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핀치 어린이들에 핀 ‘웃음꽃’

● 교회소식 2014. 12. 26. 18:27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리칭업 미니스트리 자원봉사팀이 초청한 크리스마스 파티에 참석한 어린이들.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파티
Reaching Up Ministry 봉사자·교회들 섬김

우범지대로 알려진 토론토 제인-핀치의 80여개 다민족 거주지역에 있는 유니버시티교회(담임 김진혁 목사: 1830 Finch Ave W.)를 중심으로 어린이와 주민들을 위해 ‘Reaching Up Ministry’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 자원봉사자들과 후원교회들이 지난 12월19일 저녁 아름답고 뜻깊은 크리스마스 파티를 열었다.


2008년부터 시작된 Reaching Up Ministry는 방과 후 숙제 및 학과 공부를 도와주는 Homework Program과 음악 레슨을 하는 Music School 프로그램을 통해 가난하고 소외된 지역 어린이들과 주민들을 섬기는 사역으로, 김애령, 김혁 씨 등 6명의 피아니스트로 구성된 ‘피아르모니아’멤버들을 비롯, 다수의 한인 자원 봉사자와 많은 교회들의 후원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날 파티에는 120 여명의 어린이가 참석해 성황을 이룬 가운데 크리스마스 장식이 예쁘게 꾸며진 테이블에서 스파게티, 미트볼, 치킨, 샐러드, 빵 등 맛있는 식사와 다양한 음료가 어린이들을 즐겁게 했다. 또 페이스 페인팅과 스토리 타임, 싱 어롱 시간 등으로 웃음꽃이 피어났다. 이날 특히 밀알교회 어린이들이 준비한 뮤지컬 ‘A play in a manger’ 공연이 눈길을 모으며 마지막 곡은 유니버스티 교회 어린이들과 함께 한 합창으로 모두에게 감동을 선사했다.

어린이들은 가든 교회와 밀알 교회에서 준비한 선물을 한아름 안고 귀가, 모처럼 흥겹고 기쁜 크리스마스를 맞이 했다.


Reaching Up Ministry 자원봉사팀은 평소 음악교실 등 프로그램 외에 여름캠프와 기금모음 음악회 등 다양한 사역으로 어린이와 주민들을 돌보고 있다. 뜻을 함께 하며 자원봉사에 나설 헌신자들이 많이 필요하며 언제든 환영한다고 RUM팀은 밝혔다.


< 문의: 647-746-7380 >



[기쁨과 소망] 모으는 사람, 흩는 사람

● 교회소식 2014. 12. 26. 18:24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지금 내 곁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다고 너무 기뻐하거나 자만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또한 내 곁에 사람들이 아무도 없다고 너무 슬퍼하거나 힘들어하지도 않았으면 합니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나를 인정해주고, 박수를 쳐 준다고 해서 어깨에 너무 힘주지 않았으면 합니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나를 외면하고 있다는 이유로 너무 크게 낙심하지도 않았으면 합니다.
물론 이것 하나는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 내 주변의 상황은 분명 이제까지의 나의 삶을 알려주는 중요한 자료라는 사실입니다.
내 곁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다면 나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부담을 주지 않은 사람이었음이 분명합니다. 사람들이 나를 칭찬해주고, 박수를 쳐 준다면 꽤 괜찮은 삶을 살았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내 곁에 함께 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면 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이 나를 싫어하고, 나와 함께 있는 것을 부담스러워 한다면 나는 많은 이들을 불편하게 한 사람이었음이 분명합니다.
고쳐야 할 것을 고치지 못한다면 결코 그 자리를 벗어날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내 곁에 사람이 많거나, 적다는 사실보다, 때로 나를 좋아하거나 싫어한다는 사실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지금 내가 서 있는 자리가 어디이며, 내가 바라보는 방향이 어디인가 하는 점입니다. 내가 선 자리가 바르지 않고, 내가 바라보는 방향이 옳은 방향이 아니라면 오늘 나를 바라보며 환호하던 그 사람들의 뒷모습을 쓸쓸히 바라보는 내일이 곧 다가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바른 분별력입니다. 대부분의 우리들은 이것을 분별해 내는데 지혜롭지 못합니다. 어떤 이는 많은 사람이 그의 주변에 모여 있고, 사람들이 좋아한다는 이유로 자신이 바른 자리에 서 있다고 착각합니다. 어떤 이들은 사람들이 그의 곁을 떠나고, 자신을 싫어하는 이유가 자신이 바른 길을 바르게 걷고 있기 때문에 부담스러워서 그렇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사실은 그렇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바른 자리에 서 있지 않아도 사람이 재미있다는 이유만으로, 때로 그에게서 무엇인가 유익을 얻을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별 부담스럽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은 몰려 들기도 하고, 박수를 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바른 길을 걷는 사람은 때로 불편함을 주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사람이 독선적이고, 이기적일 때, 그와 함께 있는 것이 부담스럽고 불편할 때... 우리가 어떤 사람에게서 멀어지는 이유는 대부분 그럴 때입니다.
그래서 분별력은 참 쉽지 않음을 깨닫습니다. 자신을 비하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자만하지도 않을 수 있는... 자신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바로 본다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힘듦을 깨닫습니다.
얼마전 새벽 예배에서 “예수께서 한적한 곳에 머물러 계시지만 사람들이 사방에서 그에게로 나아 왔다”(막1:45)는 말씀이 도전이 되었습니다.


한적한 곳에 있어도 사람들이 찾아 나오는 분, 예수님은 그런 분이었습니다.
광야에서 회개를 외치지만 사람들이 그 불편한 장소에서 불편한 소리를 듣기 위해 세례자 요한에게 나아왔습니다. 세례 요한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삶을 살고 싶습니다.

< 장성환 목사 - 런던 한인교회 담임목사 >



[기쁨과 소망] 진흙탕속의 꽃 아타나시우스

● 교회소식 2014. 12. 20. 17:33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사막의 은둔 수도자 안토니를 세상에 소개했던 아타나시우스 (Athanasius, 296?~373) 는 우리가 기억해야 할 세상 속의 그리스도인의 모델입니다.
옥석은 옥석을 알아본다고 했나요? 아타나시우스는 은둔 수도자 안토니의 깊은 영성을 한눈에 알아 보았습니다. 어찌 보면 이 둘은 전혀 다른 두 길을 가고 있는 사람이었는데 둘 사이에는 무엇인가 통한 것이 있었나 봅니다.
불교에서는 이판(理判)과 사판(事判)이 있습니다. 이판은 수도를 하는 스님을 가르키는 말이고 사판은 세상 속에서 포교를 하고 사찰의 행정을 관장하는 스님을 말합니다. 안토니는 굳이 말하자면 수도를 하는 이판격이고 아타나시우스는 포교와 교회행정을 맡은 사판격입니다. 그러니, 이 두 사람의 그리스도를 따르는 방법은 달라도 많이 다른 길이었던 것입니다.


당시 교회는 영적으로 혼돈스러웠고 신학적으로 논쟁과 싸움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 모습에 환멸을 느낀 많은 크리스천들이 자신의 신앙을 지켜내기 위해 사막으로 나가 안토니 처럼 수도승이 되기도 했습니다. 반면에 세상을 등지고 사막으로 나가기 보다는 세상안에서 신앙의 정도(正道)와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투쟁적인 삶을 산 크리스천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중 아타나시우스는 악을 직면하여 혼돈의 소용돌이 속에서 신앙의 절개와 신학의 정도를 지켜낸 사람으로 꼽습니다. 그는 30대의 젊은 나이로 당시 동방 최고의 도시였던 알렉산드리아의 대주교에 올랐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을 주장한다는 이유로 그후 46년간 다섯번의 파면을 당하였고 20여년 동안 은거와 도피의 생활을 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교회를 바로 세우기 위해 당하는 고난을 기쁨으로 여기며 당시 만연했던 교회내의 이단사상들과 끝까지 싸워 그리스도의 신성을 교회에 정착시켰습니다.
오늘날의 교회를 보면 진흙탕 싸움입니다. 영적으로 혼탁해 있고 신학적으로 혼돈에 빠져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에 환멸을 느낀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교회에 돌을 던지며 비판을 합니다. 그리고 아예 교회를 떠나서 교회해체론을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어느 누구하나 교회를 위해 기꺼이 돌을 맞는 사람은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돌을 던지는 자리에서 큰소리 높이기를 원하지 돌맞는 자리에서 묵묵히 교회를 지켜나가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아타나시우스! 그는 그 진흙탕 싸움 속에서도 신앙의 순수함과 신학의 올곧음을 지켜낸 사람입니다. 교회를 향해 날아오는 돌을 맞고 억울하게 유배를 당해도 교회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지켜낸 사람이었습니다.
은둔 수도자 안토니의 영성이 혼돈과 황량함의 시대에 사막에서 피어낸 선인장이라면, 아타나시우스의 영성은 흙탕물 속에서 아름다움을 토해낸 연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 최봉규 목사 - 토론토 드림교회 담임목사 >



[평신도 글마당] 세상에서 가장 귀한 예단

● 교회소식 2014. 12. 20. 17:30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고국을 방문하고 홍콩의 둘째 집에 들렸다가, 아들이 마련해준 크루즈여행으로 싱가폴, 태국, 말레이지아를 들려 다시 홍콩에서 토론토까지 15시간의 비행 끝에 약 5주간의 여행을 마무리 했다. 여행 중에 만난 여러가지 사건과 사람들을 통하여 배우고 느낀 점들이 참으로 많다. 동남아의 열기에 시달리다가 집에 돌아오니 토론토의 추위가 낯설다. 그러나 막상 토론토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토론토의 추위에 익숙해져 있다. 거기에는 추위에 비례한 난방시설이 탁월한 이유도 포함된다. 싱가폴의 더위는 상상을 초월했다. 내가 방문했을 때(11월 26,27일)는 섭씨 36도에서 38도를 기록했다. 그러나 견딜 수 있었던 것은 부자 나라답게 어딜 가나 잘되어 있는 냉방시설 때문이었다. 그러나 태국의 푸켓은 사정이 달랐다. 한국을 기준으로 본다면 제법 잘 갖추어진 관광지가 되겠지만, 캐나다를 기준으로 한다면 미흡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찌는 더위와 습도는 견디기가 힘들고, 리조트를 제외한 지역의 무질서와 불결함이 불편했다. 또 하나는 가게와 가정집들 입구에 설치된 금빛으로 치장한 불상들이다. 분명, 복을 비느라 모셔(?) 두었겠지만, 그들이 복을 받고 사는지는 의심이 들 수밖에 없었다. 물론 복을 물질에 두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하나님을 믿는 자들은 덤으로 물질의 축복까지 받아서, 세계의 갑부들이나 나라들도 모두 선진국 대열에 앞장 서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여행은 견문을 넓혀 준다. 그러나 아직도 현실과 맞지 않는 옛 풍습을 고집하거나, 미신을 믿는 사람들은 견문이 좁은 사람들이 주를 이룬다. 한국에서도 선진국 여행을 많이 한 사람들과 후진국 여행을 주로 한 사람들의 생각이 다름을 알 수 있었다. 자기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때문이다. 어찌 되었든지, 여러가지 복을 누리고 사는 사람들은 믿음이 좋은 사람들임을 이번 여행에서도 확인을 한 셈이다. 페이스북에서 뜻밖에도 학교 후배되는 장로님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번 여행에서 장로님과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이 장로님은 선교에 뜻을 세우고,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자신의 힘으로 일하면서 선교하겠다는 계획을 구체적으로 실천하고 계심을 직접 들을 수 있었다. 부럽고 자랑스러웠다. 그런데 이 장로님의 따님이 곧 결혼을 앞두고 있다 하신다. 사위가 의사 선생님이라는데, 이 따님 또한 변호사로서 부족함이 없지만 그래도 혼수문제가 걱정이 되셨던 모양이다. 한국실정이 실정인 만큼 예단 걱정을 하고 계셨는데, 사돈댁에서 너무나 힘든 예단을 요구하셨다는 것이다. 내용인즉 “시편 119편을 암송해 올 것”이 예단을 대신한다는 것이었다. 참으로 복받은 두 집안이 아닌가!! 장로님께서는 황당하기도 했지만 너무나 기뻐서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고 간증하셨다. 그런 예단을 요구한 사돈네가 부럽고, 자신이 부끄러웠다는 이야기이다.


진정한 ‘복’ 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한때, 우리나라의 기독교도 기복신앙에 치우치던 시절이 있었다. 예수 믿으면 집사고 영주권 얻는다고 선전(?)하는 가정교회 사역원 이란 곳이 바로 이런 기복신앙을 이용한 속임수 인데도 존재하고 있는 것을 보면, 많은 이들이 ‘복’의 의미를 잘 모르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진정한 복은, 하늘에서 내려주신 행복과 평화의 복이다. 값비싼 예물로 열쇠가 몇 개씩인지가 복의 저울이 되고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사모하며, 말씀대로 살았기에 자녀들이 축복받고 성공하여, 부모의 기쁨이 되는 것이 바로 하늘에서 내려주는 행복이 아니겠는가? 예단 대신 말씀을 암송해 오라는 신랑 집안이나, 사재를 털어 선교에 나서겠다는 집안이 서로 사돈이 되었으니, 그 자손들이 번창하고 하늘이 내려주는 신령한 복으로 가득 채워질 것은 보지 않아도 이미 아버지께서 준비하셨음을 알 수 있지 않는가! 우리가 살고 있는 캐나다에서는 혼수나 예단이 없으니 다행이지만, 만약에 이런 것을 요구하거나 받기를 원하시는 가정이 있다면, 한번 생각해 보시라 권하고 싶다. 자손 대대로 복의 근원이 되는, 세상에서 가장 귀한 예단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 정훈태 - 동산교회 장로 >