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다저스, 이적료 2,573만달러 베팅

한달내 연봉 협상 성사땐 미국행
연봉 최소 500만달러 이상 될 듯

다저스타디움 마운드에 선 LA 다저스 선발 류현진. 내년이면 현실화될 수 있는 시나리오다. 
‘괴물’ 류현진(25,한화 이글스)의 다저스행이 기정사실화됐다. LA다저스는 2573만7737달러33센트(280억원)의 이적료를 적어내며 포스팅(비공개 입찰)에 나온 류현진에 대한 우선협상권을 따냈다. 한달간의 연봉협상 절차가 남아 있으나 류현진의 미국 진출 의지가 확고해 결렬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연봉협상이 결렬되면 류현진은 다시 한화 유니폼을 입는다.
 
■ 다저스는 왜? 네드 콜레티 다저스 단장은 11일 현지 보도자료를 통해 “류현진을 오랫동안 지켜봐왔다. 앞으로 다저스 성적을 향상시켜줄 투수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류현진은 시속 150㎞ 안팎의 직구와 수준급의 서클체인지업을 앞세워 2008 베이징올림픽, 2009 세계야구클래식(WBC) 등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보여왔다. 
내셔널리그 서부지구에 속해 있는 다저스는 2012 시즌 동안 클레이턴 커쇼(14승9패), 크리스 카푸아노(12승12패), 채드 빌링즐리(10승9패), 에런 하랑(10승10패) 등 올해 10승대 투수를 4명 배출했다. 이들 외에도 조시 베킷(7승14패), 테드 릴리(5승1패) 등의 선발진이 있다. 커쇼와 빌링즐리를 제외하면 모두 30대 초중반. 팀 체질개선과 장래를 생각할 때 20대 젊은 선발진이 꼭 필요하다. <MLB.com>과 주요 외신은 “다저스가 류현진 영입에 성공하면 하랑이나 릴리를 트레이드 시장에 내놓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LA 거주 한국 교민이 많다는 점도 류현진의 상품 가치를 높였다.
 
■ 연봉은 최소 500만달러 류현진의 연봉협상 기준은 일본인 좌완투수 이가와 게이가 될 것으로 보인다. 2006년 27살이던 이가와는 2600만달러의 포스팅 금액으로 양키스로 이적하며 5년간 2000만달러(연봉 400만달러)에 계약했다. 2006년 당시 리그 평균연봉(269만달러)과 2012 시즌 평균연봉(344만달러)을 고려할 때, 류현진의 연봉은 최소 500만달러(54억원) 이상 될 것으로 보인다. 류현진보다 많은 포스팅 금액을 기록한 다르빗슈 유(텍사스 레인저스. 2011년)와 마쓰자카 다이스케(보스턴 레드삭스. 2006년)는 각각 6년 6000만달러, 6년 5200만달러를 받았다. 
협상의 달인인 ‘슈퍼 에이전트’ 스콧 보라스는 이날 <LA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류현진은 유망주 투수가 아니다. 빅리그에서 곧바로 던질 준비가 돼 있다”며 공격적인 협상을 예고했다. 류현진은 3박4일 일정으로 14일 미국에 건너간다.
 
■ 또다른 길을 제시한 류현진 박찬호, 최희섭, 서재응, 봉중근 등 지금껏 한국인 메이저리거는 많았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아마추어 시절 스카우트됐다. 이상훈, 구대성은 한국프로야구를 경험했지만 모두 일본 무대를 거친 뒤 미국에 진출했다. 임창용, 진필중 등도 포스팅에 도전했으나 메이저리그 구단들이 제시한 액수는 100만달러 이하였다. 
온전히 한국프로야구의 자양분을 먹고 성장한 류현진이 한해 국내 야구단 운영자금에 맞먹는 280억원의 ‘몸값’을 받고 사실상 미국 무대 진출에 성공하며 새로운 길이 열렸다. ‘꿈의 무대’를 그리는 아마추어 선수들에게 또다른 미래 좌표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상당하다. 포스팅 액수에 스스로도 놀란 류현진은 구단을 통해 “나의 도전이 많은 국민과 야구 꿈나무들에게 큰 희망을 키우는 에너지가 될 수 있도록 철저히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 김양희 기자 >


[1500자 칼럼] 유서 유감(有感)

● 칼럼 2012. 11. 17. 16:23 Posted by SisaHan
지는 낙엽을 바라보며 유서 쓸 생각을 한다. 우린 유서에 대한 고정관념이 있다. 한 많은 세상을 인위적으로 끝맺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남겨 놓는 글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유서가 내포하고 있는 섬뜩함이 있기에 선 뜻 화두에 올리게 되지 않는다. 철인 칸트는 “유서는 가장 불행한 기록이고 또 가장 효력있는 기록이다.” 라고 말했다. 불행하다했음은 그 글이 절대절망의 순간에 쓴 마지막 남긴 글이라는 것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유서를 삶의 정리 차원에서 쓰여 진 글로 간주한다면 불행한 기록이라고 말하기보다는 가장 진실한 자기 고백이요 그러기 때문에 삶의 길벗들을 향한 애정이 가득 담긴 선물이 될 것이란 생각을 해본다. 서로 마음을 터놓고 이제까지 남에게 이야기 할 수 없는 진실을 전할 매체로서 유서 이상의 효과는 없을 것이다.
뒤에 남아 세상을 더 살다 올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정신적인 유산의 일부라 생각한다면 유서가 반드시 끔찍한 기록만은 될 수 없을 것이다. 삶의 결정체는 어디에 가치관을 두고 살아왔느냐에 따라 결정되겠지만 적어도 삶의 씨앗들이 다른 사람의 마음 밭에 심겨져 싹이 틀 수 있다면 그 이상 무엇을 바라겠는가.
 
삶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일까. 일생을 통해 삶의 참의미를 한마디로 답을 내리기란 어렵다. 모를 일들이 알면 알수록 점점 많아진다. 때에 따라서는 객기도 부려보며 자신을 마음 것 풀어주고 싶을 때도 있다. 긴장에서 해방되고 싶고 유유낙낙 유랑도 해보고 싶다. 그러다 인생이 너무 고단하면 삶이 참 지루하단 생각도 해본다. 유서 쓸 마음이 생겼으면 삶이 지치기 시작했다는 암시가 들어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때때로 찾아드는 유서에 대한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흐트러진 삶을 재정비시켜준다. 오늘이 나의 마지막 날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정체성에 대한 호된 평가를 스스로 내리기도 한다. 꼬박 꼬박 유서라 생각하고 한 자 한 자 글자로 박아낸다. 마치 헝클어진 실타래를 풀어 한 올 한 올 털장갑을 짜듯 말이다. 
사람이 일생을 통하여 가장 행복한 순간은 자기 책임을 다한 뒤에 오는 성취감일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성취감은 성취욕과는 다르다. 성취하겠다는 욕심에서가 아니라 주어진 일에 대한 책임을 다한 결과로 얻어지는 축복이다. 책임감은 용기가 사그라질 때 용기를 주며 믿음이 무너지려 할 때 믿음을 심어주고 희망이 허무하게 느껴질 때 다시 희망을 주는 힘이 된다. 책임감과 함께 꼭 따라야 할 것은 사랑하는 마음가짐이다. 슬기로움이 함께 함이다. 그리하여 마음과 마음의 만남의 소중한 보물을 얻게 되는 기쁨도 있다.
 
<하일리겐슈타트 유서>는 베토벤의 개인철학이 담긴 유명한 유서이다. 1801년 베토벤은 의사로부터 청각을 잃을 수도 있다는 얘기와 함께 시골에서 요양할 것을 권유받고 교외의 하일리겐수타트로 갔다. 그곳에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면서 자연과 시골에 애정을 느끼게 되었으나 귓병이 전혀 차도를 보이지 않자 자포자기 상태에 빠졌고 곧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싸였다. 그래서 유서를 쓰고 자신이 죽은 후에 개봉하라는 지시문을 남겼다. 두 명의 동생 앞으로 쓴 장문의 유서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자신의 심경을 솔직히 피력했다. 그는 이곳에 머물면서 그 유명한 [전원교향곡]을 작곡하였다. 베토벤은 짐작컨대 매일을 오늘이 마지막이란 그런 심정으로 살지 않았을까. 그의 사망 뒤에 발표된 유서는 불멸의 음악예술과 함께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있다. 
이해인 시인의 ‘미리 쓰는 유서’ 한 연이 마음에 와 닫는다.
누구나 한 번은/ 수의를 준비하는 가을입니다./ 살아 온 날을 고마워하며/ 떠날 차비에 눈을 씻는 계절/ 모두에게 용서를 빌고/ 약속의 땅으로 뛰어가고 싶습니다.

< 민혜기 - 수필가, 캐나다 한인문인협회 전 회장 >


[칼럼] 젊은 여성들의 반란

● 칼럼 2012. 11. 17. 16:18 Posted by SisaHan
지난 9일치 <한겨레> 1면에는 ‘미국 대선 흔든 여성의 힘’이라는 기사가 큼지막하게 실렸다. 전통적으로 투표율이 높았던 늙은 백인 남성들이 퇴조하고, 젊은 여성들이 대거 투표장으로 몰려간 게 오바마 당선의 배경이라는 내용이다. 
한겨레만 유독 이 기사를 비중 있게 다룬 데에는 편집국장의 이 한마디가 있었다. “내가 딸을 키워보니 여자가 더 우수한 거 같아.”

오래전 김선주 선배(편집인: 바로 그 명칼럼니스트!)한테 들은 얘기가 떠올랐다. 일본 고지마섬의 원숭이들은 원래 고구마를 흙이 묻은 채 먹었는데, 한 젊은 암컷이 바닷물에 씻어 먹기 시작했다. 다른 암컷들이 따라 배우더니, 나중에는 섬 전체로 퍼졌다. 그런데도 늙은 수컷들은 끝까지 씻어 먹지 않더라는 것이다. 젊은 암컷의 적응능력과 늙은 수컷의 고집불통을 대비시킨 것이다.

여성들의 집단적인 힘이 세상을 바꾼 사례는 많다. 빅토리아 시대에 젊은 남성들이 식민지를 찾아 떠나다 보니, 영국에는 50만명의 ‘잉여 여성’이 생겨났는데, 그 숫자 때문에 여성 재산권, 여성 참정권, 여성의 대학 입학 같은 법이 만들어졌다. 딸이 부모에게 미치는 영향도 크다. 미국에서는 딸을 둔 하원의원이 낙태를 지지하는 경향이 높고, 딸이 많을수록 투표 전력이 더 진보성향을 띠는 것으로 조사됐다. 독일에서는 소속 정당을 바꿀 경우, 아들이 하나 있는 부모 중 3분의 2는 우파 쪽으로 이동한 반면, 딸을 하나 둔 부모 가운데 3분의 2는 좌파 쪽으로 움직였다.(맬컴 포츠 <전쟁 유전자>)

일반적으로 여성들이 다른 여성과 연대하고 소통하며 사회복지를 지지하는 경향이 크다는 게 대체적인 연구 결과다. 아마도 사바나에 살던 선조 여성들이 함께 채집을 하고 자식들을 돌볼 때, 수다를 떨면서 정서적 유대를 형성했던 적응이 유전자로 이어진 게 아닌가 싶다.

물론 여성이라고 다 평화적이고 진보적인 건 아니다. 이건 어느 외교관한테 들은 얘기인데, 파푸아뉴기니를 가보니 코밑에 수염이 난 원주민 여자들이 제법 되더란다. 그 이유를 알아보니, 극도로 자원이 부족한 환경에서 서로 약탈을 일삼다 보니, 여자들도 전쟁에 나서게 되고 그 결과 남성 호르몬이 분비되면서 수염이 난다는 것이다. 
그러니 생애 자체가 전쟁이었고, ‘불통’ 이미지에 갇힌 박근혜 후보가 ‘여성 대통령’을 주창하는 것은 왠지 아귀가 맞지 않아 보인다. 한국의 경우, 여성이 남성보다 더 진보적이라는 지표는 없다. 그러나 이제 변화의 시점이 오지 않았나 싶다.

88만원 세대가 다 어렵다지만 특히 여성 청년층의 비정규직 비율은 남성 청년층보다 훨씬 높다. 옛날에는 시집이라도 갔지만, 요즘은 남자들도 약아서 맞벌이만 찾는다. 설사 어렵게 취직하고 결혼을 했다 하더라도, 애 키우고 집안일 하느라 직장에서 남자 동기들에게 밀리기 십상이다. 그게 싫으면 ‘독한 것’이라는 소리를 들어야만 한다. 그러니 무슨 구국의 강철대오 같은 신념이 있는 것도 아닌데 엉겁결에 떠밀려 결혼 파업, 출산 파업에 동참하게 되는 경우가 흔하다. 물론 여성 문제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그렇지만 이 시대 젊은 여성들에게 걸리는 부하는 그 윗세대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단군 이래 처음으로 남자들한테 밀리지 않는 교육을 받았고, 학교 다닐 때 성적은 훨씬 좋았기에 그 박탈감이 더 큰 것이다.

일찍이 엥겔스는 ‘인류의 모든 혁명은 여성해방을 동반한다’고 말했다. 그러니 우리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가 가장 응축된 젊은 여성들이 먼저 떨치고 일어섰으면 한다. 미국 대선처럼 모두 다 투표장으로 몰려가 낡은 질서를 뒤엎어보라는 것이다.

< 김의겸 - 한겨레신문 정치 사회 에디터 >

 
권영세 새누리당 선대위 종합상황실장이 며칠 전 참으로 희한한 발언을 했다. 권 본부장은 “안철수 후보의 단일화 회동 제안 이후 대선 후보 3명의 보도 비중이 형평성을 잃는 등 방송의 편파 및 불공정 보도가 심각하다”고 주장했다. 권 본부장은 심지어 “세 후보에 대해 3분의 1씩 보도하더라도 받아들일 수 없다. 후보 단일화할 쪽을 50%, 박근혜 후보를 50% 보도하는 게 맞다”는 억지까지 부렸다.
 
권 본부장의 주장은 우선 사실관계부터 명백히 왜곡하는 것이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의 분석을 보면, 후보 단일화와 관련된 지상파 방송 보도는 오히려 새누리당 쪽에 유리한 ‘편파성’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방송>의 경우 단일화 회동 제안이 나온 5일 저녁 다른 방송사들과 달리 이 소식을 톱뉴스가 아니라 네번째 기사로 처리했다. 문재인-안철수 후보가 만난 날에도 <한국방송>은 두 사람의 회동 뉴스보다 이를 ‘사기극’이라고 비난한 새누리당 소식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문화방송>은 7일부터는 새누리당의 후보단일화 공격 내용을 먼저 보도한 뒤 그 뒤에 단일화 협상 소식을 전하는 비상식적 편집을 하고 있다. 편파·불공정 보도를 비판할 쪽은 오히려 야권인데 새누리당이 적반하장으로 편파 시비를 걸고 나온 것이다.
지금의 지상파 방송 체제가 집권여당에 결정적으로 유리한 구도임을 모를 사람은 없다. <문화방송>은 최근에도 무리하게 ‘안철수 논문 표절 의혹’ 보도를 했다가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경고 처분을 받고서도 이를 깔아뭉개고 있다. 김재철 문화방송 사장 해임안 부결이나, 한국방송 사장에 길환영씨를 지명한 것도 모두 친여권 방송 구조를 온존시키려는 청와대와 박근혜 후보의 합작품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그런데도 새누리당이 ‘방송 3사 보도가 박근혜 후보한테 유독 편파적’이라고 억지를 부리는 것은 지나가는소도 웃을 일이다.
 
새누리당이 뜬금없이 편파방송론을 들고나온 이유를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방송사들을 다그쳐 선거 관련 뉴스를 아예 ‘친박근혜 일색’으로 도배하겠다는 목적에서다. 새누리당의 비뚤어진 잣대로는 방송 보도가 최소한의 기계적 균형을 유지하는 것마저 성에 차지 않는 것이다. 문제는 새누리당의 주장이 단순한 푸념 정도로 끝나지 않고 실제 ‘보도지침’으로 작용할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방송사들이 새누리당의 위세에 눌려 박근혜 후보 쪽에 더욱 기운 편파·불공정 방송으로 치닫지 말라는 법이 없다. 유권자들이 방송사들의 선거 보도를 더욱 눈을 크게 뜨고 지켜보아야 할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