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금융시장 변동과 투자전략

● Biz 칼럼 2016. 2. 20. 20:31 Posted by SisaHan

이슈는 미국 금리인상과 중국 경제 둔화… 장기관점 투자계획을

새해 벽두부터 세계 금융시장은 커다란 변동을 보이고 있다. 전세계 주식시장은 근래 볼 수 없었던 커다란 하락세를 나타냈고, 중국의 주가와 유가는 무려 20%정도나 급격하게 폭락하였다. 특히 유가 급락과 루니화 가치 하락으로 가장 큰 영향을 받은 캐나다 은퇴자나 예비은퇴자들이 지난 금융위기와 같은 커다란 혼란이 오지 않을 까 하고 걱정을 많이 하는것 같아 현재 투자시장을 점검해 보고 향후 바람직한 자산관리를 위한 투자전략에 대해 알아본다.


지난 해에는 미국의 금리인상과 유가하락이 커다란 이슈였다면 금년에는 중국의 환율정책과 중국경제에 대한 불확실성이 가장 큰 현안 이슈가 되고 있다. 중국정부는 최근 경제성장세가 둔화되는 조짐이 나타나자 경제를 부양하기 위한 조치로서 연초부터 여러차례 환율을 절하함에 따라 불안을 느낀 해외투자자들이 중국기업이나 중국에서 활동하는 해외기업의 주식을 투매함으로 전세계 주가하락으로 이어졌다. 캐나다 주가는 지난 해 4월 이후 20%정도 하락한 상태에 있고, 캐나다 달러는 지난 2013년이후 폭락하여 미화 1달러는 현재 1.40 캐나다 달러로 40%나 올랐다. 유가도 중국 등 세계 수요 감소와 미 달러 강세로 지난 1년 6개월 사이 70%나 폭락하였다.


현재의 상황이 과연 지난 금융위기들과 같은 상황일 까? 현재 세계 경제의 가장 큰 주요 이슈는 미국의 금리인상과 중국 경제의 성장둔화라고 생각된다. 미국의 금리인상은 미국 경제가 좋아지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할 수 있다. 중국 경제는 과거 20여년간 10%수준의 높은 성장세를 지속하였지만 최근에는 7%수준으로 둔화되었으나 여전히 높은 성장률이다. 중국정부는 앞으로도 계획한 성장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다양한 경기부양정책들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경제는 살아있는 생명체와 같이 항상 순환하는데, 유가, 달러, 부동산, 주식 등 모든 자산도 한쪽 방향으로만 계속해서 오르거나 내리지 않고, 일정한 범위 내에서 자동적으로 조절되는 경향을 보인다. 유가, 캐나다 주가 및 루니화는 최근 급격히 하락세를 보였기 때문에 예상보다 빨리 회복세를 보일 수 있고, 그간 조정 없이 크게 올랐던 미국 주가, 부동산 등은 큰 폭의 추가상승을 하기 전에 조정이 이루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이상에서 본 주요 경제이슈들은 과거 금융위기와 같이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위험으로는 보이지 않고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는 것들이다. 따라서 투자자산관리면에서 이러한 상황을 역으로 잘 이용할 수 있다면 위기를 기회로 활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투자의 기본은 분산투자이고, Buy Low, Sell High이며, 투자위험을 관리하는 수단들을 잘 활용한다면 좀더 안전하게 자산증식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최근 가격이 많이 오른 것만 따라가지 말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투자계획을 세우고 목적에 합당한 투자포프폴리오를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현재 보유 자산중 최근 크게 오른 부동산이나 US달러 등 특정한 분야나 국가의 자산이 너무 많다면 비쌀 때 팔아 수익을 남기고 향후 투자수익잠재력이 높은 대상에 분산 투자하여 비중을 조정할 좋은 기회라고 생각된다.

< 김경태 - 은퇴투자 상담사, Maxfin 증권·보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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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려가 있다고 말한 것…오해와 논란 일으켜 송구”

홍용표 통일부 장관은 15일 개성공단 자금이 핵과 미사일 개발에 유입된 정황이 있다고 한 발언에 대해 ”자금이 들어간 증거자료를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와전된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홍 장관은 이날 국회 외교통일위 긴급 현안보고에서 ”자금 유입의 증거를 제시하라“는 더불어민주당 정세균 의원의 질의에 ”여러 경로를 통해서 보니까 개성공단에 들어가는 자금의 70% 정도가 당 서기실, 39호실로 들어간다고 생각하고, 그에 대한 우려가 있다고 말한 것“이라면서 이같이 밝혔다.

홍 장관은 ”증거 자료가 있는 것처럼 나왔는데 제가 근거 자료를 공개하기 힘들다고 한 적도 없다“면서 ”설명이 충분치 못해 오해와 논란이 생겼는데 국민과 외통위원께 송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사과했다.

홍 장관은 지난 12일 기자회견에서 개성공단을 통해 유입된 자금이 북한 핵과 장거리 미사일 개발에 사용됐다는 의혹에 대해 ”개성공단 인금 등 현금이 대량살상무기에 사용된다는 우려는 여러 측에서 있었다. 지금 이 자리에서 모든 것을 다 말씀드리기 어렵지만, 여러 가지 관련 자료도 정부는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홍 장관은 14일 ‘KBS 일요진단’에 출연해 ”개성공단으로 유입된 돈의 70%가 당 서기실에 상납되고, 서기실이나 39호실로 들어간 돈은 핵이나 미사일에 쓰이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더민주를 포함한 야당은 ”(자금 유입이) 사실이라면 한국 정부가 안보리 결의안을 위반한 것임을 자백한 것이며, 사실이 아니라면 장관이 책임을 져야 한다“며 진상 규명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1500자 칼럼] 처음처럼

● 칼럼 2016. 2. 12. 21:22 Posted by SisaHan

얼마 전에 한국의 인터넷 상에는 한국의 한 교수의 죽음이 크게 떠돈 적이 있었다. 인간과 생명, 평화와 공존, 생의 가치와 의미를 가르친 우리 시대의 스승이라는 「신영복」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죽음을 애도하고 관련된 글을 올렸다. 마치 모두 그의 제자였고 독자인 것 같은 느낌을 줄 정도였다. 70년대 중반에 고등학교를 막 졸업하고 캐나다로 떠나온 나에게는 생소한 이름이었다. 아무리 떠나온지 오래 되었다 해도 글을 쓰는 사람으로 부끄러웠다. 그의 유명한 책, ‘감옥으로 부터의 사색’을 제목이라도 들었음직 한데…. 더우기 ‘처음처럼’이란 수필집을 썼고, 그 책 제목을 서민들이 주로 마시는 소주의 이름으로 사용하는 것을 기꺼이 허락해준 사람이고, 글씨마저 직접 써준 분이라는 데 관심이 갔다. 나도 이곳 캐나다에서 몇 해 전에 한국식당에서 ‘처음처럼’을 마셨고 제목과 글씨체가 참 특이하면서 사람을 끈다고 생각했다. ‘처음처럼’이라는 말이 참 가슴에 와 닿았다. 그 이전에 ‘초심으로 돌아간다.’ 는 말이 있었지만 그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사실 살다보면 많은 사람들이 처음에 품었던 뜻이나 마음을 잃어버리고 현실과의 타협과 적응이라는 이름 아래 점점 퇴색해가고 타락해가는 느낌을 가지기 마련이다. 사람을 만나는 것도 그렇다. 처음에 가졌던 좋은 인상은 어디로 가고 알수록 두려워 질 때가 많다.


그의 약력을 보고 또 놀랐다. 사형을 선고 받았다가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어 20년을 교도소에서 살다 나온 것이었다. 서울대 상대 졸업생으로 육사와 숙명여대에 재직 중이었다.
그 때가 유신정권 때였다. 참 어지럽고 혼란스러울 때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대학생들의 데모도 심했고, 그리고 간첩단 사건 같은 엄청난 사건도 많이 터지고, 군인들이 총을 들고 대학에 진입할 때였다. 그때 고등학교에 다녔던 나는 일류대학에 들어가는 것이 최대의 목표였다. 가끔 친구 중에 유신헌법과 ‘귀신헌법’을 말했지만 전혀 나의 관심 밖이었다. 그러나 나는 나중에 대학에 들어가서 운동권으로 빠진 친구 때문에, 정부(정보부)에서 발표하는 간첩단 사건, 내란음모 같은 것을 곧이곧대로 믿지는 않았다.
신영복 선생님은 27살에 감옥에 들어가 20년 동안 감옥생활을 했으니, 인생의 가장 중요한 황금기를 감옥에서 보낸 셈이다. 무기징역이었으니 끝이 보이지 않고, 무엇보다 내일에 대한 희망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그 자신 자살하지 않은 이유를 하루 한번 들어오는 신문지 크기의 햇빛 때문이었다고 나중에 말했다. 그는 자신이 빼앗긴, 또는 잃어버린 20년에 대해 누구도 원망하지 않고, 감옥이 자신의 ‘인생대학’이라고 말했다. 나는 그가 처음에 구형 받은대로 사형을 당했더라면 얼마나 큰 비극이었고 우리에게 손실인가 생각해보았다. 88년에 발간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있는 ‘감옥에서의 산책’이란 책은 물론 ‘처음처럼’이라는 서민들의 사랑을 받는 소주는 이 세상에서 빛도 보지 못했을 터였다.


나는 처음에 그가 사형선고를 받았다가 무기징역이 되었다 해서 인혁당 사건에 연루된 줄로 알았는데, 알고 보니 통혁당이었다. 그 차이를 자세히는 모르지만 두 사건에는 많은 대학생들과 지식인이 연루되었고 고문으로 폐인이 되거나 나중에 후유증으로 죽은 사람들이 많다. 시인 천상병도 그중 하나다. 인혁당에 관해서는 법원에서 사형선고를 받은지 하루도 안돼 사형을 당한 8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김형태 변호사의 ‘지상에서 가장 짧은 영원한 만남’이라는 책에서 읽었다. 그런데 50년이 지난 후에 그들은 무죄를 선고받았다. 참 기가 막힌 이야기다. 50년 전에 사형당한 사람들에게 무죄선고가 무슨 소용있으며 그 지난 50년 동안 가족들은 얼마나 힘든 삶을 살았을지, 진실을 밝히는데 왜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을까? 혹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진실은 없는가? 신영복, 그는 재심을 신청하지 않았지만 자신은 통일혁명당에 가입한 적도 없고 통일혁명당은 그가 체포된 후에 생겼다고 말했다. 이 모든 일이 남북이 갈라져 첨예하게 대립되는 어두운 시대의 비극이라 생각한다. 다시는 있어서는 안 될 일이고, 이제는 있을 수도 없다. 삼가 신영복 선생님과 억울한 죽음을 당한 고인들의 명복을 뒤늦게 빕니다. 그리고 남은 이들은 처음처럼….

< 박성민 - 소설가, 캐나다 한인문인협회 회원 / 동포문학상 시·소설 부문 수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