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즈볼라도 이스라엘 북부 도시 티베리아스에 로켓 일제 사격 밝혀

 
초토화 된 레바논 마을 [AFP 연합]  26일 이스라엘 공습에 민가 등 파괴된 레바논 마을을 인공위성에서 촬영한 모습. 
 

이스라엘군은 27일(현지시간) 레바논의 친이란 무장정파 헤즈볼라를 향해 고강도 폭격을 이어갔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이날 오전 3시께 레바논 남부 국경 도시 셰바가 공습당해 어린이 4명을 포함한 일가족 9명이 사망했다고 셰바 당국이 전했다.

시리아 국영 SANA 통신은 새벽 레바논 국경지대인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 인근 시골 마을의 군사시설이 공격당해 시리아 군인 5명이 숨졌다고 보도했다.

이스라엘군은 성명을 내고 지난 24일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폭격 때 헤즈볼라의 미사일·로켓 부대 사령관 이브라힘 무함마드 쿠바이시와 함께 부사령관 압바스 이브라힘 샤라프 아딘, 고위급 대원 후세인 하니 등도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전날 레바논 당국은 이스라엘군이 '북쪽의 화살' 작전 개시를 선언한 지난 23일부터 총 696명이 숨진 것으로 집계했다. 이날 사망자를 더하면 700명을 넘긴 셈이다.

국제이주기구(IOM)는 이번주에만 레바논에서 10만명 이상이 피란길에 올랐으며 작년 10월 7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 공격으로 전쟁이 발발한 기간까지 따지면 피란민이 20만명 이상이라고 밝혔다.

헤즈볼라도 이스라엘에 대한 공격을 계속했다.

헤즈볼라는 이날 성명에서 이스라엘 북부 도시 티베리아스에 로켓 일제 사격을 가했다며 "이는 레바논 마을과 민간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무자비한 공격에 대응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스라엘군은 레바논에서 무인기(드론) 등이 날아와 일부를 격추했다고 밝혔다. < 이스탄불=연합 김동호 특파원 >

블룸버그통신 조사…"해리스, '동률' 조지아 외 다른 경합주서 우세"

CBS는 펜실베이니아에서 동률 (49%) 기록 등 조사 기관 따라 달라

 

첫 TV 토론 하는 트럼프와 해리스 [[로이터 연합]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핵심 경합주인 펜실베이니아에서 오차범위 밖에서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이기고 있다는 여론조사가 또 나왔다.

블룸버그통신이 여론조사업체 모닝컨설트와 19∼25일 7개 경합주 유권자 6천165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27일(현지시간) 공개한 결과에 따르면 해리스 부통령은 펜실베이니아에서 51%의 지지율을 기록, 트럼프 전 대통령(46%)을 이겼다.

해리스 부통령은 또 ▲ 네바다에서는 7%포인트 ▲ 미시간 3%포인트 ▲ 위스콘신 3%포인트 ▲ 애리조나 3%포인트 ▲ 노스캐롤라이나 2%포인트 등 펜실베이니아를 포함해 모두 6개 주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보다 우위에 있었다.

이번 조사의 오차범위는 네바다(4%포인트)를 제외하고 3%포인트이며 펜실베이니아와 네바다는 해리스 부통령의 우위가 오차범위 밖에 있다고 이 매체는 전했다.

경합주 중 조지아에서는 해리스 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지율이 49%로 같았다.

전체 7개 경합주에서 투표 의향이 있는 유권자를 대상으로 한 양자 가상 대결 조사에서 해리스 부통령은 50%, 트럼프 전 대통령은 47%의 지지를 각각 받았다. 군소 후보를 포함한 다자 가상 대결에서는 해리스 부통령의 우위가 4% 포인트로 확대됐다.

이번 조사에서도 바이든 정부 소속인 해리스 부통령의 경제 문제 대응에 대한 평가가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생필품 비용 처리 대응에 대한 질문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은 47%, 해리스 부통령은 46%의 지지를 각각 기록했다.

경제 일반에 대해서도 트럼프 전 대통령의 우위는 지난달 6%포인트에서 이번에는 4%포인트로 줄었다고 블룸버그통신은 전했다.

이민 문제에 대해서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14%포인트를, 낙태 문제에서는 해리스 부통령이 24%포인트가 각각 우세했다.

앞서 미국 퀴니피액대가 18일 공개한 여론조사에서도 해리스 부통령은 펜실베이니아주(오차범위 ±2.7%포인트)에서 51%의 지지율을 얻어 트럼프 전 대통령(45%)을 오차범위를 넘는 격차로 따돌렸다.

다만 CBS의 조사에서 두 후보가 펜실베이니아에서 동률(49%)을 기록하는 등 조사 기관에 따라 결과에 다소 차이가 있는 상태다.      < 워싱턴=연합 강병철 특파원 >

한일 역사인식 ‘비둘기파’ ... 극우 다카이치에 결선투표서 극적 역전

 
 
                    이시바 시게루 일본 자민당 총재 당선자 페이스북 갈무리
 

사실상 차기 일본 총리를 뽑는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이시바 시게루(67) 전 자민당 간사장이 결선 투표 끝에 극적으로 승리했다. 이시바 당선자는 다음달 1일부터 개원하는 임시국회에서 무난히 일본 102번째 총리에 선출될 것으로 전망된다.

아이사와 이치로 자민당 총재 선거관리위원장은 27일 치러진 당 총재 선거 결선투표에서 이시바 전 간사장이 전체 415표(당 소속 국회의원 368표, 당원·당우 47표) 가운데 유효표 409표의 절반을 넘는 215표(국회의원 189표, 당원·당우 26표)를 얻어 당선을 확정했다고 발표했다. 이시바 당선자는 지난 2008년 총재 선거에 첫 출마한 이후 16년만, 5번째 도전 만에 결국 총재직에 오르게 됐다. 돌풍을 일으키며 결선에서 경쟁한 다카이치 사나에 경제안전보장상은 194표(국회의원 173표, 당원당우 21표)에 그쳐 쓴 잔을 마셨다.

앞서 오후 1시께 시작된 1차 투표에서는 예상대로 과반을 넘는 득표자가 나오지 않았다. 이시바 전 간사장은 당 소속 국회의원(전체 368표)과 105만여명 당원·당우(투표를 전체 368표로 비례 배분)로부터 합계 154표를 얻어 결선에 진출했다. 하지만 결선 상대로 정해진 다카이치 사나에 경제안전보장상과 무려 27표차가 벌어져 결선 전망이 어두웠다. 특히 결선 승부에 열쇠를 쥔 국회의원표에서 이시바 46표, 다카이치 72표로 큰 차이를 보였다.

 

      이시바 시게루 자민당 총재 당선자. [로이터 연합]
 

하지만 1차 선거 때 후보 9명이 난립하면서 표가 분산된 데다, 의원들이 한팀으로 뭉쳐 특정 후보를 집단적으로 밀어주던 ‘파벌’마저 대부분 해산된 터라 결선 투표는 예측불허로 진행됐다. 결국 결선에서 대역전극이 펼쳐졌다.

이시바 전 간사장은 국회의원표 189표를 얻었고, 당원·당우표(전체 47표) 26표를 더해 다카이치 경제안보상을 압도했다. 당내 지지 기반이 약한 것으로 알려졌던 이시바 당선자로서는 뜻밖의 결과가 나온 셈이다. 반면 다카이치 경제안보상은 국회의원들에게 173표 밖에 얻지 못하면서 막판 뒤집기를 당했다. 애초 이시바 당선자와 양강구도를 형성했던 고이즈미 신지로 전 환경상은 의원표(75표)를 가장 많이 확보했지만, 당원·당우표를 61표 밖에 얻지 못하면서 1차 투표 문턱을 넘지 못했다.

이번 선거는 자민당 파벌 의원 비자금 사건 여파로 대부분 파벌이 해체된 가운데 치러졌다. 하지만 파벌을 이끌었던 중진들이 여전한 실력을 행사하며 선거 막판 판세가 숨가쁘게 돌아갔다. 실제 선거 당일 일본 언론들은 유일하게 해체하지 않은 파벌 ‘아소파’ 수장 아소 다로 자민당 부총재가 파벌 소속 의원들에게 1차 투표 때부터 ‘다카이치 후보’를 지원하라고 지시했다고 보도했다. 현직 총리이자 해체 전 ‘기시다파’ 수장이던 기시다 총리는 자신의 정책을 계승하기 어려운 다카이치를 일단 제외하고, 다른 후보를 독려하기로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다른 ‘킹메이커’ 스가 요시히데 전 총리는 자신의 집권기 때 ‘퇴임 요구’를 했던 이시바 전 간사장 대신 고이즈미 전 환경상 지지를 공개적으로 선언한 바 있다.

“이대로면 자민당 끝장” 대놓고 쓴소리
‘여당 내 야당’ 인사로 불리며 비주류 길

 
 
이시바 시게루 일본 자민당 총재 당선자. [로이터 연합]

 

이시바 시게루(67) 일본 자민당 총재 당선자는 자민당에서 ‘여당 내 야당’으로 불려온 인물이다.

그는 아버지 이시바 지로가 참의원 의원, 돗토리현 지사 등을 지냈지만 “아버지처럼 되기는 어렵다”며 대학 졸업 뒤 은행원이 됐다. 하지만 부친 사후 다나카 가쿠에이 전 총리의 권유로 정치인이 되기로 결심했다. 1986년 자민당 소속으로 당시 최연소인 29살 나이에 중의원에 당선되면서 정치에 입문했다.

2002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 시절 방위청(현재 방위성) 장관으로 처음 내각에 들어간 뒤, 안보 분야 등에서 전문성을 키웠다. 방위청 장관과 방위상을 역임했으며 ‘국방’ ‘국방 입문’ 등의 책을 썼다. 역사 문제에 대해서 “(식민 지배가) 합법적이었다고 해도, 독립국이었던 한국을 합병하고 (그들의) 성을 바꾼 역사가 있었다는 사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며 자민당 정치인 중에서는 전향적 인식을 드러내지만, 안보 정책 자체는 자위대를 국방군으로 규정하는 헌법 개정을 하자고 주장하는 등 ‘매파’적이다. 내각에서는 농림수산상, 지방창생상을 거쳤다. 당에서도 핵심 요직인 당 정무조사회장 한차례, 간사장을 두차례 지냈다.

해박한 지식과 함께 성실함을 두루 갖췄다는 평가다. “연설과 토론에서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당내에서 실력을 인정받았지만 2008년, 2012년, 2018년, 2020년 네 차례 총재 선거에 도전해 모두 실패했다. 일반 유권자에게 인기가 높은 반면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결정적 역할을 하는 국회의원 지지 기반이 약했기 때문이다.

정치 초년병이던 1990년대 정치개혁을 주장하며 당을 탈당하는가 하면, 복당한 이후에도 당내 주류파에 쓴소리를 마다않으며 비주류의 길을 걸어왔다. 특히 지난 2020년 ‘당내 절대 권력’이던 아베 신조 총리에 대해서 코로나19 부실 대응 문제를 놓고 “이대로면 자민당이 끝장난다”고 대놓고 비판했다.

현재 돗토리현 제 1구의 12선 의원이다. 일본에선 드문 기독교 신자다. 일본 정계 ‘최고의 철도 마니아’로도 유명하다.    < 도쿄=홍석재 특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