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선미 곳곳 변형 드러나
침몰 당시 충격 선미 2~3m 함몰
인양·이송 때 불균형 탓일수도
객실 육지방향 못돌리고 놔두기로

부두 위 세월호 빠르게 녹슬 위험
선체 내부수색 일주일 뒤에야 가능


3년만에 뭍으로 돌아온 세월호는 더는 나아갈 수 없을 만큼 약해져 있었다. 세월호는 침몰·인양·이동 과정에서 발생한 선체 변형이 확인되면서 애초 거치 장소로 옮겨지지 못하고 바다 쪽 40m 지점에서 험난했던 여정을 마무리했다.

해양수산부와 선체조사위원회는 10일 “세월호를 목포신항 철재부두로 끌어올려 이동하면서 선체가 휘어지거나 뒤틀리는 등 변형을 확인했다. 이 상태로 계속 이동할 경우 선체가 추가로 변형될 우려가 있고, 안전성을 확보하기 어려워 현재 위치에 그대로 거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세월호 선체는 선미 쪽이 부두 안벽에서 육지 쪽으로 40m 들어온 상태로 거치된다. 바다에서 수직 방향으로 누운 채 객실은 북쪽, 선저는 남쪽을 향한 자세다. 애초 선체 각도를 틀어 객실을 육지 방향으로 돌리려 했지만 추가 변형을 우려해 바다에서 끌어올린 방향 그대로 두기로 했다.

해양수산부는 11일 오전 9시까지 육상 거치 작업을 완료할 예정이다. 육상 거치는 세월호를 받치고 있는 8줄의 모듈 트랜스포터 사이로 길이 110m 짜리 받침대 3개를 밀어 넣어 선체를 지탱한 뒤, 모듈 트랜스포터의 높이를 조절해 빼내면 완료된다.

해양수산부는 변형 지점을 두고 “선체 중간에서 선미 쪽으로 휘어짐(트위스팅) 현상과 선수부터 선미까지의 구부러짐(벤딩) 현상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작업팀은 선체 이동에 투입된 모듈 트랜스포터 600대의 유압잭을 활용해 선체 높이를 일일이 측정해왔다. 이날은 작업팀이 이동 작업 직전 육안으로도 선체 변형을 확인해 추가 이동이 위험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실제로 이동 중인 선체를 보면, 선수 쪽은 덜 기울어진 반면, 다인실 등 객실이 밀집해 있고 증·개축이 많이 이뤄졌던 선미 쪽은 더 많이 기울어져 있는 상태다.

세월호 변형의 구체적인 원인은 향후 선체 조사를 해야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세월호가 최초 침몰하는 과정에서 해저면에 충돌해 선미가 2~3m 함몰됐고, 이 과정에서 충격을 받아 선체가 변형됐을 가능성이 있다. 또 침몰했던 해저 면에서 이격되거나 반잠수식 운반선에 실리는 순간에도 선체에 압력이 가해졌을 수 있다. 반잠수식 운반선에서 평형수를 조절하며 부두로 양육하거나 높낮이가 미세하게 차이 나는 부두의 평탄면을 이동하는 과정에서도 균형이 맞지 않아 휘어지거나 비틀어졌을 수 있다. 이철조 해양수산부 세월호 현장수습본부장은 “선체 변형은 매우 복합적인 원인이 있을 수 있다. 약해진 선체 상태가 가장 중요하지만 한 부분만 단정하는 것은 위험하다. 이미 반잠수식 운반선에 선박에 거치된 상태에서도 어느 정도 변형이 있었다고 추론해왔다”고 밝혔다. 해양수산부도 “선체가 침몰할 때 충격이 컸고, 물속에 3년 동안 잠겨있다 보니 선체 자체가 워낙 약해져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다보니 인양하거나 이동하는 과정에서 변형이 일어났고, 끝내 영국의 컨설팅업체들도 더는 이동할 수 없는 것으로 판단했다”고 확인했다. 4·16 가족 협의회와 미수습자 가족들은 “선체를 훼손하지 않아야 하고, 작업자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받아들였다.

세월호 참사 1090일째인 10일 오전 전남 목포시 목포신항 철재 부두 트랜스포터 위로 거치된 세월호 곳곳에 변형 또는 훼손된 흔적이 보인다.


선체가 뭍으로 올라오면서 미수습자 수색과 사고원인 조사 등이 이어진다. 이런 작업은 선체가 가뜩이나 약해진 데다 빠르게 녹이 슬면서 시간과의 싸움이 예상된다.

선체 내부 수색은 1주일 뒤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먼저 부식을 막기 위해 선체 외부를 세척하고, 질병을 예방하는 선체 내부의 방역을 진행한다. 이어 내부로 진입해 산소농도, 유해가스 등을 조사하는 위해도 조사와 내부 철판 두께 등을 재는 안전도 검사를 펼친다. 이 기간에 선체에 진입하기 위해 작업 난간(워킹 타워)과 통로 비계 등을 설치하는 작업을 아울러 추진한다.

해양수산부는 “사전작업이 끝나고 진입로를 확보하면 세부적인 수색계획을 세우겠다. 이번 주말이나 다음 주 초까지 마련해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인양 작업이 사실상 완료되면서 선체조사위원회의 발걸음도 바빠졌다. 김창준 선체조사위원장은 “현재 위치 거치가 자문을 제대로 받았는지도 검증하겠다. 하지만 거치 방향이 미수습자 수색과 사고원인 조사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객실을 육지 방향으로 틀겠다는 목적은 작업 상황을 투명하게 공개해 불신을 털어내려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선체조사위는 지난 7일부터 사흘째 영국 감정기관 ‘브룩스 벨’을 통해 선체 외관을 검증했다. 앞으로 금속·기계 분야 전문가들의 감정도 받기로 했다. 선체에서 수거된 진흙 251㎥이 굳기 전에 세척해 유류품을 찾는 작업도 2~3일 안에 할 수 있도록 제안하기로 했다.

<목포/안관옥 황금비 기자, 세종/방준호>


[한마당] 끝이 좋아야 아름답다

● 칼럼 2017. 4. 4. 20:28 Posted by SisaHan

끝이 좋아야 아름답고 귀하다. 끝이 좋으면 모든 게 좋아 보인다.
글의 서두를 이렇게 시작하면 벌써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 아니면 누군가를 떠올리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요즘 끝이 안좋은 모습들로 인해 장삼이사들의 입길에 오르내리며 세인의 지탄을 받거나 가슴 아프게 하는 이들이 한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국민을 하늘처럼 받들며 잘 섬기겠다고 약속했던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에 그치지 않고 이제 감옥문 앞에 서있다. 그녀의 추락은 열렬한 국민적 지지와 신뢰를 배신한 업보요 스스로 무덤을 판 것이라고 아니 할 수 없다. 국가적으로 재연돼서는 안될 오욕이기도 하지만, 인간적으로도 최고 권좌에서 하루 아침에 급전직하했으니 그야말로 서글픈 일이다. 무엇보다 철권통치 끝에 비명에 간 독재자 아버지의 비참한 권력말로에서 교훈을 얻기는커녕 그대로 전철을 밟아간 어리석은 권력자의 뒤끝에 깊은 연민과 안타까움이 남는다.

얼마 전 퇴임한 버락 오바마 전 미국대통령은 8년간 재임했다. 그가 역대 대통령 가운데 퇴임 직전 지지율이 가장 높았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그의 인기가 얼마나 좋았으면 대선 경선이 진행 중인 프랑스에서 대통령으로 추대하자는 호사가들의 제언이 나왔겠는가.
그의 인기를 논하기에 앞서 눈여겨 볼 대목이 있다. 취임 당시 사진과 퇴임 때 사진을 비교해 보면 왜 오바마의 퇴장을 아쉬워하며 그에게 박수를 보내는지를 짐작할 수가 있다. 그 사이 주름살이 깊어진 얼굴, 하얗게 센 머리가 눈에 띈다. 재임 중 시달리고 고심했던 노고를 그의 풍모에서 읽을 수가 있는 것이다. 그의 노고가 비선들에 둘러싸여 권력을 농단하느라 그랬다면 그런 인기가 나왔을까. 국가기강을 무너뜨리고 공직 시스템을 파괴하느라, 또한 헌정질서를 짓밟느라 그랬다면 박수 속에 퇴장할 수가 있었겠느냐는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으로 존경을 받았던 우루과이의 호세 무히카 대통령도 퇴임 때 65%의 지지율을 보인 것으로 유명하다. 당선될 때의 52% 지지도가 5년 후 퇴임 때 훨씬 높아진 것이다. 그는 대통령궁을 노숙자 쉼터로 내주고 대신 수도 몬테비데오 근교의 아내 소유 농장에 거주했다. 집에는 두 명의 경호경찰과 개 한 마리 뿐이었다고 한다. 재산목록은 농기구 몇 개와 트랙터, 그리고 낡은 자동차 한 대였다. 그는 퇴임 후에도 아내와 농사를 지으며 연금의 90%를 기부한다고 한다. 무욕(無慾)의 헌신봉사가 그의 삶에는 큰 축복으로 임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우리의 그녀는 전임 장사치 대통령의 잘못을 답습하며 재임기간 하루도 국민을 편하게 해준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가 떠나니 세월호가 올라왔다는 말은 얼마나 의미심장한 국민들의 탄식인가.


그는 4년 동안에 얼굴의 주름살이 없어지고 훨씬 ‘젊어지고 예뻐져서’ 청와대를 나왔다. 거꾸로 나라는 정치·경제·외교·문화 할 것 없이 망가지고 갈라지고 삭막해져서 어디 한구석 성한 데가 없게 됐다. 나라와 국민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용모와 비선과의 희희낙낙에 노심초사했다는 이야기 밖에 달리 설명할 재료가 없다.
멋진 영화는 마지막 장면이 오래도록 뇌리에 남는다. 유명 소설은 지루한 전개에도 불구하고 결말에서 극적인 반전으로 독자에게 감명을 주는 경우가 많다. 경기 초반에 지지부진 했어도 9회말 공격에서 끝내기 홈런으로 승부를 결정짓는 짜릿한 맛에 ‘야구는 9회말’이라는 조어도 회자된다.
유종의 미(有終之美), 곧 끝이 좋다, 좋아야 한다는 말이다. 끝이 좋음으로 이전의 모든 것이 좋아질 수 있다는 뜻 또한 담겨있다.
 
사람에게 특히 끝이 좋아야 함은 물론이다. 젊어서 철없이 굴며 부화방탕했어도 참회하여 진중하고 고매한 모습으로 노후를 맞는다면 그의 삶은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아무리 천하를 호령한 영웅호걸이라 해도 말년이 볼썽 사나우면 삶 전체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손가락질 당하기 십상이다. 성경을 보아도 지혜로운 군주의 대명사인 솔로몬 왕은 하나님의 계율을 어기고 여자와 우상에 빠져 말년을 망치고 말았다. 그러나 살인자였던 모세는 출애굽의 민족적 지도자가 되었으며, ‘죄인 중의 괴수’라고 자평했던 바울은 위대한 사도가 되었다. 그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라고 인생을 돌아보며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어 있다“고 유종의 아름다운 삶을 기쁨으로 확신했다.


‘헛되고 헛되도다’는 성경의 준엄한 가르침에도 아랑곳없이 최근 ‘변칙세습’으로 추한 말년을 보인 어느 대형교회 목회자의 모습은 많은 성도들과 한국교회에 실망을 안겨준다.
교회 밖 속세라고 다를 바 없다. 정치 사회의 큰 인물들이 부끄럽고 허망한 말로로 사람들에게 안겨주는 낙담과 원성은 국민들과 나라에 두고두고 오랜 상흔으로 남게 마련이다.


< 김종천 편집인 >


[칼럼] 토론형 대통령

● 칼럼 2017. 4. 4. 20:27 Posted by SisaHan

대통령은 잠시 국가를 경영하는 임시직 공무원이다. 그 임시직 공무원은 모든 것을 알 수도, 할 수도 없다. 따라서 그는 적재적소에 인물을 기용하는 인재경영, 다양한 의견을 바탕으로 정책을 실행하는 지식경영, 그리고 능력 있는 인재들이 제도를 통해 스스로 일하게 만드는 시스템 경영으로 국가를 운영해야 한다. 박근혜는 이 모두에서 철저히 실패했다. 그는 폐쇄적으로 국가를 경영하며, 민주주의의 열린 토론문화를 짓밟아 국정을 농단했다. 그래서 다음 대통령의 자격은 다시 소통이다. 소통의 방식은 토론이어야 한다. 토론의 문화는 심지어 조선에서도 찾을 수 있다.


세종은 훌륭한 지도자였다. 그에겐 정적이 제거된 기반 위에서 즉위할 수 있었던 천운이 따랐다. 하지만 천운만으론 그 재임 기간 중 펼쳐진 엄청난 편찬사업과 제도의 정비를 설명할 수 없다. 그 성공의 배경엔 군신 간의 토론문화와 백성에 대한 공감능력이 있다. 세종은 즉위 3일 만에 “내가 인물을 잘 알지 못하니, 신하들과 함께 의논하여 벼슬을 제수하겠다”고 물었다. 그는 언제나 신하들에게 발언 기회를 최대한 많이 주고 경청하는 에토스를 보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학에서, 토론에 승리하는 첫 번째 요소로 에토스를 꼽았다. 에토스는 토론자의 품성을 드러내어 승리하게 한다.
세종은 침묵과 대세를 추종하는 신하들의 회의 분위기를 바꾸고 싶어 했다. 그는 임금의 옷이라도 붙잡아 간언하는 신하를 원했다. 그래야 정책의 잘못을 바로잡을 길이 생긴다. 국왕의 잘못을 바로잡으려다 삼족이 멸할지도 모른다는 신하들의 두려움을 깨기 위해, 그는 스스로 계단을 내려와 왕의 부족함을 노출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토론자와 청중 사이의 정서적 공감대로 삼은 파토스의 실천이다.


세종의 공감능력은 신분을 뛰어넘는다. 그는 1429년 <농사직설>을 편찬해 삼남 지방에 선진적인 농업기술을 보급했다. 그가 즉위 초기에 내린 권농교서는 “나라는 백성을 근본으로 삼고, 백성은 먹는 것을 하늘로 삼는다”는 유학의 래디컬함이 녹아 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1433년에는 <향약집성방>을 편찬해 조선의 향의약학을 정리했고, 1446년엔 최만리 등의 반론을 설득해 훈민정음을 반포했다. 이 사건들이 우리 문화의 경로를 바꿨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토론의 마지막 요소에 로고스를 넣었다. 주장의 논리적 측면, 즉 가장 중요한 근거를 로고스가 담당한다. 세종의 로고스는 집현전 학자들로부터 나왔다. 집현전은 도서의 수집과 편찬, 국왕과의 토론 및 자문, 세자와 초계문신의 교육을 담당하는 싱크탱크였다. 세종은 집현전 학자들에게 실질적인 권한과 연구의 자유를 주어 다양한 정책을 토론에 부쳤다. 정치 엘리트로 성장한 집현전 학자들은 세종과 함께 22분야 350여종의 책을 편찬했고, 그 편찬의 결과는 조선의 궤도를 수정한다.


대통령은 지식경영자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젊고 새로운 싱크탱크와 함께해야 한다. 혼자 결정하려 해서는 안 된다. 모든 정책은 토론으로 정교해져야 하고, 모든 일의 배후엔 신음하는 사람들에 공감하는 정서가 배어 있어야 한다. 대본이 없으면 대중 앞에 서지도 못했던 대통령, 자신 때문에 시위 도중 사망한 국민에게 미안하다는 말도 하지 않는 그런 대통령을 탄핵한 우리 국민은, 끊임없는 토론과 정서의 공감대로 무장한 대통령을 원한다. 행정수도의 이름은 세종이다. 적어도 다음 대통령은 세종보다 나은 시대에 산다. 그래도 더 나은 지도자가 되지 못한다면, 그건 권력을 지닌 그의 잘못이다.

< 김우재 - 초파리 유전학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