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 하마스 무장해제·이스라엘 철군 일정 요구 사우디 "그 이전엔 가자 재건 자금 못 대" 인도네시아, 가자 ISF에 병력 파견 약속
옵저버 한국 외무부 "전투 임무엔 참여하지 않을 것" 유럽국 대다수 불참…한국은 "검토 중"
이스라엘, 휴전 합의 위반해 가자 공습 휴전 이후만도 팔 사망자 600명 넘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주도하는 '평화위원회'(BoP)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평화 방안을 논의하고자 19일 워싱턴D.C에서 첫 회의를 개최한다.
작년 10월 카타르, 이집트와 함께 이스라엘과 하마스를 중재해 자신의 가자 지구 평화 구상 1단계인 휴전 합의와 인질·수감자 교환을 끌어낸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회의에서 폐허가 된 가자의 재건이란 평화 구상 2단계 실행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지만, 상황은 전혀 녹록지 않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2일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 연례 회의를 계기로 '평화위원회'(BoP) 출범식을 갖고 연설하고 있다. 2026. 01. 22 [UPI=연합]
'유엔 대체' 의도 지닌 '트럼프 평화위'
유럽국 대다수 불참…한국은 "검토 중"
가장 큰 문제는 이 '평화위원회'의 불투명한 정체다. 트럼프는 당초 이 위원회를 가자 전쟁 종식과 재건이 완료될 때까지 가자를 통치할 최고 의사 결정 기구라고 밝혔지만, 실제론 가자 뿐 아니라 모든 국제 분쟁에 관여하는 사실상의 유엔 대체 기구로 변질시키고 있어서다. 트럼프가 지난달 각국 정상들에게 보낸 가입 초청장에 첨부된 평화위 헌장엔 '가자'란 표현이 없었다. 또한 본인에게 '종신 의장직'을 부여해 이 기구를 장악하겠다는 의도를 분명히 했다.
그러자 예전 같으면 누구보다 발 벗고 나섰어야 할 서방 진영 국가 대다수가 참여를 거부하거나 관망하고 있는 상태다. 영국, 프랑스, 독일, 폴란드, 교황청이 불참을 통보한 대표적 유럽 국가다.
1월 22일 스위스 다보스에서 출범한 '평화위원회'에는 지금까지 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UAE)·카타르·이집트·요르단·바레인·튀르키예·파키스탄·카자흐스탄·인도네시아·베트남·몽골·우즈베키스탄·아르헨티나·파라과이·헝가리·불가리아·알바니아·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코소보, 그리고 이스라엘 등 20여 개국이 참여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지난달 20일 미국으로부터 초청장을 받은 사실을 공개한 뒤 외교부 당국자의 말을 빌어 어떤 국가들이 참여할지 등을 종합적으로 봐야 판단할 수 있을듯하다.…시간을 가지고 검토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재명 정부는 회의 하루 전인 18일까지 참여 여부에 대한 추가적 입장 표명은 하지 않고 있다. 일본은 첫 회의에 가입은 보류한 채 가자재건지원 담당 대사를 파견하기로 했다.
이른바 '트럼프 평화위'는 가자 지구 재건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 개혁 프로그램 완료 때까지 가자 주민에게 일상의 서비스와 행정을 제공하는 팔레스타인 기술관료 중심의 실무기구인 가자행정국가위원회(NCAG)를 감독한다.
영국 총리 키어 스타머, 독일 총리 프리드리히 메르츠, 프랑스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이 8일 영국 총리 관저인 런던 다우닝가 10번지에서 헤어지고 있다. 2025. 12. 08 [EPA=연합]
아랍권, 명확한 무장해제·철군 일정 요구 사우디 "그 이전엔 가자 재건 자금 못 대"
다음은 앞으로 이 위원회가 풀어야 할 과제의 방대함과 복잡성이다. 가자 재건과 안정화를 위해 하마스의 무장해제, 이스라엘의 철군, 국제안정화군(ISF) 병력 배치와 팔레스타인 경찰력 도입 문제 등이 서로 연계돼 고차방정식을 풀어야 한다. 여기에 예민한 팔레스타인 국가 독립 문제도 얽혀 있다.
사실상 트럼프의 우격다짐에 밀려 아랍과 이슬람권 국가들이 대거 동참했지만 하마스의 무장해제 합의와 가자에서 이스라엘의 완전한 철군 일정 없이는 국제안정화군에 병력 파견이나 가자 재건에 자금 투입을 하지 않겠다는 분위기다. ISF는 가자지구에 안보나 치안 공백이 없도록 접경지대를 지키고 팔레스타인 경찰력 강화를 돕는다는 취지에서 창설되는 다국적군이다.
더타임스오브이스라엘에 따르면, 사우디의 파이살 빈 파르한 알 사우드 외무장관은 13일 뮌헨안보회의 연설을 통해 "우리는 분쟁의 진짜 종식을 봐야 한다. 이스라엘이 언제 철수할지, 하마스는 언제 무장해제 할지, 모두가 20개 항 계획(트럼프 평화 구상)의 모든 항목을 언제 준수할지에 대한 명확성이 필요하다"라면서 사우디는 그 이전에 가자 재건 자금을 댈 수 없다고 말했다.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에서 이스라엘 군 차량 행렬이 지나가고 있다. 2024. 11. 09 [로이터=연합]
인도네시아, 가자 ISF에 병력 파견 약속 외무부 "전투 임무엔 참여하지 않을 것"
앞서 트럼프는 15일 본인의 트루스 소셜을 통해 평화위에 참여하는 국가들이 가자의 인도적 지원과 재건을 위해 50억 달러(약 7조2000억 원) 지원을 약속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는 세계은행, 유럽연합(EU), 유엔이 작년 2월에 공동 발표한 보고서가 가자의 완전한 회복과 재건에 500억 달러 이상이 필요하다고 추산했던 것에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연합뉴스는 전했다.
가자 국제안정화군 병력 파견도 간단치 않은 문제다. 세계 최대 무슬림 국가인 인도네시아가 맨 먼저 나섰다. 이르면 4월부터 시작해 6월까지 다양한 병과로 구성된 최대 8000명 규모의 여단 병력을 보내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도네시아 외무부는 성명을 통해 가자 파견 병력은 하마스 등 현지 무장단체들과 충돌로 이어질 수 있는 전투 임무에는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외무부는 "민간인 보호, 인도적 및 보건 지원, 재건, 그리고 팔레스타인 경찰의 역량 강화 및 훈련에 집중될 것"이라면서 팔 자치정부의 승인도 요청했다.
결국 이번 회의에서 트럼프가 검증이 가능한 하마스의 무장해제 방안과 명문화된 이스라엘의 철군 일정에 관한 청사진을 동시에 제시하지 못하면 '트럼프 평화위'는 유명무실해질 수 있다.
17일 가자 남부 칸 유니스 해변에 팔레스타인 예술가 야지드 아부 자라드가 '환영한다, 라마단'이라는 문구를 모래에 새겨 넣었다. 아부 자라드는 전쟁으로 인해 가자 북부 베이트 라히아에 있는 집을 떠나 남부로 피난했다.2026. 02. 17 [EPA=연합
이스라엘, 휴전 위반해 가자 공습, 드론 공격 작년 10월 휴전 이후 팔 사망자 600명 넘어
작년 10월 휴전에도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 정권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것도 큰 문제다. 휴전 이후 줄기는 했지만, 이스라엘은 휴전을 위반해 거의 매일 공습과 드론 공격을 가했으며, 휴전 이후 사망자만 600명이 넘었다. 인도적 지원의 선택적 허용과 접경지대 검문소 통제 등을 통해 가자 주민을 여전히 고통 속에 몰아넣고 있다. 이스라엘은 또한 팔 자치정부가 관할하는 요르단강 서안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하고 정착민들의 폭력을 방조하면서 서안 합병 작업을 추진하는 모양새다. 트럼프가 이런 이스라엘의 휴전 위반과 서안 합병 추진 행위들에 눈감고 계속 이스라엘을 두둔한다면 아랍과 이슬람권 국가들은 평화위에서 탈퇴하라는 국내 비판 여론의 압박에 노출될 공산이 크다.
하마스는 현재 이스라엘의 봉쇄와 공격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저항할 권리가 있다며 완전한 무장해제를 거부하고 있다. 그러나 권총 등은 보유하되 중화기는 해체할 수 있음을 내비치고 있다. 미국 일부에선 하마스 요원들에게 무기 반납 대가로 보상금과 면죄부를 주는 아이디어를 내놓고 있다. 그러나 네타냐후 정권은 하마스의 완전한 무장해제를 거듭 요구하고, 60일간 무장해제를 하지 않으면 군사 공격을 재개하겠다고 압박하고 있다. 트럼프도 15일 본인의 트루스 소셜을 통해 "하마스가 완전하고 즉각적인 무장해제 약속을 지키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썼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15일 예루살렘에서 열린 '주요 미국 유대인 기구 의장 협의회' 개막식에서 연설하고 있다. 2026. 02. 15 [UPI=연합]
"트럼프, 평화 구상 2단계 시작하려면, 이스라엘 네타냐후의 팔도 비틀어야"
싱가포르라자트남 국제학대학원 선임 연구원인 제임스 도르시 박사는 16일 자 유라시아리뷰 기고에서 "지금까지 트럼프는 하마스가 무장해제에 실패하면 끔찍한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위협하며 하마스를 압박해왔지만, 이스라엘의 휴전 위반에는 눈을 감아왔다"면서 "평화 구상의 2단계를 시작하려면 트럼프는 하마스뿐 아니라 네타냐후의 팔도 비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도르시는 "이미 많은 이들은 이 위원회를 팔레스타인의 이익이 아닌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익을 대변하는 수단으로 보고 있다"며 "이스라엘이 가자 공격을 재개한다면 아랍과 무슬림 다수의 국가들은 평화위에서 탈퇴하라는 대중적 압박을 받게 될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 이유 기자 >
1968년 멘토인 킹 목사 암살 옆에서 지켜봐 흑인들 삶 개선, 정치적으로 조직하는 데 앞장 1984년과 1988년 민주당 대선 후보 지명 나서
시리아, 쿠바 등에 억류된 인질 석방에도 보탬 '흑인 목숨도 소중' 시위에도, 경찰을 강력 규탄 트럼프와 민주당 전직 대통령들 일제히 애도
마틴 루터 킹(오른쪽 두 번째)이 암살되기 하루 전인 1968년 4월 3일(현지시간) 멤피스 호텔 발코니에 호사 윌리엄스(왼쪽), 제시 잭슨(왼쪽 두 번째), 랄프 앨버너시와 함께 서 있다. AP 자료사진
미국 흑인 민권 운동에 앞장섰던 제시 잭슨 목사가 8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유족은 17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고인이 이날 아침 가족들에 둘러싸인 채 평화롭게 눈을 감았다고 전하며 "우리 아버지는 우리 가족뿐만 아니라 억압 받고 목소리 없는 이들, 그리고 전 세계에서 소외된 이들을 섬기는 리더였다"고 안타까워했다.
제시 잭슨 목사. 뉴욕타임스 2월 17일
잭슨 목사는 1960년대 마틴 루터 킹 목사와 함께 민권을 위해 싸웠고, 1984년과 1988년 두 차례나 민주당 대선 후보 지명 경쟁에 뛰어들었다. 앤서니 저커 BBC 기자는 고인이 킹 목사의 애제자로서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삶을 정치적으로 조직하고 개선하는 데 힘쓰는 일로 경력을 쌓았으며, 두 차례의 백악관 선거운동 기간 동안 전국적인 지도자가 됐다고 적었다.
잭슨 목사가 1984년 첫 대선 유세 당시 뉴올리언스의 루이지애나 슈퍼돔에서 흑인 교회 지도자들을 대상으로 연설하고 있다. 그는 그해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나의 지지층은 절망에 빠진 사람들, 저주받은 사람들, 상속권을 박탈당한 사람들, 존중받지 못하는 사람들, 멸시받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뉴욕타임스 2월 17일
그는 2017년 파킨슨씨 병 진단을 받았으며 지난해 11월 퇴행성 진단을 받은 뒤 입원 치료 중이었다.
잭슨 목사는 멘토였던 킹 목사가 주도한 1960년대의 민권 운동 시절부터 흑인과 소외 계층의 권익 향상에 앞장서 왔다. 시카고를 기반으로 1971년 흑인 민권 단체 ‘오퍼레이션 브래드바스켓(푸시)’을, 1984년에는 여성 권익과 성소수자 권익까지 아우르는 단체 ‘전미 레인보우 연합’을 각각 설립했다. 두 단체는 1996년 ‘레인보우푸시연합(RPC)’으로 합병됐다.
잭슨 목사는 2023년 RPC 회장 직에서 물러나기 전까지 50년 이상 단체를 이끌며 인권 운동에 투신했다. 공식 직함은 없었지만 시리아, 쿠바, 이라크, 세르비아 등 해외에 억류된 미국인과 다른 나라 사람의 석방을 이끌어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다.
가장 최근 민권 관련 운동에 참여한 것으로는 2020년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시위를 촉발한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 때 경찰의 가혹 행위를 강력 규탄하기도 했다.재작년에는 위스콘신주 라신을 방문해 젊은이들의 대선 투표 참여를 독려했다. 지난해에는 '타깃'(Target)이 다양성, 형평성, 포용성(DEI) 프로그램을 축소하자 해당 기업 불매운동에 동참했다.
2016년의 제시 잭슨 목사. 연합
본명은 제시 루이스 번스. 1941년 10월 8일 사우스캐롤라이나주 그린빌에서 태어났다. 모친 헬렌 번스는 열여섯 살이었고, 부친 노아 루이스 로빈슨은 프로 권투 선수 출신 유부남이었다. 제시가 두 살 때 헬렌은 찰스 잭슨과 결혼했다. 제시는 열세 살 때까지 조모 매틸다와 함께 살았다. 그러고나서 제시는 찰스 잭슨의 집에 1957년 의붓아들로 입양됐다.
그린빌의 스털링 고등학교에서 잭슨은 마이너리그 야구선수 계약과 빅텐 미식축구 장학금을 받기로 하고 졸업했다. 그는 쿼터백으로 활약하고, 노스캐롤라이나 농업·기술 대학으로 전학가기 전에 일리노이 대학 어배너-섐페인에서 1년을 보냈다. 1964년 사회학 학위를 받고 졸업할 무렵, 동급생 재클린 브라운과 결혼해 다섯 자녀 가운데 첫째를 맞았다.
잭슨은 1966년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열린 남부 기독교 지도자 회의(SCLC)에서 마틴 루터 킹 목사와 함께 했다. 2년 뒤 킹 목사가 암살당하자 그의 뜻을 이어받고자 했다. 뉴욕타임스 2월 17일
대학을 마친 뒤 시카고의 신학교에서 신학 전공들을 시작했고 킹 목사를 지원하는 학생들을 조직했다. 1965년 3월 잭슨은 킹 목사와 함께 역사적인 셀마 몽고메리 행진을 위해 앨라배마주로 여행을 떠났다. 1년 후 그는 남부기독교지도회의를 전담하겠다며 신학교를 그만 뒀다.
1968년 킹 목사가 암살돼 스러졌을 때 그 곁을 지켰다. 당시 함께 한 랄프 앨버너시와 함께 남부기독교지도회의를 누가 이끌지를 놓고 경쟁했다.
인질 석방에 그가 기여한 것을 높이 산 빌 클린턴 대통령은 1997년 잭슨을 아프리카 특별 교섭인으로 임명했다. 일각에서는 잭슨이 세 번째 대선 출마를 포기한 데 대한 보상으로 2000년 대통령 자유 훈장이 수여됐다고 보기도 했다. 2001년 잭슨은 직원의 불륜 행각과 공금 유용 등의 혐의를 인정한 뒤 잠시 남부기독교지도회의를 물러나기도 했다.
오바마의 정책들을 비판하긴 했어도 잭슨은 오바마의 2008년 대선 승리를 이끈 주인공 중 한 명이었다. 오바마 선거의 밤에 잭슨은 무대에 올라 킹 목사와 민권운동을 위한 분투에서 숨진 이들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혀 화제가 됐다.
잭슨 목사는 2008년 11월 4일 밤, 시카고 그랜트 파크에서 군중들과 함께 일리노이주 상원의원 버락 오바마의 대통령 당선이 유력시되는 소식을 축하하며 눈물을 흘렸다. 잭슨 목사는 두 번이나 대통령직에 도전했다. 뉴욕타임스 2월 17일
일간 뉴욕 타임스(NYT)는 언어의 힘과 비범한 에너지, 그리고 야망을 통해 인종적으로 모호했던 시대, 짐 크로우 법이 여전히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있고 흑인의 정치적 권력이 현실보다는 열망에 가까웠던 시대에 도덕적,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물이었다고 평가했다. 고인을 탐탁치 않게 봤던 이들은 그가 킹 목사처럼 되고 싶어 안달했다고 봤다. 자신의 삶을 신화로 만들고 싶어했다는 것이다.
그는 미국 사회의 주변부에 있던 유색인종과 소외 계층을 포용하는 연합체가 이제 전면에 나서서 사회를 변화시킬 것이라는 비전을 설파했다. 미국 사회에 만연한 불평등에 맞서기 위해 적극적인 정부의 지원을 받는 다인종 연합이라는 그의 비전은 민주당 진보 진영의 핵심 사상으로 남아 있으며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같은 단체에 영감을 줬다.
자만심, 카리스마, 언론의 관심을 끌어모으는 능력은 남부기독교지도회의의 다른 구성원들에게 그의 야망에 대한 의심을 불러일으켰고 킹 목사와의 갈등으로까지 이어졌다.
스탠퍼드대 역사학과 클레이본 카슨 교수는 잭슨이 두 시대 사이에 끼어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했다. 즉, 킹 목사처럼 명실상부 영웅적인 인물이 되기에는 너무 늦었고, 버락 오바마처럼 정치 최고위직에서 성공하기에는 너무 일렀다는 것이다. 정치 지도자보다는 도덕적 지도자에 머물 수 밖에 없었다는 뜻이다.
잭슨 목사는 1986년 전두환 정권에 민주화를 촉구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고, 32년 만인 2018년 두 번째로 찾았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트루스소셜에 "나는 대통령이 되기 훨씬 전부터 그를 잘 알았다"며 "그는 강한 개성과 투지, 실용적 지식(street smarts)을 지닌 좋은 사람이었다. 그는 매우 사교적이었으며, 진정으로 사람들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고 적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특히 "제시는 그 이전에도 보기 드문 자연 같은 존재(force of nature)였다"고 칭송했다. 대자연처럼 거스르기 힘든 영향력을 갖춘 인물이었다는 뜻인 것 같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 당선된 것과 관련해 "그(잭슨 목사)는 오바마의 당선에 큰 역할을 했으나, 인정받거나 공로를 인정받지 못했다. 오바마는 제시가 견딜 수 없었던 인물"이라고 했다.
또한 자신이 잭슨 목사에게 여러 도움을 준 것도 소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극좌의 악당과 미치광이들, 모든 민주당원들이 나를 거짓으로 일관되게 인종차별주의자라고 했지만, 나는 항상 제시를 돕는 게 기뻤다"며 "월스트리트 40번지의 트럼프 빌딩에 수년간 그와 그의 레인보우 연합을 위한 사무 공간을 제공했다"고 했다.
민주당 출신 전직 대통령들도 당연히 추모 행렬에 동참했다.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은 엑스(X)에 올린 성명을 통해 "수십년에 걸친 우리의 우정과 협력 속에서 나는 잭슨 목사를 역사가 그를 기억하는 대로 알고 있다"며 "신의 사람이자 국민의 사람, 단호하고 끈질긴, 우리나라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한 일을 두려워하지 않는 분이었다"고 밝혔다.
지난 2024년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맞붙은 카멀라 해리스 전 부통령은 엑스에 젊은 법대생 시절 자신의 차에 '제시 잭슨을 대통령으로'(Jesse Jackson for President)라고 쓰인 스티커를 붙이고 다녔다는 일화를 전했다. 해리스 전 부통령은 "내 경력을 통틀어 그와 함께 협력하며 배울 수 있어 자랑스러웠다. 그리고 올해 1월 함께한 시간에 매우 감사하다"며 "잭슨 목사는 저와 다른 많은 이들에게 이타적 지도자이자 멘토, 친구였다"고 회상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아내) 미셸과 나는 진정한 거인, 잭슨 목사의 별세 소식을 듣고 깊은 슬픔에 잠겼다"며 "그는 두 차례에 걸쳐 역사적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며 내가 이 나라 최고위 직책에 도전하는 캠페인의 토대를 깔았다"고 애도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60년 이상 잭슨 목사는 인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변화 운동을 이끌었다"면서 "우리는 그의 어깨 위에 서 있다"고 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공동으로 낸 성명에서 두 사람이 잭슨 목사와 리틀 록 센트럴 고등학교가 백인 전용에서 흑인 학생을 통합하는 학교로 바뀐 지 20년이 되던 해인 1977년에 처음 만나 거의 50년 간 친구로 지냈다고 돌아봤다.
클린턴 부부는 또 "잭슨 목사는 인간 존엄성을 옹호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더 나은 삶을 살 기회를 창출하는 데 기여했다"며 "더 나은 미국과 더 밝은 미래를 위한 일을 절대 멈추지 않았다. 흑인, 라티노, 아시안, 그리고 저소득 백인 미국인의 문제를 위해 싸웠다"고 평가했다.
< 임병선 기자 >
미국 흑인·인권 운동의 별 제시 잭슨 목사 별세…한국 민주화도 지지
제시 잭슨 목사가 2018년 방한 당시 한겨레와 인터뷰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미국의 저명한 흑인 인권 운동가 제시 잭슨 목사가 17일(현지시각) 세상을 떠났다고 유족이 성명을 통해 발표했다. 향년 84.
유족은 성명에서 잭슨 목사의 부고를 알리며 “아버지는 우리 가족뿐 아니라 전 세계의 억압받고 소외된 이들, 목소리 없는 이들을 섬기는 지도자였다”고 추모했다고 미국 언론들이 전했다. 앞서 잭슨 목사는 2017년 파킨슨병 진단을 받고 투병 중인 사실을 공개한 바 있다.
잭슨 목사는 그의 멘토였던 마틴 루서 킹 목사가 주도한 1960년대 민권 운동 시절부터 미국 흑인과 소외 계층의 권익 향상에 앞장서 왔다. 시카고를 기반으로 활동하며 1971년 흑인 민권 단체 ‘오퍼레이션 푸시'를, 1984년에 여성 권익과 성소수자 권익까지 아우르는 민권 단체 ‘전미 무지개 연합'을 각각 설립했다. 두 단체는 1996년 ‘레인보우푸시연합(RPC)'으로 합쳐져 미국 내 소외계층을 대변하는 조직으로 거듭났다. 잭슨 목사는 2023년 RPC 회장직에서 물러나기 전까지 50년 이상 단체를 이끌며 인권 운동에 투신했다.
인종, 성, 종교를 뛰어넘어 소외된 이들을 결집한 무지개 연합은 미국의 첫 흑인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의 대선 승리를 뒷받침한 토대가 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잭슨 목사는 1984년과 1988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출마해 흑인 유권자들과 백인 자유주의자들의 지지를 끌어내며 선전하기도 했다.
탁월한 연설과 실천으로 인종차별과 사회적 불평등의 해소에 앞장서 온 그는 비공식적인 외교로도 유명했다. 공식적인 직함은 없었지만 그는 시리아, 쿠바, 이라크, 세르비아 등 해외 분쟁지에 억류된 미국인과 타국인들의 석방을 끌어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잭슨 목사는 말년에도 꾸준히 흑인 인권을 위한 목소리를 냈다. 그는 2020년 ‘흑인 생명은 소중하다' 시위를 촉발한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 때 경찰의 가혹 행위를 강력히 규탄하기도 했다.
1986년 방한한 제시 잭슨 목사가 야당 지도자로 가택연금 중이던 김대중 전 대통령과 만나고 있다. 한겨레 자료 사진
한국과 인연도 깊다. 잭슨 목사는 전두환 정권 시절이던 1986년 한국을 방문해 비무장지대(DMZ)를 방문하고 가택연금 상태였던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을 만났다. 그는 김대중 전 대통령을 ‘한국의 넬슨 만델라'(세계적 인권 운동가이던 남아프리카공화국 전 대통령)로 부르며 지지를 표했다. 잭슨 목사는 2018년 두 번째 방한 때는 한국 정치권, 종교계 등과 폭넓게 교류하며 한반도에 평화 메시지를 전했다. < 박민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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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라는 말 무겁게…유불리에 따른 소비 안 돼 계산이 아닌 신뢰가 중심되는 정치 출발점 되길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 '돈봉투 살포' 의혹과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소나무당 송영길 대표가 13일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2심 선고 공판에서 무죄를 선고 받은 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과 법원 청사 앞에 서서 입장을 밝히고 있다. 2026.2.13. 연합
서울고등법원은 지난 13일 송영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소나무당 대표)에 대한 불법 정치자금 수수 및 ‘돈봉투 의혹’과 관련한 항소심에서 모든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검찰이 제시한 증거만으로는 피고인의 직접 수수나 공모를 합리적 의심 없이 입증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진술의 신빙성과 자금 흐름의 구체성이 부족하다는 점이 핵심 이유였다. 형사재판의 기본 원칙, 즉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법리가 다시 한 번 확인된 셈이다.
이 판결은 단순히 한 정치인의 사법적 운명을 뒤집은 사건이 아니었다. 그것은 정치가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지, 권력의 흐름 앞에서 얼마나 빠르게 태도를 바꾸는지를 드러낸 장면이었다. 동시에 민주주의라는 이름 아래 우리가 얼마나 쉽게 감정과 진영 논리에 휘둘리는지를 보여주는 거울이기도 했다.
처음 사건이 불거졌을 때를 떠올려 보자. 2021년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이 수면 위로 떠오르던 순간, 정치권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언론은 연일 속보를 쏟아냈고, 검찰 수사는 전광석화처럼 진행됐다. 그리고 한 사람의 이름이 집중 포화를 맞았다. 송영길 전 대표였다.
그때 당 안에서 울려 퍼진 목소리는 무엇이었는가. “당에 부담을 줘선 안 된다”, “수사에 성실히 임하라”는 원론적 발언이 대부분이었다. 공개적으로 그를 감싸는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그는 어느새 ‘리스크’가 되었고, ‘거리두기 대상’이 되었으며, 정치적 계산의 저울 위에 올려진 존재가 되었다. 권력의 무게추가 기울어질 때 정치인들의 발걸음은 놀라울 만큼 빠르다. 그들은 누구보다 민감하게 바람의 방향을 읽는다.
1심에서 유죄가 선고되자 분위기는 더욱 냉혹해졌다. 법원의 판단은 아직 확정되지 않은 1심이었지만, 정치권과 일부 언론은 이미 종결된 사건처럼 다루었다. 유죄는 곧 낙인이 되었고, 낙인은 곧 퇴장을 의미했다. 전화는 줄었고, 만남은 끊겼다. 함께 웃으며 사진을 찍던 이들은 침묵했다. 그 침묵은 중립이 아니라 사실상의 단절이었다.
그러나 항소심에서 무죄가 선고되자 상황은 급변했다. 1심을 뒤집는 판결이 나오자, 정치판의 공기도 순식간에 달라졌다. 그를 멀리하던 사람들이 다시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 “고생 많았다”, “정의가 살아 있다”, “당의 소중한 자산이다”라는 말들이 쏟아졌다. 언론 앞에 서는 의원들의 표정은 밝았고, 마치 처음부터 그를 신뢰하고 있었던 듯한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이 장면은 질문을 던진다. 그들이 지지하는 것은 사람인가, 판결인가. 동지인가, 정치적 자산인가. 정치는 현실이다. 이해관계와 세력 균형, 권력의 흐름 위에서 움직인다. 이상만으로 굴러가지 않는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최소한의 도리마저 포기해도 되는 것은 아니다. 유죄가 확정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동료를 ‘정리 대상’으로 분류하고, 무죄가 나오자마자 다시 ‘동지’로 복권시키는 태도는 과연 정치적 현실주의라는 말로 정당화될 수 있는가.
정당은 가치 공동체라고 말한다. 같은 노선과 비전, 철학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결사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그 공동체의 구성원이 법정 다툼 속에 있을 때, 최소한 절차적 존중과 신뢰는 보여야 하지 않는가. 정치적 책임을 묻는 것과 사람 자체를 지워버리는 것은 다르다. 직을 내려놓게 하는 것과 인간적 관계를 끊어버리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이번 사건은 정치가 얼마나 빠르게 사람을 소비하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권력의 중심에 있을 때는 환호가 넘치지만, 위기에 빠지면 적막이 흐른다. 그리고 다시 힘을 회복하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사람들이 돌아온다. 그 과정에서 가장 크게 훼손되는 것은 신뢰다.
국민은 이 장면을 지켜본다. “동지”라는 말이 얼마나 가벼워졌는지, “원칙”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지 기억한다. 정치가 신뢰를 잃는 순간 민주주의의 토대도 함께 흔들린다. 민주주의는 단지 선거로 권력을 교체하는 제도가 아니다. 그것은 절차와 원칙에 대한 공동의 신뢰 위에 서 있는 체제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더 넓은 문제로 시선을 돌려야 한다. 최근 정치권과 지지자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또 다른 장면들이다. 어떤 이는 특정 인물을 미워한다는 이유로 오랜 정치적 동지였던 세력을 떠나 다른 진영으로 이동한다. 또 어떤 이는 새롭게 권력을 잡은 인물을 옹위한다는 명분 아래, 다른 인물에 대한 혐오를 조직적으로 선동한다. 겉으로는 서로 반대편에 서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작동 방식은 놀라울 만큼 닮아 있다.
예컨대 이재명을 미워한다는 이유로 등을 돌려 이낙연을 따라간 사람들과, 이제는 이재명 대통령을 옹위한다는 명분 아래 조국에 대한 혐오를 선동하는 사람들은, 방향만 다를 뿐 감정의 정치에 기대고 있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그들의 판단 기준은 일관된 민주적 원칙이 아니라, ‘좋아함’과 ‘싫어함’이라는 감정의 축이다. 신념보다는 동일성의 위협 여부가 우선한다.
민주주의는 사람을 따르는 체제가 아니라 원칙을 따르는 체제다. 특정 정치인을 사랑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 사랑이 다른 사람에 대한 증오로 전환되는 순간, 민주주의 토양은 황폐해진다. 특정 정치인을 비판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비판이 공적 가치와 정책적 논쟁이 아니라 개인적 반감과 감정의 배설에 머문다면, 그것 역시 민주적 태도라 할 수 없다.
정치적 부족주의는 늘 매혹적이다. 나와 같은 편을 무조건 지지하고, 다른 편을 무조건 악으로 규정하는 방식은 단순하고 강렬하다. 그러나 그 단순함은 민주주의를 좀먹는다. 법적 판단이 나오기도 전에 정치적 단죄를 서두르는 태도, 자신이 싫어하는 인물에게는 최소한의 절차적 정의조차 허락하지 않으려는 태도는 결국 자신이 지지하는 인물에게도 되돌아온다.
이번 송영길 무죄 판결이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첫째, 법적 판단 이전에 정치적 사형선고를 내리지 말라는 것이다. 형사재판은 증거와 법리에 따라 판단하는 절차다. 여론의 크기나 정치적 이해관계가 아니라, 입증의 엄격함이 기준이 되어야 한다. 둘째, 동지라는 말의 무게를 가볍게 만들지 말라는 것이다. 어려울 때 함께 서지 못하는 연대는 유리할 때의 연대와 다르지 않다. 셋째, 사람을 유불리에 따라 소비하는 정치를 반복하지 말라는 경고다.
더불어민주당이라는 이름에는 ‘민주’와 ‘연대’라는 단어가 담겨 있다. 연대는 이길 가능성이 높을 때만 작동하는 장치가 아니다. 오히려 패배와 위기의 순간에 시험받는 가치다. 무조건적인 옹호를 하라는 뜻이 아니다. 다만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최소한의 절차적 존중과 인간적 신뢰를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권의 집단 심리는 냉혹하다. 한 사람의 정치적 생명이 흔들릴 때 많은 이들은 계산기를 두드린다. 그와 가까이 서는 것이 이익인지 손해인지 따진다. 그러나 정치가 계산의 기술에만 머무를 때, 국민은 등을 돌린다. 정치가 신뢰의 예술이 되지 못한다면, 민주주의는 형식만 남는다.
바람은 언제든 바뀐다. 오늘의 무죄가 내일의 위기를 보장하지 않는다. 오늘의 권력이 영원하지 않듯, 오늘의 고립도 영원하지 않다. 그렇기에 더욱 원칙이 필요하다. 바람에 따라 움직이는 태도가 아니라, 바람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기준이 필요하다.
이번 사건이 단지 한 사람의 정치적 복권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그것이 우리 정치의 성찰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감정과 진영 논리를 넘어, 절차와 원칙을 존중하는 문화로 나아가기를 바란다. 동지를 쉽게 버리지 않고, 적을 쉽게 악마화하지 않는 정치. 유불리를 넘어 인간의 존엄과 법적 추정을 지키는 정치. 그럴 때에야 비로소 국민은 정치의 말을 다시 들을 것이다. 바람이 아니라 원칙이 기준이 되는 정치. 계산이 아니라 신뢰가 중심이 되는 정치. 이번 판결이 그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 박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