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자 칼럼] 표절의 추억

● 칼럼 2013. 5. 8. 18:34 Posted by SisaHan
속시원하게 얘기하자. 
양심선언하겠다. 
내 논문은 표절이었다. 
A학점을 준 지도교수와 대학당국에 사죄를 구한다. 그들은 아무 잘못도 없다. 다만 내가 부끄럽게 표절했을 뿐이다. 
당시로 돌아가보자. 복학을 했던 잊지못할 1980년 봄. 교정은 벗꽃처럼 날리는 최루탄 가스로 가득했다. 난 여름에 졸업예정이었다. 무엇을 쓸 것인가 고심하다가 어느날 도서관에서 내 눈길을 끄는 한 석사 논문을 찾았다. 게임이론에 관한 것이었다. 
난 그 논문 이론을 바탕으로 다른 사건을 도입해 새로운 결론을 도출해 나갔다. 
문제는 논문을 절반 이상 썼을 때 발생했다. 내가 잡은 논문 제목이 이미 외국에서 발표돼 있는 것이었다. 포기할 수는 없었다. 시간도 없었다. 나름대로 결론을 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갈수록 기존 논문의 결론에 유사하게 접근하는(솔직하게 말해서 표절하는) 것이었다. 
어찌어찌 논문을 제출하고 가시방석에 앉은 것처럼 얼마간을 보냈다. 게임이론을 가지고 논문을 쓴다고 하자 네가 뭔데 하며 말리던 친구들이 생각났다. 어느날 학장실로 호출(?)을 당했고 게임이론 전문가였던 지도교수에게 내 이론을 장황하게 설명해야 했다. 자신감에 가득 찬 표정으로. 

최근 모국에서 논문표절 시비로 시끄럽다. 유명 정치인들을 비롯해 주부스타강사 김미경, 연예인 김혜수 김미화 등 사회 각 분야 인사들이 총망라됐다. 사랑의 교회 오정현 목사까지 구설수에 휘말렸다. 진보논객인 진중권 교수는 “박사학위 논문이 아니라 복사학위 논문”이라고 비꼬았다. 
표절의 기준이 무엇인가. 그중에서 몇가지를 살펴보자. 여섯 단어 이상 연속해 표현이 같고 인용표시가 없으면 표절이다. 또 단위가 되는 명제 또는 데이터가 동일하거나 유사할 경우다. 그러므로 나의 논문은 표절이다.
배우인 김혜수는 학위반납을 선언했다. 나는 김혜수처럼 쿨(cool)하지 못하다. 반납선언은 하지 않겠다. 하지만 어느 정치인처럼 변명은 하지 않겠다.
표절(plagiarism)이란 말의 유래는 <유괴>라는 의미의 라틴어라고 한다(맞는 지 틀리는 지 확인하진 못했지만 어느 블로그에서 인용했다). 유괴는 엄연한 범죄이다. 
내가 표절했던, 이제는 기억도 안나는 어느 외국인 학자에게 용서를 빈다. 
한가지 다행스러운 점은 내가 표절을 했다고 외쳐도 아무도 귀담아듣지 않는다는 것이다. 유명하지 않다는 것은 이렇게 좋다. 편안하다. 
짚고 넘어갈 게 있다. 
박사나 석사가 아닌 학사논문이었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 김형주 - 시인, 해외문학 신인상 / 캐나다 한인문인협회 회원·부이사장 >


[칼럼] ‘퍼주기’의 정치경제학

● 칼럼 2013. 5. 8. 18:29 Posted by SisaHan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4월24일 언론사 편집·보도국장들과의 점심 자리에서 “개성공단 문제가 조속히 해결되기 바라지만 과거와 같은 ‘퍼주기’식 해결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인도적 지원’은 정치 상황과 관련 없이 북한 주민들을 생각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북한에 인도적 지원은 하겠지만, 퍼주기는 하지 않겠다는 평소의 지론이었다. 
그러나 이 주장에는 큰 허점이 있다. 김대중·노무현 시대에 ‘퍼주기’라고 비난받은 일이 대부분 ‘인도적 지원’이었기 때문이다. 퍼주기란 인도적 지원이 통상 무상이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이제부터 ‘퍼주기’라고 말하면 ‘인도적 지원’으로 이해하면 된다. 박 대통령이 이것을 알고도 그렇게 말했는지, 아니면 보수파들의 상투어를 그냥 되뇐 것인지 궁금하다.
 
통일부의 통계를 보면, 식량 차관까지 포함한 한국 정부의 인도적 지원은 김영삼 정부 때 2,118억원으로 시작해 김대중 정부 6,153억원, 노무현 정부 1조4,226억원으로 크게 늘었다가 이명박 정부 986억원으로 뚝 떨어졌다. 김·노 정부의 인도적 지원 총액은 모두 2조379억원이었다. 여기에 첫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에 보낸 1억달러(1,100억원)까지 포함하면 10년 동안의 이른바 ‘퍼주기’ 총액은 2조1,479억원이다. 1년에 2,148억원꼴이다. 그런데 이것은 2012년 한국이 공적개발원조(ODA)를 통해 다른 나라에 지원한 1조9,000억원의 9분의 1에 불과하다. 
김·노 정부 10년 동안의 ‘퍼주기’는 어떤 결과를 낳았을까? 보수인사들은 퍼주기로 인해 핵무기를 개발한 게 아니냐고 주장하지만, 알고보면 북한이 파키스탄의 도움으로 핵무기 개발에 나선 것은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기 훨씬 전이었다. 얼핏 그럴듯해 보이지만 사실은 흠잡기 위한 말의 성찬이었던 셈이다. 
반면 김·노 정부의 ‘퍼주기’ 이후 금강산과 개성에 11년 동안 204만6,695명의 한국 사람들이 방문했다. 개성공단에는 8년 동안 80만명과 차량 50만대가 방문해 모두 19억7,599만달러(2조1,736억원)를 생산했다. 노무현 정부 마지막 해인 2007년 북한 무역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38.0%에 이르렀다. 대북 무역액 1위인 중국(41.6%)에 근접했고, 2008년에는 중국을 제치고 제1의 대북 무역국이 될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뒤 ‘퍼주기’는 14분의 1로 줄었다. 개성공단을 뺀 경제협력 사업도 연기처럼 사라졌다. 2008~2011년 경제협력 중단으로 한국의 경제적 손실은 9조973억원으로 북한 손실의 5배 이상으로 추정됐다. 심지어 남북의 적대 속에서 무고한 군인과 민간인 60명이 목숨을 잃었다. 
집권 두 달째인 박근혜 정부는 지난 26일 개성공단에서 스스로 철수함으로써 경협의 문을 닫았다. 10년 공들인 탑을 무너뜨리는 데는 5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퍼주기는 예산 낭비가 아니라 평화로 가는 투자라고 생각한다. 통일 전 서독은 1975~1988년 사이 14년 동안 한해에 6억달러(6,600억원)씩 동독에 퍼줬다. 김영삼~이명박 정부 20년 동안 한국이 한해 평균 퍼준 1,229억원의 5.4배에 이른다. 이명박 정부 시절보다는 33배나 많았다. 물자·노동력을 포함한 무역 규모도 한해 평균 66억달러(7조2,835억원)로 김영삼~이명박 정부 시절 한해 평균 무역액 9,885억원의 7.4배였다.
 
독일의 퍼주기 결과는 무엇이었을까? 통일이었다. 1990년 8월 동독 의회는 스스로 서독으로의 연방 가입을 결정했다. 그때까지 서독이 주로 한 일은 수십년 동안 동독에 퍼주고 퍼주고 또 퍼준 일이었다. 서독의 동독에 대한 변함없는 지원과 협력은 동독인들로 하여금 서독을 신뢰하고 의지하게 만들었다. 그게 통일의 내적 원동력이었다. 
퍼주기로는 단기간에 북한의 핵무기와 미사일을 제거할 수 없을 것이다. 사실 단기간엔 그 무엇으로도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보면, 퍼주기는 한반도에 평화와 신뢰를 가져다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 김규원 - 한겨레 신문 통일 외교팀장 >

 
‘경제민주화 1, 2호 법안’으로 불려온 하도급법 개정안과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임시국회를 통과했다. 하도급법 개정안은 대기업의 ‘납품단가 후려치기’에 대해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강화했고, 자본시장법 개정안은 연봉 5억원 이상 등기임원의 개별 보수를 공개하도록 했다. 국회는 정년을 60살까지 보장하는 정년연장법도 일부 수정한 뒤 통과시켰다. 대선 이후 경제민주화 법안들이 첫 결실을 맺은 것은 이번 임시국회의 큰 소득이다. 여야 정치권이 모처럼 공약 이행을 위해 힘을 모았다는 점에서 매우 긍정적이다.
 
경제민주화 법안들이 결실을 맺기까지는 진통도 적지 않았다. 새누리당은 경제민주화를 대선과 총선의 핵심 공약으로 내걸었지만 입법 단계에서는 재계 로비와 내부 동조세력의 반발로 주춤거리는 모습을 보였다. 새누리당의 김진태 의원 등은 지난 29일 법사위에서 하도급법 개정안을 두고 “기업활동 위축 우려가 없는지 등을 따져봐야 한다”고 딴죽을 걸었다. 30일 법사위에선 유해물질 배출기업에 매출액의 최대 10%까지 과징금을 부과하는 ‘유해화학물질관리법’이 새누리당 일부 의원들의 반대로 제동이 걸렸다.
법사위에서 경제민주화 법안들이 진통을 겪는 것은 재벌의 로비에 새누리당 일부 의원들이 동조한 탓이 크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등 5개 경제단체 부회장들은 29일 국회를 찾아 기업의 이해관계가 걸린 법안 처리에 신중을 기해줄 것을 요청했다. 이에 몇몇 새누리당 의원들이 공개적으로 반기를 들고나온 것이다.
국회 법사위가 해당 상임위에서 여야가 합의해 통과시킨 법안에 대해 그 내용을 문제 삼아 처리를 지연시키는 것도 문제다. 형식적으로는 법체계 등의 이유를 내세우지만 실질적으로는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법안을 틀어쥐고 통과를 막는 경우가 일쑤다. 법사위의 비정상적인 월권행위도 이번 기회에 시정할 필요가 있다.
 
경제민주화 관련법의 원활한 입법 여부는 결국 새누리당이 어떻게 내부 합의를 이뤄내느냐는 문제와 직결된다. 차기 원내대표에 출마할 최경환 의원이 “너무 과도한 부담을 줘서 경제 자체가 위축돼선 안 된다”는 등 발언을 하는 것은 곤란하다. 황우여 대표가 “경제민주화는 중견기업, 중소기업, 소상공인까지 경제의 피가 흐를 수 있도록 해주는 법”이라고 한 것은 적절하다. 다소간 완급 조절은 있을 수 있지만 경제민주화는 대선 때 국민적 합의를 이룬 사안인 만큼 뚝심 있게 추진할 필요가 있다. 비록 진통을 겪었지만 입법이 첫 결실을 거둔 만큼 여야 정치권은 더욱 속도를 내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