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1년 5월 31일 코트디부아르 인근 외곽의 농장에서 한 노동자가 코코아 나무 사이를 걷고 있다. 코트디부아르/AP 연합뉴스
네슬레, 허쉬 등 글로벌 식품기업들이 아프리카의 코코아 농장에서 아동 노동착취를 묵인했다는 혐의로 미국에서 피소됐다. 12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과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인권단체인 국제권리변호사들(IRA)은 이날 미 워싱턴DC 연방법원에 아동 노동착취 혐의로 네슬레, 허쉬, 카길, 몬델레스 등 글로벌 식품기업들을 상대로 집단소송을 제기했다.
IRA는 서아프리카 말리 출신으로 코트디부아르의 코코아 농장으로 끌려가 노동착취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8명의 원고를 대리해 소장을 제출했다.
현재 모두 성인인 이들은 자신들이 16세도 되지 않았을 때 사기에 넘어가 코트디부아르의 코코아 농장에서 수년간 임금도 받지 못한 채 비인간적인 환경에서 노역에 동원됐다고 주장한다.
원고 측은 네슬레와 허쉬 등 초콜릿을 제조해 판매하는 글로벌 기업들이 코트디부아르에서 직접 코코아 농장을 소유한 것은 아니지만 자신들의 영향력이 지배적인 이곳의 농장지대에서 수천 명의 어린이가 강제노동을 하는 사실을 인지하고도 이를 묵인했다고 주장했다.
코트디부아르는 초콜릿의 원료인 코코아의 전 세계 공급량의 45%를 차지한다. 세계 최빈국 중 하나인 코트디부아르에서 코코아 재배 산업은 저임금, 아동노동착취, 구조적 빈곤 등의 문제로 몸살을 앓아왔다.
소송을 당한 기업들은 즉각적인 반응은 내놓지 않은 채 아동노동착취에 반대한다는 원론적인 입장만 밝혔다.
카길 측은 코코아 생산에서 아동노동에 무관용 정책을 갖고 있다고 밝혔고, 네슬레 측은 아동노동에 명백히 반대하며 이를 종식하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답했다고 블룸버그통신이 전했다. 연합뉴스
최근 3년간 120곳에서 학술조사 목적 발굴 진행 토목공사 도중 발굴되는 것 포함하면 훨씬 많아 내년 7월 ‘가야고분군’ 세계유산 등재 여부 결정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는 ‘가야고분군’에 포함된 경남 창녕군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
2018년 국도5호선 거제-마산 구간 건설공사 도중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현동 공사현장에서 3~5세기 조성된 무덤 840여기 등 대규모 가야 유적이 나왔다. 가야고분군으로는 최대 규모였다.
아라가야 계통의 통모양굽다리접시, 불꽃무늬토기 등 다양한 토기와 망치, 덩이쇠, 둥근고리큰칼, 비늘갑옷, 투구 등 2500여점의 유물도 출토됐다. 특히 가야고분에서는 처음으로 고대 항해용 선박을 형상화한 배모양토기가 나와 학계를 흥분시켰다. 국도5호선 거제-마산 구간 건설공사의 창원 지역 공사는 4일 끝났는데, 창원시는 현동고분군 일부를 복원하고 현장에 유물전시관을 세울 계획이다.
그런데 가야 최대 고분군이라는 현동고분군 기록은 채 2년도 지나지 않아서 깨졌다.
지난해 경남 창원시 제2안민터널 건설 도중 터널 진출입로 예정지에서 무덤 1000여기 등 대규모 가야 유적이 발굴됐기 때문이다. 이 유적 발굴작업은 내년 4월까지 계속될 예정이다. 아직 생활유적 부분은 발굴을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이미 토기·철기·장신구 등 유물 5500여점이 출토됐다.
유적을 발굴하는 동아세아문화재연구원은 “4세기 전반부터 300년가량 이어진 유적인데, 전혀 도굴되지 않아 원형 그대로의 모습이 발굴되고 있다. 특히 가야가 ‘철의 왕국’이었다는 것을 증명하듯 집게·도끼·화살촉·큰칼 등 철기 유물이 1800여점이나 나왔다”고 밝혔다.
경남 창원시 제2안민터널 건설공사 도중 발굴된 가야유적지에서 지난해 11월11일 열린 현장설명회에 참석한 시민들이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옛 가야의 중심지역인 경남에선 최근 “파면 나온다”고 할 만큼 곳곳에서 가야유적이 발굴되고 있다. 게다가 발굴할 때마다 ‘최고’ ‘최대’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을만큼 문화재로서 높은 가치를 지닌 유물이 쏟아져나온다.
경남도 가야문화유산과는 9일 “경남 도내에서 학술조사 목적의 가야유적 발굴은 201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시작됐으나, 2016년까지는 연간 10건 안팎에 머물렀다. 하지만 2017년부터 늘어나기 시작해 최근 3년 동안은 2018년 30곳 36건, 2019년 48곳 57건, 2020년 42곳 48건 등 120곳 141건에 이른다”고 밝혔다. 대규모 토목공사 도중 발굴돼 조사하는 구제조사까지 포함하면, 현재 경남에서 조사 중인 가야유적은 훨씬 늘어난다.
발굴조사가 진행되는 지역은 경남 18개 시·군 전체에 고루 퍼져있다. 경남 전역이 옛 가야의 영역이었으나, 가야의 실체를 밝히기 위한 연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다가 최근에야 본격적으로 시작됐다는 뜻이다.
경남에서 가야유적 발굴조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2013년 ‘가야고분군’(Gaya Tumuli)의 세계유산 등재추진 작업을 시작하면서부터다.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려는 ‘가야고분군’은 김해시 대성동 고분군(사적 제341호), 함안군 말이산 고분군(사적 제515호), 창녕군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사적 제514호), 고성군 송학동 고분군(사적 제119호), 합천군 옥전 고분군(사적 제326호) 등 경남 5곳과 경북 고령군 지산동 고분군(사적 제79호), 전북 남원시 유곡리와 두락리 고분군(사적 제542호) 등 7개 고분군으로 구성된 연속유산이다. 이들 7개 고분군은 가야 정치체제의 각 중심지에 위치하고, 가야 문명을 대표적으로 증명하며, 가야 문명의 사회구조를 반영한 묘제와 부장유물을 갖추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가야고분군’은 지난해 9월10일 국내 심의 최종단계를 통과해 세계유산 등재신청 대상으로 선정됐다. 문화재청은 지난달 27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에 최종 등재신청서를 제출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는 오는 9월 현지실사를 하고, 이후 토론회의를 진행할 예정이다. 세계유산 등재 여부는 내년 7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판가름난다.
우리 정부는 2017년 7월 ‘가야문화권 조사연구 및 정비’를 국정과제에 포함하고, 2018년부터 관련 예산을 집행해 ‘가야고분군’의 세계유산 등재를 지원하고 있다.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는 ‘가야고분군’이 경남·경북·전북에 걸쳐있어 지난해 6월엔 ‘초광역협력 가야문화권 조성’ 기본계획도 마련됐다. 이 작업은 단순히 ‘가야고분군’ 정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가야사 규명과 확립, 가야유산의 합리적 보존과 관리, 가야 역사자원 활용과 가치창출 등에까지 확대되고 있다. 덕택에 가야유적 발굴조사가 2017년부터 더욱 활발해졌다.
특히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았으나 역사적 가치규명이 시급한 가야유적 조사를 지원하는 ‘비지정 가야문화재 조사연구 지원사업’이 2019년 시작되면서 경남 도내 가야유적 조사건수가 부쩍 늘어났다. 최근 3년 동안 학술조사 목적으로 발굴한 120곳 가운데 77곳이 비지정 유적이다.
경남 고성군의 대표적 고대 성곽인 만림산 토성이 5세기 소가야 전성기에 축조된 토성이라는 사실이 지난해 발굴조사를 통해 확인됐는데, 이 조사는 비지정 가야문화재 조사연구 지원사업 덕택에 이뤄졌다. 경남 통영시 팔천곡 고분군은 통영지역의 유일한 높다란 모양의 고분인데, 이 역시 지난해 비지정 가야문화재 조사연구 지원사업 덕택에 발굴조사를 해서 소가야 고분이라는 것이 확인됐다. 이곳에선 금으로 만든 가는고리귀걸이, 굽은옥·대롱옥·유리구슬 등으로 만든 목걸이, 철제 큰칼, 뚜껑 있는 굽다리접시, 긴목항아리 등 다양한 유물이 출토됐다.
경남 김해 유하리 유적에선 지난해 건물지 7동이 발굴됐다. 역시 비지정 가야문화재 조사연구 지원사업으로 발굴조사를 할 수 있었다. 이곳에서도 다양한 유물이 나왔는데, 건물지 중앙의 넓은 나무판재 흔적 위에서 금관가야 토기의 대표격인 아가리가 밖으로 꺾인 굽다리접시 15점이 5점씩 세줄로 나란히 눕혀진 채 출토됐다. 무덤이 아닌 생활유적에선 처음 확인된 것으로, 관련 학계는 이를 통해 제사 행위 등 특수용도의 건물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경남도 가야문화유산과는 “경남의 가야유적 가운데 95% 이상이 비지정 유적이다. 비지정 유적이라고 해서 문화재로서 가치가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중요성을 규명할 기회를 제대로 갖지 못했다고 보는 것이 옳다. 비지정 가야문화재 조사연구 지원사업이 진행되면 될수록 가야의 실체를 더욱 명확하게 규명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국도5호선 건설공사 도중 발굴된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현동 가야유적지(사진 가운데 빈터). 창원시는 유적 일부를 복원하고 현장에 유물전시관을 세울 계획이다. 경남도 제공
가야유적 발굴조사가 활발해지면서 가야유물의 가치도 뒤늦게나마 인정받기 시작했다. 김해 대성동 76호분 출토 목걸이, 김해 양동리 270호분 출토 수정목걸이, 김해 양동리 322호분 출토 목걸이 등 가야고분에서 출토된 목걸이 3점은 지난해 10월8일 보물 제2081~2083호로 지정됐다. 김해 대성동 88호분에서 출토된 금동허리띠는 지난해 11월19일 경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예고됐다. 창원시는 현동고분군에서 출토된 유물을 수습해 지난해 10월 창원시립 마산박물관에서 특별전시회 ‘가야의 또 다른 항구, 현동’을 열기도 했다.
김수환 경남도 학예연구사는 “가야유적 발굴조사는 일제강점기 일본학자들에 의해 시작됐는데, 당시엔 왕릉 등 최고지배층 유적 중심으로 조사했다. 해방 이후에도 사실상 일본학자들의 연구 방식과 결과를 그대로 이어받아 문화재로 지정된 유적에만 주목했다”며 “가야유적은 신라·백제에 견줘 가치를 규명할 기회가 적었는데, 비지정 가야유적은 아예 관심을 갖지 않았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이제야 가야유적에 대한 본격적인 기초조사가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최상원 기자
이인영 통일부 장관이 지난 1월14일 정부서울청사 통일부 대회의실에서 열린 제318차 남북교류협력추진협의회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최근 ‘전면 중단·폐쇄’ 5년이 지난 개성공단사업과 관련해 “정부는 어떤 경우에도 개성공단에 입주했던 기업들의 손을 놓지 않을 것”이라고 17일 밝혔다.
이 장관은 이날 오후 <와이티엔>(YTN) ‘뉴스특보’에 나와 “개성공단사업 재개는 남북 정상의 합의 사항이다. 개성공단 재개와 관련한 모든 노력을 다하고자 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앞서 개성공단기업 비상대책위원회(위원장 정기섭)는 지난 9일 청와대 앞 분수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가 미국의 지나친 관여로 개성공단 재개 선언조차 하지 못한다면 이제는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개성공단의 청산을 요구한다”며 “정부는 개성공단을 청산하고 기업 피해 보상을 위한 특별법을 정부입법으로 제정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아울러 이 장관은 “어떤 경우에도 한-미 군사훈련이 남북 간에 또 북-미 간에 긴장을 조성·격화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하는 것은 피했으면 좋겠고, 그를 위해 끝까지 노력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장관은 “통일부 장관 입장에선 군사훈련보다 평화회담이 많아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3월로 예정된 한-미 연합연습을 축소하거나 중단하면 좋겠고, 혹여 예정대로 진행되더라도 북쪽이 이에 반발해 군사적 긴장을 조성하지 않으면 좋겠다는 뜻이다. 이제훈 기자
이인영..남북 판문점의 봄 언제 다시 오나?
장기 교착 국면 한반도 정세 변곡점 인식
이인영 통일부 장관이 장관 취임 닷새째인 2020년 7월31일 강원도 동해선 남쪽 최북단 역인 제진역의 철로 위에서 북쪽을 바라 보고 있다.
처음엔, 이인영 통일부 장관도 아주 비장했고 그만큼 자신감에 넘쳤다.
북한 당국의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건물 폭파(2020년 6월16일) 직후 전임 김연철 장관이 남북관계 재개를 위한 제단에 올릴 희생양을 자처하며 물러난 터라 이인영 장관의 첫걸음은 비장할 수밖에 없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20년 7월27일 오전 11시45분 임명을 재가하자, 이인영 장관은 취임식·취임사도 없이 업무를 시작했다.
이 장관은 취임사 대신 한 문장짜리 문자 메시지를 통일부 직원들한테 보냈다. “전략적 행보로 대담한 변화를 만들고, 남북의 시간에 통일부가 중심이 됩시다.” 이 장관은 다음날엔 통일부 간부들을 불러모아 ‘자유토론’을 벌이며 “기다림의 자세를 넘어서, 차고 나아가는 적극적인 자세”를 주문했다. 취임 초 이 장관은 “아주 대담한 변화”와 “창의적 발상”을 입에 달고 살았다.
그러나 북쪽은 깊은 ‘침묵’으로 그를 대했다. 그 침묵이 탐색인지 주시인지 외면인지 무시인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이 장관의 곡진한 대북 제안과 호소는 번번이 메아리 없는 외침이 되어 허공에 흩어졌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 장관의 ‘말’이 조심스러워졌다.
그래서 이 장관한테 물어봤다. 여의도에서 국회의원으로 활동할 때에 비해, 광화문 정부서울청사 7층에서 통일부 장관으로 일하며 남북관계를 대하는 태도나 인식에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 지난해 11월24일 신문으로는 처음으로 이 장관을 따로 인터뷰하는 자리에서다.
이 장관은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생각을 갈무리하느라 중간중간 숨을 고르는 특유의 조심스런 말투로 답변을 이어갔다. “음…(고민하는 표정)… 국회의원 할 때는 ‘남북관계가 왜 이렇게 더디지? (정부가 일을) 왜 이렇게 답답하게 하지?’라는 생각을 좀 했다.”
2020년 7월3일 청와대는 ”이인영 통일부 장관 후보자”를 발표하며 이렇게 소개했다. “민주화 운동가 출신의 4선 국회의원으로 더불어민주당 남북관계발전 및 통일위원회 위원장을 맡는 등 남북관계에 대한 풍부한 경험과 전문성을 갖추고 있습니다.” 사정이 이러하니 ‘집권당 원내대표 출신의 4선 의원 이인영’이 통일부 장관으로서 자신감에 넘치는 태도로 첫걸음을 내딛은 게 이상할 건 없다.
하지만 통일부 장관이 전문성이 있고 자신감에 넘친다고 남북관계가 순풍을 탄다면, 우리가 분단 70년 세월을 이리 비참하게 살아오지는 않았을 터. ‘북한을 상대로는 그 어떤 장담이나 단정적 예측을 삼가라’라는 경구가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이 장관은 장관이 된 뒤의 ‘깨달음’을 이렇게 표현했다. “막상 (통일부 장관으로) 와서 보니까 생각보다 쉬운 게 아니더라. 꽤 어렵다는 생각도 한다. 평양의 응답이 없으니까….”
이 장관의 고백처럼, 북이 침묵으로 일관하니 되는 일이 없다. 통일부 차원의 당국 간 대화는커녕 민간 차원의 교류협력도 끊긴 지 오래다. 대북 제재와 코로나19 방역이라는 이중 장애물에 막혀 숨구멍조차 내지 못하는 형편이다. 심지어 남북 당국회담에서 통일부 장관의 북쪽 상대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위원장이 누군지, 있기는 한 건지조차 이 장관은 아직 알지 못한다. 조평통 위원장이던 리선권이 2020년 1월 외무상으로 자리를 옮긴 뒤 새 조평통 위원장이 임명됐다는 소식은 아직도 없다.
하지만 세상에 나쁘기만한 일은 없다. 북의 침묵도 마찬가지일 터. 북은 정세 흐름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자기네가 모욕을 당했다고 여기면 당국 공식 발표문조차 상대에 대한 욕설로 도배를 하는 민망한 의사 표현 습관을 갖고 있다. 지난해 12월5일 강경화 당시 외교부 장관이 코로나19 확진자가 한 명도 없다는 북한 당국의 공식 발표를 “믿기 어렵다”고 국제회의에서 공개적으로 언급한 사실을 두고, 김여정 조선노동당 중앙위 부부장이 개인 담화(2020년 12월8일)를 내어 “얼어붙은 북남관계에 더더욱 스산한 냉기를 불어오고 싶어 몸살을 앓는 모양”이라며 “강경화의 망언(을) 두고두고 기억할 것”이라고 실명 저격한 게 최근의 한 사례다.
그런데 이인영 장관은 지난해 7월 취임 뒤 지금껏 단 한번도 북한 당국이나 북쪽 ‘3대 주요 매체’한테 실명 저격을 당하지 않았다. 최소한 북쪽이 이 장관을 “상종 못할 종자”로 여기진 않는다는 방증이다. 이 장관을 향한 북의 오랜 침묵은 아마도 주시의 다른 얼굴일 터인데, 어쩌면 얼마간의 호감이 섞여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2020년 9월16일 경기도 파주시 판문점을 방문한 이인영 통일부 장관이 공동경비구역 군사분계선 일대를 둘러보고 있다.
올해 들어 이 장관은 3월로 예정된 한·미 연합군사연습과 관련한 공개 발언을 자주 한다. 지난 1일 <티비에스>(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나와선 “통일부 장관으로서 군사훈련이 많은 것보다 평화회담이 많은 것을 당연히 원한다”고 했다. 그러곤 “정치인의 입장”이라는 안전장치를 달아 “군사훈련이 연기돼 남북관계가 개선되는 데로 물꼬를 틀 수 있다면 그 방향을 선택하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되겠다고 생각한다”고 속내를 드러냈다. 표현은 조심스럽지만, 한·미 군사훈련 연기 필요성을 강하게 제기한 셈이다.
이 장관의 이런 행보는 조선노동당 8차 대회(1월5~12일)와 조 바이든 미국 새 행정부 출범(1월20일)을 계기로, 2019년 베트남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장기 교착 국면을 벗어나지 못하던 “한반도 정세가 변곡점에 진입했다”(1월25일 통일부 출입기자 간담회)는 인식을 바탕에 깔고 있다.
좀더 구체적으로 짚자면,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의 노동당 8차 대회 연설을 염두에 둔 남북관계 재개 길닦기의 일환이다. 김정은 총비서는 1월5~7일 당대회 연설에서 “파국에 처한 북남관계를 수습하고 개선하기 위한 적극적인 대책을 강구해나가야 한다”며 “미국과의 합동군사연습 중지”를 남쪽에 촉구했다. 이 장관은 특히 김정은 총비서가 “3년 전 봄날”과 “평화와 번영의 새 출발점”을 굳이 입에 올린 사실에 기대를 거는 분위기다. 알다시피, ‘3년 전 봄날’엔 문재인 대통령과 김 총비서의 첫 정상회담이 판문점에서 열렸다(2018년 4월27일).
이 장관의 바람대로 3월 한·미 군사훈련을 대폭 축소하거나 중단한다고 북쪽이 바로 남북 당국회담 등 관계 재개에 적극 나선다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한·미 훈련이 예정대로 진행되면 남북 당국 관계의 교착 국면이 더 길어질 위험이 커지는 건 불문가지다.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갈등이 급속도로 높아질 위험도 있다.
자연계에선 때가 되면 얼음장 밑으로 물이 흐르고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겠지만, 인간계엔 사람의 애씀 없이 ‘봄’이 오지 않는 게 세상 이치다. 이인영 장관의 곡진한 애씀은 봄바람과 함께 꽃을 피울 수 있을까? 하여 이 장관은 다시 웃을 수 있을까? 이제훈 기자
중국 국가라디오텔레비전총국(광전총국)은 12일 BBC가 콘텐츠 규정을 심각하게 위반해 이같이 결정했다고 관영 신화통신이 전했다.
광전총국은 이날 자정에 발표한 성명에서 BBC가 보도 내용이 진실하고 공정해야 한다는 규칙을 어겼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1년간 BBC 월드 뉴스의 방송 면허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못 박았다.
BBC는 중국 정부가 신장(新疆)에서 운영하는 재교육 수용소에서 강제노동과 성폭행이 발생해왔다는 의혹을 보도해왔다.
이를 두고 중국 외교부는 "불공정하고, 객관적이지 않고, 무책임한 보도", "가짜 뉴스"라며 BBC를 향해 맹공을 퍼부어왔다.
도미닉 라브 영국 외교부 장관은 즉각 트위터에 글을 올려 "언론의 자유를 축소하는 용납할 수 없는 결정"이라며 "전 세계의 눈에는 중국의 평판을 손상하는 조치로 비칠 뿐"이라고 비판했다.
BBC 대변인은 "BBC는 전 세계에 공정하고 공평한 기사를 전달하고 있다"며 중국 당국의 결정이 "실망스럽다"는 입장을 내놨다고 AFP 통신이 보도했다.
중국이 영국 공영 BBC 월드 뉴스의 국내 방영을 금지한 것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영국에 보복하겠다는 조치로도 풀이된다.
영국 방송·통신 규제당국은 지난 4일 2019년 런던에 유럽본부를 개소한 중국국제텔레비전(CGTN)이 중국 공산당의 통제 아래 운영되고 있다며 방송 면허를 취소했다.
오프콤(Ofcom)은 자체 조사 결과 CGTN이 독자적인 편집권 없이 공산당 지휘에 따라 방송을 내보내 국내법을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미-중 정상 통화한 다음 날… 미 "BBC 방영금지 강력규탄"
국무부 "중, 가장 억압적인 정보공간…해외선 허위정보 뿌려"
WHO 코로나19 조사 불신·미얀마 규탄 촉구 압박행보 이어가
네드 프라이스 미국 국무부 대변인이 언론 브리핑에서 발언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 정상 간 통화가 이뤄진 지 하루 만에 미국이 전방위적 중국 때리기에 나섰다.
AP통신과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네드 프라이스 미 국무부 대변인은 11일 언론 브리핑에서 중국을 겨냥한 압박성 발언을 쏟아냈다.
프라이스 대변인은 "BBC월드 뉴스 방송을 금지한 중국의 결정을 강력하게 규탄한다"라면서 "중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통제받고, 억압적이며, 자유롭지 못한 정보공간으로 남아 있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중국이 국내에선 미디어와 플랫폼의 자유로운 영업을 막으면서, 자국 지도자들이 해외에선 열린 미디어 환경을 활용해 허위 정보를 퍼트린다는 점은 우려스럽다"고 덧붙였다.
이는 중국 국가라디오텔레비전총국(광전총국)이 이날 영국 BBC월드 뉴스의 국내 방영을 금지한 데 대한 비판이다.
BBC는 중국 신장(新疆) 지역 내 소수민족을 겨냥한 당국의 인권탄압 의혹을 보도해왔고, 이에 중국 정부는 "가짜 뉴스"라며 맹비난했다.
중국의 이번 조치는 영국의 중국국제텔레비전(CGTN) 방송면허 취소처분에 대한 보복으로도 해석된다. 영국 규제당국은 지난 4일 2019년 런던에 유럽본부를 개소한 CGTN이 중국 공산당의 통제 아래 운영된다며 이같이 조치했다.
앞서 도미닉 라브 영국 외교부 장관은 중국의 BBC 방송 금지 이후 즉각 트위터 글을 통해 "언론 자유를 축소하는 용납할 수 없는 결정"이라며 "전 세계의 눈에는 중국의 평판을 손상하는 조치로 비칠 뿐"이라고 비판했다.
미 국무부 차원에서 영국의 주장에 가세하며 언론의 자유 문제를 고리로 중국을 향해 포문을 연 것이다.
AP통신은 프라이스 대변인의 발언에 대해 "중국의 BBC 방송 금지를 두고 미국이 영국의 편을 들었다"라고 평가했다.
이날 프라이스 대변인은 세계보건기구(WHO)의 코로나19 기원 조사 결과를 독자적으로 검토하겠다는 미 정부의 기존 입장도 재차 강조했다.
그는 "WHO 조사팀은 코로나19의 기원에 대한 철저한 과학 조사를 벌이는 데 필요한 완전한 투명성과 접근성을 보장받아야 한다"라면서 "조사 결과를 우리 스스로 검토하고 완전한 데이터를 보기 전까진 판단을 유보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WHO 전문가들은 중국 우한을 찾아 조사했지만 코로나19 기원을 찾지 못했다고 밝혔으며, 미국은 중국이 조사팀에 완전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아 결과를 신뢰할 수 없다는 입장을 냈다.
프라이스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중국에 미얀마 쿠데타 사태를 규탄하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통화한 지 하루 만에 나온 국무부의 이번 발언은 바이든 정부가 출범 이후 지속해서 보여온 대중국 견제 행보의 연장선으로 풀이된다.
바이든 대통령은 전날 두 시간에 걸친 마라톤 통화에서도 무역과 인권 문제 등 여러 분야에서 시 주석과 거친 설전을 벌였고, 일부 상원 의원들에게 통화 상황을 설명하면서 "우리가 움직이지 않으면 그들(중국)이 우리의 점심을 먹어 치워 버릴 것"이라는 언급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에서 점심을 먹어 치워 버린다는 말은 누군가를 이기거나 물리친다는 뜻을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