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예정된 항소심 3차 공판부터 특검팀이 공소유지 담당 - 취하 가능성

 
 
순직 해병 수사 방해 의혹 사건을 수사하는 이명현 특별검사가 지난 19일 서울 서초구 사무실로 출근하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
 

채상병 사건 외압 의혹을 수사하는 이명현 특별검사팀은 30일 국방부에 박정훈 전 해병대수사단장(대령)의 항명 사건 항소심 재판 기록 이첩을 요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현재 진행 중인 박 대령의 항명 사건 재판을 넘겨받은 뒤 항소 취하를 검토하려는 의중을 내비친 것으로 보인다.

 

정민영 특검보는 이날 오전 서초한샘빌딩 1층에서 기자들과 만나 “오늘 오전 국방부 쪽에 박정훈 대령 항소심 사건에 대한 기록 인계를 요청할 예정”이라며 “기록을 검토해 보고 공소유지의 방향 이런 것들은 차후 좀 논의해 결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박 대령은 2023년 7월 임성근 당시 해병대1사단장 등에게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해 사건을 경찰에 이첩하겠다고 상부에 보고했고, 이런 처분은 이종섭 당시 국방부 장관 승인까지 받았다. 하지만 이 전 장관은 돌연 이첩을 보류하라고 김계환 당시 해병대사령관에게 지시했고, 박 대령은 이런 지시를 이행하지 않은 혐의(항명) 등으로 기소됐다.

 

중앙군사법원은 지난 1월 “해병대사령관이 박 대령에게 이첩 보류 명령을 개별적·구체적으로 명확하게 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등 이유로 박 대령에게 무죄를 선고했지만, 군 검찰은 항소해 현재 서울고법 형사4-1부(재판장 지난영)에서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1심에서 무죄가 나자 군 검찰은 이 전 장관 명령에 대한 항명 혐의까지 더해 공소장 변경신청서를 법원에 제출하기도 했다. 오는 11일 예정된 항소심 3차 공판부터 특검팀이 공소유지를 담당하게 되는데, 이르면 이때 특검팀이 항소를 취하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특검팀은 이날 중으로 대구지검에서 수사 중인 임 전 사단장에 대한 업무상과실치사 사건 기록을 송부받을 예정이다. 생존 장병이 임 전 사단장을 고소한 사건 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수사기록도 이날 넘어갈 것으로 보인다. 정 특검보는 “수사 인력은 대부분 확정됐다”며 “105명의 최대 인력을 확보해 운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특검팀은 다음 달 2일 본격 수사 개시를 앞두고 1일 이 특검과 특검보 등이 국립현충원 채상병 묘역을 찾아 참배할 예정이다. 정 특검보는 “(채상병은) 만 20살에 안타깝게 사망했다. 군에서 청년이 사망했는데 진상조사과정에 여러 부적절한 외압 행사 의혹이 있었고 여기까지 오게 된 계기가 됐다”며 “수사 기간 최선 다해서 밝혀지지 않은 의혹 등을 확인하는 것이 (특검팀의) 도리가 아닌가 생각한다”고 했다.        < 곽진산  김수연 기자 >

 

채상병 특검, ‘업무상과실치상 임성근 고소’ 사건도 수사

 
 
임성근 전 해병대1사단장이 26일 순직해병 수사 방해 의혹 사건을 수사하는 이명현 특별검사와 면담을 요청하며 서울 서초구 특검 사무실을 방문해 입장문을 읽고 있다. 연합
 

해병대원 순직 사건 당시 생존해병이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을 업무상과실치상 혐의로 고소한 사건도 특검 수사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채상병 사건 외압 의혹을 수사하는 이명현 특별검사팀은 전역한 해병대원 등이 임 전 사단장을 고소한 사건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로부터 이첩받을 예정인 것으로 29일 알려졌다. 2023년 7월 수해 뒤 경북 예천군 내성천에서 실종자 수색에 채 상병과 함께 투입돼 급류에 휩쓸렸다 살아남은 생존장병 ㄱ씨는 그해 10월 전역한 뒤 임 전 사단장을 업무상과실치상 혐의로 고소했다.

 

ㄱ씨는 당시 군인권센터를 통해 공개한 입장문에서 “실종자 수색 기간 내내 부대 분위기가 어땠는지 저희는 안다. 사단장님이 화가 많이 났다고 그랬고, 간부님들은 다들 압박감을 느끼는 듯 보였다”며 “물속에서 실종자를 찾을 수 없는 상황이라는 걸 다들 알고 있었지만, 위에서 시키니까 어쩔 수 없이 들어갔다”고 밝혔다. 이어 “저희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정당한 지시를 받고 작전을 하다가 사망하거나 다친 것이 아니다. 사단장과 같은 사람들이 자기 업적을 쌓기 위해 불필요하고 무리한 지시를 했기 때문”이라며 “책임을 묻지 않으면 같은 피해가 반복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임 전 사단장은 최근까지 자신의 혐의를 적극적으로 부인하며, 이명현 특검팀 쪽에 이런 의견을 전달하려 하고 있다. 이 특검이 임명된 직후인 지난 20일에는 해병대 출신의 대리인을 통해 72쪽짜리 의견서를 이 특검 변호사 사무실에 전달하려 했으나 당시 특검팀은 별도 사무실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여서 이런 시도는 불발됐다. 이 자료에는 실종자 수색 당시 임 전 사단장이 작전통제권을 육군 50사단장에 넘겼기 때문에 자신에게 업무상 과실치사의 책임이 없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임 전 사단장은 또 특검팀이 항명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박정훈 전 해병대수사단장(대령)의 항소 취하를 검토하겠다는 보도가 나오자 지난 26일 직접 특검팀 사무실을 찾아 의견서 제출과 면담을 시도했다. 그는 기자들을 만나 박 대령의 항소 취하에 대해 “한국군의 명령체계에 큰 영향을 줄 박 대령의 항명사건을 상급법원이 판단할 기회조차 없애려고 하는 것”이라고 비판하며 특검팀 사무실로 향했지만 건물관리인의 제지로 퇴거당했다.

 

특검팀은 수사 인력 파견을 확정하고 다음달 2일 현판식을 연 뒤 본격적인 수사를 진행할 계획이다.         <  곽진산  김가윤 기자  김수연 기자 >

검찰 소환 거부하며 ‘특검 중복수사’ 언급
도이치·명태균·건진·양평도로·삼부토건
이첩받은 특검 7월 2일 본격 수사 개시

 
 
특별검사팀 출범을 앞두고 우울증 등 지병을 이유로 입원했던 김건희 여사가 27일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이 미는 휠체어에 탄 채 퇴원하고 있다. 연합
 

검찰의 출석 요구를 거부하고 우울증을 이유로 입원했던 김건희 씨가 11일 만에 퇴원하면서 특검의 김 여사 조사 시점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 여사 관련 의혹이 방대하고 사건별 수사 진척 상황도 달라 특검팀의 김 여사 조사는 여러 차례에 걸쳐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민중기 특별검사팀은 29일 김 여사 관련 사건을 다른 수사기관에서 모두 이첩받고 수사 자료 검토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사건 이첩은 수사 과정에서 추가될 수 있다. 민 특검은 이날 서울 서초구 사무실에 출근하며 ‘김 여사와 소통하고 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아직 접촉은 없다”고 했지만, 특검팀 관계자는 김 여사 소환 시기·방식에 관해 “구체적인 방안은 정해진 상황”이라며 “김 여사의 출석 거부 등 모든 가능성에 대해 다 준비해놓고 있다”고 설명했다.

 

앞으로 특검팀이 맡을 김 여사 관련 의혹 수사 단계는 모두 다르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명태균 의혹 사건의 경우 각각 수사를 진행했던 서울고검과 서울중앙지검이 지난 23일 김 여사에게 출석을 요청했다. 검찰이 대면 조사를 해야 할 정도로 수사가 무르익었다는 의미다. 검찰에서 사건을 넘겨받은 특검팀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과 명태균 의혹을 규명하기 위해 김 여사를 우선 소환 조사하고, 다른 의혹은 나중에 조사할 수 있다.

 

‘건진법사’ 전성배씨의 김 여사 청탁 의혹의 경우, 김 여사는 아직 피의자가 아닌 참고인 신분이다. 김 여사가 전씨를 통해 받았다는 다이아몬드 목걸이와 샤넬 가방 등의 행방을 특검팀이 새롭게 밝혀내야 하는 등 김 여사를 직접 조사하기까지는 추가 수사가 더 필요하다. 서울-양평고속도로 노선 변경과 삼부토건 주가조작 의혹 등도 마찬가지다. 특검팀이 모든 사건의 쟁점을 모아 김 여사를 마지막에 소환 조사하는 방안도 가능하다. 다만, 특검팀의 수사 대상이 여럿인 만큼 김 여사 조사가 한두번으로 마무리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지난 27일 서울아산병원에서 퇴원한 김 여사는 대리인인 최지우 변호사를 통해 “특검의 정당한 소환 요청에 대해서 성실히 응하겠다”, “특검에서 소환 요청이 오는 경우 특검과 일시, 장소 등을 협의하여 소환에 응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특검이 예정된 상황에서 중복 수사가 우려된다’며 검찰의 소환 요구에 불응했던 김 여사로서는 더 이상 퇴로가 없다. 특검팀은 다음달 2일 서울 종로구 케이티(KT)광화문빌딩웨스트(West) 사무실에서 현판식을 열고 본격적인 수사를 개시한다.    < 박지영 기자 >

 

“비공개 외친 윤석열, 김건희 휠체어 밀 때만 공개…한심한 연출”

특검 출석할 땐 지하출입 요구
박지원 “지지층 동정심 노린 술책”

 
 
윤석열 전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씨가 지난 27일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에서 윤 전 대통령이 미는 휠체어에 탄 채 퇴원하고 있다. 연합
 

특검 수사를 앞두고 서울아산병원에 입원했던 윤석열 전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씨가 휠체어를 타고 퇴원한 것을 두고 “동정심을 유발하려는 술책”이라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박지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30일 에스비에스(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와의 인터뷰에서 김씨의 행태가 “자기 지지층을 자극하려고 그러는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우울증 등을 이유로 지난 16일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에 입원했던 김씨는 27일 윤 전 대통령이 미는 휠체어에 탄 채 병원을 빠져나온 바 있다.

 

박 의원은 “자기(윤 전 대통령)는 특검에 출두하면서 ‘지하통로로 해서 비공개로, 사진이 안 찍히겠다’ 했는데 김건희는 또 휠체어를 밀고 다니면서 공개적으로 사진을 찍힌다?”라며 ‘의도적’이라고 평가했다.

 

박 의원은 “(그렇게) 노출시켜서 ‘내 와이프가 이렇게 아프다’, ‘내가 이렇게 건재하다’(는 걸 보여준 것)”이라며 “국민들로부터 동정심을 유발하려는 술책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또 “(김씨가 차 앞에) 도착해서는 벌떡 휠체어에서 일어나서 걸어 들어갔다, (퇴원 뒤) 집 안에서는 돌아다닌다(는 보도가 나왔다)”며 “(김씨야) 돌아다닐 수 있지만,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이 자기가 출두하는 것은 사진 안 찍히겠다면서 자기 부인을 휠체어로 몰고 가는 것은 공개하고, 그게 뭐냐”고 지적했다.

 

박 의원은 이런 연출에 지지자들을 결집시켜 특검 수사에 영향을 미치려는 의도가 있다며 “그걸 노리는 것 자체가 한심하다. 제정신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김건희씨가 지난 27일 퇴원할 때 윤석열 전 대통령이 함께 한 모습. 연합

 

박 의원은 김씨 수사에 대해 “(고가 목걸이 등으로 로비한 의혹이 있는) 통일교 문제를 맨 먼저 특검에서 치고 들어갈 것”이라며 “그래야 구속영장 청구도 쉽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윤 전 대통령 부부가 동시에 구속될 가능성에 대해 “(동시에 구속) 해야 한다”며 “윤건희(윤석열+김건희) 구속 안 하면 대한민국 5200만 국민 누구도 구속할 사람이 없다”고 강조했다.

 

민형배 민주당 의원도 이날 시비에스(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처음에 병원에 들어간 것 자체가 좀 이상했다”며 “‘나 지금 아파. 수사받으러 가기 쉽지 않아. 조사받기 쉽지 않아’ 이런 얘기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민 의원은 그러나 “지금 상황은 저런 게 통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며 “(특검이) 오히려 조금 더 가증스러워할 것 같다”고 말했다.   < 송경화 기자 >

 

4년간 초등~대학생 상대로 이승만 우상화 행사
리박스쿨 “협력단체” 소개…최재형·나경원은 축사

 
 
‘제11차 이승만포럼, 대한민국 인재양성 스피치 대회’에서 발표하는 초등학교 3학년 학생. 한겨레 영상 갈무리

 

국가보훈부의 관리·감독 아래 운영되는 비영리 민간 단체인 ‘이승만건국대통령기념사업회’가 지난 4년간 해마다 초등~대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이승만을 우상화하고 독재를 미화하는 행사를 열어온 것으로 확인됐다. 이 단체는 학생들에게 ‘뉴라이트 역사관’을 교육해 파문을 일으킨 리박스쿨이 “협력 단체”로 밝힌 단체 중 한 곳이었다.

 

“이승만은 대한민국의 가장 위대한 대통령입니다. 우리나라를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의 생일은 1948년 8월15일입니다.”, “공산주의는 지금도 우리 사회에 침투해 자유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2023년 8월19일 부산에서 열린 ‘제11차 이승만 포럼, 대한민국 인재양성 스피치대회’에서 초등학생들이 발표한 내용이다. 사전 공모를 통해 1차 선별된 참가자들의 본선 행사였는데, 유년·초등·중등·고등·대학장년부 등 총 40여명이 참여했다. 행사는 지정 도서를 읽고 감상평을 발표하는 형식으로 진행됐으며, 한겨레가 이 행사 홍보물을 통해 확인한 지정 도서는 ‘엄마가 들려주는 이승만 건국 대통령이야기’ ‘하나님의 기적, 대한민국 건국’ 등 전부 이승만을 미화하는 내용의 책들이었다. 이승만건국대통령기념사업회는 행사 공동주최 단체 세 곳 중 하나로 참여해 사업회 명의로 된 최상위 상인 ‘이승만건국대통령기념사업회장상’을 수여하는 등 행사에 깊숙이 관여한 정황이 확인됐다.

 

한국교육평가원장을 지낸 성기선 가톨릭대 교수는 한겨레에 “이승만은 장기 집권을 꾀하기 위해 부정선거를 획책했고 4·19항쟁으로 하야한 대통령”이라며 “이런 이승만이 집권한 1948년 8월15일을 건국절로 교육하고 그를 국부라고 하는 것은 임시정부 법통을 잇는 우리 헌법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고, 심각한 역사 왜곡”이라고 말했다. 성 교수는 이어 “이런 역사관이 성장하는 아이들에게 교육되고 그 아이들이 목소리를 내는 순간 우리 사회는 엄청난 분열과 갈등을 겪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승만건국대통령기념사업회는 리박스쿨 누리집에 “협력 단체”로 소개된 곳 중 하나다. 부정선거론 주장 단체를 이끌고 있는 황교안 전 총리 등이 이 단체의 회장을 지냈는데, 황 전 총리 직전 회장은 신철식씨였다. 신씨는 2021년 4월부터 약 8개월간 이 단체 회장과 ‘우남네트워크’라는 뉴라이트 연합 단체의 상임고문직을 겸했는데, 리박스쿨의 손효숙 대표 또한 이곳의 공동대표를 지냈다.

 

아울러 최근 드러난 리박스쿨의 댓글 조작 조직 ‘자손군’(댓글로 나라를 구하는 자유 손가락 군대) 단장 최아무개씨도 우남네트워크에서 활동했다. 최씨는 지난해 ‘이승만 포럼, 대한민국 인재양성 스피치대회’가 열렸을 때 연사로 참여하기도 했다. 또한 리박스쿨의 손 대표가 ‘동고동락 관계’라고 소개한 대한국민교원조합(대한교조)의 조아무개 상임위원장이 해당 스피치대회의 심사위원을 맡기도 했다.

 

                    스피치 대회 심사평을 발표하는 조아무개 대한국민교원조합 상임위원장. 한겨레 영상 갈무리

 

이 스피치 대회는 2021년 이후 매년 진행됐으며, 2023년에는 최재형 당시 국민의힘 의원이, 2024년에는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이 축사를 보냈다. 정부의 지원도 이어졌다. 강준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 2022년 윤석열 정부 출범 직후 3년간 국가보훈부가 사업회에 지급한 보조금은 8200만원이었다. 윤 정부 출범 직전 3년간 지급한 보조금이 2400여만원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3배 이상 급증한 액수다. 이 단체가 국가보훈부 소관 비영리 민간 단체로 등록된 것은 박근혜 정부 때인 2013년이다.

 

해당 행사에 축전을 보낸 최재형 당시 국민의힘 의원. 한겨레 영상 갈무리

 

‘이승만건국대통령기념사업회’ 관계자는 한겨레에 “우리도 비슷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자 했으나 여의치 않던 와중에 마침 부산 지역 민간 단체인 자유의 숲에서 먼저 제안한 행사”라며 “우리 사업회 명의의 상을 주고 싶다고 해서 이름만 빌려준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신철식 전임 회장은 재임 기간에도 우남네트워크 등 개별 활동을 자주 해 사업회 내부에서도 말이 많았고, 안 좋게 보는 시선도 있었다”며 “사업회는 우남네트워크와 전혀 관련이 없다”고 밝혔다.

 

그는 리박스쿨 손 대표와의 관계 역시 “전에 본 적은 있으나 얼굴도 기억나지 않을 정도의 사이”라고 부인했으며, “협력 단체 기재도 리박스쿨에서 일방적으로 한 것인데 어찌 됐든 이승만을 선양하는 일을 하겠다고 하니 대승적인 차원에서 넘어간 것”이라고 덧붙였다.  < 위준영 기자 >

그러나 이런 해명과 달리 이 스피치 행사에 사업회의 김아무개 부화장과 김아무개 이사가 시상자로도 참여했으며, ‘자유의숲’과 문아무개 사업회 사무총장은 2023년 10월 ‘월간 독립정신 역사정신바로세움 포럼’에도 함께 참여했다.

 

전 국토차관 재판서 녹취 등 공개
직원들 “결국 원하는 건 청와대
협조 않으면 단독일탈 결론 압박”

“값 조정은 검증행위”라던 직원들
고강도 조사 뒤 “정부 압박에 조작”

 
서울 종로구 삼청동 감사원 모습. 이종근 선임기자
 

감사원이 ‘부동산 통계조작 의혹’을 감사하면서 한국부동산원 직원들을 압박한 사실이 재판 과정에서 처음으로 확인됐다. 윤석열 정부 시절 감사원이 ‘검찰 수사 요청’이란 결론을 정해놓고 문재인 청와대를 겨냥한 ‘끼워맞추기식’ 감사를 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대전지법 제12형사부(재판장 김병만) 심리로 지난 25일 열린 공판에서 부동산원의 전 주택통계부장 ㄱ씨에 대한 증인신문이 진행됐다. 이날 재판에서 피고(윤성원 전 국토부 차관) 쪽 변호인은 검찰이 제출한 재판 증거인 ‘감사 문답서’와 ‘녹취록’ 등을 ㄱ씨에게 보여주며 질의를 이어갔다. ‘감사 문답서’는 감사원이 부동산원 직원들을 불러 진술 조사한 내용을 기록한 것이고, ‘녹취록’은 부동산원 주택통계 담당자인 ㄴ씨의 휴대전화에서 나온 대화 내용을 검찰 속기사가 그대로 옮긴 것이다.

 

‘감사 문답서’를 보면, 감사원은 감사(2022년 9월26일) 시작 전인 2022년 9월15일 ㄴ씨를 불러 “(다른) 감사 대상자들에게 오늘 들은 얘기를 잘 전달하고 머리를 맞대서 어떻게 대응할지 어떤 자료를 제출해야 할지 상의하라. 당신들은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을 입증해라, 그렇지 않으면 한국부동산원과 본사 담당자들이 (통계 조작의) 모든 책임을 지게 될 것이다. 계속 이런 식으로 나오면 우리도 굳이 길게 가지 않을 것이고, 부동산원이 통계조작을 했다고 하고 끝낼 것이다. 그러니 잘 대응하라”며 ‘수사 의뢰와 통계청 통보’를 언급했다.

 

녹취록에는 ㄱ·ㄴ씨 등 감사원 조사 대상인 부동산원 직원들이 “감사원이 본사의 통상적 주택가격조사 조정 업무를 통계법 위반이라 우긴다. 결국 원하는 건 윗선이고, 청와대다. 조사에 협조하지 않으면 부동산원의 단독 일탈로 결론 내 검찰에 수사 의뢰한 뒤 통계청에 통보하고 끝낼 거란 식으로 압박한다”고 대화하는 내용이 들어 있다.

 

검찰은 통계조작 의혹 사건을 수사하며 압수한 ㄴ씨 휴대전화에 있던 음성파일 수십개를 확보했으나, 그 내용은 실제 수사 과정에선 배제된 것으로 보인다. 25일 재판에서 ㄱ씨는 “ㄴ씨가 대화를 녹음한 음성파일이 있는지 전혀 몰랐다. 검찰 조사 때도 녹취록 내용에 대해선 듣지 못했다”고 증언했다.

 

최달영 감사원 제1사무차장이 2023년 9월15일 서울 종로구 감사원 제3별관에서 ‘주요 국가통계 작성 및 활용실태’ 수사요청 관련 발표를 하고 있다. 연합

 

부동산원 직원들이 장기간 매우 강도 높은 감사원 조사를 받으며 심리적 압박감과 스트레스에 시달린 정황도 재판 과정에서 확인됐다. 검찰이 증거로 제출한 ‘감사 문답서’를 보면, ㄱ씨는 공식 감사기간(2022년 9월26일~2023년 3월31일) 전인 9월19일과 감사기간 동안 4번, 감사 종료 뒤인 2023년 4월12일~5월25일 15번 등 총 24차례 감사원에 불려가 강도 높은 조사를 받았다. 2023년 5월2일에 이어 다음날 바로 진행된 5월3일 조사는 오전 10시부터 시작해 다음 날 새벽 3시 넘어 끝나기도 했다.

 

2023년 3월27일 ㄱ씨와 ㄴ씨가 나눈 대화 녹취록에선, ㄴ씨가 “(감사관이) 기억 안 난다고 하면 계속 물어보고, (다시) 기억 안 난다고 하면 기억날 때까지 물어보고, 그걸 새벽 3시·4시까지 하고 그랬다”고 말하자, ㄱ씨가 “기억이 안 나는데 어떻게 기억을 한다는 거냐”고 맞장구치는 내용도 나온다.

 

ㄱ·ㄴ씨는 감사 초반엔 일관되게 “부동산원의 지사 조사원이 올린 주택가격을 본사가 조정하는 하는 것은 업무에 따른 당연한 검증행위이지 위법이 아니다. 부임 전부터 자료 메일수신처에 청와대가 있어 메일을 보낸 것이지, 청와대와 직접 연락하진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감사원 조사가 이어지면서 “통계 조작이 맞다. 부동산원이 통계청 업무를 방해하고 국민의 알권리를 침해했다. 국토부와 청와대 압박으로 어쩔 수 없이 한 것”이라고 바뀌었다.

 

ㄱ씨는 25일 재판에서 여러 차례 “여전히 본사의 주택가격 조정 행위는 통계법 위반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답했으나, 피고 변호인이 감사 문답서와 녹취록을 보여주며 “감사 후반에는 왜 지금과 다른 답변을 했냐”고 묻자 “기억나지 않는다”고 답했다. 반복된 감사원 조사의 강도와 당시 느낀 압박감을 묻는 말에 ㄱ씨는 잠시 머뭇거리다 “힘들었던 건 맞다”고 했다.

 

감사원은 감사 종료 5개월여 뒤인 그해 9월13일 ‘부동산 가격과 고용 통계, 가계소득 분야 국가 통계를 조작한 혐의’로 문재인 정부의 청와대 정책실장 4명 전원과 김현미 전 국토부 장관 등 22명을 검찰에 수사 요청했다. 이틀 뒤 윤석열 정부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언론에 “‘부끄럽고 수치스럽다. 국가 기본 정책인 통계마저 조작해 국민을 기망한 정부”라며 “‘주식회사 문재인 정권”의 회계 조작 사건으로 엄정하게 다스리고 바로잡아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공을 넘겨받은 대전지검은 6개월 뒤인 지난해 3월14일 ‘국가통계 조작 사건 수사결과’를 발표하며, 문재인 정부 대통령비서실의 김수현·김상조 정책실장과 홍장표 경제수석, 국토부의 김현미 전 장관과 윤성원 전 차관 등 11명을 기소했다. 검찰 발표 27일 뒤인 4월10일은 22대 국회의원 선거일이었다. 부동산원에선 원장·부원장을 포함해 직원 누구도 기소되지 않았다.

 

감사원 대변인실은 “우리는 재판 참여자가 아니라, (재판에서 증거 제시된) 문답서와 녹취록의 내용에 대해 답변하기 어렵지만, 답변을 강요한 사실은 없다. 최종 책임자를 규명하려는 과정에서 청와대와 국토부 관련성에 대해 질문할 수밖에 없었던 거지, 처음부터 의도를 갖고 한 것은 아니다”고 해명했다.   < 최예린 기자 >

 

‘문재인 정부 부동산 통계조작 사건’은?

윤석열 정부 시절 감사원이 전 정부 청와대와 국토부 등을 대상으로 한 감사에서 비롯한 사건이다.

감사원은 감사 시작 2년7개월 만인 지난 17일 ‘주요 국가통계작성 및 활용실태 감사’ 결과를 공개했다. 감사보고서에서 감사원은 청와대와 국토교통부가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주택통계를 사전에 보고받은 뒤 시장 상황이 안정되거나 부동산 대책 효과가 있는 것처럽 한국부동산원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해 모두 102차례 통계를 조작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감사원은 “문재인 정부 당시 국토부 공무원들이 부동산원에 압박성 발언을 하거나, 청와대 행정관이 통계 조작을 암시하는 메시지를 찾아냈다”고 했다.

앞서 2년 전인 2023년 9월13일 감사원은 2022년 9월26일부터 2023년 3월31일까지 진행한 감사 결과를 토대로 장하성·김수현·김상조·이호승 등 문재인 정부 청와대 정책실장인 4명 전원과 김현미 전 국토교통부 장관 등 22명을 통계법 위반과 직권남용, 업무방해 등 혐의로 검찰에 수사 요청했다. “청와대가 국토부를 압박하고, 다시 국토부가 한국부동산원을 압박해 부동산 주택통계 주중치를 실제 조사된 값보다 낮게 조작했다”는 것이 감사원의 설명이었다.

감사원 요청을 받아 전방위적인 수사를 벌인 검찰은 2024년 3월14일 김수현·김상조 전 청와대 정책실장과 김현미 전 국토부 장관 등 문 정부 관료 11명을 재판에 넘겼다. 감사원 수사 요청 대상에 포함됐던 장하성·이호승 실장과 부동산원 원장·부원장 등 나머지 11명은 “통계법 위반의 공소시효가 5년이라 혐의 적용에 한계가 있었다”며 무혐의 처분했다. 당시 대전지검은 이례적으로 지청에 기자들을 불러 서정식 당시 차장검사가 직접 수사결과를 브리핑했다.

당시 검찰은 “김수현 전 실장과 윤성원 전 국토부 1차관은 아직 발표하지도 않은 부동산 대책 효과를 변동률 산정에 반영하라고 지시하고, 김현미 전 장관은 부동산 대책 효과가 숫자로 나타나야 한다고 국토부 직원들에게 거듭 지시해 국토부 실장 등이 부동산원 직원들을 질책해 변동률을 낮추게 했다”며 “이런 내용의 명시적 지시가 있었음을 당사자 진술과 문자 내용 등으로 확인했다”고 청와대 쪽의 ‘조작 압박’ 혐의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감사원이 앞장서고 검찰 뒤따랐다…윤석열 정권 ‘전 정부 공격 패턴’

[한겨레 오늘의 스페셜: 이춘재의 ‘검찰 수사의 재구성’]
문재인 정권 안보라인 수사 ①

 
 
서훈 전 국가정보원장(왼쪽부터), 정의용 전 국가안보실장, 노영민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지난 2월19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탈북어민 강제 북송’ 사건 1심 선고를 마치고 입장을 밝히고 있다. 정용일 선임기자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 윤석열이 ‘12·3 내란’으로 탄핵소추돼 헌법재판관 전원일치 결정으로 파면됐습니다. 국헌문란 목적의 폭동을 일으킨 혐의로 기소돼 형사재판도 받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윤석열은 국민에게 단 한 마디의 사죄도 하지 않습니다. 반성은커녕 온갖 궤변으로 법치를 조롱하고, 극렬 지지자들에겐 궐기를 촉구합니다. 나라가 어찌 되든 말든 저만 살면 된다는 식입니다. 어떻게 이런 후안무치한 대통령이 나왔을까요. ‘윤석열 부부의 친위대’를 자처한 검찰에 원인이 있지 않을까요. 윤석열 내란의 뿌리를 추적해 봤습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지 4일 만인 지난 4월8일 검찰은 정의용 전 국가안보실장을 불구속 기소했다. 정의용은 문재인 정권의 대북 정책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1972년 외무부 공무원이 된 이래 통상·다자 분야에서 활동한 외교 전문가다. 문재인 정권 출범 직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맡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이를 오가며 2018년 3월 역사적인 첫 북-미 정상회담을 성사시켰다. 국내 언론들은 그를 가리켜 ‘한국의 키신저’라고 했다. 1970년대 초 미-중 수교를 이끌어낸 미국의 헨리 키신저에 견줄 만하다는 평가였다. 그런 그를 윤석열 검찰이 겨냥한 건 문재인 정권의 대북 정책에도 ‘사법적 타격’을 가하겠다는 의도를 드러낸 것이다.

 

황교안, 2017년 조기 대선 직전에 사드 기습 배치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3부(부장 김태훈)는 정의용이 문재인 정권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정식 배치 지연에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문재인 정권 출범 직전인 2017년 4월26일 경북 성주에 사드 발사대 2기가 기습 배치됐는데, 새 정권에서 나머지 4기가 마저 배치되는 것을 고의로 지연시키려고 했다는 것이다(사드 체계는 발사대 6기와 사격 통제용 레이더, 교전통제소로 1개 포대를 구성한다). 검찰은 정의용이 서주석 당시 국방부 차관과 함께 ‘군사기밀’을 사드 반대 주민들과 시민단체에 알리도록 실무자에게 지시했다고 주장했다. 군사기밀인 사드 발사대 배치 일정을 알려줘서 주민들이 이를 막으려고 ‘무력시위’를 하는 바람에 사드 배치가 늦어졌다는 것이다.

 

사드 발사대 기습 배치는 2017년 3월10일 박근혜 탄핵으로 대통령 권한대행이 된 황교안의 작품이었다. 주민들이 사드 배치에 강하게 반대하자 한밤중에 기습적으로 단행했다. 조기 대선(2017년 5월9일)을 불과 13일 앞두고 벌어진 일이다. 주민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앞서 박근혜 정권은 사드 배치 결정에 주민들의 의사를 충분히 반영하겠다고 했다. 사드 레이더 전자파가 인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환경영향평가를 제대로 한 뒤 배치하겠다고 약속했다.

2016년 7월15일 황교안 당시 국무총리가 경북 성주군청을 방문해 사드 배치 주민설명회에 참석하려다 반대 시위에 막혀 현장을 빠져나가고 있다. 성주/김태형 기자

 

문재인 정권 첫 국방부 차관으로 임명된 서주석은 그해 6월27일 성주로 내려가 주민들을 만났다. 주민들은 ‘발사대 추가 배치를 기습적으로 하지 않겠다’는 서주석에게 그걸 어떻게 믿을 수 있냐고 따졌다. 주민들은 어떤 물품이 사드에 반입되는지 알려달라고 했다. 그래야 정부의 말을 믿을 수 있겠다는 취지였다. 당시 기지에 드나드는 물품은 골프장을 군부대로 만드는 데 필요한 공사 장비와 기지 주둔 미군들이 사용할 일상용품 등이었다. 외부에 공개되더라도 국가안보가 위태로워질 정보는 아니었다.

 

주민들은 나머지 발사대를 배치할 때는 환경영향평가를 철저히 하고, 배치 계획도 미리 알려달라고 요구했다. 서주석의 보고를 받은 정의용은 회의를 거쳐 주민들의 요구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사드 발사대 추가 배치와 기지 보강공사 자재 반입을 사전에 공개하겠다고 약속했다. 사드 배치의 가장 큰 피해자인 주민들의 알권리를 존중한 조처였다. 실제로 문재인 정권은 2017년 9월7일 발사대 4기 추가 배치 때 일정을 미리 공개했다. 투명한 정책 집행이 국민적 지지를 받을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윤석열 사단, “사드 반대 단체에 이적단체 포함” 강조

 

윤석열 검찰은 주민의 알권리 따위는 관심 없다는 태도다. 검찰 발표 내용 중 눈에 띄는 건 ‘사드 설치 반대를 주도한 6개 주요 단체에 대법원이 이적단체로 판결한 단체도 포함됐다’는 대목이다. 검찰은 문재인 정권의 안보 라인이 ‘반미나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는 외부 세력이 사드 반대 단체를 주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고받고도 군사작전 정보를 누설했다’고 했다. 결국 문재인 정권이 ‘이적단체’를 이롭게 하려는 목적이 있었다고 주장하고 싶은 것이다.

 

이 사건 수사는 윤석열 정권의 정치보복 수사 패턴을 그대로 따랐다. ‘감사원 감사→검찰 수사’로 전 정권 인사들을 겨냥한 수법이다. 탈원전 수사(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등),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서훈 전 국가정보원장), 국민권익위원회 감사(전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 통계조작 의혹(김상조 전 정책실장, 김현미 전 국토교통부 장관 등) 등에서 반복된 패턴이다.

 

윤석열 정권 들어 정권의 돌격대로 변신한 감사원이 먼저 나섰다. 유병호 사무총장(현 감사위원)이 이끄는 감사원 사무처는 2023년 10월 보수 성향 군 장성 모임인 대한민국수호예비역장성단의 공익감사 청구를 받아들여 감사를 시작했다. ‘공익감사청구’는 사무처가 감사 개시를 결정한다. 외부 인사가 참여하는 국민감사청구심사위원회의 결정으로 감사를 개시하는 ‘국민감사청구’와 다르다. ‘공익감사청구자문위원회’가 있지만 이 기구는 결정권이 없다. 사실상 감사원 사무처 마음대로 감사를 결정한다.

 

감사원은 1년 뒤인 2024년 10월 정의용 등을 대검에 수사 요청했다. ‘수사 요청’은 감사위원회의 의결이 필요한 ‘고발’과 달리 감사원 사무처가 직권으로 할 수 있다. 감사원 감사사무 처리규칙(65조)은 ‘도주나 증거인멸 우려가 인정될 때만 감사위원회의 의결을 거치지 않을 수 있다’고 돼 있다. 당장 구속해야 할 피의자가 아니면 감사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정식으로 고발하라는 취지다. 하지만 최재해 감사원장과 유병호는 감사원 최고 의결기구인 감사위원회의를 ‘패싱’하기 위해 수사 요청을 남발했다. 전 정권을 겨냥한 감사에서 거의 예외 없이 이런 편법을 썼다.

 

2022년 10월6일 사드 기지 입구인 경북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 마을회관 앞 도로에 사드 장비를 실은 군용차량이 지나가고 있다. 연합
 

감사원 요청→검찰 수사 패턴으로 전 정권 겨냥

 

윤석열 정권의 문재인 정권 대북 정책에 대한 공격은 과거 군사독재정권의 ‘용공 조작 사건’을 연상케 한다. 그때처럼 직접적인 고문이나 증거 조작은 없지만, 어떻게든 ‘이적 혐의’를 씌우려고 하는 게 닮았다. 2019년 11월 동해상에서 동료 선원 16명을 죽이고 탈북한 북한 어민 2명을 강제 추방한 사건이 대표적이다. 검찰은 2023년 2월 정의용과 서훈 전 국정원장, 노영민 전 대통령비서실장, 김연철 전 통일부 장관을 직권남용 혐의로 기소했다. 그러나 지난 2월19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1부(재판장 허경무)는 이들에게 선고유예 판결을 내렸다(선고유예는 1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자격정지 또는 벌금형에서 재범 가능성이 전혀 없을 때 형의 선고를 유예하는 판결이다).

 

문재인 정권 대북 정책의 핵심 인사들이 법정에 서게 된 건 윤석열의 ‘도어스테핑’이 발단이 됐다. 2022년 6월21일 윤석열은 ‘2019년 탈북어민 북송 사건을 들여다볼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 “북한 어민이 우리나라에 들어왔으면 우리 헌법에 따라 대한민국 국민으로 간주되는데, 북송시킨 것에 대해 많은 국민이 의아해하고 문제를 제기했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진상규명 여부에 대해서는 “아직 검토 중”이라고 했다.

 

윤석열의 ‘검토’는 검찰 수사를 의미했다. 국정원은 2주 뒤 서훈 전 국정원장을 검찰에 고발했다. 권영세가 이끄는 통일부가 바람몰이에 나섰다. 통일부는 2019년 11월 당시 판문점 북한 어민 강제 북송 현장 사진 10여장을 공개했다. 북한으로 끌려가지 않으려고 버티는 탈북어민의 모습이 생생하게 담긴 사진이었다. 이 사진이 공개된 당일 북한인권정보센터는 정의용을 비롯한 안보 라인 10여명을 검찰에 고발했다.

 

2022년 6월21일 윤석열 당시 대통령이 대통령실로 들어가기 전에 취재진 질의에 답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문재인 정권의 ‘북한 어민 강제 북송 의혹’에 대해 검토하고 있다고 답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석열 ‘도어스테핑’ 직후 문 정권 안보라인 수사 시작

 

대통령실도 맞장구를 쳤다. 강인선 대변인은 2022년 7월13일 대통령실 청사에서 브리핑을 열어 “어떻게든 끌려가지 않으려 발버둥 치는 모습은, 귀순 의사가 전혀 없었다던 문재인 정부 설명과는 너무나 다른 것”이라며 “윤석열 정부는 자유와 인권의 보편적 가치 회복을 위해 이 사건의 진실을 낱낱이 규명하겠다”고 했다. 검찰의 대대적인 수사를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검찰은 당일 국정원을 압수수색했다. 앞서 문재인 정권 때인 2021년 11월 당시 야당의 고발을 ‘수사 개시 사유 불충분’으로 각하했던 검찰은 태세를 180도 전환했다.

 

통일부는 정의용이 ‘북한 어민들은 흉악범이고, 귀순 의사도 없었다’는 입장을 발표하자, 이번엔 당시 영상을 공개했다. 판문점 군사분계선을 넘기 직전 눈가리개가 풀린 북한 어민들이 결사적으로 저항하는 동영상은 사진보다 더 생생했다. 동영상 공개로 문재인 정권을 비난하는 보수단체들의 목소리는 더 커졌다. 이 무렵 미국 싱크탱크 초청으로 미국에 머물던 서훈은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 등이 ‘해외 도피’ 의혹을 제기하자 그해 7월 말 귀국했다. 애초 1년 동안 방문 연구원 자격으로 머물 예정이었지만 불필요한 오해를 사기 싫어 전면 취소한 것이다. 문재인 정권 안보 라인은 윤석열 정권의 여론전과 검찰 수사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 이춘재 논설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