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시간

                               박태겸 목사 (캐나다 동신교회 담임)

 

저는 자의 꿈은 한 번이라도 사슴처럼 마음껏 뛰어 보는 것입니다.                                                                                

말 못하는 자의 꿈은 한 번이라도 사람들 앞에서 찬양을 부르는 것입니다.

광야의 꿈은 샘물이 솟아나는 오아시스를 가지는 것이고, 사막의 꿈은 그곳에 시냇물이 흐르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 꿈은 로뎀하우스의 푸른 동산에서 사슴 가족이 뛰어노는 것입니다.

 

어릴 때 저의 아버지는 사냥을 즐겼습니다.           

참새와 야생 꿩과 노루도 잡아오시고, 가끔 사슴을 잡아 오시기도 했습니다.

 

아버지는 사슴 고기를 정성껏 요리해 가족에게 권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어린 마음에 사슴 고기는 야만적인 음식이라고 생각하며 거절했습니다.

 

세월이 흘러 저는 작년 여름에 무스코카로 이사오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브레이스 브리지’에서 열리는 파머스 마켓에 갔다가 사슴 살라미를 맛보게 되었습니다.  그 맛을 보는 순간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사슴 살라미는 사슴 고기에 소금과 향신료를 더해 건조하고 숙성시킨 훈제 소시지입니다. 지방이 적고 쇠고기와 비슷한 풍미를 가지고 있으며 건강한 ‘고급 천연 무공해 식재료’로 알려져 있습니다. 쫄깃한 식감과 깊은 향은 다른 살라미보다 훨씬 뛰어났고 가격도 더 비쌌습니다.

그때 저는 깨달았습니다. 어릴 적 제가 거절했던 음식이 사실은 ‘귀한 음식’이었다는 것을….

 

저는 매일 아침 뉴욕타임스를 읽습니다.

2026년 2월 10일자 추천 메뉴는 ‘김치 치킨 상추쌈’이었습니다.

김치를 잘게 썰어 닭고기와 함께 볶아 매운맛을 부드럽게 만들고, 상추 위에 쌈장과 고명을 올려 먹는 요리였습니다. 요즘 미국과 유럽에서는 한국 음식이 큰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지금 저는 로뎀하우스의 전면 유리로 된 무스코카 룸에 앉아 있습니다.

 

창밖에서는 사슴 가족이 푸른 잔디를 뜯어 먹고 있습니다.

저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김치 삼겹살 상추쌈’을 먹고 있습니다.

 

요즘 세계 최고의 레스토랑 문화는 자연 속에서 하루 몇 팀만을 초대하여 셰프가 직접 요리를 준비하는 특별한 식사 경험이라고 합니다.

어쩌면 로뎀하우스는 그런 자연 속 식탁을 이미 가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야생화가 피어 있는 들판과 공중을 나는 새들을 바라보며 자연 속에서 식사를 합니다.

 

그 순간 저는 어린 시절 아버지가 하셨던 말을 떠올렸습니다. “언젠가 이런 자연 속에서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살면 좋겠다.”

그때 저는 그 말을 비웃어 넘겼습니다. 그러나 지금 저는 무스코카 ‘브레이스 브릿지’에서 그 꿈을 이루고 살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사슴 고기를 건네며 하시던 말씀이 이곳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당시 저는 아무 말고 하지 않고 아버지의 말씀을 받지 못했습니다. 저의 기준으로 판단하고 그런 일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비웃었습니다.

 

푸른 풀밭의 평화는 은혜로 찾아옵니다. 이런 평화의 동산은 제 힘으로 만든 것이 아닙니다. 사슴이 찾아와 준 것입니다. 하나님이 한국인의 위상을 높여 준 것입니다.

 

저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내주시는 위로이며 치유입니다.

[신앙칼럼] 김진규 장로 "신앙과 조국 통일"

● 교회소식 2026. 4. 3. 12:57 Posted by 시사한매니져

[신앙칼럼]

신앙(信仰) 조국통일(祖國統一)                                                                                  

김진규 장로 (밀알교회)

 

우리는 죄악을 처음 저지르려 할 때 그것을 경고하여 바로잡기는 쉽다. 죄악은 터져 나오는 물줄기 같아서 우리는 죄악에 물들기 전에 그것을 떠나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 결과가 어떻게 될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두 아들과 남편을 잃은 나오미 (룻기1:4)의 경우는 얼마나 쓸쓸하고 비통한 것인가! 아들을 잃고 남편을 잃은 두 가지 일이 한순간에 온전히 그녀에게 닥쳤으니 어떻게 그녀가 위로 받으랴 (아사야 47:9). 이렇게 좌정하고 있는 자에게 위로를 보낼 수 있는 분은 주 하나님 뿐이다.

 

만일 하나의 고통을 당하게 되었을 때 그 속에서 자기의 죄와 임무를 깨닫지 못하였다면 다른 고통이 오게 된다. 한 집안에 <죽음이 닥쳤을 때에는> 그들에게 어떠한 잘못이 있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므로 그것을 바로 잡도록 하여야 한다.

 

주 하나님께서 <아들을 죽게 하고는 우리의 죄가 생각나게> 하신다 (열왕기상 17:18). 하나님께서 가시덤불로 우리의 길을 방해하시는 것은, 우리를 그의 나라로 똑바로 돌아가라는 뜻이기도 하다.

 

죽음이나 그 밖의 어떤 일로 인하여 우리들의 친척과 헤어지게 되었을 때, 함께 있는 동안 우리가 그들과의 인간관계에서 우리의 의무를 다 하려고 애썼다는 사실을 그들이나 우리 스스로의 양심이 증언해 준다면, 그것은 매우 다행한 일이다. 그것은 이별의 고통을 덜어줄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들이 그들과 함께 있을 동안 우리는 그들에게 성실히 대함으로써 헤어지더라도 친척들에 대한 우리의 과실로 인해서 가슴 아프게 후회하지 않아야 된다.

 

친구들이 헤어질 때에 서로<기도>해 주면서 헤어진다는 것은 퍽 아름다운 일이다. 인자하고 너그러운 마음을 가진 자는 자기자신의 고통보다 남이 당하는 슬픔이나 자기로 인해서 남이 당하는 고통을 매우 가슴 아프게 여긴다.

 

우리는 때때로 작은 일들의 도움으로 중요한 일이 빨리 이루어지기도 함을 알자. 우리는 우리가 하는 일이 정당하고 정직해야 할 뿐 아니라, 정중하고 명예로와야 하며, 남에게 들킬 것을 꺼려하는 행동을 하지 말고 솔직히 정직하게 행해야 한다는 것을 배울 수 있다. 정직이야말로 최선의 정책이 될 것이다.

 

흔히 사람들은 이 세상에 있는 그들의 재산을 잃을까 두려워하며 신앙을 기꺼이 버리며 도저히 신앙에 붙어 있을 수 없게 한다. 그들은 하나님을 찬송하지만 <성결>한 생활을 하려 하지 않는다. <믿음>은 이 세상의 욕심과 함께 할 수 없음으로 주 하나님을 따르려는 자는 세상의 욕망을 버려야 한다. 또한 우리가 바라는 모든 선을 모든 선의 근원이 되신 <주님>께 구해야 마땅한 법이다.

 

<말씀과 기도>로 봉사하는 사역자들은 남에게 권면을 주기에 가장 적합한 인물 이듯이 또한 이러한 인간관계에 몰입하는 자들을 위해서 행복을 기도해 주기에도 가장 적합한 인물이다. <지도자>는 그 시대에 쓸모있고 기여할 수 있는 인물이 되어야한다.

 

참된 참회에는 우리에게 어떤 도움이 있기를 바라서 요행(우상)으로 섬기고 하나님과 대적하는 보좌를 우리의 마음속에다 제공해 준 그런 모든 것들의 전적인 무익함을 철저히 회개 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가 탐닉(耽溺-INDULGENCE)하고 있는 감각적 쾌락이 우리의 만족이 될 수 없음과 우리가 탐닉(耽溺)하고있는 이 세상의 부귀도 우리의 기업이 될 수 없으며, 하나님 밖에서는 행복하거나 평안을 찾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총을 기대하는 희망을 가지고 그의 정의에 굴복해야 한다. 죄에 대한 회개 뿐만이 아니라 죄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진실된 참회를 하여야 된다. 주하나님은 계약의 말씀에서 자신이 그의 백성들의 아버지가 되심을 즐거 밝히셨듯이 하나님께서는 자식을 대하는 아버지 처럼 그의 자비로움을 주님의 백성들에게 기꺼이 보내주신다. 하나님은 빛들의 아버지 이시듯이, 또한 자비의 하나님 이시기도 하다. 자식들의 불순종과 탄원하는 소리를 들으시고 매우 근심 하였다(시편 95:10). 

 <남북한> 해방 분단 80년이 지난 삼천리 금수강산의 통일을 염원하기 위한 교회의 사역자와 성도들, 위정자들의 통곡의 기도와, 남북한 위정자들의 부정부패와 탐욕과 정적을 척결, 말살하는 가증한 일에 어찌 하나님께서 진노하시지 않겠는가! (에스겔 6:9,10).

 

하나님께서는 그가 생명(구원) 주시기로 작정한 국민에게는 <생명에 이르는 회개> 심정을 주실 것이다. 정직하고 간절히 기도할 우리 동족의 고통이 하나님께 <슬픈> 일이 , 우리 조국의 백성을 <구원> 주실 믿는다.

 

잘못 자식에게 너그러움을 베푸는 어지신 부모들 과도 같이 < 하나님> 우리의 <> 기꺼이 거두어 주신다. 자비하신 하나님은 인간들이 죄를 지어 사망(망국) 이르는 것을 결코 즐겁게 여기지 아니하심을 알자!

 

이스라엘을 구원한 자들은 특별한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자들 이었다. 선택된 자들에게 하나님의 성령을 보내주시어 이스라엘을 구원했다. 우리는 어떤 사람을 선택할 , 하나님께서 행하시듯이 백성(국민) 신뢰와 권한으로 치우침 없이 뽑아야(선출)하며, 그렇게 하나님은 선택된 자를 너그럽게 인정해주실 것이다. 바로 통일을 앞당길 있는 <> 것이다.

 

지난 2023 국회의사당에서 3주간 금식기도를 이재명 의원은 <성령님> 오시어 강권적으로 <금식기도> 역사를 주시고 <여호와께서 기뻐하는 금식> 통하여, 성경 이사야서 58 6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며, ‘멍에 줄을 끌러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무사히 마치고 본연의 임무에 최선을 다하고 결국 전무후무한(?) 대통령으로 당선 (2025 5)되었음을 있다.

 

수많은 우여곡절 속에서 하나님은 우리 조국을 불쌍히 여기시고, 지난 (2025 5)  대통령 선거에서 국민이 원하는 (이재명 의원) 대통령으로 선출하여 세계 열방의 55개국 대통령들과 교유를 하며 조국을 알리고. KOREA(한국) 진심을 알리어 실질적인 한국의 위상을 발휘하여 세계 5 강국으로 이끌어 나가는 <지도자> 되고 있음을 우리 국민들은 알고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해방<90> - 2035 쯤에 남북통일을 안겨 주실 것이다. 믿고 간절히 <기도>하자!

 

<예레미아 29:12-13> -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할렐루야! 아멘                                                                                             

[목회칼럼] 

암흑의 굴속에서 뛰쳐나와야 !

 

                                     윤형복 목사 (국제스포츠선교재단 대표)

 

필자의 주택 공간은 큰 공원 산책로를 가까이하고 있어 정서 순화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캐나다동부 토론토에 위치한 아름답고도 큰 공원 산책로를 수시로 거닐면서 수시로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은 감사의 조건이 아닐 수 없다.

 

4계절 어떤 때라도 여러 마리의 암 수컷 짝을 이룬 청설모 검정 다람쥐들이 자유를 만끽하며 공원은 물론 뒷마당 잔디와 담벼락을 달리고 나무를 오르내리는 모습은 한편의 그림이라고 표현 할수도 있다.

겨울에는 새하얗게 마당과 공원을 덮은 눈 위에서도 청설모 다람쥐들이 그렇게 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애완견을 데리고 공원을 거닐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조깅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시상이 저절로 떠오르게 하고도 남음이 있다. 글을 쓰고, 글들을 출판하고 글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글을 쓸 수 있는 글 소재는 많을 수 밖에 없다.

 

그런데 다운타운에 간혹 갈때면 아름다운 공원에 간혹 몇 사람은 대낮부터 술, 약물에 취했는지 아무렇게나 누워있는 경우도 간혹 보게 된다. 일어나 일을 하고 창의적인 인생을 가꾸어야 할텐데 인사불성이 된 사람도 있음에 안타까운 마음 금할 길 없다. 정신차리고 일어나야 하겠는데 그래야 사람답게 살 수 있겠는데 그렇지가 못한 경우도 있다.

 

현대인들 중에는 몸으로는 일어났으나 마음으로는 낙심 절망하여 인사불성이 되어 탄식하며 살아가는 사람도 없지 않다.

 

몸은 일어났으나 마음은 쓰러져 있다는 말이다. 늘 도망가는 심정으로 인생을 사는 사람도 있다. 도망간다는 것은 쫓긴다는 말이요 쫓긴다는 것은 용기를 잃은 상태를 말한다.

도망간다는 것은 이웃과 멀어진 상태로써 마음에 큰 상처가 난 상태이다.

 

사타나라고 하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의 뜻은 멀어지게 한다는 뜻이다. 인생들을 이웃들과 점점 멀어지도록 꾀이는 마음상태이다.

 

사타나는 파괴자라는 뜻이다. 육신의 이웃을 떠난 자가 있는가 하면, 마음으로 삶의 근원을 떠나는 경우가 있다. 현실이 무서워 도피하는 사람도 있다.

 

오늘날도 인류가 처한 냉혹한 현실을 도피하거나 현실에 동화되므로 바른길을 떠나는 인생이 많다. 그런데 역사를 이룩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피한 것보다 정도의 도전을 감행했다.

홍해를 건넜고 여리고 성을 무너뜨렸고 아이성을 재도전하여 무너뜨렸고 가나안에 정면으로 도전하여 입성한 사람들과 같이 말이다.

 

절망의 굴, 암흑의 굴, 단절의 굴, 의심의 굴, 악의 굴 속에서 정신을 잃고, 혼미하여 미래의 비젼을 송두리채 상실한 가운데 이리저리 헤매고 있는 안타까운 자리에서 일어나야 한다.

이와 같은 암흑의 굴속에서 빨리 뛰쳐나와야 한다. 그래야 살 수 있다!

 

 [목회칼럼]  

그냥 갈 수는 없을까

 

김신기 목사(전 밀알선교단장)

 

내가 토론토에 온 햇수가 아주 오래되신 분들 보다는 비교하기도 쑥스럽지만 30여년이 지났나 보다.

아니 벌써…처음 도착한지가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던 것 같은데…ㅜㅜ 세월이…

 

살아오며 아는 사람이 제법 많아지고 교민들 경조사에 다니다 보니 언제부터인가 이런 생각을 하게되었다.

 

나하고 아주 가까운 사람, 약간 가까운 사람, 조금 아는 사람, 잘 모르는 사람…

그런 분들 중에 신문에 어떤 일로 인하여, 때론 노쇠로, 지병으로, 사고로…

이런 저런 사연으로 세상을 떠나는 소식을 듣게 된다.

아주 가까운 분들이야 당연히 찾아 유족을 위로하고 같이 슬픔을 나누는 것이 도의상으로나 인간적으로나 당연하지만 아쉬운 것은 그렇게 가깝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마지막 가는 인생의 길을 동참하여 조문하고 픈 마음이 많이 들 때가 있다.

 

체면문화인지, 성격인지, 빈손으로 가는 것이 웬지 손 부끄럽기도 하고…

 

오래 전에 장로님 한분이 돌아가시면서 부조금을 받지말라는 유언을 남겨 놓으셔서 그 장례식에서는 유족들이 조의금을 받지않았다.

웬지 이상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가벼운 조문을 하고와서 마음이 편하기도 했다.

돌아가신 분을 깊게 생각하기도 하고….

 

그냥 가도 괜찮은가?

 

인생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라고 했는데 이민자들의 대다수의 부모님들은 자식들에게 짐이 되지않을까.

 

보험도 들기도 하고 아끼고 절약하여 본인들이 세상 떠난 후에 자녀들에게 자신들의 장례비용이라도 사용하라고 남겨놓으려고 애쓰는 것 같다.

 

내가 세상을 떠나면서 내가 죽은 후에는 조의금을 받지말라고 그런 유언을 하고 갈 수 있을까?

집사람하고 상의를 해보아야 할 것 같다. 누가 먼저 갈지 모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