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에서 한나라당이 중요 쟁점 사안을 국회에서 날치기한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오만과 독선에 가득 찬 여당의 행태에 국민의 염증과 분노도 쌓일 만큼 쌓였다. 그런 터에 한나라당은 국민의 눈과 귀를 가려보려고 술수마저 동원했다. 새해 예산안을 심의하기 위한 의원총회를 여는 척하다가 갑작스럽게 본회의장을 점거했다. 심지어 본회의장 방청석을 봉쇄하고 보도진의 접근조차 막으려 했다. 역겨운 행태가 도를 넘고 극에 이르렀다.
이 대통령과 여당 지도부는 한동안 투자자-국가 소송제(ISD) 재논의 가능성을 거론했다. 이를 토대로 여당 협상파는 한-미 장관급 회담에서 이 문제를 재론한다는 방침을 서면으로 합의한다면 야당이 어떻게 할 것인가를 되묻기도 했다. 그러나 22일 상황을 보면 그런 행위들조차 위장된 몸짓으로 여길 수밖에 없다. 국회에서 몸싸움을 할 경우 내년 총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공언한 황우여 원내대표가 버젓이 원내 사령탑에 머문 가운데 벌어진 이런 일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겠는가. 이렇게 하고 한나라당이 앞으로도 신뢰 회복과 쇄신을 거론하며 국민 앞에 나설 수 있을지 참으로 의문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협정의 졸속 처리에 따른 후과이다. 일부 수출 대기업의 대미 수출 여건은 다소 좋아질지 모르겠으나 공공서비스 위축과 양극화 심화가 불 보듯 뻔하다. 협정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독소조항들은 서민생계 안정을 위한 정책 자율성을 심각하게 위협한다.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과 경제주체간 조화를 강조하는 우리 헌법의 경제민주화 조항까지 거의 유명무실해질 것으로 우려된다.
당장에는 농어업과 중소상인, 중소기업의 피해가 걱정이다. 정부가 농어업 분야에 앞으로 10년 동안 22조원의 예산 투입 계획을 발표했으나 실상은 눈속임이 많다. 협정에 따른 농어업 피해는 단지 농산물 생산 감소에 그치는 게 아니라 식량안보의 기반마저 뒤흔들 수 있다.
우리 국회의 행태는 미국 의회와 비교해도 너무나 대조적이다. 미국 의회는 지난 4년 반 동안 협상안을 나름대로 점검했다. 그 결과 두 차례 재협상을 통해 자신들한테 유리하도록 협상 내용을 고쳤다. 또 협정 이행법률안에는 협정보다 자국 법령이 우선한다는 점을 못박아, 사법주권을 철저하게 지켰다.
반면에 우리 국회는 피해 대책은커녕 번역문 오류조차 제대로 점검하지 못한 터였다. 그런 가운데 법적 구속력도 없는 협정 발효 시점에만 매달려 이번 회기 처리를 밀어붙인 것이다. 이런 행태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비준안을 날치기한 한나라당은 국민을 두려워하는 정치집단으로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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