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호주에서는 아시안컵(AFC Asian Cup) 축구대회가 열리고 있다. 지난 주 한국축구대표팀은 이번 대회 강력한 우승 후보이자 홈팀인 호주를 꺾고 조 1위로 8강에 오르는 쾌거를 이루었다.
뜬금없이 새해부터 웬 축구 얘기인가 하는 분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신약 성경에 보면 사도 바울이 그 당시 고대올림픽 스포츠 경기를 인용하면서 복음을 설명한 부분이 여러 군데 나와 있다.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고전 9:24~25).
이처럼 스포츠 경기나 운동선수를 통해서 기독교 신앙생활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이 있다. 특히 필자가 30년 이상 축구를 해오면서 축구와 기독교 신앙 사이에도 일맥상통하는 원리가 있다고 느끼는 부분이 있어서 몇 가지 적어 본다.


1. 기본이 중요하다.
축구에 있어서 킥, 헤딩, 드리볼, 패싱, 슛팅, 체력 등의 기본기는 매우 중요하다. 기본이 뒷받침 되지 않는 선수는 어느 수준 이상 발전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기독교 신앙에 있어서도 믿음, 구원, 예배, 기도, 겸손, 봉사와 같은 기본이 잘 되어 있어야 훌륭한 신앙인으로 계속 발전할 수 있다.


2. 협력이 필수이다.
아무리 훌륭한 축구 선수라도 혼자서 상대방을 이길 수는 없다. 최고의 축구팀은 수비와 미드필더 그리고 공격진으로 이어지는 11명의 플레이가 톱니바퀴처럼 물고 돌아가는 유기적인 협력이 잘 되는 팀이다. 마찬가지로 교회도 여러 다양한 은사를 가진 신자들이 함께 모여서 하나님의 나라를 같이 이루어 가는 신앙 공동체이다. 따라서 직분과 은사에 따른 유기적 협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3. 법대로 해야 한다.
축구 경기의 규칙은 엄하고 분명하다. 예컨대 패널티박스 안에서의 반칙은 곧바로 벌칙이 주어지고, 패널티킥에 이은 실점은 종종 경기를 패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이다. 무조건 열심히 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것은 죄악이요. 사탄을 이롭게 하는 것이 되고 만다. 오직 좋은 신앙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순종하는 것이다.


축구의 매력은 때때로 약팀이 강팀을 이기는 것과 경기에 이기고도 골득실에 밀려 탈락하는 이변이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이다. 신앙생활의 전성기에 떵떵거리고 잘 나가던 것 같은 사람이 결국 엎어지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신앙생활의 초기에 많이 부족하여 환란과 시련을 겪지만 인내로 잘 이겨내고 마침내 승리하는 사람도 있다.
앞으로 우리 한국팀이 이란이나 일본 같은 강팀들을 파죽지세로 꺾고 55년 만에 아시안컵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으면 하듯이 우리의 신앙의 경주도 하늘나라 챔피언으로 우뚝 설 수 있기를 바란다.


< 임수택 목사 - 갈릴리장로교회 담임목사 >



[한마당] 총과 펜보다 강한 것

● 칼럼 2015. 1. 23. 20:30 Posted by SisaHan

기독교인들이 한번은 가보길 소망하는 이스라엘 예루살렘은 성지의 평화보다는 38선 못지않은 긴장감이 넘친다. 2천년 전 로마에 나라를 잃고 떠난 유대인들이 1948년 돌아와 이스라엘을 세우면서 이 땅은 성스럽기보다는 성난 땅이 됐다. 1500여년간 이곳에 살던 팔레스타인인들은 이스라엘에 의해 궁지에 몰린 끝에 분리장벽에 갇힌 신세로 전락했다.
9년 전 기독교와 유대교, 이슬람 3대 종교 성지가 집중돼 있는 동예루살렘을 순례했다. 팔레스타인인 집단거주지인 아랍구역에서 팔레스타인 소년의 손에 뭔가 반짝이는 것을 보았다. 쇠못이었다. 소년은 우리 일행을 향해 그 못을 찌르는 시늉을 했다. 이스라엘 무장 군인이 본다면? 외신을 통해 팔레스타인 아이들에게 조준사격하는 이스라엘군을 봤기에 나도 모르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행히 중무장한 이스라엘 군인들은 지나가고 없었다.


예수가 십자가형을 선고받고 숨져 묻힌 곳까지 14개의 지점을 순례하는 ‘비아 돌로로사’(슬픔의 길)는 상인들과 순례객들로 발 디딜 틈 없는 시장통이다. 그 북새통에서 일행을 놓치고 서둘러 인파 속을 헤치고 나갈 때였다. 한 팔레스타인 청년이 내 얼굴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그 순간 테러의 공포가 엄습했다. 실제 그 직후 한 한국인 특파원이 팔레스타인 무장단체에 인질로 잡혔다. 우여곡절 끝에 골고다언덕에서 일행들과 재회하자 마치 사지에서 벗어난 기분이었다.
나처럼 직접적인 위협을 경험하지 않는 이들도 이제 무슬림들에 대한 경계심을 당연시한다. 프랑스의 <샤를리 에브도> 테러로 전세계 매스컴에 의해 ‘무슬림=테러’란 이미지는 더 선명해지고 있다. ‘무슬림공포증’으로 ‘무슬림들이 왜 그러는지’에 대한 질문은 사라진다. 나 또한 무슬림 청년에 의한 주먹질에만 압도될 당시엔, 이슬라엘과 한 몸인 양 행동하는 미국의 우산 아래서 남의 땅을 제 안방인 양 휘젓고 다니며 자존심에 상처를 낸 한국인의 자화상을 볼 수 없었다.


서방을 등에 업은 이스라엘인 가운데서도 역지사지하는 인물이 있다. 세계적인 지휘자인 다니엘 바렌보임이다. 그는 이스라엘이 노벨상에 버금가는 상으로 제정한 울프상을 2004년 수상하면서 “남(팔레스타인)의 땅을 점령하고 그들을 지배하는 것이 (이스라엘) 독립 정신이냐?”고 물었다.
바렌보임을 깨운 것은 예루살렘 출신의 팔레스타인인 에드워드 사이드 하버드대 교수였다. <오리엔탈리즘>의 저자로 유명한 사이드는 “동양(오리엔탈)의 이미지란 동양을 약탈 대상으로 여기며 인종차별 의식을 지닌 서구인들의 편견과 왜곡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렇다. 샤를리는 전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당했지만, 무슬림들은 아무도 모르게 지속적으로 당해왔다. 그러면서도 피해자들이 아니라 공격자와 테러범이란 이미지가 더욱 부각되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잔혹한 무슬림 근본주의자들의 보복 테러와 살상에 동의할 수는 없다. 어떤 테러도 반대하고 혐오한다.

하지만 그 테러를 계기로 무슬림 근본주의자들을 격리시킨다면서 결국은 대다수 무슬림들을 더 높은 분리장벽 안에 가두려는 서구의 집단의식도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왕따의 분리장벽은 근본주의자들과 다수 무슬림들을 하나로 단결시켜줄 뿐이다.
2001년엔 샤를리 테러보다 더한 무슬림 극단주의자들의 9.11테러가 있었다. 당시 미국인들이 무슬림들을 다 때려죽일 듯 증오감에 치를 떨 때 전혀 다른 행동을 취한 이들이 있었다. 기독교 종파 미국퀘이커봉사위원회였다. 그들은 무슬림들을 초청해 “우리가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물었다.


이제 샤를리도 무슬림들도 더 이상 죽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표현의 자유란 이름으로 불난 집에 기름을 붓기 전에 먼저 이렇게 물어야 한다.
“우리가 무엇을 잘못했는가.”
그리고 우리가 핍박하거나 그에 동조함으로써 상처 입은 이들에게 용서를 청해야 한다. 강자가 선택할 수 있는 건 약자들의 예언자를 조롱하는 것만이 아니다. 관용과 포용으로 평화를 만들어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강자만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이다.
< 한겨레신문 조현 논설위원 >



‘IS가담 뜻’ 트위터에… 3개월간 무관심

김군이 택시를 탄 곳으로 밝혀진 호텔앞 모스크.

10대 터키 실종사건 ‘보안구멍’
행적, IS 포섭·가입 절차 일치
시리아 밀입국, 가담 가능성 커

터키 여행중 실종된 김모(18)군의 행적이 속속 확인되면서 그가 수니파 원리주의 무장단체인 ‘이슬람국가’(IS)에 가담했을 가능성이 확실시되고 있는 가운데, 김군이 석 달 전부터 수니파 원리주의 무장단체인 ‘이슬람국가’(IS)에 가담을 시도했으나 아무도 이를 막지 못한 것으로 밝혀져 당국의 대테러 보안에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경찰이 20일 확인한 김군의 트위터 계정(glot***)에는 지난해 10월 4일 IS에 가담하고 싶다며 가입 방법을 아는 사람이 있는지 묻는 글이 있다. 누구나 볼 수 있는 트위터에 테러 조직에 가입하고 싶다는 글이 3개월 이상 공개됐지만, 어느 당국도 사전에 이를 인지하지 못했다. 정부에 대한 비판글은 올라오기 무섭게 찾아내 대응하는 것과는 너누 대비된다는 지적이다.
한국은 이슬람권과 거리가 있어 상대적으로 이른바 ‘외로운 늑대’인 자생적 테러리스트 가능성이 작지만 IS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전세계에서 조직원을 포섭, 모집해왔다는 점을 고려하면 당국이 안일하게 대응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외교 당국에 따르면 한국 정부는 IS 가담 가능성이 있는 용의자 명단을 작성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터키 정부는 ‘외국 테러 전투원’(FTF)의 IS 가담 경로로 활용되자 각국에 용의자 명단을 공유해 입국 과정에서 적발해 추방하고 있으나 한국 정부로부터 정보를 받지 않았다.
그러나 한국 정부가 FTF 위험을 간과한 것은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9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정상회의에 참석해 IS와 FTF는 국제사회 전체의 문제가 됐다며 한국의 엄격한 법집행을 밝히고 “사이버 공간은 이미 테러자금 조달과 전투원 모집, 종교적 극단주의 선전에 사용되고 있다”며 “앞으로 사이버공간이 테러의 표적이 되거나 SNS가 테러의 수단이 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김군과 동행한 홍모(45)씨의 행동도 김군의 우발적 행동을 방심한 것으로 추정된다. 홍씨는 김군의 부모가 다니는 교회 목사를 통해 소개받은 목사로 알려졌다. 홍씨는 김군이 부모와 사이가 좋지 않았고 부모가 김군 홀로 터키로 보내면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봐 동행을 부탁한 인물이다. 홍씨가 이런 사정을 잘 안다면 김군을 통제했어야 했으나 IS에 가담하는 대표적 경로인 킬리스로 가는 것을 막지 못했다. 홍씨는 김군이 가지안테프 이후 어디로 갈 것인지 사전에 몰랐던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한국과 터키 경찰의 수사로 드러난 김군의 행적은 IS가 ‘외국 테러 전투원’(FTF)을 포섭해 가입시키는 절차와 일치한다.


김군은 한국에서 IS와 관련된 인물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IS 가입 의사를 밝혔고, 시리아 접경도시인 킬리스에서 10일 접촉선을 만나 차량을 타고 시리아 국경으로 이동했다.
터키 경찰이 킬리스의 감시카메라들을 조사한 결과 김군은 투숙한 호텔 바로 건너편에서 남성과 만나 함께 승합차를 타고 시리아 국경 근처로 이동해 하차한 것이 확인됐다.
이는 김군이 한국에서 IS 조직원과 비밀 메신저 앱인 ‘슈어스팟’을 통해 사전에 접선 일시와 장소를 약속했음을 보여준다.
서울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앞서 김군이 터키에서 개설된 트위터 계정 사용자와 트위터로 대화를 나누다 터키인이 슈어스팟으로 대화하자고 제안한 이후 수차례 슈어스팟을 이용해 대화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김군의 이런 행적 역시 IS가 외국인을 포섭해 가입을 유도하는 방식을 그대로 따른 것이다.
IS의 미디어 조직원들은 김군처럼 IS에 관심을 가진 외국인과 트위터 등 일반적 SNS로 대화를 나누다가 상대의 신원이나 IS 가담 의지가 확인되면 슈어스팟이나 ‘KIK’ 등 암호화된 메신저를 통해 접촉을 시도한다.
IS 조직원들은 이 과정에서도 계속 계정을 바꿔가며 추적을 피하다가 최종 확신이 들면 전화연락을 통해 터키 남부 시리아 국경에 관한 정보를 주고 접촉선에게 연락해 국경을 넘게 하는 수순으로 진행한다. 따라서 김군은 최소한 IS에 가담한 것은 확실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