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과 소망] 목마름

● 교회소식 2018. 5. 1. 19:35 Posted by SisaHan

내가 신앙 생활하면서 살아 왔던 지난 수십년 동안의 한국 교회를 되돌아 볼 때, 가장 먼저 경험한 것은 교회마다 유행처럼 행했던 말씀 부흥회와 신유 집회이다. 그 후 한 때는 많은 진보 그리스도인들이 역사의식을 가지고 정치 참여에 열을 올렸다. 심지어 교회와 신학교 안에도 정치 참여 구호와 현수막이 휘날렸다. 그리고 또 한 때는 제자훈련, 교회성장 세미나, 전도 세미나 등의 훈련 프로그램의 개최를 알리는 현수막들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 후에는 시조를 쫓아 열린 예배가 유행하였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지금 한국 교회는 맘몬주의, 양적 팽창주의, 성공주의, 세속주의의 늪에 빠져 허덕이고 있다. 롤모델이 되는 교회, 목사, 평신도 지도자들을 찾아 보기 힘든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지금 교회와 성도는 십자가 진리의 길을 따라가기 보다는 세속의 물결 속에 휩쓸려 세상의 부귀와 자랑과 영광을 쫓아 가고 있다.


이런 영적 어둠의 시대에 한국 교회와 이민교회에 영적 각성과 참된 부흥을 향한 목마름이 필요하다. 지금 교회는 물질주의와 세속주의의 물결을 따라 성장주의, 팽창주의, 성공주의, 패권주의를 추구하고 있다. 목사들은 진리의 말씀을 담대하게 전하는 선지자들이 아니라 사람들의 기분을 맞추며 예배 의식을 진행하는 배부르고 타락한 제사장들이 되어 버렸다. 성도들은 헌신하고 희생하기 보다는 자신의 즐거움과 필요를 채워주는 행사와 프로그램을 쫓아 교회를 다닌다. 그래서 더욱 많은 사람들이 대형교회로 몰려 든다. 결국 작은 교회는 점점 작아지거나 문을 닫고 대형 교회는 형식적인 신자들의 숫자만 늘어 간다. 이렇게 교회와 성도들은 복음의 능력과 생명력을 상실한 채 편안함과 즐거움과 풍요로움에 취해 주님의 복음을 추구하는 삶을 살지 않고 자신의 욕망과 필요를 추구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어둠의 시대에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살아야만 하는가? 이 시대의 어둠을 찬란하게 밝히는 불꽃 같은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시대의 어둠을 밝히는 영적 각성과 참된 부흥에 대한 거룩한 부담과 갈망이 있어야 한다. 영적 목마름이 있어야 한다.


작금의 기독교의 참담한 현실 앞에서 목사로서 거룩한 슬픔을 느낀다. 또한 때로는 목사인 나 자신의 영적 무능함과 초라함에 더욱 슬퍼지기도 한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런 거룩한 슬픔과 자아 각성을 통해 나에게 새로운 영적 각성과 영적 부흥에 대한 거룩한 부담과 갈증을 주신다. 이것은 참된 교회됨의 회복에 대한 목마름이다. 복음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참된 신자됨에 대한 목마름이다. 초대 교회의 부흥을 가능하게 하였고, 종교 개혁을 가능하게 하였고, 청교도들의 순교의 신앙을 가능하게 하였던 참된 복음의 부흥에 대한 참을 수 없는 갈증이다. 복음의 능력과 성령의 권능과 주님의 사랑이 지배하고 다스리는 교회와 기독교 공동체의 회복에 대한 사무치는 갈망이다. 자신의 부귀와 영광과 자랑을 추구하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명과 십자가 고난의 삶을 추구하는 삶을 사는 참된 부흥과 각성에 대한 열정이다. 이 어둠의 시대에 이러한 영적 목마름이 이 땅에 불같이 일어나기를 소망해 본다.

< 박원철 목사 - 늘사랑교회 담임목사 >


빌라델비아장로교회에서 말씀을 전하는 임현수 목사.

임현수 목사, 북한체험에서 얻은 ‘감사의 능력’ 간증

2년6개월간 북한 억류 수형생활을 경험한 임현수 목사(큰빛교회 원로)는 “하나님 은혜로 감옥 안에서나 밖에서나 단 한 번도 무서운 꿈을 꾸어 본 적이 없었다”고 지금까지 전혀 ‘트라우마’가 없다는 사실을 간증하며 “감사하다 보면 감사 자체가 능력이 된다”고 ‘감사의 능력’을 전했다.
임현수 목사는 지난 4월18일 빌라델비아 장로교회(담임 김치길 목사)의 수요 헌신예배에 초청받아 ‘감사의 능력’(단 6:10)이라는 제목으로 북한체험을 간증하며 이같이 말씀을 전했다.
임 목사는 “사도바울이 감옥에서 감사기도를 드렸을 때처럼 무너지거나 지진은 없었지만 생각이 변화되는 것을 보는 것이 제일 큰 승리였던 것 같다.”면서 “사형이 무기징역이 되고, 절대 수형자와는 대화를 못하게 되어 있는 경비대원들이 차츰 말을 붙이기 시작하더니 상담을 해오기도 했다. 그들이 변화되며 죄수인 내가 상담자가 되고 관계가 수립되어 복음을 전해도 되겠구나하는 생각도 들게 됐다.”고 소개하며 “감사하면 감사 자체가 능력이 되는 것”이라고 거듭 밝혔다.


임 목사는 체험에서 우러난 많은 감사의 대상들을 열거해 은혜를 전했다.
먼저 갇힌 상태를 벗어난 자유에 대한 감사의 소중함을 강조했다. 그는 “자유는 값없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며 많은 피를 흘림으로 한국이 오늘 자유를 누리는 것처럼 영적 자유도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의 핏값으로 우리가 자유를 누리는 것을 절대 잊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또 ‘배부름의 감사’로, 요즘 너무 먹어서 병들 정도이지만 북한에서는 못 먹어서 병든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그는 “남한의 음식찌꺼기 만으로 북한 주민 전부를 먹일 수 있고, 미국의 음식찌꺼기로 아프리카 주민을 먹여 살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919일을 혼자 갇혀 지내고 2,757끼를 혼자 먹으며 절감한 ‘사랑과 교제’에 대한 감사도 전하며 “성도들과 함께 예배드리는 것, 교제가 얼마나 감사한지를 느낀다”고 밝혔다.
임 목사는 호박이 자라는 것, 새가 지저귀는 것을 보면서도 자연과 창조의 위대함에 감사했다는 사실, 또한 수도원 같은 기간을 주셔서 찬송과 말씀 묵상의 능력을 갖게 하신 하나님 은혜에 감사한 일을 소개했다. 위장병과 석탄가스, 설사로 죽을 고비를 넘기게 하시며 표적을 통해 확신을 주신 은혜, 죄없이 억울하고 잔혹하게 핍박을 당하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고난에 동참하고 축복임을 알게 하신 은혜에 감사하게 됐다고 전했다.


임 목사는 또 “모든 불순물을 제거하고 철저하게 회개하게 하신데 대한 감사, 그리고 항상 기도의 응답을 주시고 은총의 표적을 보이시며 새로운 비전으로 무장하고 나아갈 수 있게 연단시켜 주신 은혜가 감사의 능력이 되었다”면서 매일 매일에 충실하며 기도의 삶을 살 것을 강조했다. 그는 이어 “하나님 스케줄이 시작됐다는 믿음과 약속하신 말씀을 믿고 기다리니 주님은 길을 열어주셨다”고 전하고 ‘100만 선교사 파송’과 통일미션 운동 등 글로벌 복음화 사역을 향한 비전과 각오를 내비쳤다.


< 문의: 905-677-7729 >


위 질문은 목회하면서 나 자신에게나 교회 모든 성도들에게 한 번쯤 진지하게 묻고 싶은 질문입니다. ‘교회 사랑’에 대하여 어떻게 정의하십니까? 열심히 봉사하는것, 헌금 생활을 정직하게 하는 것, 예배에 빠짐 없이 참석하는 것, 교회 정책에 순종하는 것 등 아마 각자 그 정의를 다르게 내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분들은 교회를 사랑하는가 보다 교회가 나를 사랑하는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분들도 참 많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대표한다고 생각을 하는 대상자들 즉, 목사와 장로 및 직분자들에게 어떤 기대를 하고 그에 대한 요구를 하시는 것이겠지요. 자신이 교회라는 몸을 구성하는 한 지체라고 여기기 보다 교회를 어떤 조직으로 이해해서 사회생활의 장이자 운영해야 할 곳이라 생각해서라면 그럴 수도 있다고 여겨집니다.


주로 신앙생활 초기에는 교회에 대해서나 신앙에 대해 잘 모르고 다니곤 합니다. ‘교회 생활’을 시작하게 된 동기가 여러 가지 어려움을 극복하고 행복해지고 싶어서였을 수도 있으며, 더 많은 사람들과 교제를 하고 정보를 얻고자 하는 기대로 출석하기도 했겠습니다. 초기에는 교회라는 개념에 대한 지식이 부족할 때이고 당장 자신에게 닥친 급한 불을 끄기 위하여 기도도 하고 예배도 드리고 헌신하기도 할 때입니다.그러다가 시간이 흘러서 문제가 해결이 되고 믿음도 생기게 되면 잘 모르고 있던 교회의 면면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더 많은 ‘교회 사람들’ 도 보이고 그들을 통해 교회라는 대상에 대해 이런 저런 정보와 지식도 늘어가기 시작합니다. 교회가 무엇인지 제대로 된 정의를 ‘성경’을 통하여 배우기도 전에 이미 사람들과 경험으로부터 들은 정의를 안고 살게 됩니다. 그것이 바르지 않더라도 한 번 자리 잡힌 개념은 쉬이 교정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한 예로, 교회의 당회에 대해 목사가 우두머리이고 장로들이 중직이 되어 교회를 다스리는 집단이라고 이야기 하는 분도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 보니 그와 같은 개념을 공유하는 사람들은 당회를 주시하며 때를 따라 동의도 하지만 견제할 필요가 있는 조직으로 생각해서 힘의 균형을 이루려고 합니다. 이렇다 보니 서로가 교회를 좋아하고 사랑하는 마음은 같더라도 늘 그 공동체 안에는 일치와 화합보다는 긴장이 있습니다. 여기 부터 신앙생활은 문제가 시작되어 교회에 대한 오해를 고칠 기회조차 만나지 못한 채 어쩌면 평생을 그렇게 ‘교회 생활’하며 인생을 보내게 될지도 모릅니다.
성경에서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 이라 말합니다. 그래서 ‘교회 사랑’ 은 곧 ‘그리스도를 사랑’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리스도 없는 교회는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에 엄밀히 말해 그리스도를 주로 영접한 ‘믿음이 없이는’ 그 누구도 교회의 일원(지체)이라 말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를 영접한다는 것은 그리스도가 나의 죄를 속량해 주시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은혜를 안다는 것이며 그 은혜가 절대적으로 내게 필요하다고 여겨 그 예수를 의지한다는 뜻이기 합니다. 그래서 이 ‘믿음’ 으로 ‘교인’ 도 되고 ‘교회’ 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철저히 그리스도에 기초해야 하며, 그의 행하신 일들을 믿음으로 받고, 그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모인 무리들이어야 합니다.


이제 “교회를 사랑하십니까?” 라고 물으면 “네, 저는 교회 곧 그리스도를 사랑합니다!” 라고 대답해야 합니다. 교회를 생각하면서 싫증난 목사, 맘에 안드는 장로, 기타 꼴불견인 사람들로 판단하면 교회의 참뜻을 대단히 오해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분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교회를 사랑할 뿐 아니라 또 교회를 이루는 성도(이웃)도 사랑해야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늘 도전을 만나게 됩니다. “저 사람 만큼은 안돼!” 라는 한계에서 걸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이 그리스도를 사랑한다면 사랑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사랑하기로 의지적인 결단을 해야 합니다. 사랑할 수 없는 저희 같은 사람을 사랑하셨던 분이 예수님이셨고 그것이 나타난 것이 ‘십자가의 사랑’ 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 사랑은 ‘희생’을 전제합니다. 희생이 없는 사랑은 없습니다. 교회를 사랑하시는데 힘이드시나요? 맞습니다. 사랑은 희생이 따르기 때문에 힘든 것입니다. 교회를 사랑하기 때문에 힘들다고 하시는 분들은 “참 잘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교회를 사랑하신다면 주님 부르시는 그 날 까지 아파하시고 괴로워하시고 우셔야 합니다. 그리고 견디고 안내하셔야 합니다. 그것이 ‘교회 사랑’ 입니다. 피하거나 도망하거나 돌아서거나 하지 마십시오. 사랑은 회피가 아닙니다.
오늘도 예수님께서 물으십니다. “… 네가 이 사람들 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요 21:15)

< 노득희 목사 - 벧엘 성결교회 담임목사 >


성도들에게 인사하는 임직자와 부인들.

“부활의 능력으로 하나님 나라 이뤄야”

밀알교회(담임 노승환 목사)는 부활절인 4월1일 주일 오전 2부 예배 시간에 장로 4명과 안수집사 3명을 항존직 새 직분자로 세웠다. 임직식에서는 신재광·엄정국·채훈·최영석 안수집사가 장로로, 공성욱·신정호·최호진 집사가 안수집사로 각각 장립했다.


이날 ‘죽음 포기’(막 16: 1~8)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한 노승환 목사는 “우리는 부활할 존재들인데 죽음 보다 못한 문제들에 왜 그렇게 걱정하는가”라며 “하나님 형상으로 회복된 우리는 부활의 능력을 힘입어 삶에 무슨 일이 있어도 기대와 소망과 기쁨으로 살며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가는데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 문의: 416-226-419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