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학교 창립 20주년 기념 축하행사에 참석한 해외 각지역 대표들.


15주 어머니학교 함께 50개국 참석 ‘비전2015’ 열어

두란노아버지학교(이사장 이철 목사)가 창립 20주년을 맞아 지난 10일 양재동 횃불선교센터에서 해외50개국 대표들도 참석한 가운데 축하행사 ‘비전 2015’를 개최했다.

아울러 창립 15주년을 맞은 두란노어머니학교와 ‘감사로 여는 새로운 미래’라는 주제 아래 새로운 도약을 향한 비전을 선포하고 축하공연을 진행했다. 이날 행사가 열린 양재 온누리교회 사랑홀은 국내외에서 참석한 아버지·어머니들로 수천 석의 성전이 가득 찼다.
두란노아버지학교는 올바른 아버지상을 정립, 아버지의 권위를 회복시키고 가정을 잘 이끄는 아버지가 되도록 돕기 위해 고 하용조 목사의 주도아래 설립된 단체다. 오늘날 우리 사회 문제는 가정의 문제에서 출발하고 가정의 문제는 바로 아버지의 문제라는 인식에서 출범했다.


1995년 개설 당시, 교회 안에 개설돼 참석자가 주로 기독교인들이었지만 IMF 외환위기 이후 사회에 널리 알려지면서 기업, 관공서, 군부대, 교도소 등으로 퍼져나가 일반인들의 참석률이 급증했다. 2004년부터는 일반인들을 위해 기독교 색채를 배제한 열린아버지학교도 활발하게 운영하고 있으며 청소년, 미혼 장병을 위한 프로그램도 활발하게 열고 있다.

또한, 2002년 시작한 해외 아버지학교는 현재 언어권별로 영어, 중국어, 일본어, 러시아어, 인도네시아어, 스페인어 등 캐나다를 포함한 전 세계 20여 개국에서 한인 및 외국인아버지들을 위해 열리고 있다. 개설 이후 29만 명이 넘는 아버지들이 다녀갔으며, 지난 12월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 아버지학교까지 포함 개최국만 61개국이다.


캐나다의 경우 토론토 두란노아버지학교 운영본부(현 운영위원장 조충호 디모데장로교회 장로)가 구성돼 2003년 토론토 한인장로교회에서 1기를 개설한 것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24기, 어머니학교는 12기를 진행하며 수료자수만 해도 1천2백명에 달한다. 몬트리올과 세인트 존, 위니펙 등과 미국 디트로이트 등지까지 아웃리치 강좌를 여는 등 국제적인 모범지역으로 활동 중이다.
아버지학교에서 아버지를 강조하는 것은 강좌 때 구호대로 ‘아버지가 바로 서야 가정이 바로 서고, 가정이 바로 서야 사회가 바로 서며, 사회가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는 데 있다. 이를 위해 남성의 진정한 정체성은 아버지, 좋은 아버지가 되는 것에 있다는 것을 강조하며 가정에서 아버지이 사명과 정체성 회복으로 존경받는 아버지가 되는 훈련을 하는 데 중점을 두고 활동하고 있다.



[1500자 칼럼] 다른 생각

● 칼럼 2015. 1. 16. 19:38 Posted by SisaHan

오래 전 이야기지만 여기 처음 이민 와서 학교를 다닐 때, 한국학생들과 캠핑을 간 적이 있었다. 그 중 아직도 기억에 남는 프로그램 하나가 있다. 토론을 하는 순서였는데, 토론이라고 하면 나는 어떤 주제를 가지고 찬반으로 두팀으로 갈라져 논쟁을 벌이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시작하기 전에 한 주제에 찬성하는 사람과 반대하는 사람을 물었고 앞에 나가서 몇 사람이 대표로 토론을 하고, 나중에 다시 찬반을 묻는다는 것이었다. 얼마나 찬성과 반대가 바뀌느냐로 토론의 결과를 묻는 것이었다. 그러니 앞에 나와 토론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지지자가 몇 명 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토론 과정을 걸쳐 몇명의 반대자를, 다시 말해 자기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설득하느냐가 문제였다. 그 이전의 내가 알고 있는 한국에서의 토론은 나중에 찬성과 반대를 손들게 하여, 다수결인 쪽이 토론에 이기는 것이었다. 누가 토론 과정을 거쳐 생각이 바뀌었다는 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많은 사람이 지지하는 생각, 그것은 무조건 옳은 것이었다. 그리고 소수 반대되는 생각을 가진 사람도 그 다수결에 따라야만 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대다수의 의견에 반대를 표시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떤 이들은 무얼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눈치 보다가 남 따라 손들기도 했다. 무슨 대단한 정책을 결정하거나 그런 일이 아닌, 어쩌면 형식적인 학교내의 토론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눈에 트이는 행동을 한다는 것은 왠지 불편한 일이었다.

이런 토론 방법의 실질적인 효과를 위해서는 중요한 것이 있었다. 무엇보다 열린 마음으로, 상대방의, 자기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의 의견을 듣는 것이다. 그런 마음이 없다면 사실 이런 토론은 하나마나 한 것 이었다. 한국의 전통 문화에서는 자신의 생각을 남의 말을 듣고 바꾸는 것을 좋지 않게 생각한다. 어렸을 때부터 받은 교육자체가 그랬다. 한번 품은 뜻이나 가진 생각을 죽을 때까지 가지고 있는 것이 미덕이라고 은연중 가르치기도 했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는 얼마나 남의 의견을 마음 문을 열고 들을 준비가 되어있고, 또 다른 의견이 옳다면 그것을 인정하고 내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 그러기 보다는 자기 듣고 싶은 말만 들으려 하고, 자기 편한대로 해석하고, 상대방의 이야기는 말꼬리 하나라도 붙들고 물어 뜯으려 하지 않는가? 자기 생각이 옳음을 증명하기 위하여… 이런 상황이라면 토론은 단지 말싸움뿐 일 것이다. 만약에 토론이 끝난 뒤에 자신의 생각이 바뀌었으면 이를 솔직히 인정해야 한다. 그 또한 한국사회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라 생각한다. 과장된 말이지만 같은 편을 버리고 반대편에 서는 게 되어, 배를 갈아타는 것으로 간주되어 일종의 배신행위가 되는 셈이기 때문이다.
만약에 이것도 싫고 저것도 싫다고 한다 해도 따돌림 받기 십상이다. 대부분의 토론 자체가 하나를 선택하게, 사실은 대다수의 의견을 따르게 만들었다.

내가 지난 해 오래 전의 토론을 종종 생각했던 이유는 인터넷을 통해 만난 한국사회 때문이었다. 같은 한국 내에서도 무슨 사건이 터질 때마다 보수와 진보의 대립이 심하게 드러났다. 누구나 말 할 수 있고 때로는 가명을 사용할 수 있다는 인터넷 특성 때문에 싸움은 더 치열했고 비난의 도가 지나치는 경우도 많았다. 단식투쟁을 하는 사람 앞에서 일부로 먹는 모습을 보여주는 극단적인 경우도 있었다. 서로 생각이 다르더라도 상대방의 입장을 존중해주는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는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똑 같은 사건을 놓고 보면서도 지극히 극한적인 대립을 하며 양자 간 한 치의 타협도 없었다.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하는 것은 고사하고 말도 들으려 하지 않았고 적대적인 감정만 보여주었다. 다른 사람의 다른 생각이란 존재도 없었다. 오로지 자기 생각만 옳은 것이었다.


나 자신은 어느 쪽인가 한 번 생각해보았다. 여기 사람들이 보기에는 분명 나는 보수다. 사회적인 이슈에 내가 서있는 쪽은 분명 옛날 생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 사람이 보기에는 진보로 보일 것이다. 요즘 한국에서도 문제가 되기 시작한 이슈들에 비교적 관대한 생각을 가지고 있고 앞서 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당연한 이유가 소수자의 문제나 동성애 같은 이슈는 여기서는 오래 전에 사회적인 이슈로 거쳐 간 일들이기 때문이다. 오랜 캐나다 생활 때문에 한국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나는 알게 모르게 변한 셈이다. 정치 문제도 여기가 선진국이라서가 아니라, 미국과 같은 자본주의, 민주주의 국가이면서도 캐나다는 사회주의적인 성격도 가진 나라다. 그리고 글을 쓰는 사람은 자유스러운 혼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개인적으로 믿고 있다. 그리하여 표현의 자유를 누구보다 굳게 믿고 있다. 물론 생각을 그렇게 하고 있다는 말이지 실천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다.

나는 개인적인 성격 탓이겠지만 한쪽만 있는 사회를 건전하다고 바람직하다고 보지 않는다. 보수가 중심을 잡고 진보가 앞으로 나가는 그런 사회가 이상적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보수가 있기에 진보가 있다고, 그러므로 서로 싸워 상대방을 없애려 하기보다 함께 가는 사회여야 한다고…. 지금 20대는 60대를 향해 보수라 부르지만 그들이 60대가 됐을 때 20대에게 같은 말을 듣지 않을까? 결국 오늘의 진보는 내일의 보수인 셈이다.
마치 사람의 두 눈과 같지 않을까? 젊은 날 내가 제일 좋아했던 가수, 죤 바에즈가 한 말이 생각난다. “우리는 세상을 두 눈으로 보아야 한다. 왼쪽 눈, 오른쪽 눈, 하나로가 아니라…”

< 박성민 - 소설가, 캐나다 한인문인협회 회원 / 동포문학상 시·소설 부문 수상 >



[한마당] 지도자 철학

● 칼럼 2015. 1. 16. 19:36 Posted by SisaHan

사회부 기자 초년병 시절이었다. 당시 사회부는 행정관서와 법조·사법기관들을 담당하며 주로 사회면 기사를 만들어 냈다. A부장은 항상 행정적인 정책기사에 관심이 많아 부하기자들이 쓴 기사들 가운데 대형 개발계획이나 행정조치들, 시민들의 민원대응 등이 톱기사가 되고 크게 다뤄졌다. 그 뒤의 후임 L부장은 사건에 비중을 두어 공무원 비위나 독직사건, 경찰의 강력사건 수사, 법원의 판결 등이 톱으로 오를 때가 많았다. 취재방식도 서로 달랐다. 술 잘하고 능글맞은 A부장은 공무원들을 자주만나며 서류를 열심히 뒤지면 큰 기사가 나온다고 강조했고, 대쪽같던 L부장은 현장을 많이 뛰라, 경찰서와 병원 같은 일선에 기사가 널려있다며 밤낮 발로 뛰라고 지시했다. 전임과 후임의 기호와 성품, 판단기준에 따라 신문의 사회면 색깔이 확 달라졌다.


앞서 대학 1학년 때 산악반 활동을 한 적이 있다. 산을 좋아하는 학생들 50여명이 모인 동아리인지라 어떤 학생들은 워킹, 즉 순수한 등산을 선호하고, 어떤 학생들은 바위를 기어오르는 암벽등반을 더 좋아했다. 공교롭게도 1년에 회장이 2번 바뀌면서 한동안은 주말마다 일사불란한 대열을 지어 산릉을 누벼야 했다. 그러더니 그 다음 한동안은 인수봉과 백운대, 만경대의 아찔한 암벽에 붙어살아야 했다. 주장이 산능선을 타면 수없이 걸어야 했고, 암벽을 즐기는 사람이면 대원들도 어쩔 수 없이 맨손이든 주렁주렁 인공등반 장비를 매달고든 바위를 기어올라야 했다. 당연히 암벽을 즐기는 대원들은 능선과 계곡을 걸으며 투덜거리고, 암벽의 공포를 싫어하는 아이들은 바위에서 추락의 위기를 감내하며 오그라드는 손발로 선배 뒤를 따르는 고통을 겪어야 했다. 주장이 암벽으로 끌고다닐 때 동아리 회원이 크게 줄어든 것은 물론이다.


작은 그룹들만 지도자의 취향과 방향설정에 따라 모임의 성격과 목표와 결과가 달라지는가. 아니다. 시민-사회단체나 대기업 혹은 자치단체도, 더 나아가 나라의 국정진로도, 지도자 한 사람으로 인해 바뀌고 성패가 좌우되는 것은 오십보백보다. 지도자의 역량과 소양, 철학에 의해 조직이 나아갈 방향이 바뀌고 살아남거나 패망하기도 한다.
기업오너의 판단착오가 장수하던 기업을 하루아침에 몰락시킨 사례는 많다. 역사적으로 볼 때 히틀러가 나치독일을, 파시스트 무솔리니가 이태리를, 일제 히로히토가 아시아 수천만 민중을 핍박과 참살의 고통을 겪게하고 패망한 것은 인애(仁愛)를 모르는 비정과, 무개념·철학부재 지도자의 만용과 탐욕의 대표적 사례들이다.


기본적으로 시스템이 작동하는 근대 행정기관이나 국가조직은 단 한 사람의 지도자에 의해 크게 방향을 튼다고 할 수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 한 사람의 독선에 의해 파멸로 치달은 경우는 독재국가나 왕정시대 독재자·군주의 전횡에 의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북한정권을 늘 불안하게 여기는 것도 단 한사람에 의해 움직이기 때문이다. 현대의 정상적인 선진 민주주의 국가라면 지도자 한사람에 의해 나라가 좌로 혹은 우로 엄청나게 흔들리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지도자가 중요하고 막강한 것은, 지도자가 끌고가는 국정의 방향과 철학에 따라 국운의 부침이 있고, 국민 삶이 지대한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모국에서 대통령의 신년회견이 끝나자 마자 온통 들끓고 있다. 민심과는 전혀 동떨어진 마이웨이 연설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하나만 예를 들면, 그의 당선을 도왔던 한 교수는 “책임질 줄 모르는 졸렬함, 국민이 아닌 자신만 보고 가겠다는 태도로 민주국가에선 보기 어려운, 세계에는 없는 현상”이라고 힐난했다. 마치 왕정국가처럼 제왕적인 권력을 누리면서 책임은 모두 부하들이나 제도 탓으로 돌리는 전근대적 행태와 유체이탈 철학에, 지지율이 자꾸 떨어지는 것을 보면 국민들도 피곤하고 염증이 인다는 얘기다.


중국의 위대한 사상가인 노자는 “백성들이 두려워하는 임금 보다 못한 것은 업신여기고 멸시하는 임금”이라며 백성의 신의를 중시했다, 국정은 난맥의 연속이고 뚜렷한 비전도 없으니, 신뢰를 접고 업수히 여길 정도가 되면 나라와 국민에게 더 이상 불행한 일이 없다. 지도자의 가장 중요한 자질은 모름지기 군림이 아닌 섬김의 자세, 자신을 희생할 줄 아는 철학의 소유자다. 그런 모습이 전혀 안보이고 오직 자기중심에 빠져 옳다고만 우기니 답답할 수 밖에.
두 달여 지나면 이곳 작은 한인사회도 회장을 뽑는다며 벌써부터 서두는 출마자들이 있다. 겨우 1천명 안팎의 지지로 당선되어 한인회 일을 하게 된다지만, 그들도 지도자라면 어엿한 지도자가 된다. 그런데 그들은 과연 동포들을 위한 섬김의 철학이 있는 것일까.


한인회장 자리를 대단한 권력과 감투라고 여겨 욕심을 내는 것은 아닌가. 자신을 희생하며 비전을 열어가겠다는 소신과 철학 따위 아랑 곳 없이, 얼굴 세우고 관변 대우받는 우쭐함에, 10만명이 넘는 동포사회 대표랍시고 거드름을 피워 볼 저급한 생각이라면 한인사회 먹칠이요 동포들 한탄만 늘어날 터이니 아예 조용히 주저앉는 게 낫지 않을까.
자만과 아집에 빠진 이들에게 아무리 외쳐본 들 ‘쇠귀에 경 읽기’요, 제 나르시즘 철학이 최고라고 여길 테니, 입만 아프고 속터지는 일이기는 마찬가지지만….


< 김종천 편집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