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자 칼럼] 징검다리

● 칼럼 2012. 11. 13. 15:42 Posted by SisaHan
탈북자와 같은 소외된 분들을 위해 헌신하고 계시는 목사님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 분의 여러 가지 수고와 그에 따르는 고충을 들으면서 나는 진심에서 우러난 마음으로 참으로 수고가 많으십니다 하고 과찬이 아닌 감사의 말씀을 전했다. 그랬더니 그 목사님이 겸양의 말씀으로 하시는 말씀이 “저는 그저 징검다리로 생각하고 섬깁니다” 하시는 것이 아니겠는가?

징검다리, 징검다리라! 참 오랜 만에 듣는 단어다. 예전에는 참 많이 썼던 단어다. 개울을 건널 수 있도록 사람의 보폭에 맞추어 띄엄띄엄 물속에 박아둔 돌이다. 몇 개씩 이어지면서 다리처럼 건넌다고 징검다리라 했던 것 같다. 그러나 오늘에는 웬만하면 다리가 놓여져 실제로 징검다리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예전에는 나루를 건네주던 쪽배도 있었고 작은 개울에는 이 징검다리가 있었는데 요즘은 거의 볼 수가 없는 것이 역사의 흐름인가? 문화의 발전인가? 그렇기 때문에 징검다리처럼 사는 분도 사라지고 그 단어마저 생소하게 들리는지 모르겠다

징검다리로 놓여진 돌은 몸을 물 속에다 박고 그 위로 사람들이 물에 빠지지 않으려 한 발 한 발 그 위를 딛고 지나간다. 진흙이 묻은 신도 있고 예쁜 구두도 있고 신발도 없는 사람이 맨발로 그냥 밟고 지나간다. 개울을 건너면서 징검다리 때문에 잘 지나왔다 또는 징검다리 덕에 물에 안 빠졌네 하고 고마워하면서도 그것으로 끝난다.
징검다리가 고마웠다고 그 돌들을 쓰다듬어 주거나 말뚝을 세워 고맙다 하고 표시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냥 밟고 지나가면 그것으로 끝이다. 그러나 징검다리는 누군가 자신을 물 속에 넣어둔 그 모습 그 자리에서 사람들에게, 때로는 개와 같은 짐승들에게도 밟히면서 그냥 그대로 있는 것이다. 어느 누구가 고맙다고 안해도. 

사회에 봉사하고 교회를 섬기는 봉사자 헌신자의 삶이 그렇지 않을까? 그들은 자신을 남들이 들여놓기 싫어하는 물과 같은 험한 곳에 자신을 들여놓고 남이 자신을 밟고 지나가고 자신을 이용해서 출세를 한다고 해도 그는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밟히는 삶이 어디 쉬우랴? 그 목사님이 징검다리라는 단어를 말씀하실 때, 왜 나는 엔도 슈샤꾸가 쓴 ‘침묵’ 이란 소설이 생각이 날까? 
고문을 견디다 못한 로드리고 신부는 후미에(예수님의 얼굴이 새겨진 동판)을 밟으려 할 때 하도 많이 밟아 이미 찌그러진 그 예수님의 얼굴. 그때 예수님이 그에게 하시는 말씀. “밟아라 밟아라. 나를 밟고 지나가라. 나는 원래 너희들에게 밟히기 위해 이 땅에 왔느니라.” 이 말씀을 읽을 때 코가 찡하고 왜 눈물이 흐를까? 
예수님은 스스로 이 땅에 오신 이유가 밟히러 오셨다고 하셨는데 우리는 어떤가? 예수님이 밟히심을 당당히 말씀하실 때 감격스러워서 그럴까? 아니면 그러지 못하는 우리가 부끄러워서 눈물이 흐를까? 그 예수를 믿는다는 우리는 밟히려 하지 않고 오히려 남을 밟고 그를 딛고 일어서고 그 위에 내 집을 세우려고 하지 않았는가? 그러니 징검다리는커녕 예수의 정신은 저 멀리 가버리고 없는 것이다.
 
교회를 본다. 세상을 본다. 징검다리처럼 봄 여름 겨울 할 것 없이 언제나 자신을 물 속에 담그고 어떤 발로 밟고 지나가든 묵묵히 그 시간을 지나는 징검다리. 참으로 고맙다. 또한 그렇게 사시는 분들이 참으로 고맙다.

김경진 - 토론토 빌라델비아 장로교회 담임목사 >


[칼럼] 미국 대선과 정치인의 생얼

● 칼럼 2012. 11. 13. 15:39 Posted by SisaHan
미국 대통령선거가 6일 예정대로 치러짐으로써 10개월에 걸친 선거운동이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태풍 샌디의 상흔이 가시지 않은 가운데 미국인들은 앞으로 4년간 자신들을 이끌 지도자를 선택했다. 
대표적인 민주주의 국가로 꼽히는 미국의 대선 과정을 취재하며 부러운 점도 많았다. 가장 인상적인 것을 꼽으라면 연설과 토론 정치가 활성화된 점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3개월간 미국 대선 판세는 크게 두 차례 바뀌었는데, 모두 이와 관련돼 있었다. 
첫 번째는 9월 초 민주당 전당대회 때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지지하기 위해 나선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연설이었다.
원래 달변가로 알고 있었지만 클린턴의 연설은 정말 인상적이었다. 상대 후보와 자신의 관점을 일반 대중이 알기 쉽게 대비시킨 뒤 상대의 약점을 조목조목 비판하는 방식으로 그는 자신의 논리를 전개해 나갔다. 물론 사실을 과장한 부분도 있었지만, 유권자들은 위기에 처한 미국의 해법을 50분간 열정적으로 말하는 노정치인에게 열광했다. 그의 연설은 무기력증에 빠져 있던 민주당에 활력을 불어넣었고, 오바마의 지지율 급등으로 이어졌다.
 
두 번째는 10월 초 대통령 후보들이 나선 첫 텔레비전 토론에서 밋 롬니 공화당 후보가 보여준 모습이었다.
 90분간 진행된 토론에서 롬니는 일자리 창출을 위한 나름의 비전을 열정적으로 제시해 유권자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이는 눈을 옆으로 돌리거나 아래로 내리깔면서 자신감이 없는 듯한 태도를 보인 오바마 대통령과 대조됐다. 
지난 4년간 경제적 어려움이 지속되면서 오바마에게 불만은 많으나 그렇다고 부자 이미지가 강한 롬니를 대안으로 선택하기에는 미심쩍어했던 유권자들에게 이날 토론은 롬니의 새로운 모습을 보는 계기가 됐다. 
정치인들의 발언은 대부분 미디어에 의해 정리되거나 해석이 된 채로 유권자들에게 전달된다. 미디어의 이런 역할은 민주주의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기능이지만, 정치인들의 정견을 유권자들이 직접 듣고 스스로 판단하는 과정도 필수적이다. 이번 미국 대선에서 유권자들이 판단을 새롭게 하게 된 것도 바로 이런 과정이 결정적인 구실을 했다. 

우리나라 정치 지도자들의 연설과 토론 능력도 미국 지도자들에 못지않을 것이다. 그러나 과문한 탓인지, 탁월한 대중 연설가 또는 토론가라고 부를 수 있는 지도자로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 외에 다른 얼굴은 잘 떠오르지 않는다. 
미국과 우리나라가 차이를 보이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나는 유권자들이 정치인들의 정견을 각색 없이 직접 들을 수 있게 해주는 인프라나 방식의 차이를 꼽고 싶다. 
미국의 지상파 방송들은 3~4일 일정의 각 정당 전당대회 때 매일 황금시간대에 2시간가량을 할애해 주요 정치인들의 연설을 생방송으로 내보냈다. 오바마가 2004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차세대 지도자로 부상한 것처럼 신진 정치인이 스타로 떠오르는 것도 바로 이때이니, 정치인들은 이에 대비할 것이다. 
롬니 후보가 토론회에서 기량을 발휘한 것은 토론 주제를 몇 개로 압축하고 특정 주제에 대한 심층토론 시간을 대폭 늘린, 이른바 ‘오픈 포맷’을 채택한 것이 한몫했다고 본다. 
우리도 정치 지도자들의 생얼굴(정견)을 날것 그대로 자주 접할 수 있으면 좋겠다. 

< 박 현 - 한겨레신문 워싱턴 특파원 >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통령 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대통령 후보가 첫 회동을 통해 대통령선거 후보 등록 이전에 야권 후보 단일화를 해내기로 합의했다. 대선이 40여일 남은 상황에서 두 후보가 단일화의 대원칙에 합의함으로써 야권 단일화는 급물살을 타게 됐다.
두 후보는 서울 백범기념관에서 배석자 없이 1시간15분 정도 만나 모두 7개 항에 합의했다. 후보 등록 전에 단일후보를 누구로 할 것인지 결정하고 정당혁신과 정권교체를 위한 새정치 공동선언을 내놓겠다는 게 주요 합의사항이다. 두 후보는 새정치와 정권교체를 위한 국민연대가 필요하다는 점에도 인식을 같이했다고 한다. 두 후보는 공동선언을 위해 양쪽에서 3명씩으로 실무팀을 꾸려 본격적인 협상을 벌이기로 했다. 두 후보의 첫 단일화 회동은 정권교체를 희망하는 국민의 우려를 씻어줬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시작이 반이라고 했듯 후보 등록 전에 단일후보를 내겠다는 대원칙을 천명한 것은 큰 진전이다. 두 후보는 유리함과 불리함을 따지지 않고 국민의 뜻만 보고 단일화를 하겠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이날 회동으로 야권 단일화는 움직일 수 없는 대전제로 자리 잡은 셈이다.
 
두 후보가 새정치와 정권교체에 동의하는 양쪽의 지지자들을 크게 모아내는 국민연대가 필요하다고 밝힌 점도 주목된다. 두 후보는 새정치 공동선언을 통해 국민연대의 구체적인 틀을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두 후보 진영에선 단일화를 전제로 민주당을 발전적으로 계승하는 이른바 ‘국민정당’을 창당하는 방안도 거론된다고 한다. 대선 전까지 창당 작업을 마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만큼 창당의 대원칙을 천명하는 가운데 대선 이후 구체적인 창당 작업을 진행한다는 것이다. 신당 창당이 정치혁신의 종착점일 수는 없지만 두 후보가 대선 이후에도 개혁을 위해 협력한다는 구체적인 협력틀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충분히 논의해볼 수 있는 방안이다. 신당이든 연대기구든 양쪽 지지자를 묶어 세울 수 있는 협력틀을 마련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25~26일로 예정된 후보 등록까지는 시간이 많지 않다. 딱 20일이 남았을 뿐이다. 세세한 협상 내용에는 우여곡절이 있을 수 있겠지만 국민만 바라보고 단일화에 나선다면 못 해낼 것도 없다. 실무협상도 중요하지만 두 후보가 직접 만나 담판하는 것 이상의 효과적인 방법은 없다. 국민들은 단일화의 전 과정을 속속들이 들여다볼 것이다. 두 후보가 어제 밝힌 대로 국민의 뜻만 보고 마음을 비우는 이가 결국은 단일후보가 될 것이라는 점을 두 후보는 명심하기 바란다.


[사설] 북한, 대선 개입 언동 중단해야

● 칼럼 2012. 11. 13. 15:37 Posted by SisaHan
북한 노동당 통일전선부의 외곽단체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는 지난 3일 “남조선 각 계층은 새누리당의 재집권 기도를 절대 허용하지 말아야 하며, 대선을 계기로 정권교체를 기어이 실현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조평통은 서기국 보도를 통해 “새누리당은 민족의 재앙거리이고 온갖 불행의 화근”이고 “보수 골동품의 집합체인 새누리당이 집권하면 남조선 사회와 북남관계는 이명박 정권 때와 똑같이 될 뿐 아니라 유신독재가 부활하며, 초래될 것은 파쇼적 탄압과 전쟁뿐”이라고도 했다. 부적절하고 노골적인 선거개입이자 내정간섭이다. 북은 이런 언동을 즉각 중단하기 바란다.
 
남쪽 정부가 나라의 발전과 안정, 통일을 염두에 두고 북의 체제 변화에 관심을 갖는 것처럼, 북쪽이 남쪽의 대선 동향을 주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남쪽 유권자를 대상으로 ‘누가 되면 안 되고 누가 돼야 한다’고 선동하는 것은 넘지 않아야 할 선을 넘는 것이다. 분석과 전망을 넘어 행동을 촉구하는 건 명확한 내정간섭이다. 상호 체제 인정 및 존중, 내부 문제 불간섭, 비방·중상 중지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는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 제1장(남북화해)의 정신에도 정면으로 반한다. 북은 6.15선언과 10.4공동선언을 중시하듯이, 7.4공동선언과 남북기본합의서의 중요성도 인정해야 마땅하다.
국제법이나 남북 합의보다 더 중요한 건, 북의 이런 언동이 전혀 그들이 바라는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점이다. 오히려 북에 대한 불신을 가중시키고 역효과만 낼 뿐이란 점을 북은 알아야 한다. 실제 그동안 남쪽의 주요한 선거를 앞두고 몇 차례 ‘북풍’ 또는 ‘북풍 공작’이 있었지만, 회를 거듭할수록 유권자의 판단은 의도와는 정반대로 나왔다. 2000년 4월 총선과 2007년 대선 직전에 각각 남북정상회담 발표가 있었으나 야당이 승리했고, 2010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급히 이뤄진 천안함 사건 발표도 역풍을 불러왔다. 남이건 북이건 북풍으로 유권자의 표심을 좌우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그 자체가 시대착오이며 유권자에 대한 모독이다.
 
새누리당은 조평통의 성명에 대해 북이 ‘남한 내 제 식구 돕기’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는 내용의 반박 논평을 냈다. 북을 비판하는 듯하면서 야당 후보에 대한 색깔공세에 이용하는 나쁜 수법이다. 이런 행위야말로 남남분열을 노리는 북의 의도에 말려드는 것이다. 북의 대선 개입을 막는 최선의 길은 여야 모두 화살을 엉뚱한 데로 돌리지 말고 북의 잘못된 행동을 함께 비판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