤다고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보고했다. 피해 시설에서 건물 파손이나 방사성 물질 유출 등은 확인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27일 자료를 내고 우크라이나 정부가 수도 키예프와 제2의 도시 하르키우(하리코프)에 위치한 핵폐기물 저장소에 미사일이 떨어졌다고 통보해왔다고 밝혔다. 국제원자력기구는 이들 핵시설에 대한 조사를 하고 있다며 주요 건물이 파손되거나 방사성 물질 유출은 보고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라파엘 그로시 국제원자력기구 사무총장은 “방사성 물질이 있는 시설이 훼손될 경우 심각한 피해를 초래할 수 있다”며 “이들 시설에 대한 군사적 행동을 자제해 달라”고 호소했다.

 

우크라이나는 원자력 발전소 4곳에서 15개의 원자로를 가동하고 있다. 지난 24일 침공한 러시아군은 1986년 폭발 사고로 가동이 중단된 체르노빌 원전 인근에서 우크라이나와 교전을 벌여 위험이 가중되기도 했다. 러시아는 체르노빌 원전 시설 통제권을 장악한 상태다. 국제원자력기구는 오는 2일 우크라이나 핵시설 안전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긴급회의를 열기로 했다. 도쿄/김소연 특파원

 

‘우크라 침공 전진기지’ 벨라루스, 핵무기 배치 가능 개헌안 통과

 

“영토 비핵화 중립국가 목표” 조항 삭제, 러 핵무기 배치 현실화될 수도

 루카셴코 2020년 시위 뒤 러에 밀착  러시아-서방 대립 격화 우려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이 27일 수도 민스크에서 헌법 개정 국민투표를 한 뒤 발언하고 있다. 민스크/로이터 연합뉴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전진기지로 이용되고 있는 벨라루스에서 핵무기 배치 금지 조항을 삭제하는 개헌안이 통과됐다. 벨라루스로 러시아 핵무기 배치가 전진 배치되면, 서구와 러시아의 대립이 격화될 수 있다. 전세계가 ‘신냉전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는 또 다른 징후로 읽힌다.

 

벨라루스 선거관리위원회는 28일 전날 이뤄진 개헌 국민투표(투표율 78.63%)에서 65.16%의 찬성으로 개헌안이 통과됐다고 밝혔다. 이번 국민투표가 관심을 모은 것은 개헌안에 “영토를 비핵화하고 중립국가화를 목표로 한다”(18조)는 조항을 삭제하는 내용이 들어 있기 때문이었다. 이는 러시아의 핵무기가 서유럽을 더 노골적으로 위협할 수 있도록 벨라루스로 전진 배치될 수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독재자’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대통령도 이런 속셈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투표 당일 방문한 투표소 앞에서 “당신들(서구)이 우리와 국경을 맞댄 폴란드와 리투아니아에 핵무기를 들여온다면, 나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가서 조건 없이 줬던 핵무기를 돌려달라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벨라루스에는 소련 시절 핵탄두가 탑재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 배치돼 있었다. 하지만 소련의 해체로 독립한 뒤인 1994년 ‘부다페스트 각서’를 통해 우크라이나·카자흐스탄과 함께 주권과 영토 보전을 약속받고 핵무기를 포기했다.

 

이번 개헌을 이끈 루카셴코는 소련 집단농장 관리자 출신으로 1994년부터 28년간 집권 중이다. 2020년 1월엔 러시아가 벨라루스를 합병하려고 한다며 푸틴 대통령에게 날을 세운 적도 있다. 하지만 그해 8월 6번째 대통령에 당선될 당시 전국적인 부정선거 규탄 시위가 일어나고 서방이 제재를 가하자 급격히 러시아에 밀착했다. 유일한 ‘비빌 언덕’인 푸틴 대통령의 비위를 맞추며 생존하는 길을 택한 것이다.

 

이번 개헌안에는 루카셴코의 장기 집권을 뒷받침하는 내용이 대거 들어 있다. 대통령 3연임 금지 조항이 있긴 하지만, 2025년 대선에서 선출되는 새 대통령의 임기부터 적용된다. 그로 인해 루카셴코는 2035년까지 대통령으로 머물 수 있다. 러시아가 2020년 푸틴 대통령 기존 임기를 백지화하는 내용의 개헌을 통해 2036년까지 집권할 수 있게 한 것을 참고한 듯한 내용이다. 또 최고 국정자문기구인 ‘전 벨라루스 국민회의’의 권한을 강화해 퇴임 뒤에도 상왕처럼 군림할 수 있게 했다. 평생 형사 소추를 받지 않는다는 내용도 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벨라루스인들 상당수가 이번 국민투표도 부정선거로 보고 있으며 26일에도 반전 시위가 일어나 100명 이상이 체포됐다고 전했다.

 

푸틴 대통령이 지난 24일 전쟁을 일으키기 전에 벨라루스엔 연합훈련을 명목으로 러시아군 3만여명이 파병돼 있었다. 이들이 우크라이나 북쪽 국경을 넘어 키예프를 포위 공격하고 있는 러시아의 주력이다. 벨라루스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가입국인 리투아니아·라트비아·폴란드와도 국경을 접하고 있다. 이 때문에 나토는 벨라루스를 경계하며 이 지역에 전력을 강화하는 중이다. 장이브 르드리앙 프랑스 외교장관은 25일 벨라루스 개헌을 비판하며 “나토의 방어 태세 적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키어 자일스 영국왕립국제문제연구소(채텀하우스) 러시아·유라시아 프로그램 선임연구원도 최근 <포린 폴리시>에 “러시아군의 벨라루스 영구 주둔은 사실상 정해졌다. 그들은 러시아의 공격용 전초기지로 쓰이지 않을 것이라는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조기원 기자

 

[우크라 침공] "'젤렌스키 암살조' 러 용병 400명 키예프 대기 중"

영 매체 "살생부에 총 24명…'복싱영웅' 클리치코 키예프 시장도 포함"

영 정부가 첩보 입수해 우크라이나에 통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AP=연합뉴스 우크라이나 대통령실 제공]

 

러시아 연계 용병 400명 이상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 등 우크라이나 정부 요인을 암살하라는 크렘린궁의 명령을 받고 키예프에서 대기 중이라고 영국 언론 더타임스가 2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러시아의 세력 확장을 위해 아프리카와 중동 등 해외 분쟁지에서 용병을 동원하는 사기업 와그너그룹은 이런 '특명'을 받고 5주 전 아프리카에서 우크라이나로 용병들을 침투시켰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요리사 출신으로 알려진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운영하는 이 회사는 젤렌스키 대통령을 비롯한 우크라이나 주요 인사를 암살하는 대가로 두둑한 상여금을 받기로 했다는 것이다.

 

영국 정부는 26일 오전 이런 정보를 입수해 우크라이나 정부에 전달했다.

 

더타임스는 몇 시간 뒤 수도 키예프시에 36시간 동안 엄격한 통행금지령이 발효됐는데 러시아 공작원들을 색출할 목적이었다고 전했다.

 

키예프시 당국은 시민들에게 러시아 공작원으로 오인될 소지가 있다면서 통금 시간에 바깥출입을 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와그너그룹의 활동과 긴밀한 연결고리를 지닌 한 소식통은 이와 관련, 모두 합쳐 용병 2천∼4천명이 지난달 우크라이나에 들어왔다고 말했다.

 

또 이들 중 일부는 친러 분리주의 조직이 장악한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와 루간스크에 배치됐고 다른 용병 400명은 벨라루스에서 키예프로 잠입했다고 밝혔다.

 

와그너 그룹의 고위 관계자들과 가까운 또 다른 소식통은 푸틴 대통령이 젤렌스키 대통령과 협상을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차원에서 잠깐의 휴지기를 원하지만 협상은 결국 결렬될 것이라는 내용이 이들 용병에게 사전에 전달됐다고 말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28일 벨라루스의 국경 도시 고멜에서 협상할 예정이지만 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의 진정성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라고 밝힌 바 있다.

 

더타임스는 용병단이 푸틴에게서 신호가 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다면서 이들이 향후 며칠 동안 '살생부'를 처리한 뒤 사례금을 챙겨 이번 주말 전에 우크라이나를 안전하게 빠져나갈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약속을 받았다고 전했다.

 

헤비급 세계챔피언 출신인 비탈리 클리치코 키예프 시장 [AP 연합뉴스]

 

이 살생부에는 젤렌스키 대통령 외에 총리와 내각 장관 등 23명의 이름이 올랐고 비탈리 클리치코 키예프 시장과 러시아 침략에 맞서 싸우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그의 동생 블라디미르도 포함돼 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이들 용병은 또한 젤렌스키 대통령과 측근들이 키예프 정확히 어느 곳에 있는지를 알고 있다고 떠벌렸으며 휴대전화 통해 암살 대상자의 위치를 추적할 능력을 확실히 갖춘 것으로 보인다고 더 타임스는 덧붙였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24일 러시아의 침공 직후 한 대국민 연설에서 러시아 특수부대가 자신을 '1호 표적'으로 겨냥해 찾고 있다고 주장했다.

 

와그너그룹은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강제 병합한 2014년 우크라이나 동부에서도 분열을 조성하는 작업을 한 것으로 지목된다.

 

더 타임스는 이 조직이 러시아 정규군보다 푸틴 대통령의 신뢰를 더 많이 받는 것처럼 보인다고 평가했다.

 

또 이들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계획에 대해 브리핑을 받은 것은 러시아 군대보다 훨씬 이른 작년 12월이라는 소문도 전했다.

 

리처드 배런즈 전 영국 합동군사령관은 "와그너그룹은 색출하기 매우 어려운 까닭에 아주 효과적"이라며 "어둠 속에서 슬며시 나타나 아주 심한 폭력을 저지르고 다시 사라져 누가 책임이 있는지 확실치 않도록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또한 러시아 정부와 직접 연결되지 않기 때문에 러시아 정부는 쉽게 책임을 부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