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자 칼럼] FTA와 통상정책의 현주소

● 칼럼 2014. 12. 4. 15:35 Posted by SisaHan
필자는 그동안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한 대외개방의 필요성을 역설해왔다. 한-중 자유무역협정은 우리 경제의 장기 성장과 외교적 실리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그럼에도 이번 한-중 자유무역협정 협상 과정을 통해 드러난 치명적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자유무역협정이란, 원래 두 개의 협상을 거쳐야 하는 게임(two level game)이다. 상대국과의 대외협상을 펼치기 전에 자국 내 이해관계 산업 사이의 이해조정을 위한 대내협상을 먼저 거쳐야 한다. 상대국으로부터 특정 부문의 관세철폐 양보를 얻어내려면 우리도 다른 쪽을 양보하는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국내 산업 가운데 자유무역협정으로 이익을 보는 쪽과 손해를 보는 쪽 사이의 대차대조표를 완성해야 한다는 말이다.
대내협상이라고 의견수렴 과정만 거치면 되는 게 아니다. 관련 산업 종사자들을 설득하고 압박해 실질적인 양보를 이끌어내야만 한다. 한-중 자유무역협정 협상은 이런 대내협상 과정을 온전히 거치지 않고, 대외협상 테이블로 향한 것으로 보인다.

그 결과 지금의 사태가 벌어졌다. 협상 테이블에서 우리가 중국 쪽에 줄 게 없으니 중국 쪽으로부터도 얻어낼 게 없는 것이 당연했다. 우리가 농수산물 민감품목 리스트를 고집하면서, 중국 쪽에 제조업 품목에 대한 관세 철폐를 요구하니 합의가 이루어질 리 만무했다. 그러자 상품 시장 접근 분야는 추후협상 과제로 미루고 규범 분야 협상을 진행했다. 그러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성과가 필요해지자, 민감 품목들을 협정 적용 대상에서 서로 제외하는 것으로 손쉽게 합의를 도출했다. 그러고는 농수산물 분야를 방어해낸 것이 최대 성과인 것으로 발표했다. 이것은 협상이 아니고, 협상 모습을 연출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조업 분야와 농수산업 분야 사이의 이해관계 조정의 의지와 능력이 결여된 것이 우리 대내협상 메커니즘의 실체이다. 청와대가 부처간의 이견을 표출하지 말라는 엄명을 내려놓고 있는 상황이니 더욱 그렇다. 정치적 효과를 최우선시해 통상정책의 타이밍을 잡는 현 정권의 행태도 문제다.
대외정책이 국내 정치의 수단으로 손쉽게 전락할 때, 장기적 비용은 국민의 몫으로 돌아온다. 인사 추문과 세월호 정국을 ‘통일대박론’과 ‘일본 때리기’ 대외정책으로 버텨온 박근혜 정부가, 이제 통상정책마저 그 제물로 삼고 있다.

통상정책 전문가의 권위가 올바로 서지 못한 점도 이번 사태에 한몫을 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 협상의 무수한 논쟁을 겪으며, 통상협상 전문가들은 ‘국익의 첨병’이 아니라 경제민주화에 역행하는 ‘외세의 앞잡이’라는 악평에 시달렸다. 정권교체와 더불어 통상교섭 권한은 갑자기 외교부에서 산업부로 옮겨졌고, 그동안 통상협상에서 뛰었던 관리들은 영혼 없는 공무원이 되어 국내 정치가 안내하는 길로 통상정책의 수레바퀴를 돌리고 있다.
이제 한-중 자유무역협정을 넘어 환태평양동반자협정(TPP),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RCEP), 그리고 대통령이 적극 지지의사를 표명한 아태자유무역협정(FTAAP) 등 더 높은 수준의 개방을 추구하는 광역경제통합 협상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지금과 같은 대내협상 체제로 광역 자유무역협정 협상으로 나가는 것은 탄약 없는 총을 들고 전쟁에 나서겠다는 이야기다.
이번 기회에 통상정책의 기능적 독립성을 다시 세우고 대내협상 메커니즘을 철저히 재정비해야 한다. 집권세력이 못한다면, 차라리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가 나서 정권을 일깨워줘야 한다. 한-중 자유무역협정 비준 동의 과정을 다소 지연시켜서라도.
< 최원목 - 이화여대 교수, 싱가포르국립대 방문교수 >


25일부터 시작된 여야의 세월호 참사 희생자 피해구제 입법 논의를 앞두고, 정부가 국가배상 방안을 배제한 특별법 초안을 마련했다고 한다. 법 이름에서 ‘배상’을 뺀 것은 물론, 내용에서도 ‘배상’ 대신 ‘보상’과 ‘지원’에 초점을 맞췄다. 새누리당도 그동안 위법행위를 전제로 하는 ‘배상’보다는 피해 구제를 위한 ‘보상’이 적절하다고 주장해왔다. 국가의 ‘배상’ 책임을 받아들이면 정부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될까 그러는 모양이다.

이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꼴이다. 세월호가 가라앉고 눈앞에서 304명이 수장되는 참사로 번진 데는 정부 잘못을 물어야 하는 대목들이 분명히 있다. 선박 개축을 허가해 복원력을 떨어뜨리고 과적과 부실 고박을 방치한 채 배를 출항시키도록 하는 등 감독 태만의 책임과 함께, 적극적인 구조를 회피하는 등 구호의무를 다하지 않은 책임도 크다. 이들 과실은 검찰 수사로도 일부 드러났다. 그런데도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을 부인하려 해선 안 된다.
대형 사고에 대한 국가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전례도 이미 여럿 있다. 1993년 서해훼리호 사건 당시 일괄적 보상금 지급에 반발한 유족들이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법원은 선사와 해운조합은 물론 국가에 대해서도 ‘지방해운항만청 직원이 선박 운항 상태에 대한 감독의무를 게을리한 과실이 있다’며 공동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2005년 경기도 화성시 입파도 보트 침몰사고의 유족들이 낸 소송에서도, 법원은 늑장 구조 등 해경의 업무상 주의의무 위반에 대한 국가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국가가 국민의 신체와 생명 보호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강조한 판결이다. 선진국에선 국가 책임을 조금씩 더 넓게 인정하는 경향이기도 하다.

여야는 이런 사정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국가든 누구든 잘못이 있다면 그 잘못을 묻는 일부터 어렵지 않도록 해야 한다. 예컨대, 일반인이 자세한 내용과 전문지식을 알기 힘든 이번 사건 같은 경우에까지 일반 손해배상 소송처럼 피해자인 원고더러 사실관계를 입증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무리일 수 있다. 대신, 국가나 선사 등 피고가 주의의무를 다했음을 입증하지 못하는 한 원칙적으로 배상 책임을 지도록 하는 방안 등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 제조물책임법 등이 그렇게 하고 있다. 적어도 재정적·정치적 부담을 앞세워 ‘국가 배상’을 제외하는 따위로 유족과 국민을 기만하는 일만은 말아야 한다.


[사설] 방산비리 수사, 몸통을 겨누라

● 칼럼 2014. 12. 4. 15:32 Posted by SisaHan
방위사업 비리 합동수사단’이 21일 출범했다. 검찰을 중심으로 국방부, 경찰청, 관세청, 금융감독원, 예금보험공사 등 분야별로 사정을 맡은 거의 모든 정부기관이 참여한 사상 최대 규모 수사단이다. 정부의 의지가 느껴지지만 의미있는 결과를 내려면 처음부터 방향을 잘 잡아야 한다.
합수단은 ‘방위산업체 비리’에 초점을 맞추려는 듯하다. 납품 계약과 관련한 기밀 유출과 뇌물 수수, 시험성적서·세금계산서 등의 위·변조와 허위자료 제출, 불법적 브로커 활동 등이 그것이다. 실제로 이런 비리는 손꼽기 어려울 정도로 만연해 있다. 최근 국정감사에서 제기된 비리 의혹만 해도 31개 전력증강사업에서 47건에 이르며, 국방부도 이 가운데 다수에서 비리 가능성을 인정한다. 세월호 사건으로 불거진 통영함의 경우 2012년 9월 진수식을 했으나 거액의 뇌물이 오간 불량부품 납품 등으로 여태껏 제대로 배 구실을 하지 못하는 상태다.

하지만 이 정도의 수사에 그쳐서는 안 된다. 더 심각한 것은 해외 무기 도입과 관련한 비리다. 해외 무기업체들이 군 출신 무기중개상을 통해 얻은 기밀과 강한 로비력을 토대로 계약을 따낸 뒤 가격을 부풀리는 것이 패턴처럼 돼 있다. 해외 업체는 납품 기일 등을 어기더라도 대개 제재에서 벗어난다. 게다가 국내 개발 무기 사업이 보통 수백억~수천억원 규모인 데 비해 해외 무기 도입 사업은 수조원대에 이른다. 무기와 관련된 정부의 정책 결정 과정도 조사 대상이 돼야 한다. 정책이 합리적이지 못하고 그때그때의 정치적 분위기나 결정권자의 섣부른 판단에 좌우된다면 비리 구조가 온존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7조3000억원 규모의 차기전투기 도입 사업의 협상대상자가 갑자기 바뀐 경위는 아직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은 상태다.

방위사업 비리는 구조화한 성격과 비밀성 등에서 지난해 가을 중간수사 결과가 발표된 원전 비리에 비견된다. 당시 검찰은 납품 비리와 서류 위조 등에 초점을 맞췄을 뿐 원전 계획과 건설 때부터 시작되는 이권 구조 척결에 대해서는 손을 놓았다. 이후 원전 비리가 근절됐다고 보는 이는 아무도 없다. 방위사업 비리 수사도 그런 식이어서는 안 된다. 필요하다면 외국 수사기관과의 공조도 추진해야 한다.
지금 국민은 쏟아지는 군 인권 문제와 방위사업 비리 등을 지켜보면서 ‘군이 내세울 게 도대체 뭔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번 수사에 대한 적극적인 협력과 더불어 군의 비장한 각오가 요구되는 이유다.


[칼럼] MB 회고록, ‘진실은 없다’

● 칼럼 2014. 12. 4. 15:30 Posted by SisaHan
‘소설도 자서전이 될 수 있지만 모든 자서전은 어김없이 소설이다’ ‘기억을 잃어버렸거나 기억할 만한 가치 있는 일을 한 적이 없는 사람들이 회고록을 쓴다’ ‘자서전은 마지막회분만 남긴 시리즈 형태의 부음 기사다’….

자서전이나 회고록에 대한 이런 촌철살인의 경구들은 특히 유명 정치인들의 경우 더 공감을 자아낸다. ‘공’은 부풀리고 ‘과’는 숨기는 식상한 자서전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도 시큰둥하다. 그나마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자서전 <나의 인생>이 225만부가 넘게 팔린 것은 르윈스키와의 부적절한 관계 등 사생활을 나름대로 솔직히 털어놓은 덕분이다.
“인간의 기억은 현재의 이해관계에 따른 과거의 왜곡이 될 수밖에 없다.”(폰 브로디) 이명박 전 대통령이 내년 초 회고록 출간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며 맨 먼저 떠오르는 말이다. 사실 이 전 대통령의 회고록 집필 시기는 역대 대통령들의 예에 비춰보면 무척 이른 편이다. 시기적으로도 ‘4자방’ 국정조사 문제 등으로 매우 미묘한 시점이다. 굳이 이 시점에서 회고록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는 뭘까. 그것은 말 그대로 회고록이 ‘현재의 이해관계’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보여준다.

이 전 대통령의 회고록이 가장 관심을 끄는 대목은 뭐니뭐니해도 박근혜 대통령과의 관계를 어떻게 기술할 것인가다. 2007년 당내 경선에서의 승리 과정, 재임 기간 동안의 끊임없는 밀고 당기기, 그리고 2012년 대선을 앞둔 ‘보험 들기’ 등 독자들의 관심을 끌 만한 소재는 널려 있다. 이런 내용들이 ‘비화’ 중심으로 소상히 담긴다면 ‘MB 자서전’은 아마 클린턴 자서전은 저리 가라 할 정도의 ‘대박’을 터뜨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전 대통령의 측근들 사이에서는 “자서전에 박 대통령과 관련된 내용은 포함되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그런가 하면 또 다른 쪽에서는 “더 이상 침묵하지 않겠다” “과거 수집했던 박근혜 엑스파일 활용 여부도 검토해야 한다”는 등의 협박성 발언도 동시에 나온다. 청와대를 겨냥한 고도의 심리전이 느껴진다.
결국 이 전 대통령의 회고록은 살아 있는 권력을 움직이려는 죽은 권력의 가장 강력한 무기다. 회고록을 4자방 사업 변호 등 ‘과거의 왜곡’ 수단으로 활용하는 차원을 넘어서 ‘회고록을 쓰겠다’고 말하는 것부터가 교묘한 정치적 행보인 셈이다. 따라서 회고록이 내년 초에 꼭 나오리라는 보장도 없다. 칼은 칼집에 들어 있을 때가 가장 무서운 법이다.

“자서전은 수치스러운 점을 밝힐 때만이 신뢰를 얻을 수 있다. 자신을 스스로 칭찬하는 사람은 십중팔구 거짓말을 하고 있다. 어떠한 삶이든 내적인 관점에서 보면 패배의 연속이기 때문이다.”(조지 오웰) 이 전 대통령만큼 재임 기간 ‘수치스러운 일’이 많았던 전직 대통령도 근래에 흔치 않다. 민간인 불법사찰을 비롯해 내곡동 사저 땅 문제에 이르기까지 반성하고 참회할 내용이 많다. “만약 내가 자서전을 쓰면 저자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해야 할 것”이라는 위트 넘치는 말을 한 작가도 있지만, 진실을 제대로 기록하기로 치면 이 전 대통령이 ‘저자’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고 싶은 항목은 수도 없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이런 내용을 언급할 가능성은 전무해 보인다. 책은 그 사람의 거울이다.

“독자가 아닌 자기 자신과, 자신을 어여삐 봐줄 먼 훗날 역사 기록자를 위해 주절대는 한 남자의 소리일 뿐이다.” 클린턴 전 대통령 자서전에 대한 <뉴욕 타임스> 서평의 일부다. 이 전 대통령의 자서전이 경제위기 극복이니 주요 20개국 정상회의 개최니 하는 자신의 ‘치적 자랑’에 그친다면 장차 나올 서평도 이보다 심했으면 심했지 덜하지 않을 것이다. 이 전 대통령은 이미 서울시장 시절 자서전 <신화는 없다>를 펴낸 바 있다. 이번 회고록에 진실을 담지 않을 요량이라면 ‘자서전 속편’ 제목은 아예 <진실은 없다>로 정하는 것은 어떨지. ‘미리 쓰는 서평’이 너무 모욕적으로 느껴지시는가? 그렇다면 이런 예상 서평이 보기 좋게 빗나가게 한번 제대로 된 회고록을 써보시기 바란다.
< 김종구 - 한겨레신문 논설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