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올 가방 수수 사건, 공식적인 공개 사과 끝내 없어
검사 앞 발언 대리인이 전달…‘사과로 볼 수 없어’ 평가

 
연합뉴스, 샤넬·크리스티앙 디오르 누리집 갈무리

 

통일교 쪽으로부터 현안 청탁과 함께 금품을 수수한 의혹 등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김건희 여사가 ‘건진법사’ 전성배씨에게 두 차례에 걸쳐 샤넬 가방을 받은 사실을 공개 인정했다. “부적절한 처신으로 국민 여러분께 실망을 안겨드린 데 대해 깊이 반성한다”며 사과까지 했다. 이는 앞서 큰 사회적 논란을 일으켰지만 윤석열 전 대통령 임기 중 검찰에서 불기소 처분을 받은 ‘디올 가방 수수 사건’에 대해 김 여사가 끝내 공개 사과하지 않은 것과 대비된다.

김 여사 변호인단은 5일 오전 입장문을 내어 “김 여사는 전성배씨로부터 두 차례 가방 선물을 받은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김건희 여사 사건과 관련해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린 점에 대해 김 여사님의 깊은 사과의 마음을 전한다”며 “공직자의 배우자로서 보다 신중히 처신했어야 함에도 부적절한 처신으로 국민 여러분께 실망을 안겨드린 데 대해 깊이 반성하고 있다”고 전했다.

 

다만 변호인단은 “그 과정에서 통일교와의 공모나 어떠한 형태의 청탁·대가 관계도 존재하지 않았음을 분명히 밝힌다”며 “그라프 목걸이 수수 사실은 명백히 부인한다”고 했다.

김 여사는 2022년 4~7월 전씨를 통해 윤 전 대통령 직무와 관련된 통일교의 청탁과 함께 6220만원 상당의 그라프 목걸이와 각각 802만원·1271만원 상당의 샤넬 가방 2개, 천수삼 농축차 등을 받은 혐의를 받는다.

 

해당 물품들은 검찰과 특검이 대대적인 압수수색을 통해서도 행방을 알지 못했는데 지난달 21일 전씨가 특검에 그라프 목걸이와 샤넬 가방 등을 임의제출하면서 실물이 확보됐다. 전씨는 특검에 “김 여사가 수수한 걸 확인했다”는 내용의 의견서도 함께 제출했다. 김 여사의 공개 사과는 이로부터 약 2주 만에 나온 셈이다.

 

이와 달리, 김 여사는 앞선 명품 가방 수수 사건에 대해선 공개적으로 사과한 바 없다. 김 여사는 지난 2022년 9월 재미 통일운동가인 최재영 목사로부터 300만원 상당 크리스티앙 디오르(크리스챤 디올) 백을 받는 영상이 2023년 11월 ‘서울의소리’를 통해 공개돼 국민적 공분을 샀지만 별다른 입장을 내지 않았다. 되레 윤 전 대통령은 2024년 2월 한국방송(KBS)과 대담에서 명품 가방 수수 사건을 ‘정치 공작’이라 규정하며 “대통령이나 대통령 부인이 어느 누구한테 박절하게 대하긴 참 어렵다”고 두둔해 성난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김 여사는 2024년 1월 당시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었던 한동훈 전 대표에게 5차례 메시지를 보내 명품 가방 수수 사건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하고 싶으니 당이 결정을 내려달라는 취지의 의사를 밝혔던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한 전 대표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서 대국민 사과는 이뤄지지 않았다. 오히려 문자 내용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공적 권한이 없는 대통령 배우자가 여당 대표와 부적절한 소통을 했다는 논란만 일었다. 반대로 비슷한 시기 김 여사가 ‘사과 불가론’이 담긴 텔레그램 메시지를 지인들에게 보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윤 전 대통령은 2024년 5월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서 김 여사의 명품 가방 수수와 관련해 “아내의 현명하지 못한 처신으로 국민께 걱정 끼친 부분이 있어 사과한다”고 밝혔다. 명품 가 수수 사건이 불거진 뒤 나온 첫 공식 사과였지만 역시 당사자인 김 여사가 직접 사과한 건 아니었다.

 

이후 김 여사는 같은 해 7월 서울 종로구 대통령경호처 부속시설에서 검찰 대면조사를 받으면서 “심려를 끼쳐 국민들에게 죄송하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내용은 조사 직후 김 여사를 대리한 최지우 변호사가 한 언론사 유튜브 채널에 나와 밝히면서 알려졌다.

다만 이는 김 여사가 자신을 조사하는 검사들에게 한 말로, 대국민 사과라고 볼 수 없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대통령실도 ‘비공개 사과’란 비판이 일자 “조사 과정에서 김건희 여사가 심정을 드러낸 것을 법률대리인이 전달한 것”이라며 선을 그었다.                 < 심우삼 기자 >

 

 

김건희 ‘샤넬백 자백’에 매장 직원 증인신문 취소…“양형 유리할 것”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혐의와 통일교 금품수수 의혹 등으로 구속기소된 김건희 여사의 첫 재판이 지난 9월24일 오후에 열렸다. 사진공동취재단

 

‘건진법사’ 전성배씨를 통해 통일교 쪽의 명품 선물을 받은 적이 없다고 주장하던 김건희 여사가 ‘샤넬 가방 2개를 받은 건 맞다’고 인정했다. 김 여사가 선물을 받았다는 증언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향후 선고될 형량을 줄이기 위해 전략을 바꿨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 여사 변호인단은 5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7부(재판장 우인성) 심리로 6차 공판이 열리기 직전 공지를 통해 “김건희 여사는 전성배씨로부터 두차례 가방 선물을 받은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윤영호 전 통일교 세계본부장이 통일교 현안 청탁과 함께 건넸다는 802만원·1271만원짜리 샤넬 가방을 가리킨다. “저의 부족함에 대해 깊이 사과드립니다”라는 김 여사의 메시지도 전했지만, 6220만원짜리 그라프 다이아몬드 목걸이는 받지 않았다고 했다. 변호인단은 또 “(통일교 쪽의) 청탁은 김 여사에게 전달되지 않았고 대통령의 구체적 직무 권한과 무관”하다며 “특검이 주장하는 ‘청탁’이 알선수재죄의 구성요건을 충족하지 못함을 명확히 보여준다”고 주장했다. 김 여사에게 적용된 특정범죄가중처벌법의 알선수재 혐의는 공무원이 아닌 사람이 공무원의 직무와 관련된 청탁을 받고 금품을 받으면 성립된다. 통일교 쪽에서 건넸다는 선물의 일부를 받았다고 인정하면서 청탁 여부와 대가성은 부인해 무죄를 주장하는 모양새다. 변호인단은 이어 “해당 선물들은 사용한 바 없이 이미 과거에 전성배씨에게 모두 반환했다”고 덧붙였다.

 

특검팀은 김 여사의 진술 변화에 의구심을 나타냈다. 앞서 김 여사 쪽은 지난 9월24일 첫 재판에서 “샤넬 가방 등 물건을 전달받은 사실이 전혀 없다”고 주장했지만, 전씨가 선물 전달을 인정하고 실물까지 특검에 제출하자 입장을 바꾼 것이다. 특검팀 관계자는 이날 “그동안 (김 여사가) 특검 수사나 공판에서 보여줬던 그런 것들이 전부 다 거짓이란 소리”라며 “그동안 부인하다가 이제 와서 인정을 하게 된 계기와 경위가 궁금하다”고 말했다. ‘받은 선물을 사용하지 않고 돌려줬다’는 김 여사 쪽 주장도 ‘사용감이 있다’는 특검팀의 설명과는 배치된다. 특검팀 관계자는 “샤넬 가방을 받은 직후 본인 측근을 시켜서 매장에 가서 (신발 등으로) 두번 교환했다”며 “구두는 밑창을 보면 신었던 것인지 알 수 있다”고 했다. 사용하지 않았다는 김 여사 쪽의 주장을 믿을 수 없다는 얘기다.

 

김 여사의 진술 변화를 두고 수도권 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전씨가 명확히 (금품을) 전달했다고 하니까 다툴 여지가 별로 없어졌다”며 “공소사실 일부라도 인정하면 양형에 불리하진 않다”고 짚었다. 특히 그라프 목걸이의 경우 ‘김 여사에게 전달했다가 돌려받았다’는 전씨의 진술밖에 없지만 샤넬 가방은 다르다. 김 여사의 측근인 유경옥 전 대통령실 행정관이 서울 청담동 샤넬 매장을 방문해 김 여사와 영상통화를 하며 다른 가방과 신발로 바꿔 갔다는 매장 전 직원의 증언까지 법정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이날 공판에선 원래 매장 전 직원에 대한 변호인 반대신문이 예정돼 김 여사의 샤넬 가방 수수 사실이 추가로 입증될 수 있었지만, 김 여사의 ‘자백’으로 증인신문은 취소됐다.

 

김 여사가 금품 수수 사실 일부를 인정하면서 재판에는 속도가 더 붙을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는 오는 14일 증인신문을 마치고 26일 결심 공판을 진행하기로 했다. 김 여사 1심 판결 선고는 다음달에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 이나영  장현은 기자 >

이진관 재판장  “비상계엄으로 어떤 일이 벌어졌나 다 본 것 아닌가” 질책

증인소환 불응 이상민에게는 구인장 발부와 과태로 500만원 부과

 

 
 
                            박상우 전 국토교통부 장관. 연합
 

12·3 비상계엄 선포 당시 대통령실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가장 마지막으로 도착했던 박상우 전 국토교통부 장관이 한덕수 전 국무총리의 내란 우두머리 방조 사건 재판에 나와 윤석열 전 대통령을 말릴 새가 없었다며 “우리도 계엄의 피해자”라고 주장했다. 이에 재판장이 “그렇게 말씀하시는 게 적절하냐”, “비상계엄으로 어떤 일이 벌어졌나 다 본 것 아닌가”라며 쓴소리를 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33부(재판장 이진관) 심리로 5일 열린 한 전 총리의 내란 우두머리 방조 등 혐의 6차 공판에는 박상우 전 국토교통부 장관이 증인으로 나왔다. 박 전 장관은 계엄이 선포된 지난해 12월3일 밤 9시30분께 대통령실로부터 소집 통보를 받았다. 계엄 선포 관련 소집인지 몰랐던 박 전 장관이 대통령실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국무회의가 끝난 뒤 윤 전 대통령의 계엄 선포 대국민 담화 발표가 임박한 시점이었다.

 

이진관 부장판사가 지난 9월30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한덕수 전 국무총리 내란 우두머리 방조 및 위증 등 혐의 사건 첫 재판을 심리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특검팀은 이날 증인신문에 나서 박 전 장관에게 ‘계엄 선포와 관련해 윤 전 대통령 등에게 한 말이 있냐’고 물었다. 박 전 장관은 “심야에 집에 있다가 연락받고 가서 업무를 논하는 자리거나 다른 자리라고 생각을 못 했는데 엄청난 이 쇼크, 패닉 상황이어서 뭐라 섣불리 말하거나 할 상황이 아니었고, 대화 흐름에 끼어들만한 맥을 못 잡았다”고 답했다.

 

박 전 장관은 “(당시가) 계엄을 해야 할 상황이었나”라는 재판장 질문에 “전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계엄을 국민 누가 생각했겠나”라고 답했다. 그러자 재판장은 “그러니까 생각할 수도 없는 계엄인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다가 나오느냐”고 다시 물었고, 박 전 장관은 “상황이 끝나 있었다. (계엄을) 할까, 말까 하는 토론이거나, 저희들의 선택의 여지가 있는 상황이 아니었고, 대통령이 (계엄 선포를) 발표했고 그런 상황이었다”며 “저 자리에 참석했다 뿐이지 무게감 있게 (계엄 선포를) 다루거나 할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이에 재판장은 재차 “법적 책임을 떠나서 그렇게 말씀하시는 게 적절한가”라고 따져 물었고, 이때 박 전 장관은 “저희 국무위원들도 피해자”라고 말했다. 박 전 장관은 이어 “국무위원으로 역할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일이 벌어지고, 검찰에서 두 번 조사받고, 변호사비 들고, 법정에 나와 증언을 한다. 개인적으로 엄청난 손해”라고 본인이 처한 상황을 설명했다. 박 전 장관은 “저도 (계엄 선포를 하는지) 모르고 간 것이고, 아쉽고 안타깝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재판이 끝날 무렵에 재판장은 박 전 장관의 앞선 발언을 다시 꺼내 들었다. 재판장은 “‘국무위원도 피해자’라는 말이 윤석열을 상대로 말씀하신 거면 이해가 된다. 비상계엄으로 어떤 일이 벌어졌나 다 본 것 아닌가”라며 “증인이 비상계엄 선포 후에나 도착했다는 이유로 말씀하신 건지 잘 모르겠지만, 지금 일반 국민들 입장에선 장관이면 국정운영에 관여하는 최고위급 공무원이다. 비상계엄 선포 후에도 반대한다거나 동의하지 못한다고 소수 국무위원들은 말씀을 하신 거로 안다. 그런데 증인은 그 자리에 가서 아무 말도 안 하셨다”고 말했다. 비상계엄 당시 국무위원으로서 ‘소신껏’ 행동하지 못한 처신을 꾸짖은 것이다.

 

박 전 장관은 “비상계엄에 대해 굉장히 잘못된 일이었다고 생각하고 대통령을 모시는 각부 장관, 국무위원 입장에서 그런 일이 발생하게 된 건 사전에 (계엄 선포 사실을) 알았던지, 말릴 수 있는 위치에 있었던지를 떠나서 국무위원이었다는 입장에서 송구스럽다”며 재판장의 질책을 수긍했다.

 

재판부는 원래 박 전 장관 증인신문이 끝난 뒤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을 증인으로 소환했지만, 이 전 장관 쪽은 ‘재판 준비에 전념해야 한다’는 이유로 불출석 사유서를 내고 나오지 않았다. 재판장은 “정당한 불출석 사유가 아니다”라며 이 전 장관에게 과태료 500만원을 부과하고 구인영장을 발부했다. 재판부는 오는 19일 오전 10시에 이 전 장관을 다시 소환하기로 했다. 재판부는 이달 안으로 재판을 마무리하겠다는 태도다.  < 오연서 기자 >

앞서 윤석열과 통화 ...짙어지는 ‘계엄해제 표결 방해’ 정황

 

 
 
국회의 계엄해제 의결을 방해한 의혹을 받는 추경호 전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30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검찰청에 마련된 내란 특검팀 사무실에 피의자 신분으로 첫 출석하고 있다. 정용일 선임기자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을 받는 추경호 국민의힘 의원이 국회의원 전원을 대상으로 한 우원식 국회의장의 ‘본회의장 집결 요청’ 직후에 당 의원총회 장소를 국회에서 당사로 바꾼 것으로 파악됐다. 비상계엄 해제 표결을 위한 정족수 확보에 분초를 다투던 상황에서 국회의장의 요청과 달리 국민의힘 의원들을 국회 밖으로 소집한 것이다. 

 

5일 한겨레 취재 결과, 국회 운영지원과는 계엄 선포 직후인 지난해 12월4일 0시1분, 국회의원 전원에게 우 의장 명의로 “의원님들께서는 속히 국회 본회의장으로 와주시기 바랍니다”라는 소집 문자를 보냈다. 비상계엄을 해제하기 위한 유일한 수단이 국회 표결밖에 없어 본회의 개의 결정이 이뤄지기 전부터 국회의장이 직접 의원 소집에 나선 것이다.

 

반면, 당시 국민의힘 원내대표였던 추 의원은 우 의장 공지가 이뤄진 직후인 0시3분, 의총 장소를 국회 밖에 있는 여의도 당사로 변경하겠다고 공지했다. 국회의원 전원이 2분 전 국회 본회의장으로 모이라는 국회의장 명의 문자를 받은 상황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에겐 국회 밖에 있는 당사로 모이라고 공지한 것이다. 이보다 앞서 추 의원은 비상계엄 선포 뒤 의총 장소를 국회→당사→국회로 두차례 변경해 국회로 향하던 국민의힘 의원들에게 혼란을 초래한 상황이었다.

 

추 의원이 막판에 의총 장소를 당사로 변경한 행위는 계엄 해제를 지연할 목적에서였다고 조은석 특별검사팀은 보고 있다. 계엄 해제 결의안 표결을 위한 정족수(재적 의원 과반 출석) 확보가 시급한 상황에서 의총 장소를 변경하면, 본회의장에 이미 도착한 국민의힘 의원들에게 ‘국회 밖으로 나오라’는 메시지를 전달한 셈이라는 것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3일 밤 11시22분에 추 의원과 통화했고 이때 윤 전 대통령이 “계엄 선포를 미리 말하지 못해 미안하다”고 했다고 추 의원은 설명하지만, 특검팀은 이 통화에서 표결 방해가 논의됐을 거라고 의심한다.

 

특검팀은 추 의원의 의총 장소 변경 이후 행적에서도 표결 방해의 목적이 드러난다고 보고 있다. 추 의원은 지난해 12월4일 0시29분과 0시38분 두차례에 걸쳐 우 의장과 통화하면서 “국회의원 모으는 시간이 필요하다” “(의원들이 국회로) 들어갈 시간을 줘야 하지 않냐”며 본회의 연기를 요청했다. 당사에 있던 의원들이 본회의장에 들어갈 시간을 마련해달라는 요구인데, 당시 국회 내 원내대표실에 머물던 추 의원은 본회의 표결에 참여하지 않았다. 한겨레는 해명을 듣기 위해 전화를 걸고 문자 메시지를 보냈지만 추 의원은 답하지 않았다.

 

법무부는 이날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추경호 국민의힘 의원에 대해 국회에 체포동의요구서를 제출했다. 체포동의안은 이후 처음 개의하는 본회의에 보고된 뒤 24~72시간 안에 표결된다. 체포동의안은 재적 의원 과반이 출석에 출석 의원 과반의 찬성으로 가결되며, 가결시 법원의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 일정이 정해진다. 

                                                                                              < 강재구  곽진산 기자 >

 

법무부, ‘계엄 해제 표결 방해 혐의’ 추경호 체포동의안 국회 제출

 

 
 
국회의 계엄 해제 의결을 방해한 의혹을 받는 추경호 전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지난달 30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검찰청에 마련된 내란 특검팀 사무실에 피의자 신분으로 첫 출석하고 있다. 정용일 선임기자 
 

법무부가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추경호 국민의힘 의원에 대해 국회에 체포동의요구서를 제출했다.

 

법무부는 5일 “추경호 의원에 대한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와 관련해 서울중앙지법 판사의 체포동의 요구에 따라 국회에 체포동의요청을 했다”고 밝혔다.

 

추 의원은 계엄 당시 윤석열 전 대통령 쪽 요청을 받고 국민의힘 의원총회 장소를 여러 차례 변경하는 방식으로 다른 의원들의 계엄 해제 표결 참여를 방해한 혐의를 받는다. 내란 사건을 수사하는 조은석 특별검사팀은 지난 4일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로 추 의원의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국회의장은 법무부로부터 체포동의요구서를 받은 후 처음 개의하는 본회의에 이를 보고하고 24시간 이후, 72시간 이내에 본회의를 열어 표결에 부쳐야 한다. 체포동의안은 재적 의원 과반이 출석하고 출석 의원 과반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가결시 추 의원의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 일정이 정해진다. 부결되면 법원은 영장심사 없이 구속영장을 기각한다.                                                                                          < 곽진산 기자 >

 “폭군을 두렵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은

 그가 권력을 쥘 수 있었던 조건들을 해체하는 것”

 

 
 
뉴욕 시장으로 당선된 조란 맘다니가 4일 뉴욕시 브루클린 자치구의 한 바에서 선거운동 관계자들과 자원봉사자들에게 인사를 전하고 있다. 뉴욕/AFP 연합
 

“트럼프가 태어난 도시 뉴욕만이, 그를 이기는 법을 보여줄 수 있다.”

당선이 사실상 확정된 4일 밤 11시15분. ‘당선 축하 행사’가 열리는 브루클린 패러마운트 공연장에 등장한 조란 맘다니 민주당 뉴욕시장 후보는 ‘트럼프’를 정면으로 겨냥했다. 그는 “정치적 어둠의 시기 속에서 뉴욕은 빛이 될 것”이라며 이민자 출신 무슬림이자 민주적 사회주의자인 자신이 이끄는 뉴욕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싸움 최전선에 서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뉴욕은 이민자의 도시다”

 

맘다니의 당선은 트럼프 시대에 맞선 뉴욕 시민의 선택으로 평가된다. 트럼프 대통령과 극단에 위치한 맘다니의 당선은 반트럼프 세력 결집의 중요 계기가 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은 맘다니를 공산주의자로 규정하면서 당선 때 뉴욕시에 대한 연방 지원금 중단과 군 투입을 검토하겠다고 위협해왔다.

 

맘다니 후보는 이날 연설에서 “폭군을 두렵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은 그가 권력을 쥘 수 있었던 조건들을 해체하는 것”이라며 ‘트럼프’로 상징되는 임대인, 억만장자, 고용주에 대한 규제 강화를 다시 한번 강조했다. 그는 “이민자가 세운 뉴욕은 이민자의 도시일 것이며 오늘 밤부터는 이민자가 이끄는 도시가 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 우리 중 누구에게라도 다가오고 싶다면 우리 모두를 먼저 상대해야 할 것이다”라며 트럼프의 이민자 정책도 비판했다.

 

민주당 주류 교체 전운 

 

맘다니의 당선은 민주당 주류 세력에 대한 강력한 경고 의미도 갖고 있다. 버니 샌더스,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등 민주당 내 민주적 사회주의 흐름이 당의 본류로 이동하는 이정표라는 평가도 나온다. 맘다니 지지자인 대슐은 이날 한겨레와 만나 “민주당이 실패를 바로잡을 수 있는 엄청난 전환점”이라며 “민주당은 민주사회주의 흐름을 지지하지 않으면 계속 패배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민주당 주류인 중도·온건 성향 인사들은 맘다니의 당선에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상원·하원에서 민주당을 이끄는 뉴욕 출신 두 거물, 척 슈머 상원 원내대표와 하킴 제프리스 하원 원내대표는 그의 당선을 크게 반기지 않았다.

 

 

뉴욕이 글로벌 자본주의의 심장인 동시에 불평등과 자본권력에 저항하는 진보운동 ‘오큐파이 월스트리트’(월가 점령)의 발원지라는 점에서 맘다니의 당선은 2011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월가 점령 운동’의 정신이 뉴욕의 ‘정식 권력’을 획득했다는 상징성도 갖는다. 이날 당선 축하 행사장에서 한겨레와 만난 지지자 셰넌(29)은 “버니 샌더스 같은 사람들이 ‘정부 운영 방식, 예산 사용 방식, 서로를 돌보는 방식을 바꿀 수 있다’고 오랫동안 해온 이야기에 이제야 사람들이 귀 기울이기 시작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유대인의 도시이자 9·11 이후 이슬람 혐오의 그림자를 여전히 지니고 있는 뉴욕에서 무슬림 시장이 탄생했다는 점도 의미가 크다. 뉴욕타임스는 이날 “이번 승리는 세대를 초월하는 정치적 전환점”이라고 평가했다.

 

7살 뉴욕 이주…‘금수저’ 출신 비판도

 

이민자 출신으로 뉴욕시장에 당선된 맘다니는 1991년 아프리카 우간다에서 태어나 일곱살 때 뉴욕으로 이주했다. 아버지는 컬럼비아대 교수인 마흐무드 맘다니, 어머니는 아카데미상 후보에도 두차례 오른 영화감독 미야 나이르다. 이번 시장 선거에 무소속 출마했다가 중도 사퇴한 에릭 애덤스 현 뉴욕시장이 ‘네포 베이비’(금수저)라고 비꼬는 배경이다. 뉴욕시 명문고인 브롱크스 과학고와 리버럴아츠(인문학 및 순수 자연과학) 분야 미국 명문 중 한곳으로 꼽히는 보든대를 졸업했다.

 

사회생활은 뉴욕 퀸스의 비영리 단체에서 시작했다. 그는 주택 압류 위기에 놓인 이들을 상담해주는 역할을 맡았다. 당시 래퍼로도 활동했다. 2018년 미국 시민권을 획득한 맘다니는 2년 뒤인 2020년 6월 뉴욕주의회 의원선거에 출마해 뉴욕시 퀸스·애스토리아 등 지역을 대표하는 뉴욕주 의원으로 선출된다. 그는 이후 두차례 재선에 성공하며 현재까지 주의회 의원직을 유지하고 있다.                         

 

‘사회주의자 뉴욕시장’ 탄생, 급진적 목소리의 주류 정치 편입 분기점

34살 무슬림 맘다니, 쿠오모 10%포인트 가까이 따돌려

 

 
 
조란 맘다니 민주당 후보가 4일 뉴욕 브루클린 자치구의 브루클린 파라마운트에서 열린 선거 당일 개표 파티에서 무대에 올라 승리를 자축하고 있다. 뉴욕/AFP 연합
 

세계 자본주의의 ‘심장’ 뉴욕이 사회주의자 시장을 택했다. “민주적 사회주의자”를 자처하는 무슬림인 조란 맘다니(34) 뉴욕주 하원의원은 4일(현지시각) 치러진 시장 선거에서 2위 후보를 10%포인트 가까운 득표율 차로 제치며 111대 뉴욕 시장에 당선됐다. 그의 당선은 인종 갈등, 빈부 격차 등 미국 사회 여러 문제에 급진적 대안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주류로 편입되는 분기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내년 중간선거뿐 아니라 이후 미국 정치 전반에 깊은 영향을 끼칠 것으로 평가된다.

 

맘다니 후보는 5일 91% 개표율 현재 103만여표(50.4%)를 얻어 85만여표(41.6%)에 그친 무소속 앤드루 쿠오모(67) 전 뉴욕주지사를 여유 있게 눌렀다. 공화당 후보 커티스 슬리와(71) 후보는 14만6000여표(7.1%)에 그쳤다. 미국 언론들이 투표 종료 30여분 만에 앞다퉈 그의 당선을 발표할 정도로 여유 있는 승리였다.

 

투표 열기는 역대급이었다. 뉴욕시 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200만명이 넘는 뉴욕 시민들이 투표에 참여했으며 이는 최근 50년 내 가장 높은 투표율이었다. 사전투표자 수도 73만5317명으로 대통령 선거를 제외하면 뉴욕시 역사상 가장 높았다. 2021년 뉴욕시장 선거 때 사전투표자 수는 약 17만명이었다.

 

1년 전만 해도 정치적 존재감이 거의 없던 맘다니 후보는 치솟는 생활비 문제에 집중하면서 지난 6월 민주당 당내 경선에서 쿠오모 전 뉴욕주지사를 꺾는 이변의 주인공이 됐다. 선거운동 기간 내내 ‘주거·생활비 부담 완화’를 중심 의제로 내세운 그는 공공보육, 무상 시내버스, 시립 식료품점 설립 등 서민생활 지원 정책을 핵심 정책으로 내세웠다. 연소득 100만달러 이상 고소득자에게 2%포인트 세율 인상도 주장해왔다. 전략적인 소셜미디어 활용도 당선 1등 공신으로 꼽힌다.

 

그의 공약을 두고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비판도 많다. 공공 서비스 확충을 위한 증세 카드는 뉴욕주 의회와 주지사의 승인이 필요하다. 생활비 경감을 위한 대책이 경제 이론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 기반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2021년부터 임기 2년의 주 하원의원에 세 번 연속 당선된 것이 유일한 공직 경력이다 보니 ‘경험 부족’이라는 꼬리표를 극복하는 것도 과제다.

 

아프리카 우간다 태생으로 2018년 미국 시민권을 취득한 그는 대통령 선거 출마 자격이 없다. 하지만 그의 당선은 민주당 내 민주사회주의자 그룹에 큰 동력을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내년 중간선거를 앞두고 ‘민주당의 미래는 어디인가’를 중심으로 격렬한 내부 투쟁에 빠져들 가능성이 있다.

 

그의 당선으로 각종 기록도 세워지게 된다. 그는 최초의 무슬림 시장 및 남아시아계 시장이면서 1974년 취임했던 영국 태생의 에이브 빔 시장 이후 약 50년 만에 이민자 출신 시장이 된다. 1914년 존 퍼로이 미첼 이후 두 번째로 젊은 뉴욕 시장이기도 하다. 

                                                                                < 뉴욕/김원철 특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