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 행사 대응 릴레이 기도축제

● 교회소식 2016. 7. 13. 08:40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영락교회서 다민족 집회로

동성애자들의 축제 ‘Toronto Pride’ 에 대항하는 한인을 포함한 다민족 교계 연합 24시간 연속 기도집회가 지난 6월30일 저녁부터 7월1일 오후까지 토론토 영락교회(담임 송민호 목사)에서 열렸다. 10여곳의 한인교회와 주요 선교단체는 물론 원주민교회 등 타민족 교회와 기독단체들도 릴레이 참여한 기도집회는 각자 많지 않은 인원에도 불구하고 뜨겁게 열정적인 부르짖음이 이어져 동성애 행사를 압도하는 ‘기도의 축제’로 열기가 넘쳤다.

< 사진= Ignite Toronto 제공 >

기도집회는 개회예배를 시작으로 Ian Genties 틴데일 신학교 교수의 동성애문제 강연과 David Lynn 목사(Christ’s Forgiveness Ministries)의 간증에 이어 David Lynn 목사, 토론토 전도대학 순으로 ‘동성애자들을 향해’ ‘이 땅의 청년들을 위해’ ‘교회와 교단들을 위해’ 등 10가지 기도제목을 놓고 한 시간씩 철야 합심기도를 1일 오후까지 계속했다. 기도회에는 영락교회 청년부 Ignite Toronto멤버와 찬양팀 Upstream, 새로운 교회, 시온성교회, 토론토 한인장로교회, 성산교회, 만남의 교회,함께 기도하는 치유모임, 페르시안교회, YWAM, Branches Ministry 선교회,Abundant Life Church 등 다수가 참여했다. 집회는 역대하 7장14절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는 성구를 주제로 하여 참여하는 각 교회와 단체가 약 1시간 씩 기도를 인도, 철야로 18시간여 이어졌다.

집회는 김지연 목사(토론토 커넥트교회 담임: KOSTA실행이사)가 인도하는 폐회집회로 동성애자 훈련 전문가 David Lawson 씨(Journey Canada)의 강연과 찬양, 합심기도로 마쳤다.

< 문의: 647-215-0852, 647-287-5348 >


[기쁨과 소망] 플렉시리스천은 없다

● 교회소식 2016. 7. 13. 08:27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여름이면 교회 성도님이 운영하는 식당에 가서 즐겨 먹는 음식이 있다. 물냉면인 듯한 비빔냉면, 이른 바 ‘반반면’이다. 원래 비빔냉면을 좋아 하늗 터에, 여름이다 보니 얼음가루가 된 육수를 자작하게 해서 먹는 맛이 그만이다.
‘Flexitarian’ 이라는 말이 있다. Semi-Vegetarian 이라고도 하는데, 반채식주의자라는 뜻이다. 이들은 채식을 하되 몇 가지 예외를 두는 사람들이다. 주로 채식을 하지만, 소시지와 같은 자기들이 좋아하는 고기 몇가지는 때에 따라 먹는다. 어찌보면 참 괜찮은 사람들인 것 같다. 융통성도 있어 보이고, 포용적이며 뭔가 열린 사람 같은 느낌이 들어 좋아 보인다.
이런 사람을 보고 당신, 왜 베지테리언이면서 고기를 먹느냐고 면박을 줄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게다. 모르겠다. 베지테리언 중에도 근본주의자와 같은 분들이 있다면, 이들을 향해 자유주의자라고 아니면 수정주의자라고 비난을 하고 든다면, 그럴 수는 있겠지만 음식을 가리지 않는 우리 같은 사람들에겐 허무맹랑한 소리로 들릴 게다. “고기 몇 점 잠깐 먹는 데 무슨 대수라고!” 그러고 보니 음식은 반반면도 그렇고 Flexitarian 도 괜찮은 것 같다.


그렇다면 ‘Flexiristian’ 이란 말은 어떨까? 이 말은 구글링을 해도 나오질 않으니 필자가 만든 신조어라 할 수 있는데, Semi-Christian, 반그리스도인이란 뜻으로 읽힐 수 있겠다.
Flexiristian, 반그리스도인, 어떤가? 요즘 세상에서 환대받을 수 있는 사람 아닐까?
그리스도인이라 하니 믿을 만하고, 그렇지만 꽉 막힌 사람은 아니니 경우에 따라선 불편한 거래도 가능할 것이고, 또 때에 따라선 같이 놀고 먹고 마시며 기분을 풀고 즐기기엔 딱 좋은 사람 아닌가? 세상이 좋아할 만한 타입이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사탄은 물론 세상이 편해할 만한 타입이다. 물론 우리 스스로도 편안해서 선호하는 타입이기도 하고.
 그런데 이를 어쩌랴!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음식을 먹는 것과 그 차원이 전혀 다르니.
예수는 반그리스도인을 단호하게 거부하신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마태복음 6장 24절)


이는 Flexiristian, 또는 Semi-Christian, 반쪽 그리스도인이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반반면 좋아하듯이 ‘반 그리스도인’ 정도면 좋다고, 요즘 같이 바쁘고 힘든 세상에 그 정도면 훌륭하다고 그렇게 서로 동의하고 넘어간다. 세상도 좋아한다면서. 목사인 나도 ‘열린 목사’란 말이 듣기 좋아 할 말을 다 하지못할 때도 있으니… 목사 탓이 크다.
이제라도 세상이 편해서 좋아하는 ‘플렉시리스천’이 아니라 세상이 껄끄러워 하는 ‘참크리스천’을 세워가야 할 텐데…..
훗날 하나님 앞에서 배임죄에 걸리지 않으려면 말이다.

< 김진식 목사 - 몬트리올 한인연합교회 담임목사 >


[1500자 칼럼] 뉴욕에서 날아온 쑥

● 칼럼 2016. 7. 13. 08:22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외출에서 돌아오니 큼지막한 쇼핑백이 눈에 띄었다. 아이들의 소지품 정도로 짐작하다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열어보니 싱싱한 부추가 그득하게 들어 있었다. 부재중 친구 L 부부가 다녀 간 것이다. 언제고 지나는 길에 들리겠다는 전언은 있었지만 막상 빈 걸음으로 돌려세우고 나니 서운한 마음 그지없었다.
L 부부의 정성 속에 자라난 부추들을 조심스레 끄집어낸다. 부추김치, 부추 전, 부추 샐러드 등 건강이 뚝뚝 묻어나는 유기농 밥상을 상상하며 부추 반찬에 한껏 골몰 해 있을 즈음 조그만 비닐봉지가 딸려 나왔다.
무엇일까, 부드러운 감촉으론 생물이 아닌 듯 하여 콧잔등을 들이 미니 친근한 냄새가 후각을 간질인다. 나의 급한 마음 알기라도 하듯 살짝 여민 봉지를 풀어보니 데친 쑥 한 덩이가 얼굴을 쏙 내민다. 늘 이맘때면 더 그리운 고향 냄새를 풍기면서.
내 궁금증이 통했던지 L에게서 전화가 왔다. 뉴욕 아들네 갔다가 꺾어 온 쑥이라며 옛 생각하며 쑥버무리를 해 보란다.


세계에서 가장 현대적인 도시에서 날아 온 쑥이라 생경함마저 들었지만 쑥은 나에게 그냥 단순한 식재료가 아닌 두고 온 고향과 내 유년기 언저리를 맴돌고 있는 추억의 산물이다.
꽁꽁 뭉쳐진 쑥 덩이를 풀어헤치니 상념속의 그것과 거리가 좀 있는 모습이다. 냄새는 분명한데 생김새는 사촌 내지 육촌 정도에다 크기는 또 얼마나 월등한지, 넓은 미국 땅 덩어리를 그대로 닮은 듯 했다. 모국 토종 쑥이 이 정도 크기라면 말려서 약용으로나 쓰일 텐데 하는 맘으로 한 잎을 뜯어 씹어 보았다. 다행히 싱겁다고 느낄 정도의 여린 맛이 모든 음식을 가능하게 했다. 나는 친구가 권유해 준 쑥버무리 보다 더 간절한 쑥 국과 쑥 개떡을 염두에 두고 일부는 냉동고에 그리고 나머지는 숭숭 썰어 국 끓일 준비를 했다.
식탁에 앉은 아이가 쑥 국을 보며 의아해 한다. 연유를 들려주었더니 ‘혹시 센트럴 파크에서 꺾으신 게 아닐까요? 하며 씩 웃는다. 학창 시절, 하계 강좌를 위해 뉴욕에 머물 무렵, 센트럴 파크에서 많이 본 식물이라며 그때의 에피소드를 들려주는 얼굴이 상기되어 간다. 우리 시대의 전유물로만 여긴 쑥이 후세에도 쑥쑥 뻗어가고 있으니, 그래서 쑥인가 보다.


어린 시절 쑥 캐기는 우리 자매들에게 해방구나 마찬가지였다. 따뜻한 봄이 되면 할머니는 곧잘 바구니와 칼을 챙겨 선바람을 잡으시고 우린 할머니 치맛자락을 잡고 아버지의 눈치를 살폈다. 할머니의 엄호 아래 아버지의 허락이 떨어지면 자매들은 앞 다투며 앞산으로 달렸다. 아버지의 엄한 훈육 탓에 집안에선 실컷 웃고 떠들 수 없었던 그 시절 쑥 캐기는 얼마나 달콤한 구실이었던가. 아이에게 이런 얘기를 했더니 까마득히 잊어버린 한 기억을 끄집어 낸다.
형제가 초등학교 저학년 정도 되었을 때, 엄마인 내가 떡 해준다며 쑥을 캐 오게 했단다. 형제를 포함한 또래 여섯 명이 산으로 몰려가서 쑥은 뒷전이고 칼싸움, 총싸움 하며 얼마나 신나게 놀았는지 모른단다. 성인이 된 지금도 그때를 떠 올리면 행복하다는데 정작 나는 아무런 기억이 없으니…


아들들에게 쑥 캐러 보낸 젊은 엄마의 속내는 호연지기를 염두에 두었다기 보다 자신이 경험한 해방구를 아이들에게 선사하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 떡은 해주더냐고 물었더니 사 주어서 먹은 기억이 어렴풋하다고 한다.
쑥 바구니가 오죽 신통찮았으면 사서 먹였겠냐 고 뒤늦게 한마디 했더니 아이는 ‘그러게요.’ 하면서 머리를 긁적인다.
추억 저편으로 이끌어준 친구에게 고마운 마음 전하고 싶다.

< 임순숙 - 수필가, 캐나다 한인문인협회 회원 / ‘에세이스트’로 등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