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르 월드컵 최종예선 A조 9차전

홈경기서 2-0 완승…7승 2무 ‘조 선두’

29일 아랍에미리트와 10차전 앞둬

 

축구 국가대표팀 김영권(왼쪽)이 24일 서울 마포구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국제축구연맹(FIFA) 2022 카타르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예선 A조 9차전 이란과 경기에서 팀의 두 번째 골을 넣은 뒤 선제골을 넣은 손흥민과 함께 기뻐하고 있다. 연합뉴스

 

또다시 전원 온(On). 귀국 전 멀티골의 환희도 잊었다. 12시간45분의 항공 피로는 생각지도 않았다. 그저 축구가 좋아, 남은 에너지를 불살랐다. 경기장의 6만4375명 관중이 ‘대한민국~’을 연호한 이유다.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대표팀이 24일 서울 마포구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2 카타르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A조 9차전 이란과의 경기에서 ‘슈퍼스타’ 손흥민(토트넘)의 결정타 등에 힘입어 2-0으로 이겼다.

 

이미 월드컵 본선행을 확정한 한국은 승점 23점(7승2무)으로 이란(7승1무1패·승점 22점)을 밀어내며 조 선두에 올랐다. 29일 아랍에미리트와 10차전을 앞두고 있어, 1위로 마칠 가능성은 크다.

 

무엇보다 2011년 아시안컵 8강전 윤빛가람의 골(1-0)로 승리한 뒤 11년 동안 한 번도 꺾지 못한 이란을 제압하는 기쁨을 누렸다. 이날 승리로 최근 11년간 1승3무4패, 통산 맞전적 10승10무13패가 됐다.

 

한국은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29위. 이란은 21위로 아시아에서 가장 앞선다. 이란은 신체적으로 강하며, 기술력과 조직력도 갖춘 팀이다. 하지만 한국엔 좀처럼 나타나기 힘든 특급 손흥민이 있었고, 이날 경기에서 역시 세계 최고의 공격수에 걸맞은 활약으로 팬들을 열광시켰다.

 

벤투 감독은 이날 황의조를 최전방 공격수로 선발 출전시켰고, 손흥민과 이재성, 황희찬 등 유럽파와 권창훈을 2선에 배치해 공격 작업의 주 임무를 맡겼다. 정우영이 수비형 미드필더로 중원에서 중심을 잡았고, 포백에는 김진수, 김영권, 김민재, 김태환이 늘어섰다. 골키퍼는 김승규.

 

한국은 전반 선수들의 공을 불안하게 관리하면서 위기를 자초했다. 전반 3분, 5분, 17분 수비수들의 잇따른 실수로 상대가 골문 앞에서 공을 잡는 위태로운 상황이 연출됐다. 벤투 감독 특유의 점유율, 빌드업 축구가 이란이라는 상대의 강한 압박에 흔들린 것이다.

 

몇 년 만에 경기장을 가득 채운 관중의 함성과 ‘보고 싶었습니다’라는 대형 카드섹션 이벤트 등 들뜬 경기장 분위기에 선수들의 심장 박동이 높아졌다. 원터치로 이어져야 할 빠른 공격 전개도 드리블 실수나 띄워주기의 둔탁함으로 예리함이 떨어졌다.

 

기대보다 특징이 없는 경기 분위기를 한순간에 바꾼 것은 역시 손흥민이었다. 공만 잡으면 상대의 집중 견제에 돌파구를 열지 못하던 손흥민은 전반 추가 시간 이란 벌칙 구역 왼쪽 앞에서 잡은 공을 치고 나간 뒤, 낮고 빠른 궤적의 대포알 중거리슛으로 골문을 열었다. 이란의 아미르 자데 골키퍼가 두손으로 공을 막아 세우려 했으나, 워낙 강한 공은 그의 발에 맞고 골문으로 빨려 들어갔다. 21일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웨스트햄 경기(3-1)에서 멀티골을 터트렸지만, 기쁨의 스위치를 오프(Off)시킨 뒤 장거리 비행 여독에도 “대표팀 승리”만을 외쳤던 집념이 일군 골이었다.

 

손흥민은 지난해 10월 테헤란에서 열린 이란과의 원정 경기에서도 전반 선제골(1-1)을 넣는 등 까다로운 이란과의 경기에서 해결사 구실을 했다.

 

손흥민의 골로 기세를 탄 한국은 후반 들어 전반과는 완전히 다른 리듬으로 이란을 몰아붙였다. 후반 초반 손흥민과 황의조가 잇따라 골문 안으로 때린 공은 골키퍼 정면으로 날아가며 막혔지만, 파상적인 공세의 물꼬가 이때부터 터지면서 흐름은 한국이 압도했다. 손흥민과 황희찬은 좌우 포지션을 바꾸면서 이란 수비를 교란하기도 했다.

 

결국 후반 18분 추가골이 터지면서 한국은 압승을 예감했다. 측면의 황희찬이 넣은 크로스를 이재성이 살짝 꺾었고, 골지역 정면에서 대기하던 김영권이 왼발로 골망을 흔들자 스탠드는 팬들의 함성으로 흔들렸다.

 

이란은 이날 코로나19로 메디 타레미(포르투)와 알리레자 자한바크시(페예노르트) 등이 빠졌다. 하지만 장신의 사다르 아즈문이 최전방에서 롱볼을 활용한 득점을 시도하는 등 사력을 다했다. 한국은 게임 체인저 손흥민과 이란전 11년 무승의 고리를 끊겠다는 선수단의 각오, 관중의 열화같은 응원으로 짜릿한 승리를 거뒀다.

 

대표팀은 아랍에미리트와의 최종예선 마지막 경기를 위해 26일 밤 출국할 예정이다.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9차전 전적〉

 

한국 2-0 이란

 

△득점 손흥민(전47분), 김영권(후18분)

 

김창금 박강수 기자

전쟁 여파, 세계 식량공급망 불안

 

세계 식용유 주공급원인 러 · 우크라

밀 · 보리 최대 수출국의 하나이기도

 개전 뒤, 인니 자국 팜유 보호 나서

“중동 등 1천만명 식량 불안” 우려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북아프리카 국가들의 식량 불안은 발등에 떨어진 불이 됐다. 한 예멘 여성이 1월5일 예멘 수도 사나 외곽 실향민 캠프 인근에서 빵을 들고 있다. EPA연합뉴스

 

팜유. 이름 그대로 팜(기름야자) 열매에서 뽑아낸 기름이다. 빵을 만들 때 버터 대신 쓰기도 하고, 식용유로 쓰기도 한다. 비스킷, 초콜릿, 비누와 세제 등에도 팜유가 들어간다. 생산과 수출을 가장 많이 하는 나라는 인도네시아다. 세계 수출량의 60% 정도를 인도네시아가 차지한다. 팜유는 석유보다 탄소배출량이 적어 바이오디젤 원료로도 쓰이는데, 정작 보르네오섬은 팜 농장들이 늘면서 숲이 사라져간다. 환경단체들이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러 전쟁 뒤, 세계 먹거리 ‘비상’

 

지난 17일 인도네시아 정부는 팜유 수출세를 대폭 올렸다. 선적할 때마다 수출세를 내는데, 거기에 별도로 수출부담금을 매기고 누진율까지 적용하기로 했다. 자국 수출업자들에게 타격을 줄 게 뻔한 이런 조처를 한 이유는 식용유값이 폭등했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산 팜유의 3분의 2가 외국으로 팔려 가는데, 세금을 올려 일단 수출을 억제해보겠다는 것이다. 생산량 가운데 국내시장에서 의무적으로 팔아야 하는 양도 20%에서 30%로 늘렸다.

 

팜유 생산업자들은 반발했고, 일부 의원들은 정부가 규정을 자주 바꿔 시장에 패닉이 일어나고 있다고 비난했다. 반면 정부는 국제 원자재가 상승과 투기성 거래에 화살을 돌렸다. 일리는 있다. 팜유 가격은 올해 들어 50% 넘게 올랐으며 거기에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영향을 미쳤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식용유의 주된 공급국인데 그쪽의 유채씨기름(카놀라유)과 해바라기유 수출이 줄어드니 인도네시아에서까지 식용유 파동이 일어난 것이다.

 

식용유값이 걱정인 인도네시아는 낫다. 오랜 내전에 시달린 시리아 사람들은 숨겨진 최악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 세계식량계획(WFP)에 따르면 여전히 시리아에서 1340만명이 식량 불안을 겪고 있다. 지난해 말 유엔은 시리아에 가뭄까지 겹치면서 밀 생산량이 줄어 160만톤이 모자랄 것으로 봤다.

 

시리아인들은 10년 넘게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의 독재정권에 맞선 싸움을 벌였으나 아사드는 러시아의 도움을 받아 권력을 연장했다. 그런데 이제는 러시아가 일으킨 동유럽의 전쟁 때문에 시리아인들의 고통이 추가될 판이다. 시리아는 러시아의 차관을 받아 밀 100만톤을 수입하기로 했는데,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이 협상이 중단됐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세계 식량 가격은 2월에 사상 최고치로 올라 전년 동기 대비 20.7%의 상승을 기록했다. 전쟁에 따른 식량공급망 교란은 여기저기서 시작됐다. 우크라이나는 지난해 러시아, 미국, 캐나다, 프랑스에 이어 세계 5위 밀 수출국이었다. 곡물 전체로 보면 러시아가 3위, 우크라이나가 4위 수출국이다. 두 나라가 공급하는 밀과 보리가 세계 교역량의 3분의 1에 이른다. 그런데 러시아가 전쟁을 시작하자 우크라이나는 필수 곡물의 수출을 제한하기 시작했다. 이미 계약돼 외국으로 보내야 하는 곡물조차 밖으로 못 나가고 있다. 곡물 수출의 거의 80%가 남서부의 오데사, 미콜라이우, 초르노모르스크를 통해 흑해로 나갔는데 이 항구들이 러시아군에 막힌 것이다.

 

2019년 인도네시아 아체주 한 마을의 기름야자(팜) 농장을 드론으로 촬영한 모습. EPA 연합뉴스

 

<로이터> 통신 등에 따르면 지난해 우크라이나의 곡물 작황은 기록적으로 좋았다. 그런데 지난해 가을에 심은 겨울밀에는 쓸 비료가 모자라고, 설비를 돌릴 연료도 부족하다. 옥수수와 보리는 다음달에 심어야 하는데, 폭격이 걱정돼 농사를 짓기도 힘들다. 식량 시장의 교란이 장기화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우크라이나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세르비아, 헝가리, 불가리아, 루마니아 등 주변 동유럽국들도 불안해져서 잇달아 곡물 수출을 막거나 줄였다. 침공을 감행한 러시아는 생산에 차질을 빚을 일이 없지만 시장이 러시아산 곡물을 거부하고 있다. 곡물 데이터를 분석하는 애그플로는 3월 첫 2주 동안 러시아 항구를 떠난 곡물 수출 선박이 73척에 그친 것으로 봤다. 전년 같은 기간에는 220척이었다.

 

미국 시카고 상품거래소의 밀 선물가격은 올해 들어 60% 안팎으로 올랐다. 중국마저 기상 조건이 나빠 밀 생산량이 평년보다 20% 줄어들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가격 급등을 막기 위해 중국 정부는 66억달러(약 8조450억원) 규모의 농업보조금을 추가로 배정했다. 중국은 세계 밀 생산량의 절반을 차지하는데 대부분 자국 내에서 소비된다. 설상가상 미국의 평원도 가뭄을 맞고 있다.

 

중동과 북아프리카 국가들에 식량 불안은 발등의 불이다. 주로 식량을 수입하는 이 지역에는 빵 같은 기본 식료품에 정부가 보조금을 대주는 나라가 많다. 그런데 원재료값이 너무 오르면 정부가 보조금으로 낮은 가격을 지탱해주기가 힘들어진다.

 

레바논, 밀 9할이 러·우크라산인데…

 

세계 최대 밀 수입국인 이집트에서는 인구 대부분인 7천만명이 정부의 식료품 보조금 혜택을 받고 있다. 지난달 23일 무스타파 마드불리 총리는 현재 밀 비축량이 4개월치이고, 다음달 중순 국내산 밀이 수확되면 비축량이 9개월치로 늘어난다며 국민들을 안심시켰다. 하지만 재정난이 심각해지면서 정부는 식료품 보조금을 줄이고 있다. 이집트에서는 1977년 정부가 식료품 보조금을 끊자 ‘빵 폭동’이 일어났다. 2011년에는 튀니지에서부터 시작된 ‘아랍의 봄’ 혁명이 중동과 북아프리카를 뒤흔들었는데, 당시 상황도 식료품값 폭등과 이어져 있었다. 미국 외교·안보 싱크탱크 ‘애틀랜틱카운슬’의 경제 전문가 닐스 그레이엄은 최근의 식료품값 폭등이 아랍의 봄 때보다 더 심하다면서 “밀 공급의 80%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 의존해온 이집트의 경우 정부 지출이 전쟁 때문에 두 배로 늘어날 것”이라 예상했다.

 

레바논은 더 심각하다. 레바논 세관 통계에 따르면 2020년 기준으로 전체 밀 수입량의 80%는 우크라이나에서, 15%는 러시아에서 왔다. 그해 8월 베이루트 항구에서 대규모 폭발 사고가 일어나 넉달치 밀 비축량이 날아갔다. 코로나19가 번지고 관광산업이 무너지면서 레바논 인구의 80%가 빈곤에 시달리게 됐다. 정부는 지금도 매달 2천만달러를 밀 구입 보조금으로 쏟아붓고 있는데,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한계에 부딪혔다. 레바논 경제장관은 지난 5일 트위터에 밀 배급제를 시작할 것이라는 글을 올렸다. 휴먼라이츠워치는 “우크라이나에서의 충돌로 중동과 북아프리카에 사는 1천만명이 식량 수급 불안을 겪을 것”이라며 “식량공급망이 글로벌화했기 때문에 위기 상황에서는 글로벌 연대가 필요하다”고 국제 공동 대응을 촉구했다.    구정은 국제 전문 저널리스트

옛 자유한국당 2019년 1월 ‘산업부 블랙리스트’ 의혹 고발

3년 만에 강제수사…“환경부 블랙리스트 판결문 검토 뒤 진행”

 

 

산업통상자원부(산업부) 장·차관이 산하 공공기관 사장의 사퇴를 압박했다는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산업부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대선이 끝난 뒤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공공기관 인사 문제를 두고 갈등하는 가운데 3년 전 고발 사건에 대해 검찰이 강제수사에 나선 것이라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25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동부지검 기업·노동범죄전담부(부장 최형원)는 이날 오전부터 산업부 원전 관련 부서를 압수수색했다. 국민의힘 전신인 자유한국당은 2019년 1월 “백운규 전 장관 등이 전 정권에서 임명된 산업부 산하 공공기관 4곳의 사장에게 사퇴할 것을 압박해 이들이 일괄 사표를 냈다”며 ‘산업부 블랙리스트’ 의혹을 제기하고, 백 전 장관과 이인호 전 산업부 차관 등을 직권남용권리행사 방해죄로 동부지검에 고발했다. 자유한국당이 ‘블랙리스트’로 지목한 이들은 한국전력자회사인 한국남동발전, 한국남부발전, 한국서부발전, 한국중부발전 사장들이다. 이들은 임기가 1년4개월~2년2개월 남은 상태에서 사표를 냈고, 2017년 9월 일괄 수리됐다. 당시 산업부는 “사표를 강요한 적이 없고 모두 자발적으로 제출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2019년 5월 동부지검은 한국전력공사 자회사인 장재원 전 한국남동발전 사장 등 한전 4개 발전 자회사 전직 사장을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했다. 이후 수사에 진척이 없다가 대선 뒤, 3년 만에 강제수사에 나선 것이다. 이에 대해 검찰 관계자는 “계속 수사해오던 사안으로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의 대법원 판결 확정 이후 판결문을 검토한 후 압수수색을 진행한 것”이라며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 진행의 일환으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고 말했다. 지난 1월 대법원은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으로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및 업무방해 등 혐의로 기소된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에게 징역 2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우연 기자

윤 당선자 통화 · 비서실장 만나 뼈있는 덕담

‘강한 야당’-‘합리적 야당’ 중심잡기 시험대 올라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신임 원내대표(오른쪽)가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원내대표 회의실에서 장제원 대통령 당선자 비서실장으로부터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의 축하 난을 받고 있다.

 

172석 거대 예비 야당의 방향타를 쥔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체제가 25일 본격 출범했다. 박 신임 원내대표는 윤석열 정부의 첫 야당 원내사령탑으로서 ‘강한 야당’과 ‘합리적 야당’ 사이를 오가며 ‘운용의 묘’를 살려야 하는 동시에 당 안팎으로부터 빗발치는 개혁 요구까지 한 데 조화시켜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박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 참석해 “견제와 협력은 야당의 책임과 의무”라며 “견제는 강력하고 확실하게 하면서도 국민을 위한 협력의 교집합은 넓혀가겠다. 무능, 독선, 불통, 부정부패 등 국민의힘 정권의 잘못은 국민 편에서 지적하되 잘한 일에 대해서는 제대로 평가해주고 필요한 일은 협조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와 전화 통화를 했다는 사실을 언급하며 “(윤 당선자에게) ‘민생과 안보만큼은 여야가 없다는 마음으로 힘을 모으겠다’며 국회와 적극 소통해줄 것을 요구했다. 여야가 얼마만큼 협력하는가는 전적으로 윤 당선자의 의지와 국민의힘의 태도에 달려있다”고도 했다. 취임 일성으로 야당의 원론적 역할을 강조하면서도, 윤 당선자의 대통령 취임 이후 여야 협력은 윤 당선자와 국민의힘의 태도에 달렸다며 ‘강한 야당’의 면모를 예고한 것이다.

 

박 원내대표는 이날 오후 장제원 당선자 비서실장의 예방을 받은 자리에서도 “윤 당선자에게 말씀드린 것처럼 안보와 민생에는 여야가 없기 때문에 힘을 합쳐야 한다. 그 출발은 국회를 존중하고 소통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협치의 조건으로 원내 1당인 민주당을 존중해야 한다는 뜻을 내비친 것이다. 비공개 회동이 끝난 뒤에도, 장 실장은 박 원내대표와의 사적 인연을 강조하며 “윤 당선인이 식사 자리에 모시겠다고 말해서 그 뜻 전달했다”고 밝힌 반면, 박 원내대표는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와의 소통이 중요하고, 현직 대통령에 대한 격의 없는 소통(이 중요하다는) 얘기를 했다”고 전해 온도 차를 보였다.

 

박 원내대표는 3, 4월 임시국회부터 리더십 시험대에 오를 전망이다. 기초의원 3인 이상 중대선거구제를 3월 임시국회 안에 처리하고, 수사·기소권 완전 분리를 골자로 한 검찰개혁을 조기에 마무리하자는 당내 여론이 들끓고 있어 당장 가시화된 결과물을 내놓는 것이 필요하다. 다만 새 정부 출범 직후부터 관련 법안 강행 처리에 나섰다간 역풍을 맞을 수 있고, 정국 경색에 따른 후폭풍까지 감당해야 해 원내지도부의 고심이 만만치 않다. 이 때문에 박 원내대표가 개혁 과제를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기보단 당근과 채찍을 함께 구사하며 대여 협상력을 확보하는 데 주력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가 나온다.

 

한편, 박 원내대표는 이날 재선인 진성준 의원을 원내운영수석부대표에, 박찬대 의원을 정책수석부대표에 임명했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 정무기획비서관 출신으로 친문(친문재인) 성향인 진 원내수석은 대여 협상을, 이재명계로 분류되는 박 수석부대표는 입법 및 정책 등을 맡게 된다. 심우삼 기자

 

172석 원내사령탑 박홍근…민주당 ‘이재명계로 재편’ 신호탄

 

86그룹 막내…명-낙 대리전 승리

“새 정부 실정·무능 바로잡겠다”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신임 원내대표가 24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새로운 원내대표 선출된 뒤 당선 소감을 밝히고 있다.

 

‘예비 거대야당’ 더불어민주당을 이끌 새 원내사령탑에 박홍근 의원이 선출됐다.

 

박 의원은 24일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원내대표 경선에서 결선투표에서 경합한 박광온 의원을 누르고 당선됐다. 이날 경선에는 172명의 의원 중 166명이 참여했으며 최종 득표 수는 공개되지 않았다.

 

1969년생인 박 의원은 경희대 총학생회장과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권한대행을 거쳐 2007년 대통합민주신당 창당준비위원회 대변인으로 정치권에 발을 들였다. ‘86그룹(1960년대 출생, 1980년대 학생운동에 몸담았던 정치인)’의 막내 격으로 대표적인 박원순계 정치인이었지만 20대 대선 과정에서 ‘이재명 후보 비서실장’을 맡으며 새로운 측근이 됐다. ‘이재명계’인 박 의원이 172석 ‘슈퍼야당’을 이끌 원내사령탑에 오르게 된 배경에는 대선 패배 뒤 민주당이 ‘친문당’으로 회귀하는 것에 대한 당내 부담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민주당 안팎에서는 주류였던 친문계가 퇴조하고, 이재명계가 ‘신주류’로 떠오르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번 원내대표 경선은 박홍근·박광온 의원의 ‘계파 대리전’으로 주목을 받았다. 박홍근 의원은 대선 과정에서 이재명 상임고문을 도운 ‘친명계’로, 친문 성향인 박광온 의원은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 캠프에 몸담아 ‘친낙계’로 분류돼 일찍이 양강 구도를 형성했다. 현역 법제사법위원장으로 이해찬 지도부에서 최고위원, 이낙연 지도부에서 사무총장을 맡았던 박광온 의원이 경륜과 안정감을 무기로 선전할 것이란 관측도 있었지만, 당 내부의 주류 교체 분위기를 넘지 못했다. 6·1지방선거를 앞두고 윤호중 비상대책위원장에 더해 원내지도부까지 친문 일색이 될 경우 쇄신 의미가 퇴색될 것이란 우려도 작용했을 수 있다. 한 중진 의원은 “원내대표 경선이 계파 대리전처럼 된 것은 아쉽다”면서도 “정권이 교체되면서 자연스럽게 당내 주류가 바뀌는 변화의 과정으로 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5년 만에 ‘야당 원내지도부’가 구성된 만큼 윤석열 정부와의 관계 설정을 어떻게 할 것인지 관심이 쏠린다. 박홍근 새 원내대표는 “개혁 입법을 늦출 수 없다”고 했고 정견 발표에서는 “정부·여당의 실정과 무능은 확실히 바로잡겠다. 역사적 퇴행과 불통, 무능과 독선, 부정부패는 단호하게 맞서나가야 하지만 국민 눈높이 맞지 않는 정략적 반대 일삼지 않겠다”고 했다. 그는 “윤석열 당선자가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을 대하는 적대적 태도를 보면 심상치 않다”며 “적대적 관계, 정치보복, 검찰 전횡이 현실화되면 모든 걸 걸고 싸우겠다. 반드시 문 대통령과 이 상임고문을 지켜내겠다”고도 했다. 새 정부 출범과 함께 진행되는 인사청문회와 하반기 원구성 등 현안이 산적한 데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과 대장동 특검, 개혁입법을 둘러싼 여야 대치 전선이 뚜렷해 ‘공세적 기조’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이날 입후보 없이 진행된 원내대표 경선 1차 투표에서는 열린민주당 출신의 최강욱 의원이 재적의원의 10% 이상을 득표해 2차 투표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그에게 표를 준 당내 강경·개혁 그룹의 존재감도 변수가 될 수 있다.

 

대선 패배 뒤 첫 원내지도부를 선출한 이번 경선에서 이재명계의 우위가 확인되면서 오는 8월로 예정된 전당대회 구도가 출렁일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당 일각에서는 이 상임고문이 조기에 등판해 당권 경쟁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심우삼 최하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