궤변으로 일본 두둔하며 한일 군사동맹 완성 외길

왜곡된 역사관 아닌, 역사관 없는 안보기술자 자인
친일 비난에 종주먹 들이대며 '친일 본색' 드러내

범죄자서 윤석열 정부 실세 변신…나름 성과만 강조
"일본, 마음으로 반성 안 할 테니 강요 말자는" 요설

 

"과거사 문제에 일본이 또 고개를 돌리고 필요한 말을 하지 않으면 거기에 대해서 엄중하게 따지고 변화를 시도해야겠지만, 중요한 건 일본의 마음이다. 마음이 없는 사람을 다그쳐서 억지로 사과를 받아낼 때 그것이 과연 진정한가. 또 한일관계에 도움이 되는가." (김태효, 16일 KBS 인터뷰)

"우리가 말할 것은 말하고 일본 측이 해야 될 행동을 촉구하되, 한일 간 협력으로 우리가 얻어낸 성과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확보를 하고 우리가 리더십을 행사하겠다." (김태효, 16일 자 조선일보 인터뷰)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이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 최종 조율을 위해 11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2터미널을 통해 출국하고 있다. 김 1차장은 이날 출국 전 기자들과 만나 "오늘 아침에 양국 국방장관이 통화를 했고 양국 견해가 일치한다”고 말했다. 2023.4.11. 연합
 

두 전과자의 '의리'

그래도 '의리'는 있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이 4번이나 바뀌어도 굳건히 자리를 지키는 실세, 김태효 국가안보실 제1차장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범죄 행위를 반성하고 묵묵히 국가를 위해 일했으면 굳이 헤집을 필요가 없었을 게다. 하지만 관대하게 보아주기엔 왜곡된 역사관에서 비롯된, 아니 역사관이 없는 안보기술자의 손때가 도처에 묻어난다.

대법원이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유죄가 확정된 건 2022년 10월 27일. 정확히 두 달 뒤인 12월 27일 윤석열 대통령이 사면했다. 이미 외교안보 정책과 관련, 대통령의 귀를 붙잡고 있는 실세를 신년 사면·복권 대상에 보란 듯이 포함했다. 군사기밀법은 '군사기밀을 보호하여 국가안보보장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청와대 대외전략기획관 시절 획득한 기밀을 갖고 나온 혐의가 인정됐다. 기밀을 다룰 권한이 해제된 뒤에도 기밀을 점유한 점이 처벌대상이 됐고, 고의성도 인정된 것.

그나마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던 국가정보원 생산 문건 2건과 국군기무사(현 방첩사) 작성 문건 1건을 외부로 반출한 혐의(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는 2심과 확정판결에서 제외됐다. 본인만 빠져나온 후안무치는 아니었다. 주군으로 모시던 이명박 전대통령(MB)에겐 같은 날 더 큰 은사(恩赦)가 베풀어졌다. 뇌물 및 횡령이라는 파렴치 혐의로 2020년 징역 17년 형을 선고받고 옥살이를 하던 그는 남은 징역 형기 14년 6개월을 면제받았다. 덕분에 MB 부부는 지난 12일 대통령 관저에 초대받아 저녁을 얻어먹었다. 게다가 국정 훈수까지 뒀다. 김 차장의 의리가 작용했을 거라는 추측을 하게 되는 대목이다. 미담 아닌 미담은 여기까지다.

 

윤석열 대통령 부부가 12일 대통령 관저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 부부, 정진석 비서실장 부부와 만찬에 앞서 담소를 나누고 있다. 2024.8.12. [대통령실 누리집]
 

'MB의 남자'에서 '윤석열의 남자'로

전과자에서 대통령의 존경과 총애를 받는 주인공으로 변신한 건 MB뿐이 아니다. 'MB의 남자'도 범죄자에서 국가안보의 실체로 날씬하게 변신했다. 대통령이 광복절에 발표한 통일 독트린을 작성하고, 16일에는 조선일보와 KBS 뉴스라인에 잇달아 얼굴을 내밀며 국정 설명을 주도했다. 지난 12일 안보라인 인사에서 국가안보실장으로 영전한 신원식 국방장관이 버젓이 있음에도 일개 차장이 국가 대사를 도맡은 것. 하다못해 통일부는 장관이 브리핑을 했다. 지난 4월과 6월, 잇달아 KBS에 출연해 현정부의 국가안보정책을 설명한 주체는 실장(장호진)이었다. 정권 출범 2년여 동안 김성한-조태용-장호진-신원식으로 실장 4명이 교체됐지만, 끄떡없던 '외교안보 사령탑'의 위세가 대단함을 새삼 일깨웠다.

그는 KBS 인터뷰에서 윤석열 정부에 쏟아지는 '친일' '매국' 비판에 종주먹을 흔들었다. 그러면서 내놓은 게 모두에 소개한 '마음론'이다. 조선일보 인터뷰에선 '친일 비판'이 분한 듯 성과론을 내놓았다. 한미일 협력으로 얻은 안보, 경제적 이익과 혜택을 함께 보아달라는 주문이다. 마음론과 성과론은 그의 오랜 주장이지만, 앞뒤가 맞지 않는다.

일본은 여전히 과거사 문제에 대해 고개를 돌리고, 필요한 말을 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를 엄중하게 따지고 변화를 시도했으며, 그리하여 변화를 이뤄낸 이나 할 수 있는 말이다. 죄진 이가 먼저 실토하는 경우를 보았는가. 다그치고, 억지로라도 단죄를 해야 한다. 그런데 그는 억지로 받아낸 사과는 의미가 없다고 단언했다. 그리고 내놓은 마음론도 '일본의 마음'론이다. 일본이 진정한 마음으로 사과할 생각이 없으니, 굳이 사과를 구하느니 현실적 성과를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는 사고다.

'일본의 마음'이 피곤하다?

죄수가 죄를 인정할 마음이 없으니, 다그치지 말고 그냥 넘어가자는 말과 다름없다. 피해자의 마음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가해자의 마음을 챙겨주는 게 바로 친일이자 매국이다. 발언 내용이 물의를 빚자 18일 '대통령실 고위관계자'가 나서 "1965년 한일 국교수립 이후 수십 차례에 걸쳐서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사과가 있었기에 피로감이 많이 쌓여 있다"고 두둔한 것 역시 '일본의 마음'만을 바라보는 관점이다.

그런데 친일이라는 비판에는 그게 아니라며 종주먹을 들이댄다. 일제가 한반도 거주민에 범한 죄는 그와 MB가 저지른 일반 범죄가 아니다. 시효가 없는 반인도적 범죄다. 이러니 "용산에 일제 밀정 같은 존재의 그림자가 있다(이종찬 광복회장)"는 말이 나오지 않겠나. 이 회장의 아들이자, 대통령의 죽마고우인 이철우 연세대 교수는 "대통령 주위에서 이상한 역사의식을 부추기는 사람들이 있지 않나 하는 의문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19일 자 동아일보 인터뷰)

'일본의 마음'을 챙기는 그의 생각은 고질적이다. "한국인의 감정은 몇 년을 주기로 커다란 변화를 보이는 반면, 일본인의 마음은 한번 바뀌면 몇십 년을 간다"라면서 사과받을 한국인이 화가 나 있는 것은 알겠는데, 사과해야 할 일본이 화가 나 있는 이유를 더 무겁게 봤다. 그가 성균관대 교수로 '자연인'이던 2015년 8월 쓴 조선일보 칼럼 '사과받는 나라와 사과하는 나라'의 한 대목이다. 요설일수록 디테일에 코를 박는다. 한일이 강제징용자 표기를 '강요된 노동(forced to work)'이라고 합의했는데 한국이 회의장에서 '강제노동(forced labor)'이라고 썼다고 질타했다. '강요된 노동'이건, '강제노동'이건 그 피해자의 마음에 대한 배려는 밤톨만큼도 없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광복절을 닷새 앞둔 10일 전격적으로 독도를 방문해 대형 태극기가 새겨진 조형물을 살펴보고 있다. 2012.8.10. 연합
 

돌변한 MB, 외길 가는 윤석열 정부 

그는 윤석열 정부에서 '지체된 성과'를 마음껏 달성하고 있다. 작년 8월 캠프 데이비드 한미일 정상회의에서는 북한 미사일 정보를 즉시 제공키로 문서화했다. 내년 6월 22일 한일 수교 60주년에 즈음해 한일 상호군수지원협정(ACSA)과 한반도 돌발상황 공동대처 방안도 마련, 한일 관계를 사실상의 동맹으로 만들려는 게 최종 목표일 것.

나란히 전과자가 됐다는 점에서 동지애가 있을지 모르지만, MB와 김 차장이 늘 동지였던 건 아니다. 그가 이명박 정부에서 한일 정보보호협정(GISOMIA) 밀실 추진이 탄로나 사직하자마자 MB는 현직 대통령으로 처음 독도를 방문하면서 역진을 시작했다. 그의 친일도, MB의 반일도 모두 한일관계에 악재가 됐다.

과거사 극복을 하지 않는 한 진정한 파트너는 되기 어렵다. 특정 정권이 진도를 나가봐야 지속 가능하지도 않다. 한반도와 일본의 마음과 만나기 전에 한일관계의 진정한 발전은 한낱 꿈에 불과할 것이다. < 김진호 민들레 기자 >

아베 이후 진정한 사죄 단 한 번도 없었다

일본, 사과는 했지만 반쪽짜리 사과
‘고노 담화’, 한국사회 민주화가 만들어낸 변화
‘고노 담화’ 뒤집고 거꾸로 내달린 일본 우익

적반하장의 일본 우익, 정말 피곤한 건 한국
오히려 일본정부 편을 드는 한국 친일정부

 

김태효 국가안보실 제1차장이 18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캠프데이비드 정상회의' 1주년 한미일 협력 성과 등 현안에 대해 브리핑하고 있다. 2024.8.18. 연합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이 지난 16일 한국방송(KBS) ‘뉴스라인 더블유’에서 일본과의 과거사 문제에 대해 한 발언은 사실과 어긋난다. 사실 자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으니 엉뚱한 소리를 할 수밖에 없다. 그는 관련 질문에 “과거사 문제에 대해 일본이 고개를 돌리고 필요한 말을 하지 않으면 엄중하게 따지고 변화를 시도해야겠지만 중요한 건 일본의 마음”이라며 “(사과할) 마음이 없는 사람을 다그쳐서 억지로 사과를 받아낼 때 그게 과연 진정한가”라고 대답했다.

그의 발언 중에 “과거사 문제에 대해 일본이 고개를 돌리고 필요한 말을 하지 않으면”이라는 구절도 그 맥락으로 보건대, ‘일본이 과거사에 고개를 돌리지 않았고 필요한 말을 했다’는 뜻으로 들린다. 그가 지난해 3월에 “우리 외교부가 집계한 일본의 공식 사과가 20차례가 넘는다”고 말했다가 국민을 분노하게 만든 적도 있다.

그의 발언이 논란을 빚자,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가 나서서 “한·일 국교 수립 이후 수십차례에 걸쳐 일본 정부의 공식적 과거 식민지 지배에 대한 사과가 있었고, 그러한 사과가 피로감이 많이 쌓였다”며 김 차장의 말을 변호했다.

사과는 했지만 반쪽짜리 사과

일본이 여러차례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를 했다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은 반쪽짜리 사과에 지나지 않는다. 일본정부는 1990년대 초에, 예컨대 일본군 위안부들이 일본군 당국의 요청으로 설치, 운영된 위안소들에 “본인들의 의사에 반하여” 모집 등의 형태로 끌려갔고, 거기에서 강제로 성폭행을 당하는 참혹한 고통에 시달렸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인정했다. 일본정부는 약 2년에 걸친 자체 조사를 통해 그런 사실을 확인하고 “이른바 종군 위안부로 수많은 고통을 당하고 심신에 걸쳐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은 모든 분들에게 진심으로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전한다고 문서로 작성해 공식적으로 발표까지 했다.

‘고노 담화’도 자발적 발표 아니야

그것이 1993년 8월 4일 당시 미야자와 기이치 내각의 고노 요헤이 관방장관이 발표한 ‘고노 담화’다. ‘위안부관계 조사 결과 발표에 관한 고노 내각 관방장관 담화’(아래에 번역해서 붙임)가 정식 명칭인 그 담화 뒤에도 유사한 내용의 일본정부 담화들이나 총리의 발언들이 발표됐다. 호소카와 모리히로 내각(1993년 8월~1994년 4월) 때도 그랬고, 무라야마 도미이치 내각(1994년 6월!1995년 8월) 때도 그랬으며(‘무라야마 담화’), 하토야마 유키오 내각(2009년 9월~2010년 6월)과 간 나오토 내각(2010년 6월~2011년 9월) 때도 그랬다.

그런데 일본정부의 사죄와 반성은 거기까지였다.

‘고노 담화’도 일본이 자발적으로 먼저 발표한 게 아니다. 1991년 8월 14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김학순(1924~1997) 할머니가 처음으로 자신의 피해 사실을 공개적으로 증언했고, 그것이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그 전에도 그런 증언의 단편적인 조각들이 드물게 흘러나오기는 했지만, 김학순 할머니처럼 기자회견을 통해 자신의 모습과 실명을 드러내면서 그 치욕스런 과거를 공개적으로 밝힌 적이 없었다. 차마 그렇게 하지 못했다.

 

일본의 '위안부' 범죄사실에 대해 공개 증언하는 피해자 김학순 학머니.

 

한국사회 민주화가 만들어낸 변화

그때가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고(1989년) 소련이 무너지면서 냉전 또한 무너져 내린 시기다. 베를린 장벽 붕괴 한 해 전인 1988년에 서울올림픽이 치러졌다. 그 한 해 전인 1987년에는 일반시민들까지 거리로 쏟아져 나와 학생시위에 가담했던 ‘6월 항쟁’이 일어났다. 5공 군부독재체제가 ‘ 6.29선언’을 통해 ‘호헌 철폐’와 ‘대통령 직선제’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고, ‘한국 민주화’의 1단계가 성취됐다. 김학순 할머니의 공개 증언은 그런 시대변화 속에서 이뤄졌다. 그 전까지 군부독재 체제는 일본과의 관계를 고려해 그런 말을 꺼내지도,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할 수도 없게 억압했다.

그 증언으로 일본사회가 뒤집혔고, 그 소식은 세계로 전파돼 필리핀, 네덜란드, 중국 등 곳곳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 생존자들이 공개 증언에 나서고 소송을 제기했다. 한국 민주화가 세상을 그렇게 바꿨다고도 할 수 있다.

‘고노 담화’ 뒤집고 거꾸로 내닫기 시작한 일본 우익

그때까지만 해도 사회당 등 이른바 전후 ‘리버럴’ 세력이 살아 있던 일본의 자민당 미야자와 내각은 김학순 할머니 증언에 놀라고 ‘평화 인권국가 일본’ 이미지가 국제적으로 위태롭게 되자 사실 조사에 들어갔다. 장기간의 조사 끝에 1993년 8월 4일에 ‘고노 담화’가 발표됐다. 담화는 조사해 보니 김 할머니 증언이 사실이더라는 것, 일본군 당국이 주도한 그 일로 고통을 당한 분들에게 사죄하고 반성한다는 것을 최대한 표현을 절제해가며 간결하게 기술했다. 그 뒤에 일본에서는 비슷한 형태의 담화들과 발언들이 이어졌다.

그런데 ‘김학순 쇼크’에 망연자실했던 일본 우익들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대응했다. 1990년대 중반 일본의 과오를 부정하고, 과거사 반성을 자학이라 몰아가는 ‘자유주의 사관’이 등장하고 이른바 ‘새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새역모) 등의 우익세력 조직들이 우후죽순처럼 등장했다. 국회 내에도 그런 움직임이 퍼졌으며, 그런 움직임을 주도한 인물이 바로 아베 신조 전 총리다.

 

아베 신조

그 최전선에 섰던 아베 신조

과거사 반성 언설들이 자학사관이라는 우익 바람 속에 제국일본의 침략과 식민지배를 ‘영광의 과거’로 기억하도록 학습받은 전후 세대 정치인인 그는 일본군 위안부 등 강제동원된 조선인들은 강제가 아니라 자발적 의사로 동원에 응했고, 정당한 대우를 받았다며, 고노 담화 내용의 핵심을 뒤집어버렸다. 2006년 9월에 총리가 된 아베는 2012년 12월의 2차 내각 이후 2020년 9월까지 일본 역대 최장수 총리를 기록하면서 줄기차게 고노 담화 내용을 부정했다. 핵심은 일제 강제동원은 강제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아베 이후 진정한 사죄 단 한 번도 없었다

김태효 1차장이 일본이 수십 번 과거사를 반성했다는 것은 아베 이전까지는 어느 정도 사실에 부합한다. 그러나 아베 집권 이후 일본정부가 공식적으로 과거사를 제대로 인정하고 사죄한 뒤 반성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아베 내각 뒤의 스가 요시히데 내각도, 지금의 기시다 후미오 내각도 그 점은 아베 내각을 철저히 계승했다. 그들은 아직도 공개적으로 안중근과 김구를 일본 근대의 영웅 이토 히로부미와 시라카와 요시노리를 죽인 “테러리스트”라 주장한다.

적반하장의 일본 우익, 정말 피곤한 건 한국

그러니 수십 번을 사죄하느라 일본이 피로해졌을 것이라는 김 차장의 말은 사실이 아니다. 피곤하고 성가신 쪽은 일본이 아니라 한국이다. 일본이 고노 담화의 조사결과와 취지를 인정하고 수용한 호소카와, 무라야마, 하토야마, 간 내각 때처럼만 대응했어도 피해자들을 비롯한 한국인들이 그렇게까지 “과거사를 인정하고, 반성 사죄하고 배상하라”고 요구하진 않았을지도 모른다. 한국인들 중에 그토록 피곤하고 지겨운 일을 좋아할 사람은 없다. 아베 신조 이후, 그 전 정권들이 그나마 털어놓았던 사실조차 다시 부정하고 오히려 한국인들을 ‘아무 잘못 없는 일본’한테서 돈이나 뜯어내려는 파렴치한 ‘반일 쟁이’로 몰아가는 일본 우익들이야말로 한국인들을 정말 화나고 피곤하게 만든다.

오히려 일본정부 편을 드는 한국정부

최근의 군함도와 사도광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과정에서도 한국인들을 얼마나 피곤하게 만들었나.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로부터 조선인들이 “(본인들의) 의사에 반하여 동원당한 사실”을 전시실(산업유산정보센터)에 사실대로 기록해서 관람자들이 볼 수 있게 하라고 여러 차례 지적당하고 경고를 받았음에도 일본정부와 지자체는 끝내 그렇게 하지 않았다. 군함도에선 전시물에 강제동원 사실을 적시하겠다고 약속해 놓고 지키지 않았다. 오히려 강제동원이 아니라는 증언들만 모아 전시했다고 <아사히신문> 등은 보도했다. 사도광산은 아예 강제동원 사실 자체를 거론도 하지 않았으며, 그런 일본정부 방침에 윤석열 정부는 아무 문제제기도 하지 않은 채 동의해줬다.

그런 잘못을 지적하면 ‘반일’로 몰아간다. 정말 피곤하고 지겨운 일이다.

1993년 8월 4일 미야자와 내각의 고노 요헤이 관방장관이 발표한 담화(일본 외무성 홈페이지)는 다음과 같다.

 

고노 담화.     일본 외무성 온라인 사이트

 

위안부관계 조사 결과 발표에 관한 고노 내각 관방장관 담화

1993년 8월 4일

이른바 종군위위안부 문제에 대해서, 정부는 재작년 12월부터 조사를 진행해 왔는데, 이번에 그 결과가 정리됐기에 발표하게 됐다.

이번 조사 결과 장기간에 걸쳐, 또 광범위한 지역에 걸쳐 위안소가 설치돼 있었고, 수많은 위안부들이 존재했다는 것이 확인됐다. 위안소는 당시의 군 당국 요청으로 설치 운영(設營)됐으며, 위안소의 설치, 관리 및 위안부의 이송에 대해서는 구일본군이 직접 또는 간접으로 이에 관여했다. 위안부의 모집에 대해서는 군의 요청을 받은 업자들이 주로 그 일을 담당했지만, 그럴 경우에도 감언과 탄압을 통해서 하는 등 본인들의 의사에 반하여 모집당한 사례가 수다하고, 게다가 관헌 등이 직접 이에 가담한 경우도 있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또 위안소에서의 생활은 강제적인 상황하의 고통스런 것이었다.

그리고 전지(전장)로 이송된 위안부의 출신지에 대해서는, 일본을 별도로 하면 조선반도가 큰 비중을 차지했는데, 당시 조선반도는 우리나라의 통치하에 있었기 때문에 그 모집, 이송, 관리 등도 감언, 탄압을 통해 하는 등 대체로 본인들의 의사에 반해서 이뤄졌다.

어쨌든 본 건은 당시 군의 관여 아래 다수 여성들의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안긴 문제다. 정부는 이번 기회에 다시한번 그 출신지를 불문하고 이른바 종군 위안부로 수많은 고통을 당하고 심신에 걸쳐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은 모든 분들에게 진심으로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전해 드린다. 또한 그런 마음을 우리나라가 어떻게 표시할지에 대해서는 유식자들의 의견 등도 요청해서 앞으로 진지하게 검토해 가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런 역사의 진실을 회피하지 않고, 오히려 이를 역사의 교훈으로 직시해 가고자 한다. 우리는 역사연구, 역사교육을 통해 이런 문제를 오래 기억에 담아두고 같은 과오를 결코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굳은 결의를 다시한번 표명한다.

또한 본 문제는 우리나라에서 소송이 제기돼 있고, 또 국제적으로도 관심이 쏠리고 있어서, 정부도 앞으로 민간의 연구를 포함해서 충분히 관심을 기울이려 한다.  < 한승동 민들레 기자 >

이재명 "정권 폭주 저지 가장 중요…'먹사니즘' 실현"

대표 회담 촉구에 한동훈도 "대단히 환영" 일단 화답
박찬대 "한동훈, 26일까지 채 해병 특검법 발의하라"

이언주도 "변죽만 울려…대법원장 추천 특검 안 돼"
김병주 "김용현 국방 지명 철회, 김태효 사죄" 촉구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박찬대 원내대표, 신임 최고위원들이 19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에 참석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민석 최고위원, 이재명 대표, 박찬대 원내대표, 전현희·한준호·김병주·이언주 최고위원. 2024.8.19. 연합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당대표 연임 첫날인 19일 '먹사니즘'을 키워드로 한 민생 문제 해결에 방점을 두는 메시지를 발신했다. 동시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를 향해 채 상병 특검법 등을 논의하기 위한 대표 회담을 재촉하는 등 시작부터 여권을 강하게 압박했다. '이재명 체제 2기 지도부'를 구성하게 된 최고위원들도 "당 대표를 중심으로 똘똘 뭉쳐 민생을 살리고 윤석열 정권과 싸우겠다"고 이구동성으로 다짐해 '원팀'으로서의 단합된 모습을 부각시켰다.

이 대표를 비롯한 신임 지도부는 이날 국립서울현충원을 참배하는 것으로 첫 공식 일정에 돌입했다. 박찬대 원내대표와 김민석·전현희·한준호·김병주·이언주 최고위원이 동행했다. 이 대표는 방명록에 '함께 사는 세상, 다시 뛰는 대한민국을 꼭 만들겠다'고 적었다. 이 대표는 참배 후 기자들을 만나 "정국 상황이 매우 엄중하다. 윤석열 정권의 폭주를 저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라면서도 "국민들의 민생을 챙기는 일 또한 가볍게 볼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가장 중요한 과제는 골목 상권에 활력을 불어넣고 서민 경제를 살리는 민생지원금법"이라고 강조했다.

국회 본청으로 이동해 연임 뒤 처음 주재하는 최고위원회의에서도 이 대표는 민생부터 앞세웠다. 그는 "오늘은 새로운 더불어민주당 지도부가 하는 첫 최고위원회의"라고 운을 뗀 뒤 "정치의 목적은 뭐니 뭐니 해도 먹고 사는 문제, '먹사니즘'이다. 벼랑 끝에 내몰린 국민의 삶을 구하고 절망을 희망으로 바꿔야 한다. 민주당에 부여된 국민의 열망과 기대를 하나로 모아서 새로운 대한민국을 반드시 열어가겠다"고 말했다.

전날 당대표 수락 연설과 기자회견을 통해 제안했던 윤석열 대통령과의 영수회담 및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와의 여야 대표회담에 대한 의지도 다시 밝혔다. 이 대표는 "국민 삶에 보탬이 되는 정책이라면 모든 것을 열어두고 정부‧여당과 협의해 나가도록 하겠다. 국민의 더 나은 삶을 위해, 하루빨리 만나 협의하겠다"며 "조금 전에 들어오다 전해 들은 말로는 한동훈 대표께서 여야 대표 회담을 긍정적으로 생각하신다고 해서, 지금 대표 비서실장에게 실무협의를 지시해 놓은 상태다. 빠른 시간 내에 만나서 민생 문제, 정국 현안에 대해 허심탄회한 논의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오른쪽)가 19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4.8.19. 연합
 

이 대표 말대로 한동훈 대표는 양당 대표 회담 제안에 대해 "대단히 환영한다"면서 "조속한 시일 내에 시간과 장소를 잡았으면 좋겠다"고 화답했다. 한 대표는 이날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최고위 회의에서 "이재명 신임 대표의 당선을 축하드린다"며 "대표 회담을 통해 여야가 지금 미뤄지고 있는 여러 민생 과제에 대해 실질적인 많은 결과를 낼 수 있었으면 한다. 다양한 의제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논의하게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민주당 지도부의 다른 구성원들은 한 대표의 진정성을 두고 경계심을 표시하면서 강온 양면술을 전개했다. 박찬대 원내대표는 "한동훈 대표가 해병대원 특검법에 대해 다시 토를 달았다. 민주당이 순직 해병의 억울함을 풀고 수사 외압의 진실을 밝힐 수 있다면 제3자 추천안도 대승적으로 수용할 수 있다고 밝히자, 소위 '제보 공작 의혹'까지 수사 대상에 포함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토를 단 것"이라며 "한 대표 화법인가? 당대표 선거 때는 제3자 추천 특검을 해야 한다고 했다가, 당선된 뒤에는 발을 빼더니, 다시 추가 조건을 덧붙이면서 갈팡질팡하는 태도가 안쓰럽다. 할 건가, 안 할 건가?"라고 따져 물었다.

한발 더 나아가 "말은 무성한데 발의는 하지 않고, 말할 때마다 내용이 계속 바뀌니, 하겠다는 것인지 말겠다는 것인지, 이러자는 것인지 저러자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이번에도 특검안에 대해 갈팡질팡한다면 국민께서는 앞으로 한동훈 대표가 콩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믿지 않게 될 것"이라며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저희가 시원하게 제안하지 않았는가? 조건 달지 말고, 토 달지 말고, 특검법 발의하시기를 요청한다. 26일까지는 한동훈표 특검안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고 다그쳤다.

박 원내대표는 현재 대한민국이 직면한 안팎의 많은 위기와 민주당이 풀어야 할 과제를 하나하나 열거한 뒤 이재명 대표를 중심으로 한 당의 단합을 강조하는 말도 잊지 않았다. 그는 "민주당이 국민의 삶과 나라의 미래를 책임질 수권정당답게 해결책을 제시하고 국민께 희망을 안겨드려야 할 시점이다. 이재명 대표님과 새 지도부를 중심으로 당원들이 똘똘 뭉칠 때, 국민과 나라가 처한 위기를 지혜롭게 극복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며 "민주당이 국민에게 든든한 희망이 되도록 저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19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김민석 최고위원과 대화하고 있다. 2024.8.19. 연합
 

'수석' 자리에 오른 김민석 최고위원도 "집단지성의 역동적 드라마를 써주신 당원과 성원해 주신 국민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이재명 대표를 중심으로 단결하라', '폭정과 친일 회귀를 제압하고 집권을 준비하라'는 당심과 민의로 새기고 무겁게 받들겠다"면서 "전당대회 기간 중 자임하고 약속드린 대로 집권과 성공적 국정 운영을 위한 당의 준비를 위해 전속력으로 뛰겠다. 이재명 대표가 이끄는 민주당이 올림픽 양궁팀처럼 실력 있는 모든 국회의원과 지역위원장, 당내 성원들이 총력으로 함께 뛰는 실력주의 동심원 체제, 올라운드 팀플레이 체제로 크고 넓고 강해지도록, 그리고 최고위원회의도 팀플레이의 모범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경선에서 2위를 차지한 전현희 최고위원은 "저는 18대 국회 입성 이후에 이번에 처음으로 당내 선거에 도전했다. 그 이유는 국민권익위원장 때 무도하고 불의한 윤석열 정권의 탄압을 직접 당하고 싸워 이기면서 그 과정에서 제가 목격한 윤석열 정부의 민낯을 보았기 때문"이라며 "제주에서 서울까지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면서 만난 당원들의 뜻은 분명했다. '이재명 1기 지도부의 노력과 성과를 계승해서 당원이 진짜로 주인이 되는 민주당을 만들어 달라'. '윤석열 검찰독재정권과 더 가열하게 싸우고 이재명 대표 중심의 4기 민주정부 시대를 열어달라'. 윤석열 정권과 더 지독하게 싸우겠다. 무엇보다 이재명 민주당 정부 출범을 위해서 최선을 다해서 온몸을 던져 싸우겠다"고 말했다.

MBC 출신 한준호 최고위원은 무엇보다 언론 개혁 분야에서 본인의 소임을 다하겠다는 점을 피력했다. 그는 윤석열 정권의 언론 장악 사례와, 광복절에 공영방송 KBS가 오페라 '나비부인'을 상영해 온 국민이 일본 기미가요를 듣게 만들었던 방송 참사 등을 거론한 뒤 "언론개혁은 지금 이순간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개혁 과제다. 우리 기억과 생각에 권력이 더 이상 손대지 못하도록 언론개혁을 시작해야 한다"며 "이번 전당대회를 거치면서 당원들과 국민께서 민주당 새 지도부의 언론 개혁을 명하셨다. 그 시대적 사명을 빠르고 확실하게 달성할 수 있도록, 유능한 민주당의 진면목을 보이도록 저도 함께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을 지낸 4성 장군 출신 김병주 최고위원은 윤석열 정부가 갈수록 고조시키는 '안보 위기'를 막기 위해 최전선에서 싸우겠다고 확언했다. 그는 특히 김용현 국방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지명 철회를 윤 대통령에게 강력히 요구했다. 그 이유로 ▲김용현 후보자는 국민의 입을 틀어막아 민주주의를 훼손했다는 점 ▲대통령실 졸속 이전으로 국민의 혈세를 낭비했고 안보 위기를 초래했다는 점 ▲채 해병 외압 의혹의 핵심 관련자는 점 등을 들었다. 그러면서 "이런 사람이 국방부 장관을 맡으면 군령이 제대로 설지 의문"이라며 "특히 이러다 탄핵 정국에 접어들면 박근혜 전 대통령처럼 무너지지 않고 군을 동원해 계엄령을 선포하는 것은 아닌지 많은 국민들이 걱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제1차장이 18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캠프데이비드 정상회의' 1주년 한미일 협력 성과 등 현안에 대해 브리핑하고 있다. 2024.8.18. 연합
 

"중요한 건 일본의 마음", 이른바 '중일마' 발언으로 파문을 일으킨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에 대해서도 강도 높게 비판했다. 김병주 최고위원은 "일본의 마음은 중요하고, 우리 국민의 마음은 중요하지 않은 것인가? 이는 친일 정권임을 선언하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친일을 넘어 숭일(崇日)하는 윤석열 정권, 이 정도면 대한민국 국민임을 포기하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고 개탄했다. 또 "김태효 차장은 지난해 3월에도 '우리 외교부가 집계한 일본의 공식 사과가 20차례가 넘는다'는 발언으로 집중포화를 맞은 바 있다"며 "일본의 피로도를 걱정하더니 마음까지 배려하는 정부, 일본의 충성스러운 신하가 아닌지 의심스럽다. 김태효 차장은 당장 국민께 사죄하라"고 촉구했다.

오랜 기간 보수우파 정당을 전전하다 민주당에 복귀해 이번에 지도부에까지 입성한 이언주 최고위원은 '동진정책'과 '민생경제'에서 본인의 특장점을 발휘하겠다고 전했다. 이 최고위원은 부산 출신에 에스오일 법무총괄 상무 등을 지낸 실물경제 전문가다. 그는 "영남과 수도권의 중산층을 대상으로 하는 우리의 동진정책에 대해서 신경을 많이 쓰겠다. 그리고 민생과 경제에 대해서도 관심을 많이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경제 현안인 티메프 사태와 관련해 피해자들에 대한 긴급경영안전자금이 심각한 문제라며 당장 금리를 무이자에 가깝게 낮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남다른 '전투력'도 강점인 이 최고위원은 "한동훈을 상대할 적임자는 이언주"라던 경선 때 호언대로 첫날부터 한동훈 대표를 향해 포문을 열었다. 그는 "한 대표는 자꾸 말만 하지 말고, 변죽만 울리지 말고 (채 해병 특검) 법안을 발의부터 하기 바란다. (법안 발의 요건인) 국민의힘 의원 10명을 모으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가?"라고 꼬집었다. 나아가 한 대표가 주장하는 '대법원장 추천 특검'을 두고 "대법원장 특검은 제3자 특검이 아니다. 대법원장은 대통령이 임명한 사람이고, 결국 셀프 특검이 될 수도 있다"면서 "더군다나 특검 수사 결과 기소가 되면 마지막에 심판을 하는 곳이 대법원인데, 그 대법원장인 심판자가 어떻게 특검을 추천하겠는가? 그래서 그것은 아예 생각도 하지 말라"고 단호하게 거부했다.

최고위원들 발언을 다 듣고 난 이재명 대표도 새 지도부 회의 첫날이지만 그냥 넘어갈 수 없다고 판단했는지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의 '중일마' 발언을 다시 짚었다. 이 대표는 "대한민국 공직자는 대한민국 국민이 뽑은 국민의 대리인이다. 대통령실에서 배려해야 할 것은 대일본제국 천황이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의 마음"이라며 "일본 국민의 마음을 살필 것이 아니라 우리 국민의 마음을 살피길 바라고, 그것이 잘못됐다고 생각하면 당연히 즉각적인 엄중한 조치가 필요할 것 같다"고 김태효 차장에 대한 대통령실의 엄중 조치를 요구했다.

 

이 대표는 이날 취임 첫 인선으로 대표 비서실장과 수석대변인에 비교적 계파색이 옅은 이해식·조승래 의원을 각각 임명했다. 이 가운데 조 의원은 '비명계'로 분류된다. 이번 인사는 소위 '일극체제'에 대한 일각의 우려를 불식시키며 당내 통합을 염두에 둔 것으로 해석된다.

이 대표는 또 오는 22일 새 지도부와 함께 경남 양산 평산마을로 내려가 문재인 전 대통령을 예방하기로 했다. 같은 날 경남 김해 봉하마을도 찾아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부인 권양숙 여사도 예방할 계획이다. 취임 뒤 관례적인 일정이긴 하지만 이 역시 '민주당은 하나'라는 통합 메시지를 내는 데 주안점을 둘 것으로 보인다.

한편, 최고위원 경선에서 선두를 달리다 '명팔이 척결' 발언의 여파로 결국 탈락한 정봉주 전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다시 뵐 날을 기약하겠다"는 글을 올려 정치적 재기를 도모하겠다는 뜻을 시사했다. 정 전 의원은 "7월 14일 이후 경선 기간 내내 진심으로 격려해주신 지지자 여러분, 감사하다"며 "저를 반대했던 분들조차도 민주 진보 진영의 소중한 자산이다. 이분들에게도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했다. 그러면서 "다시 뵐 날을 기약하겠다"고 덧붙였다.   < 김호경 민들레 기자 >

'명팔이' 정봉주 탈락, 희대의 자충수…김두관도 패착

윤 대통령에 영수회담 제안…한동훈과 회담도
"채 해병 특검 도입 전제로 허심탄회 논의하자"

경선 내내 '네거티브전' 김두관 12.12% 고배
박용진보다 10%p나 떨어져…'비명계' 더 축소

4선 중진 '전략통' 김민석, 수석최고위원에 안착
전현희·김병주·한준호·이언주 '2기 지도부' 구성


더불어민주당 당 대표 연임이 확정된 이재명 신임 당대표와 새 최고위원들이 18일 오후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KSPO돔에서 열린 전국당원대회에서 꽃다발을 들고 당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병주·전현희 최고위원, 이재명 당대표, 김민석·한준호·이언주 최고위원. 2024.8.18 [공동취재] 연합
 

더불어민주당 당대표에 이재명 후보가 역대 최고 득표율로 당선됐다. 최고위원으로는 김민석·전현희·김병주·한준호·이언주 후보(득표율 순)가 선출됐다. 반면 최고위원 후보군 중 선두권을 달리다 '이재명 팔이 척결'이라는 돌출 발언으로 파문을 일으켰던 정봉주 후보는 결국 탈락했다. "이재명은 대통령이 되면 안 된다"며 대다수 당원들 의사에 반하는 좌충우돌을 일삼다 '명팔이'가 아닌 본인이 퇴장당함으로써 이번 전당대회 최대의 파란으로 기록됐다.

이 대표는 18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KSPO돔에서 열린 제1회 정기전국당원대회 대표 경선에서 최종 85.40%의 압도적 득표율로 당선돼 '이재명 2기 체제'의 막을 올렸다. 지난 2022년 대표 선거에서 자신이 기록한 77.77%의 득표율을 넘어선, 민주당 대표 선거 역대 최고 득표율이다. 이 대표는 일반국민 여론조사에서 85.18%, 권리당원 투표에서 88.14%, 대의원 투표에서 74.89%를 얻는 등 당 안팎에서 두루 높은 지지를 받았다. 민주당 계열 정당에서 당 대표가 연임에 성공한 것은 1995∼2000년 새정치국민회의 총재직을 맡은 김대중 전 대통령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이 대표는 전당대회 정견 발표에서 "대한민국이 어렵다. 정권의 불법과 부정 때문에 민생경제와 외교, 안보, 민주주의 등 모든 영역이 퇴행 중"이라며 "반부패기관인 국민권익위원회가 대통령 부인의 부패를 덮어주느라 억울한 공직자를 죽음으로 몰았다"고 윤석열 정권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어 "우리는 하나다. 작은 차이를 넘어 함께 손을 잡고 나아가자"면서 "민주당을 대한민국의 확실한 수권정당, 유능한 민생정당, 듬직한 국민정당으로 확실하게 만들어내겠다"고 강조했다.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연임에 성공한 이재명 신임 당대표가 18일 오후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KSPO돔에서 열린 전국당원대회에서 박찬대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로부터 전달받은 당기를 흔들고 있다. 2024.8.18 [공동취재] 연합
 

이 대표는 대표직 수락 연설 및 기자회견에서는 윤석열 대통령을 향해 양자 회담을 공식 제안했다. 그는 "지난 4월 총선 직후 영수회담에서는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해 아쉬웠다"며 "지난 회담에서 언제든 다시 만나 국정에 대해 소통하고 의논하자는 데 뜻을 같이한 만큼 대통령의 화답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회담 의제에 대해서는 "국민이 관심을 갖는 국정 중요 사안은 다 논의할 수 있다"며 "용산 대통령실에서 제안한 의제만으로도 대화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

나아가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에게도 대표 회담을 제안한다"면서 "시급한 현안들을 격의 없이 의논하자"고 전했다. 특히 "무엇보다 가장 큰 쟁점인 채 해병 특검법에 대해 허심탄회한 논의가 필요하다. 한 대표도 진상 규명을 반대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민주당이 발의한 특검안이 최선이라 생각하지만, 한 대표도 제삼자 특검 추천안을 제안한 바 있으니 특검 도입을 전제로 실체 규명을 위한 더 좋은 안이 있는지 논의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이 대표는 '여당의 제삼자 추천안을 받을 수 있다는 의미인가'라는 기자 질문에 "정권의 부정과 비리를 수사하는 특검은 야당이 추천해야 한다는 생각을 바꾼 것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도 "일방적 관철이 어려우면 합리적 수준으로 조정할 수 있는 게 정치다. 그런 측면에서 박찬대 대표 직무대행도 (제삼자 추천안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한 것으로 안다"며 "그 기조는 가급적 유지되는 게 바람직하다"고 가능성은 열어뒀다.

여야 대표 회담 의제와 관련해서는 "어려운 민생문제 중에서도 장기화하는 내수 부진을 타개할 방안에 대해 의논해야 한다. 민주당은 즉각적이고 전면적인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이야말로 가장 효과적인 방안이라고 생각한다"면서 "국민의힘 내에서도 총선 당시 가장 좋은 정책을 민생지원금으로 꼽는다는 보도가 있었다. 서민 경제를 지원하고 경제 회복에 도움 될 방안이 있다면 얼마든지 협의하고 수용하겠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또 "극한적 대결 정치를 종식하고 망국적 지역주의를 완화할 민주정치 발전 방안에 대해서도 의논하자"며 "의견 차이가 큰 부분은 미루더라도 한 대표가 약속했고 여야 간 이견이 없는 '지구당 부활' 문제라도 우선 논의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그는 "지구당 폐지로 국회의원과 경쟁하려는 원외 인사들의 기회를 완전히 박탈됐다"면서 "원외 인사들이 공정한 환경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게 첫째 이유"라고 설명했다.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연임이 확정된 이재명 당대표(왼쪽)가 18일 오후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KSPO돔에서 열린 전국당원대회에서 개표 결과가 발표되자 김두관 후보에게 인사를 받고 있다. 2024.8.18 [공동취재] 연합
 

경선 과정 내내 이 대표에 대한 네거티브전으로 일관했던 김두관 후보는 최종 득표율 12.12%로 쓴잔을 마셨다. 김두관 후보는 대의원 투표에서 21.15%를 얻으며 비교적 선전했으나 일반국민 여론조사에서 11.72%, 권리당원 투표에서 10.07%를 확보하는 데 그쳤다. 김 후보의 득표율은 지난 전당대회에서 이 대표와 맞붙었던 비명계 박용진 후보의 득표율 22.23%보다 10%p나 떨어진 수치다. 김 후보의 초라한 성적표는 주로 시대착오적 당원 인식에서 기인한 전략적 패착의 결과로 평가된다. 한편으로는 2년 전보다 더 축소된 비명계 입지를 여실히 드러냈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 대표와 김 후보의 득표율 차이는 권리당원 투표에서 78.07%p로 가장 컸고, 대의원 투표에서 53.74%p로 가장 작았다. 김지수 후보는 최종 2.48%를 득표했다.

이재명 대표 체제 2기 지도부가 될 최고위원으로는 김민석(18.23%)·전현희(15.88%)·한준호(14.14%)·김병주(13.08%)·이언주(12.30%) 의원이 선출됐다. 4선 중진에 지난 총선 때 중앙당 상황실장을 지내는 등 대표적 '전략통'으로 꼽히며 이재명 대표와의 신뢰 관계도 두터운 것으로 알려진 김민석 후보는 일반국민 여론조사 19.03%, 권리당원 투표 18.59%, 대의원 투표 15.05% 득표로 수석 최고위원 자리에 올랐다. 전현희 후보는 권익위 간부 사망 사건과 관련한 "김건희 살인자" 발언 등으로 여권과 보수언론의 집중포화를 맞기도 했으나 대여 투쟁의 치열함과 진정성을 인정받으며 2위를 차지했다.

 

더불어민주당 정봉주 최고위원 후보가 18일 오후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KSPO돔에서 열린 전국당원대회에서 정견발표를 하고 있다. 2024.8.18. 연합
 

선거 초반 권리당원 투표 1위를 차지하는 등 돌풍을 일으켰던 정봉주 후보는 박원석 전 정의당 의원이 폭로한 "최고위원 5명 안에만 들어가면 되잖아. 두고 봐. 내가 들어가면 어떻게 하는지" "이재명이란 사람은 조그마한 비판도 못 참는다. 행정가 출신이라서 그렇다. 제왕적인 권한을 행사하다가 (정치권에 와서). 그런 사람들은 대통령 되면 안 된다. 표본이 윤석열이다" 등의 발언에 이어 본인이 직접 기자회견을 통해 "당 내부의 암덩어리인 '명팔이'를 잘라내야 한다"며 "최고위원회의에서 그냥 거수기가 되지는 않겠다"고 돌출 선언을 한 것이 자충수가 돼 결국 몰락하고 말았다. 당원들 분노가 워낙 거세 정 후보는 향후 정치적 재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

이번 당대표 및 최고위원은 권리당원 투표 56%, 대의원 투표 14%, 일반 여론조사 30%를 합산해 결정됐다. 대의원은 총선거인 1만 7146명 중 1만 3190명이 투표해 투표율 75.73%를 기록했다. 권리당원은 총선거인 122만 2104명 중 당대표 투표에 51만 5511명, 최고위원 투표에는 51만 7180명이 참여해 각각 42.18%, 42.32%의 최종 투표율을 보였다.  < 김호경 민들레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