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진대사 능력 떨어져 담음·어혈 늘어
뇌졸중·심장질환 등 위험‥약만으론 안돼
과식·과음 잘못된 습관 고치고 운동을

살을 빼야 한다는 담론은 상식이 됐다. 이는 비만에서 벗어나는 것이 쉽지않음을 보여주는 방증이기도 하다. 일상에 바쁜 많은 이들은 ‘살 빼는 약’이나 콜레스테롤을 낮추는 약으로 해결하려 하지만 여기에만 의존하는 것에 대해선 서양의학은 물론 한의학도 반대한다. 한의사들은 오장육부의 신진대사를 활성화시켜야 비만과 고지혈증이 치료되고, 스트레스를 줄여야 비만을 예방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 몸속 노폐물 처리 지연이 비만·고지혈증 불러
혈액 속에 나쁜 콜레스테롤 농도가 높은 고지혈증이나 비만 하면 서양의학적 치료를 떠올리기 쉽다. 과거에는 많지 않았고, 고지혈증이라는 말도 최근에 나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의사들은 이른바 상위층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덜 움직이고 많이 먹어 영양이 과잉된 상태였기 때문에 한의학에서도 비만 치료의 역사가 오래됐다고 말한다. 
서양의학의 개념에서는 비만이나 대사 이상으로 핏속 나쁜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아지고, 남은 지방질이 쌓여 내장 또는 피하 지방층이 두터워지며, 이 때문에 혈액순환에 문제가 생겨 뇌졸중이나 심장병 등 각종 혈관질환이 생긴다고 설명한다. 
이에 견줘 한의학에서는 비만이나 고지혈증에 대해 담음(痰飮) 또는 어혈(瘀血)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한다. 우선 담음은 몸속에서 생기는 각종 노폐물을 부르는 통칭이며, 어혈은 혈액순환이 느려지면서 혈액 성분이 비정상적으로 변화하는 것을 말한다. 설명하는 용어는 다르지만 원리는 비슷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한의학에서는 체력 또는 정기(正氣)가 부족해지면서 신진대사 능력이 점차 줄어 이런 담음과 어혈이 증가하고 결국엔 몸속의 노폐물 처리가 늦어져 몸 안에 쌓인다고 본다. 이 때문에 뇌졸중이나 심장질환이 많아지는 것에 대한 설명 역시 서양의학과 한의학이 유사하다.
 
■ 살 빼는 약만으로는 해결 안돼
한의학에서 비만이나 고지혈증의 치료는 기초대사량을 올려서 이 담음과 어혈을 어떻게 제거하고 풀어내느냐에 달려 있다. 한의학적 치료인 한약을 쓰거나, 일부러 몸을 움직이는 운동 등을 하는 것으로 오장육부의 신진대사를 촉진시켜야 건강을 지키면서 몸무게도 줄인다는 설명이다. 물론 침 치료도 이런 기능을 할 수 있다. 그런데 흔히 쓰이는 양약인 식욕억제제나 콜레스테롤 수치를 떨어뜨리는 약은 신진대사를 촉진하는 것도 아니고 우리 몸이 쓰는 기본 열량을 높게 하는 것도 아니라서 건강한 비만 탈출의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또 식욕을 억제하는 약물 역시 억지로 먹고자 하는 욕구를 줄이다 보니 두통과 같은 부작용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생활습관은 바꾸지 않고 신진대사를 촉진하지 않은 상황에서 이들 약만 먹다가 끊으면 결국 다시 비만해지거나 콜레스테롤이 높아지는 ‘요요현상’이 올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 비만의 원인에 따른 대처 필요
비만이나 고지혈증이 생기는 원인은 제각각일 수 있다. 우선 체질적인 원인이나 기능 상태의 변화는 식욕이 지나치게 좋아지거나 먹은 것이 저장만 잘 되고 배출이 되지 않는 경우다. 이때에는 한약이나 침을 써서 치료할 수 있다는 것이 한의학계의 설명이다. 이와는 달리 잘못된 습관은 약 없이도 개선이 가능하다. 이는 현대인에게 생기는 비만의 원인 대부분을 차지한다. 
대표적인 예가 불규칙한 식습관이나 과식, 과음, 잠들기 전에 먹는 야식 등이다. 개인의 식생활 일지 등을 쓰면서 잘못된 식생활을 고치는 노력이 필요하다. 활동량이 지나치게 적은 것도 규칙적인 운동이나 계단 오르기, 대중교통 이용하기 등 생활 속에서 활동량을 늘리는 방법으로 극복해야 한다. 약물 가운데에는 호르몬제가 대표적으로 비만에 빠지게 할 수 있는 약임에 주의해야 한다.
 
■ 스트레스 관리가 비만 예방의 핵심
현대인에게 비만의 핵심 원인은 스트레스다. 한의학에서는 사람이 스트레스를 받으면 욕구불만이 생기고, 이를 폭력이나 식탐으로 해결하려 한다고 본다. 특히 태음인의 경우 잘 참는 성정을 지녀 스트레스가 더 쌓일 수 있다. 이 때문에 비만을 막으려면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취미 활동을 하고 과로를 피하라고 권고한다.



[1500자 칼럼] 정월 대보름

● 칼럼 2012. 2. 13. 18:04 Posted by SisaHan
싸늘한 바람이 코 끝을 매콤하게 해준다. 겨울 하늘 여기 저기 흩어진 별들 사이 커다란 쟁반 같은 둥근달이 하늘 한복판에서 현현한 빛을 발하고 있다. 아! 오늘이 정월 대보름이든가.
이때가 되면 계수나무 밑에서 토끼가 방아찧는 모습 보고 싶어 맑은 하늘 점지해달라고 얼마나 기원했었던가. 진정 이 달은 그 시절 내 고향 충남 홍성 땅에서 올려 보았던 그 달과 같은 것인가? 그 때의 보름달은 이렇게 차갑게도, 이토록 정 없이도 안보였는데….
이미 도시는 잠자리에 들어갔을 이 시간. 하늘을 올려다보는 내 눈 속 하나 가득히 하얀 달빛이 가슴을 파고 들어온다. 그리곤 정 없는 달이라고 불평했던 나를 이끌고 동화 속의 어린시절 내 고향 땅을 찾아간다. 
나와 동생은 어머니 곁에 붙어 앉아 곱게 물들여 다듬어진 명주치마 저고리가 어서 만들어 지기를 고대하고 있다. 어머니의 한 올 한 올 바느질 손끝이 자꾸 더디다 생각되면 밖으로 나가 한바탕 눈싸움을 하고 돌아왔다. 노랑저고리 분홍치마 눈이 부셨다. 어머니는 동생에게도 나에게도 옷을 입혀보고 옷고름 매는 법을 가르쳐 주며 우리 딸들 참 예쁘기도 해라 하며 머리를 곱게 빗겨주고 댕기도 드리워 주었다. 곱게 차려입은 우리는 설빔자랑하고 싶은 아이들과 어울려 거리를 꽃밭으로 만들었다.
 
양지바른 선례네 마당엔 이미 널판이 놓여있다. ‘쿵더쿵 쿵더쿵’ 널뛰는 소리에 가슴 설레며 동생의 손을 잡고 부지런히 뛰어갔다. 널판 양 끝에 올라 탄 우리는. 땀이 흥건히 날만큼 신나게 널을 뛰었던 것이다. 
열나흘 날 저녁이 돌아왔다. 정초 명절의 축제가 최고조에 다다르게 된다. 동네 머스마들과 함께 구멍이 숭숭 뚫린 깡통 속에 떨어진 고무신 조각과 광솔 붙은 나뭇가지를 쑤셔 넣고 철사를 꿰어 단단한 끈을 만들곤 깡통 속에 성냥불을 그어 댕겼다. 이 산마루에서 저 산마루로 뛰어다니며 쥐 불울 놓으며 크고 작은 깡통불은 지금의 불꽃 놀이만큼 화려하고 보기 좋았다. 어른들은 불끈 솟아오르는 보름달을 향해 활을 쏘고 우리들은 신바람이 나서 응원하곤 했다. 온 동네 사람들은 우리 집 옆 신작로 길 냇물을 이어주는 다리로 모여들었다. 나도 동갑내기 아이들과 손에 손을 잡고 나이수대로 그 긴 다리를 열 번 건너고 나면 다리가 뻐근해 오지만 일 년 내 내 다리 병 앓지 않고 튼튼하게 지낼 수 있다기에 아파도 열심히 달렸다.
 
자정이 훨씬 넘었다. 몽당귀신이 들어와 눈썹을 하얗게 쉬게 할까봐 무서워서 한잠도 못자고 대보름 전야를 꼬박 새웠다. 어머니는 어느새 잣과 부럼(밤 호도 땅콩 은행 등)을 준비해놓고 이른 새벽까지 탐스런 잣 끝에 불을 붙여 그해 운수 점을 치고 부럼을 깨물면 한해의 치통을 예방하는 것이라며 밤도 은행도 한 옹 큼 쥐어주곤 했다.
오곡(五穀) 밥, 아홉가지 나물로 아침을 먹고 집집마다 떡을 돌리며 열두 집을 찾아 열두 공기 잡곡밥을 얻어먹으며 튼튼한 몸, 잘 크라는 어른들의 이 말에 잘도 뛰어다녔다. 여기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연 날리는 재미였다. 창호지에 온갖 그림을 그려 오빠가 만들어준 연을 하늘 꼭대기까지 날리면 나도 둥실 하늘을 날았다. 지금도 생생히 각인되어있는 어린 시절 설 명절에서 정월 대보름까지 이어지는 축제가 세상의 어느 것 보다 재미있었고 행복했다.   
     
컴퓨터 게임에 몰두하고 있는 아이들을 본다. 동리아이들과 신바람 나게 어울려 놀았던 내 어린 시절의 풍경은 민속촌에서나 볼 수 있는 고풍이 되었다. 한국이 놀랄만큼 잘사는 나라가 되었다 하지만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세계국가 경쟁력 순위에서 한국의 행복 지수는 178개국에서 102번째라 했다. 행복지수는 경제력과 비례하지 않았다. 실종된 동화속의 유년 시절을 우리 아이들에게 다시 찾아주는 길은 없을까?  서양권에서 정월 대보름은 한갓 여느   달과 다름없는 만월(full moon)인지 모르나 이 시절을 공유하며 살아왔던 우리들에겐 영악해진 아이들을 대할 때 마다 가슴이 서늘해진다.

<수필가 - 캐나다 한인문인협회 전 회장>


[칼럼] 최시중, 그 이후

● 칼럼 2012. 2. 13. 18:03 Posted by SisaHan
자질의 제1순위가 정치적 중립성이라 할 방송통신위원장이 정치권에 거액의 돈봉투를 돌렸다는 의혹 자체가 해외토픽감이다. 자신의 멘토를 극구 방통위 수장에 임명해 결과적으로 이런 코미디를 만들어낸 장본인은 이명박 대통령이다. 늘 그렇듯 반성이나 성찰은 없다. 시치미 뚝 떼고 후임자를 임명하면 그만이다. 
중립성과 전문성. 방송과 통신 정책 수장에게 요구되는 핵심 자질이다. 두 조건을 완벽하게 비켜 간 최시중 위원장이 공공의 가치에 무관심한 것은 자연스런 귀결이었다. 그의 마음속엔 방송의 공영성 강화나 시청권 보장 같은 공적 가치 대신 정치공학이나 사업자들의 이해관계만 그득했다. 예컨대 그가 수신료를 6000~7000원(현 2500원)까지 올려야 한다고 운을 떼면서 앞세운 논리는 방송산업의 발전이었다. 시청자 편익 증대가 아니었다. 종합편성채널 광고 늘려주자고 수신료를 2배 이상 올려야 한다고 강변한 것이다. 
그는 끊임없이 <문화방송>(MBC)에 제자리를 찾으라고 요구했다. 공영방송의 외피를 벗으란 이야기였을 것이다. 공영적 소유구조에 광고로 먹고사는 방송들이 세계 여러 곳에 많음에도 억지를 부렸다. MBC 앞에 자주 붙는 공영이란 말이 마뜩잖았을 것이다. 대신 IP-TV 도입이나 종편 도입과 같은 유료채널 확충엔 적극적이었다.
 
2010년 <에스비에스>(SBS) 월드컵 단독중계나 케이블의 지상파 재전송 대가 산정을 둘러싼 갈등도 마찬가지다. 시청권보다는 사업자 이해가 우선이다. 결과적으로 많은 시청자들이 월드컵을 지상파로 보지 못했다. 케이블 가입자 수백만명이 지난달 <한국방송>(KBS) 2채널을 하루 이상 보지 못했다. 
방송과 통신은 모두를 위한 재화다. 이게 편파적으로 혹은 배타적으로 쓰였을 때 공공에 미치는 화를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80년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시민들은 가장 먼저 방송사에 분노를 터뜨렸다. 
오죽했으면 언론학자 200여명이 이 정권 초 미디어공공성포럼이란 단체를 만들었을까? 공공성이 위기에 처했는데 대학에서 학문적 논의만 할 수 없다는 절박감의 소산이다. 
최 위원장이 남긴 상처는 깊다. 2010년 말 종편 4곳을 허가한 최 위원장은 직접 광고영업 혜택까지 줬다. 종편에 준 이 떡이 재앙이 되고 있다. 종편의 미디어렙(방송광고 판매대행사) 위탁이 풀리지 않으면서 미디어 공공성을 지켜낼 방송광고판매제도의 도입이 장기간 늦춰지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종편 쪽의 무리한 영업과 SBS의 코바코(한국방송광고공사) 체제 이탈 등의 여파로 미디어 다양성의 토대인 작은 매체들 광고가 줄고 있다. 
그가 방통위원장 취임 뒤 바로 벌인 공영방송 사장들 물갈이는 방송뉴스의 공정성 상실과 신뢰도 위기로 이어졌다. 기자들은 취재 대신 낙하산 사장과 싸우는 데 에너지를 소진하고 있다. 

언론계에선 최 위원장 후임에 대한 기대가 별로 없는 듯하다. 정도 차이야 있겠지만, 정책 방향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예상 때문이다. 올바른 방송철학이나 전문성과는 동떨어진 법 전문가가 후임으로 유력하다는 예상을 보건대 이런 우려는 크게 빗나가지 않은 듯하다. 
오는 4월 국민의 선택이 각별하게 다가오는 이유이다. 무너져 내린 미디어 공공성의 가치를 다시 세울 수 있는 근본 틀을 다음 국회에서 설계하거나 마련해야 한다. 방통위 체제 개편은 물론 공영방송 사장 선임 방식 개선과 공익적인 방송광고판매제도 마련, 여론 독과점 규제 강화 등 숙제가 수두룩하다. 국민이냐, 특정 업자 편이냐? 유권자들의 선택에 따라 해법지가 달라질 것이다.

<강성만 - 한겨레신문 문화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