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 칼럼]   Easement 란? (남의 땅에 대한 권리)

 

김종욱 리얼터 (Right At Home Realty Inc.)

 

Easement (남의 땅에 대한 권리)는 무엇인가?

그 유래를 찾아보면 80~100년전부터 주택단지가 분할되어 분양되는 과정에서 공공의 이익과 안전을 위하여 설정되어졌다고 본다.

대부분의 주택과 토지에 등기되어있는 Easement는 지방 자치단체(시, 타운), 유틸리티 회사(가스, 전기회사) 등이 타인 소유의 땅에 배관, 파이프, 전선 등을 설치하고 관리하는 권한을 가지는 것이다.

또한 사람이나 차량의 통행을 위해 이웃집의 Driveway에 Easement를 설정하기도 한다.

Easement가 등기되어 있는 주택이나 땅의 소유주는 Easement를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지표면(Surface)을 사용할 수 있지만 그 위에 나무를 심거나 어떠한 구조물도 세울 수 없다.

Easement를 가진 주체는 비록 땅은 소유하고 있지 않으나 그들의 서비스 관리를 위해 통행과 필요한 작업을 진행할 수 있는 절대적인 권한을 가지게 된다. (물론 사전 Notice 필요)

 

사례)

William 씨 부부는 2012년 Oakville의 Stirling Drive에 꿈에 그리던 주택을 매입했다.

그 주택 역시 Oakville City와 Oakville Hydro회사로부터 1972년도에 Easement가 등기되어 있었으며 뒷 마당 서쪽 가장자리를 따라 10피트 폭으로 구획되어 있었다.

그러나 William씨 부부는 Garage가 따로 없었던 이유로 뒷마당에 Carport와 Shed (창고)를 설치하였고, 2014년에는 많은 돈을 들여 수영장을 설치하게 된다.

그 후 별 문제없이 6년의 세월이 흘렀으나, 2020년 3월 Oakville City와 Oakville Hydro Company는 William씨 부부를 고소하였고, 수영장 철거와 손해배상을 청구하기에 이른다.

Easement에 대한 상식이 없었던 그들 부부는 선처를 호소하였으나 결과는 냉혹한 현실이었다.  

판결문은 다음과 같다,

“Oakville City와 Oakville Hydro Company에게 어느 정도의 관용을 요구할 수 있을지 모르나, 이 행위는 공공의 이익과 안전을 위협하는 행위로서 응분의 보상이 필요하다”

“ William씨 부부는 2021년 6월30일까지 수영장을 철거하여 본래의 모습으로 복구해 놓을 것이며, 손해배상 $40,000과 원고의 법정비용, 변호사비 일체를 원고에게 지급하라”

결국 ,무지 혹은 무관심으로 인한 재산상, 정신적인 손해를 무시할 수 없는 교훈이라 하겠다.

 

결론)

1) 집주인, 땅주인은 그곳에 등기되어 있는 Easement의 내용과 범위 등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어야한다.

2) 주택 매입시에 Easement에 대한 위반사항이 없는지 절대적인 확인이 필요하다.

 전 주인의 위반사항이 있는 것을 모르고 그 주택을 구매했다 할지라도 모든 책임은 현 주인이 지게된다.

3) Building Permit이 필요한 공사인지 여부를 사전에 필히 확인해야 한다.

                                                                   < 문의: 416-409-9039, t.skim@hotmail.com >.

 '평화통일 기원 한인양자회 초청 간담회' 성황개최

 2월17일 한인회관서 150여명 참석, 전통문화-공연 등 즐겨 

 

 

민주평통 토론토협의회(회장 유건인)와 토론토 한인회(회장 김정희)가 공동으로 마련한 ‘평화통일 기원 한인양자회 초청 간담회’가 토요일인 2월17일 낮 12시부터 오후 4시까지 한인회관에서 열렸다.

이날 간담회는 우리 민족 고유의 명절인 설날을 지나면서 캐나다 한인양자회(이사장 김만홍)에 소속된 입양가족들을 초청해 한국 음식을 대접하고 전통놀이와 공연 등으로 즐거운 시간을 갖게 하며 격려하는 행사로 진행됐다. 이날 광역 토론토와 나이아가라, 런던 등 온타리오 각 지역에 거주하는 한인 입양 31가족 90여명과 민주평통 자문위원, 한인회 자원봉사자 등 150여명이 참석했다.

특히 한국전쟁 당시 캐나다군이 승리한 가평전투 참전용사인 Bill Chrysler 씨(93세)도 몸이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Fort Erie 에서 부인과 함께 참석해 행사를 빛내면서, 참석자들과 함께 6.25전쟁 당시 캐나다군의 활약을 담은 비디오를 관람하고 평화의 소중함을 생각하는 시간도 가졌다.

3부로 나누어 진행돤 행사에서 1부 개회식은 유건인 평통 지회장과 김정희 한인회장의 환영사, 김득환 총영사와 김만홍 양자회 이사장의 축사가 있었다.

유건인 회장은 환영사에서 전통명절인 설날을 즐기며 자유를 누리는 우리 모두 억압받는 북한 주민들의 인권과, 핵무기로 위협하는 북한 정권에 주목해야 한다면서 입양 가족들도 관심을 갖고 평통의 한반도 평화통일 노력에 성원을 당부했다.

김정희 회장은 설날의 유래를 설명하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인사를 함께 해보자며 참석자 모두 새해에 복 많이 받으라는 덕담을 했다.

김득환 총영사는 이날 행사를 주최한 평통과 한인회 등 관계자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참석한 입양가족의 보람있고 즐거운 시간을 기원했다.

입양가족들은 평화통일 의지를 담은 영화를 관람한 뒤, 불고기와 잡채, 가장 인기를 모은 떡국 등으로 차려진 점심을 함께 했다

이어 2부에서는 입양가족이 함께 부모님께 세배드리고 세뱃돈 받기, 나빌레라 어린이 무용단의 공연, 궁중한복 체험과 달고나 게임을 비롯해, 제기차기, 공기놀이, 투호, 딱지치기, 팽이치기, 비석치기 등의 다양한 민속놀이를 즐겼다.

3부는 아들과 딸을 입양한 대학교수 James Dobravec 씨가 한국 비무장지대 방문 감회를 담은 자작곡 ‘Wating For Peace’와 컨트리뮤직 ‘Take Me Home, Country Roads’를 개사한 ‘Take Me Home, South Korea’를 불러 큰 박수를 받았다. David Werezak 씨는 입양 아들이 고국을 방문했을 때 느낀 소감을 전하며 한국 재방문 의지를 밝혔다.

마지막 순서는 참석자 모두 손을 잡고 원을 그리며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합창, 평화통일을 기원하며 행사를 마무리 했다.

이날 참석한 한인 입양가족들은 설맞이 간담회를 통해 한국인의 정체성과 한국문화를 접하고 체득하는 데 도움을 주어 감사하다며 조속한 평화통일을 소망했다. 한인회와 평통은 참석자들에게 설날 선물도 전했다. . 

[편집인 칼럼] 한국의 ‘트럼프 리스크’

● 칼럼 2024. 2. 21. 10:01 Posted by 시사한매니져

[편집인 칼럼- 한마당]  한국의 ‘트럼프 리스크’

 

 

유럽이 혼란에 빠졌다. 미국에서 트럼프가 던진 말폭탄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 10일 사우스 캐롤라이나 유세에서 “방위비를 부담하지 않는 나토 회원국을 공격하도록 러시아를 부추기겠다”는 취지로 발언했다. 미국이 요구하는 방위비를 내지 않는 나라에 대해 러시아에게 공격하라고 독려하겠다는 것이다.

제3자가 들어도 도대체 제정신으로 내뱉은 말인지 의아하다. 아무리 돈이 중하다지만, 돈을 내지 않으면 적에게 동맹국을 공격해달라고 부탁한다니 놀랍고도 반역적인 발상이 아닐 수 없다. 그러니 당사자인 유럽의 나토 회원국들이 느낀 배신감과 충격은 짐작하고도 남는다.

유럽에는 트럼프의 지난 집권기인 5~6년 전에도 비슷한 언동으로 나토를 들쑤시고 동맹의 불신과 불안을 불렀던 트라우마가 있다. 그런데 ‘악몽’이 재연될 수도 있다는 강한 적신호가 켜진 것이다. 더구나 미국과 나토의 지지부진한 지원으로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가 갈수록 기세등등해지고 있는 상황과도 맞물려 유럽에 일고있는 우려와 충격은 엄청나다.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는 원래부터 미국 주도로 창설된 군사-안보동맹이다. 1949년 출범 당시 소련의 위협과 군국주의 부활을 막으려는 목적으로 출범했지만, 이후 정치·경제적 위기와 대테러 및 대량살상무기 확산 저지 등 북미와 유럽의 공동안보와 평화를 추구하는 집단 방위체제로 기능하고 있다. 당초 12개국이던 회원국도 31개국으로 크게 늘었다.

국제 상황과 역학 변화에 따라 나토의 위상과 역할도 달라지고 있지만, 창설이래 불변의 원칙은 ‘회원국 일방에 대한 무력공격은 전체 회원국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한다’고 명시된 조약 제5조의 집단방위 확약이다. 거기에 ‘돈을 내지 않으면 회원국이라 해도 공격을 방관한다거나 조장한다’류의 숨은 의미는 없다. 설령 돈을 내지 못해도 침략을 당하면 자동적으로 무력개입하여 공동 방위한다는 약속이 ‘동맹’에 내포된 것은 상식이다. 최근에 중립국 지위를 버리고 31번째 회원국으로 가입한 핀란드와 가입을 눈앞에 둔 스웨덴 모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공격에 자극받아 나토의 ‘공동방위’ 안보 울타리가 절박해진 것도 그런 기대와 신뢰에 기반한다.

그런데 트럼프는 미국의 세계 최강 군사력이 나토 전력을 좌우하는 것을 무기로 ‘안보 무임승차론’을 디밀며 유럽 동맹들에게 돈을 강요한다. 그는 아예 나토를 탈퇴해 버리겠다는 위협에 더해 적국에 공격해달라고 부탁할 것이라는 극언의 겁박까지 서슴치 않았다.

트럼프는 미국에서 다시 집권할 가능성이 날로 커지고 있다. 11월 대선에서 바이든을 누르고 4년 만에 다시 권좌에 오른다면, 악몽은 현실이 된다. 유럽의 나토 회원국들은 좌충우돌하는 그의 언행들로 보아 동맹을 적국만도 못하게 취급할 수 있다는 협박이 헛소리로 끝나지만은 않을 것이기에 안절부절하는 것이다.

 

유럽의 ‘트럼프 쇼크’가 먼 산의 불이 아닌 ‘한국 리스크’로 다가오는 것은, 미군 철수를 거론하며 천문학적 방위비 분담금을 쥐어 짠 ‘살벌한 추억’이 생생한 까닭이다. 더구나 한국 현 정부의 어리숙한 외교-안보 역량과 그로인한 위기가 날로 고조되고 있는 남북대치와 한반도 정세의 위태위태한 현실 때문이다.

트럼프 말폭탄과 관련해 전현직 대통령을 통틀어 전례가 없다고 지적한 미국 뉴욕 타임즈는 “유럽의 동맹국들이 미국에 기댈 수 없게 된다면 상호 안보협정을 맺은 다른 나라들 역시 미국의 도움을 확신하기 어렵다”면서 이는 과거 한국전쟁과 같은 상황을 다시 일으킬 수 있다고 상기시켰다. “역사는 이런 상황이 전쟁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이 유발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며 “1950년 딘 애치슨 국무장관이 한국을 제외한 ‘극동 방위선'을 발표한 지 5개월 뒤 북한이 남한을 침략했다”고 적시, 6.25 남침을 초래했다고 보는 ’애치슨 라인‘에 비견하기도 했다.

어쩌면 한국에 있어 트럼프 충격의 재발은 유럽 그 이상의 태풍으로 닥칠지 모른다. 트럼프가 재등장하면 주한미군과 전략자산을 담보로 한 공박은 몇 배 거셀 것이다. ‘동맹’이나 ‘우방’에 의미를 두지않는 트럼프가 “한국방위에서 손을 떼겠다”든가, 유럽동맹에 겁을 준 것처럼 설마하니 “내 친구 김정은에게 공격하라고 부추기겠다” 식의 청천벽력 같은 괴설을 늘어놓지 않을 거란 보장도 없다.

이제 머잖았는데, 자주국방은 내팽개치고 미군철수와 전작권 보유에 겁을 내면서, 상전처럼 떠받드는 미국의 군사력에 목을 매단 세력들은 경재도 폭망상태니 어떻게 해야하나… 북한과는 철천지 원수가 되어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상황, 우크라이나에서 암암리 대리전을 치르면서 중국과 러시아 마저 적으로 만든 외눈박이 무능정권의 ’트럼프 리스크’를 떠올리면 아찔하다. 사면초가에 빠져 “독도를 넘겨줄게”라며 일본으로 달려가 자위대에 매달리는 것은 아닐까.

[목회칼럼] 축복의 삶

● 칼럼 2024. 2. 21. 09:58 Posted by 시사한매니져

[목회칼럼- 기쁨과 소망]  축복의 삶

 

이영정 목사 (덴토니아파크 연합교회 담임)

 

오늘날 세상은 다양한 문화적, 종교적 충돌로 사회는 점점 복잡해 지고 있습니다. 수많은 진리와 가치관이 각자가 존중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세상에는 온전한 절대적 진리는 없다. 단지 지엽적인 진리만 있을 뿐이다” 라고 주장을 합니다. 따라서 많은 기독교 신학자들이 대화의 시작부터 자신의 주장을 문화와 종교라는 테두리안에서 하는 제한적이고 상대적인 것 이라고 정의하면서 자신의 주장도 수많은 진리주장의 하나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 뿐만 아니라 기독교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바로 알지 못하면서 다른 종교의 교리를 무분별하게 기독교와 혼합하면서 새로운 진리라고 현혹하는, 착각속에 빠져있는 목사와 그들의 그럴듯한 주장에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이들도 많이 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때에  “진정한 교회는 어떤 교회인가?” 하는 질문을 하는 것은 쉽지않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질문자체가 시작부터 잘못되었다고 이야기하는 학자가 많이 있습니다.  세상에서 바른말을 하기위해서는 예수님의 말씀을 똑바로 이해해야 하고 이를 표현하는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기독교 안에서도 수많은 교단과 교파로 갈리어서 그리스도의 삶을 따르기 보다는 교단의 지엽적인 믿음을 대변하는 교리주의가 범람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현실에서 제기되는 논점에 대한 대답을 성경을 통해서 찾고 있는데 그 당시의 문화와 사회상황을 참고하며 이해 해야 할 것입니다. 이는 기독교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방법으로서 중요할 뿐만 아니라 다원주의가 마치 지식인의 전유물인 것 처럼 착각하는 사회에서 서로 다른 믿음의 실체들에 대한 충분한 이해도 없이 그럴듯한 궤변으로 현혹하고 현혹되는 요즈음의 현실에 절실히 요구되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을 통해서 나타난 창조의 의지를 ‘정의와 자비’라는 대 명제를 통해서 성경에 증거된 예수님의 가르치심과 삶 그리고 고난과 부활의 십자가를 통해 기독교의 정체성을 이야기 해야 할 것입니다.  

 기독교의 본질을 이야기하는 중요한 내용은 정의와 자비의 실천을 깨달음에서 그치지 않고 이 세상 안에서 “삶을 통해 증거하는” 데 있습니다. 이것이 사랑과 봉사로 이룬 선교가 중심이 된 삶의 핵심요소입니다. 참교회의 모습을 어거스틴이 주장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룬 믿음 공동체에서 찾고자 하는 노력은 정의와 자비를 깨닫는데 머무르지 않고 이를 삶에서 실현시키는 공동체의 선교하는 모습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성경공부 시간에 제기된 한 신도의 질문이 오랬동안 가슴에 남아있습니다. 우리가 매 주일 하는 토론과 성경공부는 선교라는 차원에서 볼 때 준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준비를 언제 까지 하고만 있을겁니까?

 그렇습니다. 지금 이 순간 부터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의 손과 발이되어 그의 자비로운 따뜻한 마음을 품고 우리에게 되갚을 수 없는 어려운 이웃에게 선교를 하며 그들과 함께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삶을 살 때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예수님의 숨이 살아 있는 축복의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