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에서 ‘광’으로… 못말리는 ‘수집벽’

● 건강 Life 2013. 4. 16. 14:37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내 감각, 취향에 맞는 물건들을 찾고 모아 정리하는 재미 쏠쏠
“그게 문화고 예술이죠”

봄을 맞이하며 “버려야 산다”는 ‘버림교’가 유행하게 되지만 오래된 수집 본능을 누를 수 있을까. 
우리 시대의 신종 수집가들은 단돈 몇푼이면 살 수 있는 싸구려 상품들을 모은다. 예술의 눈으로 보면 키치에 가깝다. 필리프 블롬은 <수집>이라는 책에서 “키치는 기계생산시대에 수집의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대량생산이 이루어짐으로써 사람들은 비로소 완전한 세트를 갖춘다는 목표를 갖게 되었는데 이는 구할 수 있는 물건을 닥치는 대로 수집하던 시대에는 가능하지 않았던 사고방식”이라고 말했다.
 
수집가들은 오랫동안 모아온 것들을 함께 모아 전시회를 열기도 한다. 전시라지만 값비싼 미술품은 없다. 일상 잡화 신봉자인 이들은 코카콜라 캔, 스타벅스 텀블러, 베어브릭 인형, 플레이모빌 같은 완구류, 심지어는 오래된 잡지 표지를 곱게 모아 정리하기도 했다. 쉽게 사고 쉽게 버려지는 물건들이 수집가의 손에 들어가면 새 생명을 얻는다. 
코카콜라 캔은 세계 어디서나 1달러 남짓한 돈으로 살 수 있는 값싼 전리품이다. 그러나 구하기 어려운 캔이나 병은 수집가들 사이에 비싼 값으로 거래되기도 한단다. 1988년 서울올림픽 당시 호돌이가 그려진 코카콜라병이 나왔다. 외국에서는 지금 우리 돈으로 50만원 정도에 거래되는 희귀 품목이다. 2002년 한·일 월드컵 조추첨 행사장에서만 돌려졌던 코카콜라병은 20만원 정도다. 이쯤 되면 콜라를 마시면 병을 버리기가 아까울 만도 한데 그 값은 영원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코카콜라 수집품을 전시한 김근영씨는 “지금 값싼 아이템을 수집하는 사람들은 예전엔 대부분 화폐나 우표를 모으던 사람들이다. 1997년 IMF 구제금융 사태 때 수집품들의 가치가 갑자기 떨어지는 것을 경험하면서 많은 수집가들이 없어졌다. 수집한 물건들이 가치가 오르기를 기대하는 것은 어렵다. 돈이 많은 사람들은 뒤늦게 모으기 시작해도 무섭게 모은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양이 아니라 그 안에 있는 이야기를 모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경제위기를 기점으로 수집의 경향이 투자보다는 순수한 취미로 돌아왔다는 말이다.
 
‘저장 강박자’, ‘소비 중독자’, ‘불안증 환자’. 어떤 말로 공격해도 소용없다. 
수집가인 김상윤 씨는 바로 그러한 수집가들의 오타쿠적인 측면이 문화를 만든다고 봤다. 김 씨가 “수집은 예술적인 활동”이라고 주장하는 이유는 “수집은 일상의 속도를 조절하고 싶은 욕망에서 나오며 주변의 무엇인가에 각별한 관심을 쏟는 것은 개인이 예술가가 되는 작은 단계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책을 모으는 사람은 애서가라고 칭송받지만 장난감을 모으는 사람은 유치하다는 웃음거리가 되기 십상이다. 그러나 김 씨는 “책을 읽다 보면 읽지 않은 책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는 것처럼 수집하다 보면 모으지 않은 수집품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다. 수집은 맥락을 캐는 활동”이라고 말한다. 
건축가인 강기표 씨는 영화티켓, 포스터 등을 모은다. 개인적인 수집을 자산 삼아 영화 강연도 하게 됐다. 레고와 플레이모빌을 모아온 이주학 씨는 수집품들이 감당 못할 양으로 쌓이자 토이 뮤지엄을 열기도 했다. “십여년 전부터 해외여행을 많이 다니기 시작하면서 외국의 색다른 상품을 접하는 경험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그때부터 우리나라에도 수집동호회가 부쩍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주학 씨 말대로라면 수집이 시작된 지 10년, 이제 전시의 단계에 이른 셈이다.
 
미술평론가 박영택 씨는 지난해 <수집미학>이라는 책을 썼다. 그의 연구실은 수집가들의 마음이 편안해질 성소 같은 곳이다. 연구실 안에는 사람 하나가 간신히 지나갈 수 있을 만큼 책장을 빼곡히 들여놓았다. 책장과 책상 사이사이에는 그가 하나하나 발품 팔아 정성껏 마련한 물건들로 가득하다. 
박영택 씨는 “문구류, 특히 예쁜 볼펜은 환장하며 사는 것 같다. 끊임없이 나를 사로잡는 걸 찾아 전시장도 다니고 수없이 많은 가게들을 들락거린다. 전시장에 가서 작품을 쉽게 살 수는 없다. 대신 값싼 공산품을 끊임없이 산다”고 했다. 그는 책에서 “매일 무언가 수집하고 바라보고 좋아하면서 은밀한 시간을 보낸다. 
이 자폐적인 사물과의 독대는 그것들이 발화하는 음성을 듣는 일이자 그 생김새와 색채, 질감을 편애하는 일”이라고 썼다. 그 쾌락을 물신주의라고, 공허한 소유욕이라고, 무엇이라 불러도 좋다. 다만 이 순간만은 온전히 수집가의 것이다. “내 감각, 기호, 취향, 이런 것을 만족시키는 물건들을 찾아내 그런 것을 삶의 근거리, 내 손이 닿는 곳에 놓았을 때 즐겁다. 그게 문화고 예술”이라는 게 박영택 씨의 생각이다.
< 남은주 기자 >


수집과 중독 사이…
『나는 수집한다, 고로 존재한다』

남성잡지 <GEEK>에서 일하는 김도훈 기자는 자타 공인 스니커즈 수집광이다. 그가 지금 가진 스니커즈는 30켤레 정도. 특히 하얀색 스니커즈를 좋아해 4~5켤레는 항상 가지고 있다. 그의 광범위한 스니커즈 소장품 중에는 60만원이 넘는 신발도 있단다. “옷 같은 걸 소비하는 것은 여자의 영역으로 간주되니까 자연 남자들은 신발에 집착하게 된다”는 것이 그의 신발 수집의 변이다. 포털사이트 네이버 카페에서 보면 나이키 한정 스니커즈를 주제로 모인 카페가 여럿, 회원들 대부분이 남자다.
 
남자가 신발이라면 여자의 수집목록 1위는 단연 향수다. 이선주(46)씨는 1989년부터 향수를 모으기 시작했다. 모으고 선물받은 향수가 지금은 1500개를 넘는다. 처음에는 자신의 블로그(blog.naver.com/olive67)에 향수를 구입한 이야기, 시향기를 올리다가 향수 광고, 꽃 전시회, 향수에 관한 소설 등 향기를 주제로 점점 폭을 넓히고 있다. 이씨가 향수를 모으는 이유는 “모든 향기는 각각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고, 병 자체가 매력적이기 때문”이란다. 십수년이 지나 지금은 쓸 수 없는 향수도 많다. 향수는 태어나면서부터 변한다. 금세 변질될 변덕스러운 패션 아이템을 모으는 이유는 변하는 것을 붙잡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단종과 품절은 수집가들의 늪이다. 이토록 아름다운 물건이 곧 사라진다는 생각이 저장 강박을 부추긴다. 
전지영(38)씨는 17년 간 화장품을 모아왔다. 배우 심은하가 칼리 모델을 하다가 은퇴하면서 갑자기 그 브랜드가 사라지는 것을 경험한 뒤, 뜨는 화장품은 반드시 모은다. 중독되어 보지 못한 사람은 모른다. 벼룩시장에서 산 구두든, 마놀로 블라닉 매장에서 집어든 신발이든, 빛나는 것은 그들의 분신이다.


공업지 교회 불허·보수 땐 주차 늘려야

● 교회소식 2013. 4. 16. 14:28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토론토 시 조례 확정
주거·아파트·문화재 지역 등은 허용

교회 입지(立地) 및 건축 등의 규제를 내용으로 한 토론토시의 새 도시계획 조례안(Zoning by-law)이 지난 3일 시의회 표결에서 통과됐다. 이 조례에 따라 앞으로 교회는 공업지역에 들어설 수 없으며, 리노베이션 할 때는 주차공간을 늘리지 않으면 안되게 됐다, 그러나 주거지역은 물론 일부 상·공업지역, 문화재관리 지역 등은 당초 규제대상에서 후퇴해 허용토록 했다. 하지만 교계가 막바지 추가수정을 원했던 3개항, 즉 △표준 주차공간 기준 하향조정 △경(輕)공업지구의 입지허용 문제, △커뮤니티센터 등에 교회가 들어설 수 있음을 명기하는 것 등은 반영되지 않았다. 이에따라 조례안 변경을 추진해온 교계‘Toronto Faith Coalition’(=TFC)은 이달 25일 오전 11시 Polish Alliance Hall(2282 Lake Shore Blvd. Etobicoke)에서 모임을 갖고 향후 대책을 논의할 예정이다.
 
토론토 시의회는 3일 새 Zoning by-law의 표결에 앞서 2시간여 동안 찬반논란을 벌인 끝에 표결에 부쳐 22대16으로 통과시켜 이같은 내용의 새 조례를 확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토론토시는 종교시설의 소음과 주차 등 문제로 인근 상업·산업체들이 불편을 호소하고 주변에 신규 입주를 꺼려 결과적으로 산업활성화를 저해는 물론 세수감소에 연결된다는 등을 이유로 상업·공업지역에 교회가 위치할 수 없게 하고 용도변경도 불허토록 규제를 추진해왔다. 이에 교계는 1200여 곳의 교회 가운데 약 22%가량이 이에 저촉돼 교세 확장에 큰 지장을 줄 것이라는 공감대로 결집, TFC를 통해 조례안 저지에 나서 다수 조항이 수정되도록 했다. 그러나 최종 조례안은 교회의 예배당 점유율과 주차문제 연계, 경공업지구 입지불허 등으로 규제를 완전 백지화하지는 않은 셈이다. 이에따라 앞으로 경공업지구에도 교회가 들어설 수 없게 됐으며, 현재 입주해 있는 경우 매매나 용도변경 등에도 큰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TFC의 한인교계 대표로 활동해 온 주권태 목사(수정교회 담임)는 “확정된 조례는 교계 의견이 상당부분 반영됐으나, 남은 중요 3개항이 실현되지 못해 ‘절반의 성공’에 그친 감이 있다”면서 “앞으로 TFC 전체 의견을 모아 대책을 강구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시에서 조례가 확정됨에 따라 조항을 다시 개정 혹은 시행을 막으려면 주정부 차원에서 조치가 필요해 TFC는 이달 중 모임에서 이 문제를 협의, 교계방침을 정할 예정이라고 주 목사는 덧붙였다. 그러나 주정부-의회에서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변호사 비용만도 50만여 달러가 소요되는 등 난관이 많아 현재로서는 전망이 불투명하다. TFC는 그동안 시 조례안 대응에 12만5천 달러 정도의 변호사 비용을 들어간 것으로 밝힌 바 있다.
 
확정된 시 조례의 ‘Places of Worship’은 교계 요구에 의해 △Residential Zones △Apartment Zones △Some Commercial Zones △Some Institutional Zone △Heritage Properties △ Favourable Architectural issues 등에 교회입지를 허용토록 했다. 반면 반영되지 못한 3개항은 △유사건물에 비해 차별적인 표준 주차공간 기준(Parking Standard) 하향조정과 주차공간 계산에 영향을 주는 강당(예배당) 사용률 65-70%인정, △경(輕)공업지구(Light Industrial Zone)에서의 주민 동의문제, 그리고 △커뮤니티센터와 학교강당, 도서관 등 주민들이 필요로 하는 곳에 교회가 들어설 수 있음을 명기토록 하는 것 등이다.
< 문의: 647-393-7705, 416-392-1147 >


‘교회스포츠’ 강좌영상 유튜브에

● 교회소식 2013. 4. 16. 14:20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임수택 목사 8강좌 … 스포츠 선교 활용 자료로 제공

교회 스포츠 선교의 실용 지침서인 <교회스포츠>를 펴낸 임수택 목사(갈릴리장로교회 담임)가 스포츠선교에 대해 강의한 8개의 강좌를 유튜브에 올려 각 교회 스포츠선교 담당 사역자들에게 좋은 활용자료가 되고 있다.
임 목사가 지난 2010년 4월 출간한 <교회스포츠>는 교회와 성도들의 스포츠활동에 대한 전반적 고찰은 물론 스포츠선교와 그 미래에 이르기까지 교회스포츠의 모든 것을 처음으로 집대성한 역작으로, ’스포츠를 영적인 영역으로 확장시킨 비범한 걸작‘이라는 평을 들은 바 있다. 이번에 유튜브에 올린 임 목사의 강의는 그 연장선에서 스포츠선교에 대해 한 강연들을 모아 교회들의 스포츠선교에 도움이 되도록 영상으로 만든 것이다.
 
유튜브 주소는 http://www.youtube.com/watch?v=mGKKjj8mXLg 이다.
임 목사는 영남대 철학과와 총신대 신대원을 졸업하고International Theological Seminary 목회학 박사과정을 마쳤으며 현재 교회스포츠 선교회장도 맡고있다.
< 문의: 647-824-8870 >


[평신도 글마당] 유대인의 자기저주

● 교회소식 2013. 4. 16. 14:17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1391년 리베리아 반도(에스파니아) 에서는 반 유대인 폭동이 일어나 수 많은 유대인들이 학살당하고 유대교로부터 기독교로의 개종을 강요 당했으며 이후 레콘키스타(이슬람 통치로 부터 리베리아 반도를 기독교 국가로 재 탈환하려던 정복운동)가 완성된 1492년에는 기독교로 개종하기를 거부하는 약 사십여만 명에 달하는 유대인들이 재산을 빼앗긴 채 국외로 강제 추방을 당하였다. 또한 1880년 러시아의 페테르부르그에서는 한 정신병자에 의하여 황제가 폭사당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범인은 현장에서 체포되었고 그를 심문하던중 몸에 할례(유대인들이 하나님과의 언약관계를 상징하는 신체에 행하는 표시)흔적이 있다는 이유로 사건 배후에 유대인의 음모가 있었다고 조작한 후 그 이듬해에 법을 제정하여 러시아에 거주하는 모든 유대인을 삼등분하여 삼분의 일은 학살, 삼분의 일은 강제 추방, 나머지는 노예로 전락시키는 가혹한 조치를 취하였다.
2차 대전이 종료되어가던 1945년 1월 폴란드의 유대인 수용소였던 아우슈비츠로 진격해 들어가던 소련군은 수용소 내에서 비참하게 학살당한 유대인들이 남긴 118만벌의 의복, 7.7톤의 머리카락, 산 더미처럼 쌓인 가방과 신발, 그리고 미처 처리하지 못한 600여구의 학살된 시체를 발견하였다고 한다.
 
이처럼 역사적으로 유대인들은 오랜 세월동안 수 많은 지역에서 고난과 박해를 당해왔으며 특히 기독교 문명권인 유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죽인 민족이라는 반 유대적 정서와 특이한 민족적 편견으로 인하여 끊임없이 시련을 당해오고있다. 오늘날에도 민족혐오 범죄에는 언제나 유대인이 개입되어 있음을 보게된다.
 종교 개혁자 M.루터는 그의 악마론에서 “악마를 제외하고 가장 흉측하고 광포한 인류의 적은 유대인이다”라고 선언하기도 하였다.
세계에서 가장 위대하고 우수한 민족, 스스로를 하나님의 선택된 민족이라 자부하는 그들이 왜 이처럼 민족적 차별과 박해를 당하고 있을까?
오늘날에도 인류사회에 뛰어난 역할로 공헌하고있는 그들이 아닌가. 그들은 과연 세계인의 저주에서 벗어날 수 없단 말인가? 여기에 중요한 단서가 있음을 성경에서 우리는 발견하게 된다.
 
신약성경인 마태복음 27장에는 예수를 죽이려고 모의하던 유대인들이 당시 유대지역을 관할하던 로마총독 빌라도(AD 26-36년)에게 고소하는 장면을 기록하고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죽여야 한다는 고소를 접한 빌라도는 심문결과 그에게서 사형시킬 만한 어떠한 혐의도 없음을 발견하고 석방하려 하였으나 성난 유대인들이 폭도로 변할 것을 우려하여 그들의 요구대로 십자가에 처형할 것을 허락하면서 “나에게는 아무 책임이 없다”고 선언하는 내용이 기록되어있다. 이에 대하여 그를 고소했던 많은 유대인들은 “그 피값(죄 값)을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리라”고 외쳤다.(마태복음 27장25절)
죄 없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죽인 그 책임을 자기들과 후손들이 감당 하겠다고 선언하는 무서운 행동을 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선언이요 자신과 후손들에 대한 혹독한 저주였다. 이와같은 저주가 자신과 후손들에게 족쇄가 되어 현실에서 생생하게 되돌아 올 줄을 그들은 꿈엔들 생각했을까?
 19세기 독일의 역사학자 L.V. 랑케 (1795-1886)는 확실한 자료비판에 기초한 객관적이고 과학적 사실에 근거하여 역사가 새롭게 서술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즉 초자연적인 기적, 영적인 내용, 비 과학적인 사실은 역사의 기록에서 제거 되어야 한다고 말함으로 새로운 역사 해석의 지평을 열어놓았다. 이에 따라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의 생애를 역사 비평학적인 관점에서 난도질하여 새로운 각도로 해석하는 소위 ‘고등비평’이 시작되었다.
 
그와 같은 논리에 근거하여 그들은 신약성경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 그의 부활과 승천 그리고 기적 등은 역사적 사실이 아닌 신화적인 것으로 왜곡하기에 이르렀다. 최근 극히 일부 신학자와 목회자 (목사)들 가운데에도 해괴한 논리를 이용하여 복음서는 많은 신화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들 신화는 때로는 역사적 사실보다 가치가 있다는 웃지 못할 궤변을 늘어 놓는 사람들도 있기도 하다. 2천년 전 예수를 십자가에 처형할 것을 주장했던 유대인들과 다를 것 없는, 예수를 두 번 십자가에 못박는 자기저주 행위인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가 당면한 최대의 적은 타락한 인간의 이성이다. 피조물인 인간의 자아, 죄로 오염된 인간의 이성과 지성이 조물주를 향하여 도전하며 저항하고 있는것이다. 18세기 프랑스의 이성주의자 볼테르(1694-1778)는 아침에 떠오르는 찬란한 태양을 보고 “오, 하나님 나는 이제야 알았습니다. 예수의 동정녀 탄생과 부활이 거짓인 것을” 이라고 외쳤다고 한다. 그러나 같은 사실을 보면서 시편기자는 다음과 같이 선언하고있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하나님이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시편 19:1)
타락한 문명과 사회, 죄로 오염된 이성이 절대 선을 향하여 도전하는 시대, 불의가 진리를 오도하고 피조물이 조물주를 향하여 항거하는 왜곡된 시대에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 신성균 장로 - 빌라델비아 장로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