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20일 “당 대표직을 모두 걸고, 바른정당 통합에 관한 전당원 의견을 묻고자 한다. 통합 찬반으로 당 대표의 재신임도 묻겠다”고 제안했다.

안 대표는 이날 국회 정론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이같이 밝혔다. 안 대표는 “당의 혼란을 조속히 정리하고 마음을 모아야 할 때”라며 “통합 찬성이 나오면 단호하고 신속하게 절차를 밟겠다”며 “반대로 확인되면 당 대표직을 사퇴하는 것은 물론, 그 어떤 것이라도 하겠다. 전 당원 투표로 확인된 표심은 구성원 누구도 거부할 수 없다”고 말했다.

< 송호진 김규남 기자 >


[평신도 글마당] 낚시

● 교회소식 2017. 12. 20. 14:31 Posted by SisaHan

낚시는 어려서부터 틈나는 대로 즐겼던 취미였지만, 정작 낚시의 재미에 빠지게 된 것은 4~5년 전 부터 입니다. 아내도 몇 번 따라 다니다가 어느 사이 손맛(?)에 빠져서 나보다 더 적극적인 낚시광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말을 하지 않아도 ‘내일은 낚시 가자’를 결정하기가 아주 자연스럽습니다. 특별히 올해는 연어낚시와 송어낚시에 깊이 빠져서 틈나는 대로 낚시를 나가게 되었습니다. 낚시를 하는 여자분들이 거의 없다보니 아내는 항상 낚시터에서 주목을 받게 됩니다. 부부가 함께하는 모습을 부러워 하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이제 제법 낚시를 하게 되었다고 생각하지만, 갈 때마다 또 다른 낚시의 비법들을 배우게 됩니다. 아마도 내년 쯤이면 우리만의 노하우도 생기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낚시에도 ‘도’가 있습니다. 가까이 낚싯대를 드리우다 보니 서로 얽히지 않도록 해야하고, 직선이 아닌 사선으로 낚싯줄을 던져도 안됩니다. 한 사람에게 물고기가 낚이면 주변 분들은 모두 낚싯줄을 거두어 들여서 그 물고기를 건져 올릴 때까지 기다려 줍니다. 그런데, 낚시터가 쓰레기로 조금씩 더럽혀 지는 것이 보여서 청소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우리들이 가는 곳은 언제나 깨끗하게 되고, 서로 조심하며 또 다른 분께서도 봉투를 준비하시고 청소를 하십니다. 그렇게 한여름과 가을을 보내면서 나름 낚시에 대한 철학이 생겼습니다. 3일 4일 연속으로 하루 종일 앉아 입질 한번 받아보지 못한 날도 있습니다. 너무 큰 연어가 계속 낚여서 팔힘이 없어서 낚시를 던지면서도 또 잡힐까 봐 겁이 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날은 그저 기다리는 것입니다. 바로 ‘낚시는 기다림’이라는 것을 알 때가 되면 ‘진정한 낚시꾼’이 되어서 하루종일 기다려도 지루하지가 않게 됩니다. 소풍날을 기다리던 어린 시절이 생각납니다. 여행날짜를 잡아놓고 기다리던 때가 생각납니다. 멀리 떨어져 사는 자식들과 만날 날이 정해질 때의 그 기다림이 생각납니다. 기다림은 설레임 입니다. 기다림은 기쁨이며 희망입니다.

어느 덧 한해를 마무리하는 날이 되었지만, 저는 새해를 기다리는 마음이 있기에 설레임과 기쁨으로 새해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나 같은 죄인을 기다려 주셨던 주님을 생각해 봅니다. 주님께서도 설레임과 희망을 품으시고 저를 기다려 주셨을 것 입니다. 연일 공치는 낚시만 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물고기들이 입질을 하고 여기저기서 환호하며 즐거워 하는 소리가 낚시터를 가득 채울 때가 있습니다. 조금씩 낚시를 더 배워가는 즐거움도 있지만 맑은 공기 마음껏 마시며 한 마리의 물고기를 기다리는 재미는 어디에 비교할 수 없습니다. 아내는 낚시를 나가면서 어떤 형태로든 점심을 몇 인분 준비하여 나갑니다. 자주 뵙게 되는 한국분들에게 같이 나누고자 하는 마음에서 입니다. 주로 김밥을 많이 준비하는데 5~6인분을 준비 합니다.

새벽같이 낚시터에 나오신 분들에게는 반가운 점심이 되곤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늘 가까이서 낚시를 하시던 ‘A’선생님께서 저희 교회 이름을 물으시고, 아직 한 번도 나가보지 않았던 교회를 나오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드디어 ‘A’선생님 부부께서 첫 출석 하신 날, 찬양을 하면서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물고기를 낚으러 다니면서도 사람의 마음까지 낚을 수 있는 이 기쁨은 누가 주신 은혜일까요??. 한 해를 마무리 하면서 가장 큰 선물을 허락하여 주셨습니다. 기다림은, 언제나 우리에게 가슴 떨리는 선물을 준비하고 있음도 알게 되었습니다. - 마가복음 1장 17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 정훈태 - 동산교회 장로 >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 세대는 비주얼 문화의 시대이다. 즉 눈에 보이는 것이 중요한 시대이다. 사실 눈으로 보는 것은 인간의 본질적인 욕구 중의 하나이다. 그래서 인간은 끊임없이 보이는 것(What is seen)을 요구한다. 이렇게 보아야만 직성이 풀리는 인간을 인간학에서는 호모 이마기쿠스(Homo Imagicus)라고 부른다. 그리고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하는 인간의 내적 욕구는 보아서는 안될 곳도 보고 싶어한다. 그래서 몰래 카메라가 곳곳에서 불의한 욕망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의 텔레비전, 영화 등 미디어 산업의 부흥은 보는 것에 대한 인간의 욕망이 확장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이 세대는 음악을 듣는 것으로만 만족하지 않는다.

그래서 음악과 영상이 결합된 뮤직 비디오가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교회에서도 성도들은 설교를 듣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무엇인가를 보기 원한다. 그래서 목사들은 영상이나 연극 혹은 예술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줌으로서 성도들의 눈을 즐겁게 해 주기 위해 노력한다. 결국 이 세대는 보이는 것, 즉 이미지(image)의 시대이다. 이미지가 곳곳에서 유혹의 눈짓을 보내고 있다. 이미지가 모든 결정권을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해, 아는 것이 힘(Knowledge is Power)이었던 근대를 넘어 보이는 것이 힘이 되어 버린 이미지 권력의 시대가 되어 버렸다. 결국 이 세대는 눈에 보이는 대로 행하는 세대이다.


나무에게 있어서 제일 중요한 부분은 뿌리이다. 나무의 뿌리는 제일 중요한 것이면서도 땅속에 묻혀 보이지 않는다. 때론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위대하고 가치있을 때가 많다. 그러나 우리는 단순히 눈에 보이는 가치에 사로잡혀 있어서 그 너머의 진정한 가치를 보지 못할 때가 많다. 그래서 보이지 않는 것의 위대함을 볼 수 있는 영안(Spiritual Eyes)이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필요하다. 그러나 보이는 것, 즉 육체적인 것은 항상 반(anti)영적이고, 영적인 것은 항상 비육체적이고 비가시적이라는 말은 아니다. 물질적인 것과 영적인 것은 항상 대립적인 이원론의 양태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죽은 육신과 타락한 영혼이 온전히 하나된 구원의 모습으로 부활하는 것이다. 하늘과 땅이 하나된 새 하늘과 새 땅이 그가 선포한 하나님 나라의 이상이었다. 그러므로 인간이라는 존재는 영적인 것과 육적인 것이 모두 필요한 존재이다. 영이 없는 육신, 육이 없는 영혼은 둘 다 불완전한 모습이다.

그래서 인간은 영과 육에 모두 다 갈증을 느끼는 존재이다. 하지만 심각한 문제는 영(적인 것)은 어떤 의미에서 매우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것으로 다가오기 때문에 우리는 늘 육신의 것들에 일차적으로 노출되고 그래서 보이는 것들, 세상의 것들에 함몰되어 간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온전히 성화(Holification)되지 못한 우리의 육은 우리의 주변 물질 세계를 통제할 힘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우리의 육체적 욕망을 제어할 내면의 힘이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는 내면의 힘을 기르고 훈련하는데 너무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다. 영적인 갈급함에 너무 둔하다. 그래서 육의 비대함으로 기형아가 되어 버린 우리의 존재를 영의 회복으로 정상화시켜야 한다. 보이는 것에 사로잡혀 있는 우리의 가치 기준이 보이지 않는 것으로 이전되어 균형을 잡아야 한다. 믿음은 가치에 대한 눈이 바뀌는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더 이상 세상의 가치에 끌려 다닐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세상을 끌고 가야한다. 그러한 목적을 가지고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셨다. 어두운 세상에 한 줄기 빛으로.

< 박원철 목사 - 늘사랑교회 담임목사 >


작년 7월 처가쪽 특혜로 첫 수사 대상…수뇌부 연루 밝혀질까 ‘적당수사’ 소문
박영수 특검 11개 혐의 영장, 검찰 특수본 2기 8개혐의 영장 모두 기각

불구속 재판서 우병우 “난 정치 희생양”, 세번째 영장심사서 결정적 진술 나와
국정원 사찰문건 나오면서 ‘외통수’… 혐의 줄었지만 ‘무조건 모르쇠’ 힘들듯

우병우 전 청와대민정수석비서관이 14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직권남용 혐의에 관한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15일 새벽 구속수감되면서, 검찰과 우 전 수석 사이에 이어졌던 질긴 ‘악연’이 일단락됐다.

검찰 출신으로서 한때 검찰 인사와 수사 등을 주무르며 막강한 ‘실세’로 꼽혔던 그였지만, 지난해 국정농단 사태가 불거진 뒤 검찰에 우 전 수석은 뼈아픈 존재가 됐다. ‘법꾸라지’라는 별명이 회자될 정도로 우 전 수석은 번번이 검찰 수사를 빠져나갔다. 지난해 우 전 수석이 팔짱을 낀 채 조사받는 사진이 보도되고, 검찰 수사가 한창 진행될 때 우 전 수석이 당시 김수남 검찰총장,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 등과 통화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검찰에 대한 신뢰는 곤두박질쳤다.

그 사이 검찰 수뇌부가 모두 교체되고 새 수사팀의 거듭된 추가 수사 끝에 결국 우 전 수석이 구속되면서, 검찰은 그동안 제기됐던 ‘부실 수사, 봐주기 수사’ 논란을 벗어날 수 있게 됐다. 잇따른 구속영장 기각으로 주춤했던 수사도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예고됐던 두 번의 수사 실패


우 전 수석이 첫 수사 대상에 오른 건 지난해 7월 처가의 넥슨 부동산 특혜매매 의혹이 보도되면서다. 지난해 8월 이석수 전 특별감찰관의 수사의뢰로 검찰 특별수사팀(팀장 윤갑근)이 꾸려졌지만, 수사는 지지부진했다. 우 전 수석의 자택은 물론 휴대전화와 사무실 등에 대한 압수수색조차 이뤄지지 않았고, 의경인 아들이 좋은 보직을 받을 수 있도록 경찰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이 불거졌지만 수사가 끝날 때까지 통화내역조차 조회하지 않았다. 당시 검찰 안팎에선 수뇌부가 우 전 수석과 긴밀히 연결된 게 드러날까 봐 검찰이 압수수색을 꺼렸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었다.

잘못 끼운 첫 단추는 이후 우 전 수석 수사 때마다 ‘발목’을 잡았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꾸려진 뒤에도 우 전 수석 수사를 부담스러워하는 분위기가 역력했고, 일부 검사들의 의지로 수사에 착수했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당시 특검은 미르·케이스포츠재단의 불법을 알고도 묵인한 혐의(직무유기)와 가족기업 정강의 불법 행위를 감찰한 이석수 전 특별감찰관을 해임시킨 혐의(특별감찰관법 위반) 등 11개 범죄사실을 적용해 그의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은 지난 2월22일 이를 기각했다. 이후 특검에서 자료를 넘겨받은 검찰 특수본 2기가 다시 8개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올해 4월12일 이마저도 기각됐다. 우 전 수석은 국정농단 수사의 큰 벽으로 자리잡았다.


이번에는 혐의 부인 힘들 듯

결국 검찰은 영장이 기각된 지 닷새 만에 우 전 수석을 불구속 기소하며 재판에 넘겼다. 우 전 수석은 재판에서 관련 혐의를 줄곧 부인하고 있다. 지난 6월 열린 첫 재판에서 자신을 ‘정치적 희생양’이라고 주장하며 “제 공소사실은 역대 모든 민정수석 및 민정비서관들이 해오던 일”이라며 관련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의 경우 우 전 수석이 예전과 같은 전면 부인 전략을 유지하기 힘들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우 전 수석은 지난 14일 열린 세 번째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에서 예상치 못한 핵심 측근들의 ‘결정적 진술’에 크게 당황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우 전 수석의 불법사찰 지시가 담긴 국정원 문건이 확보되면서, 무작정 부인으로 일관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번엔 자신을 감찰하던 이석수 전 특별감찰관의 개인 성향은 물론 감찰반 감찰 방향까지 사찰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민정수석의 업무”라던 우 전 수석의 기존 주장도 설득력을 잃게 됐다.

박근혜 정부에서 ‘왕수석’으로 통했던 그는 2009년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정관계 로비 의혹 수사 때 대검 중수1과장으로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직접 조사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2013년 4월 검사장 승진에서 탈락하자 검찰을 떠났다가, 2014년 5월 청와대 민정비서관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우 전 수석은 세월호 침몰 사고와 정윤회 문건 유출 등 정부에 불리한 사건이 터질 때마다 이를 잘 대처한 공을 인정받아 이듬해 2월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승진’했다.

승승장구하던 그는 지난해 국정농단 사건이 불거진 이후 정치권과 여론의 사퇴 압박을 받았지만 버티기로 일관했고, 당시 민정수석으로서 청와대의 ‘모르쇠’ 대응을 주도한 것으로 전해진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과 보수 몰락에 그가 끼친 영향이 결코 작지 않다는 평가도 있다.

< 서영지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