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로회의 언더우드와 감리교의 아펜젤러가 제물포항에 첫발을 내디딘 게 1885년 4월5일이다. 부활절 주일과 정확히 일치하는 날, 한국 기독교가 선교 130돌을 맞는다.
기독교는 불과 130년 만에 동아시아에서 유독 한국에서만 주류 종교가 되었다. 이들은 어떻게 단기간에 민중들 속에 뿌리내릴 수 있었을까.


의문을 풀려면 언더우드나 아펜젤러보다 한 달 뒤 들어온 윌리엄 스크랜턴을 주목해야 한다. 그는 예일대와 컬럼비아대 의과를 나온 엘리트였지만, 다른 선교사들과 달리 외국 공사와 양반들의 거처였던 정동을 떠나 하층민들이 살던 애오개, 남대문, 동대문에 병원과 교회들을 세웠다. 그의 어머니 메리 스크랜턴은 거리에 버려지거나 가난한 여성들을 위해 이화학당과 여성병원을 설립했다.

윌리엄 스크랜턴의 제자가 전덕기(1875~1914) 목사다. 9살 때 부모를 모두 잃고 숙부 집에서 자란 전덕기는 건달기가 다분한 숯장수였다. 17살에 스크랜턴의 병원 일꾼으로 들어간 그는 아랫사람까지 평등하게 대하는 스크랜턴 모자에게 감화돼 기독교에 입교하고, 28살인 1903년 목사가 된다. 전덕기는 그해 상동교회 청년회를 조직해 독립운동을 펼친다. 을사늑약 무효 상소, 이준의 헤이그 파견, 신민회 조직, 105인 사건 뒤엔 늘 전덕기가 있었다. 그는 불과 39살에 세상을 떴지만 위를 향한 신앙과 옆을 향한 이웃동포 사랑을 동시에 실현하려던 선구자였다.


안창호, 조만식, 김구, 3.1운동 당시 인구의 1.5%에 불과하면서도 투옥자의 17~22%가량을 차지한 기독교인들에게도 개인 구원과 민족의 구원은 하나였다.
그러나 제국에서 온 선교사들은 신앙과 현실을 분리시켰다. 스크랜턴은 한국 감리교를 관할하던 일본의 해리스 감독이 너무 친일적이라고 반발하다 밉보여 1907년 목사직을 사임했다. 그러나 그조차도 전덕기의 상동교회 청년회가 민족운동의 구심점이 되자 1905년 해산시켜버린다.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통해 일제의 한반도 점령을 용인한 미국은 스크랜턴에게도 조국이었던 것이다. 105인 사건을 일제에 밀고해 독립지사들을 일망타진케 한 프랑스인 천주교 대주교 뮈텔처럼 제국에서 온 선교사들은 ‘현실참여 금지’라는 명목으로 독립운동을 막았다.
그러나 정작 그들은 반대였다. 1차대전이 터지면서 적대국이 된 프랑스와 독일의 가톨릭 선교사들은 서로 갈등했고, 참전을 위해 자기 조국으로 떠났다.


3.1운동 때도 오산학교 설립자 이승훈이 “나라 잃고 형제 동포들이 다 지옥에 있는데, 나라 없는 놈이 어떻게 천당에 가?”라고 일갈한 일화가 전한다. 선교사들의 권면 때문에 길선주 목사 등조차 독립선언문 서명을 주저했기 때문이었다.

일제가 물러간 뒤 선교사들의 조국은 더 큰 우상으로 다가왔다. 해방 이후 공산주의에 대한 공포와 혐오에 사로잡힌 기독교인들에게 미국과 미군은 구세주이자 가장 든든한 ‘빽’이었다. 마크 리퍼트 대사가 피습당했을 때 미국대사관 앞에서 부채춤을 추고 무릎을 꿇은 기독교인들의 숭배는 극소수의 의식만은 아니다.
북에서 잔혹한 학살과 재산 탈취를 당하고 월남해 남한 우익의 핵이 된 기독교인들의 공산주의 혐오증과 반공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이제 해방은 70년, 6.25도 65년이 지났다. 한국 기독교도 유아 청소년기를 지나 장년이 될 시점이다. 해방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맷집이 커졌다. 보채는 아이에서 그런 아이를 달랠 만큼 성장했다.


기독교(개신교)는 구한말, 이 땅과 동포의 안위보다 상국에 대한 예의에 더 정신을 쏟은 조선 유교 사대부를 비판하며 등장했다. 그런데 정작 자신이 외세 숭배자로 남아 여전히 한반도의 갈등만 재생산해낸다면, 선교의 논리를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다. 이제 원한을 십자가에 못박고, 희망을 부활시킬 때가 아닌가.
불교는 당나라란 외세의 압박 아래서 분열된 삼한을 하나로 묶기 위해 ‘화쟁’(다름을 인정하면서도 화해)을 제시하며 어른 노릇을 했다. 한국 기독교도 원효 정도의 대안은 제시하며 희망을 열어야 평화 통일 시대를 책임질 어른이 되지 않겠는가.
< 조현 - 한겨레신문 논설위원 >



잇몸 망가지면 건강 무너진다

● 건강 Life 2015. 4. 4. 15:59 Posted by SisaHan

전신건강 위협하는 치주질환

치주병(치주질환)은 치아를 감싸고 있는 치조골이 부실해지거나 치조골, 치주인대, 치은(잇몸) 등 치아 주변 조직에 염증이 생겨서 발생하는 질환으로 흔히 잇몸병, 풍치라고도 부른다.
이러한 치주질환은 그 질환 자체로서의 문제뿐 아니라 전신건강을 위협하는데 그 심각성이 있다. 학계에서는 치주질환이 전신질환의 원인이 되거나 악화시키는 등 관련이 깊다고 지적한다. 즉 치주병을 일으키는 세균이 잇몸 속의 혈관으로 침투하여 온몸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심혈관계 질환, 폐질환 들을 일으킨다. 또 췌장암을 유발하는 원인이 되며, 특히 치주병이 있는 환자는 당뇨병에 잘 걸리며, 당뇨병이 있는 경우에도 치주병이 악화될 수 있다.

■ 소중한 치아를 상실케 하는 주범인 치주병= 치주조직은 치은, 치주인대, 치조골로 이루어져 있다. 치은은 잇몸을 뜻하며, 치아를 둘러싸고 있는 연조직으로 치아를 보호한다. 치주인대는 치아와 잇몸을 강한 결합력으로 부착시켜주는 조직으로 음식을 씹을 때 생기는 압력을 완충시켜 준다. 치조골은 치아의 뿌리를 단단하게 잡아주는 잇몸뼈를 말한다.
치주병은 치아를 둘러싸고 있는 주위조직인 잇몸과 뼈에 염증이 생기는 질환으로, 자각 증상이 천천히 나타나는 편이어서 제때 치료하지 않고 방치할 경우 치아를 잃을 수도 있는 심각한 질환이다. 치주병은 크게 치은염과 치주염으로 나뉜다. 치은염은 염증이 치은(잇몸)에만 국한된 형태이며 가벼운 질환으로 회복이 빠르다. 통증이 별로 없어 소홀히 여기기 쉬우나 방치하면 치주염으로 발전할 수 있다. 치주염은 치은에 생긴 염증이 치주인대나 치조골(잇몸뼈)까지 퍼진 상태다.
치주병의 증상은 보통 잇몸이 붉게 변하고, 잇몸이 붓는 등 음식 섭취 후 부분적 통증 및 압박감이다. 또한 이가 시리거나 이물감, 잇몸출혈, 구취를 경험할 수 있고 심한 경우 고름이 나오거나 이가 흔들리기도 한다. 이처럼 치주병은 잇몸 겉(치은)과 속(치조골, 치주인대)에서 모두 발생하므로 눈에 보이는 잇몸 겉 증상에만 관심을 보여서는 안되며 잇몸(치은), 치주인대, 치조골 등 ‘잇몸병 3요소’에 대한 꼼꼼한 관리가 필요하다.


■ 잇몸 겉과 속 모두를 철저히 관리 잘해야= 치주병의 원인은 플라크(plaque)라 불리는 치태다. 치태란 주로 치아 표면에 붙은 세균덩어리의 얇은 막으로 약에 의하여 제거가 되지 않고 칫솔질을 통한 기계적 방법에 의해서 제거된다. 치태를 제때 제거하지 못할 경우, 시간이 지나면 침 속의 칼슘, 인 같은 원소가 부착하여 돌처럼 단단한 치석이 돼 잇몸을 계속 공격한다. 이러한 치태와 치석의 원인균이 혈액을 통해 체내에 돌아다니면서 우리 몸의 다양한 질환을 일으키기도 한다.
따라서 치주병의 가장 기본적인 예방법은 꾸준하고도 올바른 칫솔질이다. 올바른 방법으로 칫솔질을 하는 한편, 증상이 없더라도 자세한 잇몸 상태 확인을 위한 주기적인 검진도 권유된다. 이와 함께 치간칫솔, 치실, 구강청결용액(잇몸질환 전용) 사용을 생활화하는 것이 좋다. 심하지 않은 잇몸염증은 치태, 음식물 찌꺼기와 치석 등을 제거하는 스케일링으로도 치료가 되며 생활 속에서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다.


■ 구강건강지수(PQ), 꼼꼼하게 체크를= 실제 잇몸병(치주병)을 앓고 있는 환자는 많으나 이들 중 상당수가 적극적으로 치료받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간단한 자가체크를 통해 치주건강 정도를 확인할 수 있는 잇몸건강지수, 즉 PQ(Perio-Quotient)가 개발됐다.(별표)
PQ는 12가지 문항의 기본적인 체크리스트를 통해 일반인들이 편리하게 스스로의 잇몸 건강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지표이다. PQ 테스트는 치주병의 정도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전형적인 증상의 경우 높은 배점을 부여했고, 간접적인 영향을 주거나 낮은 영향을 줄 경우에 낮은 배점을 부여했다. 점수가 낮을수록 건강한 상태, 높을수록 심각한 상태를 나타낸다. 각 점수 구간별로 건강한 편(0~25), 적극적 관리 필요(26~50), 적극적 치료 필요(51~75), 중증의 치주병(76~100)으로 구분해 본인의 잇몸건강 상태를 점검해보면 된다.



KBS 기자협회와 노조 등 즉각 반발

<한국방송>(KBS)이 그동안 임용을 둘러싸고 사내외에서 논란이 일었던 일명 ‘일베기자’를 결국 임용했다. 그동안 임용을 반대해온 KBS 내 기자협회 등 직능단체와 노조는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일베기자’ 논란은 해당 기자가 지난 1월 KBS에 입사하기 전 사회적 논란이 큰 인터넷 커뮤니티인 ‘일간베스트 저장소’(일베)에서 여성 비하, 지역 차별 내용을 담은 글들을 쓰며 활동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확산됐다.


KBS는 31일 내부 인사발령 공고를 통해 해당 수습기자를 1일자로 정사원(일반직 4직급)으로 채용하고 정책기획본부 남북교류협력단에 파견한다고 밝혔다. 남북교류협력단은 보도 기능은 없고 북한 방송교류를 하는 부서다. 다른 수습기자들은 보도본부 기자직으로 배정됐다. KBS는 인사 직후 보도자료를 내고 “수습사원의 임용 취소는 사규나 현행법상 저촉돼 임용결격사유가 발생한 경우이거나, 수습 과정에서의 평가 결과가 부적합으로 판정났을 경우에 해당된다. 하지만 문제가 된 수습사원에 대한 평가 결과는 사규 기준을 벗어나지 않았으며, 외부 법률자문에서도 임용을 취소하기 어렵다는 결과가 나와 임용하게 됐다”고 밝혔다. 또 “이번 건을 계기로 채용과 수습 제도에 대한 개선책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KBS기자협회 김철민 회장은 “KBS기자들은 ‘일베기자’를 후배로 또는 동료로 인정할 수 없다는 생각이 확고하다”며 “인권 폄하 발언을 일삼는 일베에서 활동한 경력이 있는 사람에게 인권 보도를 맡길 수는 없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사장 퇴진 운동 등 합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겠다”고 덧붙였다.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방송본부(새노조) 관계자는 “노동자의 업무능력, 자질 등 업무적격성을 따져 정직원 임용을 거부해도 된다는 대법원 판례가 있고, KBS인사규정에 ‘공사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공직자로서의 품위를 손상한 자는 임용을 취소할 수 있다’는 규정이 있다”고 주장했다. 한국방송 노동조합(1노조) 관계자도 “공영방송 기자로서 부적절한 처신이었다”고 주장했다.



영구저장, DNA가 해법

● 토픽 2015. 4. 4. 15:43 Posted by SisaHan

아나로그 못따르는 디지털 저장수명
영구저장, DNA가 해법

플로피 디스크·USB는 길어야 10년, CD롬·DVD 수십년

DNA 1g으로 4550억 기가바이트 데이터 저장 가능
온도 10도에서 2000년 동안 보존‥고비용이 걸림돌

아날로그에 비해 디지털은 쉽게 기록하고 저장할 수 있다. 그러나 저장 수명이 상대적으로 짧은 게 단점이다. 플로피 디스크(FD), USB는 길어야 10년, CD롬 DVD 같은 광디스크는 수십년, 아무리 보관을 잘해도 100년을 넘지 못한다. 저장매체들의 물리적 특성이 변질되기 때문이다. 반면 마이크로필름으로 촬영해 보관되는 아날로그 정보는 500년 이상 간다. 잘만 보관하면 천년이 넘게 기록을 보전할 수도 있다. 고대 파피루스 종이는 실제 2천년 이상이 지난 오늘날에도 기록을 온전히 보존한 채 발견되고 있다.
디지털 기록은 또 각각의 독특한 저장 방식이 있어서 이걸 풀어내지 못하면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다. 인터넷의 근간인 TCP/IP 프로토콜을 개발해 ‘인터넷의 아버지’로 불리는 빈트 서프(Vint Cerf) 구글 부사장은 2월13일 미국 과학진흥협회 연례회의에서 “미래엔 현재의 디지털 기록을 못 읽을 수도 있다”며 이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 디지털 기술이 발전할수록 호환성 문제가 불거져 각 저장매체에 담긴 데이터를 읽어내는 것이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저장 수명만 생각한다면 다시 아날로그로 돌아가는 게 좋을까? 하지만 아날로그 기록은 활용도에서 경쟁력이 크게 떨어진다. 활용되지 못하는 정보는 사장된 정보나 마찬가지다. 영구적인 기록 저장 방법을 찾아나선 과학자들의 눈에 들어온 저장장치가 바로 DNA다. DNA는 기존 디지털 저장매체에 비해 저장 용량과 수명에서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탁월한 능력을 자랑한다. 우선 지구상 모든 생명체의 설계도는 이 작은 DNA에 특정한 형태로 암호화돼 있다. DNA 저장 암호 정보에 따라 생명체는 생장성쇠의 복잡다단한 일생을 단계적으로 밟아간다.
과학 전문지 <뉴 사이언티스트>에 따르면 1그램의 DNA는 이론상 455엑사바이트(1엑사바이트=10억기가바이트)의 데이터를 저장할 수 있다. 이는 현재 구글과 페이스북, 그리고 다른 모든 IT기업들이 보유하고 있는 데이터를 합치고도 남는 양이라고 한다. 클라우드 컴퓨팅 업체인 EMC가 추정한 바에 따르면, 2011년 한 해 동안 생겨난 데이터 총량은 1.8제타바이트(1제타바이트=1조기가바이트)다. 이를 DNA에 저장한다면 4그램의 DNA 하드 드라이브만 있으면 된다.


DNA 저장이란 네 가지 형태의 DNA 염기를 0과 1로 치환하는 것이다. 예컨대 네 가지 염기 중 A(아데닌)는 C(시토신)와, G(구아닌)는 T(티민)와 각각 결합하는데, A와 C는 0으로, G와 T는 1로 설정한다. 지난 2012년 하버드대 연구진은 이런 방식으로 5만3천개의 단어, 11개의 그림, 하나의 컴퓨터프로그램을 포함한 책 한 권을 DNA에 저장한 적이 있다. 이는 5.27메가바이트의 용량이다. 하지만 연구진은 이 정보를 다시 원상태대로 복원하는 데서 문제에 부닥쳤다.
로베르트 그라스(Robert Grass)를 비롯한 스위스연방공대 연구진이 최근 이 숙제를 해결함으로써 DNA 저장 방식에 새 길을 열었다. 연구진이 정보의 완벽한 복원에 활용한 방법은 화석의 DNA 보존 방식이다. 핵심은 수분을 뽑아내는 것이다. 연구진은 DNA를 화석화한 뼈와 구조가 비슷한 실리카로 만든 캡슐에 집어넣었다. 이산화규소라고도 불리는 실리카는 유리의 주요 성분 가운데 하나이다.


스위스 연구진은 83킬로바이트 크기의 문서정보를 4991개의 합성 DNA 조각에 담았다. 각 조각들은 158개의 뉴클레오티드로 이뤄져 있다. 뉴클레오티드란 당, 인산, 염기의 세 가지 요소로 구성된 DNA 사슬의 기본 구성 단위이다. 연구진은 이 문서의 DNA 버전을 오류없이 보존하고 데이터를 다시 읽을 수 있었다. 시뮬레이션 결과 약 10도의 온도만 유지된다면 DNA 형태의 데이터는 2000년 동안 보존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그라스는 영하의 온도 저장은 아마 100만년 이상도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곽노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