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데타 혐의로 가중처벌 종신형을 선고 받은 전 터키 공군사령관

           

지난 2016년 군부 쿠데타에 가담한 혐의로 기소된 121명이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터키 법원은 26(현지) 쿠데타 가담 혐의로 기소된 86명에게 '가중처벌 종신형', 35명에게는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이들은 모두 수도 앙카라의 헌병사령부에서 쿠데타를 시도한 혐의를 받고 있다.

가중처벌 종신형은 터키가 유럽연합(EU)에 가입하려고 사형제를 대체해 도입한 제도로 가석방이 극도로 어렵거나 불가능하며, 수감 조건이 일반 종신형보다 엄격하다.

터키 법원은 지난해 6월 쿠데타 주동자로 지목된 아킨 외즈튀르크 전 공군 사령관을 비롯해 쿠데타 가담자 198명에게 종신형을 선고했으며, 지난해 7월에도 33명이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2016715일 쿠데타 시도로 251명이 목숨을 잃었으며, 2천명 이상 부상했다.

훌루시 아카르 터키 국방부 장관은 지난달 "실패한 반란 이후 약 2만명이 제거됐으며, 4천명 이상이 현재 조사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소강석 새에덴교회 목사가 24일 열린 70주년 한국전쟁 참전용사 초청 온라인 보은행사4개국(미국 캐나다 태국 필리핀) 참전용사와 가족 150명이 화상으로 연결된 대형 스크린 앞에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6·25전쟁 70주년 새에덴교회 14년째 보은 행사

 

경기도 용인 새에덴교회(소강석 목사) 프라미스홀 입구에 도열한 기수단이 가로 18m 세로 4m의 대형 스크린을 향해 전진했다. 92개의 화면으로 나뉜 대형 스크린 속 150명의 6·25전쟁 참전용사와 가족들은 장엄한 멜로디와 함께 입장하는 미국 캐나다 필리핀 태국 대한민국의 국기를 바라보며 박수를 보냈다.

6·25전쟁 발발 70주년을 하루 앞둔 24일 오전 10시 개막한 70주년 한국전쟁 참전용사 초청 온라인 보은행사현장 모습이다. 새에덴교회는 2007년부터 13차례 8개국 4000여명의 참전용사와 가족을 초청해 감사를 전해 왔다. 올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행사가 중단될 뻔했지만 화상회의 애플리케이션을 활용한 비대면 방식을 도입해 평화를 위해 헌신한 이들과의 만남을 이어갔다.

행사에선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양국의 참전용사를 격려하고 감사의 메시지를 전했다. 더불어민주당 김진표(대한민국국회조찬기도회장) 의원이 대독한 메시지에서 문 대통령은 평화의 증인이자 수호자인 해외 참전용사들의 용기와 헌신을 한순간도 잊은 적 없다코로나를 극복하며 대한민국 국민이 발휘한 연대와 협력의 힘은 70년 전 참전용사들에게서 시작된 것이라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서한을 통해 참전용사들은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했으며 이제 이들을 보호하고 이들을 위해 봉사하는 게 우리의 의무다. 14년 연속 한국전쟁 참전용사 초청 보은행사를 열어 준 새에덴교회와 소강석 목사에게 감사를 전한다고 밝혔다.

13년간 참전용사 초청행사의 감동 포인트는 언택트가 아닌 콘택트에 있었다. 참전용사와 가족들은 비무장지대, 현충원, 해군사령부, 미군부대 등을 방문해 대한민국의 과거와 오늘을 돌아보며 감격을 느꼈다. 방한 여정을 위해 헌신적으로 봉사한 성도들과 교감하며 국경을 초월한 우정을 쌓았다.

주요 참석자들이 보은행사를 마친 뒤 무대에서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

이번에 최초로 시도한 온라인 행사였지만, 화면으로 전달되는 감격에 찬 참전용사들의 모습은 한국을 직접 찾은 이들과 다르지 않았다. 6·25전쟁에 참전했다 함께 전사한 형제, 북한군에 붙잡혀 포로수용소에서 사망했지만 시신이 수습되지 않은 병사 등 전사자와 실종자들의 이야기와 흑백사진이 화면에 흐르자 화상회의 화면 곳곳에서 눈물을 훔치는 이들이 보였다.

참전용사와 가족들은 주일학교 어린이가 영어로 감사인사를 전할 땐 화면이 가득 차도록 미소를 보이며 연신 손하트포즈를 취했다.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 연아 마틴 캐나다 상원의원, 박병석 국회의장, 리처드 캐리 예비역 미해병 중장 등 각국 주요인사와 참전용사들의 영상축사가 이어질 땐 뿌듯한 표정으로 화면을 응시했다.

소 목사는 참전용사들이 꽃다운 청춘을 바쳐 흘린 뜨거운 눈물과 피가 아니었다면 오늘날 대한민국이 누리는 자유와 평화는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화면을 통해서나마 감사의 마음과 박수를 전 세계 참전용사와 가족들에게 보낸다고 전했다.

보은행사는 민생당 박지원 전 의원의 노병을 위한 기도로 끝을 맺었다. “주님 여기 우리나라의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청춘을 불사른 위대한 영혼들이 있습니다. 죽음도 자유를 향한 그들의 행진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주님의 손으로 이들의 눈물을 닦아주옵소서. 노병들이 언젠가 이 땅을 떠난다 해도 자유와 평화의 나라인 천국에서 은혜의 꽃처럼 다시 만나게 하옵소서.”


            

      인디언 여성 스튜어트 장로. 흑인 목사 벤틀리 선출

 

미국장로교(PCUSA)가 지난 20일 인디언과 흑인을 공동총회장으로 선출했다. 흑인과 동양인이 공동총회장 2명 중 1명에 선출된 적은 있지만, 공동총회장 2명이 모두 유색인종으로 선출된 것은 교단 역사상 처음이다. 인디언이 총회장에 오른 것도 처음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예방을 위해 온라인으로 총회를 진행한 PCUSA는 엘로나 스트리트 스튜어트(왼쪽 사진) 장로와 그레고리 벤틀리(오른쪽) 목사를 공동총회장에 선출했다. 두 사람은 각각 인디언 여성 평신도와 흑인 남성 목회자로 440명이 투표한 선거에서 304표를 얻어 당선됐다.

PCUSA는 공동총회장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2년 임기 동안 두 명의 총회장이 편의에 따라 기간을 정해 업무를 맡게 한다. PCUSA 총회장은 한국 장로교단과 마찬가지로 겸임제다. 스튜어트 총회장과 벤틀리 총회장도 각각 레이크 앤 프레리 시노드(노회의 상위조직)의 총무와 앨라배마주 헌트스빌 펠로십장로교회 담임목사를 맡고 있다.

PCUSA가 공동총회장 2인을 모두 유색인종으로 선출한 배경에는 지난달 미국 미네소타주에서 발생한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이 있다. 비무장 상태였던 플로이드는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사망했다.

PCUSA 소속으로 인디언 사역을 하는 안맹호 목사는 23플로이드 사건으로 매우 민감한 시기에 PCUSA가 유색인종으로 구성된 팀을 공동총회장에 선출한 건 인종주의를 극복하자는 강력한 메시지로 해석할 수 있다면서 인디언이 총회장이 된 건 1789년 미국장로교가 시작된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앞으로 소수민족 사역이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스튜어트 총회장은 델라웨어 난티코크 인디언 부족의 일원이다.

임춘식 PCUSA 한국선교회 대표도 교단이 인종 갈등을 평화적인 방법으로 해소하고 화합과 평화의 길로 나가자는 뜻에서 이런 결정을 내렸다고 말했다.


윌리엄 펀체스 씨가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자택에서 6·25전쟁 때 포로수용소에서 읽던 성경책을 펼쳐 보이고 있다.

 

92세 노병 윌리엄 펀체스 씨의 70년전 6.25 포켓 성경

 

“1950114일 총상을 입고 중공군에 잡혔다고 성경책에 기록했습니다. 압록강 부근의 벽동 제5포로수용소에서는 숨진 전우들의 이름을 기억하기 위해 성경책 본문의 해당하는 철자 밑에 작은 구멍을 뚫었습니다.”

92세의 노병 윌리엄 펀체스(William H Funchess)70년 전 일을 어제 일처럼 기억해 냈다. 중공군과 격전을 벌인 장소, 1038일간 지낸 포로수용소 상황과 날짜를 정확하게 들려줬다. 그는 주머니에 들어가는 세로 11.43, 가로 6.9포켓 성경책과 함께 전쟁터에서 만난 하나님을 고백했다.

핀체스 씨는 미국 전역을 돌며 6·25전쟁 참전용사를 촬영하는 현효제 사진작가의 도움으로 사연을 전했다.

1928년생인 펀체스는 48년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 있는 클렘슨 칼리지를 졸업했다. 학군사관후보생(ROTC)이었던 그는 졸업과 동시에 미 육군 소위로 임관했다. 이듬해 아내와 결혼한 그는 50년 일본 규슈의 오이타현 벳푸에 주둔 중인 제24사단 19보병연대에 배치받았다.

그해 625, 북한이 남한을 침공했다는 소식에 19보병연대는 네 대의 낡은 상륙함을 타고 부산항에 도착했다. 대전까지 올라가 북한군과 교전했지만, 후퇴를 거듭했다. 장교들의 부상과 전사가 잇따르자 펀체스는 참전 30일 만에 중위로 진급했다. 부대원들을 이끌고 부산에서 낙동강 방어선을 구축했다.

미 육군에서도 어린 장교였습니다. 군목에게 받은 성경책을 심장과 가까운 외투 안주머니에 넣어뒀어요. 매일 성경을 읽으면서 두려움을 극복하려 했습니다. 우리의 안전과 한국인들의 자유를 위해 날마다 기도했습니다.”

인천상륙작전 후 38선을 넘어 북한 땅으로 진격했지만, 중공군의 개입으로 전세가 역전됐다. 114일 펀체스는 평안남도 안주에서 교전하다 중공군이 쏜 기관총에 맞아 오른발에 총상을 입고 생포됐다. 수용소 생활은 지옥이었다. 9남짓한 방에서 앞사람 어깨에 머리를 대고 잠을 자야 했다. 고름이 흐르는 상처와 썩어가는 살에서 악취가 진동했지만, 얼어 죽지 않으려면 동료의 체온에 의지해야 했다. 갈비뼈가 드러날 정도의 굶주림도 고통스러웠다.

그럴 때면 펀체스는 왼쪽 양말에 숨겨서 들여온 포켓성경과 만년필을 꺼내 시편 23편을 읊었다. “‘고난이 닥칠 때면 시편 23편을 읽으라고 가르쳐주신 어머니 말씀을 기억했습니다. 수용소에선 기독교 탄압이 심해 기도와 찬양도 할 수 없었지만, 하나님 말씀은 나와 동료들에게 큰 위로가 됐습니다.”

윌리엄 펀체스 씨가 만년필로 성경책에 깨알같이 적어놓은 동료 전사자 명단.

포로생활이 길어지면서 전우들이 추위와 굶주림, 폐렴으로 죽어갔다. 뼈만 앙상하게 남은 시체는 피와 배설물, 눈 범벅이었다. 그렇게 눈밭에 방치된 시쳇더미가 30~40m 이어졌다. 처참한 광경이었다. 하나님이 원망스럽지 않았을까. “담요 몇 장과 약간의 음식만 있었어도 살 수 있었을 겁니다. 그래도 하나님을 원망하진 않았습니다. 그분의 사랑을 기억하며 더욱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 깊이 깨닫는 시간이었습니다.”

펀체스는 숨진 전우들의 명단을 작성해 숨길 방법을 고민했다. 성경책에 전우의 이름 철자에 해당하는 글자 아래에 핀으로 작은 구멍을 뚫어 기억했다. 여백에는 전우 이름과 죽은 날짜를 기록한 뒤 성경책을 찢어 만년필 속에 돌돌 말아 숨겼다.

감시병에게 성경책을 압수당한 적도 있지만, 감시가 소홀한 틈에 몰래 압수물품 더미로 가서 되찾아왔다. 수천떨어진 곳까지 와서 죽은 동료들을 기억하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라 생각했기에 성경책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었다.

휴전협정 체결 후인 195396일 펀체스는 포로 교환을 통해 귀환했다. 1038일 만의 자유였다. 그는 고국에 돌아와 동료들의 이름이 적힌 성경책을 들고 아내와 함께 드린 첫 예배의 감격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고 했다. 70년의 세월만큼이나 닳고 해어진 성경책을 그는 액자에 넣어 보관하고 있다.

젊은 시절을 한반도에서 보낸 것에 대해 어떠한 원망도, 후회도 없습니다. 우리가 지켜낸 대한민국을 지금도 아주 많이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날마다 남북을 위해 기도하는 제 입술의 고백에 하나님께서 한반도의 평화로 응답하실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