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초, 개인적으로는 휴가 기간이었지만, 교회에서 파송예배를 드리면서, 담임목사로서 여러 가지 생각과 느낌이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토론토대학 위클리프에서 구약학 박사를 마치신 윤만희 목사님을 아프리가 오지의 가난한 나라 감비아에 파송한 것은 우리 교회에 여러 가지 의미를 주는 일이었습니다.

감비아 대학교의 교수로 파송하지만, 여전히 그 나라는 아프리카의 가난하고 작은 나라입니다. 그런 곳에 윤만희 목사님과 같은 분이 선교사로 파송되는 것은 어쩌면 낭비처럼 보입니다. 예수님께서 낮아지셔서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의 모양으로 오시고, 십자가에까지 복종했듯이, 선교사님과 그 가정의 헌신은 하나님 나라와 그 복음의 지향점을 선명하게 드러내 주었습니다.
감비아(The Gambia)는 서아프리카의 작은 나라로, 세네갈에 둘러싸여 있는 가난한 나라입니다. 대부분이 이슬람 국가로 기독교 인구는 5% 미만입니다.
윤만희 선교사는 한국과 미국, 캐나다에서의 신학 수업과정을 통해 성경언어와 해석 훈련을 받았습니다. 2017년 2월부터 선교단체 글러벌 스칼러스 캐나다 (Global Scholars Canada)와 협력하여 감비아 대학교에서 구약과 조직신학을 가르치는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 가운데, 감비아는 이슬람 국가임에도 국립대학교에 기독교 신학과가 있습니다. 앞으로 선교사님께서 그곳의 학생들에게 성경을 가르치시는 일은, 아프리카 복음화를 위한 겨자씨가 될 것입니다. 선교사님의 가르침으로 하나님 나라의 복음으로 무장된 인재들이 감비아와 아프리카에 보이지 않는 작은 씨앗들로 뿌려질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각각 약 30년, 40년의 역사를 지닌 교회들이 하나가 되었습니다. 2017년 다운스뷰 지역으로 이전하면서 교회 역사상 처음으로 선교사 가족을 파송하게 되었습니다. 이 일은 예수님께서 땅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되라는 가장 큰 명령에 순종해야 하는 교회로서 의미 있는 발자취였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 교회로서는 역사적이고 감격적인 순간이었습니다.

선교사 파송예배를 인도하면서, 저는 우리 교회와 성도들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선교사 파송을 위해서 함께 예배하며 기도하는 순간, 하나님께서는 파송하는 우리 교회(성도들)와 파송되는 선교사과 그 가정을 격려하고 계심을 깊이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하나님의 은혜가 끊임없이 교회와 선교사님의 삶과 사역에 차고 넘치기를 축복합니다.

< 전상규 목사 - 다운스뷰 장로교회 담임목사 >


본 한인교회 50주년 맞아

● 교회소식 2017. 9. 5. 18:29 Posted by SisaHan

9월10일 감사예배… 기념 각종행사

올해 교회설립 50주년을 맞이한 본 한인교회(담임 한석현 목사: 200 Racco Parkway, Thornhill L4J 8X9)가 9월10일 설립 기념주일 감사예배를 드리는 것을 비롯, ‘3세대 은혜의 축제’와 부흥회, 뮤지컬, 그리고 바자회를 여는 등 10월까지 한달 동안 다양한 기념행사를 갖는다.
설립 기념주일 예배는 9월10일 오전 9시와 낮12시에 드리며, 김영기·김우철·민익홍·조동훈 집사의 장로장립식도 거행할 예정이다.


앞서 9일(토) 오후 6시에는 전야제 행사로 ‘3세대가 갖는 은혜의 축제’가 열린다. 각 교회학교와 마을, 청년부 및 EM 등과 남성합창단이 출연해 공연을 하며 지난 반세기의 발자취를 돌아보고 은혜와 기쁨을 나누면서 새로운 반세기를 다짐하게 된다. 이날 행사는 먼저 온 성도들이 식사를 마친 뒤 각 참가단체 대항 촌극대회로 장기와 실력을 겨루고, 한국왕복 항공권을 포함한 경품추첨 등으로 화목을 다지는 흥겨운 시간으로 진행한다.
기념 부흥회는 9월29일(금)부터 10월1일 주일까지 ‘본질로 돌아가라!’(막 1:15)는 주제로 고영민 목사(이글스필드 한인교회 담임)를 강사로 초청해 개최한다.


이어 10월7일(토) 오후 7시30분에는 뮤지컬 공연이 펼쳐진다. 극단 ‘브랜치스’가 조선말 복음의 씨앗을 뿌린 캐나다 선교사 윌리엄 존 맥켄지의 신앙과 삶을 다룬 역작 ‘맥켄지’를 공연할 예정이다.
10월14일(토) 열릴 바자회는 오전 9시부터 오후 2시까지 각종 먹거리와 김치·밑반찬·즉석음식 및 의류와 생활용품 등의 벼룩시장도 마련된다.
한편 본 한인교회는 이번 설립 50주년을 기념하는 감사헌금으로 25만 달러를 모으기로 하고 그 중 10만 달러는 한인 무궁화요양원 인수를 위한 모금운동 후원에 사용하도록 했다.


< 문의: 905-881-2999 >


유기성 목사 “믿는 사람이 가난? 세상의 영 때문”

“믿는 사람이 가난하고 배고프고 가진 게 없다고 생각한다면, 성령의 역사로 진정한 믿음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큰빛교회(담임 노희송 목사)가 8월18일부터 20일 주일까지 개최한 집회에서 말씀을 전한 유기성 목사(서한 목자교회 담임)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형편이 좋게 해달라 부자가 되게 해달라고 간구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변함없이 하나님을 주목하며 주님 안에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이다. 그러면 언제나 부자로 산다”고 성도들에게 도전을 주었다.
‘내 안에 거하라’(요 15:4)는 주제로 가진 집회에서 유 목사는 첫날인 18일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사람’을 시작으로 ‘24시간 예수님을 바라보라’‘영성일지를 통한 예수님과 행복한 동행’‘예수님 한 분이면 충분합니다’“당신은 행복하십니까?‘‘당신은 부유하십니까?’‘질그릇에 담긴 보배’‘사랑만 하며 사는 축복’등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다.


유 목사는 20일 주일 ‘당신은 부유하십니까?‘(빌 4:11~13)라는 설교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40년간 헤매며 힘든 시간을 보냈는데 모세는 ‘너희는 행복자로다‘라고 말했다. 이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 되어주신 것 하나만으로도 행복한 것임을 모세가 깨우친 것”이라고 전하고 “우리는 예수님 영접한 것으로 모든 게 변화되고 부자가 된 것”이라며 “정말 예수 믿고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는다면 당연히 먹고 살 걱정이 없어야 한다. 말 할 수 없는 축복에 눈뜨게 되어야 한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가난하고 배고프다면 성령이 역사하시는 믿음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유 목사는 “성령이 역사하시는 믿음의 특징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믿는 것이며, 하나님의 영이 내 안에서 역사하는 것이지만, 아버지로 믿어지지 않는 이유는 여전히 세상의 영이 차지하고 있는 상태인 것“이라고 전하고 ”부자로 사는 사람은 예수님 안에 사는 법을 배운 사람“이라고 말했다.


유 목사는 이어 “우리는 내 안에 무슨 영이 들어있는지 심각하게 돌아봐야 한다. 우리가 부유해도 가난하고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세상의 영, 거지의 영이 우리 안에 있는 때문이고, 부를 하나님 사랑의 증거로 삼는 율법주의자가 된 것이나 가난해도 먹고 입는 데 지장없이 만족하며 기뻐하는 삶은 재산이 많든 적든 하나님 사랑을 믿고 주님을 사랑하는 믿음의 확신이 있는 사람”이라고 강조, “우리 모두 생각을 바꿔 거지의 영이 아닌 하나님 성령의 영으로 사는 부자들이 되기 바란다”고 축원했다.


< 문의: 905-677-7729, www.lkpc.org >


[기쁨과 소망] 슬픔에서 기쁨으로

● 교회소식 2017. 8. 30. 12:44 Posted by SisaHan

슬픔과 기쁨은 공통점도 있고 차이점도 있다. 둘 다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감정이라는 것이 공통점이다. 시랑하는 사람이 떠나면 슬프고, 다시 만나면 기쁘다. 환경에 따라 금방 변하는 것이 인간의 마음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떠나면서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할 것이요,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말씀하셨다.
제자들은 이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조금 있으면 예수님이 죽으시고, 조금 있으면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는 것을 믿고싶지 않았다.
여기서 더 중요한 단어는 <보다>라는 동사이다. 우리의 감정이 슬프고 기쁜 것은 눈으로 보느냐 보지 못하느냐에 달렸다.


도마는 제자들이 전해주는 부활소식을 들었지만 보지 않고서는 믿지 못하겠다고 반응했다. 믿음은 보고 이해하는 실재적인 것을 추구한다. 그런데 주님은 도마에게 “너는 나를 보고야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더 복되도다.” 하셨다.
바울은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고 했다.
헬라어에 <보다>라는 동사는 6개가 있는데, <듣다>라는 동사는 하나 뿐이다. 이는 헬라 사람들이 얼마나 이성적이며 미학적인지 짐작하게 한다.
그러나 슬픔과 기쁨에는 다른 큰 차이점이 있다. 그것은 슬픔은 보이는 사람으로부터 오지만, 기쁨은 보이지 않는 들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온다는 출처의 차이이다.
하나님께 속한 사람은 슬픔을 이긴다. 그것은 성도가 죄를 이기는 것과 같다. 요셉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두려워할 때 보이는 보디발의 아내의 육체의 유혹을 이길 수 있었다. 이는 요셉 자신의 절제가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자가 요셉을 지키며 악한 자가 그를 만지지도 못하도록 막아주셨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기쁨(joy)’은 단순히 내가 바라는 욕구가 충족됨으로 얻는 ‘즐거움(pleasure)’ 이나 ‘행복’과는 다르다. ‘즐거움’이 내가 주체가 되는 ‘추구의 대상’이라면, ‘기쁨’은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선물 즉 ‘은혜의 대상’이다. 그래서 기쁨은 성령의 열매이다.
프란시스 쉐퍼는 많은 사람들은 행복(happiness)을 추구하는데 이는 본래 happen, ‘우연히 발생하다’라는 동사에서 나왔다. 그러나 예수님은 행복 대신에 산상수훈의 8복에서 blessing(복)이라는 단어를 썼다. 이는 본래 bleed, ‘피를 흘리다’라는 단어에서 나왔다. 이는 레위기의 희생의 제사를 통해 인간과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맺는 것을 촉복으로 간주한데서 유래한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게 사는 것이 바로 복된 삶이다. 그러므로 ‘즐거움’은 외부의 조건으로 만들어지나, ‘기쁨’은 마음 깊숙한 곳에서 솟아난다. 세상에는 즐거움이 있고, 교회에는 기쁨이 있다.

< 박태겸 목사 - 캐나다 동신교회 담임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