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유럽대륙에 ‘폭탄 사이클론’ 강타
올겨울 북극해빙면적 감소 역대 두번째
한파 부르는 북극진동지수도 강한 음의 값
극소용돌이 약해져 북극 한기 남하한데다
바다에서 공급된 따뜻한 수증기 만나 폭설

‘폭탄 사이클론’이 미국 북동부를 강타한 가운데 나이아가라폭포가 얼어붙었다. 연합뉴스

미국 북동부를 덮친 ‘폭탄 사이클론’으로 사망자가 잇따르고 있다. <유에스에이 투데이>(USA today)는 4일(현지시각) 이번 한파로 인한 사망자 수가 17명에 이른다고 보도했다. 텍사스에서 3명이 한파로 동사하고, 노스캐롤라이나에서는 눈 쌓인 길을 달리던 자동차가 전복돼 2명이 숨졌다. 4일에만 4000편이 넘는 비행기가 결항됐으며 뉴욕·필라델피아·보스턴 등지의 많은 학교들이 폐쇄됐다. 시속 95㎞의 강풍을 동반한 폭설로 보스턴에는 최고 45㎝의 눈이 쌓였고 남부인 플로리다주에도 30년 만에 눈이 쌓였다. <워싱턴 포스트>는 5~6일 미 북동부 지역의 기온이 사상 최저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보도했다.

북미의 ‘폭탄 사이클론’은 왜 발생했을까? 미국 국립해양대기청(NOAA) 누리집 등에서 북반구 중위도 지역의 겨울철 한파 선행 요소인 북극해빙 면적과 북극진동지수를 살펴보면 이번 한파는 예고된 것임을 알 수 있다. ‘폭탄 사이클론’은 기압이 24시간 안에 24밀리바 이상 떨어지는 폭탄급 폭풍을 일컫는다. 이번 사이클론은 북미 대륙의 따뜻한 해양 기류가 북극에서 내려온 한기와 만나 기압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발생했다.

북극 상공에 갇혀 있던 한파가 미국 북동부까지 내려온 것은 극 소용돌이(폴라 보텍스)의 강도가 약해졌기 때문이다. 극 소용돌이가 약해지는 현상이 북극해빙 면적과 관련이 있다는 것은 기상학자들에 의해 밝혀져 있는 사실이다. 극 소용돌이 강도가 주기적으로 바뀌는 북극진동 현상은 지수로 나타내는데, 올해 북극해빙 면적과 북극진동지수는 북극 한기가 중위도 지역을 기습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해 12월 북극해빙 면적은 1175만㎢로 위성 촬영을 시작한 1979년 이래 역대 둘째로 적었다. 1981~2010년 30년 평균보다 109만㎢ 작고, 역대 최저인 2016년 12월보다 불과 28만㎢가 큰 면적이다. 특히 이달 들어서는 역대 최저 수준으로 변하고 있다. 또 북극진동지수는 지난해 11월부터 12월 중순까지 강한 음의 값을 보이고 있다. 북극진동지수가 음의 값이면 보름에서 한달 뒤 중위도 지역에 한파가 닥칠 확률이 높아진다.

북극해빙 면적이 감소한 지역에서 방출된 열과 수증기가 성층권까지 전달되면 북극 상공 2㎞ 성층권에 영하 40~50도의 한기를 가둬두고 있는 극 소용돌이가 약해져 한기가 하층으로 내려온다. 북극진동지수가 음일 때는 대류권에서 뱀처럼 사행을 하는 제트기류가 중위도 지역까지 처지면서 북극 상공에서 내려온 한기가 그대로 중위도 지상에까지 전달돼 한파가 닥치는 것이다. 지난해 12월에는 제트기류가 동아시아 쪽으로 처져 우리나라에 초겨울 한파를 가져왔고, 1월 들어서는 그 지역이 북미와 유럽 대륙으로 변한 것이다.

북극해빙 감소가 기상·기후에 영향을 주는 원리. 북극해빙 감소 지역에서 열과 수증기(지표면 열속)를 방출하면 대기 흐름에 따라 성층원에 전달되고, 이로 인해 북극 소용돌이가 약해져 중위도 지역까지 처지면서 북극 한기를 전파해 한파와 폭성이 발생한다.


김백민 극지연구소 기후변화연구부 책임연구원은 “북서태평양 지역에서 라니냐 관련 수증기 수송이 많아져 북미 지역에 따뜻한 공기가 들어와 있는 상태에서 성층권의 차가운 공기가 남쪽 깊숙이 급격하게 내려와 폭설과 한파가 닥쳤다. 해마다 북극 소용돌이가 약해져 북극 한기가 중위도 지역으로 내려올 수 있는 상태가 유지되고 있는 상태인데 올해는 적도 지역 따뜻한 공기의 북상까지 겹쳐 폭탄 사이클론이 발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 이근영 김효진 기자 >


[1500자 칼럼] 내가 뽑은 성군 (聖君)

● 칼럼 2017. 12. 28. 18:20 Posted by SisaHan

성군(聖君)이란 인덕이 아주 뛰어난 어진 임금을 말한다. 요새같이 임금이 드문 세상에는 한 나라의 최고 정치 지도자라고 할 수 있겠다. 누가 나보고 조선 역사에 남는 성군을 말해보라면 제 4대 임금 세종대왕과 제22대 임금 정조를 꼽겠다. 세종은 한글을 만든 임금으로 조선 517년 역사에 가장 찬란하고 후덕한 발자취를 남긴 임금이니 별 수식이 필요 없지 싶다. 정조는 생각 밖으로 진보적인 생각을 가졌던 임금으로 24년 3개월간 조선을 통치하다가 석연치 않은 일로 죽었다.
정조는 뒤주 속에서 죽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당시 조정 안팎을 주무르던 노론 세력에 눌려 말 한번, 행동 한번 마음 속에 있는 대로 내놓아 보질 못하고 세자 시절을 보냈다. 주위에는 자기를 헐뜯기에 바쁜 노론세력들이 눈을 부릅뜨고 있고 왕위에 오르기 전이나 후에도 그를 죽이려는 암살 기도가 끊임없었던 세상. 정조가 임금이 되고 나서도 그를 죽이려는 세력들이 존현각 지붕을 뚫고 들어가려다가 밤 늦도록 책을 읽는 정조에 들켜 도망치지 않았던가.

왜 정조가 내가 뽑은 성군 둘 중에 들어가는지를 설명할 차례다. 정조가 임금자리에 오른 것은 그가 24살, 아버지 사도세자가 죽은 지 꼭 13년 만이다. 그는 왕위에 오르자마자 아버지 사도세자를 죽이는데 앞장섰던 처 삼촌 홍인한, 정후겸, 아버지 영조의 새 장인 김귀주 등을 사형했다. 정조의 장인, 그러니까 홍봉한은 당시 노론의 총수로 사도세자를 죽이자는 것을 노론의 당론으로 합의를 본 사람이고 사도세자가 들어앉을 뒤주까지 구해서 영조에게 바친 사람이다. 홍봉한도 사형 후보자에 올랐으나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배려하여 죽이지는 않았다. 혜경궁 홍씨는 망해가는 친정을 구하기 위하여 4번에 걸쳐 <한중록>을 썼다. 그러니 <한중록>을 사도세자의 참상을 회고하는 고백이라기 보다는 무너져가는 친정을 살리기 위한 정치적 백서에 지나지 않는다는 게 사가들의 의견이다.

둘째, 정조가 성군이라는 이유는 정조의 인재기용 및 문예부흥이다. 정조는 이승훈이 북경에 가서 세례를 받고 돌아온 후에 빠르게 교세를 확장하고 있는 천주교에 대해서 조정에서 이들에게 너무 예민하게 대하지 말 것을 제안했다. 정조는 지식인들, 그것도 서출(庶出) 계열의 학자들을 대거 등용, 규장각을 세워 문예 부흥을 시도했다. 양반가에서 태어난 서자는 주인 못지 않는 학문을 이루었는데도 어머니의 신분이 낮다는 이유 하나로 차별대우에 시달렸다. 이에 정조는 성호 이익의 서자 청장관(靑莊館) 이덕무, 유관의 서자 유득공, 북촌 사대부집의 삯바느질로 서출 아들을 당대 제일의 학자로 만든 초정(楚亭) 박제가 등 실로 기라성 같은 큰 학자들을 대거 기용했다. 진보적인 생각을 가졌던 정조는 현실에서 소외된 선비들이 모여서 실학의 한 주류인 북학파, 즉 농산업 중심의 개혁론을 주창한 이용후생학파의 형성을 말없이 도왔다. 북학파의 근본취지는 청나라의 발전된 문물을 배우자는 것. 겉으로는 매년 사신을 보내면서도 청나라를 오랑캐라며 멸시하는 성리학자들의 이중적 처신이 지배하는 나라 조선에서 청나라를 배우자고 주장하는 것은 당시로써는 혁명적인 인식 전환이었다.

정조는 뒤주 속에서 죽은 아버지 사도세자를 생각하면 금새 피눈물을 쏟는 심정이 되곤 했다. 양주 배봉산 언덕에 묻힌 사도세자의 무덤은 수은묘라 불렸다. 정조가 사도세자의 무덤을 옮기기로 마음먹었던 것은 10년 넘어 일, 노론의 눈치를 보느라 이렇게 늦었다. 정조가 성군이란 증표는 사도세자의 수은묘 이장에서도 잘 나타난다.

그는 무엇보다도 이주한 백성들에게 후하게 보상해주는 것은 물론 더 살기 좋은 곳으로 이주지를 잡아주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다. 둘째는 백성의 강제부역을 일체 금지하는 것이었다. 이주해야 할 백성은 200여 가구. 정조는 균역청의 돈 10만량을 이주비로 사용케 하고 내탕금(임금의 자금)까지 희사했다. 정조는 “털끝만한 폐도 백성들에게 끼치지 않겠다.”면서 사도세자의 상여도 백성의 부역이 아니라 일꾼을 사서 상여를 매게 했다.

시대가 흘렀어도 인간 됨됨이가 좋은 자질로 태어난 사람이 있고 나쁜 자질로 태어난 사람들이 있다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맞장구를 치지 싶다. 우리는 1945년 해방 이후 한번도 성군을 가져보지 못했다. 그 반대로 국민들에게 거짓말을 하거나 죄 없는 사람을 잡아다가 거짓 자백을 강요한 뒤 좌파니 종북세력이니 하는 올가미를 덮어 씌우는 것을 능사로 삼는 악질 관리, 악질 정치가들만 쏟아져 나왔다. 학교에서는 도덕을 가르치고 사회생활을 가르치는데도 날이 갈수록 이 사회는 점점 거칠어지고 혼탁해 가기만 한다. 성군다운 정치가는 언제 오려나.

< 이동렬 - 웨스턴 온타리오대 명예교수 >


[한마당] 다시 연말연시의 소망

● 칼럼 2017. 12. 28. 18:17 Posted by SisaHan

다시 ‘연말연시 증후군’ 이다. 무심하고 도도하게 흘러가는 세월의 구비와 너울을 지켜보며 아쉬움과 기대가 교차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해마다 이 맘 때면 찾아드는 어김없는 감상이다. 한 해가 가고 또 온다는 시간 규범에 떠밀려 모처럼 삶과 세상을 향한 성찰의 시간을 마주하는 것이다.
실상은 아무런 공간적 구획이 그어진 것도 아니요, 영속하는 시간의 인간적인 단락일 뿐이지만, 그럼에도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도는 우주 순환의 이치를 슬기롭게 원용한 인간다운 지혜의 산물이 아닐 수 없다. 만약 일년이 끝없이 이어져서 새해라는 개념이 없다면 얼마나 지루하고 끔찍할까. 쑥쑥 자라야 할 아이가 학년 승급이 없이 늘 유치원생이고, 초등학생이고 평생 중학생에 머문다면 정말 최악일 것이다. 해가 바뀌어 의젓한 고등학생이 되고, 2학년 3학년생에 이어 대학생이 되며 알게 모르게 부쩍부쩍 자라 영역을 넓히는 것이 인간적인 성장과 성숙의 오묘한 비결이기도 하다. 세상 운행과 자연의 섭리가 바로 그런 단락을 쌓아가며 발전하고 도약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세월이 가고 해가 바뀐다고 어디 저절로 인간다움의 성숙이 찾아오던가. 돌아보고 깨우치고 새로운 도전을 하지 않는 승급에서 내적 성장과 성숙을 기대할 수는 없다. 해가 바뀌는 데도 한 단계씩 올라가지 않고 마냥 그대로의 수준과 상태가 유지된다면 어떻게 될까. 마치 만년 유치원생에 머물거나, 알을 깨고 나올 줄도, 날아 오를 줄도 모르는 부화 미숙란처럼 사실상 정체된 모습 말이다. 세월의 강물은 흘러가는데 아무런 변화도 성숙도 없다면 그것은 사실상 퇴보를 뜻하는 것이니, 죽은 상태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세월은 가는데도 죽은 상태처럼 변화가 없다면 그처럼 불행한 일이 또 있을까. 가정이나 개인적 인생의 행로이든, 어느 인간사회 수준이든, 또한 나라의 운명이든, 나아가 세계 정세나 인류사에 있어서든… 새로운 날들을 맞으며 무언가 좋아지고 새롭게 변화되고 진전하기를 바라는 것은 인류 공통의 염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지난 한해는 얼마만한 진보를 이뤘고 사람들 마음이 편안해지고 삶이 호전되었는가.

이제 다시 연말연시와 송구영신의 능선을 하나 또 넘어서며, 얼마나 성숙하고 변화되고 새로워졌는지를 살펴보면, 역시 아쉬움과 답답함이 가슴을 짓누른다. 지구상에 평화의 지수는 전혀 높아지지 않았고 불안과 위기의 지수가 더 높아졌음을 느낀다. 경거망동의 지도자들이 적대와 불안을 부추기고 곳곳에서 살상과 혈투가 격화하면서 생사를 넘나드는 난민은 급증했다. 천재지변과 인재의 환란 또한 빈발했다. 빈부의 격차는 하늘과 땅 만큼이나 벌어져 상위 10%의 부유층이 나머지 90%의 재물과 삶을 쥐어짜는 현실이라는 지적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대립과 무력의 위협도 결코 낙관으로 흐르지 않았다. 남북간의 평화와 화해는 진전이 없었고, 통일담론은 꺼내지도 못했다.
촛불혁명 이후 나라다운 나라로, 사람 대접받는 나라로 정치가 혁신되리라는 기대는 실망에 가깝다. 잘못을 저지른 자들, 적폐의 장본인과 부역자들이 사죄나 참회는커녕 온갖 뻔뻔한 궤변과 선동으로 저항하고 훼방하는 철면피 작태가 사람들 가슴에 다시 울화의 기운을 북돋우고 있다. 인류가 좀더 평안해졌다고 좋아하는 사람을 볼 수 없다. 살기 좋아졌고 맘 편하다고 웃음짓는 사람들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그래도 이제 다시 새해를 앞두고 작은 희망의 불씨를 살려보자고, 한 그루 사과나무를 심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우리 서로의 가슴을 다독여야 하지 않을까. 해마다 비슷한 꿈을 꾸고, 다시 반복해 성을 쌓아올리기만 하는 또 하나의 시지푸스가 될지언정, 시도와 도전 자체로 살아 숨쉬는 삶과 존재의 의미, 공동선을 향해 전진하는 인류의 꿈을 살려내야 할 것 같다.
그래서, 그럼에도 다시 촛불을 켜고, 나태와 허욕과 이기로 얼룩진 어두운 내면의 터널들을 비춰보았으면 좋겠다. 지난 후회를 반추하고, 잘못을 용서 빌고, 교만을 회개하면서 새 날들을 맞는다면 더 이상 좋을 게 있겠는가. 이 혼란스럽고 사악하기 그지없고 적대와 분노가 가득한 세상에, 작지만 진심과 사랑으로 켜는 등불들을 한사람 한사람씩 내걸기 시작하면, 세상이 차츰 밝아지고 선해지고 평안을 노래할 수 있지 않을까.
 
성탄절을 맞으며, 어둡고 혼탁한 세상에 빛으로, 사랑으로 임한 그리스도의 대속의 삶을 음미하는 시간이 되기를 간구한다.
낮아지고 작아지고 비우고 내려놓은 숭고한 성육신의 스토리를 성경의 일화나 세속화된 절기의 내력으로만 접할 게 아니다. 낮아짐이 높임이며 작아짐이 커짐이요 비움이 채움임을 깨닫고 확인하는 계기로 다가오기를 기원해 본다. 희생과 속죄가 중생을 이루고, 이웃을 향한 공의의 배려와 섬김이 평화와 번영과 행복의 길임을 새기는 크리스마스, 그래서 스스로 참회하고 좀더 겸손해지는 연말연시가 되기를 소망해본다.

< 김종천 편집인 >


[칼럼] 그럼에도 검찰개혁

● 칼럼 2017. 12. 28. 18:16 Posted by SisaHan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결국 구치소에 수감됐다. 집요한 검찰 수사를 방어하느라 본인도 많이 지쳐 있었을 것이다. 그의 옛 검찰 동료는 “차라리 진작 (구치소에) 들어가는 게 나았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구속영장 청구가 두번 세번 이어지면서 새로운 혐의가 계속 추가되어 우 전 수석으로선 더 불리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시각도 일부의 진실만을 담고 있을 뿐이다. 수사 초기에 전 정권의 검찰 수뇌부가 의지만 있었다면 지금보다 더 많은 혐의가 일찍 드러났을 가능성이 크다.


일부에선 검찰의 과도한 영장 청구 관행을 비난하는데 옥석을 가릴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특히 무슨 쿠데타라도 났느냐며 힐난하는 사람들이 일부러 생략하는 대목이 있다. 압도적 여론으로 대통령이 탄핵될 만큼 박근혜 정부 시절 엄청난 규모의 불법 행위들이 있었다는 점이다. 이를 단죄하다 보니 갑자기 많은 사람이 감옥에 갇히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피디수첩> 광우병 보도 사건이나 미네르바 사건처럼 없는 죄를 만들어내는 게 아니다. 오히려 짧은 기간에 수사할 게 너무 많아서 최순실 일가의 재산 형성 과정이나 국외은닉 의혹 같은 건 손도 대지 못하는 실정이다. 어떤 정권도 임기 초 사정 작업을 이렇게 대대적으로 한 적이 없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논리로 답할 수밖에 없다. 과거에 이렇게 방대한 불법과 탈법 행위를 저지른 정권이 없기 때문이다.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가 과도하다는 비판에 대해 검찰은 전체 사건에서 차지하는 구속인원 점유율이 1%대(2016년 1.3%)에 불과하다고 반박한다. 국정농단 사건과 국정원·군사이버사의 선거개입 및 여론조작, 국정원 특수활동비 횡령 및 뇌물수수 사건이 1%에 속하는 중대 범죄임은 분명하다. 더구나 이들은 대체로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증거인멸 우려가 농후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과 임관빈 전 국방부 정책실장을 구속적부심에서 석방한 신광렬 판사의 결정은 사법 불신을 부추기는 데 한몫했다고 본다. 사법부 독립이라는 것은 여론과 공중의 지지 속에서 존재하는 것이다. 법원 내부에서조차 비판이 나올 정도로 관행을 어겨가며 무리하게 할 일이 아니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로서의 권한을 과도하게 행사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검찰의 적폐수사를 비난하는 주장은 아전인수와 ‘내로남불’로 가득 찬 것이 많지만 귀담아들을 대목이 없는 건 아니다. 구속 여부를 중시하는 인식과 관행에 대한 지적이 그렇다. 검찰이나 언론이나 일반 국민이나 마찬가지다. 서구의 형사사법체계를 받아들인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생기는 일이겠지만, 우린 기소 전의 구속 여부에 지나치게 관심이 많다. 구속=유죄, 불구속=무죄로 여겨지기도 한다. 헌법의 무죄 추정 원칙이나 공판중심주의는 설 자리가 없다. 역설적으로 이런 인식과 관행 탓에 영장청구권을 독점하고 있는 검찰의 권력이 더욱 커지는 것도 사실이다. 권력이 집중되면 반드시 썩는다.


우린 지금 검찰의 손을 빌려 적폐를 청산하는 중이지만, 바로 그 검찰이 적폐의 본산이었음을 잊어선 안 된다. 검찰 권력이 제대로 작동했다면 국정농단 사태는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처럼 검찰이 수사권과 기소권을 동시에 갖고 있으면서 영장청구권을 독점하는 한 제2의 우병우는 언제든 다시 나올 수 있다. 정말 검찰의 과도한 수사가 문제라고 생각한다면 그런 권한 행사가 가능한 현재의 독점 구조를 깨는 일에 적극 나서야 한다. 정권만 바뀌면 내로남불과 아전인수로 서로를 비난하는 퇴행적인 역사에서 벗어날 수 있는 지름길이다.

< 이재성 - 한겨레신문 사회 에디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