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전두환 회고록’ 북한군 개입설·헬기 사격 허위주장 인정 5·18재단 “역사 왜곡 불법행위 확인”… 광주시 “정의 반드시 승리”
▲2021년 8월 서울 연희동 집을 나서고 있는 전두환씨. 사진=민중의소리
전두환씨 회고록이 5·18 민주화운동의 역사를 왜곡했다는 대법원 판결이 내려진 것과 관련해 “대법원 판결을 계기로 역사 왜곡이 중단돼야 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대법원은 지난달에도 북한군 개입설을 주장한 지만원씨가 5·18 관련 단체와 유공자들에게 9000만 원의 손해배상금을 지불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대법원은 지난 12일 오전 ‘전두환 회고록’이 5·18 민주화운동 역사를 왜곡해 5·18 단체 등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는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전씨가 회고록을 출간한 지 9년 만에 나온 확정판결이다. 이순자씨와 전씨의 아들 전재국씨는 5·18기념재단과 5·18 공법단체(유족회·부상자회·공로자회)에 각각 1500만 원, 조비오 신부의 조카 조영대 신부에게 1000만 원 등 총 7000만 원을 배상해야 한다. 회고록 내 문제가 된 표현을 삭제하지 않는 한 출판·배포는 허용되지 않는다.
이와 관련 5·18기념재단은 지난 12일 보도자료에서 “이번 판결은 5·18 왜곡이 단순한 견해 표명의 범주를 넘어 법적 책임을 수반하는 불법행위임을 다시 한번 확인한 것”이라면서 “특히 대법원은 법인 역시 사회적 명성과 신용을 보호받는 명예의 주체가 될 수 있음을 명확히 했다”고 설명했다.
피해자 측 법률대리를 맡은 김정호 변호사(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광주전남지부 5·18특위위원장)는 “회고록 출간 이후 9년 만에 내려진 이번 판결은 지연된 정의라는 아쉬움이 있다”면서도 “결국 진실이 확인된 사필귀정의 판단이다. 5·18 진상규명은 이념이나 정파의 문제가 아니라 민주주의와 상식, 역사 정의를 바로 세우는 일이며 판결을 계기로 북한군 개입설 등 근거 없는 왜곡과 폄훼가 우리 사회에서 종식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박강배 5·18기념재단 상임이사는 “5·18 왜곡이 단순한 ‘의견’이 아니라 객관적 사실에 반하는 ‘허위사실’이며, 그에 대한 법적 책임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점을 명확히 한 선언적 의미를 갖는다”며 “향후 유사한 역사 왜곡 사건에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이어 박 이사는 “5·18은 특정 지역이나 세대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역사”라면서 “반복되어 온 역사 왜곡을 멈추는 분기점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광주광역시도 지난 12일 입장문에서 “‘전두환 회고록’은 표현의 자유를 악용해 역사 조작을 시도했다는 사법부의 엄중한 판단”이라며 “역사의 진실은 꺾이지 않으며, 정의는 반드시 승리한다”고 밝혔다.
이번 판결의 쟁점은 △회고록 내 5·18 민주화운동 관련 표현의 허위사실 인정 여부 △조영대 신부의 손해배상 청구권 인정 여부 △전두환씨의 ‘위법성 조각 사유’ 인정 여부였다. 전씨는 회고록에서 5·18 민주화운동 당시 북한군이 개입했으며, 계엄군의 헬기 사격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또 조비오 신부에 대해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표현했다.
대법원은 전두환씨의 5·18 민주화운동 관련 주장은 단순한 의견 표명을 넘어 구체적인 사실적시에 해당하며, 객관적 자료와 기존 판결을 고려할 때 허위인 것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또 조비오 신부 관련 표현은 모욕적·경멸적 인신공격에 해당한다고 판단했으며, 손해배상·출판금지 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는 유족 범위가 배우자·직계존비속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대법원은 지난달 23일 5·18 민주화운동 당시 북한 특수부대가 개입했다는 허위사실을 유포한 지만원씨가 5·18 관련 단체와 유공자들에게 9000만 원의 손해배상금을 지불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지씨는 여전히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북한군 개입설 주장을 이어가고 있다. < 윤수현 기자 >
판결을 신성불가침으로 여기는 시각에서 비롯 40년간의 모순적 헌법소원 운용 시정하는 것 헌법 효력이 재판에도 미쳐야 법치주의 실현
지난 2월 11일 재판소원 도입을 위한 헌법재판소법 일부개정법률안이 법사위를 통과하였다. 이에 대하여 국민의힘 법사위 위원들은 재판소원이 제4심제의 도입이라느니, 국민을 소송지옥으로 빠뜨릴 것이라느니 국민을 호도하는 무논리적 주장을 남발하고 있고, 또한 일부 보수 언론들도 이러한 주장들을 기계적 받아쓰기 식으로 반대논리를 편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과연 재판소원을 도입하는 것은 4심제를 도입하는 것이어서 헌법에 위반되는 것인가?
현행 87년 헌법은 헌정사상 처음으로 여·야합의에 의하여 헌법을 개정하면서 헌법재판소제도를 도입하였고, 지금까지 약 40년 가까이 헌법재판소는 대한민국의 입헌주의와 법치주의를 확립하는 데 가장 커다란 공을 세웠을 뿐만 아니라, 국민으로부터 가장 신뢰받는 국가기관이 되었다.
국민의힘 당이나 법원에서는 마치 헌법재판소가 재판에 대하여 헌법소원심판을 하게 되면 제4심제를 도입하는 것이며, 법원의 사법권을 침해하기라도 한다는 듯이 헌법상 권력분립원칙에 위반된다고 하는 반헌법적 궤변을 주장하고 있다.
법원 재판에 대해 헌법소원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한 '재판소원법'이 11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1소위원회를 통과했다. 사진은 12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의 모습. 2026.2.12 연합
현행 헌법은 입법권은 국회에(헌법 제40조), 행정권은 대통령을 수반으로 하는 정부에(헌법 제66조 제4항), 사법권은 법원에 속한다(헌법 제101조)고 규정하고 있지만, 동시에 위헌법률심판, 탄핵심판, 정당해산심판, 권한쟁의심판, 법률이 정하는 헌법소원심판과 같이 헌법적 사법권은 헌법재판소가 관장하도록 규정하고 있다(헌법 제111조 제1항). 다시 말해서 일반 사법권은 법원에, 헌법적 사법권은 헌법재판소에 분장을 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공권력의 행사 또는 불행사에 의해서 기본권을 침해받은 자가 헌법재판소에 제기할 수 있는 헌법소원의 종류에 대해서는 일단 입법자에게 일임하는 차원에서 “법률이 정하는 헌법소원”(헌법 제111조 제1항 제5호)이라고 규정한 것이고, 이에 따라 국회는 헌법재판소법을 제정하면서 법원의 극렬한 저항에 부딪쳐 결국 재판에 대한 헌법소원은 제외한 나머지 공권력 행사 또는 불행사에 대해서만 헌법소원의 대상으로 삼아 지금까지 운용해 왔던 것이다.
그런데 이 헌재법 제68조 제1항 단서는 “다만 다른 법률에 구제절차가 있는 경우에는 그 절차를 모두 거친 후가 아니면 청구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이 단서를 소위 ‘보충성의 원칙’ 조항이라고 부른다. 다시 말해서 행정소송 등과 같이 다른 법적 구제절차가 있는 경우에는 그 절차를 반드시 거친 후에 비로소 헌법소원을 하지 않으면 적법하지 아니하여 각하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공권력행사에 대한 법적 구제절차가 과연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행정소송이다. 행정소송은 재판이기 때문에, 공권력의 행사 또는 불행사에 의하여 권리침해를 받은 자는 일단 행정소송을 제기하지 않으면 원칙적으로 처분에 대하여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만일 이 행정소송을 제기하였다가 승소한 경우에는 굳이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할 필요가 없게 될 것이고, 패소한 경우에 헌법소원을 해야 하는데, 이제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려고 하니, 바로 이 “재판을 제외하고는”이라고 하는 재판소원배제조항에 걸려서 부적법한 헌법소원청구가 되는 것이다. 이로 인하여 행정소송을 거친 원래의 처분들도 대부분 헌법소원대상에서 제외되는 뜻하지 않은 결과가 야기되어 왔고, 이 재판소원배제와 소위 보충성의 원칙의 상승작용으로 인하여 국민은 재판은 물론 처분에 대해서도 헌법소원으로 더이상 다툴 수 없게 되는 불합리하고도 위헌적인 권리구제의 사각지대가 계속 잔존하여 왔던 것이다.
결국 재판으로 인하여 아무리 억울하게 기본권침해를 당하였다 하더라도 이 재판은 물론, 원래의 처분에 대해서조차 더 이상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할 수 없게 되는 모순적 헌법소원의 운용이 지난 40년 가까이 지속되어 왔었던 것이 재판의 실제였다.
29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심판정에서 열린 변호인 접견불허 위헌확인 헌법소원 선고기일에 김상환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헌법재판관들이 착석해있다. 2026.1.29. 연합
그런데 법원의 재판 역시 공권력의 행사 중 하나이다. 입법권의 행사인 법률도 헌법소원의 대상이 되고 있는 마당에 무슨 신성불가침의 공권력행사라고 법원의 재판이 헌법소원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말인가?
재판소원제도를 잘 운용하고 있는 독일과 스페인을 비롯한 수 많은 나라들은 다 뭐라는 말인가? 우리의 경우 헌법 제111조 제1항 제5호는 헌법소원의 대상을 분명히 입법자에게 위임을 하였고, 이번 내란사태를 계기로 사법부에 대해서도 재갈을 물려야 하겠다고 하는 입법자의 명백한 의지로 이번에 바로 이 “재판을 제외하고는”이라고 하는 재판소원배제조항을 삭제하는 개정을 단행한 것인데 늦었지만 천만 다행이다.
지금까지 국민의 기본권을 아무리 침해하는 재판을 하더라도 마치 신성불가침의 결정인 것처럼 그 어떠한 통제도 받지 않아 왔던 공권력 행사가 바로 재판이었다. 여기에다가 박근혜 정부하에서 그 민낯이 드러났었던 사법농단과 제왕적 대법원장체제 하에서 법관 줄세우기, 그리고 경향 교류에 의한 정기 법원인사, 소위 ‘돌출판결’을 하는 ‘승포판’(승진을 포기한 판사)에 대한 인사위원회와 징계위원회의 소집·제재 등 대법원장을 비롯한 법원행정처의 직권남용과 위헌적 행태에 대해서 아직까지 제대로 된 법원의 유죄판결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이다.
이러한 법원의 위계질서와 관료주의 하에서 법관은 물론 법관 출신들은 하나같이 재판소원은 4심제를 도입하는 것이라며 위헌이라고 하는 논리를 앵무새처럼 반복하고 있을 뿐인 것인데, 사실은 재판소원은 4심제가 아니며 오히려 헌법은 사법살인 등 수많은 인권침해를 자행해 왔던 법원 재판에 대하여 헌법소원의 대상으로 삼을 것을 엄중하게 명령하고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법부 구성원들과 또한 국민의 기본권보호보다는 사법부의 조직 이기주의를 대변하고 있는 국민의힘 의원들이나 일부 보수언론들은 더 이상 헌법논리를 호도하고 궤변을 주장하지 말고, 무엇이 국민의 기본권을 진정으로 보호할 수 있는 제도인지를 헌법조문을 직접 확인하면서 똑똑히 주장하기를 바란다. 헌법조문을 한번만 확인하면 바로 알 수 있는 사실을 호도하면서 그때그때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려 해서는 안 될 것이다.
국회는 이번에야 말로 재판소원제도를 반드시 도입하여 87년 헌법 하에서 법치주의의 꽃으로 우뚝 섰을 뿐만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가장 많이 받고 있는 헌법재판소의 통제하에 법원을 비롯한 모든 공권력행사를 반드시 포함시키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법관이 하늘 아래 자신보다 높은 기관은 없다고 하는 오만에 빠지지 않고 겸손히 국민의 기본권과 인권을 존중하며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양심에 따른 재판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사법권의 진정한 독립이며, 헌법적 사법부에 의한 일반적 사법부에 대한 통제가 될 것이고 그렇게 될 때 헌법의 효력이 재판에까지 제대로 미치는 진정한 법치주의가 수립되게 될 것이다. < 방승주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아랍, 하마스 무장해제·이스라엘 철군 일정 요구 사우디 "그 이전엔 가자 재건 자금 못 대" 인도네시아, 가자 ISF에 병력 파견 약속
옵저버 한국 외무부 "전투 임무엔 참여하지 않을 것" 유럽국 대다수 불참…한국은 "검토 중"
이스라엘, 휴전 합의 위반해 가자 공습 휴전 이후만도 팔 사망자 600명 넘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주도하는 '평화위원회'(BoP)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평화 방안을 논의하고자 19일 워싱턴D.C에서 첫 회의를 개최한다.
작년 10월 카타르, 이집트와 함께 이스라엘과 하마스를 중재해 자신의 가자 지구 평화 구상 1단계인 휴전 합의와 인질·수감자 교환을 끌어낸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회의에서 폐허가 된 가자의 재건이란 평화 구상 2단계 실행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지만, 상황은 전혀 녹록지 않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2일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 연례 회의를 계기로 '평화위원회'(BoP) 출범식을 갖고 연설하고 있다. 2026. 01. 22 [UPI=연합]
'유엔 대체' 의도 지닌 '트럼프 평화위'
유럽국 대다수 불참…한국은 "검토 중"
가장 큰 문제는 이 '평화위원회'의 불투명한 정체다. 트럼프는 당초 이 위원회를 가자 전쟁 종식과 재건이 완료될 때까지 가자를 통치할 최고 의사 결정 기구라고 밝혔지만, 실제론 가자 뿐 아니라 모든 국제 분쟁에 관여하는 사실상의 유엔 대체 기구로 변질시키고 있어서다. 트럼프가 지난달 각국 정상들에게 보낸 가입 초청장에 첨부된 평화위 헌장엔 '가자'란 표현이 없었다. 또한 본인에게 '종신 의장직'을 부여해 이 기구를 장악하겠다는 의도를 분명히 했다.
그러자 예전 같으면 누구보다 발 벗고 나섰어야 할 서방 진영 국가 대다수가 참여를 거부하거나 관망하고 있는 상태다. 영국, 프랑스, 독일, 폴란드, 교황청이 불참을 통보한 대표적 유럽 국가다.
1월 22일 스위스 다보스에서 출범한 '평화위원회'에는 지금까지 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UAE)·카타르·이집트·요르단·바레인·튀르키예·파키스탄·카자흐스탄·인도네시아·베트남·몽골·우즈베키스탄·아르헨티나·파라과이·헝가리·불가리아·알바니아·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코소보, 그리고 이스라엘 등 20여 개국이 참여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지난달 20일 미국으로부터 초청장을 받은 사실을 공개한 뒤 외교부 당국자의 말을 빌어 어떤 국가들이 참여할지 등을 종합적으로 봐야 판단할 수 있을듯하다.…시간을 가지고 검토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재명 정부는 회의 하루 전인 18일까지 참여 여부에 대한 추가적 입장 표명은 하지 않고 있다. 일본은 첫 회의에 가입은 보류한 채 가자재건지원 담당 대사를 파견하기로 했다.
이른바 '트럼프 평화위'는 가자 지구 재건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 개혁 프로그램 완료 때까지 가자 주민에게 일상의 서비스와 행정을 제공하는 팔레스타인 기술관료 중심의 실무기구인 가자행정국가위원회(NCAG)를 감독한다.
영국 총리 키어 스타머, 독일 총리 프리드리히 메르츠, 프랑스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이 8일 영국 총리 관저인 런던 다우닝가 10번지에서 헤어지고 있다. 2025. 12. 08 [EPA=연합]
아랍권, 명확한 무장해제·철군 일정 요구 사우디 "그 이전엔 가자 재건 자금 못 대"
다음은 앞으로 이 위원회가 풀어야 할 과제의 방대함과 복잡성이다. 가자 재건과 안정화를 위해 하마스의 무장해제, 이스라엘의 철군, 국제안정화군(ISF) 병력 배치와 팔레스타인 경찰력 도입 문제 등이 서로 연계돼 고차방정식을 풀어야 한다. 여기에 예민한 팔레스타인 국가 독립 문제도 얽혀 있다.
사실상 트럼프의 우격다짐에 밀려 아랍과 이슬람권 국가들이 대거 동참했지만 하마스의 무장해제 합의와 가자에서 이스라엘의 완전한 철군 일정 없이는 국제안정화군에 병력 파견이나 가자 재건에 자금 투입을 하지 않겠다는 분위기다. ISF는 가자지구에 안보나 치안 공백이 없도록 접경지대를 지키고 팔레스타인 경찰력 강화를 돕는다는 취지에서 창설되는 다국적군이다.
더타임스오브이스라엘에 따르면, 사우디의 파이살 빈 파르한 알 사우드 외무장관은 13일 뮌헨안보회의 연설을 통해 "우리는 분쟁의 진짜 종식을 봐야 한다. 이스라엘이 언제 철수할지, 하마스는 언제 무장해제 할지, 모두가 20개 항 계획(트럼프 평화 구상)의 모든 항목을 언제 준수할지에 대한 명확성이 필요하다"라면서 사우디는 그 이전에 가자 재건 자금을 댈 수 없다고 말했다.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에서 이스라엘 군 차량 행렬이 지나가고 있다. 2024. 11. 09 [로이터=연합]
인도네시아, 가자 ISF에 병력 파견 약속 외무부 "전투 임무엔 참여하지 않을 것"
앞서 트럼프는 15일 본인의 트루스 소셜을 통해 평화위에 참여하는 국가들이 가자의 인도적 지원과 재건을 위해 50억 달러(약 7조2000억 원) 지원을 약속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는 세계은행, 유럽연합(EU), 유엔이 작년 2월에 공동 발표한 보고서가 가자의 완전한 회복과 재건에 500억 달러 이상이 필요하다고 추산했던 것에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연합뉴스는 전했다.
가자 국제안정화군 병력 파견도 간단치 않은 문제다. 세계 최대 무슬림 국가인 인도네시아가 맨 먼저 나섰다. 이르면 4월부터 시작해 6월까지 다양한 병과로 구성된 최대 8000명 규모의 여단 병력을 보내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도네시아 외무부는 성명을 통해 가자 파견 병력은 하마스 등 현지 무장단체들과 충돌로 이어질 수 있는 전투 임무에는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외무부는 "민간인 보호, 인도적 및 보건 지원, 재건, 그리고 팔레스타인 경찰의 역량 강화 및 훈련에 집중될 것"이라면서 팔 자치정부의 승인도 요청했다.
결국 이번 회의에서 트럼프가 검증이 가능한 하마스의 무장해제 방안과 명문화된 이스라엘의 철군 일정에 관한 청사진을 동시에 제시하지 못하면 '트럼프 평화위'는 유명무실해질 수 있다.
17일 가자 남부 칸 유니스 해변에 팔레스타인 예술가 야지드 아부 자라드가 '환영한다, 라마단'이라는 문구를 모래에 새겨 넣었다. 아부 자라드는 전쟁으로 인해 가자 북부 베이트 라히아에 있는 집을 떠나 남부로 피난했다.2026. 02. 17 [EPA=연합
이스라엘, 휴전 위반해 가자 공습, 드론 공격 작년 10월 휴전 이후 팔 사망자 600명 넘어
작년 10월 휴전에도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 정권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것도 큰 문제다. 휴전 이후 줄기는 했지만, 이스라엘은 휴전을 위반해 거의 매일 공습과 드론 공격을 가했으며, 휴전 이후 사망자만 600명이 넘었다. 인도적 지원의 선택적 허용과 접경지대 검문소 통제 등을 통해 가자 주민을 여전히 고통 속에 몰아넣고 있다. 이스라엘은 또한 팔 자치정부가 관할하는 요르단강 서안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하고 정착민들의 폭력을 방조하면서 서안 합병 작업을 추진하는 모양새다. 트럼프가 이런 이스라엘의 휴전 위반과 서안 합병 추진 행위들에 눈감고 계속 이스라엘을 두둔한다면 아랍과 이슬람권 국가들은 평화위에서 탈퇴하라는 국내 비판 여론의 압박에 노출될 공산이 크다.
하마스는 현재 이스라엘의 봉쇄와 공격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저항할 권리가 있다며 완전한 무장해제를 거부하고 있다. 그러나 권총 등은 보유하되 중화기는 해체할 수 있음을 내비치고 있다. 미국 일부에선 하마스 요원들에게 무기 반납 대가로 보상금과 면죄부를 주는 아이디어를 내놓고 있다. 그러나 네타냐후 정권은 하마스의 완전한 무장해제를 거듭 요구하고, 60일간 무장해제를 하지 않으면 군사 공격을 재개하겠다고 압박하고 있다. 트럼프도 15일 본인의 트루스 소셜을 통해 "하마스가 완전하고 즉각적인 무장해제 약속을 지키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썼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15일 예루살렘에서 열린 '주요 미국 유대인 기구 의장 협의회' 개막식에서 연설하고 있다. 2026. 02. 15 [UPI=연합]
"트럼프, 평화 구상 2단계 시작하려면, 이스라엘 네타냐후의 팔도 비틀어야"
싱가포르라자트남 국제학대학원 선임 연구원인 제임스 도르시 박사는 16일 자 유라시아리뷰 기고에서 "지금까지 트럼프는 하마스가 무장해제에 실패하면 끔찍한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위협하며 하마스를 압박해왔지만, 이스라엘의 휴전 위반에는 눈을 감아왔다"면서 "평화 구상의 2단계를 시작하려면 트럼프는 하마스뿐 아니라 네타냐후의 팔도 비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도르시는 "이미 많은 이들은 이 위원회를 팔레스타인의 이익이 아닌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익을 대변하는 수단으로 보고 있다"며 "이스라엘이 가자 공격을 재개한다면 아랍과 무슬림 다수의 국가들은 평화위에서 탈퇴하라는 대중적 압박을 받게 될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 이유 기자 >
1968년 멘토인 킹 목사 암살 옆에서 지켜봐 흑인들 삶 개선, 정치적으로 조직하는 데 앞장 1984년과 1988년 민주당 대선 후보 지명 나서
시리아, 쿠바 등에 억류된 인질 석방에도 보탬 '흑인 목숨도 소중' 시위에도, 경찰을 강력 규탄 트럼프와 민주당 전직 대통령들 일제히 애도
마틴 루터 킹(오른쪽 두 번째)이 암살되기 하루 전인 1968년 4월 3일(현지시간) 멤피스 호텔 발코니에 호사 윌리엄스(왼쪽), 제시 잭슨(왼쪽 두 번째), 랄프 앨버너시와 함께 서 있다. AP 자료사진
미국 흑인 민권 운동에 앞장섰던 제시 잭슨 목사가 8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유족은 17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고인이 이날 아침 가족들에 둘러싸인 채 평화롭게 눈을 감았다고 전하며 "우리 아버지는 우리 가족뿐만 아니라 억압 받고 목소리 없는 이들, 그리고 전 세계에서 소외된 이들을 섬기는 리더였다"고 안타까워했다.
제시 잭슨 목사. 뉴욕타임스 2월 17일
잭슨 목사는 1960년대 마틴 루터 킹 목사와 함께 민권을 위해 싸웠고, 1984년과 1988년 두 차례나 민주당 대선 후보 지명 경쟁에 뛰어들었다. 앤서니 저커 BBC 기자는 고인이 킹 목사의 애제자로서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삶을 정치적으로 조직하고 개선하는 데 힘쓰는 일로 경력을 쌓았으며, 두 차례의 백악관 선거운동 기간 동안 전국적인 지도자가 됐다고 적었다.
잭슨 목사가 1984년 첫 대선 유세 당시 뉴올리언스의 루이지애나 슈퍼돔에서 흑인 교회 지도자들을 대상으로 연설하고 있다. 그는 그해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나의 지지층은 절망에 빠진 사람들, 저주받은 사람들, 상속권을 박탈당한 사람들, 존중받지 못하는 사람들, 멸시받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뉴욕타임스 2월 17일
그는 2017년 파킨슨씨 병 진단을 받았으며 지난해 11월 퇴행성 진단을 받은 뒤 입원 치료 중이었다.
잭슨 목사는 멘토였던 킹 목사가 주도한 1960년대의 민권 운동 시절부터 흑인과 소외 계층의 권익 향상에 앞장서 왔다. 시카고를 기반으로 1971년 흑인 민권 단체 ‘오퍼레이션 브래드바스켓(푸시)’을, 1984년에는 여성 권익과 성소수자 권익까지 아우르는 단체 ‘전미 레인보우 연합’을 각각 설립했다. 두 단체는 1996년 ‘레인보우푸시연합(RPC)’으로 합병됐다.
잭슨 목사는 2023년 RPC 회장 직에서 물러나기 전까지 50년 이상 단체를 이끌며 인권 운동에 투신했다. 공식 직함은 없었지만 시리아, 쿠바, 이라크, 세르비아 등 해외에 억류된 미국인과 다른 나라 사람의 석방을 이끌어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다.
가장 최근 민권 관련 운동에 참여한 것으로는 2020년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시위를 촉발한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 때 경찰의 가혹 행위를 강력 규탄하기도 했다.재작년에는 위스콘신주 라신을 방문해 젊은이들의 대선 투표 참여를 독려했다. 지난해에는 '타깃'(Target)이 다양성, 형평성, 포용성(DEI) 프로그램을 축소하자 해당 기업 불매운동에 동참했다.
2016년의 제시 잭슨 목사. 연합
본명은 제시 루이스 번스. 1941년 10월 8일 사우스캐롤라이나주 그린빌에서 태어났다. 모친 헬렌 번스는 열여섯 살이었고, 부친 노아 루이스 로빈슨은 프로 권투 선수 출신 유부남이었다. 제시가 두 살 때 헬렌은 찰스 잭슨과 결혼했다. 제시는 열세 살 때까지 조모 매틸다와 함께 살았다. 그러고나서 제시는 찰스 잭슨의 집에 1957년 의붓아들로 입양됐다.
그린빌의 스털링 고등학교에서 잭슨은 마이너리그 야구선수 계약과 빅텐 미식축구 장학금을 받기로 하고 졸업했다. 그는 쿼터백으로 활약하고, 노스캐롤라이나 농업·기술 대학으로 전학가기 전에 일리노이 대학 어배너-섐페인에서 1년을 보냈다. 1964년 사회학 학위를 받고 졸업할 무렵, 동급생 재클린 브라운과 결혼해 다섯 자녀 가운데 첫째를 맞았다.
잭슨은 1966년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열린 남부 기독교 지도자 회의(SCLC)에서 마틴 루터 킹 목사와 함께 했다. 2년 뒤 킹 목사가 암살당하자 그의 뜻을 이어받고자 했다. 뉴욕타임스 2월 17일
대학을 마친 뒤 시카고의 신학교에서 신학 전공들을 시작했고 킹 목사를 지원하는 학생들을 조직했다. 1965년 3월 잭슨은 킹 목사와 함께 역사적인 셀마 몽고메리 행진을 위해 앨라배마주로 여행을 떠났다. 1년 후 그는 남부기독교지도회의를 전담하겠다며 신학교를 그만 뒀다.
1968년 킹 목사가 암살돼 스러졌을 때 그 곁을 지켰다. 당시 함께 한 랄프 앨버너시와 함께 남부기독교지도회의를 누가 이끌지를 놓고 경쟁했다.
인질 석방에 그가 기여한 것을 높이 산 빌 클린턴 대통령은 1997년 잭슨을 아프리카 특별 교섭인으로 임명했다. 일각에서는 잭슨이 세 번째 대선 출마를 포기한 데 대한 보상으로 2000년 대통령 자유 훈장이 수여됐다고 보기도 했다. 2001년 잭슨은 직원의 불륜 행각과 공금 유용 등의 혐의를 인정한 뒤 잠시 남부기독교지도회의를 물러나기도 했다.
오바마의 정책들을 비판하긴 했어도 잭슨은 오바마의 2008년 대선 승리를 이끈 주인공 중 한 명이었다. 오바마 선거의 밤에 잭슨은 무대에 올라 킹 목사와 민권운동을 위한 분투에서 숨진 이들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혀 화제가 됐다.
잭슨 목사는 2008년 11월 4일 밤, 시카고 그랜트 파크에서 군중들과 함께 일리노이주 상원의원 버락 오바마의 대통령 당선이 유력시되는 소식을 축하하며 눈물을 흘렸다. 잭슨 목사는 두 번이나 대통령직에 도전했다. 뉴욕타임스 2월 17일
일간 뉴욕 타임스(NYT)는 언어의 힘과 비범한 에너지, 그리고 야망을 통해 인종적으로 모호했던 시대, 짐 크로우 법이 여전히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있고 흑인의 정치적 권력이 현실보다는 열망에 가까웠던 시대에 도덕적,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물이었다고 평가했다. 고인을 탐탁치 않게 봤던 이들은 그가 킹 목사처럼 되고 싶어 안달했다고 봤다. 자신의 삶을 신화로 만들고 싶어했다는 것이다.
그는 미국 사회의 주변부에 있던 유색인종과 소외 계층을 포용하는 연합체가 이제 전면에 나서서 사회를 변화시킬 것이라는 비전을 설파했다. 미국 사회에 만연한 불평등에 맞서기 위해 적극적인 정부의 지원을 받는 다인종 연합이라는 그의 비전은 민주당 진보 진영의 핵심 사상으로 남아 있으며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같은 단체에 영감을 줬다.
자만심, 카리스마, 언론의 관심을 끌어모으는 능력은 남부기독교지도회의의 다른 구성원들에게 그의 야망에 대한 의심을 불러일으켰고 킹 목사와의 갈등으로까지 이어졌다.
스탠퍼드대 역사학과 클레이본 카슨 교수는 잭슨이 두 시대 사이에 끼어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했다. 즉, 킹 목사처럼 명실상부 영웅적인 인물이 되기에는 너무 늦었고, 버락 오바마처럼 정치 최고위직에서 성공하기에는 너무 일렀다는 것이다. 정치 지도자보다는 도덕적 지도자에 머물 수 밖에 없었다는 뜻이다.
잭슨 목사는 1986년 전두환 정권에 민주화를 촉구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고, 32년 만인 2018년 두 번째로 찾았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트루스소셜에 "나는 대통령이 되기 훨씬 전부터 그를 잘 알았다"며 "그는 강한 개성과 투지, 실용적 지식(street smarts)을 지닌 좋은 사람이었다. 그는 매우 사교적이었으며, 진정으로 사람들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고 적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특히 "제시는 그 이전에도 보기 드문 자연 같은 존재(force of nature)였다"고 칭송했다. 대자연처럼 거스르기 힘든 영향력을 갖춘 인물이었다는 뜻인 것 같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 당선된 것과 관련해 "그(잭슨 목사)는 오바마의 당선에 큰 역할을 했으나, 인정받거나 공로를 인정받지 못했다. 오바마는 제시가 견딜 수 없었던 인물"이라고 했다.
또한 자신이 잭슨 목사에게 여러 도움을 준 것도 소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극좌의 악당과 미치광이들, 모든 민주당원들이 나를 거짓으로 일관되게 인종차별주의자라고 했지만, 나는 항상 제시를 돕는 게 기뻤다"며 "월스트리트 40번지의 트럼프 빌딩에 수년간 그와 그의 레인보우 연합을 위한 사무 공간을 제공했다"고 했다.
민주당 출신 전직 대통령들도 당연히 추모 행렬에 동참했다.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은 엑스(X)에 올린 성명을 통해 "수십년에 걸친 우리의 우정과 협력 속에서 나는 잭슨 목사를 역사가 그를 기억하는 대로 알고 있다"며 "신의 사람이자 국민의 사람, 단호하고 끈질긴, 우리나라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한 일을 두려워하지 않는 분이었다"고 밝혔다.
지난 2024년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맞붙은 카멀라 해리스 전 부통령은 엑스에 젊은 법대생 시절 자신의 차에 '제시 잭슨을 대통령으로'(Jesse Jackson for President)라고 쓰인 스티커를 붙이고 다녔다는 일화를 전했다. 해리스 전 부통령은 "내 경력을 통틀어 그와 함께 협력하며 배울 수 있어 자랑스러웠다. 그리고 올해 1월 함께한 시간에 매우 감사하다"며 "잭슨 목사는 저와 다른 많은 이들에게 이타적 지도자이자 멘토, 친구였다"고 회상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아내) 미셸과 나는 진정한 거인, 잭슨 목사의 별세 소식을 듣고 깊은 슬픔에 잠겼다"며 "그는 두 차례에 걸쳐 역사적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며 내가 이 나라 최고위 직책에 도전하는 캠페인의 토대를 깔았다"고 애도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60년 이상 잭슨 목사는 인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변화 운동을 이끌었다"면서 "우리는 그의 어깨 위에 서 있다"고 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공동으로 낸 성명에서 두 사람이 잭슨 목사와 리틀 록 센트럴 고등학교가 백인 전용에서 흑인 학생을 통합하는 학교로 바뀐 지 20년이 되던 해인 1977년에 처음 만나 거의 50년 간 친구로 지냈다고 돌아봤다.
클린턴 부부는 또 "잭슨 목사는 인간 존엄성을 옹호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더 나은 삶을 살 기회를 창출하는 데 기여했다"며 "더 나은 미국과 더 밝은 미래를 위한 일을 절대 멈추지 않았다. 흑인, 라티노, 아시안, 그리고 저소득 백인 미국인의 문제를 위해 싸웠다"고 평가했다.
< 임병선 기자 >
미국 흑인·인권 운동의 별 제시 잭슨 목사 별세…한국 민주화도 지지
제시 잭슨 목사가 2018년 방한 당시 한겨레와 인터뷰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미국의 저명한 흑인 인권 운동가 제시 잭슨 목사가 17일(현지시각) 세상을 떠났다고 유족이 성명을 통해 발표했다. 향년 84.
유족은 성명에서 잭슨 목사의 부고를 알리며 “아버지는 우리 가족뿐 아니라 전 세계의 억압받고 소외된 이들, 목소리 없는 이들을 섬기는 지도자였다”고 추모했다고 미국 언론들이 전했다. 앞서 잭슨 목사는 2017년 파킨슨병 진단을 받고 투병 중인 사실을 공개한 바 있다.
잭슨 목사는 그의 멘토였던 마틴 루서 킹 목사가 주도한 1960년대 민권 운동 시절부터 미국 흑인과 소외 계층의 권익 향상에 앞장서 왔다. 시카고를 기반으로 활동하며 1971년 흑인 민권 단체 ‘오퍼레이션 푸시'를, 1984년에 여성 권익과 성소수자 권익까지 아우르는 민권 단체 ‘전미 무지개 연합'을 각각 설립했다. 두 단체는 1996년 ‘레인보우푸시연합(RPC)'으로 합쳐져 미국 내 소외계층을 대변하는 조직으로 거듭났다. 잭슨 목사는 2023년 RPC 회장직에서 물러나기 전까지 50년 이상 단체를 이끌며 인권 운동에 투신했다.
인종, 성, 종교를 뛰어넘어 소외된 이들을 결집한 무지개 연합은 미국의 첫 흑인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의 대선 승리를 뒷받침한 토대가 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잭슨 목사는 1984년과 1988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출마해 흑인 유권자들과 백인 자유주의자들의 지지를 끌어내며 선전하기도 했다.
탁월한 연설과 실천으로 인종차별과 사회적 불평등의 해소에 앞장서 온 그는 비공식적인 외교로도 유명했다. 공식적인 직함은 없었지만 그는 시리아, 쿠바, 이라크, 세르비아 등 해외 분쟁지에 억류된 미국인과 타국인들의 석방을 끌어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잭슨 목사는 말년에도 꾸준히 흑인 인권을 위한 목소리를 냈다. 그는 2020년 ‘흑인 생명은 소중하다' 시위를 촉발한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 때 경찰의 가혹 행위를 강력히 규탄하기도 했다.
1986년 방한한 제시 잭슨 목사가 야당 지도자로 가택연금 중이던 김대중 전 대통령과 만나고 있다. 한겨레 자료 사진
한국과 인연도 깊다. 잭슨 목사는 전두환 정권 시절이던 1986년 한국을 방문해 비무장지대(DMZ)를 방문하고 가택연금 상태였던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을 만났다. 그는 김대중 전 대통령을 ‘한국의 넬슨 만델라'(세계적 인권 운동가이던 남아프리카공화국 전 대통령)로 부르며 지지를 표했다. 잭슨 목사는 2018년 두 번째 방한 때는 한국 정치권, 종교계 등과 폭넓게 교류하며 한반도에 평화 메시지를 전했다. < 박민희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