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정대' 조사한다더니 '참고인, 안 나와도 그만'

 

박지원 "피의자 소환하고 역지사지 응해야"
한동훈 "수사 지휘 없애더니 민주당이 지휘"

주진우, 추경호 시장 재판에 증인으로 나와

 

"위헌·위법 판단할 수 없어 추에 의총 요청"
우원식 의장 표결 시간 앞당긴 탓 돌리기도
특검, 계엄 정당화 메시지 윤과 신원식 기소
합수부에 협조 지시 해경 김종욱·안성식도

 

무소속 한동훈 의원이 1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국민의힘 부산시당이 연 '2차 공공기관 이전, 왜 부산이 답인가' 토론회에 참석해 손뼉 치고 있다. 앞줄은 왼쪽부터 국민의힘 이헌승 의원, 정점식 원내대표, 이성권·김도읍·조경태 의원. 2026.8.11 연합

 

2차종합특검(권창영 특별검사)이 비상계엄 다음날 ‘당정대 회의’와 관련해 12일 참고인 신분으로 출석해 달라고 요청한 한동훈 무소속 의원이 출석하지 않자 곧바로 재소환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종합특검팀은 이날 오후 언론 공지를 통해 “한 의원에게 당정대 회의 관련 참고인 신분으로 금일 오전 10시까지 출석하라는 통지서를 의원실을 통해 전달했으나, 한 의원은 출석 여부에 대한 답변 없이 불출석했다”며 “불출석 사유서도 제출하지 않았다”고 알렸다. 특검팀은 “수사 기간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을 고려해 한 의원에 대한 재소환은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종합특검은 12·3 불법 비상계엄이 해제된 이후 열린 ‘당·정부·대통령실(당정대) 회의’에서 12·3 내란을 정당화하는 논리가 개발됐다고 의심하고 있다. 2024년 12월 4일 새벽 국회 의결을 통해 비상계엄이 해제된 이후 같은 날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삼청동 국무총리 공관에서 당정대 회의가 열렸다. 국민의힘 측에선 당시 한동훈 대표와 추경호 원내대표, 나경원·김기현 의원, 정부 측에선 한덕수 국무총리와 박성재 법무부 장관, 방기선 국무조정실장이 참석했다. 대통령실 측에선 정진석 대통령비서실장, 신원식 국가안보실장, 홍철호 정무수석, 김주현 민정수석이 자리했다. 이후 오후 5시쯤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과 한 의원, 한덕수 전 총리,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만나 후속 대책을 논의했다.

 

종합특검은 그날 오후 7시에 열린 삼청동 안가 회동이 당정대 회의의 연장선상에서 이뤄진 것이 아닌지 의심한다. 안가 회동에는 당정대 회의에 참석했던 박성재 장관과 김주현 수석을 비롯해 이상민 장관, 이완규 법제처장, 한정화 법률비서관이 모였다. 박 전 장관, 김 전 수석, 이 전 처장은 국회 국정조사에서 안가 회동이 ‘단순 친목 모임’이었다고 주장했다.

 

서울중앙지검 형사합의33부(재판장 이진관)는 지난 6월 박 전 장관에게 징역 25년을 선고하면서 안가 회동이 윤 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계엄의 정당성과 불가피성을 옹호하는 논리를 구축한 회의였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이 자리에서 내란의 책임을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에게 전가해 윤 전 대통령 수사를 차단하는 방안이 논의돼 윤 전 대통령에게도 보고됐다고 판단했다.

 

한 의원은 소환 통보 사실이 알려진 직후인 지난 6일 페이스북을 통해 "저는 계엄 당일 여당 대표임에도 누구보다 앞장서서 계엄을 저지했다"며 특검의 소환 시도를 강력히 비판했다. 그는 "선거 기간에 아무 이유도 없이 출국금지시켜놓고 몇 달씩 멋대로 연장해 가면서도 한 번도 부르지도 못하더니, 이제 와서 보여주기식 언플(언론플레이)이나 하는 이재명 정권의 정치특검이 하려는 정치수사를 도와줄 생각은 없다"며 조사에 응할 뜻이 없음을 명확히 했다.

 

특히 한 의원은 지난 9일에 다시 글을 올려 특검 측의 언론 인터뷰 내용을 거론하며 대립각을 세웠다. 당시 특검 관계자가 언론을 통해 "한 의원이 '출국금지만 걸어놓고 부르지 않는다'고 하길래 이번에 정식으로 소환했다", "참고인이니 와도, 안 와도 그만이다"는 취지로 발언한 점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한 의원은 "이재명 정권의 정치특검이 저를 소환한다고 ‘언플’해놓고서 '안 와도 그만이고, 출금해놓고 왜 안 부르냐니 불렀다'고 말했다고 한다"며 "'안 와도 그만'이고 '출금해놓고 왜 안 부르냐니 불렀다'는 것은 '뒷골목 깡패의 언어'지 '수사기관의 언어'가 아니다"라고 독설을 퍼부었다.

 

핵심 당사자인 한 의원이 출석하지 않고 특검이 재소환을 포기함에 따라 특검팀은 한 의원을 조사하지 않고 최종 수사 결과 정리 수순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박지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종합특검이 한 의원을 재소환할 계획이 없다고 밝힌 데 대해 한 의원을 '참고인'이 아니라 '피의자'로 소환하라고 압박했다. 박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2차 종합특검팀이 한 의원을 참고인 신분으로 두 번째 소환 통보했지만 한 의원이 거부했다"며 한 의원을 향해 역지사지(易地思之) 심정으로 특검 소환에 응하라고 촉구했다. 이어 "한 의원은 검사, 법무장관 출신으로 수사할 때 참고인이 불출석하면 어떻게 했냐"며 "특검도 한 의원을 참고인이 아니라 내란 개입 혐의 피의자로 소환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에 한 의원은 "박 의원이 정치특검에게 저를 피의자로 부르라고 수사지휘했다"고 맞받아쳤다. 그는 이날 페이스북에 "검사의 수사지휘 없애더니 이젠 민주당이 직접 수사지휘를 한다"며 "정치특검이 민주당 수사 지휘에 따르나 보겠다"고 경고했다. 이어 "박 의원은 계엄을 막은 저 대신 숲에 숨은 이재명 대통령, (밤) 10시에 감기약 먹고 잤다는 김민석 전 총리나 출국금지하고 부르라고 정치특검에게 수사지휘하라"고 비꼬았다.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이 12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2·3 비상계엄 당시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방해한 혐의로 기소된 추경호 전 원내대표 9차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하고 있다. 2026.8.12 [공동취재] 연합

 

한편 주진우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추경호 대구시장의 국회 계엄해제 표결 방해 혐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비상계엄 선포 직후 정보가 부족해 위헌·위법성을 판단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당시 국민의힘 원내대표였던 추 시장이 혼란한 상황에서 정보 공유를 위해 계엄 해제 표결 전 국민의힘 의원총회를 소집한 행위는 정당했다는 취지다.

 

서울중앙지법 형사34부(재판장 한성진)는 추 시장의 내란 중요임무 종사혐의 공판을 열었다. 이날 재판에는 주 의원과 같은 당 박수민 의원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이들은 12·3 내란 당시 국회 본회의장에 들어가 계엄 해제 결의안에 찬성표를 던진 국민의힘 의원 18명 중 2명이다. 주 의원은 검사 출신으로 윤석열 정부 대통령실에서 법률비서관을 지냈다.

 

주 의원은 자신이 당 지도부에 긴급의총 소집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그는 “상식적으로 저뿐만 아니라 다른 의원들도 의총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며 “정보가 한정적인 상황이라 의견을 나누고 정보를 공유할 필요도 있었다”고 말했다.

 

‘12·3 계엄 해제를 의결하기 전, 계엄 선포가 위헌·위법이라고 판단했느냐’는 추 시장 측 변호인 질문에 주 의원은 “저는 그렇게 판단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주 의원은 “당시 정보가 한정돼 위법성 여부까지 판단하기는 불가능했다”며 “(민주당 의원들이) 150명을 넘어서 무조건 해제되는 상황이어서 (국민의힘 의원들끼리는) 이후 정국 상황이 어떻게 돌아갈지로 논의가 넘어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주 의원의 설명과 달리 국민의힘 의원들이 의원총회를 열자고 논의하던 시점에는 민주당 의원들이 150명 이상 모일 수 있을지 자신할 수 없는 상태였다.

 

주 의원은 의총 장소가 국회에서 당사로 변경된 점, 당사에 모인 국민의힘 의원들이 표결에 참여하지 못한 주된 원인은 국회 출입 봉쇄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주 의원은 “(국회가) 다시 열렸다가 봉쇄됐고, 출입을 통제한 시간과 강도가 시시각각 변했다”며 “의원들은 국회가 막혀있고 혼란스러우니 당사로 갔다”고 말했다.

 

오히려 우원식 당시 국회의장이 표결을 예고했던 시간보다 앞당겨 국민의힘 의원들이 표결에 참여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주 의원은 “본회의장에서 민주당 의원조차도 우 전 의장에게 ‘왜 표결을 빨리하지 않느냐’고 항의했다”라며 “저는 이재명 대통령(당시 민주당 대표)의 출입 시간을 맞췄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주 의원은 “(이 대통령의) 출입이 이뤄지고 나서 빠르게 (표결을) 하려다 보니까 고지 시간보다 앞당긴 것”이라며 “정말 긴급했다면 이 대통령 출입과 상관없이 신속히 의결했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갑자기 (표결을) 당기다 보니까 (국민의힘 의원들이) 들어오기에 현실적으로 어려웠다”고 했다.

 

12·3 내란 당시 국민의힘 원내대표였던 추 시장은 계엄 선포 직후 의원총회 소집 장소를 ‘국회→당사→국회→당사’로 3차례 바꿔 국민의힘 의원들이 계엄 해제 의결에 참석하지 못하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당시 국회의 계엄해제 요구결의안은 ‘재석 190명 전원 찬성’으로 통과됐는데, 국민의힘 의원은 108명 중 18명만 참여했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차 페루를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이 15일(현지시간) 페루 리마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윤 대통령 오른쪽은 신원식 국가안보실장. 2024.11.16 연합 자료사진

 

오는 23일로 수사 기한이 종료되는 종합특검은 이날도 기소를 이어갔다. 비상계엄 선포 직후 우방국에 계엄을 정당화하는 메시지를 전달하도록 지시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윤 전 대통령과 신원식 전 국가안보실장을 불구속 기소했다. 윤 전 대통령은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혐의로, 신 전 실장을 내란중요임무종사 및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윤 전 대통령은 비상계엄 선포일인 2024년 12월 3일부터 다음날까지 이틀에 걸쳐 미국, 영국, 일본, 유럽연합(EU) 등 주요 우방국에 비상계엄을 정당화하는 내용의 메시지를 전파한 혐의를 받는다. 이에 따라 직권을 남용해 국가안보실, 외교부 등 소속 공무원들에게 의무 없는 일을 하도록 했다는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종합특검이 윤 전 대통령을 기소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가 받는 재판은 다시 8개로 늘어났다. 윤 전 대통령이 기소된 사건은 이번 사건까지 아홉 건인데 한 건은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내려졌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체포방해 등 혐의 사건이 지난달 9일 대법원에서 징역 7년형이 확정됐다.

 

신 전 실장은 윤 전 대통령, 김태효 전 국가안보실 제1차장과 순차 공모해 비상계엄을 정당화하는 내용의 메시지를 전파하도록 해 내란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대외적인 지지를 확보하려 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검팀은 앞서 지난달 29일 김 전 차장을 12·3 비상계엄 선포 후 우방국에 계엄을 정당화하는 메시지를 전달한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이에 따라 특검은 "법원에 해당 재판과 김 전 차장의 재판을 병합해 심리해줄 것을 요청했다"며 "공범 3명에 대해 동일 절차에서 재판이 진행되길 바란다"고 했다.

 

종합특검은 또 김종욱 전 해양경찰청장과 안성식 전 해경 기획조정관은 각각 내란부화수행 및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김 전 청장과 안 전 조정관은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직권을 남용해 합동수사본부 해경 인원을 증원 편성하고 해경청 구금시설을 제공하려고 시도한 혐의를 받는다. 직원 1명을 합동참모본부에 정부 연락관으로 파견해 내란 행위에 부화수행했다는 혐의도 있다.

 

당시 김 전 청장은 연락관 파견을 반대하는 부하 직원의 의견을 묵살하고 "한 명이라도 파견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조사됐다.

 

다만 연락관이 계엄사에 도착하기 전 해경에서 비상계엄이 해제됐다는 통보를 받아 연락관 파견을 해제했고, 연락관도 계엄사 도착 전에 복귀한 것으로 파악됐다.

 

안성식 전 조정관은 윤 전 대통령의 충암고 후배로 2023년부터 방첩사와 교류하며 계엄 합동수사본부(합수부)에 해경이 자동 편제되도록 내부 규정을 변경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인물이다. 그는 비상계엄 선포 이후 소집된 전국 지휘관 화상회의에서 파출소 청사 방호를 위한 총기 휴대 검토와 합수부 파견 인력 증원 등을 주장한 것으로 조사됐다. 회의 이후 안 전 조정관이 '계엄 사범들이 많이 올 것 같으니 유치장을 비우고 정비하라'고 지시했다는 진술도 나왔다.

 

앞서 특검팀은 지난달 3일 두 사람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은 범죄혐의에 다툼의 여지가 있다며 영장을 기각했다.                                         < 임병선 기자 >

 

 

 

검찰개혁 지지자를 아이히만에 비유하고 모독
보완수사권 폐지는 검찰 개혁의 필연적인 결론
한국 리버럴세력, 단일하지도 철저하지도 않다

 

지배 질서의 일부가 된 자유주의 세력의 문제점
사실과 맥락이 틀린 레닌과 소비에트 구호 비유
어설픈 인용보다 검찰 피해와 고통에 공감부터

 

<한겨레>의 아주 오랜 독자로서 꼭 챙겨보는 필자의 글이 있는 반면, 그렇지 않은 글도 있다. 미안한 말이지만 이세영 논설위원의 글은 시간이 부족하면 잘 챙겨보지는 않았다. 지적 능력과 지식을 과시하는 듯한 문장들, 그리고 불필요하게 길고 이해하기 어려운 글이라는 느낌이 있었기 때문이다. 더 간결하고 명료하며 힘 있는 문장들을 좋아하는 개인적 선호도 작용했다. 그래서 이번 검찰 관련 칼럼 역시 그냥 지나치려 했다.

 

그러나 온라인 공간에서 많은 이들이 비판하고 부정적으로 반응하는 것을 보면서, 어떤 내용인지 궁금증과 호기심이 생겨 글을 찾아 읽게 되었다. 끝까지 읽고 느낀 것은 실망감과 함께, 너무 나갔다는 씁쓸함이었다. 이번 검찰 개혁 법안이 통과되는 과정 속에서, 그것을 주도한 사람들에게서 나타난 모습이 "아렌트가 피고인 아돌프 아이히만한테서 감지해 낸 감정 상태"라고 단정 지은 문장이 대표적이다.

 

이 문장은 검찰의 무소불위 권력을 해체하기 위해 싸워 온 수많은 시민과 정치인들을, 홀로코스트라는 전대미문의 인종 학살을 기획하고 집행한 나치 핵심 학살자에 비유하며 매도하고 조롱한 셈이다. 아렌트가 아이히만을 두고 제시한 '악의 평범성'을 검찰 개혁이라는 민주적 권력 통제 시도에 왜곡 적용하여, 시민적 열망을 무비판적 광기나 사유 부재의 상태로 깎아내린 것은 지나친 비약이 아닐 수 없다. 

 

한겨레 이세영 논설위원의 칼럼 화면 갈무리 

 

이런 식으로 검찰 개혁의 과제와 지지자들을 깔아뭉개고 욕보이는 화법은, 검찰 개혁에 원래부터 반대해 온 윤석열과 국민의힘, 그리고 친검 족벌 언론들의 입을 통해서는 오랫동안 식상하도록 반복되어 왔다. 그러나 진보적 개혁 언론인 <한겨레>의 논설위원이라면, 문제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훨씬 더 깊이 있고 품격 있는 접근을 기대하는 것이 독자로서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게다가 이세영 논설위원은 검찰의 보완수사권 폐지 논의를 가리켜 "최초의 목적 자체를 증발시켜 버리는 증상"으로 설명하고 있었다. 이러한 진단은 그가 과연 지난 수십 년간 한국 사회에서 검찰 개혁이 왜 그토록 중요한 시대적 과제로 제기되었는지, 그 역사적 이유와 목적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었는지 의구심을 갖게 만든다.

 

한국 검찰 문제의 핵심은 기소권뿐만 아니라 수사권까지 한 손에 쥐고 스스로 수사하고 기소하며 처분까지 내리는 유례없는 '권력의 독점'에 있었다. 이러한 권력의 분리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할 때, 수사권의 변형된 일부인 보완수사권의 폐지는 '목적의 증발을 보여주는 증상'이기는커녕, 너무나 자연스럽고 필연적인 논리적 결론일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보완수사권은 남겨두자'는 이재명 정부 일부 관료들과 법무부의 타협적 주장에 대해, 많은 검찰 개혁 지지자들이 '검찰 개혁의 목적은 어디로 갔느냐'고 강력히 반발했다. 더욱이 이해할 수도 없고 동의할 수도 없는 것은 이세영 논설위원이 '검찰 수사권 박탈'을 "한국 리버럴의 핵심 슬로건"이라고 규정하는 부분이었다. 이것은 왜곡이 아니면 오판이다.

 

먼저, 한국의 리버럴(자유주의) 세력은 결코 단일하지 않다. 이세영 논설위원이 몸담고 있는 <한겨레>나 <경향신문> 같은 대표적인 자유주의적 개혁 언론들이 그동안 검찰 개혁에 대해 보여준 심드렁한 태도만 보더라도 이 사실을 알 수 있다. 대개 많은 자유주의적 지식인과 언론들은 검찰 개혁에 무관심하거나, 흔히 '먹고사는 문제'와 무관한 여야 간 진흙탕 정쟁 정도로 깎아내리기 일쑤였다.

 

나아가 그들은 오히려 엘리트 검사들의 시각과 법률가적 논리에 이입하여 그들의 편에서 문제를 접근하고 설명하는 경향을 보여 왔다. 이것은 '자유주의 세력'이 역사 속에서 언제나, 어디서든 억압적 국가기구의 민주적 개혁이나 근본적 구조 개혁의 문제 앞에서 불철저하고 타협적인 한계를 드러내 왔다는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

 

'자유주의 세력이 자유주의적 개혁 과제에서 오히려 한 발 빼고 타협하는' 이 모순적 현상은, 오늘날 그들이 기존 지배체제와 권력 질서의 일부라는 사실과 관련 있다. 오늘날의 자유주의 세력은 과거 봉건적 질서에 피를 흘리며 싸우던 혁명적 자코뱅이 아니다. 그들은 이미 자본주의 체제와 국가기구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운영하는 기득권의 일부이다.  

 

아이히만. 나무위키

 

예컨대 미국 민주당의 리버럴 주류 세력이 트럼프의 집권과 극단적 폭주를 가능하게 만든 비민주적인 승자독식 선거제도나 헌정체제의 구조적 허점을 굳이 건드리고 싶어 하지 않는 이유도 이와 같다. 비민주적인 그런 제도 자체가 자신들이 권력을 나누어 가질 수 있게 만든 오랜 정치적 기반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은 후발 자본주의 국가들에서 더욱 심화하는 경향이 있다. 국가 주도의 강력한 자본 축적 과정과 권위주의적 방식이라도 동원해 선진국을 따라잡아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국가의 억압기구는 지배 엘리트 모두의 유용한 통치 도구였다. 따라서 '한국 자유주의 세력의 핵심 과제'로서 검찰 수사권 박탈을 설명하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그렇다면 왜 정부 수립 후 78년이 지나도록, 더구나 자유주의 세력이 국가권력을 공유하게 된 1987년 민주화 이후에도 40년 가까이 검찰 수사권 박탈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미루어져 왔는지 설명하기 어렵다. 또한, 자유와 민주주의의 핵심적 걸림돌인 국가보안법 폐지에 대해 자유주의 정치세력과 지식인, 언론 대다수가 큰 관심이 없는지 설명할 수 없다.

 

나아가 대부분의 자유민주주의 국가라면 갖추고 있는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는 일에도, 한국의 자유주의 정치세력이 표 계산을 더 앞세우는지도 이해하기 어렵다. 자유주의 세력은 억압적 국가기구의 민주적 개혁과 철저한 민주적 권리를 약속하지만, 막상 권력을 잡으면 기득권 세력의 반발에 쉽게 타협하고 물러섰다는 게 진실에 가깝다. 또 자신들의 정권 안정과 통치를 위해 억압적 국가기구를 활용하기도 했다.

 

현재 이재명 정부가 검사 출신의 인사를 민정수석 자리에 거듭 임명하고,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이재명 정부의 검찰은 다르다'라는 발언으로 거센 반발을 산 이유도 비슷하다. 검찰이라는 칼의 본질이 달라지지 않음에도, '우리가 잡은 검찰은 다를 것'이라는 착각과 타협이 반복된다. 그렇기에 이세영 논설위원이 이번 칼럼의 첫 부분에서 레닌을 인용한 것은 뜬금없으면서도 지적 허세로 느껴진 것이 사실이다.

 

아마도 '슬로건을 중시하던 혁명가 레닌조차도 구체적 상황에 맞게 구호를 수정하거나 폐기할 줄 알았다'고 강조하며 자신의 급진성도 보여주고 싶었던 듯 하지만, 이것은 현재 한국의 상황과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1917년 당시 레닌과 볼셰비키가 펼쳤던 구체적 실천과도 맞지 않다. 우선 "모든 권력을 소비에트로"라는 구호는 레닌과 볼셰비키에게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혁명의 성격을 규정하는 전략적 방향이었다.   

 

1920년의 레닌. 위키피디아

 

이 구호는 1917년 2월 혁명으로 차르(전제군주) 정권을 타도한 이후, 부르주아 임시정부의 한계 안에 머무를 것인가, 아니면 노동자와 농민의 자치 기구인 소비에트 권력으로 이행할 것인가를 판가름하는 이정표였다. 혁명의 궁극적 과제와 권력의 계급적 성격에 관한 문제를, 정세에 따라 언제든 폐기할 수 있는 구호의 문제로 설명하는 것은 무지가 아니면 왜곡에 가깝다.

 

1917년 7월의 불리한 정세 속에서 이 구호가 잠시 보류되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소비에트 내부에서 볼셰비키가 다수를 차지하기 시작한 9월에 이 구호는 즉시 되살아났다. 무엇보다 이 구호는 단지 레닌이 발명해 낸 것이 아니라, 러시아의 공장과 거리의 투쟁 속에서 볼셰비키 당원들과 노동자 대중이 스스로 만들어 낸 열망의 결정체였기에 지도부의 임의적인 판단으로 철회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더욱이 레닌과 볼셰비키의 강령과 역사를 조금만 살펴본다면, 그들이 차르 체제의 억압 기구였던 검찰과 사법 권력에 대한 민주적 통제와 철저한 개혁을 항상 핵심적 과제로 제기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들은 검찰의 기소 독점권과 관료적 면책권을 해체하고, 모든 수사 과정과 재판을 대중 앞에 투명하게 공개하며, 특권화된 법률 관료들을 언제든 선출하고 파면해야 한다는 요구를 내걸었다.

 

그 이유는 명확했다. 차르 전제 정권이 민중을 수탈하고 권력을 유지하던 핵심 수단이 바로 비밀경찰과 검찰, 사법부, 그리고 이들과 결탁한 반동 언론이었고, 레닌과 볼셰비키 스스로가 바로 그러한 검찰 권력의 표적 수사와 편파 기소, 독일의 첩자로 몰아가는 여론재판과 마녀사냥에 의해 수많은 동지를 잃었던 직접적인 피해자들이었기 때문이다.  

 

한인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왼쪽에서 두 번째)와 한동수 변호사(네 번째) 등이 6월 5일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바람직한 검찰개혁을 위한 시민 주도 신형사소송법 개정 촉구 기자회견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조국혁신당 박은정 의원 페이스북
 

따라서 이세영 논설위원이 진심으로 '레닌에게서 지혜를 배워라'고 충고할 생각이었다면, 기득권과의 어설픈 타협에 안주하지 말고 더욱 철저하게 검찰 권력을 해체해야 하며, 특히 '검찰 수사권의 박탈'이라는 전략적 방향성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하는게 더 타당했다. 물론 레닌과 볼셰비키가 언제나 옳았던 것은 아니며, 그들이 구축한 체제의 한계와 오류에 대해서는 오늘날 비판적으로 재검토해야 할 대목이 수없이 많다.

 

그렇기에 지금 중요한 것은 레닌이나 아렌트 같은 이름을 과시적으로 끌어와 어설프게 인용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78년이라는 세월 동안 검찰 권력에 의해 얼마나 많은 피해자들이 얼마나 참혹한 피해와 고통을 겪어야 했는지 직시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것을 목도해 온 보통의 시민들이 왜 그토록 거리와 광장에서 '검찰 개혁'을 외쳐 왔는지 그 절박한 마음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일이다.                     < 전지윤 사회운동가·연구평론가 >

 

 

[목회칼럼- 기쁨과 소망] 

“사랑으로 심은 씨앗 찬양으로 꽃 피우다”(1)

 

    해외한인장로회(KPCA) 캐나다 동노회,  한국선교 130주년 맞아

내한선교사 기념사업...발굴위원회(KCHM), W.R. Foote 선교사 자료 찾아 전기작업

염광 에벤에셀 권사찬양단, 9월5일(토) 오후 6시30분...Foote 기념사업 후원 음악회

   

이요환 목사 ( 토론토 소금과빛 염광교회 담임)

 



우리는 역사 속에서 거저 얻은 은혜가 참 많습니다. 오늘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평화, 그리고 생명의 복음은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이들의 헌신이라는 단단한 토대 위에 서 있습니다. 거기엔 우리 캐나다 선교사들이 있습니다.

 

3년전 캐나다 최초의 자비량 선교사인 맥켄지선교사를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았습니다. 조선을 향한 그의 짧은 선교의 희생은 한알의 밀알이 되어 오늘 우리는 복음의 빚진자가 되었습니다.

 

그의 한국 선교 130주년(2023년 10월)을 기념하기 위해 해외한인장로회 캐나다 동노회는 ‘맥켄지 선교사 기념사업회’(위원장 이요환)를 세우고, 잊혀진 선교사들에 대한 감사와 다음 세대들의 신앙의 전수를 위한 사업을 전개해, 노바스코시아 케이프 브래튼의 맥켄지 고향의 가족묘지에 ’맥켄지 묘비‘를 세우고, 핼리팩스교회내에 ’캐나다 선교사 기념 전시장‘과 ’맥켄지의 동판‘을 세우는 작업을 성공적으로 마치게 되었습니다. 그 배경엔 캐나다 동노회와 서노회(밴쿠버) 교회들과 성도들의 물질적인 후원이 큰 힘이 되었습니다.

 

그 사업이후 노회에서는 '내한 선교사 발굴위원회'(코캄/ 위원장 이요환)를 세워 계속적으로 감춰져 있는 캐나다 선교사들을 발굴하는 사역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 일을 통하여 소중한 역사적 보물을 세상에 드러내고, 그 분들의 발자취를 온전히 기록하기 위한 사업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19세기 말, 한 알의 밀알이 된 선교사 맥켄지의 고귀한 희생을 기억하며 캐나다 장로교단(PCC)은 최초로 공식 선교사 3명을 조선에 파송했습니다. 그리어슨, 맥래, 푸트 선교사입니다. 그중 그리어슨과 맥래의 자취는 후대에 자서전적 책자를 통해 조금 알려져 있지만, W. R. 푸트(Foote) 선교사의 구체적인 발자취는 오랜 세월 어둠 속에 묻혀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시간은 정확했습니다. 2024년, 코캄(Korea Canada Heritage Mission / 내한 선교사 발굴위원회)는 캐나다 핼리팩스 아카이브(자료박물관)에서 푸트선교사의 친필 일기와 기록이 담긴 5박스의 문서를 극적으로 찾아내게 되었고, 더구나 여기에는 아카이브측의 전폭적인 디지털 구축의 비용을 부담하고 협조해 준 덕택으로 그의 전기작업을 획기적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물론 푸트 선교사를 비롯한 무명의 캐나다 선교사들이 그들의 이름을 알리기 위해 사역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들의 사역은 황무지와 같았던 조선 땅에 건너와 병원과 남녀학교와 고아원과 직업학교와 신학교를 세워 조선의 일꾼들을 길러냈습니다. 그들이 건넨 작은 손길 하나하나는 오늘의 대한민국과 한국 교회를 세운 거대한 밀알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번에 토론토 소금과 빛 염광교회의 기도의 어머니들인 권사님들로 구성된 ’에벤에셀 권사 찬양단‘이 2026년 9월 5일(토) 6시 30분에 창단후 17년만에 첫 공연을 하게 되는데, 그 찬양은 그 모든 은혜에 감사하는 고백의 찬양이 될 것입니다. 기록으로 되살아난 푸트 선교사의 사랑이 우리의 기도와 찬양을 통해 다시 살아나고 있습니다. 복음의 빚진 자 된 우리가 선교사들이 ’사랑으로 심은 씨앗을 찬양으로 꽃피우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후원 : ykdonate@gmail.com)

 

 

“사랑으로 심은 씨앗, 찬양으로 꽃 피우다”(2) 

 

핼리팩스 아카이브 서고 속에서 푸트 선교사 친필 일기와 기록 발굴

조선백성 향했던 눈물과 기도, 이름도 빛도 없는 선교의 생생한 증언

 

"너희는 그 땅에 뿌려진 피와 땀의 역사를 기억하느냐"

 

역사는 기억하는 자의 몫이며, 은혜를 아는 자는 미래를 창조합니다. 2023년 10월에, 해외한인장로회(KPCA) 캐나다 동노회 맥켄지 기념사업회(위원장 이요환)는 조선 땅에 최초로 복음의 씨앗을 뿌렸던 캐나다 자비량 선교사 맥켄지의 삶을 재조명했습니다. 이 기념사업은 잔잔하지만 깊은 울림을 주었고, 많은 이들이 캐나다와 한국을 잇는 영적 혈통의 깊이를 깨닫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맥켄지의 희생을 통해 조선 땅의 눈물을 본 캐나다 장로교단(PCC)은 마침내 교단 공식 선교사 3인방, 즉 그리어슨, 맥래, 푸트를 조선으로 파송하는 결단을 내렸습니다. 그들의 사역후 그리어슨과 맥래선교사의 자전적 책자는 발간되었지만, 푸트(W. R. Foote) 선교사에 대한 사역은 특별히 드러난 것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해외한인장로회 캐나다 동노회 ‘내한 캐나다 선교사 발굴위원회’(코캄)의 노력으로 2024년, 캐나다 핼리팩스 아카이브의 차가운 서고 속에서 푸트 선교사의 친필 일기와 기록이 고스란히 담긴 5박스의 문서가 발견되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종이 뭉치의 발견이 아니었습니다. 한 선교사가 조선의 백성들을 향해 품었던 뜨거운 눈물과 기도, 그리고 이름도 빛도 없이 스러져 간 선교 현장의 생생한 증언이 부활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 중대한 역사적 발견 앞에서 깊은 소명의식을 가지고 발굴 및 연구 사업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푸트 선교사의 기록에는 조선 말기의 참혹한 생활상, 전염병과 가난 속 신음하던 이들에게 베푼 인술, 그리고 복음을 전하며 겪었던 영적 고뇌가 고스란히 적혀 있습니다. 특별히 캐나다 선교부가 배정받았던 함경도와 만주(간도)땅에 쫓겨나 흩어져 살던 디아스포라 조선인들의 정체성을 키워온 민족학교들로 우리의 정신을 기독정신으로 세워졌던 그 기록들은 우리에게 묻고 있습니다. "너희는 그 땅에 뿌려진 피와 땀의 역사를 기억하느냐"고 말입니다.

 

특별히 캐나다 선교사들이 조선에 행한 일은 단순한 종교 전파만이 아니라 전인격적인 구원이었습니다. 그들은 당시 비위생과 질병으로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병원을 세워 육체의 아픔을 치유했고, 배움의 기회가 없던 여성과 소외된 아이들에게 학교를 열어 지혜의 문을 넓혀주었습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이 세계 속에 경제 대국이자 선교를 나누는 제사장 나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근저에는 이렇듯 이름도 알지 못했던 조선을 위해 자신의 가장 귀한 청춘과 생명을 바친 캐나다 선교사들의 희생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영적, 문화적, 역사적 거대한 빚을 진 사람들입니다.

 

이 거룩한 역사적 발견과 발굴 작업을 후원하기 위한 뜻깊은 자리가 마련되었습니다. 토론토 소금과 빛 염광교회의 에벤에셀 권사찬양단 39명이 이번 9월 5일(토) 6시 30분에 이 푸트 선교사의 발굴과 기념사업 후원을 위한 자선 음악회를 무대에 올립니다. 이 공연은 한 교회의 행사를 넘어서는 것입니다. 그것은 100여년 전 캐나다에서 건너와 척박한 조선 땅에 사랑을 심고 간 선교사들의 영혼을 위로하고, 그들이 남긴 미완의 기록을 온전히 복원하여 다음 세대에 전수하는 거룩한 선교적 사명입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가 없듯, 은혜를 잊은 성도에게는 생명력 있는 신앙이 있을 수 없습니다. 연로하신 분들도 많은 권사 찬양단의 목소리가 토론토 교민 사회와 온 교회의 가슴을 적시고, 캐나다 땅에 묻혀 있던 선교사의 사랑이 한국 교회 위에 다시 한번 불꽃으로 피어오르기를 소망합니다. 우리의 작은 후원의 손길과 뜨거운 기도는, 과거 캐나다 선교사들이 우리에게 베풀었던 그 사랑의 빚을 가장 아름답게 갚아나가는 거룩한 실천이 될 것입니다.

                                               (후원 : ykdonate@gmail.com)        < 문의 : 905-415-91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