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젓했던 빈 둥지가 모처럼 활기를 되찾나 했더니 며칠 못가서 다시 조용해졌다. 방마다 자신의 컴퓨터와 소통하느라 여념이 없는 탓이다. 어쩌다 한 공간에 식구들이 모여도 각자의 기기를 소지 한 채 들어서니 일상의 대화는 뒷전인 듯 하여 씁쓰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최신형 기기가 출시되면 될수록 열외로 밀려나는 우리 집 텔레비전, 장기 폐업 상태로 벽면을 지키고 섰는 가구와 같은 심정이 아닐까 하여 깜깜한 모니터를 쓰다듬어 본다. 손끝으로 밀리는 허연 먼지가 소외층의 현실을 대변하는 듯하다.
삭막한 전자기기에 대부분의 시간과 공간을 내어 준 아이들에게 양질의 음식과 편안한 잠자리 제공만이 능사가 아닌 듯 하여 캠핑을 제안했더니 순순히 응했다.
장성한 두 아들과 가을 캠핑을 준비한다. 기껏해야 사흘 필요한 것들인데 순식간에 산더미가 된다. 텐트, 침낭, 코펠, 등등 십 수 년간 잠자던 캠핑도구들이 줄줄이 엮여 나와 어리둥절해 하는 반면, 방마다 엎드려 있는 노트북은 굳은 침묵이다. 단 며칠이지만 자신들의 분신이나 다름없는 노트북을 놓고 가야하는 녀석들은 아예 체념한 듯 연연해하지 않는 눈치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오지에서 그들은 긴 시간을 어떻게 활용할 지 궁금하면서도 신경이 쓰인다.
올망졸망한 일용품들을 한 차 가득 실은 우리는 약 400km를 북상하여 캠핑장에 도착했다. 스산한 가을바람이 가랑잎을 쓸고 있는 넓은 캠핑장은 주인도 손님도 모두 떠나 을씨년스러웠다. 사나운 산짐승이 수시로 찾아 들 것 같은 숲속에서 네 식구는 텐트를 치랴 모닥불을 피우랴 바삐 움직인다. 기껏해야 잠자리 준비와 먹거리 마련인데 온 식구가 매달려 비지땀을 흘리는 것을 보니 컴퓨터 앞에 있는 것 보다 훨씬 건강해 보여 좋다.
아름드리 상록수가 하늘을 가린 밀림지대를 누비며 하이킹도 하고 텅 빈 호수에서 카누도 타고 호숫가 산책도 빼놓지 않았다. 해가 넘어가자 주위는 금방 어둠이 짙어갔다. 물소리, 거센 바람소리, 짐승들의 포효로 숲은 차츰 야성의 기질을 뿜어내며 번잡해졌다. 모닥불을 더 높이 올린 우리는 오랜만에 둘러앉아 옛이야기도 하고 별도 헤아려 보고 자연의 소리에 심취하기도 했다.
어느 덧 밤이 이슥해지자 한사람씩 분산되기 시작했다. 작은 녀석은 셀룰러폰을 충전한다며 인근 마을로 차를 끌고 나가고 큰아인 배낭에서 아이패드를 꺼내든다. 뜨악해 하는 나를 보곤 영화 상영시간이 되었다며 다가앉는 아들이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곳이라고 해도 전혀 동요하지 않았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던 거다.
한 사흘 문명과 담을 쌓고 자연속에 파묻히려던 계획은 남편과 나의 생각이었을 뿐 아이들은 그들 나름대로 준비가 있었던 것이다. 천지가 노오란 단풍나무 숲, 모닥불 앞에서 수시로 영화감상은 물론 독서며 글쓰기 등을 입맛대로 즐기는 아들을 보며 디지털세대와 아날로그세대의 격세지감을 느끼기도 한다.
자연과 문명은 항시 충돌만 하는 게 아니라 운용에 따라서 조화도 가능하다는 생각이 든 아침, 적요를 깨는 소음이 터져 나왔다. 남편의 아이팟에서 흘러간 가요가 …….
<임순숙 - 수필가, 캐나다 한인문인협회 회원 / ‘에세이스트’로 한국문단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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