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비판하는 야당, 시민사회단체, 언론 등을 적대시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15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79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태극기를 흔들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15일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발표한 ‘8·15 통일 독트린’에서 ‘자유 통일’을 이룰 첫번째 과제로 명시한 것은 ‘국민 가치관과 역량’이다. 하지만 행간이 겨냥한 상대는 야당과 비판 세력으로, 이들을 “사이비 지식인과 선동가” “반자유 세력, 반통일 세력” “검은 선동 세력” 등으로 규정하고 편 가르기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국정 운영 동력이 흔들릴 정도로 윤 대통령 부부를 상대로 한 비판과 분노가 거센 상황에서 책임을 반대자에게 돌리고, 분명한 적대적 메시지로 지지층을 결집하려는 의도가 담겼다는 풀이가 나온다.

윤 대통령은 이날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79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국민들이 자유의 가치와 책임의식으로 강하게 무장해야, 한반도의 자유 통일을 주도해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선동’ ‘날조’ 등의 격한 표현을 사용하며 “국민들이 진실의 힘으로 무장하여 맞서 싸워야 한다”고 했다. “사이비 지식인과 선동가들은 선동과 날조로 국민을 편 갈라, 그 틈에서 이익을 누리는 데만 집착할 따름”이고 “국민을 현혹해 자유 사회의 가치와 질서를 부수는 것이 그들의 전략”이라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사이비 지식인들은 가짜 뉴스를 상품으로 포장·유통하며, 기득권 이익집단을 형성하고 있다. 허위 선동과 사이비 논리는 자유 사회를 교란시키는 무서운 흉기”라고도 했다.

경축사에서 윤 대통령은 ‘반자유·반통일 세력’이 누구인지 특정하지 않았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도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는 헌법 4조에 반하는 세력이고 자유·통일에 반하는 세력”이라고만 했다.

하지만 이는 정부를 비판하는 야당, 시민사회단체, 언론 등을 염두에 둔 것이란 풀이가 나온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광복절 경축사에서도 “공산전체주의를 맹종하며 조작선동으로 여론을 왜곡하고 사회를 교란하는 반국가 세력”이라고 하는 등 정부 비판이 일부 세력의 선동 탓이라는 인식을 꾸준히 보여왔다.

 

노종면 더불어민주당 원내대변인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 갈등의 진원지로 대다수 국민이 윤 대통령을 지목하는데도 ‘선동과 날조’ 탓으로 돌렸다”며 “자신에 비판적인 이들에 대한 적대감을 광복절 경축사에까지 드러낸 것에서는 반드시 보복하겠다는 섬뜩한 독기가 읽힌다”고 비판했다.

조국혁신당도 국회 기자회견에서 “경축사에 야당과 시민사회에 대한 적의만 가득하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장 자유를 겁박하고 통일을 방해하는 세력이 누구냐”고 따졌다.

지지층 결집용 경축사라는 지적도 나왔다.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는 “야당의 탄핵 요구나 ‘친일 프레임’ 공격 등이 강해지는데다, 여당과의 관계도 예전 같지 않으니, 기댈 곳은 전통적인 보수 지지층밖에 없다는 뜻 아니겠느냐”며 “진보 세력에 경계를 드러내는 동시에 지지층을 결집하려는 생각을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이승준 임재우 기자 >

 

[사설] 광복절 두쪽 내고 국민 비판에 선전포고한 윤 대통령

 
광복회 등 독립운동 단체가 15일 서울 백범기념관에서 연 광복절 기념식에서 참석자들이 어린이 합창단의 노래에 맞춰 태극기를 흔들고 있다.(왼쪽)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정부 경축식에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태극기를 흔들고 있다. 연합
 

제79돌 광복절 기념식이 결국 둘로 쪼개져 열렸다. 윤석열 대통령과 여당 지도부 등은 15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정부 경축식에 참석했다. 반면 광복회 등 대다수 독립운동단체들과 야 6당은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임명 등 역사 왜곡에 항의해 서울 백범김구기념관에서 별도 기념식을 열었다.

그동안 보수·진보 정권을 가리지 않고 광복절만큼은 온 국민이 한목소리로 독립운동 정신을 기리는 통합의 마당으로 자리해왔다. 그러나 윤 정부 들어 육군사관학교 독립영웅 흉상 철거, 강제동원 등의 일제 책임 부정, 뉴라이트 인사들의 역사기관 장악 등 반헌법적 역사 왜곡 시도가 잇따른 결과 정부 수립 이후 처음으로 정부와 민간이 별도 기념식을 열기에 이르렀다.

엄밀히 말하자면, 둘로 쪼개졌다고 하기도 어렵다. 독립운동의 역사와 의미를 폄훼하는 윤 대통령의 친일 행태에 맞서 국민 대다수의 뜻을 대변한 독립운동단체들이 독자적인 기념식을 연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 경축식은 기려야 할 우리 역사의 고갱이를 놓친 무늬만의 행사에 그친 반면, 진정한 광복절의 의미는 62개 독립운동단체가 연 소박한 기념식에서 온전히 구현됐다. 이종찬 광복회장은 “최근 진실에 대한 왜곡과 친일사관에 물든 저열한 역사 인식이 판치며 우리 사회를 혼란에 빠트리고 있다”며 “이 역사적 퇴행과 훼손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고 자체 기념식을 연 이유를 밝혔다. 공감하는 국민이 매우 많을 것이다.

역사적 정통성을 상실한 반쪽 경축식에서 윤 대통령은 공허하고 편향된 ‘8·15 통일 독트린’을 발표했다. “분단 체제가 지속되는 한, 우리의 광복은 미완성일 수밖에 없다”고 한 건 대한민국 대통령이 가져야 할 당연한 인식이다. 그러나 분단 극복의 실효적 방법론이 빠진 번지르르한 수사에 그쳤다. “북녘땅으로 우리가 누리는 자유가 확장돼야 한다”며 흡수통일 의사를 노골화했고, “북한 주민들이 다양한 외부 정보를 접할 수 있도록” 대북 전단 살포와 대북 확성기 가동을 이어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흡수통일이라는 이념적 푯대만을 강조하며 국민 생존과 직결된 평화의 가치를 가볍게 여기는 태도가 아닐 수 없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식의 독단적 주장에 비판적인 생각을 가진 국민을 척결해야 할 “반자유 세력, 반통일 세력”으로 몰아세웠다는 사실이다. 윤 대통령은 “허위 선동과 사이비 논리는 자유 사회를 교란시키는 흉기”라며 “사이비 지식인”과 “검은 선동 세력”에 “우리 국민들이 맞서 싸워야 한다”고 했다. 지난해 광복절 경축사에서는 야당과 비판 세력을 “여론을 왜곡하고 사회를 교란하는 반국가 세력”이라고 하더니, 이제 ‘반통일 세력’ 딱지까지 붙였다. 또 이념으로 국민을 갈라치기 한 것이다. 그러나 흡수통일이 아닌 평화적 통일을 주장하면 반통일 세력이라는 건 얼토당토않은 궤변일 뿐이다. 반면, 역대 대통령들의 경축사에 빠지지 않았던 일본의 역사적 책임에 대한 언급은 전혀 담지 않았다. 윤 대통령이 이처럼 통합의 길을 제시하기는커녕 분열만 부추기는 한 국가지도자 자격에 대한 국민의 의구심도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 한겨레신문 >

 

일제강점엔 면죄부 주고 '흡수통일' 다짐
'식민 모국' 살뜰히 챙기는 세심함 돋보여

일제 가혹사 은폐하고자 '광복' 의미 왜곡
광복은 '자유 향한 투쟁'이라는 궤변 주장

흡수통일 천명하고 대화하자?…이율배반
청소년 세대, 반공·반북 교육 본격화 예고

일본 마이니치 "작년에 이어 일본 비판 전무"

 

윤석열 대통령의 제79회 광복절 경축사엔 일본도 강점도 식민지도 없었고, 북한과 자유통일만 있었다.

광복절은 1945년 8월 15일 우리 민족이 잔혹했던 35년의 일제 식민 통치에서 해방되고 조국을 되찾게 된 걸 축하하는 국경일인 만큼, 마땅히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는 일제의 강점과 식민 통치, 그리고 민족의 독립운동과 조국 광복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겼어야 했지만 윤 대통령은 일제 잔혹사를 망각 속에 묻기에 바빴다.

 

윤석열 대통령이 15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79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 2024.8.15 [대통령실 제공] 연합

 

일제도 강점도 식민도 없는 광복절 경축사

'식민 모국' 살뜰히 챙기는 세심함 돋보여

그러나 윤 대통령의 작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이미 "일제 강점기"란 표현을 포함해 사실상 일제 식민지 과거사를 통째로 들어냈던 터라 그러려니 했지만, 올해 경축사에선 아예 일제 강점기, 식민 통치는 물론이고 일본에 대한 언급 자체가 없어 '초현실적'이란 인상을 줬다. 일제가 1910년 조선의 국권을 침탈해 45년 패망해 물러날 때까지의 잔혹했던 시절에 대한 구체적 언급이 한 줄도 들어 있지 않았다.

취임 첫해인 2022년 77주년 광복절 경축사에선 그나마 "일제 강점기"란 표현이 모두 4차례 나왔다. 그 중 "엄혹했던 일제 강점기"라거나 "조국의 미래가 보이지 않던 캄캄한 일제 강점기"란 표현이 있었다. 그러다가 작년엔 "국권을 회복할 가능성이 희박한 암흑의 시기"라고만 언급했다. 올해엔 "국권을 침탈당한 이후"라거나 "국권을 잃은 암담한 상황"이 전부였다. 누구로부터 국권을 침탈당했는지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었다.

딱 한군데에서 "1945년 일제의 패망으로 해방됐다"란 표현을 써가며 두루뭉술하게 넘어갔다. "제국주의 세력의 국권 침탈"이란 말도 썼지만, '일본' 제국주의란 점은 애써 숨겼다. '식민 모국' 일본을 살뜰히 챙기는 윤석열의 세심함과 배려가 돋보인다.

 

제79주년 광복절을 맞이해 15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국립 대한민국임시정부 기념관에서 열린 '광복 파티' 행사에 참여한 어린이가 임시정부 요인과 광복군의 사진 앞에서 임정 요인 맞추기 과제를 하고 있다. 2024. 08.15 연합

 

일제 가혹사 은폐하고자 '광복' 의미 왜곡

광복은 '자유 향한 투쟁'이라는 궤변 주장

'광복'이란 표현을 썼지만, 광복이 '일제로부터의 해방'을 뜻하는 것인데도, 윤 대통령은 의도적으로 가해자 일본을 은폐하고자 "우리의 광복은 자유를 향한 투쟁의 결실이었다"라거나 "1919년 3·1운동을 통해 국민이 주인이 되는 자유로운 나라를 만들겠다는 국민들의 일치된 열망을 확인했다"는 등의 해괴한 궤변을 늘어놓았다.

이날 경축사에서 3·1운동과 상해 임시정부, 그리고 교육·문화 분야와 외교, 군사적 독립운동 등 "국내외에서 다양한 독립운동을 펼쳤다"고 말했지만, 이를 막연히 '자유를 향한 투쟁'으로 주장함으로써 한반도를 강점하고 한 민족을 억압, 수탈했던 일제를 타도하고 국권을 되찾기 위한 투쟁이란 본질을 숨겼다.

그 논리에 따르면, 자연히 윤 대통령의 '자유를 향한 투쟁'의 표적은 일제에 의해 같은 고난을 겪은 동족 북한이 된다. 그는 "완전한 광복은 여전히 미완의 과제로 남아 있다"며 "자유가 박탈된 동토의 왕국, 빈곤과 기아로 고통받는 북녘땅으로 우리가 누리는 자유가 확장되어야 한다. 한반도 전체에 국민이 주인인 자유 민주 통일 국가가 만들어지는 그날, 비로소 완전한 광복이 실현되는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가해자 일본은 봐주고 화살을 북한으로 돌린 것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평안북도, 자강도, 양강도 등에서 지난달 말 수해로 집을 잃은 어린이와 학생, 노인, 환자, 영예 군인 등을 평양으로 데려가 피해복구 기간 지낼 곳을 마련해주겠다고 밝혔다. 2024. 08.10 [조선중앙통신=연합]

 

가해자 일본엔 면죄부…화살은 북한에

'자유 통일'은 '북한 흡수통일'과 동의어

그러면서 '자유 통일' 추진을 선언했다. 다른 말로 하면 북한을 흡수통일하겠다는 공언이다. 그런 의도를 담았는지, 올해 경축사는 지난 두 차례와는 달리 처음으로 " 2600만 북한 동포"를 거론해 눈길을 끌었다.

윤 대통령은 "저는 오늘, 헌법이 대통령에게 명령한 자유민주주의 평화통일의 책무에 의거해서, 우리의 통일 비전과 통일 추진 전략을 우리 국민과 북한 주민, 그리고 국제사회에 선언하고자 한다"면서 3대 전략 △ 자유 통일을 추진할 자유의 가치관과 역량 배양 △ 북한 주민의 자유 통일에 대한 열망 촉진 △ 자유 통일 대한민국에 대한 국제적 지지 확보를 들었다. 북한 흡수통일을 추진하기 위해 국내에서 수구 극우 보수 기득권 세력을 강화하고 심리전을 통해 북한 체제를 흔들어 놓는 한편, 흡수통일을 위한 국제사회 여론을 조성해 나가겠다는 뜻이다. 대통령실에선 이를 '8·15 통일 독트린'으로 규정했다.

 

광복절인 15일 오후 자유통일당이 서울 종로구 동화면세점 인근에서 '8·15 국민혁명대회'를 열고 있다. 2024. 08.15 연합

 

흡수통일 천명하고 대화하자?…이율배반

청소년 세대, 반공·반북 교육 본격화 예고

이렇듯 '흡수통일'을 천명해놓고도 윤 대통령은 "재작년 광복절의 '담대한 구상'에서 이미 밝힌 대로 비핵화의 첫걸음만 내디뎌도 정치적, 경제적 협력을 시작할 것"이라고 약속하고, 대북 인도적 지원 계속 추진, 그리고 단절된 남북 대화를 위한 실무 차원의 '대화 협의체' 설치를 제안해 이율배반의 태도를 보였다.

특히 '자유 통일을 추진할 자유의 가치관과 역량 배양'과 관련해 윤 대통령은 "가짜 뉴스에 기반한 허위 선동과 사이비 논리는 자유 사회를 교란시키는 무서운 흉기"라며 "선동과 날조로 국민을 편 갈라 그 틈에서 이익을 누리는 데만 집착하는 이들이 우리의 앞길을 가로막는 반자유 세력, 반통일 세력"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들을 "검은 선동세력"이라고 규정짓고 특히 청년과 미래세대를 상대로 북한 흡수통일 '의식화'를 위한 "첨단 현장형 통일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뉴라이트의 친일 매국 교육에 이어 반북, 반공 교육이 본격화될 것임을 예고해준다.

작년 경축사에선 현 남북관계를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전체주의의 대결"로 규정한 뒤 국내에 "공산전체주의를 맹종하는 반국가세력"이 있고 그들은 "늘 민주주의 운동가, 인권 운동가, 진보주의 행동가로 위장"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싸워도 현 정부를 반대하고 비판하면 모두 '공산전체주의 세력'이고 '반국가세력'이란 얘기였다.

그러나 윤 정권은 출범 후 지난 2년 3개월 동안 '바이든/날리면' 발언 이후 MBC 등 비판언론 탄압과 대통령실 경호처의 '입틀막' 사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 등 야당 정치인과 노동조합 간부들에 대한 수사 등을 통해 검찰독재의 성향을 강하게 드러내면서 '자유민주주의'를 빙자한 '자유전체주의'의 본색이 들통났다.

 

일본 패전일인 15일 태평양전쟁 A급 전범이 합사된 도쿄 지요다구 야스쿠니신사에서 군복을 입은 사람들이 일본도를 들고 행진하고 있다. 2024.8.15 연합

 

일본 언론, 일제 과거사 언급 부재 주목

마이니치 "작년에 이어 일본 비판 전무"

연합뉴스에 따르면, 윤 대통령의 이날 경축사에는 '자유'라는 단어가 총 50회 등장했고, 이는 지난해 경축사 27회, 2022년 경축사 33회보다 많이 늘어났다. 뒤이어 통일(36회), 북한(32회), 국민(25회) 등이 많이 언급됐고, 대한민국(18회), 국제사회(10회), 북한 주민(10회), 인권(10회), 통일 대한민국(10회), 자유 통일(9회) 등 표현도 썼다.

당연히 일본 언론도 윤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에서 일제 과거사 언급이 없는 데 주목했다. 마이니치신문은 이날 '한국 대통령 연설에 일본 비판 없어'란 기사에서 "(한국) 대통령의 광복절 연설에서는 역사 문제 등을 둘러싼 대일 비판을 담는 사례가 많았으나 대일 관계를 중시하는 윤 대통령의 연설에서는 작년에 이어 일본 비판이 전무했다"며 "광복절 연설에서 일본과 관련한 생각을 언급하지 않은 것은 이례적"이라고 덧붙였다.

니혼게이자이신문도 '한국 대통령 광복절 연설에서 대일 관계 언급 없어'란 기사에서 윤 대통령이 "일본의 식민 지배로부터 해방을 기념하는 광복절 행사 연설에서 대일 관계나 역사 문제에 대해 직접 언급하지 않았다"라고 했고, 극우 산케이신문도 "연설의 대부분을 통일 문제에 할애, 대일 관계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없었다"고 전했다.

 

제79주년 광복절을 맞이해 항일독립선열 선양단체 연합(항단연)이 15일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 내 삼의사 묘역에서 개최한 광복절 기념식을 마친 참석자들이 독립기념관장 임명 철회 등을 요구하며 행진을 하고 있다. 2024. 08.15 연합

 

"피로 쓰인 역사를 혀로 덮을 수 없다"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최악의 경축사"

한편, 이종찬 광복회장은 이날 정부의 광복절 기념식 참가를 거부하고 별도로 진행한 기념행사에서 "최근 왜곡된 역사관이 버젓이 활개 치며, 역사를 허투루 재단하는 인사들이 역사를 다루고 교육하는 자리 전면에 등장하고 있다"라며 "준엄하게 경고한다. 피로 쓰인 역사를 혀로 논하는 역사로 덮을 수는 없으며 자주독립을 위한 선열들의 투쟁과 헌신 그리고 그 자랑스러운 성과를 폄훼하는 일은 국민들이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도 논평을 통해 "일본의 반성과 책임을 언급조차 하지 않은 최악의 경축사"라면서 "일본이 껄끄러워하는 민감한 사안에는 알아서 스스로 언급을 피했고, 북한 33회, 통일 36회를 언급하면서도 항일이라는 표현은 아예 입에 올리지도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독립기념관장 임명 문제로 사상 처음 광복회가 정부 기념식에 불참하는 초유 사태를 맞고 있지만 윤 대통령은 회피했다"며 "조국 광복을 위해 헌신한 항일독립지사에게 차마 낯을 들기 어렵고 부끄럽다"고 말했다.   < 이유 기자 >

정부기념식 거부 광복회와 야권 시민단체 등 별도 기념식 

 

제79주년 광복절인 15일 항일독립선열 선양단체 연합(항단연)이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 내 삼의사 묘역에서 개최한 광복절 기념식을 마친 참석자들이 독립기념관장 임명 철회 등을 요구하며 행진을 하고 있다. 연합

 

“독립정신은 기념만 하는 것이 아니라 계승하는 것”(역사 시민단체)

“빼앗긴 것은 찾아올 수 있지만 내어준 것은 찾을 수 없다”(역사동아리 학생들)

 

“아리(베를린 ‘평화의 소녀상’ 이름)는 이곳에 머무른다”(독일 베를린 시민들)

 

8월15일, 79년 전 이날 되찾은 빛을 잊지 않고자 나선 시민들이 저마다의 태극기를 쥔 채 거리에서 외쳤다.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규탄만큼 우리 정부의 역사 인식에 대한 우려와 비판 목소리가 크게 터져나왔다는 점만은 예년의 광복절과 달랐다.

민족문제연구소 등 64개 역사·시민사회 단체가 모인 ‘역사 왜곡을 반대하는 시민사회단체’는 15일 오후 ‘국민과 함께하는 제79주년 광복절 기념식’을 열었다. 이들은 “독립 정신은 기념만 하는 것이 아니라 계승하는 것”이라며 “우리의 행동도 독립투쟁사에 한 획을 남길 거라는 마음으로 이 자리에 모였다”고 했다. 이날 오전 광복회 등 독립운동단체가 사상 처음 정부의 공식 경축식 참석을 거부하며 별도의 기념식을 연 데 이어, 주요 역사 시민 단체들도 따로 기념식을 열기로 한 것이다.

시민 300여명은 땡볕 더위에 연신 손부채질을 하면서도 한 손엔 작은 태극기를 꼭 쥐고 “친일 관장 임명 철회” “매국 정권 규탄한다”는 구호를 외쳤다. 전북 전주에서 온 최용웅(51)씨는 “오늘 아침 케이비에스(KBS)에 기미가요가 나왔다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뉴라이트의 의도가 계속 보이는 것이 화가 나서 답답한 마음에 왔다”고 말했다.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은 2022년 9월 이배용 국가교육위원장 임명부터 지난주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임명까지 10건의 인사와 지난해 8월 독립운동가 흉상 철거시도 등 3건의 사건을 언급하며, “이것이 바로 여러분이 분노하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백범 김구 증손자인 김용만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책 ‘테러리스트 김구’가 출간된 상황을 짚고 “이런 시대착오적인 일을 시도하는 것이 뉴라이트이고 대표적인 인물인 김형석 독립기념관장이 임명됐다”며 “보수·진보의 문제가 아니라 정상과 비정상의 싸움”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기념식을 마친 시민들은 효창공원부터 대통령실 근처 삼각지역까지 “뉴라이트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임명 철회하라”는 펼침막을 앞세우고 3㎞ 정도 행진에 나섰다. 일제강점기 조선인 노동자들이 일했던 인쇄소, 만세운동을 벌였던 거리 등 독립역사와 관련된 장소가 행진하는 거리 곳곳에 있었다.

대학생역사동아리연합 소속 학생 30여명도 이날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 모여 ‘뉴라이트 인사 등용, 굴욕적 역사외교를 거부하는 대학생 기자회견’을 열어 “윤 정부의 적극적인 역사 부정, 역사 왜곡은 임기 내내 이어져 왔다”며 “육군사관학교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과 강제동원 제3자 배상안을 강행했을 뿐 아니라 국방백서 속 독도를 ‘분쟁지역’으로 표기,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를 합의하는 등 친일 행보를 보인다”며 윤정부의 역사 인식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군위안부 기림의 날,  독일에선 소녀상 지킴이 집회

14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독일 여성단체 용기의 아네 회커가 발언하고 있다. 베를린/연합
 

독일 베를린에선 ‘아리’(베를린 ‘평화의 소녀상’ 이름)를 지키기 위한 집회가 벌어졌다. 14일(현지시각)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을 맞아 250여명이 미테구와 베를린시의 소녀상 철거 방침을 규탄하고 나선 것이다. 현장에선 만삭의 일본군 ‘위안부’ 사진으로 알려진 고 박영심 할머니(2008년 별세)와 문필기(2008년 별세) 할머니를 비롯해 중국과 필리핀, 말레이시아, 대만, 네덜란드, 동티모르 등에서 2차 세계대전 당시 성폭력 피해를 입었던 여성 9명의 생애를 증언하는 시간도 마련됐다.

여성단체 ‘가브리엘라 독일’의 회원인 필리핀 출신의 캐서린 아본(39)은 “필리핀도 일본군에 의한 성노예 피해의 역사가 있다. 소녀상과 비슷한 상징물도 있었지만 일본 정부 압력으로 철거되기도 했다”며 “베를린에서 소녀상은 그 자체로 이미 모든 성폭력 피해자를 상징하고 있다. 아리를 철거하고 다른 상징물을 설치한다는 것 자체가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라고 말했다. < 김가윤 고나린 고경주 기자, 베를린/장예지 특파원 >

 

광복절 행사 사상 처음 두 동강…국회의장, 독립지사 참배- 유족 초청

 
 
윤석열 대통령이 15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79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퇴장하며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제79주년 8·15 광복절 행사가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문제를 두고 두 동강 났다. 김 관장 임명 철회를 촉구하고 있는 광복회와 야당은 정부가 주최하는 공식 경축식을 거부했다. 입법부 수장이자 국가 의전 서열 2위인 우원식 국회의장도 정부 경축식에 불참했다. 광복절 행사가 쪼개진 것은 정부 수립 이후 처음이다. 국회의장 불참도 2020년 박병석 당시 의장이 국외 순방 일정 탓에 참석할 수 없었던 걸 제외하면 전례가 없다.

정부가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연 광복절 경축식엔 윤석열 대통령 부부,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와 추경호 원내대표 등 여당 의원 50여명이 참석했다. 야당에선 허은아 개혁신당 대표가 유일하게 자리를 채웠다. 통상 기념사는 광복회장이 맡았지만, 이종찬 회장이 경축식에 불참하면서 이동일 순국선열유족회장이 대신했다. 한동훈 대표는 행사 뒤 기자들과 만나 “불참하면서 마치 나라가 갈라지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은 너무 부적절하다고 생각한다. 대단히 유감스럽다”며 불참한 우 의장과 야당을 비판했다.

같은 시각, 서울 용산구 백범김구기념관에선 광복회 등 37개 단체가 모인 독립운동단체연합, 25개 독립운동가 선양 단체가 꾸린 항일독립선열선양단체연합이 별도의 광복절 기념식을 열었다. 김 관장을 ‘뉴라이트’라 지목한 이들은, 윤 대통령이 그의 임명을 철회하지 않는 데 항의해 별도 행사 개최를 예고해왔다. 이종찬 광복회장은 기념사에서 “최근 진실에 대한 왜곡과 친일 사관에 물든 저열한 역사 인식이 판치며 우리 사회를 혼란에 빠트리고 있다”며 김 관장 임명을 거듭 비판했다.

이 자리엔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 용혜인 기본소득당 대표 등 야당 정치인 100여명도 참석했다. 박 원내대표는 “윤석열 정권이 자행 중인 ‘역사 쿠데타’로 독립 투쟁의 역사가 부정되고 대한민국 정체성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 지도부는 이날 백범기념관이 있는 효창공원의 독립운동가 묘역 참배도 했다. 조국혁신당 지도부는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윤석열 정권 굴종 외교 규탄’ 회견을 열어 김 관장 임명 철회 요구를 이어갔다.

제79주년 광복절을 맞아 우원식 국회의장이 15일 오후 서울 용산역광장에 설치된 강제동원 노동자상에 헌화한 뒤 동상을 닦아주고 있다. [연합]
 

전날 밤늦게 “독립운동을 왜곡하고 역사를 폄훼하는 광복절 경축식에는 참석하지 않겠다”고 밝힌 우원식 국회의장은 이날 광복회 기념식에도 불참했다. 그 대신 우 의장은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아 독립지사 묘역에 참배한 뒤, 독립운동가 후손들을 국회로 초청해 오찬을 했다. 의열단 김한 선생의 외손자로 한-일 역사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해온 만큼, 정부의 역사 인식에 반대 뜻을 분명히 하면서도 입법부 수장으로 갈등 자체를 정쟁화하지 않으려는 태도를 보인 것으로 풀이된다.

 
 
‘역사왜곡을 반대하는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15일 오후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에서 ‘국민과 함께하는 제79주년 광복절 기념식’을 한 뒤 ‘친일 뉴라이트 논란’이 있는 김형석 독립기념관장의 임명 철회를 촉구하며 대통령실을 향해 행진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김 관장 임명에 문제가 없다고 보는 대통령실은 “일각에서 주장하는 반쪽 행사라는 표현은 잘못됐다”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독립운동과 광복의 주체가 광복회 혼자만이 아니다. 특정 단체가 인사 불만을 핑계로 빠졌다고 광복절 행사가 훼손된다고 보지 않는다”며 이렇게 말했다.

한편, 강원도 광복절 경축식에선 김진태 강원지사가 “궤변으로 1948년 건국을 극구 부인하면서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훼손하고 있다”고 말해, 김문덕 광복회 강원도 지부장이 거세게 항의하고 퇴장하는 등 파행이 빚어졌다.                                               < 손현수 이우연 장나래 박수혁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