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팀 “매운음식 과다섭취 발암촉진”

찜통 더위에는 마술에 걸린 것처럼 비빔냉면이나 불닭처럼 매운 것이 당긴다. 사실상 통증인 매운 맛이 무더위에 지친 몸에 활력을 주는데다 맥주같이 시원한 음료와 어울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나치게 매운 음식은 소화기에 부담을 주는 것은 물론 각종 암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서울아산병원 김헌식 교수팀은 여러 종류의 암세포에 고추의 매운 맛을 내는 성분인 캡사이신을 투여한 결과, 체내에서 항암 면역기능을 하는 면역 세포의 가능을 떨어뜨려 결과적으로 암 발생을 촉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항암기능을 하는 면역세포는 혈관 속을 돌아다니다 암세포를 만나면 암 세포막에 구멍을 낸 후 과립을 분비해 암세포를 괴사시킨다.

연구팀은 여러 종류의 암세포에 캡사이신을 10, 20, 50, 100(단위:μM.마이크로몰)로 각각 다르게 투여한 뒤 면역세포의 활성도를 비교 분석했다. 실험 결과 혈액암세포의 경우 면역 세포의 활성도가 절반 수준 이하로 크게 떨어졌다. 위암세포(AGS)는 캡사이신을 투여하니 면역세포의 활성도가 10~15%가량 떨어졌다.
상대적으로 저용량에 속하는 10μM, 20μM의 캡사이신을 투여했을 때는 자연살해세포 활성도는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다. 캡사이신 자체가 암을 일으키진 않지만, 지나치게 많은 양의 캡사이신을 섭취하면 암세포를 공격하는 우리 몸속 아군의 무기를 망가뜨려 암세포의 발생을 간접적으로 돕는 셈이다.


일반적으로 음식을 먹을 때 ‘맵다’라고 느끼는 수준의 캡사이신이 1~2μM인점을 고려하면 이번 실험에 쓰인 건 고용량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캡사이신이 면역세포의 활성을 억제하는 현상은 모든 세포에서 공통적으로 관찰됐다. 이는 면역세포의 활성도가 사람마다 차이가 있을지라도, 캡사이신을 고용량으로 섭취하면 모든 사람에게서 면역이 억제될 수 있다는 의미다. 이 연구결과는 지난해 영국서 발행하는 국제학술지 <카시노제네시스>(Carcinogenesis·발암이란 뜻)에 실렸다.
연구팀은 “캡사이신에는 항암, 통증완화 효과를 내는 유용한 생리 활성성분도 들어있는 만큼 적당한 양은 몸에 좋다”면서도 “하지만 매운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캡사이신을 고용량으로 섭취할 개연성이 큰 만큼 지나치게 매운 고추는 피하고, 한꺼번에 너무 많은 양을 먹지 않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실제 매운 음식은 세계 암연구기금(WCRF)과 미국 암연구소(AICR) 보고서에서는 매운 고추의 섭취는 위암의 위험도를 증가시키는 3등급 위험요인(limited evidence-확실한 발암 위험요인이라고 하기에는 아직 근거가 부족한 위험요인)으로 판정하고 있다. 매운 음식을 즐겨 먹는 인도나 남미 사람들에게서 위암이나 구강암, 식도암과 같은 소화기계 암이 많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고추장 섭취량 증가가 위암의 위험도를 3-4배 정도 증가시키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지만 이는 매운 맛 때문이 아니라 소금의 영향도 큰 것으로 보고 있다. 고추장처럼 매운 맛은 짠 맛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소금을 비롯해 짠 음식은 세계 암연구기금 및 미국 암연구소는 위암 발생의 2등급(probable, 강력히 의심되는 발암 위험요인) 위험요인으로 판정하고 있다.
< 권은중 기자 >



[한마당] 진정한 광복은 언제…

● 칼럼 2015. 8. 21. 18:05 Posted by SisaHan

광복 70주년을 기쁨과 감격으로만 맞이하지 못한 현실이 참 비통하다. 조국의 분단과 치유되지 않은 일제의 잔재들 때문만은 아니다. 외형이 화려해진 성장과 풍요의 이면에, 잊혀지고 구석에 쳐박힌 ‘민족정기’의 허상이, 그리고 비정상이 정상처럼 위세를 떨치는 정신상태와 나라 현실이 가슴 아파서다.
땀 흘린 만큼 보상을 받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며 정상이다. 수고와 노력에 상응한 댓가를 받는다는 것은 그만큼 합리적이고 투명하며 공평하고 정당함을 뜻한다. 혼신을 다해 일했는데 거의 급여를 못받는다면, 정상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일개 회사에서 일하거나 고생한 것도 아니요, 목숨을 바쳐 나라와 민족을 위해 싸웠는데 홀대를 당한다면 그게 정상일까. 든든한 국가체제 아래서 국방에 생사를 건 것도 아니다. 나라조차 없는 고립무원의 처지에서 생명과 재산과 가족을 모두 포기하고 송두리째 쏟아부어 오로지 조국광복을 위해 투신한 이들을 외면하고, 그 후손들을 박대하는 현실이 정상적이며, 과연 민족정기가 바로 선 나라라고 할 수 있을까.


1962년부터 국가보훈이 시작됐으니, 자신도 독립운동을 했다는 이승만 정권은 독립투사들 예우를 아예 거론조차 하지 않았다. 그 후의 독재·군사정권들은 한국전쟁과 월남전의 유공자는 우대했어도 독립유공자는 소홀히 해, 스스로 친일의 피가 흘러 제 발이 저렸는지 모른다. 지금도 유관순 열사 추모제에는 대통령 화환이 보내지지 않는데 국회의원 처가 장례에까지 대통령 꽃이 장식된다는 것은 비정상이 아니고 무엇인가.
“친일파와 일제에 동조했던 부유층은 거리를 떵떵거리는데 독립유공자 자손들은 거리를 헤맨다” 지난 12일 일본대사관 앞 정대협 수요집회에서 분신한 독립운동가 후손 최현열 옹(80)이 지녔던 글의 일부다. 그의 말 그대로 애국지사의 후예들은 권력도 재산도, 심지어 투쟁의 족적마저도, 조상이 남긴 것이 아무 것도 없으니 보훈대상자로 선정 자체가 힘겹고, 설령 선정된다 해도 빈약한 지원에 고통을 겪는다는 것이다. 오죽하면 독립운동가들은 자신 뿐만 아니라 화(禍)가 후대까지 미쳐 ‘3대가 망한다’는 참담한 속설이 나돈다는 한탄인가.


그러니 혹시라도 다시 나라가 망한다면, 그 때의 광복은 전혀 기대조차 할 수 없을 것임에 틀림없다. 어느 누가 광복운동에 나서겠나, 후손까지 멸문의 화가 미친다는데 어떤 정신나간 부모가 자식에게 ‘조국을 위해 목숨을 걸고 의롭게 투쟁하라’고 가르치며, 자식들인들 감히 투쟁에 나서겠는가 말이다.
엊그제 40주기를 맞은 장준하 선생의 인생행로는 대한민국의 어제와 오늘을 말해준다. 광복군 장교로 조국을 수복하겠다며 김준엽 전 고대총장 등과 함께 미군 특수부대 OSS훈련을 받기도 했던 그는 광복을 위해 싸우던 몸을 해방 이후에는 독재에 맞선 민주투사로 헌신했다. 그러나 그의 삶은 정권에 의한 핍박과 죽임으로 마감됐다. 그의 죽음으로 끝나지 않은 비극은 가족에게 이어져 그의 노모와 자녀는 극심한 빈곤과 질시에 눈물흘리며 살아왔다고 한다. 유족연금 월 60만원의 생계비로.


요즘 인기몰이를 하는 영화 ‘암살’이 부각시킨 독립투사 약산 김원봉의 이야기도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그는 무장 독립투쟁의 전설적 인물이었다. 의열단을 조직해 일제의 수탈기관 파괴와 요인 암살의 주요 사건 배후에 늘 그가 있었다고 한다. 일제가 김구 선생에게 60만원의 현상금을 걸었을 때 김원봉에게는 100만원을 걸었다는 것은 그의 비중을 짐작케 한다.
광복군 부사령관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위원 겸 군무장을 지낸 그가 해방 조국에서 영웅대접을 받기는커녕, 체포와 고문을 당했다는 것은 충격이다. 더구나 일제에 부역하던 악질 고등계 형사출신 노덕술에게 붙잡혀 고문의 수모를 당했다니, 왕년에 왜놈 때려잡던 호랑이가 국권을 되찾은 조국에서 그 역겨운 일제의 수하 놈에게 능멸을 당하는 심정이 어떠했겠는가. 애국지사 모독이라는 여론의 덕으로 겨우 풀려난 그가 사흘 밤낮을 통곡하며 “여기선 왜놈 등쌀에 언제 죽을지 몰라”라고 통탄했다니, 이승만 정권이 그를 북으로 내몬 것이나 다름없다. 그런 그가 북에서도 반동분자로 낙인찍혀 숙청되고 말아, 오직 조국과 민족을 사랑했을 뿐인 독립영웅이 남에서도 북에서도 외면당한 말로는 정말 서글프다.


국가보훈법에는 ‘국가를 위하여 희생하거나 공헌한 사람의 숭고한 정신을 선양하고 그와 그 유족 또는 가족의 영예로운 삶과 복지향상을 도모’한다는 보훈 예우의 취지를 밝히고 있다. 그러나 자료가 빈약하다거나, 다른 국가유공자와 형평을 따져야 한다며 미적대고, 조상이 월북했다 해서 퇴짜를 놓는 비운에 눈물 흘린다. 일제하 독립투쟁과 국가유공 수준을 어떻게 비교한다는 것인지, 해방정국의 혼란기에 자발적 월북이 아닌 한, 이미 판명 난 체제 우위의 대국적 입장에서 순수 민족주의 애국자들을 예우하는 아량 정도야 보일 수 있는 게 아닐지.
조선의 인조는 임란의 공신인 이원익이 은퇴하여 가난하게 사는 것을 알고 특별하사금을 내리며 극구 사양하는 그에게 이렇게 명했다 한다 “그대는 청백리이고 국가 공로자인데 궁핍하게 사는 것을 만일 백성들이 안다면 왕인 나를 얼마나 원망할 것이며, 후세에 누가 청백리가 되고 국가를 위해 희생하려 하겠는가? 그래도 궁핍을 고집한다면 후인들의 교육을 잘못시킨 죄와, 왕명을 어긴 죄까지 물을 것이다” 국가보훈의 의의를 인조 임금이 제대로 가르쳐 주었다.


< 김종천 편집인 >



[1500자 칼럼] 왜 역사정립이 중요한가

● 칼럼 2015. 8. 21. 18:02 Posted by SisaHan

종전 70년을 맞아 일본 아베 신조 총리가 혹시 사죄를 하려나 하던 기대는 한여름 밤의 꿈이 되고 말았다. 본인은 사과하지 않고, 과거의 사과로 대체하는 그 약삭빠름. 미래 세대는 더 이상 사과하지 않아도 된다는 그 주제넘음. 과연 군국주의 전범 기시 노부스케의 외손자답다. 이러니 일본은 경제적으로는 선진국이지만 문명적으로는 아직 후진국인 것이다. 일본인이라고 다 그런 건 아니다. 잘 가려서 봐야 한다. 무라야마 담화를 보라. 며칠 전 서대문형무소를 방문하여 무릎을 꿇고 사죄한 하토야마 유키오 전 총리를 보라. 그래도 일본에는 전쟁 범죄를 사과하고 고개 숙이는 좌파, 진보파가 있다. 반면 소위 친한파라고 불리는 일본의 극우파는 식민지와 전쟁에 대해 아무런 죄의식이 없고, 한국이 이만큼 발전한 것도 일본 식민지 덕분이라고 생각하며 일본을 국제질서의 피해자로 보는 왜곡된 역사관을 갖고 있으니 이들에게 사죄를 기대하기란 연목구어일지도 모른다.


왜 역사의 정립이 중요한가? 그것이 나라의 수준과 품격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19세기 한국을 방문했던 외국인들이 이구동성으로 조선민족을 순박하고 착하다 했건만 지금은 이기주의자, 막가파, 얌체가 이렇게 늘어난 까닭이 무엇인가? 무엇보다 청산하지 못한 역사 때문일 것이다. 해방 후 친일파가 심판받기는커녕 각계 요직을 독점했던 역사가 비극의 뿌리다. 민족정기를 바로잡고자 했던 반민특위가 폭력에 의해 해산되고 매국노 응징이 수포로 돌아가면서 우리 역사는 뿌리째 뒤틀려버렸다.
그 책임은 압도적으로 이승만과 미국에 있다. 요새 광복보다 건국을 중시하면서 이승만을 건국의 아버지로 모시자고 하는 정신 나간 사람들이 있다. 이승만은 역사를 왜곡시킨 치명적 잘못을 저질렀다. 이승만의 과오 세 가지를 들자면 첫째, 권력 장악에 눈이 멀어 남북 분단을 조장한 죄, 둘째, 존재하지 않는 자신의 국내 권력 기반을 만들어내기 위해 친일파를 살려주고 중용한 죄, 셋째, 왕처럼 군림하며 독재한 죄. 민족 반역자들이 처벌받기는커녕 요직을 독차지함으로써 신생 독립국 한국에서는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자들이 득세했다. 광복인지 뭔지 알 수 없게 되었고, 흑백이 뒤바뀌고 사회정의가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무능하고 부패한 이승만 독재정권이 학생들의 피의 희생으로 쫓겨난 뒤, 모처럼 찾아온 기회는 일본 육사를 나오고 일왕에 충성을 맹세했던 박정희의 쿠데타에 의해 다시 사라져버렸다. 그는 중앙정보부를 앞세운 공포정치를 도입하고, 헌법을 걸레조각으로 만들면서 정권 연장에 급급하였다. 박정희는 철저한 일본군 군인이었다. 조갑제가 쓴 책을 보면 박정희는 수시로 일본말을 했고, 5.16 쿠데타 날 새벽에 부대 출동 명령도 일본말로 했다. 이승만, 박정희의 30년 집권 기간 동안 역사 바로 세우기는 무한정 뒤로 미루어졌다. 내가 중·고등학교에서 배운 국어 교과서에는 친일파 문인들의 글이 버젓이 실려 있었고, 아무것도 모르던 나는 주요한의 ‘불놀이’를 좋아해 암송했으니 지금 생각하면 부끄러운 일이다. 국어 선생님들은 ‘해에게서 소년에게’ ‘무정’ ‘불놀이’가 대단한 작품인 양 가르치면서도 최남선, 이광수, 주요한의 친일 행각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친일파들이 활개를 치고 다닌 것이 어디 문단뿐인가. 관계, 법조계, 학계, 군, 경찰 할 것 없이 친일파가 나라의 중추를 몽땅 차지한 나라, 이건 광복이 아니다. 프랑스는 독일 점령하에 4년간 존속했던 비시정권에서 나치에 협력했던 민족반역자 2만6000명을 투옥하고 1500명을 사형 집행했으나 우리는 단 한 명도 처벌하지 못했다. 우리나라가 국민소득 2만달러를 훌쩍 넘기고도 아직 선진국이 못되는 이유는 제대로 역사를 청산하지 못한 데 있고, 우리 국민이 세계적으로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고도 여전히 공중도덕이 낮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반칙을 벌하지 않고 상을 주면 사람들은 반칙을 예사로 하게 된다. 인간은 역사의 산물이다.


독립운동가는 감옥에 가고, 그 후손은 3대가 망하고, 친일파, 매국노들은 부귀영화를 누린 것이 해방 후 우리의 역사가 아닌가. 역사를 똑바로 가르치지 않고는 우리 국민에게 정의감, 도덕심을 기대할 수 없으며, 도덕적 국민 없이는 결코 문명국의 대열에 끼일 수 없다. 우리는 아베의 후안무치에 분노하면서 다른 한편 우리를 돌아보게 된다. 우리 속에 아베는 없는가? 일제 식민지, 군부독재가 좋았다고 강변하는 뉴라이트, 일베가 아베와 다를 게 무언가. 광복 70년이라지만 진정한 광복은 아직 오지 않았다, 광복은 언제 오려나.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이….”
< 이정우 - 경북대 교수 경제학 >



고대사는 살아 있는 현대사다. 지구상의 많은 영토 분쟁은 그 뿌리를 고대사에 두고 있다. 고대사의 영토 논란은 현실 세계에서 외교 분쟁, 나아가 물리적 충돌로 재현된다. 중국과 일본의 댜오위다오(센카쿠열도), 중국과 필리핀의 남사군도, 베트남과 중국의 황사 분쟁도 여기에 포함된다. 불행하게도 한반도에는 이런 뇌관이 여럿 존재한다. 동쪽으로는 독도를 둘러싼 갈등이 있고, 북쪽으로는 간도와 백두산 그리고 대동강 이북 지역을 둘러싸고 소리없는 역사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들 지역은 남과 북은 물론 한-일, 한-중 사이의 핵심적 국가 이익이 충돌하는 뇌관들이다. 일본은 한반도를 병탄하고는 이를 합리화하는 논거로 고대사의 임나일본부설을 앞세웠다. 한반도 남쪽에 신라와 백제 이전부터 야마토왜의 식민정부가 있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합방은 강탈이 아니라 역사의 복구라는 것이다. 정유재침 때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충청, 전라, 경상 등 3도 분할을 조선에 요구했다. 무턱대고 무력만 앞세워 윽박지른 게 아니라, 온갖 조작된 역사적 파편을 들고 정당성을 주장했다.


영토에 관한 한 중국이라고 다르지 않다. 중국은 2001년부터 동북공정을 통해 고대사 공작을 해왔다. 고조선 고구려 발해는 중국의 지방정부였으며, 역사시대 이후 대동강 이북은 중국이 실질적으로 지배하던 영토였다는 게 그 결과였다. 역사적으로 한반도 북부는 중국의 강토라는 결론이 나온다. 이런 역사가 오늘날 어떤 의미를 갖는지는 자명하다. 한반도 유사사태 때 중국이 개입해 해당 지역을 점유하는 핑계가 될 수 있다.
정부가 광복 70주년을 맞아 온 나라를 태극기로 도배하고 있다. 연등을 본뜬 태극등이 거리에 등장했고, 공직자 가슴에도 태극기가 꽂혔다. 광복일 전야인 14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하고, 고속도로 통행료까지 면제했다. 애국주의가 이처럼 창궐한 적은 일찍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한 꺼풀만 벗기면 드러나는 그 속살이 참담하다. 동북아역사재단 등 이 정권의 역사기구나 관변학자들은 중국과 일본의 왜곡된 역사를 그대로 수용하고 있다. 지난 4월 국회 동북아특위에 제출된 동북아역사지도를 보면 중국의 만리장성이 평양까지 이어져 있고, 한사군이 한반도 중부, 평안도 황해도 강원도에 걸쳐 있으며, 신라와 백제는 서기 300년대까지 한반도에 등장하지 않았고, 근세까지 독도는 우리 영토에 존재하지 않았다. 실수였다느니, 수정 중이라느니 변명을 하긴 했지만, 47억원의 혈세를 들여 8년 동안 60여명의 전문가를 동원해 만든 것을 그렇게 허투루 만들 리 없다.

게다가 재단 이사장과 주요 이사들은 평소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논거가 허술하다’ ‘4세기까지 야마토왜의 지방관이 전라도를 다스린 것으로 추정된다’느니 주장해왔다. 심지어 ‘독도는 우리 땅 식의 경직되고 배타적인 인식에서 유연하고 개방된 인식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충고하는 이사도 있었다. 1877년 일본 총리실에 해당하는 태정관이 내무성에 내린 “독도는 일본의 영토와는 관계가 없다”는 ‘태정관 지령’은 인정하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는 출범 때부터 국내에서 역사전쟁을 벌였다. 좌파 사관 혹은 자학 사관 제거라는 기치 아래 이승만 정권, 5.16 쿠데타, 유신체제를 미화하려 했다. 나아가 식민지 근대화론 등 일제가 병탄을 합리화한 주장을 한국 공식 입장으로 세우려 했다. 대다수 학자들의 반발로 뜻을 이루지 못하자, 아예 역사교과서를 국정체제로 전복시키려 하고 있다. 그래야만 친일 전위에 섰던 대통령과 여당 대표의 선친들 행적을 가릴 수 있었던 것일까.


국내에서 이런 자중지란을 벌이는 사이 일본과 중국은 한반도를 겨냥한 역사전쟁의 교두보를 확보했다. 주변국의 역사왜곡에 맞서기 위해 세운 동북아재단은 중국과 일본이 제멋대로 재구성한 고대사를 슬금슬금 베끼거나 수용하며, 세작 노릇을 했다. 사실을 발굴하는 데는 게으르고, 이론을 세우는 데는 무능하며, 학문적으로 불성실하기 짝이 없었다. 결국 이 정부는 안팎의 역사전쟁에서 대한민국 가슴에 총구를 겨눈 셈이었다. 안으로 우리 역사학계를 적으로 삼고, 밖으로는 중국과 일본 주장이 뿌리를 내리도록 도왔다. 그 결과 분쟁은 현실이 되고 있다. 독도는 국제적으로 대한민국 영토가 아니라 분쟁지역이 돼버렸다. 한국 정부 산하 역사재단이 만든 지도에서 제외되기도 했는데 무슨 수로 분쟁지역화를 막을 수 있을까. 역사시대 이래 대동강 이북을 중국 강토로 표기하는데, 유사시 중국이 들고 나서면 그 또한 분쟁지역화되는 걸 어떻게 막을까. 광복 70년을 맞아, 정부는 무슨 생각으로 역사를 70년 전 이전으로 되돌리려는 걸까.
< 곽병찬 - 한겨레신문 대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